공연

starwoods 2009. 5. 23. 00:04

요즘 '브로콜리너마저'라는 그룹의 노래가 괜찮다는 말에 나도 한번 그들을 검색해보았다.

아래 노래를 듣고 있자니, 톨스토이의 예술론에는 한가지 큰 문제점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작가가 경험한 감정이 그대로 독자들에게 전염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은 예술 작품이라고 했는데,

독자들이 원하는 것은 내 감정을 누군가가 대신, 그러나 구구절절히 옳게 담아내고 있는 작품을 원하는 것이 아닐까 말이다. 작품에 대한 반응으로서 공감이 간다는 말이 나오기 위해서는 작가의 경험이 아니라 독자의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 작가는 이것을 잘 관찰하고 옮겨 담아내는 재주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슬픈 감정을 어떻게 해보려는 화자에 공감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일상이 바로 이런 대도시 소시민적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이 노래가 그것을 일면 정확하게 비쳐주고 있기 때문이리라. 최근 장기하가 어필하는 것도 이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고 보인다.

 

노래가 칙칙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승호군의 훈훈한 얼굴이라도 감상하시라..

 

친구가 내게 말을 했죠
기분은 알겠지만 시끄럽다고
음악 좀 줄일 수 없냐고
네 그러면 차라리 나갈께요

그래 알고 있어 한심한 걸
걱정끼치는 건 나도 참 싫어서
슬픈 노랠 부르면서
혼자서 달리는 자정의 공원

그 여름날 밤 가로등 그 불빛아래
잊을수도 없는 춤을 춰
귓가를 울리는 너의 목소리에
믿을수도 없는 꿈을 꿔
이제는 늦은 밤 방 한구석에서
헤드폰을 쓰고 춤을 춰
귓가를 울리는 슬픈 음악 속에
난 울 수도 없는 춤을 춰

내일은 출근해야 하고
주변의 이웃들은 자야 할 시간
벽을 쳤다간 아플테고
갑자기 떠나버릴 자신도 없어

그래 알고 있어 한심한 걸
걱정끼치는 건 나도 참 싫어서
슬픈 노랠 부르면서
혼자서 달리는 자정의 공원

그 여름날 밤 가로등 그 불빛아래
잊을수도 없는 춤을 춰
귓가를 울리는 너의 목소리에
믿을수도 없는 꿈을 꿔
이제는 늦은 밤 방 한구석에서
헤드폰을 쓰고 춤을 춰
귓가를 울리는 슬픈 음악 속에
난 울 수도 없는 춤을 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