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starwoods 2006. 1. 31. 01:53

먼저 글에 대해 한 논객께서 반론의 글을 올려 주셔서 여기에 대한 변론을 작성해보았습니다.

이 글은 먼저 글에서 미진한 부분에 대한 보충 설명으로 보시면 좋겠습니다.

 

반론 글 보기 : http://www-nozzang.seoprise.com/board/view_mod_new.php?code=forum4&uid=716&page=&search_c=&search=&search_m=&memberList==

 


박봉팔 님의 글이 대문으로 올라갔는데, 정작 반론 대상인 제글은 별로 관심을 받고 있지 못하네요. ^^ 박봉팔 님께서 공부 좀 하고 글쓰라고 해서 좌회전 님께서 아래에 올려놓으신 "스크린쿼터 논란 완벽정리"를 읽어보고 박봉팔 님의 반론에 대한 변론과 제가 먼저 쓴 글에 대한 부연을 좀 해 보고자 합니다.

 

딴지일보 인터뷰를 통해 제가 이해한 스크린쿼터는 다음과 같습니다: 스크린쿼터는 헐리우드의 독과점을 견제하는 최소한의 장치 곧 반독점장치이며, 일반상품이 아닌 문화상품으로서 영화는 문화의 다양성 보호라는 측면에서 국제법적으로도 보호받는 정당한 규제 장치이다.

 

제가 먼저 글을 쓰던 때에는 국제법상 스크린쿼터가 보호받고 있다는 점을 잘 몰랐습니다. 지적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제가 스크린쿼터는 공정거래에 위반되므로 축소 또는 폐지되어야 마땅하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음을 밝힙니다. 제가 스크린쿼터 축소에 대해 정부를 규탄하지 않아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셨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말하고 싶었던 바는, 어떤 이유로든 간에 미국의 스크린쿼터 철수의 요구를 정부로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미국이 정당한 근거와 명분으로 스크린쿼터 축소를 요구하든 그렇지 않든간에, 패권자의 압력을 거스를 힘이 현재 우리에게 주어져 있지 않으며, 어쩔 수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서 살아 남는 방법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패권국의 요구를 거부하는 것은 미시적인 사안별로 대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 국가의 방향성 문제와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서 좀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박봉팔 님께서는 반론 글에서 지적하신 부분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고양이 쥐 생각 비유의 부적절성

2. 영화 스탭들의 환경 개선과 스크린쿼터 축소로 인한 폐해

3. 농산물 개방과의 차이

4. 영화 제작 태도 변화의 허구성

5. 헐리우드 벤치마킹의 정당성

6. 스크린쿼터 축소 문제의 핵심

7. 공정경쟁의 허구성

8. 영화계 스탭들의 어려움과 이기주의 비판에 대한 반론

 

이제 지적하신 내용에 대해 변론과 부연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1. "고양이 쥐 생각 비유의 부적절성"에 대해

 

이 비유를 통해 제가 말씀드렸던 부분은, 스크린쿼터 축소를 반대하는 영화 관계자들 가운데, 전면에 내세워지는 사람들은 제작자 및 스타급 감독과 배우들인데, 이들의 경우, 제가 생각하기에는, 스크린쿼터가 축소된다고 해서 생계가 위협을 받는 수준은 아니라는 점인데, 이 분들이 급여의 측면에서 봤을 때 말단에 있는 스탭들의 생계위협을 반대 논리로 내세우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왜 적절하지 못하냐 하면, 먼저 제작진 내부에서 영화를 통한 수익에 대해 분배적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그러한 노력없이 이들을 자신들의 반대 논리에 이용하고 있다는 '인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딴지일보의 인터뷰를 보니, 오히려 몇몇 인사들을 제외하고 '말단' 스탭들의 경우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하지 않고 행동을 보이지 않다고 하니, 저의 비판이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음을 인정합니다. 혹 이 말에 대해 기분을 상하신 관계자 분이 계시다면 사과드립니다.

 

2. 영화 스탭들의 환경 개선(a)과 스크린쿼터 축소로 인한 폐해(b)

 

a. 사정이 어렵다하였는데 말씀하신 인건비 수준을 보니 제가 상상했던 것보다 형편이 많이 좋아진 것 같습니다. 제작 기간이 문제이겠지만, 단기간일 경우를 가정하고, 영화 하나를 제작하고 연출부 막내 스탭이 300만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라면, 제가 생각했던 열악한 환경보다는 지금도 좋은 수준인 것 같습니다. 물론 스탭들의 기여도에 맞게 분배적 정의가 실현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제가 쓴 글에 대한 반론과는 상관이 없는 부분입니다. 저도 스탭들의 처우가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에 대해 반대한다는 생각을 표시해본 적이 없습니다.

 

b. 스크린쿼터 축소가 한국 영화 제작 환경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저는 제 글에서 부인한 적이 없습니다. 이 부분은 박봉팔 님께서도 제 글을 오해하지 않으셨다면 인정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다만 박봉팔 님의 글이 제 글에 대한 반론이라는 형식으로 작성되었고 항목별로 정리되어 있어 제 글을 읽지 않으신 대부분의 독자들께서 오해하고 계시지 않을까 생각되어 지적해봅니다. 다만 저로서는 수치 상으로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박봉팔 님 또는 그밖의 다른 독자들께 질문을 드려보고자 합니다. 현재 146일(40%)의 스크린쿼터가 절반으로 축소되어 73일(20%)가 되면, 왜 영화 제작편수가 절반으로 줄어들고, 따라서 스탭들의 수입이 반으로 줄어드는 것인지 간단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 계산이 가능하려면 헐리우드 및 기타 해외 영화(그밖의 영화는 점유율이 미미하니 무시하고 논의를 진행 하겠습니다.)의 경쟁력은 무한대(∞)이며 한국영화의 경쟁력은 제로(0)에 가까워서, 스크린쿼터의 나머지 부분은 항상 헐리우드 영화가 점유하고 있기 때문에, 스크린쿼터를 40%에서 20%로 축소하게 되면, 그와 동시에 한국영화의 점유율은 20%로 반감하게 되고, 점유율의 하락과 비례하여 영화제작 편수도 줄어들고, 그와함께 스탭들의 수입도 줄어들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창동 장관이 2004년 기자회견에서 말한 바 있듯이 한국 영화의 점유율이 스크린쿼터의 점유율 이상인 50~60%까지 발생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이 전 장관이 말하는 점유율 수치와 스크린쿼터 상의 점유율 수치는 그 계산법이 다른 것인가요? 아니면, 이 전 장관이 일시적 현상을 일반적인 추세로 과장하거나 허위로 보고 한 것인가요? 이 부분에 대해서 박봉팔 님께 설명을 부탁드려 봅니다.

 

위의 문제에 대해 영화 시장이 시장의 원리가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신다면, 그에 대해서는 제 소견을 밝혀 보고자 합니다. 딴지 일보 인터뷰를 보면 씨네하우스의 <여고괴담>과 <고질라>의 사례를 들어 헐리우드 제작사 및 배급사의 은근한 외압으로 인해 극장주들이 어쩔 수 없이 스크린쿼터 이외의 날에는 한국영화가 흥행이 되든 그렇지 않든 간에, 한국 영화를 내리고 헐리우드 영화를 걸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영화 시장이 시장원리와는 무관하게 1년의 146일 또는 앞으로 73일은 스크린쿼터 시행령으로, 그리고 나머지 날은 헐리우드의 감춰진 손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외압이 어쩔 수 없으므로 스크린쿼터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참 서글픈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배급사의 이러한 횡포가 사실이라면, 그야말로 극장주들은 딜레마에 빠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국내의 메이져 배급사들도 헐리우드 직배사들과 마찬가지의 논리로 자기네 영화의 상영을 강요하는 횡포를 부리지 않을 것이라고 보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스크린쿼터 축소 문제와는 별개로 극장주들의 작품 선택과 확보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정부 차원의 '간섭'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국내에서 영화 장사를 하려는 국내외 배급사는 극장주가 원하는 영화를 무조건 공급해야 한다는 규정을 만들어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그런 주장을 하고 계신 분이 있고, 이것이 정부에서 먹히지 않은 '뒷북' 이라면 죄송합니다. --;)

 

3. 농산물 개방과의 차이

 

먼저 제가 비교한 것은 농산물 일반이 아니라 쌀시장이었음을 밝힙니다. 그리고 쌀이 우리의 육신의 양식이 되듯이 영화가 정신적인 양식이 된다는 점에서 비록 쌀이 UN이 분류한 문화상품의 코드에 들어가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비교 가능한 부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쌀시장은 문화다양성과 같은 맥락의 식량주권에 대한 논의가 불가능한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4. 영화 제작 태도 변화의 허구성

 

이 부분은 제 수준에서 다루기 버거운 큰 주제를 담고 있어서 길게 말씀드리지는 못하겠습니다만, 영화를 문화 산업으로,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이해하고 투자자들이 경제 논리로만 접근해서 돈넣고 돈먹기 식으로 제작되는 환경에서는 제대로된 '문화'상품이라는 게 나오기 어렵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관객의 입장에서도, 오히려 돈이 많이 들어가면 흥행에 대한 부담으로 인해 제작자들이 관객을 인격적인 존재로 생각하기 보다는 '돈'으로만 생각하여 소통이나 인간미 이런 가치들보다는 관객들이 좀더 말초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선정성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투기성 자본에 의해 지배되는 영화는 결국 롤러코스터 같은 형식의 쾌(快)를 통해 수익을 얻어내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이러한 형태의 쾌를 만들어 내는 어떠한 상품이 과연 비교역적 특성을 지니는 '문화상품'인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입니다. 제가 먼저 글에서 말씀드린 '오락'에는 국경이 있을 수 없다는 말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 말씀드린 것입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돈으로 더 재미있는 것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고, 이것을 영화에 적용한다면 헐리우드 영화가 더 재미있다면 헐리우드 영화 보는 데 죄책감을 느껴야 하냐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5번과 연결되므로 5번에서 계속 말씀드리겠습니다.)

 

5. 헐리우드 벤치마킹의 정당성
 

따라서 헐리우드의 어떤 작품의 성공 요소를 배워 그것과 비슷하게 만드는 방식의 접근으로는 헐리우드 영화 그 자체와 경쟁할 수 없다는 것이 제 생각이었습니다. 헐리우드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고, 따라서 그것을 우리가 벤치마킹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지 못하다는 것이 아니라 열악한 제작 여건과 작품 수로 인해 경쟁이 안될 게 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헐리우드와는 다른 방식을 연구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문화상품의 성격을 설명한 스크린쿼터 문화연대의 양기환 사무처장의 지적처럼, 문화상품이란 <해리포터>와 <소나기>가 주는 감동의 차원이 다른 것처럼 우리에게 꼭 맞는 것을 다른 나라의 작품에서 찾을 수 없다는 점에 그 특징이 있듯이, 영화의 경우에도 헐리우드의 성공 방정식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만이 고유하게 느낄 수 있는 정서를 영화 속에 담고, 우리 말이 주는 직접적이고 다양한 의미를 살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역사와 현실을 담은, 그래서 우리가 전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바로 우리 영화의 경쟁력이 될 것이란 말입니다. 최근에 선전하고 있는 <왕의 남자>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감정과 정서, 그리고 신명나는 대사를 헐리우드 영화에서는 도무지 만나기 힘든 것이 그 예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전글에서 상업영화에서 예술영화로의 무조건적인 전환을 주장한다고 이해하셨다면 저의 서툰 표현에 사과드리면서, 동시에 제가 생각한 이 문제는 당장의 실천 가능한 문제가 아니라 장기적인 방향성의 문제였다는 점을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자면, 박봉팔 님께서 표현하신 '쓰레기' 영화에 대해, 제 생각은 어떤 작품이 '쓰레기'로 처분되지 않도록 사전에 보다 철저한 연구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고, 이것은 어떤 영화가 '쓰레기'인지 아닌지를 영화를 직접 보기 전에는 제대로 알 수 없으며, 자신의 선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이미 지불한 7~8000원의 돈을 환불받을 수도 없는 영화 상품의 특성에 대한 소비자 보호의 장치라 생각합니다. 제대로 된 품질의 문화 상품을 만드는 것이 제작자들의 책임 중 하나가 아니겠습니까?*  박봉팔 님께서는 '쓰레기' 영화라도 봐 줘야 제대로 된 한국 영화가 가끔 나오고, 영화 제작 환경이 잘 조성되면 좋은 영화가 계속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6. 스크린쿼터 축소 문제의 핵심

 

이 부분은 2의 b에서 드린 말씀으로 대체하고자 합니다. 스크린 축소에 대한 저의 단편적인 생각을 하나 추가하자면, 영화계도 시장과 환경의 변화에 유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논의를 보면 한국 영화 산업은 대부분을 극장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에 있다고 생각되는데, DVD, 인터넷 등의 새로운 매체 또는 플랫폼에 대해 영화계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열린 시야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음반 시장이 CD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온라인 시장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했다가 깊은 불황에 빠졌던 사례를 참고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한 브라운 관을 통한 TV 영화에 대해서도 좀 더 적극적인 개척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모든 영화를 영화관의 와이드 스크린을 통해서 볼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7. 공정경쟁의 허구성
 

제가 이 전 글에서 공정하지 못했다고 한 부분은, 영화의 문화적 특성 보다는 근본적으로 헐리우드 상업영화 방식의 소모적, 오락적 특성에 치중한 영화에 대한 비판으로, 그것이 충분한 설득력을 지니지 못한다는 부분이었습니다. 제가 영화인들을 잘못했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하거나 재수없다고 말하지 않았는데, 저를 너무 나무라신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8. 영화계 스탭들의 어려움과 이기주의 비판에 대한 반론
 

저 역시 영화계 여러 스탭들이 처한 어려움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유가 어찌되었건 간에 감당할 수밖에 없는 요구가 우리앞에 다가와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나갈 돌파구를 찾아보자는 '소박한' 의도로 쓴 글이, "스크린쿼터 축소하고 좋은 영화 만들어서 질적으로 승부하자?"로 압축되어서 비난의 타겟이 되어 좀 황당했습니다. 이 문제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 저도 잘 모르지만, 친미외교관료의 이기적 매국행위에 원인이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결국 미국에 대한 굴종적 외교는 우리 나라가 처한 현실이 그만큼 위태롭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분단의 현실 속에 북한과 미국이 갈등 상황에 있는 이상 우리는 미국에게 언제나 접어주고 갈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정권퇴진 운동도 불사하겠다는 영화계에서도 충분히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충분히 생각하지 못하고 대충 쓴 글이 이렇게 관심을 받을 줄 몰랐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