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starwoods 2005. 12. 20.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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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하고 우울한 마음이 들어 좀 풀어낼 수 있는 영화가 없을까 이것저것 찾다가 이 작품을 골라 보았다. 작품을 고르던 과정에서 다시금 발견한 사실은 영화나 예술 작품을 통해 진정한 위로를 얻을 수 없다는 것과 이런 생각이 언제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제 1문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당신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입니까?

 

재미있는 것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로해 주십니다' 라고 직설적으로 되어 있지 않고, 오히려 살아서든지 죽어서든지, 나의 몸도 영혼도 신실한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해있다는 것과, 그리스도께서 나의 죗값을 완전히 치르고 마귀의 권세에서 해방시키셨다는 점, 하나님 아버지께서 당신의 신실하심으로 나를 보호하시고, 나의 구원을 이루도록 인도하신다는 점, 그리고 성신의 도우심으로 내가 즐겁고 신속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위해 살도록 한다는 말로 되어 있다.

 

외롭고 고되고 힘이 들어서 답답한 마음이 들 때, 접하는 이 요리 문답이, 무심결에는 아무런 도움도 위로도 안되는 듯한 마음의 요동이 있지만, 비뚤어진 마음을 바로잡는 처방전으로서 정공법으로 다가와서 다소 부담스러운 것이지, 마음을 겸손히 하고 읽으면 읽을수록 약효가 발휘된다.

 

 


 

마음이 가라 앉았을 때, 영화를 본다면 크게 두 가지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아주 유쾌한 영화로 마음 속의 근심을 잠시 접고 크게 한번 웃어보느냐, 아니면 조용하고 잔잔한 또는 다소 무거운 영화를 보느냐 하는. 나는 주로 후자를 택하게 된다. 사실 나는 기분 여하와 관계없이 유쾌/상쾌/통쾌한 영화는 좀처럼 선택하지 않는 게 대부분이지만, 내 경우 이런 기분 속에서는 좀처럼 우스운 장면에서도 웃음이 나지 않기 때문에 내려가는 쪽을 택하는 것 같다. '그러나, 여자, 정혜'를 선택한 이유는 이 작품이 우울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어서나, 이 영화를 보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고자 한 것은 아니었고, 세간의 평이 좋아서 소문을 익히 들었지만 못보고 있었다는 점, 이윤기 감독이 '러브 토크'로 다시 돌아온 연유로 그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다는 점, 무료함을 달래라고 나눠주는 아침 무료 신문 인터뷰에서 자신은 이런 식의 영화를 얼마든지 더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다소 오만한 발언에 신경이 거슬려 있었다는 점 등등으로 그의 '대표작'인 이 작품을 '이 참에 한 번 보자'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영화는 사실 굉장히 시시콜콜하면서도 다소 '작위적'인 일상을 그리고 있다. 작위적이라고 한 이유는 일상의 자연스러운 면모를 그려내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가 겉으로 드러나는 것 같은 느낌이 있어서다. 내가 괜한 트집일 수도 있다. 일면 홍상수식 영화와 동류 같으면서도, 플롯이 치밀하게 갖추어져 있으며(같은 소재가 반복하면서 전개된다는 점과 드라마틱한 이야기 구성, 몇가지 복선의 배치 등의 이유에서), 멀미나기 딱 좋은 트리에식 헨드 헬딩의 1인칭 시점 샷이나, 그림같은(picturesque) 구도, 현재와 과거의 교차 편집 등 영화적 재미가 시종일관 배치되어 있는 등으로 예술 영화의 냄새가 곳곳에서 뭍어난다.

 

 

그 동안 어디서 뭐하고 있었는지 궁금증을 유발하는 김지수나 작은 역할이라도 감탄할만한 황정민의 연기 또한 볼만하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저마다 힘겹게 살아내는 인생에 대한 무게감이 잘 표현되어 있다. 저 여자 도대체 왜 저러고 사나 하는 궁금증을 하나씩 풀어가며 함께 아파하게 한다. 불편하지만 좋은 시도라 생각한다. 같은 여자들이 이러한 작품을 보거나 만들기에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불편할 텐데, 만든 감독 남자, 윤기나 보는 남자, 승태가 가진 한계 또는 이질감, 무심, 매정 이런 것들이 발견된다. 정혜는 그동안 그렇게 얼마나 울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