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starwoods 2005. 12. 20. 17:24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마디로 평하라고 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사랑하려면 똘중이처럼 하라!"

 

흔히 결혼은 사랑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리스도인에게 혼인이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수행해 나가는 데 있어 일생을 함께 할 동반자 또는 돕는 베필을 얻는 것이므로, 사랑만 가지고 결혼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명제를 수긍해줄 수 있다.

 

그러나, 위 명제는 용어의 정의 자체가 부정확하므로 사실상 틀린 것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의 행보나 인격 전체의 충분한 심사 숙고 이후에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지 단순히 감정이 순간적으로 극도로 기울었다 해서 사랑하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그런 면에서 어떤 사람이 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할 때에는 이미 자신의 사명에 대해 각성하고 자신의 인생을 상대와 함께 걸어나갈 수 있을 때, 또는 그러한 각오가 되었을 때 말할 수 있는 선언적인 그리고 정치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너는 내 운명이라 했는데, 사실 사랑이란 운명적이라 해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것이 아니다. 잊으려고 해도 도무지 잊어지지 않아서 너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런 게 아니고, 사랑이란 한 인격체의 의지력이 매우 적극적으로 작동하는 자발적 선택인 것이다. 내 맘대로 보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석중이는 은하를 그만 포기할 수도 있었다. 주변의 어느 누구도 그녀를 끝까지 붙잡아야 한다는 사람도 이유도 없었으며, 심지어 은하 자신도 석중에게 그것을 강요할 수 없다는 죄책감에 그를 떠났으나, 석중은 그녀를 끝까지 놓지 않는다. 이것은 동시에 그녀를 붙잡음으로 인해 버려야 하는 수많은 것들을 다 포기해야 함을 의미한다. 가족간의 불화, 형으로부터 월간잡지로 머리통을 얻어맞는 수모, 동네사람들의 수군수군 거림, 무엇보다 자신의 생명까지. 이러한 상황과 조건에서도 결국 은하를 선택하는 것은 자발적 선택이지 수동적 이끌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요컨대 운명이란 말은 보통의 경우 끊임없이 벗어나거나 극복해야할 삶의 조건(오이디푸스 왕 같은 희랍 신화들의 경우가 대표적)이거나 또는 이 영화에서 처럼 자신의 의지가 지향하는 내용을 보다 초월적인 권위를 존재에 기반을 두어 의심의 여지가 없도록 만드는 일종의 수사법으로 쓰는 말이라 할 수 있겠다.

 

결혼은 사랑만가지고 할 수 없다들 하지만, 흔히 결혼의 필요조건으로 생각되는 사랑은 아무것도 없이도 할 수 있다. 아무것도 필요없고, 두 사람의 진심이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남녀간의 사랑이다. 석중이는 나름대로 성실한 시골의 노총각이다. 행복한 가정을 꾸릴 요량으로 차곡차곡 저축도 해서 통장도 여러개 가지고 있다. 다른 나라 처녀라도 결혼해서 잘 사는 친구의 모습이 부러워 필리핀에 가서 색시감을 만나보기도 하지만, 그는 별 볼일 없는 시골 노총각일지언정 사랑없이 결혼하지 않으려 하는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순정파이다.

 

이러한 석중은 서울에서 내려온 다방 아가씨 은하를 만나 첫눈에 그녀에게서 빛을 발견하고, 이윽고 그녀를 사랑하게 되며, 어느덧 그녀가 몸파는 일을 그만두고 자신과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고 그녀의 삶에 개입하기 시작한다. 석중은 은하가 돈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낮에는 티켓 손님을 밤에는 주점 손님을 맞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자신의 통장을 털어서 그녀에게 돈을 가져다 주며 이렇게 말한다.."이제 티켓 끊는 일은 안했으면 좋겠어요.."

 

나는 이 부분이 참 흥미로웠다. 나에게 바로 든 생각은 이런 것이었다. "어떻게 저런 여자를 사랑한다고 하고, 그녀가 다른 남자에게 몸을 주고 돈을 받아 나오는 모텔 계단에서 프로포즈를 할 수 있는가!" 그러나 석중은 나같은 사람이 감당하기 힘든 부분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고 있었다. 나같은 사람은 겉으론 그렇지 않더라도 누군가를 만나서 관심을 가지면 그 사람의 과거를 엿보고, 이 과거로 그 사람의 현재를 평가하고, 그의 미래를 가늠해본 다음 나름대로 등급을 매겨 최종 판정을 내버리는데, 석중은 이에 대해 상당히 자유로웠다. 또한 이러한 자유로움은 그녀의 과거와 상관없이 앞으로의 인생은 자신의 길과 방식대로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에 기초해야 가능할 것이다.  

 

상대가 과거에 살아온 행적은 앞으로의 삶에 여러가지 방식으로 영향을 미친다. 당사자는 물론 주변인들에게는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상대의 과거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는 없고, 여기에 무관심하다는 것 또한 자연스럽지는 않다.

 

그러나 그들의 과거가 좋으면 먹고 싫으면 얼른 뱉어내버리기 위해 우리의 눈동자는 얼마나 빨리빨리 돌아가는가. 생사고락의 어떠한 상황에서도 함께할 마음보다는 한발 앞서 이해득실을 따져보고, 가급적 많이 득보는 쪽에 무임승차해보고자 하는 심산이 더 큰 것이 우리의 솔직한 마음이라면, 결국 이것은 상대보다는 자기를 더 사랑하는 마음이 반영되어 나타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예수님께서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을 때, 창녀나 세리의 과거의 행적으로 인해 당신께서 받으실 명성이나 평판에 흠집이 가게 될 것을 부담스러워 하지 않으셨다. 또한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대해 에베소서에서 바울 사도는 남편이 아내를 사랑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고 위하여 당신의 몸을 주심같이 해야 한다고 하였다. 사랑이라는 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상대의 아픔과 허물을 안아 줄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인데, 자신이 편리한대로 설정한영역을 넘어서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우리는 아직 제대로 사랑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증명되어 버리는 듯 하다.  

 

은하의 경우 그녀의 '더러운' 과거는 결국 치유할 수 없는 병과, 그들 부부의 수년간의 가슴아픈 시련의 시간의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석중은 그녀를 '더러운 년'으로 취급하여 버리지 않고, 오히려 갓 시작한 그들 부부가 행복한 나날을 채 시작해보기도 전에, 사랑하는 그녀가 죽게되는 것이 두려웠고, 그녀에게 이러한 비보를 전달할 용기가 나지 않아 방황하기도 한다. 죽더라도 은하를 사랑하겠다는 석중은 자신의 약속과 사랑의 확신을 우직하게 지켜나갈 뿐, 그녀가 왜 이런 몹쓸 병에 걸리게 되었는지 그녀의 과거를 되짚어 보려고 하거나 그로 인해 그녀에게서 실망하거나 하지 않는다.

 

성경에서는 음란한 행실을 매우 중한 죄로 말씀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음란함을 정죄하는 기초에는 기독교가 니체가 "도덕의 계보'에서 규정하는 것 처럼 금욕주의적인 교의를 가지고 이러한 삶을 강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한 남편과 한 아내 즉, 부부라는 존재와 그들 사이의 관계가 다른 어떠한 대상이나 방식으로 대체되거나 보완될 수 없는 매우 신성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이해한다. 이러한 인식을 기초로 하여 자신이 스스로 음란을 배격하고 자신의 배우자만을 사랑하며, 또한 앞으로 만나게 될 배우자를 순결함으로 기다리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중대한 기준을 흔히 자신에게 적용되고 평가하기위한 잣대로 생각하기 보다는 상대를 평가할 때만 매우 엄격하려는 성향이 강하니, 이 또한 우리의 연약함이라 아니할 수 없겠다.  

 

이야기의 초점이 영화에서 다소 벗어났는데,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하고 마무리 하겠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나는 이 영화를 석중이의 위대한 사랑이야기라 보았다. 동화같지 않은 설정에서 아무런 조건도 없이 어떠한 어려움 앞에서도 자신이 선택한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는 석중의 사랑의 폭과 깊이에서 나는 감동하였다.

 

박진표 감독은 전작 '이제는.. 죽어도 좋아'에 이어 이번에도 극단적인 사랑이야기를 가지고 관객과 만나고 있다. 서로에 대한 이해나 용납이 없이 쉽게 만나서 조금 사귀다가 사소한 일에서 어긋나면 바로 끝나버리는 쉬운 사랑과 연애의 시대에 진부할 정도로 신파조의 이야기를 그것도 매우 대중적인 영화 스타일을 통해 관객과 만나는 이 영화는 과연 얼마나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석중과 은하에게 꽃을 던질 수 있을지 궁금하다.

 

백종학이 오랜만에 스크린에 얼굴을 비취었다. 석중의 순정에서 선정을 읽어내는 예리한 이 기자의 등장은 아마도 감독 자신의 이력을 볼 때 당사자들의 절박한 사정에 대해 누구보다 깊은 관심을 가지면서도 그를 위해 작은 도움이 되어주고자 노력하기는 커녕 그저 대박이나 특종등 상업적으로 이용해 먹을 수 있는가에 집중하는 황색 저널리즘에 대해, 영화속 비중은 크지 않지만 자기 반성의 시선을 보여준다. (박진표 감독은 SBS 그것이 알고싶다 프로그램의 연출 이력을 가지고 있다.)

 

황정민의 어리숙하지만 깊이있는 연기가 볼 만하다. 바람난 가족에서 쿨한 척하지만 결국 재수없는 놈을 연기해 많은 관객에게 욕을 먹은 이 남자는 이번 영화를 통해 지난번 역할로 인한 거부감을 상당히 씻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전도연은 우리나라 젊은 여배우 중 나름대로 다양한 캐릭터에 도전해온 그런 의미에서 성실한 배우이다. 그녀의 연기를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번 작품 속에서는 은하역을 잘 소화해 냈다고 할 만하다. 다만, 황정민의 빛을 감당하기에는 좀 부족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