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잡록 15 -사람의 힘을 다하는 일, 농사

댓글 0

농담/농법

2019. 12. 28.

어느덧 2019년의 마지막 기고입니다.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갈까 하다가, 오늘은 ‘농사’와 ‘작물’을 짚어본 뒤 글을 마칠까 합니다.

농사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뒤 한 관련 강연에서 농사의 농農이란 글자를 풀어보면 ‘별(辰)의 노래(曲)’이고, 농부는 그러한 별의 노래를 듣고 세상을 다스리는 사람이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창 농사에 대한 열의로 불타오르고 있던 때인지라 그 이야기에 속된 말로 뿅 갔지요.

농사란 별의 노래를 듣는 일이라 믿으며 흙을 어루만진 지 어언 몇 년, 한 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별의 노래를 듣는 일은 너무 낭만적이고 고상한데, 인간은 왜 이 고역과도 같은 일을 시지프스처럼 계속 되풀이하는 걸까? 그런 의문이 생기자마자 당장 한자사전을 뒤져보았습니다.

농農 자가 노래 곡曲과 별 진辰으로 형성되어 있는 건 맞습니다. 그런데 그걸 별의 노래라고 풀이한 게 너무 1차원적인 해석이었던 겁니다. 한 글자씩 더 따지고 들어가보면 이렇습니다. 曲은 노래라는 뜻 이외에 구부러져 있다는 뜻이 으뜸입니다. 거기에서 비롯되어 작은 변화가 있는 일이란 의미를 갖는다고 합니다. 갑골문에서는 자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즉, 인위적인 것이 전혀 없는 자연에 인간이 개입하여 구획 등을 만들며 변화를 일으킨 모습이라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림 출처 한자로드 신공윤>



이때, 이렇게 자연에 구획을 정하고 나누며 변화를 일으키는 도구가 바로 辰입니다. 이 글자의 기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의견이 있습니다. 하나는 조개가 발을 내민 모습을 본뜬 것이라고 하고, 다른 하나는 농기구의 모습을 본뜬 것이라 합니다. 갑골문을 보면 과연 그렇게 생겼습니다. 농사를 아는 사람의 눈에는 따비나 보습이 달린 쟁기처럼 보일 겁니다.




<그림 출처 한자로드 신공윤>



자, 곡과 진의 기원과 뜻을 알고난 뒤 農이란 글자를 다시 봅시다. 이 글자가 과연 별의 노래를 뜻할까요? 농부는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존재가 맞습니다. 자연과 맞닿아, 자연 속에서 일해야 하는 사람이기에 자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연을 그대로 놔두며 보고 즐기기만 하는 존재는 아닙니다. 그가 자연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본인의 의도와 목적에 맞게 잘 이용하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의 생존에 필수적인 자연에 최대한 피해를 주지 않는 게 본인에게도 중요합니다. 그래야 오래오래 잘 살 수 있을 테니까요. 아무튼 글자의 의미로만 본다면, 農이란 자연 안에서 인간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의지를 행사하는 일이라 볼 수 있습니다. 별의 노래를 듣는 일과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지요.

 
그런 맥락에서 작물作物이란 글자도 다시 한 번 곱씹어 볼 수 있습니다. 작물은 식물植物은 식물이지만 자연의 일반적인 식물과는 다릅니다. ‘짓다, 만들다’라는 뜻을 지닌 作이란 글자에서 드러나듯이, 여기에도 이미 인간의 의도와 목적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지난 기고에서 몇 번 이야기한 것처럼 식물에게 그를 실현하는 과정이 바로 육종입니다. 이 과정을 거치며 작물은 자연 속의 여러 식물과는 그 성질이 많이 달라집니다. 야생의 식물 같은 경우에는 땅속에서 씨앗으로 몇 년 동안이나 잠들어 있으면서 자신이 원하는 조건만 조성되면 싹이 틉니다. 하지만 작물은 그렇지 못하죠. 또, 자연의 식물은 작물과 달리 빛과 양분, 물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이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 성장하여 씨를 맺습니다. 즉, 작물이란 단어에는 이미 인간의 손을 탔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냥 자연의 식물로 남아 있었겠지요. 그리고 우리는 그걸 채집 등을 통해 식용으로 활용했겠지요.

 
농사와 작물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오랜 옛날부터 해오던 것이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조선 말기 정조의 권농윤음과 그에 답하는 정약용 선생의 대답을 들 수 있습니다. 당시 정조는 어떻게 하면 농사를 잘 지을 수 있을지 각계각층에서 의견을 개진하라는 명을 내리며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대체로 농사짓는 방법은 천시天時에 따르고, 지리地利를 분별하고, 사람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낳은 것은 하늘이고, 기르는 것은 땅이고, 성장시키는 것은 사람이다. 천·지·인의 도道가 합쳐진 다음이어야 온갖 농사일이 제대로 되는 것이다.”

 
이에 정약용 선생은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대저 농사는 세상의 큰 근본입니다. 천시天時와 지리地利는 인화人和가 있은 뒤에야 힘을 합하여 낳고 기르고 성장시키게 되고, 드디어 원기元氣가 유행하여 다 함께 육성됩니다. 별이 운행하는 도수의 구분과 밭두둑과 도랑을 파는 구별, 편안하게 하고 이롭게 하는 것과 권장하고 책임지우는 방법은 대개 농사일을 부지런히 힘쓰게 하기 위한 것으로 도인稻人(벼 전문가)이란 관직과 권농관勸農官이란 관직을 설치하게 된 까닭입니다. 농기구를 선택하고 곡식 종류를 분별하며, 씨를 뿌리고 거두는 것을 도와 부지런하도록 권하며, 곡식과 비단을 징수하여 게으른 사람을 징계하는 것은 융성하던 농사를 감독하여 흥기시키기 위한 요순 시대의 정치였습니다.”

 
두 분의 이야기 속에서 하늘의 때(날씨, 기후 등)와 땅의 이로움(토질, 땅심, 지형 등) 말고도 사람의 힘과 화합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하늘과 땅이란 자연에 순응하고 잘 분별하는 일에 더하여 사람들이 서로 힘을 합해 그 힘을 다해야 농사가 잘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아무 때나, 아무 데에나 작물의 씨앗을 휙 던져놓고 무언가 자라면 뜯어먹고 아니면 말고 하는 식의 행위는 농사가 아닙니다. 하늘의 때를 잘 살피고, 땅의 이로움을 잘 분별하면서 서로 함께 힘을 다하여 작물이 제대로 자랄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을 마련하는 일, 그것이 바로 농사입니다. 그리고 이는 도시농부들도 잊지 말고 새겨야 할 일이 아닌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