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어디까지 알고 먹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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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씨앗-작물

2020.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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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서울농부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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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있으면 햇감자를 캐기 시작하겠네요. 3월에 심어 석 달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한국에서는 언제 처음으로 감자 농사를 지었을까요? 여러 설이 있는데 대략 조선의 순조 시대인 1824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합니다. 당시 북간도 지역에 어떤 품종인지는 모르겠으나 처음으로 감자가 재배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누구는 함경도 무산에 사는 이형재라는 사람이 청나라에서 씨감자를 구해와 재배했다 하고, 누구는 산삼을 캐러 온 청나라 사람들이 먹기 위해 재배한 감자가 전해진 것이라 하고, 또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는 명천에 사는 김 씨가 들여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느 설이 맞는지 검증하기는 어렵지만, 1800년대 초반에 감자가 처음 조선으로 들어온 것이 사실인가 봅니다. 아무튼 감자의 원산지는 서늘하고 강우량이 적은 안데스의 고산 지대인데, 그곳의 기후 조건과 북간도 쪽이 서로 비슷했나 봅니다.

그렇게 100년이 흐른 1920년대 초, 일제강점기였던 당시 일본 아이치 산업주식회사는 나고야에 있던 포로수용소의 수감자 가운데 농업을 전공한 독일인들을 선발해 조선에 난곡농장이란 곳을 설립합니다. 그 사람들이 원산 지역에서 그 지방의 토종 감자를 수집해 선발한 난곡 1호, 2호, 3호, 4호, 5호라는 감자가 있었다는 기록에 등장합니다. 이것이 바로 한국 최초의 감자 품종에 대한 기록이라 합니다. 여기서 잠깐, 당시 조선에 설치되었던 난곡 기계농장이란 곳을 살펴보죠.

 

 

 

 

다시 감자로 돌아오지요. 1928년 무렵, 한국 감자의 역사에 엄청난 일이 일어납니다. 바로 일본 홋카이도(北海道)에서 남작(男爵, 영어명 Irish Cobbler)이란 품종이 건너오는 것입니다. 이 감자는 아직도 재배되는, 그러니까 100년의 역사를 지닌 감자이지요. 당시에도 맛이 너무 좋아서 세계 곳곳에서 널리 재배되었다고 합니다. 남작이란 감자는 원래 미국에서 육종된 품종입니다. ‘아니, 영어 이름이 Irish Cobbler라면서 왜 아일랜드가 아니라 미국인가?’ 의아하겠지만, 당시 아일랜드에서 감자 대기근으로 미국 땅으로 피난을 온 아일랜드 사람들이 많았단 사실을 떠올리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아마 아일랜드(irish) 출신 구두장이(cobbler)가 먹으려고 선발육종한 감자인 것 같습니다.

남작이란 감자가 조선에 건너온 배경에는 일본인 료키치 카와다란 사람이 있습니다. 홋카이도 출신인 그는 영국으로 유학을 다녀왔는데, 그곳에서 당시 유행하던 irish cobbler란 감자를 먹고는 그 맛에 반해 자기 고향에 가져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일본 정부에서 남작이란 작위를 받은 인물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작위명이 그대로 품종명이 되어 조선으로 건너와 널리 퍼진 것이죠. 마치 조선의 조동지라는 토종 벼와 비슷한 사례입니다. 이 감자가 얼마나 맛있길래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았을까요? 지금도 재배해서 판매하는 농가가 있으니 수소문해서 잡숴 보십시오. 포슬포슬하니 입 안에서 사르르 설탕처럼 녹아버립니다. 그리고 또,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누구는 1920년대 말이라 하고, 누구는 1940년이라 하는데, 아무튼 충남 농사시험장에서 그 지역의 토종 감자 중에서 선발한 두마 2호라는 감자 품종을 지역의 농가에 보급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조선은 다들 알다시피 격변의 시대로 들어갑니다. 일본의 패망과 해방, 이념 갈등과 분단, 그리고 한국전쟁을 거치며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갔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강산이 폐허가 되어 버립니다. 당장 먹을거리도 없는 판국에 무슨 품종을 따지며, 육종은 무슨 육종이란 말입니까. 당장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농사지어 닥치는 대로 먹을 뿐이었겠죠. 그러한 폐허를 정리하며 나라의 기틀과 체계를 잡아가며 국가의 가장 근간이 되는 농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한 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가장 유망한 직종이 농업 관련한 것이었죠.

그리하여 1961년 고령지 시험장이 설치되며 다시 감자 품종을 육종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기술이 있습니까? 무슨 자원이 있습니까? 그냥 편하게 외국에서, 특히 일본에서 좋다고 하는 품종을 서둘러 도입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를 받던 당시의 인사들이 그대로 관직을 유지하겠다, 일본은 우리보다 훨씬 앞선 나라라는 인식이 뇌리에 박혀 있었던 결과이지요. 또 일본은 일본 나름대로 한국을 이용해 먹기 좋았고요. 모든 조건이 맞아떨어진 결과입니다. 그래서 1960년대에도 일본에서 남작을 비롯해 사쵸, 시마바나, 타치바나 등 20여 가지의 감자 품종이 도입됩니다.

 

그걸 기반으로 해서 여러 가지 감자 장려품종이 육종되다가, 1970년대 중후반 또 하나의 굵직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바로 수미(Superior) 감자가 미국에서 들어온 것입니다! 이후 한국의 감자 시장은 수미가 석권했다는 사실은 입 아프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1960년대 미국 위스콘신 대학에서 육종했다는 이 수미 감자는 대표적인 점질 감자이다. 감자에는 분질과 점질이 있다는 건 다 아시죠? 점질 감자는 쪄먹기보단 튀겼을 때가 제 맛입니다. 그래서 감자튀김 같은 요리에 제격이지요. 즉, 감자를 쪄서 먹고, 삶아 먹고, 끓여서 먹는 우리의 식문화와는 좀 어울리지 않긴 합니다. 그런데 왜 이런 특징의 수미 감자가 한국의 농지를 장악했을까요? 그건 농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감자의 고향은 어디다? 네, 바로 안데스의 고산 지대입니다. 여긴 기후 조건이 어떻다? 네, 고산 지대라서 서늘합니다. 그래서 조선에 처음으로 감자가 도입될 때도 이북 지역이나 산간 지역을 중심으로, 즉 다른 농사를 짓기 어려운 곳에 급속히 퍼졌지요. 그래서 지금도 강원도 하면 대뜸 감자를 이야기합니다. 이런 걸 남쪽의 평야 지대에서 농사 지으려고 서늘한 이른 봄에 심지요. 그런데 한국의 봄은 얼마나 기후가 변화무쌍합니까. 올해처럼 냉해가 심할 때도 있고, 또 아주 가물 때도 있으며, 반대로 너무 푹하고 비가 자주 올 때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어느 장단에 춤춰야 할지 모르는 날씨가 펼쳐집니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처럼 각종 농자재도 충분치 않은 채 감자 농사를 지어야 했습니다.

 

감자 농사에서는 그 무엇보다 특히 기온이 중요합니다. 감자는 더위에 취약합니다. 더우면 제대로 자라지 않습니다. 아니, 잎은 무성하게 자라도 우리가 식용하는 덩이줄기가 비대해지지 않습니다. 감자란 작물은 섭씨 14~23도에서 가장 잘 자라고, 감자알은 섭씨 14~18도 사이에서 굵어집니다. 딱 한국의 봄철 날씨가 적당한 것이지요. 아무튼 날씨가 더워지면 감자 수확도 시원치 않아집니다. 하지만 이 수미라는 품종은 더위에 강합니다. 어려운 말로 내서성(耐暑性)이라 하지요. 날씨가 더워져도 다른 감자 품종과 달리 잘 버티고 알이 큼지막하게 굵어지는데, 그걸 보고 사람들 입이 쩍 벌어지고, 가뜩이나 배도 고픈데 애기 머리통만 한 감자가 땅에서 막 나오니……. 그렇게 한국의 농지를 다 장악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한국에서 재배되는 감자의 80%인가 90%가 다 수미 품종이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이상하죠? 한국은 분단국가라 그런가요? 한국인은 통일을 좋아합니다. 식당에 가서도 주문을 하나로 통일해야 직성이 풀리고, 튀어나온 못은 망치로 얻어맞는다고 그럽니다. 개별성보단 통일성을 좋아하지만 정작 통일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수미 말고도 대지(出島), 장원(russets burbank), 세풍(shepody), 대서(atlantic) 등의 품종이 외국에서 그대로 도입되다가, 80년대 말부터 비로소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육종한 조풍, 남서, 추백, 조심, 가원, 자원, 조서, 추동, 자영, 홍영 등의 품종이 개발되어 나옵니다. 이는 아마 농산물 시장 개방과 함께 대두된 로열티 문제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채소 종자의 경우에도, 해방 이후 주로 일본에서 수입하거나 훔쳐다 쓰다가 1980년대 세계화의 압력으로 개방 농업정책이 펼쳐지며 부랴부랴 종자산업을 육성한다느니 하는 난리가 일어나죠. 여담이지만, 과거에 종자 관련한 연구나 사업에 종사한 사람들은 반은 씨도둑이라 해도 될 정도일 겁니다. 그게 어디 한국만 그렇습니까. 선진국이란 나라들의 과거를 까보면 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죽하면 “생물 해적질(Bio-Piracy)”이란 용어까지 만들어졌겠습니까. 생물다양성 협약, 다른 말로 나고야 의정서 때문에 이제 생물자원국과 이익을 공유해야 한다는 인식이 막 생겨난 상태입니다. 아무튼, 선진국이라는 산업국가들은 전직이 다 도둑이라 해도 할 말이 없습니다.

 

이야기가 잠깐 삼천포로 빠졌는데, 한국 감자 품종의 변천사라고 정의해도 될까 하는 저의 이번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이제 주린 배를 움켜잡고 힘들어하는 세상은 아니니, 좀 더 다양한 감자 품종이 재배되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여러 감자 품종을 구입해 맛있게 요리해 먹는 사람들이 많아져야겠지요. 생산량 일변도의 분위기가 확 바뀌어 다시는 착한 감자, 반값 감자 소동이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일회성 행사는 당장 발등의 불은 끌 수 있을지 몰라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 이제 모두 잊고 감자를 맛있게 먹으러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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