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사람들 이야기/삼국지와 영웅 이야기 2

수미니 2007. 11. 19. 12:54

 

 


사실 동탁이 황제를 폐위하고, 원소랑 원술은 난리치면서 황제 한번 해보겠다고 나섰기 때문에,  결국 이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난세를 성공적으로 헤쳐나간 승자가 될 수 없었다.   정치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그만큼 영웅적인 면모를 대중들에게 보여주지 못했고, 동시에 정적들에게 견제 당하다 실패했다는 이야기다.   앞서도 말했듯이, 정치판에서 함부로 나서다간 골로 간다.  그리고 정치판에서 상대하고 관심을 가져야할 상대가 자신의 라이벌들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도 있다는 점 때문에...... 라이벌들로 부터는 크게 견제를 받지 않는 행동을, 그리고 국민들로 부터는 지지를 받을 수 있는 행동을.....  이 두 가지의 조화가 필요하다. 이 두 가지는 아주 상대적인 것 같기도 하지만, 아주 가까운 사이 같게도 보인다. 


..... 모난 놈이 망치에 맞는 법기 쉬운 거란다. 그런데 동탁이나 원술, 원소는 튀어도 너무 튀었다. 모가 아주 많이난 돌들이었던 거다. 그래서 대중과 정치적 적수를 동시에 적으로 돌려버린 것이다.  이들과 달리 조조는 아주 차근차근 미래를 준비했고, 동시에 쉽사리 자신의 욕망을 대중들에게 드러내는 어리석음을 범하지도 않았다.  황제를 폐위한다거나 바꾼다는 생각에는 반대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어린 황제를 옹립하는 것을 기회로 삼아 자신의 권위를 드높였고, 동시에 이를 이용해서 정적들을 제압해나갔다. 이게 바로 여러 사람들이 말하는  "천자를 받들어 모시면서 말안듣는 넘들을 부리는(奉天子以令不臣)"   혹은   "천자를 옆에 끼고 제후들을 부리는(挾天子以令諸侯)"  것인데.......     말하자면 조조는 이처럼 현재의 상황을 잘 이용하면서, 차분하게 미래를 준비해갔던 것이다.


그런데,  조조가   "천자를 받들어 모시면서"  불순한 제후들을 움직였던 것인가,  아니면   "천자를 옆에 끼고"  제후들을 협박했던 것인가의 문제는 오랫동안 논란의 주제가 되어왔다.  쉽게 짐작하시겠지만   "천자를  끼고 제후들을 부린다." 라는 말 속에는 황제를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위한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있다.  이와는 달리  "천자를 받들어 불순한 신하들을 부린다."  라고 하면  천자를 볼모로 한다는 의미는 전혀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황제에 대한 충성심마저도 엿보이는 말이 된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천자를  끼고 제후들을 부린다." 라는 말은 조조의 본래 뜻(아님 조조가 했던 말이라고 그래야 될라나?)도 아니고, 조조의 따까리 역할을 하던 모사들이 언급한 이야기도 아니다.    이 말은 나중에 조조와 대척점에 서있게 되는 유비 집안의  일등 모사 제갈량이 한 이야기이다.(사실 제갈량이 이 말을 할 때쯤에는 조조의 세력이 너무 커져 있어서, 누가 보기에도 조조라는 넘이 황권을 위협하고 있다고 생각할만도 했다.)   그러니 다분히 정치적 배경이 있는 언사일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건 제갈량 뿐만 아니라, 손권 편에서도  "천자를  끼고 사방을 공략한다.(挾天子以征四方)" 라는 식의 표현을 하였고,  원소도   "천자를 옆에 끼고 나들을 부리려한다.(挾天子以令我)" 라고 한 것을 보면,  천자를 빌미로 자신들을 옭아매고 있는 조조의 행태가 눈꼴시려서 내뱉은 말들임을 알수있다.  그리고 이런 표현들은 다분히 조조의 행위를 부러워하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실제로 조조의 정적이었던 손책이나 원소 등은 조조가 근거지에 없는 틈을 타서 황제를 납치해오고자 하는 계획을 세웠던 것을 보면 대부분 조조의 이 행위를 질시하면서 부러워 했던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조네 편에서 어린 황제를 데리고 있으면서 내세운 말은  "천자를 받들어 모시고(奉天子)"  였는데.......... 그 원본은  "천자를 받들어 모시면서 신하 노릇하지 않는 넘들을 부린다.(奉天子以令不臣)" 이며, 이것은 바로 모사였던 모개毛玠가 황제를 근거지로 데려올 것을 조조에게 건의하면서 말한 것이다.  또한, 조조의 일급 모사 가운데 한사람인 가후賈詡도  "천자를 받들어 모시면서 천하를 경영한다.(奉天子以令天下)" 라는 말을 한적 있다. 


그렇다면 조조가 어떻게 해서 어린 황제를 데려오게 되었는지 그 배경과 경과를 한번 살펴본다면, 그 속에서 황제를 볼모로 잡고(挾天子)있었는지, 아님 어린 천자를 보호하기위해 모시고(奉天子) 있었는지 대략 알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지 않으시나?....  



소설 삼국지연의의 묘사처럼 후한 헌제 초평初平 3년(서기 192년) 사도司徒 왕윤王允은 여포呂布와 함께 정변을 일으켜 동탁을 죽여 버린다.   다만 소설 삼국지연의 속에서 여포를 충동하여 동탁을 배반하게 하는 초선貂蟬은 원나라 이후에 희곡 속에서나 등장하는 인물이니, 삼국지연의가 소설은 소설인가 보다.   원나라 때의 잡극 연환계連環計에 나타나는 이 여인의 성은 임任, 이름은 홍창紅昌으로, 임앙任昻이라는 사람의 딸인데,  황궁 안에서 초선관貂蟬冠(漢代의 관리들이 쓰던 관의 하나)을 관리하는 궁녀이다.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아예 이름을 생략해 버린 뒤, 초선을 이름으로 하였고, 아예 사도 왕윤을 양아버지로 만들어준다.   ........  초선이 어쨌거나 간에, 여포가 동탁 시중드는 궁녀 하나를 건드렸다거나, 동탁이 별것 아닌 일로 여포에게 창을 내던지며 불같이 화를 냈다거나 하는 일들은 대체로 사실이었나 보다.   하지만 동탁이나 여포나 소설 삼국지에서처럼 바보는 아니었을 거다.....



                              긍게.... 이게 사실이 아니라니까 그러네....            

                 

 

 

어느날 동탁에게 심하게 책망당한 여포는 왕윤에게  '동탁 아부지 디게 무서버요.... 뻑하면 죽인다 그래요...'  하고 상담하며 투덜거리게 되고,  왕윤은 이런 멍청한 여포를 꼬드기면서  '에에..... 이 양반 웃기시네! 성姓이 다른데 아부지는 무슨 아부지라 그러나?  동탁이? 확 주겨버리고 영웅이 되시지!!!' 라며 살인 교사한 내용도 사실이었나 보다.  그래서 이런 일들은 삼국지에 실려 있는데, 삼국지 여포전에서는 여포를 꼬드기는 왕윤의 이야기가 비교적 자세하게 적혀있다.  이런걸 보면 동탁이 조금만 똑똑하게 굴었어도 여포에게 죽고 그러지 않았을 거라는 걸 알 수 있다.   근데 동탁이 죽고 나서 순식간에 권력 최상층에 들어선 사람이 있었는데......



....... 여포는 방어할 도구조차 없는 동탁을 창으로 찔러죽였단다.  삼국지 배송지 주에서는 영웅기를 인용하면서 '동탁이 죽은 뒤에 시체를 거리에 매달았는데, 시체를 지키던 넘이 배꼽에다 심지를 꽂고 불을 붙였는데, 기름이 얼마나 많았나(이게 말이 되긴 하나? 나는 모르겠다!) 하룻밤 내내 등잔처럼 타올랐단다....... 


 

 

  

 동탁이 죽은 후 정권의 심장부에 들어선 사람은 바로 여포를 부추겼던 왕윤이라는 사람이다.  근데 사실 이 양반도 그리 성공적으로 살아남지 못한 사람이다.   오히려 실패한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앞서 실패한 사람들 명단에서 이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것은, 다만 이 양반의 등장하는 기간이 너무나 짧은데다, 개인이 가진 군사적 기반도 없었고, 정치적 안목도 부족했기 땜에,  동탁이나 원소, 혹은 원술 등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삼공 가운데 하나인 사도를 지내고 있던 왕윤이 정치적 안목이 부족했다고?  아니 수 십년을 중앙정치무대에서 살아남은 사람더러 정치적 안목이 없었다면, 누가 안목이 있냐고 물을 수 있으시겠다.  하지만  이분은 비상시국에 정권을 잡아본 적도 없으시고,  맘대로 정권을 농단할 만한 카리스마도 없으신 분이다.  게다가 자신의 무력적 기반이 없는 데야.....  평화시절이라면 이런 사람도 가능하다. 근데 이때는 앞서도 말했지만 난세이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코 베어가는 세상이다.  무력적 기반이 없기 때문에 자기가 권한을 가지고 있다 해도 주변을 살피고 부족한 점을 보충해야 하며, 자기편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근데 이분은 정권을 잡자말자, 동탁에 협력한 자들과 함께 지맘에 안드는 양반들을 모조리 없애버리려고 했다. 물론, 구시대의 부정부패를 일소한다는 명분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와중에 희생되는 사람도 생겨나고, 그에 대한 반감도 생겨난다. 게다가 자신이 맘대로 부릴 수 있는 월등한 군사력도 없는 마당에..... 하여간 자기 주제도 모르면서,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또 사람도 여럿 죽인다.   삼국지 동탁전 배송지 주에서는  왕윤이 채옹蔡邕이라는 당대의 학자를 죽이면서, '한무제가 사마천 같은 소인배를 죽여 버리지 않았기에 사기 같은 불온서적이 나돌고 있어.... 지금 나라가 쇠약해진 마당에, 동탁이 졸개들이 수도 인근에 주둔하고 있으니, 이런 소인배들은 살려둘수 없자나....'(이게 정말이라면, 왕윤이나 동탁이나 히틀러나 오십보 백보의 정치가들이다....) 라고 하면서 자기 고집대로 사형을 집행했다고 하는데(물론 배송지는 이게 사실이 아닐거라고 주장한다.)....  하여튼 그만큼 많은 사람을 숙청했나보다.  그러니..........             


이사람이 왕씨 아저씨...... 이름은 윤, 직책은 사도... 

 

 

 

이런 소리를 들은 동탁이 부하들도 자연스레 앉아서 죽느니, 차라리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달려들 수밖에 없는 거다.  쥐새끼도 막다른 길에서는 고양이를 문다고........ 결국 동탁의 부장 이각과 곽사는 군대를 이끌고 장안으로 들어와 왕윤을 살해하고 난장판을 만들어버린다.  여포는 겨우 도망쳐 나와서 남양南陽까지 달려가 원술에게 몸을 의탁하였으니, 한나라의 정권은 다시 서북 무장들 손에 들어간 것이다.  다시 한번 찬찬히 살펴보면 이건 거의 왕윤이 자초한거나 다름없다. 왜냐구? 수도에 있는 자기가 그 권한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자만했던 것이다.  좀 멀리 내다볼 수 있었다면 이때야 말로 자신의 무장 세력을 조금씩 만들어내고, 그도 여의치 않다면 외부에 있는 말 잘 듣게 생긴 무장이랑 연합했어야 하는 것이다.   당장 힘이 없는데, 이런 난세에 칼든 장수들이 황제를 모시고 있다는 것 하나만 보고 자신의 말을 들으리라 생각했다는것 자체가 정치적 안목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하물며 주위에 있던 넘들까지 모조리 적으로 돌려버렸으니, 망하는게 당연한 것이다. 


지 혼자 아무리 날고 기더라도 떼거지로 덤비는 데는 상대가 안된다. 게다가 머리가 안받쳐준다면 아무리 멋있고, 쌈 잘해도 지도자 시키면 안된다.  여포가 대표주자다......          


 

 

 

   


수도 장안을 장악한 이각이나 곽사 이넘들은 동탁이나 다를 바 없이 무지막지한 넘들이었다.  이런 넘들이 권력을 잡았으니 어린 황제 녀석 겁나 불쌍한 거다........  호랑이 피하니 늑대 소굴인거다.......   근데 이 넘들 예상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이 넘들도 권력을 잡게 된 것이 전혀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 결국 제풀에 허물어져 버린 거다.  즉, 둘이 집안싸움을 하게 된 것이다.   진흙탕 싸움을 벌이던 이 넘들........  이각이 어린 황제를 자신의 군영으로 데려가자, 곽사는 조정의 신료들을 자신의 군영으로 끌고 가버린다.   이른바  "한 넘은 천자를 위협하고, 한넘은 공경을 인질로 삼은(一人劫天子, 一人質公卿)" 것이다.  훗날 지들끼리 싸우고, 싸우고 또 싸우다가 둘 다 수 만명씩 졸개들을 다 죽이고 지들도 죽을 지경에 이르러서야 싸움을 멈춘다.


흥평興平 2년(서기 195년) 7월 이각의 부장 양봉楊奉과 동태후董太后의 조카 동승董承 등이 천자를 낙양으로 몰래 빼돌린다.   근데 이 행차가 1년이나 걸렸다.  장안에서 낙양까지 아무리 멀다고 그래야 1년이나 걸릴 거리는 아니다. 근데 이렇게 오랫동안 밍기적 거리며 헤맸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이 탈출이 힘들고 고된 일이었는가를 알 보여주는 걸거다.   (하긴 모세의 영도로 이집트를 탈출한 유대인들이 사막을 헤매면서 40여년 만에 겨우 도착한 가나안 땅이란 곳이 지금의 이스라엘이랑 팔레스타인이 있는 동네이다.  게다가 이 여정에서 위대한 지도자 모세까지 돌아가실 정도였으니...... 그렇게 본다면, 헌제의 탈출은 그것보다는 덜 힘들었나?) 


1년 동안 거리를 헤매 다닌 황제 꼴이 어디 황제다울 턱이 있겠나?  황제의 어가행렬은 꼴사나운 거지떼가 되버렸다.  1년을 허우적거리며 겨우겨우 낙양에 도착했는데..... 낙양은 이미 동탁이 자기네 동네 장안으로 도망치면서 다 태워버렸다. 그러니 지낼 곳도 마뜩치 않을 정도다......


이정도 되면 이나라는 이미 나라가 아니다.  황제는 거지꼴에다, 각 지방에 할거한 제후들은 오히려 자기네 동네서 대장질해먹고 있고.....   그치만 이런 국면은 국가와 천자에게는 정말 개 같은 상황이지만, 각 지방에 자리 잡고 있던 골목대장들에게는 하늘이 내린 기회다. 이미 중앙정치는 없는 상황인데(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에는 칼 든 넘이 우선이고, 그런 넘이 중앙정부에서 자리 잡고 있으면 그걸로 끝이다. 근데 지금은 중앙에 칼든 놈이 없으니까 중앙 정부의 힘이 지방에 미칠래야 미칠 수가 없다.) , 이런 상황에서는 힘이 있는 놈이 중앙정부의 대장이 된다면 그걸로 온나라 잡아먹는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 되는 거다.  게다가 대외적으로 백성들에게는 자신의 충성스러운 면모, 정의로운 영웅의 면모를 과시할수도 있는 기회이다.  사실 장기적으로 볼때 이게 더 중요하다.  우리나라를 살펴봐도,  두환이 아저씨나 영삼이 아저씨 두분 가운데......  대통령으로서의 자질만 말하자면, 두분이 크게 차이가 없는 거 같다.(아니 있나? 전씨 아저씨가 좀 더 멋있는거 같기도 하다...... 어찌 보면 개인적으로 전씨 아저씨가 나은거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19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군부독재 반대라는 민주주의의 명분(우리의 영삼이 아저씨는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라고 하셨더랬다. 유명한 말이다.  물론 야합이라는 욕을 먹는 삼당합당으로 그 빛이 퇴색하긴 했지만.....)을 구호로 선택했던 영삼이 아저씨 보다 쿠테타를 일으킨 전씨 아저씨가 훨씬 더 많은 욕을 먹고 있다........ 글쎄...... 이것도 그 나물에 그밥이라 그래야 될라나?  아무튼, 이런 절호의 기회를 조조를 제외한 다른 넘들 모두가 놓쳐버린 거다.  (물론 다른 넘들도 그생각은 했지만 조조의 발이 빨랐다.)   조조가 황제를 자기 품 안에 두게 되는 일은 사실 이런 뒷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던 거다.  그리고 이 계획은 앞서도 말했던 모개라는 모사가 처음 제기한 것이다. 



조조가 진궁의 도움으로 연주목兗州牧 대리가 막 되었을 때 (인제는 조정에서 정식으로 임명할 상황이 아니었다는건 알겠지?), 모개는 조조에게 회사 발전과 관련된 장기 프로젝트를 제출하는데,  이 계획의 실행은 조조 집단의 정치적 발전에 초석을 마련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어서 모개의 말은 한번 살펴보자........

 

 

 

 

잼나네여...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