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전 이야기/주역 이야기

수미니 2007. 11. 28. 17:52

 

 

 

역전易傳은 주역周易을 체계적으로 해석한 저작으로, 모두 일곱 종류 열편이 있는데,  단彖 상, 하편,상象 상,하편,문언文言,계사繫辭 상,하편,설괘說卦,서괘序卦,잡괘雜卦가 그것이다. 동한東漢의 경학자들은 이 열편의 저작을 ‘십익十翼’이라고 불렀는데, 이때 ‘익翼’은 돕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이것이 역경易經을 해석하는데 쓰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부터 십익, 즉 역전의 형성 시기를 단 상 문언 계사 설괘 서괘 잡괘의 순으로 살펴보겠다.

 

   1. 단, 상, 문언의 형성(1) - 단의 형성

 

단전彖傳은 주역 경문을 따라 해설하고 있기 때문에 경문과 마찬가지로 상,하편으로 나뉘는데, 주역 64괘의 괘상卦象과 괘 이름(괘명卦名) 그리고 괘사卦辭를 해설하고 있으며, 효사爻辭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단이라는 명칭과 관련해서 한대漢代의 주석에서 “단彖”을 “판단하다.(斷)”로 풀이한 것은, 한 괘卦의 의미를 단정하는 것이 그 뜻 이라고 본 것이다.  계사에서는 “단彖은 재材이다.(彖者, 材也)”라고 말했다. 또 “단사彖辭를 보면, (점치는 일의) 반 이상을 생각해낼 수 있다.(觀其彖辭, 則思過半矣)”라고 말하였다.  ‘재材’는 덕행德行이며, 한 괘卦의 의미(卦義)를 가리킨다. ‘단사彖辭’는 공영달孔潁達 소疏(당나라때 과거시험의 교과서로 쓰여진 오경정의五經正義 가운데 주역정의周易正義에 있는 공영달의 소疏, 공소孔疏라도 한다.)에 의하면 괘사卦辭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괘卦의 의미와 괘사卦辭를 해석하고 있는 전傳 역시 단彖이라고 부른다. 

 

상象 역시 통행본  주역 경문을 쫓아서 해설하고 있기 때문에, 상편과 하편으로 나누어지며, 64괘卦의 괘상卦象과 괘사卦辭 및 효사爻辭를 해석하고 있다. 괘상卦象과 괘의卦義를 해석하고 있는 부분은 대상大象이라고 부르고, 효상爻象과 효사爻辭를 해석하고 있는 부분을 소상小象이라고 칭한다. 이 전傳이 상이라고 불리는 까닭은, 대상에서 괘상과 괘의를 해석할 때 취상설取象說을 주로 채택하였기 때문이다. 다시말하자면, 팔괘八卦를 하늘과 땅, 그리고 바람, 우뢰, 물, 불, 산, 연못과 같은 여덟 가지 자연현상에 나누어 배치하여 64괘卦의 괘의卦義를 해석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계사繫辭에서 “단彖은 상象을 말하는 것이다.(彖者言乎象者也)”이나 “역易은 상象이며, 상象이란 것은 상징이다.(易者象也, 象也者, 像也.)”라고 말하는 것이다.  문언文言은 이전 사람들의 말을 문자로 기록한 것인데, 이 전傳에서는 건곤乾坤 두 괘卦의 괘효사卦爻辭만을 해석하고 있다. 이상의 세 가지 전傳은 경문을 따라 해석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계사나 설괘 등의 다른 전傳과는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이며, 이때문에 이 세가지 전은 동일한 유형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전傳을 서로 비교해보면 아무래도 단의 형성 년대가 비교적 빠르다고 할 수 있다.

 

단의 형성 년대와 관련해서 논증할 수 있는 직접적인 사료는 남아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대략적인 상한선과 하한선만을 간접적으로 짐작할 수 있다.  선진 시기의 전적 가운데서는 오로지 순자荀子 대략편大略篇만이 단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략의 함괘咸卦에 대한 해석은 단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대동소이하다. 서로 다른 점은 대략에는 “두 기운(氣)이 서로 감응해서 함께하며, 그쳐서 기뻐한다.(二氣相感以相與, 止而說)”는 단의 구절이 없는 대신 “고귀한 것이 비천한 것 아래로 내려간다.(以高下下.)”로 단의 “부드러운 것(柔)이 위에 있고 굳센 것(剛)이 아래에 있다.(柔上而剛下)”를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이때 유柔는 상괘上卦인 태兌를 가리키고,  강剛은 하괘下卦인 간艮을 말하는 것이다.) 순자의 글은 단의 문장보다는 비교적 간략한데, (이것은) 단彖의 요점을 간추려 적은 것으로 보인다. 대략은 순자가 강의한 기록인데, 이때 단에서 문장의 의미를 인용하면서도 간략하게 이야기한 것이다. 이것을 근거로 살펴보면 단이 형성된 시기의 하한선은 마땅히 순자 이전이 될 것이다.

 

단이 형성된 시기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그 상한선은 시초점의 원칙(占筮體例: 체례는 규칙이나 원칙을 말한다.)과 관련해서 살펴볼 수 있다. 즉, 역풀이에 춘추시대의 사람들은 강유설剛柔說이나 효위설爻位說을 이용한 기록이 없지만, 단에서는 강유설剛柔說을 제시하고 있다.(강유剛柔는 역전에서 매우 중요한 범주이며, 여러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기때문에, 강유설剛柔說의 사용에 대해서는 이후에 자세히 설명하겠다.) 그러므로 단이 춘추시대 이후에 나왔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 전傳이 전국시대 초기 혹은 전기에 형성되었는가 아닌가는 논의해볼만한 문제이다. 전국시대 전기에 형성되었다는 학설(戰國前期說)을 지지하는 이유 가운데 한 가지는 사기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의 기록 때문인데, 이 책에 의하면 공자는 역易을 노나라 사람 상구商瞿에게 전수하였고 상구는 초楚나라 사람 한비자홍臂子弘에게 전수하였으며, 한비자홍은 다시 강동江東 사람 교질矯疵에게 전수하였다고 한다. 단의 문장은 압운을 맞추는 글자(韻語)를 상당수 포함하고 있어서, 노자老子나 장자莊子 등의 저작과 같은 계열에 속하고, 저자는 남방 사람으로 보이는데, 한비자홍은 순자에 나오는 자궁子弓이다. 자궁은 초楚나라 사람이므로, 단이 자궁의 저작일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단에서 사용되고 있는 술어들 가운데 ‘강유剛柔’, ‘영허盈虛’ 등과 같은 말들은 분명 노장老莊의 저작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단의 사상을 살펴보면 도가사상道家思想의 영향을 받은 것 이외에, 맹자孟子의 학설과도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데, 그 가운데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그 첫 번째는 시중설時中說로, 단이 서법筮法을 해석하는 한 가지 중요한 원칙이 바로 ‘시중時中’이다. 한 괘卦의 여섯 효爻 가운데, 제이효第二爻와 제오효第五爻가 상괘上卦와 하괘下卦의 중앙(中位)에 자리하고 있는데,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이 중앙에 있는 효爻(中爻)가 길吉하기 때문에 ‘중中’혹은 ‘중정中正’은 사물에 있어서 가장 훌륭한 상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단에서는 수괘需卦를 해석하면서 “천위天位에 자리하여 바르게 중앙에 있기 때문이다.(位乎天位, 以正中也)”라고 하였으며, 송괘訟卦를 해석하면서 “대인大人을 보는 것이 이로운 것은 중앙에서 바른 것을 숭상하기 때문이다.(利見大人, 尙中正也)”라고 하였다. 또 소축괘小畜卦를 해석하면서 “굳건하면서도 겸손하고, 굳센 것이 중앙에 있으면서도 뜻이 행해지므로 마침내 형통하다.(健而巽, 剛中而志行, 乃亨)”라고 하였으며, 이괘履卦를 해석하면서 “굳센 것이 중앙에서 바르니 황제의 임무를 이행하지만 거리끼지 않는 것은 광명정대하기 때문이다.(剛中正, 履帝位而不疾, 光明也)”라고 하였다. 동인괘同人卦를 해석하면서 “문명文明하면서 굳건하며, 중앙에서 바르게 응한 것은 군자君子의 바름이다.(文明以健, 中正而應, 君子正也)”라고 하였으며, 대유괘大有卦를 해석하면서는 “부드러움(柔: 陰爻를 가리킨다.)이 존귀한 자리(尊位: 第五爻의 위치를 말한다.)를 얻어서, 크게 중앙에 있으면서 위아래가 이에 응하므로 대유大有라고 한다.(柔得尊位, 大中而上下應之, 曰大有)”고 했는데, 이런 식의 문구가 단에 가득 차 있다.

 

시時와 관련해서 (단에서는) 여섯 효爻의 길흉은 각각이 처해있는 조건에 따라 서로 다르고, 상황에 따라 변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때에 맞게 행동하는 것을 미덕으로 보았다. 예를 들자면 대유괘大有卦를 해석하면서 “하늘에 응해서 때에 맞게 행하기 때문에 크게 형통하다.(應乎天而時行, 是以元亨)”라고 하였고, 수괘隨卦를 해석하면서 “천하가 적합한 때를 따르니, 때를 따르는 뜻이 크도다!(天下隨時, 隨時之義大矣哉!)”라고 하였으며, 감괘坎卦를 해석하면서 “왕공王公이 험한 곳을 만들어서 나라를 지키니, 험한 것을 쓰는 때와 그 쓰임이 크도다!(王公設險, 以守其國, 險之時用, 大矣哉!)”라고 하였다. 또 둔괘遁卦를 해석하면서 “굳센 것(剛: 遁卦의 九五爻를 가리킨다.)이 마땅한 자리에 있으면서 응하고 있으므로 때에 맞추어 행하는 것이다.(剛當位而應, 與時行也)”라 하였고, 손괘損卦를 해석하면서는 “굳센 것(剛: 上卦인 艮을 가리킨다.)에서 덜어서 부드러운 것(柔: 下卦인 兌를 가리킨다.)에 보태는 것에는 때가 있으므로 덜어내고 더하는 것이나 채우고 비우는 것은 때에 맞게 행해야 한다.(損剛益柔有時, 損益盈虛, 與時偕行)”고 하였으며, 간괘艮卦를 해석하면서 “때가 멈추어야 할 때는 멈추고, 때가 행해야할 때는 행해서, 움직이고 정지하는 것에 그 때를 잃지 않으면 그 도道가 광명하다.(時止則止, 時行則行, 動靜不失其時, 其道光明)”라고 하였다. 이런식의 문구 역시 단에서는 많은 출현 빈도를 차지한다. 단에서는 중中과 시時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여 ‘시중時中’, 즉  때에 맞추어 중도中道를 행하는 것을 인간의 행위준칙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단에서는 몽괘蒙卦를 해석하면서 “몽蒙이 형통한 것은, 형통함으로 행하는 것이 때에 알맞기 때문이다.(蒙亨, 以亨行時中也)”라고 말했다. 이상의 내용은 단에서 ‘시중時中’을 추앙하고 있음이 분명하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시중설은 유가儒家의 학설이다. 사실 유가에서 중도中道를 숭앙하는 것은 공자에서 시작되었다. 이 때문에 단의 저자 역시 중위설中位說을 제기하여 괘상의 길흉을 해석하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공자가 ‘시時’관념을 행위준칙으로 제기하였던 것은 아니다. ‘시時’를 숭앙하기 시작한 것은 맹자孟子이다. 그는 공자를 찬양하면서 “공자는 성인 가운데서도 때에 알맞게 하신 분이다.(孟子 萬章下: 孔子, 聖之時者也.)”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공자는 “벼슬살만하면 벼슬하고 그쳐야할 것 같으면 그쳤으며, 오래도록 해야 하면 오래하고 속히 해야 하면 속히 하였기(孟子 公孫丑上: 可以仕則仕, 可以止則止, 可以久則久, 可以速則速.)” 때문인데, 때에 맞도록 행동하였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성인이라는 것이다. 맹자 역시 중도中道를 추앙하여 “공자께서 어찌 중도를 바라지 않았겠는가! 반드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다음의 것을 생각하신 것이다.(孟子 盡心下: 孔子豈不欲中道哉! 不可必得, 故思其次也.)”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맹자는 시時와 중中을 결합하여 이상적 인격표준으로 삼았던 것이다. 맹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막子莫은 중中을 고집하였는데, 중中을 고집한 것은 (도리에) 가까운 것이다. 중中을 고집하면서 권도가 없으면 마치 하나만을 고집하는 것과 같다. 하나만을 고집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그것이 도道를 해치기 때문인데, (이는) 한 가지만을 들고 백가지를 폐기하는 것이다.(孟子 盡心上: 子莫執中, 執中爲近之. 執中無權, 猶執一也. 所惡執一者, 爲其賊道也, 擧一而廢百也.)” 이때 ‘중中을 고집하면서 권도가 없다’는 것은 그저 중도中道만을 지켜서 때에 따라 변화에 적절하게 대처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 즉 때에 맞게 중도中道를 행하지 못하여 결국 한 가지 틀만을 굳게 지키게 되고 도리어 ‘도道’를 훼손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볼 수 있듯이 맹자는 시중설時中說의 창도자이다. 때문에 중용中庸에서는 “군자는 때에 알맞게 한다.(君子而時中.)”라고 말했다. 단의 시중時中 관념은 맹자학파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단에서 “때가 멈추어야 할 때는 멈추고 때가 행해야할 때는 행해서, 움직이고 정지하는 것에 그 때를 잃지 않는다(時止則止, 時行則行, 動靜不失其時)”라고 말하는 것은 맹자가 공자에 대해 평가하면서 말한 “벼슬살만하면 벼슬하고 그쳐야할 것 같으면 그쳤다” 혹은 “공자는 성인聖人 가운데서도 때에 알맞게 하신 분이다.”와 결코 큰 차이가 없는 것이다.

 

단彖의 사상과 맹자사상 사이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두 번째 근거는 하늘에 순종하여 사람들에게 응한다는 학설(順天應人說)이다. 단에는 두 가지 조목에서 천인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단은 혁괘革卦를 해석하면서 “천지가 변혁하여 사시가 이루어진다. (은殷나라) 탕湯왕과 (주周나라) 무武왕이 혁명을 한 것은 하늘(의 도리)를 쫓아서 사람들에게 응했던 것이다. 혁革의 때가 크도다!(天地革而四時成. 湯武革命, 順乎天而應乎人. 革之時大矣哉!)”라고 하였으며, 태괘兌卦를 해석하면서 “이 때문에 하늘(의 도리)를 쫓아서 사람들에게 응한다. 기쁘게 백성들 보다 먼저 (솔선)하면 백성들이 그 수고로움을 잊어버리고, 기쁘게 어려운 일을 하면 백성들이 죽음을 무릅쓸 것이며, 기뻐함이 커서 백성들이 인도될 것이다!(是以順乎天而應乎人. 說以先民, 民忘其勞; 說以犯難, 民忘其死; 說之大, 民勸矣哉!)”라고 말했다. 이것은 탕왕과 무왕이 (하夏나라) 걸桀왕과 (은殷나라) 주紂왕을 정벌한 것을 혁명으로 본 것이다. 혁명은 바로 하늘을 쫓아서 사람들에게 응하는 일이므로, 하늘을 쫓아서 사람들에게 응하였던 것은 백성들의 마음(民心)을 깊이 얻어서 그들로 하여금 마음속으로 기뻐하면서 정성을 다해 복종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맹자에서도 보인다. 맹자는 “하늘(의 도리)를 따르는 자는 살아남고, 하늘(의 도리)를 거스르는 자는 멸망한다.(孟子 離婁上: 順天者存, 逆天者亡.)”라고 말했다. 이른바 ‘하늘(의 도리)를 쫓는 것’은 곧 ‘사람들에게 응하는 것’ 이며 사람들의 바람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맹자는 요堯임금이 정권을 순舜임금에게 이양했던 것이 한편으로는 하늘의 뜻을 구현해 냈던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마음에 순응했던 것인데, 이것이 바로 “하늘이 주었고, 사람들이 주었다.(孟子 萬章上: 天與之, 人與之.)”는 것이다. 그러므로 폭군이 민심을 거스르는 것은 곧 하늘의 뜻을 어기는 것이며 모든 사람들이 그를 토벌하게 되는 것이다. 맹자는 “(사람들을) 해치고 도적질을 일삼는 사람은 한낱 필부라고 한다. 한낱 필부인 주紂를 죽였다고는 들었지만 임금을 시해하였다는 듣지 못했다.(孟子 梁惠王下: 殘賊之人, 謂之一夫. 聞誅一夫紂矣, 未聞弑君也.)”라고 말했다. 이것은 바로 ?단彖?에서 말한 ‘탕무혁명湯武革命’설說이다. 정권을 잡거나 잃는 것이 하늘(의 도리)를 쫓아서 사람들에게 응하는가에 달려있기 때문에 맹자는 다시 ‘열민悅民’설說을 제기하면서 “백성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즐긴다면, 백성들 역시 그의 즐거움을 즐거워할 것이니(孟子 梁惠王下: 樂民之樂者, 民亦樂其樂.)”, “차지하는데 연燕나라(燕은 戰國七雄 가운데 한 나라로 지금의 중국 북경 부근이 그 영역이다. 맹자 의 내용에 의하면 齊나라 宣王이 연나라를 정벌한 후 이를 차지하기 위해 맹자와 상의하였다고 한다.) 백성들이 기뻐하면 (연나라를) 차지하고(孟子 梁惠王下: 取之而燕民悅, 則取之.)”, “차지하는데 연나라 백성들이 기뻐하지 않는다면 차지하지 말아야 한다.(孟子 梁惠王下: 取之而燕民不悅, 則勿取.)”라고 하였으며, 또한 임금이 백성들로 하여금 기쁨을 얻을 수 있도록 하면, 비록 위태롭고 어려운 일에 부닥쳐 “죽게 되더라도 백성들이 떠나지 않아야 한다.(孟子 梁惠王下: 效死而民弗去.)”라고 하였다. 이는 단에서 ‘기뻐함(悅)’으로 태괘兌卦의 괘명卦名을 해석하고 ‘기뻐함이 커서 백성들이 인도된다.(說之大, 民勸矣哉)’로 ‘하늘(의 도리)를 쫓아서 사람들에게 응한다.(順乎天而應乎人)’를 해석하는 것과 일치한다.

 

단의 사상과 맹자 사상 사이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세 번째 근거는 양현설養賢說이다. 단에서는 ‘어진 이를 숭상할 것(尙賢)’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어진 이를 길러낼 것(養賢)’을 주장한다. 단은 대축괘大畜卦를 해석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축大畜은 강건하고 독실하며 빛나는 것이기에 날마다 그 덕德을 새롭게 하며, 굳센 것(剛)이 위에 있으니 어진 이를 숭상한다. …… ‘집에서 밥을 먹지 않는 것이 길하다’고 하는 것은 어진 이를 길러내는 것이다.(大畜, 剛健篤實輝光, 日新其德, 剛上而尙賢 …… 不家食吉, 養賢也.)”  또 이괘卦를 해석하면서 “천지가 만물을 길러내고 성인은 어진 이를 길러내서 만 백성에게까지 미치니 이의 때가 크도다!(天地養萬物, 聖人養賢以及萬民, 之時大矣哉!)”라고 하였으며, 정괘鼎卦를 해석하면서 “나무를 불에 넣어 (솥의 음식을) 삶아 익힌다. 성인은 (솥의 음식을) 삶아 상제에게 제사하고 대규모로 (음식을) 삶아 성현聖賢을 길러낸다.(以木巽火, 亨, 也. 聖人亨以享上帝, 而大亨以養聖賢.)”라고 말했다. 공자와 맹자는 모두 어진 이를 숭상할 것을 제창했지만, 맹자는 어진 이를 숭상하는 것 이외에 다시 어진 이를 길러낼 것(養賢說)을 주장했다. 맹자는 “어진 이를 기쁘게 따르면서도 등용하지 못하고, 또 길러내지도 못한다면 어진 이를 기쁘게 따른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孟子 萬章下: 悅賢不能擧, 又不能養也, 可謂悅賢乎?)”라고 말했다. 말하자면 어진 이를 기쁘게 따르는 것(悅賢)은 어진 이를 숭상하는 것(尙賢)과 어진 이를 길러내는 것(養賢) 두 가지를 모두 포괄한다. 어진 이를 길러내는 것에 관해서 맹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요堯임금이 순舜을 대한 것을 보면, 자신의 아홉 아들로 하여금 (순舜을) 섬기도록 하였고, 두 딸을 (순舜에게) 시집보냈으며, 백관들과 소 양 곡식창고들을 준비하여 밭두렁 가운데서 (일하고 있는) 순舜을 봉양한 후에야 그를 등용하여 윗자리에 앉혔으므로 왕공王公이 어진 이를 존중하였다고 말하는 것이다.(孟子 萬章下: 堯之於舜也, 使其子九男事之, 二女女焉, 百官牛羊倉備, 以養舜於畝之中, 後擧而加諸上位, 故曰王公之尊賢者也.)” 이것은 다시 '어진 이를 길러내는 것(養賢)'이 '어진 이를 등용하는(擧賢)' 전제조건이 된다는 말이다. 맹자 자신은 여러 제후들 사이를 전전하며 생활하였고, 이에 대해 스스로 그들의 봉양을 받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여간 맹자 뻥치는 거는 알아줘야 된다....... 유가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무라 그럴지 모르겠지만, 이 사람들 정신세계도 정말 독특하다.)이것은 단의 ‘어진 이를 길러낸다(養賢)’는 관점과 일치한다.

 

이상의 세 가지 증거는 단과 맹자의 학설이 사상적 측면뿐만 아니라 술어術語와 개념 그리고 명제에 이르기까지 서로 계승관계가 존재함을 설명하고 있다. 문제는 맹자의 관점이 단에서 왔는가, 그게 아니라면 단의 관점이 맹자에서 왔는가에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단의 관점이 맹자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단의 ‘시중時中’설은 주역과 서법筮法을 해석한 것인데, 만일 맹자의 시중설時中說이 단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면, 맹자는 주역에 대해 한마디도 평론하지 않았으니, 이것은 맹자의 관점이 주역 계통에서 온 것이 아님을 설명해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단의 ‘탕무혁명湯武革命’설은 맹자의 탕무정벌설湯武征伐說을 개괄한 것이며, ‘혁명革命’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혁괘革卦의 괘명卦名에 대한 해석에서 나온 것이다. 사상思想의 내용은 언제나 이론에 앞서 존재하기 마련이며 그 뒤에야 비로소 이론적 개괄이 이루어진다. '어진 이를 길러내는 것(養賢)'과 관련해서 살펴보면, 맹자에서 성인(聖)과 현인(賢)은 구별되어서 성인은 현인보다 높은 경지에 있으며, 결코 성聖과 현賢 두 단어를 이어서 하나의 단어처럼 쓰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단에서는 정괘鼎卦를 해석할 때 성聖과 현賢을 이어서 부르고 있다.  단어와 단어가 결합되어 하나의 개념처럼 쓰이는 사조詞組의 변화 발전과정이라는 측면에서 말하자면, 단의 내용은 당연히 맹자 이후에 나온 것이다. 여기에 근거한다면, 단의 형성 년대는 맹자보다 빠를 수 없으며, 전국시대 중기 이후인 맹자와 순자 사이라고 확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상전과 문언전의 형성시기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다.

 

맹자님 이란다......  평생 주역 이야기는 한마디도 않았지만.... 그래도 관계가 있단다. 이것도 우기는건 아닌지?

 

 

 

 

 용어, 인물 해설

 

 

.................. 상구商瞿: 상구는 춘추시대 노나라의 학자로 공자의 제자이며, 자字는 자목子木이다. 공자에게서 주역을 배워 자하의 문인인 초나라 사람  한비자홍에게 전하였다고 한다.

 

............... 비자홍: 한비자홍의 한비臂는 이름이며 자홍子弘 또는 자궁子弓은 자字이다. 전국시대 초楚나라 사람이며, 자하子夏의 문인으로 공자역학의 3대 전인이라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