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사람들 이야기/삼국지와 영웅 이야기 2

수미니 2007. 11. 28. 17:53

 

 

 

이제 다시는 거렁뱅이처럼 떠돌아다닐 필요도 없고, 군벌들에게 위협당할 위험도 없어진 황제, 편안하게 나라를 바로잡는 일에만 신경쓸수 있게 되었다............... 아니 적어도 이때는 그렇게 느꼈더랬다.  이처럼 조조가 아무도 대접해주지 않던 황제에게 극진하게 대하자, 황제는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고, 조조가 최고의 충신이라고 느껴질 지경이 되었다. 또 이런 충신을 내려준 하늘에 감사했다. 그러다보니 황제는 자기에게 이렇게 극진하게 대하는 충신에게 무언가 해주고 싶어졌고, 조서를 내려 조조를 대장군大將軍, 무평후武平侯에 봉한다. 무평후는 현후縣侯로서, 이건 이전에 조조에게 세습을 허락했던 작위인 비정후費亭侯와 비교하면 두계단이나 높은 작위였다.(비정후는 정후亭侯였는데, 정후 위에는 향후鄕侯, 향후 위가 현후였으니...)  거기다 대장군이라는 직위는 무제武帝 이래로 한漢 나라 조정의 최고 실권자였으니, 사실상 삼공의 지위보다 높은 최고 권력자였다. 

 

이렇게 조조는 허울뿐이지만, 단박에 중앙정권의 실권자, 즉 '황제 바로아래의 최고 권력자(一人之下, 萬人之上)'에 올라서게 되었다.  앞서 모개가 건의했던 정치적 기반, 즉 '황제를 받들어 모시고 천하를 경영하는(奉天子以令諸侯)' 정치적 기반을 완성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천재적 정치가로서의 면모를 온나라에 보여주기 시작한다. 그러나 형식적인 정치체제가 수립되고 조조가 그 수장이 되었다고해서 모든 일이 해결될 수 는 없다. 특히나 조조가 대장군이 되었다고 온나라가 조조를 받들어모신다거나, 조조의 뜻대로 정치 상황이 전개되리라는 보장은 더더욱 없다. 오히려 이걸 이용하려는 조조와 이를 질시하는 다른 수많은 군바리 아저씨들 사이의 알력만 심해질 뿐이고, 조조는 뜻을 펴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후한에서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어느 전쟁터에서도 이렇게 까많게 군대로 뒤덥힌 벌판은 볼수 없었을걸....... 하여간 옛날 중국인들 군병력 늘려서 말하는건 우리나라 연예인 고무줄 나이보다 더심했으니까....

 

 

 

예를 한사람 들자면, 우리의 원소 아저씨.......  조조가 중앙 정부에서 대장노릇하겠다고 나서면서 눈에 쌍심지 켜고 달려들거다.  그래서 이 양반을 꼬실려고 그랬는지는 몰라도 조조는 대장군이 되고나서는, 황제에게 말해서 이 오랜 친구한테 태위太尉 자리와 업후 작위를 제수하도록 한다.  근데 원소는 조조가 날뛰는 꼬라지를 못봐주겠었던지  '나 그딴 관직이나 작위 같은거 안한다.  필요업서!' 하면서 거절한다. 이유는 뻔하다. 태위라는 자리가 말로는 전국 최고 군사령관이면서 삼공 가운데 한자리이지만, 대장군 아랫자리이니 원소더러 조조 휘하에서 일하라는 거나 마찬가지이니까.... 그러니 원소같은 폼생폼사는 당연히 이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는 거다. 삼국지 원소전의 배송지 주에서는 헌제춘추獻帝春秋를 인용하면서, 원소가 무지하게 열받아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조조 이 개ㅅㄲ! 지가 죽어도 몇번을 죽었던거 내가 옛정 생각해서 살려줬더니만 인제 내 머리꼭대기에 앉아서 날 가지고 놀라고 그래? 이 ㅆㅂ넘이....... 이제는 천자를 옆에끼고 날 부리려고 하네!(挾天子以令我)

 

원술도 그렇지만 원소같이 폼잡기 좋아하고 남잘되는거 못봐주는 인간으로서는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이런게 원씨네 집안내력인지는 몰라도....... 출신성분 화려하다고 다 해결되는건 아닌데 그걸 인정못하는 거다.ㅈㄹ.... 그럼 지가 먼저 황제 델구가지? 하여간 원소의 이런 성격은 끝내 그가 성공적으로 살아남지 못하는 이유가 된다.  원소가 이런 반응을 보인데 반해 조조는 한결 대범한 모습을 보인다. 이렇게 되면............. 이미 얻을거 다 얻었겠다, 게다가 가장 유력한 경쟁자가 황제가 내린 벼슬도 거부하는 추한 모습을 보인걸로 명분은 모두 조조가 가진거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조조는 멋있게 황제에게 대장군 자리를 원소에게 양보하겠다고 주청드린다.  멍청한 원소는 이름뿐인 대장군 자리를 받아들고 그제서야 만족한다.  그러나........ 결정적인건 원소가 죽치고 앉아있는 자리가 황제가 있는 동네가 아니라는 거고, 게다가 이런 자리다툼이 전혀 그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고 도리어 그동안 쌓아온 명망에 먹칠만했다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반대로 조조는 온나라에 원소에게 양보하는 대범한 모습을 보였다.  형식상 원소가 대장군이라게 무슨 소용인가? 그래봐야 중앙정부의 실권자는 조조다.

 

더우기 조조는 원소에게 허울뿐인 자리를 주었지만 알맹이는 주지않았고, 원소 따위의 지휘를 따를 이유는 더더욱 없다. 왜냐하면 내편인 황제가 내 수중에 있으니까........ 삼국지三國志 무제기武帝記에 대한 배송지裴松之의 주석에서는 위서魏書를 인용하여, 당시 원소가 말도안되는 누명을 들이대면서 양표楊彪와 공융孔融을 죽여버리라고 조조에게 명령했지만 조조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았다고 한다.  원소가 양표나 공융이랑 사이가 안좋았던걸 조조는 이미 알고 있었고, 게다가 조조 자신도 애네들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함부로 애네들 같은 명사 - 이 사람들 당시 사회에서 나름대로 유명하던 인물들이다. 다만 군인이 아니라 힘이 없었지... 특히 공융은 공자의 직계 후손인데....... 고대 사회는 유가 사상을 통치이념으로 하고 있었고, 그 우라질(?) 유가사상의 시조는 공자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에, 빌어먹을(?) 공융을 죽이기란 쉽지 않다. 마치 조선시대에 퇴계나 율곡이 맘에 안든다고 쉽게 죽일 수 없었던거나 마찬가지랄까? - 를 죽이면 문제가 될수 있다는 걸 알았던 거다.  거기다 애네를 죽인다 하더라도 조조가 맘먹었을때 죽이는거지 원소의 명령을 들을리는 더더욱 없다. 그래서 조조는 사무적인 말투로 원소에게 편지를 써보낸다.  "지금 세상이 이렇게 어지럽고 각지에서 군벌들이 일어난 이 판국에, 임금과 신하가 서로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때, 한 나라의 최고 권력을 가진 사람이 사사로운 마음으로 아랫사람들을 대한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믿음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이 두사람을 죽인다면 스스로 위기를 자초하는 것이나 다름 없을겁니다. 고조 황제(유방劉邦)께서 사이가 좋지 않던 옹치雍齒에게 도리어 작위를 내리셨던 일을 기억하십시오."  이런 소리를 들은 원소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라 조조를 그냥 둘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이 조조란 자식은 겉으로는 공정하고 사심이 없는척 하지만, 사실 뒤로는 수작부리는 넘이니까(이말이 맞을지도 몰라.... 조조 하는 짓은 원소가 젊을 때도 많이 겪어봤자나....) 내 언젠가는 손을 봐줘야되.......

 

그렇지만 조조 역시 원소가 어떻게 생각할런지 훤히 알고 있었고, 언젠가는 원소와 패권을 놓고 다툴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도 짐작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원소의 이런 행동거지는 조조에게 다시한번 원소의 역량을 가늠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다시말해, 자신이 비록 지금은 어린 황제를 곁에 두고 있지만, 실제적인 힘이라 할수 있는 인구수, 생산력, 군비, 인재 등등 어느하나 원소에 비기는 것이 없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기에, 원소와의 결전을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함을 절감하는 계기가 되었다는거다. 

 

아까도 말했듯이 조조가 이런 정치적 성과만 가지고는 원소뿐만 아니라 당시의 여러 군바리 지방정권, 예를 들자면 황제가 되고픈 원소 동생 원술, 남쪽 구석탱이에 쳐박혀있는 유표와 손책, 내땅 누가 쳐들어올라나 노심초사하고 있는 장수, 변방에서 호의호식하고 있는 유장, 마등 등등..l..... 그리고 옛 영화를 그리워하는 여포 같은 녀석들도 복종하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들이 날고 길때 조조는 조무라기 군벌에 불과했었으니.......  이후로 그들은 더더욱 조조를 자신의 적대 세력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고, 그 견제를 받다보면 조조의 앞길은 이제까지 보다 더 험난해질 수도 있다.  옛말에 모난 돌이 정에 맞고, 튀어나온 못이 망치에 맞는다고 했었더랬다. 그럼 이런식으로 다수의 적을 만드는 것은 결코 좋은 전략이 될 수 없다. 그럼 조조는 뭣땜에 이런 엄청난 일(황제를 자기 동네로 델고 온것)을 한건지 당시 제후들은 이해할 수가 없었을거다. 왜 그래야 했나?   

 

사실, 원소나 다른 제후들이 쉽사리 황제를 데리고 오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을 수도 있다. 애네들도 머리를 그냥 목위에 얹고 다니는 장식품으로 생각했던건 아닐테니까...... 그치만 애네들이 목위에 얹고 다니던 머리가 생각했던데 까지가 바로 애네들의 한계였다. 그냥 지방에서 자기 세력을 유지하면서 떵떵거리고 사는거..... 이런게 그들의 희망사항이었지만, 조조의 꿈은 그들과 달랐던 거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조조의 꿈은 어지러운 나라를 바로세우는데 있었거나..... 그게 아님 최종적으로 한나라를 이을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해서 모든 지방세력을 정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고 이를 과감하게 실천해나갔다는 거다.

 

 

오늘은 이쁘장한 조조를 한번 올려봤다. 근데 조조가 이렇게 꽃미남이어도 되나? 가당키나 하냐구?

 

 

 

이렇게되면 결론은 다시 원점이다. 조조가 황제를 데리고온게 과연 황제를 진심으로 섬기고 나라를 바로잡으려는 생각에서였는지, 아님 황제를 이용해서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고 나아가 한나라를 무너트리는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였는지 쉽게 판단하기 힘들다는 거다.  그러니 조조네 편에서 말했듯이 '황제를 받들어 모시고(奉天子) 불량분자들을 제어하려고 했는지(以令不臣)' 혹은  조조의 적들이 말한 '황제를 인질로 삼아 옆에 끼고(挾天子) 여타 제후들을 제어하려고 했는지(以令諸侯)'에 관해서는 어느 쪽이 진실이라고 단언하기 힘들어진다. 물론 개인적 생각으로는 앞서 언급한 바 있는 고백록 양현자명본지령에서 조조가 말했던것 과는 달리 일찌감치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쪽에 한표지만......

 

그럼 다음편에서도 계속해서 이 문제에 대해 살펴볼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