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사람들 이야기/삼국지와 영웅 이야기 1

수미니 2007. 12. 5. 15:46

 

 

 


 앞서 조조를 이야기하면서 조조에게도 진실하고 귀여우면서 인간적인 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면면이 바로 조조를 간신이랄까 역적이랄까 뭐 그렇게 부르기엔 좀 미안한 기분이 들도록 한다. 그럼 간웅? 사실 "영웅"의 수컷 웅雄자가 들어간 말, 다음과 같은 몇가지가 있다. 영웅英雄이나 효웅梟雄 그리고 간웅奸雄 등이 그것이다. 영웅이라는 단어는 쉽게 여러분 마음에 와닿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간웅은 간사한 영웅이라는 말이라는 걸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아시다시피 간웅이라는 말 과거 조조를 지칭할 때 자주 쓰였던 말이다.

 

 그런데 효웅이라는 말은 조금 낮설다. 효梟는 본래 올빼미를 의미하지만, 이 의미가 전화되어 두목이나 수령 괴수魁首(우두머리의 의미- 괴물 아닌거 아시죠?) 등을 가리키게 되어서 이 글자가 들어간 단어 가운데는 염효鹽梟(고대의 소금 밀매조직 혹은 업자. 사효私梟라고도 한다.- 참고로 소금은 식생활에 필수적인 조미료이지만 고대 내륙에서는 쉽게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소금 유통은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사업이었기고, 그 때문에 국가가 소금을 전매하는 때가 많았다. 그런데 이런 소금을 밀매하면 폭리를 취할 수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상당한 조직과 무력 그리고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런 단어가 생긴 듯 하다.) 처럼 도적단을 가리키는 말도 있다. 효梟는 다시 전화되어 사납고 용맹스러움을 가리키기도 하는데, 효기梟騎(용맹스런 기마병)와 같은 말은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 그러므로 효웅이라는 말은 사납고 용맹한 영웅 호걸, 혹은 두목 정도를 의미한다. 그런데 한나라 말기, 다시말해 삼국정립 이전 유비를 이렇게 부르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삼국지 노숙전에 의하면 노숙魯肅은 유비를 평가하면서  "유비는 천하의 효웅이다.(劉備天下梟雄)" 이라고 했고, 후한서後漢書 유언전劉焉傳에 의하면 황권黃權은  "유비는 사납다고(혹은 용맹하다고?) 이름을 날리고 있다.(劉備有梟名)" 라고 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이 그런걸 보면 유비에겐 매우 용감한 일면이 있었던 거다.

 

그렇다면 그런 유비가 이름만 들어도 바로 짐싸서 도망쳤던(이거 사실이다. '조조가 왔다.'는 소리만 들으면, 유비 이 양반  뺑소니치기 바쁘던 사람이다. 한번 찾아보셔도 된다. 그래도 이거 나름대로 상황 파악이 되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지혜로운 행동이다. 조금 쪽팔릴지는 모르겠지만....) 조조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물론 유비보다 훨씬 먼저 거대 집단의 지도자가 되었기 때문인지는 알수 없지만 효웅이라는 말은 잘 쓰지도 않았고 어울리지도 않아 보인다.  잘 어울리지도 않아 보인다는 말은 조조의 좋게 말하자면 지혜로움, 혹은 나쁘게 말하자면 교활함이 용맹함보다 훨씬 잘 드러나기 때문이 아닐까?  하다못해 동탁(애는 용맹 무식함이 딱 어울린다. 근데 애도 꽤나 교활하다.)이나 원소 등에 대해서도 효웅이라는 말을 쓰니 말이다. 그러니 조조는 이런 용맹 무식함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다고 남들이 느끼지 않았을까 하는 말이다.  이런 인간은 성장 과정 속에서도 분명 남다른 이야기를 남긴다.(물론 헛소문도 많을 테지만) 그럼 조조 어린 시절 부터 한번 살펴보자.

  

기록에 의하면 조조 이 인간 어릴 적부터 모범생은 아니었나 보다. 명문가 출신도 아니고, 가정교육도 잘 받은거 아니고, 어릴 적 태도도 별로였다나..... 조조, 字는 맹덕孟德, 아명은 아만阿瞞 혹은  길리吉利이며, 패국沛國 초현譙縣(현재 중국의 안휘성安徽省 박주시亳州市)사람이다. 진수陳壽는 삼국지에서 조조가 서한 왕조 초기의 재상을 지냈던 조참曺參의 후예라고 하지만, 이건 말 같지도 않은 소리다. 왜냐구? 왜냐면 조조의 본래 성姓이 조曺씨인지조차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조의 아버지 조숭曺嵩은 내시였던 조등曺騰의 양아들이며, 조숭과 조등 사이에는 혈연관계도 없는데 무슨 방법으로 조등이 조참의 후예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고, 설사 내시 조등이 조참의 후예라 하더라도 조조와는 아무 상관이 없지 않느냐 이 말이다. 사실 조숭의 친부가 누구인지조차도 아직까지는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진수조차도 삼국지를 쓰면서  "출신의 전후사정을 정확히 밝혀낼 수는 없다.(莫能審其生出本末)"라고 말했다.  조조 스스로는 가전家傳(족보 혹은 집안 내력서 같은거)에서 이를 밝힌 적은 없고.....(더나아가 심한 뻥도 친다. 스스로 주문왕周文王의 후예라고까지 하고 있으니...)


사실 이런 건 동한 말기의 사회상과 관련이 매우 깊은 것이다. 이 시기에는 사회적으로 특히 정관계에서는 신분과 출신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였는데(사회 분위기가 능력보다 출신 가문을 중시하고 이러면 나라가 망쪼가 든거다.),  조조는 비록 이런 분위기를 무척이나 싫어했지만(나중에 조조의 인재 발탁 기준을 보면 수긍할 수 있을 거다.),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포장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이해해줘야 되지 않을까나 싶기도 하다.... (참고로 소설 삼국지에서는 조숭이 본래 하후씨였으나 조등에게 양자로 들어갔고, 그 때문에 조조와 하후돈, 하후연은 동족 -일가친척 - 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건 역시 소설이니 그대로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아니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조조가 환관(내시) 집안에서 자라난 것만은 분명한데, 그의 할아버지(친 할아버지는 아니지만)  조등은 당시 환관들 가운데서는 꽤나 명성이 있고 높은 직책에 있었던 사람이었고(물론 그러니 양자를 들여 집안을 물려줄 생각을 했겠지만), 대장추大長秋라는 관직을 역임했는데, 이 대장추는 내시 직함 가운데서는 꽤나 높은 관직이었나 보다. 조등이라는 사람은 환관들 중에서는 꽤나 평판도 괜찮고 주변사람들과의 관계도 잘 유지했었다나.... 그는 나름 괜찮은 일도 많이 했기에(물론 별로 좋지않은 일에도 참여한바 있지만), 후한서後漢書에서는 따로 그의 전傳이 있을 정도다. 

 

그치만 말이다.... 어떻게 꾸미려 해도 조조는 내시 양아들의 자식 아니던가... 이건 당시 사회 분위기로서는 대단히 좋은 집안 출신이라고 말할 수 없는 거다. 다만 먹고 사는데는 어려움 없을 정도로 부를 누렸을거다. 조조의 아버지 조숭은 태위太尉(이거 한대 초기의 삼공가운데 하나로 진짜로 높은 직위였더랬다. 전국의 군사적 업무를 총괄 담당하는 장관으로 수상 바로 밑에 정도.. 근데 후한 말에는 이미 이름만 남고 실권은 하다도 없는 명예직에 불과했다.)를 역임했는데, 이게 또 돈으로 산 관직이란 거다. 이렇게 보면 조조 집안에 돈 많았던 거 드러난다. 보통 집안에 돈이 많으면 자식교육에 신경쓰는 편인데... 명문 출신 자제들이랑 어울리게 할려고 하고.... 전학 시키고.... 과외하고..... 그래야 되는 거잖아?  근데 조숭, 그런거 별로 관심 안가졌나 보다. 자식이 공부하는 것에 대해서 별로 물어본 것도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조조 나중에 자기가 쓴 시에서  "삼사의 가르침은 당근 없었고, 집에서 훈계하는 말을 들은 적도 그다지 없었다.(旣無三徙敎, 不聞過庭語")"라고 했을 정도다. 여기서의 삼사三徙는 맹자의 어머니가 교육을 위해 세 번 이사한 고사를 말하니까(이거 사실 확인안되는 일이다. 맹자가 한 말도 아니고, 한나라때 유학이 국가 통치 이념으로 확립되면서 꾸며진 이야기라는 주장이 정설이다. 이 이야기는 한에 쓰여진 열녀전에 실려있다.) 부모가 크게 교육에 관심가지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정어庭語는 공자孔子가 뜰(정원)을 지나는 아들을 두 번 불러서 가르쳤는데, 한번은 시詩를 가르치고 한번은 예禮가르쳤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니, 이 역시 조숭의 조조에 대한 교육이 거의 자유방임주의에 가까웠음을 보여주는 말일게다. 

 

부모가 자식 문제에 간섭 않고, 집에 돈도 많고..... 이런 집안에서 문제소년 나오는 거 일도 아니다.(물론 다 그런거 절대 아니다. 훌륭하게 자라는 사람들 많으니 오해들 마시라.) 배송지는 삼국지를 주석하면서 조만전(전 회에서 조조에 대해 적대적인 전기라고 이야기한바 있다.)을 인용하여 이렇게 이야기한다. 소년 시절의 조조는 놀기 좋아해서, "사냥을 좋아하고, (양아치처럼) 빈둥거림이 도를 넘었다.(好飛鷹走狗, 游蕩無度)" 그런데 이런 조조를 숙부님이 그냥 두고 보시기 힘드셨나 보다.  조조의 숙부는 종종 조숭에게 '아들교육 잘 좀 시키세요... 온갓 꼴통짓은 다하고 다닌다고 소문이....' 라고 말했단다. 근데 조조가 이 소리를 듣고 그냥 못지나친다.(이거 문제아들 반항심의 전형인가?)  쓸데없이 남의 일에 신경쓰시는 숙부를 골려주기로 맘먹는다. 어느날, 멀리서 숙부가 오시는걸 보고 조조 그 자리에서 눈이랑 입이 돌아간 모양(한의학에서 이야기하는 구안와사)을 흉내냈다.  숙부가 '왜 그러냐?'고 물으니, 조조 '나 중풍 걸린거 같아요.'라고 말한다. 숙부 큰일이다 싶어서 조숭에게 보고하지만, 조숭이 조조를 불러 확인했을 때는 '내가 무슨 중풍이예요. 이나이에.... 근데 숙부님은 내가 싫으시니까 그런 말씀까지 만들어 내시나요?'이런다.  조숭 이소리 듣고는 그뒤로 숙부 못믿고, 숙부도 조조 이야기 치사해서 안한다. 이게 어린 시절의 조조다.(이 이야기는 소설 삼국지에도 나온다. 이어서 조조가 그 뒤로 더 방탕해졌다는 설명을 곁들이면서...) 별로 될성싶은 나무처럼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될성싶은 나무가 어릴 때 이랬다는 이야기들 대부분 지어낸 이야기 이거나 과대 포장된 것들이 많지만 말이다.  

 

그런데 조조랑 비슷한 나이에다 또 같이 어울렸던 원소袁紹나 장막張邈 같은 인간들(애네들은 커서도 조조처럼 뭔가 이루어내진 못했다.)도 비슷한 양아치 짓거리를 하고 놀았다고 한다. 전회에서 흉노 사신 이야기하면서 언급한 세설신어世說新語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한 번은 조조랑 원소 결혼식 구경을 갔었나 보다. 근데 이 놈들이 여기서 신부를 훔쳐내자고 작당을 했는데.... 우선은 정원에 숨어들어가서 밤이되길 기다렸다가 어두워진 후 냅다 '도둑이야!' 소릴 지르고, 결혼식(옛날 결혼식 보통 저녁에 했단다. 그래서 결혼結婚의 혼婚자는 女라는 글자에 어둑할 혼昏 이라는 글자가 결합된 모양이다.)에 참가한 사람들이 모두 뛰어나왔을 때, 혼란을 틈타 신부를 훔쳐나왔다는 거다. 근데 이 상황에서 원소는 (좀 덜떨어졌나 싶을 정도로 행동하는 건지?) 당황하여 가시 덤풀에 쳐박혀 나오지도 못하는 상황이 된다. 조조 이대로는 다 잡힌다싶었는지, 꽤를 부린다. 그래서 '도둑놈 여�다!'라고 외쳤다. 그 소리를 들은 원소 깜짝 놀라 덤풀에서 순식간에 빠져나왔다고 한다.(그래서 조조한테 원한이 생겼나 모르겠지만 훗날 두사람은 숙명적인 라이벌로 전장에서 만난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을 모두 믿을 수는 없겠지만 이런 것만으로도 어린 시절의 조조가 얼마나 장난을 좋아하는 말썽꾸러기였는지, 게다가 어느 정도로 영특한(아님 교활한?) 문제 소년이었는지 대충이 짐작간다. 이런걸 보면 애들 장난치기 좋아한다고 너무 야단칠 것도 아닌 것 같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물론 조조의 이런 점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인간취급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지금의 우리도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아이들이 실수하거나 장난치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보면 무리는 아니다.) 

  

 

그래도 이런 조조를 알아본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 유명한 사람이다.(다시 한번 말하지만 사람 알아보는 눈 무척이나 중요한 거다. 보통 능력 있는 사람이 능력 있는 사람 알아본다. 그러니 남들이 날 안알아줘도 무조건 불평할 건 아니라고 생각된다.) 바로 당시의 태위였던 교현橋玄(게임 삼국지에서도 인물을 알아보고 천거해주는 사람으로 자주 나온다.)이다. 교현이라는 양반이 보기에는 조조야 말로 천하의 인재라고 보고, 앞으로 천하가 어지러워지면 이를 평정할 사람은 조조 밖에 없을 것이라 평가했다고 한다. 이 말은 삼국지 본문에 실려 있으니 다른 일화들 보다 훨씬 믿을 만한 말이다. 다시말해 장난을 즐기고 양아치 짓거리를 하고 다니기는 해도, 보통 양아치 친구들(원소나 장막같은 이들은 집안으로 말하면 조조랑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화려했고, 그래서인지 조조랑 같이 놀며 자랐으면서도 훗날 조조를 무시한다.)하고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는 말인데....... 손성孫盛은 이동잡어異同雜語에서 조조를  "무술적 재능이 남들보다 뛰어나 그를 해칠 수 없었고, 여러 가지 책들을 두루 읽었는데, 특히나 병법을 좋아했다.(才武絶人, 莫之能害, 博覽群書, 特好兵法)"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조조 성장과정 나름대로 특별했다면 특별했고, 보잘 것 없었다면 보잘것 없었던 거다.

 

그런데 이런 조조를 높이(?) 평가한 사람이 또 한사람 있었다. 조조에게 간웅이 될 거라고 예언(정확히는 "치세에는 능력 있는 신하, 난세에는 간웅."이라고 말했다나?)한 사람이다. 누구냐면 바로 허소許邵라는 여남汝南 평여平輿(지금 중국의 하남성河南省 평여平輿) 사람인데, 당시에 이 사람은 가장 이름을 날리고 있던 관상가 겸 인물 평론가였다. 이 양반 나름대로 이벤트성 행사로도 유명했는데, 매달 초하루에 당시 유명인들에 대한 평을 발표했고(세상에서는 월단평月旦評 혹은 여남월단평汝南月旦評이라고 했다.), 누구든 그로부터 품평을 받은 사람은 몸값이 몇 배로 치솟았고, 이는 상류사회로 진입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니 조조도 자연히 허소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싶었을 게다. 그렇지만 당시 조조의 평판이 좋지 않아서 그랬나? 아님 천기를 함부로 누설할 수 없어서 그랬나?..... 조조가 아무리 바짓가랑이 잡고 늘어져도 허소 이 양반 한마디도 안해주다가..... 결국 조조의 우격다짐에 한마디 해주는데, 그게 바로 "치세을 만난다면 능력있는 신하, 난세를 만난다면 간웅(治世之能臣, 難世之奸雄)"라는 말이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는 삼국지 본문 속에는 나오지 않고, 배송지裵松之가 주석하면서 인용한 손성의 이동잡어에서 나온 말이다.

 

                             


 

재미있는 사실, 이 이야기는 후한서와 세설신어에도 기록되어있지만 그 내용은 조금씩 다르다. 후한서에서는 "태평시대를 만나면 간사한 도적, 난세를 만나면 영웅(淸平之奸賊, 難世之英雄)" 이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세설신어에서는 "난세를 만나면 영웅, 치세를 만나면 간사한 도적(難世之英雄, 治世之奸賊)" 이라고 말했다는데, 모두가 허소의 평이 아니라 교현의 말이라고 하고 있다. 사실 여기서 우리는 후한서와 세설신어의 이야기는 의미상 매우 근접해있지만 손성의 이동잡어의 이야기와는 상반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느쪽이 진실에 가까울까? 어떤 사람들은 후자의 두 가지 책이 일치한다는 점에서 손성의 이동잡어가 나중에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이동잡어의 저자 손성은 위魏를 이은 진晉나라 시대의 사람이며, 후한서의 저자 범엽范曄은 그 다음(혹은 다음 다음- 왜냐면 진晉이 멸망하고 그 일족이 강동으로 도망가 세운 나라가 동진東晉이기 때문에 같은 왕조로 보기에도 뭣하고 다음 왕조로 보기에도 뭣해서 그런다.)왕조인 남북조南北朝 시대 남조南朝의 송宋나라 사람인데, 손성의 저작이 조작되었다는 걸 모르고 있었을까? 게다가 삼국지를 주석한 배송지裵松之와 범엽은 동시대의 사람으로, 배송지의 삼국지 주석이 완성된 시기가 서기 429년(남조 宋文帝 元嘉 6年)이며, 후한서가 쓰여지기 시작한 때가 서기 424년(남조 宋文帝 元嘉 元年)이니 거의 동시대의 작품이다. 그렇다면 배송지는 범엽이 들었던(혹은 다른 책에서 보았던?) 이야기를  왜 다른 식으로 고쳐썼을까도 의심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지금까지의 자료만 가지고는 결국 진실은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되는 것 같다. 글쎄 그럴까?

    

물론 역사란게 결국은 해석하는 사람의 시각에서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것이고, 흔하게 말하는 역사적 사건의 진실이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럼 조조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