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사람들 이야기/삼국지와 영웅 이야기 1

수미니 2007. 12. 5. 16:30
 


사실 손성이 쓴 이동잡어가되었든, 아님 후한서가 되었든, 혹은 세설신어이든 간에 조조와 관련된 이런식의 이야기는 그냥 주워들은 소문에 불과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고대 중국 사서에 실려있는 이웃 나라와의 외교 관련 자료(중국의 역사서의 기본적 시각은 자신들 이외의 국가는 오랑캐이며, 중국과 대등한 외교관계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자신들에게 치욕적인 역사는 왜곡하는 경우가 매우 많았다. 어찌보면 이런게 역사관일 수도 있다.)가 그러하듯이 사서(고대의 역사책)에 적힌 이야기라고 모두가 믿을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말이다. 중국의 유명 사학자 呂思勉은 삼국사화三國史話라는 책에서 삼국지를 비롯한 수많은 사서를 인용하지만 종종 뒤에 이런 말을 덧붙인다.  "이 이야기는 인정하기 어렵다."  내지는  "아마도 확실한 것은 아닌듯하다."  혹은  "이 이야기 역시 사건 이후에 덧붙여진 것이다."  예를 들어 조조가 도겸陶謙을 공략한 일에 대해 삼국지와 후한서는 모두 아버지의 복수를 위한 일이었다고 말하지만 여사면은 이에 대해  "이 이야기는 확실한 것이 아니다.(這句話不確的)"라고 말한다.


이런 식의 예는 무수히 많이 있다. 그러므로 역사적 사실과 전해지는 이야기(정사에 기록된 이야기를 포함해서)가 반드시 일치한다고는 볼 수 없으며, 어떤 경우 전해지는 이야기의 대체적 줄거리조차 전혀 믿을 수 없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역사를 이해할 때 반드시 사건 당사자의 실제적인 이해관계와 그에 따라 행동하기 전에 내렸을 이성적 판단을 먼저 고려해야하고, 이를 고증해야만 역사적 진실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볼 때 아마도 배송지의 주석이 어느 정도 나름의 근거가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배송지가 인용한 손성의 이동잡어에서는 전후 관계를 상당부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즉, 손성이 조조의 개인적 특징과 행위를 바탕으로 "무술에 재능이 있어서 남들이 그를 해칠 수 없었고, 여러 가지 책들을 두루 읽었는데, 특히나 병법을 좋아했다.(才武絶人, 莫之能害, 博覽群書, 特好兵法)"라고 하였고, 그 뒤에는 조조가 병법 저술을 모으고, 이들에 주석을 달았다고 기록하였으며, 이런 설명들을 덧붙이고 나서야 비로소 허소의 인물평을 적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손성은 이에 대한 조조의 반응까지 기록하였다.  조조는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크게 웃었다고 했다(太祖大笑). 앞서도 밝힌 바 있지만, 손성의 이동잡어는 조조에 대해 우호적인 글이 아니라 도리어 되도록 조조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고자 노력하고 있는 책인 만큼 이 정도로 조조를 평가하고 있는 것은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것이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이 이야기가 조금 다르게 변질된다. 바로 손성이 앞에서 이야기했던 상황들을 생략해버렸고  "태조께서 크게 웃으셨다.(太祖大笑)"는 말도 "조조가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했다.(曺聞之大喜)"로 바꿔버렸다. 이렇게 되면 사람이 달라 보인다. 다시말해 조조가 무지 경박한 사람으로 변해버리는 거다.  말하자면, 허소의 말을 듣고 '크게 웃었다'고 그러면 그 상황을 대범하게 넘긴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크게 기뻐했다'고 그러면 무언가 가벼운 사람처럼 즐기는 것이 된다. 마치 '하하하!'하고 웃은 걸, '히히히'하며 손뼉치며 즐긴 상황으로 만들어버린 거다.  게다가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허소가 인물평을 할 때의 전후 상황도 싸그리 빼버린다. 이런 식으로 변화를 주게 되면 그 사람으로부터 느끼게 되는 형상 자체가 달라지게 된다는 거다. 그리고 동시에 소설도 경박스러워져버린다.


물론 후한서에도  "조조가 크게 기뻐하며 돌아갔다.(操大悅而去)" 라고는 했지만 후한서의 기뻐함과 소설 삼국지의 기뻐함은 의미가 조금 다르다. 아까도 말했지만 소설 삼국지에서는 전후 상황을 빼버렸다. 그렇지만 후한서 허소전許邵傳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조조가 미천한 일을 하던 시절 종종 겸손한 말과 후한 예물을 주면서 자신의 상을 보아주기를 (허소에게) 구했지만, 허소는 조조를 비천하게 여겨 선뜻 상대해주지 않았다. 조조는 마침내 틈을 타서 허소를 협박하자 허소는 어쩔수 없이 '당신은 평화스런 시대에는 간사한 도적이(될 것이)며, 난세에는 영웅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조조가 크게 기뻐하며 돌아갔다.(曺操微時, 常卑詞厚禮, 求爲己目. 邵鄙其人而不肯對. 操乃伺隙脇邵, 邵不得已, 曰: '君淸平之奸賊, 難世之英雄.' 操大悅而去)" 


이것을 살펴볼 때 분명해지는 것........ 우선, 조조는 허소가 자신을 평가해주기를 정말 바라고 있었고, 그래서 선물 돌리고 아첨하고, 이런 별 추잡하고 비굴한(?) 짓도 해가면서 눈이 빠져라 기다렸지만, 허소는 그를 탐탁치 않게 여겨서 상대해주지 않으려 했다. 조조 결국에는 다른 방법(협박)으로 얻어들은 말이 허소의 인물평이었던 것이다....... 그럼 허소는? 허소 이 양반도 난처했을 거다. 말 안할라니 협박하지....   말하면?   좋은 말 해주려니 이거 협박에 못이는 거 같아 조금 망신스럽기도 하고, 그렇다고 듣기 싫은 말 했다간 맞을거 같고..... 그래서 이런 멋진 말(?)이 나올 수 있는거 아닐까 싶다.  '간적'이라는 말은 조조 싫어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박수칠 만한 말이니 좋은 평가가 아니다. 하지만 조조 입장에서는 '영웅'이라는 만족스런 답을 얻은 거다. 거기다가 당시의 정세를 살펴볼 때 한나라가 다시 평화스러운 시대로 돌아갈 것 같은 가능성은 하나도 안보였으니 말이다.....  이러니 조조가  "크게 기뻐하며 돌아갈"  수 있었다는 거다. 이건 전후 관계를 생략해버린 소설 삼국지의 경박함과는 분명 거리가 있는 표현인 것이다. 게다가 소설 삼국지에서는 이동잡어에서 말한 전후사정은 빼먹으면서도 '영웅'이라는 말 대신 '간웅'이라는 이동잡어의 용어를 쓰고 있다.  다분히 조조를 깔아뭉개기 위한 표현이라는 거다. 


앞서 조조의 웃음을 대범한 웃음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그랬다. 조조 이 사람 실제로 대범한 면(?)이 있었고, 그의 시나 문장에서는 종종 그의 기개를 엿볼 수 있다. 어떤 면에서는 조조의 이런 대범함이 중국의 재통일이라는 스스로의 원대한 꿈을 달성하기 위해, 사소한 일(?)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이루려는 모습을 보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하는 분들도 그렇고 사업하시는 분들도 이런 면에선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물론 싫어하는 사람도 많지만) 박정희 전대통령도 불법적인 수단으로 정권을 차지했고, 말도 안되는 조건으로 한일협정을 맺었으며, 재벌과 유착했고, 민주인사들을 탄압했으며, 정권연장을 위해 기괴한 유신헌법까지 만들어냈다. 근데 난 이런 것들만 보고 그 사람을 비판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박정희를 신격화하고 모든 것을 그의 입장에서 해석하는 것도 문제가 있겠지만, 조국 근대화(유치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많은 부분을 희생시킨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건 우리나라의 고대 영웅들도 마찬가지다. 김춘추가 당나라에 아부(삼국사기 읽어보시라. 지금 우리가 미국 눈치 보는건 장난이다.)하면서 스스로를 낮추고, 국가의 자주성을 포기하면서까지 이루려 했던 것은 강대한 고구려나 백제 앞에서 나약한 신라를 지켜내겠다는 꿈이었다.  물론 당시에는 한민족이니 하는 개념자체도 존재하지 않았을 거지만 말이다. 고려를 건국한 왕건은 가는데 마다 유력한 호족의 딸이랑 결혼했다. 왕비가 몇인지 모른다. 사돈의 딸이랑도 결혼하고.... 그러다보니 전국 방방곡곡에 혈연을 깔아두었고 혼인으로 인한 친척관계는 지금의 시각으로 본다면 엉망이 된다. 중국을 봐도 역사상 위대한 황제로 평가받는 한무제 치사한 구실로 사람 무지 죽였다. 당태종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행위와 조조의 행위를 다른 잣대로 보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결국은 승자의 관점에서 역사를 해석했기 때문이 아닐까? 어떤 분들은 조조도 승자라고 말씀하실지 모르겠다. 하지만 조조는 궁극적인 승자가 되지 못했다. 죽은지 얼마안된 박통은 논외로 하더라도, 김춘추의 예를 보자면, 그가 죽은 뒤 신라는 삼국을 통일(?)했고, 그 왕조도 지속되었다. 또 왕건이 세운 나라는 500년을 지속했고, 한나라의 핏줄들은 남북조시대까지도 정권의 상층부에 있었으며, 당나라 또한 마찬가지다. 이러니 대국민 홍보(?)가 보통사람들의 역사인식에 얼마나 큰 바탕이 되는지 알 수 있다. 그러니 위인전에 나오는 사람들이라고 그래서 그 사람의 일생이 위인전이랑 똑같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래서 어떤 측면에서는 조조가 폄하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르지만 조조 개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억울할 수도 있다는 거다. 


조조의 인간적이고 귀여운 면모는 전장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삼국지 무제기의 배송지 주에서는 위서를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은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건안 16년 조조는 마초와 한수 연합군을 정벌하기 위해 서량으로 출격했는데 이때 한수의 군대와 직면하게 된다. 한수의 병사들은 조조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왓다는 소리를 듣고 조조얼굴 한번 보려고 앞다투어 목을 내민다. 조조는 그들에게 이렇게 소리친다.  ‘니들 조조한번 보고싶지? 봐봐 니들이랑 똑같아 눈두개 귀두개 입하니 다른거 없어... 그저 니들보다 좀 똑똑한거밖에 없어!’


조조는 친구를 대하면서도 소탈하고 귀여운 모습을 보인다. 조조는 농담하기를 좋아했고, 농담하는 친구를 좋아했다. 앞서도 말했지만 태위 교현은 가장먼저 조조의 인물됨을 알아보았으니, 말하자면 조조와는 세대를 뛰어넘어 왕래했던 사람(교현이라는 사람 조조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다.)이다. 삼국지 무제기에 대한 배송지의 주에 의하면 조조는 교현을 제사지내는 문장을 쓰면서 그 안에다 한마디 적어넣은 말이 이렇다.  '옛날에 내가 교현님이랑 약속한게 있는데.... 교현님께서는 내가 죽은뒤에 내 무덤 근처를 지날 때면 술 한말이랑 닭 한마리 들고와서 제사지내지 않으면 세발자국을 떼기 전에 배가 아플테니까 알아서해.... 라고 하셨지.조소의 소탈함이 그대로 전해지는 일화같지 않으신가?  그 뿐인가 아주 살벌한 상황에서도 조조는 진실한 말을 하기도 한다. 본래 정치 투쟁의 장에서는 진심을 잘말하지 않거나 판에 박힌 말을 하는게 보통이다. 게다가 조조는 간사하기로 유명한 사람 아닌가! 그런데 조조는 상황만 허락한다면 관료사회에서 쉽게 들어볼 수 있는 틀에 박힌 말이 아닌 진실된 말을 한다.  조조가 쓴 양현자명본지령讓縣自明本志令(이 글은 조조가 위공魏公이 되기 전까지의 정치적 바램과 입장이 드러나있는 글이다.)이 그런 예인데 여기 조조의 꿈이 잘 묘사되어 있다. 여기서 조조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내가 본래부터 무슨 큰 뜻을 품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 효렴으로 발탁되었을 때 어린 나이에 하찮은 출신으로 남들이 우러러 볼만한 사람이 아니었으니 나라 사람들이 그 능력을 알아주기나 할까할 정도였기 때문이다.(孤始擧孝廉, 年少, 自以本非岩血知名之士, 恐爲海內人之所見凡愚) 그래서 군郡(한나라의 주州 아래 행정단위) 하나 정도 잘 다스리면 세상에 이름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欲爲一郡守, 好作政敎, 以建立名譽, 使世士明知之.)  


나중에 나라가 혼란스러워졌는데, 남자로 태어났으면 나라를 위해 무언가 해야하지 않겠나하는 생각에 병사들을 이끌고 싸움터에 뛰어들었다.(원소를 맹주로한 관동연합군이 동탁에 맞서 낙양으로 진군했을 때, 조조도 소규모 부대를 끌고 참가했다.) 이 때도 내 바램은 별로 크지 않았다. 그저 동탁을 정벌하고 싶었을 뿐이고, 죽은 후에  "한고정서장군조후지묘漢故征西將軍曺侯之墓"라는 묘석을 세울 수 있다면 만족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이 때도 나는 내 병력을 늘리고 싶지 않았다. 내 세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나와 맞설 적도 많아질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한번 싸워 이기면 한번 병력을 감축하였다.(실제로 다른 제후들과는 달리 조조는 전투를 통해 흡수한 많은 병력을 무장해제하고, 자신의 병력으로 흡수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물론 그 과정에는 정예병을 자신의 군대에 흡수하고 병약하고 나이든 병사를 제대시키는 식의 병력감축이었겠지만 실제로 원소나 원술처럼 대대적으로 병력을 늘려 세력을 확대하려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때 당시 내 바람이 그렇게 원대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此其本志有限也)


그러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부지불식간에 내가 이런 자리(한나라 승상)에까지 오르게 되었고, 그새 내 야심은 조금씩 커져서 제환공齊桓公이나 진문공晉文公(제환공이나 진문공은 모두 중국 춘추시대의 패자覇者들인데, 겉으로는 주周 왕실을 받들고 여러 제후국들 사이의 조정자를 자임하던 사람들이다)처럼 되고 싶어졌다. 왜냐하면 지금 이 나라는 너무나 혼란스러워졌고 여러 제후들이 각지에 할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패자가 될 뿐이지 황제의 자리를 찬탈할 생각은 없다. 한나라 승상으로 이미 만족하고 더 욕심 부릴 이유도 없다. 그렇지만 나는 이 자리를 유지해야 한다. 왜냐구? 내가 이 나라 중심에서 자리잡고 있지 않으면 도대체 몇 놈이나 스스로 황제가 되려하고, 스스로 왕의 자리에 오르려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 조조가 없었으면 이미 수많은 놈들이 역적질을 하지 않았겠는가?(設使國家無有孤, 不知當幾人稱帝, 幾人稱王 :여기에 대해서는 앞으로 자세히 이야기하려한다. 실제로 동탁을 비롯해서, 원술이나 원소 같은 많은 제후들이 황제가 되고자하는 야심들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넘들은 나더러 공적을 이루었으니 물러나 이름을 남기는 것이 어떤가 하고 말한다.  나더러 실권은 모두 내놓고 나를 봉한 그 동네에 가서 만년을 보내고 살라고 그러는 건데...... 미안하지만 내 그리는 못한다. 승상자리도 그만둘 수 없고, 병권도 내놓을 수 없다. 왜냐구? 내가 지금 병권을 내놓으면 당장에 나를 몰아내려는 녀석들이 벌떼처럼 몰려들거고, 그러면 내 가족 친지 부하들뿐만 아니라 황제도 안전하지 못할거다.(誠恐己離兵爲人所禍也)     그러니 난 지금 권력을 내놓을 수 없다.  다만 황제가 내게 준 봉지는 지금 내게 필요없다.  내가 그렇게 땅이 많아서 뭐하겠는가? 이 땅은 나라에 다시 바칠 수 있다. 어쨌건 나는 이 나라가 평안해지기 전에는 이 자리를 사임할 생각이 없다.(江湖未靜, 不可讓位. 至於邑土, 可得而辭: 근데 가만히 보면 이건 박정희 같은 생각이다. 나 없으면 나라 망한다는.... 그렇다고 박정희를 간적, 혹은 간웅이라 보기에는 뭐하듯이 조조도 그렇지 않나?)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면 여러분 그런 거에 대해서는 왈가왈부 떠들지 말고 입다물어줬으면 하는 바람에서이다. (欲人言盡: 이것도 거의 박정희의 대對 언론 정책과 동일하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믿음이 지나치게 투철하고, 남이 무슨 말하고 끼어드는 걸 용납 못하는 것이다) 

 

잘들었수..... 근데, 내맘대로 할거다. 알았지....회의 끝!

 

 

 

조조는 여기서 스스로의 행위를 꾸미거나 미화하려고 하지 않았다.  뭐 야심? 그래 나 야심있어. 근데 그거 조금씩 커간거야. 그래도 난 무슨 황제가 된다거나 하는 이런 야심은 없다. 그저 황제를 보좌하여 이나라를 다시 통일하자는 거다. 뭐 고상하지 않고, 사양할 줄 모른다고? 그래 나 고상한거 모르고, 사양할 줄 모른다.  그러니 이런거 가지고 뒤에서 말하시는 여러분 입닥치시라. 뭐 이런식이었던 거다.  근데 이렇게 솔직할수 있었던건 조조가 이미 거짓과 술수가 판치는 시대에 가장 훌륭한 무기가 진실함임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조조는 명석했던 거다. 

  

  이렇게 살펴보면 조조는 대범하고 호탕하면서 솔직하고 영리했으며, 간사하고 교활하며 잔인하고 냉혹한 인물이었다. 사실상 이처럼 다양한 면면들이 조조라는 한 인간에 종합되어 있었던 거다. 그리고 사실 이런 면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당장에 나도 어떨 땐 무지 대범한 척하지만 어떨 땐 무지 소심하고, 어떨 땐 진실을 이야기 하지만 어떨 땐 거짓을 말한다. 그런데 한 사람이 이런 면들을 보인다고해서 영웅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일까?  혹은 군자인척 도덕적으로 완전한척 하는 사람들 보다 훨씬 더 영웅적인 것일까? 어떤 정답 같은 것이 있는 것일까? 

 

  이제 조조가 나아간 길을 차분히 살펴보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