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사람들 이야기/삼국지와 영웅 이야기 1

수미니 2007. 12. 5. 19:44

 

 

 

 

젊은 시절 조조에게 주어졌다고 하는 "치세의 유능한 신하, 난세의 간웅"(근데 이건 마치 신탁처럼 들리고, 그래서 더더욱 미리 조조에 대해 평가한 거라고 믿기에는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훗날의 인물평이라고 보는게.....)라는 인물평에서 가운데 난세의 간웅이라는 말이 지금 조조에게 붙여지는 대표적인 평가일 것 같다. 그런데 앞서 양현자명본지령에 있는 조조의 고백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젊은 시절 조조에게는 나라를 바로세워야 하겠다는 꿈이 있었다. 이건 치세이든 난세이든 유능한 신하가 젊은 조조의 목표였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조가 정치적으로 개척해간 길은 어느 쪽으로 나있었던 것일까?


한 영제靈帝 희평熹平 3년(서기 174년), 갓 스물이 된 조조는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어 랑관郞官에 임명된다.  효렴은 한대의 관리임용 방식 가운데 한가지이다. 효렴의 효는 효도를 말하는 것이고, 렴은 청렴함을 말한다. 지역에서 이런 사람으로 천거되면 이 사람은 관직에 나아갈 자격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낭관은 본래 황제의 시위侍衛, 곧 경호원겸 비서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들 낭관은 황제가 정치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잘 훈련되어 있었고, 그때문에 다른 관직으로 승진하기도 쉬웠으며, 이런 이유로 명문가의 자제들을 뽑아 낭관을 시켰다. 이것은 또한 고위 공무원을 길러내는 한가지 방식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동한 말에 이르러 황제의 권력이 약해지면서부터 낭관이 중시되지 않았고, 황제의 경호원 노릇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조는 다시 추천을 받아 낙양북부위洛陽北部尉에 임명된다. 사실 이건 조조에겐 삼공을 역임했던 아버지와 내시부장이었던 할아버지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현대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부정부패와 동일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당시에는 관리는 대를 이어 관리를 하고, 농민은 대를 이어 농사를 짓고, 상인은 대를 이어 장사를 하고......... 뭐 이런게 아주 정상적인 일이었으니까.)  위尉는 군사업무와 형사업무를 담당하는 무관이다. (예를 들어 삼공 가운데 하나였던 태위太尉는 군사권과 경찰권을 가졌다고 보면 된다. 현縣에는 현위縣尉가 있고, 군郡에는 군위郡尉가 있었다. 조조가 담당한 낙양북부위는 현위에 해당한다.) 그런데 낙양은 동한의 동한의 수도였고 나라 안에서 가장 큰 현이었기 때문에 현위도 조조 한사람이 아니라 동서남북의 네 구역으로 나누어 각각의 위尉를 두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에 있는 경찰서 서장 정도라고 보면 될려나? 아니면 그보다 더 큰 권력을 지니고 있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조조를 낙양북부위로 천거한 사람은 사마의司馬懿(훗날 제갈량과 라이벌 관계를 유지하는 유명한 인물이다. 또한 자식 대에 이르러서는 위魏 나라를 빼앗아 진晉 나라를 세우게 된다.)의 아버지 사마방司馬防인데, 당시 상서우승尙書右丞을 역임하고 있었다.(사마의가 조조의 휘하에 몸담게 되는 것도 이런 인연 때문이 아니었을까?)  사실 당시 조조는 이 관직을 별로 맡고 싶지 않았었나 보다. 그래서 삼국지 무제기에 대해 배송지가 남긴 주석에서는 조만전이라는 책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뒷날 조조가 위왕으로 책봉되고 나서, 특별히 사마방을 업성鄴城으로 초청하여 연회를 열고는 '사마공 내가 그 정도 일 밖에 못할 사람으로 보이셨습니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여기에 사마방은  '그때 제가 대왕을 그 자리에 추천했던 건, 대왕이 당시에는 그 자리에 딱 적합했기 때문이거든요.'라고 말했다고 그런다. 물론 조조는 크게 웃었고.....   사실 낙양북부위라는 자리 쉬운 자리는 아니었을 거다.  비록 지방의 경찰책임자라고는 하지만 낙양은 수도이니, 다른 관리들 눈에는 관직도 아니다.  그런데 이 자리는 해야 할 일은 수도 치안유지이다.  게다가 이때는 지금 우리나라처럼 고위직에 있는 사람이나 국회의원,  재벌 같은 특권층도 죄지으면 벌 받게 되는 온 국민이 평등한 시대(?)가 아니었다. 그러니 이 자리가  얼마나 귀찮은 자리이겠나?  중앙정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나 그와 관련된 사람들은 지방 경찰책임자 정도는 눈에도 안들어올거다. 어찌 보면 조조같이 영리한(간사한) 두뇌와 커다란 포부를 가진 사람이 아니면 쉽게 감당하기 어려운 자리였을런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낙양북부위로 부임한 조조 자기 임무에 무척이나 충실했던 모양이다. 부임하자말자 관서의 규율을 다시 정돈하고 곤장을 준비해서 문 옆에다 걸어놓았단다. 그리고는  "법을 어기는 놈이 있으면, 그놈이 권세가 얼마나 있는 쇄키건 간에 몽둥이로 패죽일거니 알아서 하시라.(有犯禁者, 不避豪强, 皆棒殺之)"라고 관할구역에 엄포를 놓았다. 근데 얼마 지나지 않아 센 놈이 하나 걸려들었다.  영제가 총애하는 내시 건석蹇碩이라는 자의 아저씨 벌 되는 인간이 조카의 권세를 믿었던 건지는 모르지만 조조의 말을 개무시하고 통행금지 시간을 어기고 밤중에 돌아다니다가 잡힌 거다. 근데 조조는 눈 깜짝 않고 몽둥이로 패죽여 버린다.  이러고 나니까 '함부로 법을 어기는 간뎅이가 부은 놈은 없어지고, 동네 치안도 무진장 회복 된다.(京帥斂適, 莫敢犯者)'    (이런 부분은 법적으로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말하는 현대 우리사회에서도 쉽게 지켜지지 않는 거다. 그런데 법을 가진 사회서 이런 기본적인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골로 간거다. 우리가 유럽이나 미국을 부러워하는 것은 그 사람들이 잘 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인 원칙이 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제 왕정보다 민주주의가 우월한 것은 이런 원칙이 더 쉽게 지켜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가 완성될 수 없는 제도라고 볼 수 밖에 없는 이유도 공산주의가 만들어 놓은 수많은 원칙이 너무나 쉽게 허물어지고 어기는 사람이 쉽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는 법이 세세하고 정밀하다고 꼭 좋은 것은 아니다. 법이 잘 지켜질 수 있어야 훌륭한 사회 시스템이 만들어진거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법체계가 이룩되어 있는 사회가 안정된 사회인 것이다. 쉬운 예로 영국 같은 나라는 헌법이라고 따로 없다. 미국 헌법도 우리만큼 대통령은 한번밖에 못한다는 둥 하는 세세한거 까지는 신경쓰지는 않는다.)


근데 여기서 짚어보고 가야될게 있다. 중국 한나라 말기가 어떤 사회인가? 현대의 우리나라에서도 고위층의 비리나 위법, 탈법은 쉽게 처벌되지 않는게 당연시되고 있는 판에 고대 중국에서 이런 짓거리를 저지르면 그 자리에 버티기 힘들거라는 거 눈에 보인다.  영리한 조조가 이런 간단한 이치 몰랐을리는 없다.  게다가 자기가 내시 손자면서 내시의 숙부를 때려 죽였으니.... 그렇다면 조조가 이런 엄청난 일을 한 까닭은 무었이었을까?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한가지는 조조가 진심으로 다 망해가는 나라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목숨을 걸고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근거라고는 앞서(인간 조조 4) 살펴본 양현자명본지령에 나온 조조의 정치적 이상과 당시 스무살이라는 혈기왕성한 나이 뿐이다. 그렇지만 훗날 우리에게 교활할 정도로 영리한 모습을 드러내는 조조에게 그런 순수한 마음이 있었을까 하는 의심이 가기도 한다.  물론 이런 의심자체가 무지 커다란 편견을 포함하고 있다.  교활하다고 국가에 대한 순수한 충성심이 없으라는 법있나? 그래서 그런가 노신같은 사람은 조조의 정치적 특징을 법을 엄격하게 적용한 데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도 이럴 순수하게 이런 목적만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자면 조조가 영리한 만큼 다른 부분도 충분히 생각했을 거라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또다른 이유를 추론해 낼수 있다. 


생각해 볼 수 있는 다른 한가지 이유는 도박에 가까운 정치적 모험 행위였을 수 있다는 거다. 사실 도박이라는 것도 머리 좋은 사람(?)이 훨씬더 잘 할 수 있는 거다. (이때의 머리라는 건 물론 순간적인 상황 판단력을 말하는 것이니 도박 못한다고 해서 머리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예를 들어 고스톱 칠 때도 대부분 따는 놈이 딴다. 일반인이 하우스에서 절대 돈을 딸 수 없는 것도 그런 이치이다. 물론 그런데서는 다른 속임수도 존재할 수 있겠지만 백지상태에서 대결한다하더라도 도박꾼은 판에 벌려진 패를 보고서 상대가 가진 패를 대충 읽어낸다. 그리고 그 상황에 가장 알맞은 패를 준비하고 자신의 의도대로 게임을 이끌어 간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게임을 하면 절대 잃지 않았다. 그 사람은 도박꾼도 아니었지만, 게임의 룰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고, 상황에 맞게 대처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혼자 돈을 다 따버린다거나 하는 짖은 하지 않았다. 일부러 항상 본전보다 조금 많은 정도만 ..... 그렇지만 그 사람은 게임이 일방적으로 진행되지 않도록 조정할 수 있었다. 그것도 사기 쳐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실력으로만..... 이런 사람들은 한 두판이야 실수할 수도 있겠지만, 전체 게임에서는 절대 지지 않는다. 그리고 금방 이야기한 머리라는 것은 이런 상황 판단 능력을 이야기한 거다.)  말하자면 조조는 당시 상황에 대한 충분한 인식 후 비로소 이런 행위를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거다.


조조 이 양반 키도 작고 못생겨서 그리 위엄이 있는 얼굴은 아니었고(앞서 인간 조조 1에서도 이 이야기를 간단하게 한 적 있다.), 스스로도 이야기한 적 있지만 출신성분도 그다지 훌륭한 편이 아니었으며(自以本非岩穴知名之士), 치적을 남겨 능력을 인정받은 편도 아니었으므로(恐爲海內人之所見凡愚), 이러한 상황을 일거에 뒤업을 방법은 큰 사고(마치 옛날 무명의 노무현 위원이 청문회 한번으로 일약 스타가 되고 결국 대통령이 된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당시 노무현의 행동이 정치적으로 계산된 행위였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니 오해들 마시길.....  어쨌거나 많은 사람들은 이때 만들어진 노무현의 투사적 이미지를 쉽게 수용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노무현의 이런 이미지가 자신에게 좋게 작용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짓은 아무나 하면 안된다. 믿음과 목적을 위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자신이 있는 사람이나 생각해볼 만한 방법이기도 하다.)를 한번 치는 것이며, 이것이 특권층을 제외한 일반인들에게 시대를 이끌어갈 지도자로 각인되는 가장 빠른 방법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어쨌든 이 두 가지 이유는 사실 하나로 묶을 수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다시 말해 이런 대담한 행동은 조조의 개인적 출세에 필요한 것이기도 했고, 동시에 국가의 법치질서를 바로잡기 위해서도 필요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누구도 당시 조조의 본심을 알 수는 없을 뿐..... 


다시 한번 말하지만 조조는 자신의 능력과 주변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던 영리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노신의 말처럼 법치주의 정치철학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사실 조조는 군대에서도 군율을 중시하였고, 엄격하게 집행하였다. 만일 자신이 군율을 어겼을 때는 스스로에게 일정한 처벌을 가했다. 이 이야기는 뒤에가서 하기로 한다.)  그렇지만 조조가 건석의 숙부를 때려죽인 사건만 본다면 우연이었을 것이다. 일부러 그 놈 죽이자고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아닐테니 말이다. (사실 그 인간이 재수 없었던거지. 시범 케이스로 걸렸으니....)    그리고 이 사건으로 조조는 당시 사람들은 물론 후세 사람들로 부터도 극찬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이 사건으로 조조는 승진하게 된다.  그런데 이게 말이 승진이지 좌천이나 다름없다. 이에 대해 조만전에서는 "(조조의 행위가 분명 법을 올바로 집행한 것이기에)  고위층에 있는 이들이 모두 조조를 싫어 했지만 이걸 빌미로 조조를 처벌할 수는 없었고, 그래서 그분들이 생각해낸 것이 돈구頓丘(현재 중국의 하남성 淸豊縣) 현령으로 승진시켜서, 아예 눈앞에서 안보이게 멀리 보내버리는 거였다. (近習寵臣咸疾之, 然不能傷, 於是共稱薦之, 故遷爲頓丘令)" 라고 적고 있다. 결국 조조는 지방의 현령으로 임명 받아 낙양으로 부터 추방(?) 된다.  (앞서도 이야기 했지만 부패한 사회에서 고위층에 잘못보이면 결국 이런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내시 숙부 하나 죽인 걸로  내시 집단은 물론 당시 낙양에서 힘께나 쓰던 사람들에게 조조가 눈에 가시처럼 여겨지게 되었고 그 결과로 조조는 중앙으로 부터 격리되었던 것이다.

 

 

 이 사건은 한편으로는 조조에게 이름을 널리 알리는 기회가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정치적 견제를 받게되는 계기가 되었는데...... 그렇다면  젊은 시절 지녔던 조조의 정치적 포부는 어떻게 될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