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사람들 이야기/삼국지와 영웅 이야기 1

수미니 2007. 12. 5. 21:03
 


부패한 동한 왕조는 조조로 하여금 출사하여 관료로써 나라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꿈을 버리게 만든다.  게다가 천하는 당시 사람들이 보기에는 전에 없던 대혼란에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조조는 점점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


앞서 - 조조의 꿈 2 - 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한나라 영제靈帝 중평中平 6년(기원 189년), 한나라 영제가 죽고난 뒤, 동탁董卓이 낙양으로 입성한다.  동탁은 낙양에 들어오자마자 유변劉辯을 폐위시키고 유협劉協을 제위에 앉힌다. 이게 한漢 헌제獻帝이다.  한갓 군벌이 지금 우리나라의 대통령보다도 권위가 훨씬 큰 천자를 마음대로 교체했다는 건 나라가 엉망이 되었다는 증거다.  우리로 치자면 사단장 정도 되는 군인이 대통령 갈아치운거 보다 훨씬 더 놀랄 일인거다. (전 장군님 생각나네 ㅜㅜ)  이미 말한 것처럼 조조는 이때 낙양으로 돌아와 전군교위典軍校尉를 맡고 있었다.  전군교위는 서원西園 팔교위八校尉 가운데 한사람인데, 서원군은 황실 근위군이라고 보면 된다.  그 서원군의 팔교위 가운데 가장 높은 자가 조조한테 숙부가 맞아죽은 내시 건석으로 상군교위上軍校尉(이거 봐라 내시가 관직도 겸하고 있다. 앞에서도 이런게 우리나라 내시랑 다르다고 앞에서도 이야기 했다.), 그 다음이 원소로 중군교위中軍校尉, 세 번째가 하군교위下軍校尉 포홍鮑鴻이었다.  조조는 이들을 잇는 네 번째 고위 장교였다.  이건 사실 옛날과 비교하면 엄청 출세한 거다. 


동탁이 무식한 군벌이라고 그랬지만 한 나라를 집어삼킬 정도면 웬만큼 교활하고 안목이 출중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전두환 장군이나 노태우 장군 우습게 알지만, 사실 이 사람들 보통은 넘는 사람들이다.  특히나 전두환 장군은 지금 국회의원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고위층에서 잘난 체 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당신 마음대로 부리셨던 사람이다.  도덕적인 것, 원칙적인 것을 이야기하는 거 아니니 흥분들 하지 마시라... 그만큼 남들보다 특출한 부분이 있었다는 것이다.  다만 이들은 여러 사람-국민-들의 힘을 과소평가했고, 그 때문에 훗날 명예롭지 못한 이름을 남기게 되었던 거다.) 그래서 그랬는지, 앞서 이야기 했던 것처럼 동탁도 조조의 능력을 한눈에 알아보았고 조조에게 효기교위驍騎校尉라는 벼슬을 내리면서 같이 큰 일 한번 해보자고 추파를 던진다. 근데 동탁보단 조조가 식견이 훨씬 높았다할까 아님 불의와 타협할 수 없었다 할까,  동탁이랑 같이 일하다간 자신도 잘못 엮여 들어갈 것을 알았나보다.  결국 조조는 이름까지 바꾸어서 낙양에서 도망친다.  그러니 전국에 조조 수배령이 내려지고, 도망가는 와중에 여백사 일가를 도살하기도 했다. (앞서 인간 조조를 이야기하면서 설명한적 있다.) 




북방민족의 외침과 범법자들의 통행을 막기위해 중원지방 곳곳에 이런 관문을 만들어 놓았다. 조조가 도망쳐나간 호로관 되겠다.

 

 


어쨋거나 가짜 이름까지 대면서 도성에서 도망나온 조조는 호로관虎牢關(지금 중국의 하남성 영양현榮陽縣에 있는 고대의 관문)을 빠져나와 중모현中牟顯에 이르렀을 때, 보잘것없는 지방관(亭長이라고 마을 촌장보다 좀 높은 정도)에 의해 도망친 수배자가 아닐까 의심되어 현 감옥에 억류된다. 이때는 동탁의 수배령이 이미 여기까지 알려졌을 때이다.  심문받는 동안 조조는 '나 절대 조조아니다.'라고 우겼지만, 현의 관리 가운데 하나가 조조의 면상을 알고 있었다.  이제 죽는 일만 남았구나 생각했는데, 현의 관리 가운데 간부급에 있는 자가 나름대로 생각을 현령에게 이야기한다. 이런 개 같은 시국에 조조 같은 영웅을 함부로 죽였다가는 나중에 어떤 욕을 먹을지 모른다. 그러니 모른 척 놔주자.....  결국 조조는 여기서 무사히 풀려날 수 있었다.  이건 조조는 지금까지의 행동으로 사회에서 영웅으로 불리고 있었던 데다가, 동탁이 하는 짓거리가 워낙에 개차반이었기 때문에 수배범을 놓아주는 이런 권력누수현상이 생겨난 것이다.  근데 이 일과 관련해서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중모현 현령이 진궁陳宮이었다고 하지만 역사는 소설이 아니다.  왜냐하면 진궁은 중모현령에 임명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는 이 일을 통해서 조조가 이미 사회적으로 영웅으로 대접 받았고, 반면 수도를 장악한 동탁은 그 난폭한 성격과 주도면밀하지 못한 정치적 행보로 인해서 지방 세력에 대한 통제력을 급격하게 잃어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한갓 현령이 중앙의 명령을 무시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수도 낙양을 벗어나 도망하던 조조는 진류陳留(지금의 하남성 개봉開封 부근)에 이르러 위자衛玆라는 든든한 후원자를 얻게 되고 여기서 근거지를 개척하게 된다.  전주錢主(산적이 아닌 이상 돈 없어봐 암것도 못해... 병사들 밥은 먹이고 창칼은 사야지... 하긴 수호지에서는 도적놈들이 영웅이지만..)가 생겼으니 조조는 스스로의 나아갈 방향을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건 조조 개인으로 보았을 때나, 혹은 삼국시대 전체를 통틀어 보더라도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사실 돈이 있는 사람이 똑똑한 놈 골라서 후원해주면서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려고 하는 일... 예나 지금이나, 아님 동서를 막론하고 자주 볼 수 있는 일이다.  (실은 훗날 유비도 이런 식으로 기업基業을 일으키게 된다.)  이런 일들이 잘되면 사회 발전의 동력이 되는 거고, 잘못되면 그게 사회의 부패와 직결되는 거다. 다만 성숙한 사회는 이런 후원을 통해서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경향이 좀 덜하고, 사회 시스템이랄까 구성원의 성숙도라 할까 뭐 이런게 잘 훈련되어 있어서 쉽게 개인적 욕심을 채우기 힘들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돈이 생긴 조조는 곧바로 병사를 모집하고, 창이나 칼 같은 무기와 군마도 사들여서 공개적으로 동탁에게 반항하기 시작한다.               


한漢 중평 6년(서기 189년), 조조는 기오己吾(지금의 하남성 寧陵縣) 지방에서 의병을 일으킨다.  군사수는 대략 5천명 쯤 되었다고 한다.  이때야말로 본격적으로 한말 군웅할거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그리고 조조의 오랜 친구인 진류 태수 장막張邈도 그와 동시에 군대를 일으켜 동탁에 반항하게 된다. 그래서 삼국지 장막전에서는 "동탁이 난리를 일으켰을 때, 태조(조조)와  장막이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켰다.(董卓之亂, 太祖與邈首擧義)"라고 적고 있다.  이때 조조는 집안사람들로 부터도 지지를 얻게 되고 조인曺仁, 조홍曺洪, 조휴曺休, 조진曺眞 같은 일가친척 맹장들을 위시해서 특급 장수인 하후돈夏侯惇 하후연夏侯淵(사실 이들은 관우나 장비, 혹은 조자룡에 버금갈만한 맹장들이다.   다만 유비 휘하가 아니었기에 지금 관우처럼 신격화 되지 못한거지.... 자기만 잘나서 위인으로 평가받는거 아니라니깐......) 등이 조조를 위해(?) 일하기 시작한다.  이걸 지켜본 각 지방 세력들도 동탁을 제거하고 한나라 황실을 부흥시키자는 기치 아래 중앙의 간섭에서 벗어나 독자생존의 길로 나아간다.(하여간 이 넘들 눈치 9단 들이다.)               


후한서에 의하면 결국 , 한漢 헌제獻帝 초평初平 원년(서기 190년)에는 원소가 발해에서 거병하였는데 이복동생 후장군後將軍 원술袁術, 기주목冀州牧 한복韓馥, 예주자사豫州刺史 공주孔胄, 연주자사兗州仔史 유대劉垈, 진류태수陳留太守 장막, 광릉태수廣陵太守 장초張超, 하내태수河內太守 왕광王匡, 산양태수山陽太守 원유袁遺, 동군태수東郡太守 교모橋瑁, 제북상濟北相 포신鮑信 등이 각각 수만의 군사를 이끌고 반 동탁 연대에 참가하게 되었다.(初平元年, 紹遂以勃海起兵, 以與將軍從弟後將軍術, 冀州牧韓馥, 豫州刺史孔胄, 兗州刺史劉岱, 陳留太守張邈, 廣陵太守張超, 河內太守王匡, 山陽太守袁遺, 東郡太守橋瑁, 濟北相鮑信等, 同時俱起, 衆各數萬, 以討卓爲名.) 이 반동탁 연대는 원소를 맹주로 추대하였는데, 이 사람들 모두가 함곡관函谷關 동쪽의 지방 세력이었기 때문에 관동의군關東義軍 혹은 관동군關東軍이라고 부르고 이와 대결하는 동탁의 군대는 서북지방에서 왔기 때문에 서북군이라고 불렀다.


                               후한시기 행정구역은 이렇다.    


 


연합군이 성립과 관련해서 삼국지연의에서는 "조조가 서찰을 띄웠고 각지에서 이에 응한 것(發矯詔諸鎭應曺公)" (하긴, 이때만 해도 삼국지연의도 조조를 조공이라고 부르면서 어느 정도 인정해주고 있다.)이라고 하였지만, 뭐 이건 말이 잘 안된다. 조조라는 사람이 아직은 남들 다 불러 모을수 있을 만큼, 다시 말해 조조가 부른다고 이 많은 사람들이 참가할 만큼 뚜렸한 지위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말이야 의병이지만 이것도 나서는 사람이 누군가에 따라 보통사람들은 다들 눈치 본다. 조조가 비록 영웅대접을 받기 시작했다하더라도 아직은 공고한 기반을 가진 것도 아니고, 앞서 말했다시피 크게 훌륭한 집안 출신도 아니며, 동탁이 내린 벼슬도 마다했으니 관직이라곤 없다. 거기다 여기 참가한 넘들... 나라에 대한 충성심이 그렇게 투철한 인간들도 아니었다.  이리저리 눈치보다 '나도 자립해볼까?' 하고 나선 넘들이 많다는 거다.  그러니 자신들과 비교해서 세력이 미미한 조조가 부른다고  '옳소! 정의를 위해!' 하면서 모여들 양반들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역사 속에서 이 일은 누가 한 것일까? 누구냐면 바로 동군 태수 교모이다. 후한서에서는 "교모는 주와 군에 동탁의 죄악 때문에 천자가 위기에 봉착했으니 의병들을 일으켜 국난을 풀어주기 바란다라면서 삼공의 이름을 가장하여 편지를 돌렸다. (橋瑁乃詐作三公移書, 傳驛州郡, 說董卓罪惡, 天子危逼, 企望義兵, 以釋國難.)" 본래 조조하고는 크게 관계가 없었다는 말이다. 사실 관동군 안에서도 조조의 5천 병력은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아니었고, 조조가 맡은 행분무장군行奮武將軍(行은 대리한다는 말이다.)은 관동군의 맹주였던 원소가 임시로 내려준 직책이니 누가 조조의 말을 귀담아 듣겠는가? 그렇지만 조조 여기서 다시 대의를 위해 이한몸 바치리라 맘먹는다.            


그렇지만.... 이거 연합군이라는게...... 같이 일해야 할 넘들이 좀 그랬다. 한번 살펴보자. 


                               먼저, 연합군 맹주라는 원소아저씨 이분부터.....               

 

 

 


......... 이양반 집안 좋다. 관동 연합군이 원소를 맹주로 추대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지금도 그런 경향이 남아 있지만, 옛날에는 집안이라는 거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거였다. 원소네 집안은 사대四代가 삼공三公을 지낸 집안이다. 삼공은 시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동한 시대에는 사공 사도 태위를 삼공이라 했다.), 그 지위는 황제 바로 아래 이니 이런 직책을 사대가 역임했다는 것은 장난이 아니다. 살펴보면 고조부 원안袁安이 장제章帝 시절 사도司徒를 역임했고, 숙태조부叔太祖父 원창袁敞이 사공司空을, 조부 원탕袁湯이 사공 - 사도 - 태위를 번갈아가며 지냈다.  또 원소의 아버지 원봉袁逢은 사공을 역임했고, 아울러 숙부 원외는 태부太傅를 역임했다.  몇대를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지위를 누렸으니 그 세력은 누구도 무시할 수 없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과 얽히고 설켜 있었으니,  정치적으로 이보다 더 나은 조건은 없었을 거다.              


원소 개인의 조건도 상당하다. 우선 조조와는 달리  "무지 잘 생긴 위엄 있는 얼굴이었다고 한다.(有姿貌威容: 웃기는 이야기지만 옛날에는 지도자의 덕목 가운데 생김새도 있다.  옛날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身言書判이라고 하지 않았나? 생긴 꼬라지가 그 첫자리에 들어있다. 우습게도 판단력이 맨 꼴찌다.)"  그리고 아랫사람을 상대할 때도 예를 다했으며(能折節下士), 발도 넓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줄을 댓다.(士多附之)  더욱이나, 원소는 동탁을 반대한다는 명성이 자자했다. 

 

어찌된 일인가 하면, 일찌기 동탁은 어린 황제 유변劉辯을 폐위하고, 그 동생인 진류왕陳留王 유협劉協을 옹립하려는 맘을 먹고 원소를 찾아서 상의하면서, "쓸데도 없는 유씨네 종자들을 싹쓸이해버릴까?(劉氏種不足復遺)"라고 말했다가 그 자리에서 원소의 반대에 직면했던 적이 있다.  삼국지 원소전袁紹傳에서는 이때 광경을 "원소는 이에 대응도 않고 칼을 차고 인사하며 가버렸다.(紹不應,橫刀長揖而去)"고 묘사한다.  헌제춘추獻帝春秋라는 책에서는 원소가 원소에게 조목조목 바른말하면서 반대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동탁이 누구던가? 지금 세상에 무서울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머리끝까지 열이 받은 동탁은 '너 이노무시키 주거써! 천하에 내 맘대로 안될게 뭐이써! 칼 함 맞아 볼래?' 하면서 칼을 들이대고 원소도 칼을 뽑으면서 '씨바 너만 칼 쓸 줄아러? 나도 칼이써!'라고 하면서 맞섰다고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이 정도까지 원소가 배짱이 있었는지는 조금 애매하다. 그래서 삼국지에 주석을 단 배송지는 "조또! 이거 말도 안돼!(此語妄之甚矣)"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원소가 동탁에 반대했던 것은 사실이며, 동탁에 반대해 수도 낙양을 도망쳐 나온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그 존경받는 집안의 큰아들이 지조를 지키니) 여러 사람들이 높이 평가했다.                


그런데 원소 이 인간.... 머리가 뭐 별로다. 실은 동탁도 원소 이 양반이 불러들인거나 다름없다. 얼마 전, 영제가 죽고 나서 사대부 관료집단과 내시(환관)들 사이의 충돌이 격화되기 시작할 때, 대장군 하진은 먼저 행동을 개시해서 두목격인 내시 건석을 죽여 버리고 황실 근위군을 접수한다. 이때 원소 이 양반 하진더러 '그럴거면 후환도 없앨겸 몽땅 다 죽여 버리죠.'라고 권한다. 근데 이번엔 하진이 곤란해 한다. 동생인 하태후가 좀 봐주라 그러는 거다. 사실 하태후는 젊은 유협의 생모인 왕王씨를 독살했다가 영제로부터 폐출될 뻔 했는데, 내시들이 '태후마마 좀 살려주세요! 어린 왕자님은 어떡하라구여.....' 라고 사정사정하는 바람에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가, 남편이 죽고난후에 겨우 여기까지 오게 된거다.  하진이 난처해하는 꼴을 본 원소는 '태후님이 그러시니까..... 이럼 어떨까요? 사방에 보내놓은 맹장들 좀 불러들이세요. 특히 그 병주목幷州牧 하고 있는 동탁 있자나요.... 그 친구 들어오면 태후 마마도 겁나서 크게 못말리실걸요...'  이러고나니 원소나 머리 나쁘기는 매한가지인 하진이 동탁을 불러들인다.......           


삼국지 무제기武帝紀에 대한 배송지의 주注에서는 위서魏書를 인용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조조는 하진이랑 원소 작당한 내용을 듣고 나서, 바로 크게 웃었다.  미친..... 내시들 어떻게 할려면 대가리 몇놈만 잡아죽이면 되는거 아냐?  그저 망나니(獄吏) 한 사람이면 해결될 일 가지고,  어쩌자고 정신없이 멀리있는 장수까정 불러들여?(何必紛紛召外將乎?)'  


결국, 동탁이 낙양에 입성도 하기 전에 하진은 내시들에 의해 주검이 되고, 원소는 복수한답시고 낙양성 안에 수염 안난 어른들을 몽땅 잡아 죽인다.  우습지만 그 땜에 수 많은 젊은이들이 바지 벗고 신체검사를 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동탁이 수도에 들어와서는 황제마저 폐위....  황후는 독살....  낙양성은 개판 오분전이 되고,  이렇게 원소는 지가 스스로 불러온 재앙으로부터 도망쳐 나온거다.  사실 내시들의 권력이란게 황제로부터 나오는 거다.  황제가 내시들의 말을 지나치게 믿지 않고,  총애하지 않는다면 이런 일들은 애시당초 발생할 수도 없는 것이다.  하물며 원소 말처럼 내시들을 모두 죽여버리려고 하면, 내시들도 당장 목숨이 걸린 문제라 맞서지 않을 수 없는 거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고, 생쥐도 막다른 골목에선 고양이를 무는 판에 싹쓸이라니....  주동자만 없애고 나머지 것들 잘 구슬르면 해결될 일을 어렵게 만든거다.  하물며 내시라고 다 죽일 넘들은 아니지 않은가?  그저 거세했다는 거 말고는 좋은 내시도 있을 수 있는데....  황궁이라는 정치판에서 내시들은 활용가치가 충분히 있는 거다.  원소 말처럼 내시 다 죽이고 나면 다른 고자 넘들이 안 들어서나? 


아니 백번 양보해서 싹쓸이하기로 맘먹었으면 실천을 했어야지, 그러지 않고 시간을 끌다가 정보는 다 빠져나가고, 반격의 기회만 마련해준거다.  게다가 하진이 피살된 뒤에는 복수한답시고 수많은 사람들 잡아다가 신체검사까지 했으니 사람들 마음만 쑤셔놓은 거다.  삼국지 원소전에서는 젊은이들이  "스스로 바지 벗고 고추를 보여준 뒤에야 살수 있었다.(自發露形體而後得免)" 라고 했으니,  이런 일들도 스스로 적을 만들어가는 것이고,  주변에 적을 많이 만든 사람이 좋은 결말을 보기 힘들다. 그래서 그런지 조조도 "내 그녀석 꼬꾸라질게 눈에 훤하게 보인다.(吾見其敗也)" 라고 말했다.  나같아도 다컸는데 수염아직 안자랐다고 고추 검사하면 열받겠다......               


맹주라는 사람 생각하는 수준이 그 정도이니 .....  조조가 이 연합군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쉽게 믿음을 가질 수 있었겠는가? 아니 그럼 다른 사람들은 어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