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전 이야기/주역 이야기

수미니 2007. 12. 11. 14:15

 

 

 

   십익(易傳) 가운데 단전과 상전 그리고 문언전 등이 주역의 어떠한 부분을 해석하고 있는가를 중심으로, 각 전에서 사용하는 용어와 선진시대 사상과의 차이 등을 통해서 각각의 형성 연대를 추론해 보았다. 여기서는 이어서 계사전의 형성시기에 대해 살펴보겠다.

 

 

   2. 계사의 형성 

 

 

 

‘계사繫辭’ 라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괘효상卦爻象 아래에 달아(뒤에 붙임) 두었음을 가리키는데, 곧 계사전에서 “말을 달아서 그 길흉吉凶을 판단한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효사爻를 말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주역 상하경 뒤에 달아 둔 것, 즉 계사전을 가리킨다.

 

계사전은 주역과 서법筮法의 대체적 의미를 통론하면서도, 경문을 구절마다 해석하지는 않았기에 역대전易大傳이라고도 일컫는다. 공영달孔潁達의 주역정의周易正義 판본에서는 상전上傳을 12장章으로 나누고, 하전下傳을 9장章으로 나누었다.  주희朱熹의 주역본의周易本義 판본에서는 상전上傳과 하전下傳을 각각 12장으로 나누었다. 주희는 정이程의 생각을 근거로 “천수天數가 다섯이며, 지수地數가 다섯이다. …… 변화를 완성하고 신비로운 일을 행한다.(天數五,地數五 …… 成變化而行鬼神也)”라는 단락을 “대연지大衍之數는 50이다.(大衍之數五十)”의 앞에 두는 것으로 편집하였고, 다시 “천일天一,지이地二 …… 천구天九,지십地十(天一,地二……天九,地十)” 단락을 “천수天數가 다섯이며 …… 신비로운 일을 행한다.(天數五……  行鬼神也)” 앞에 두었다.

 

왕부지王夫之는 주역내전周易內傳, 계사상전繫辭上傳에서 한서漢書 율력지律歷志와 위원숭衛元嵩(아래에 인물 해설)이 원포운시元包運蓍편에서 인용한 계사전 문장을 근거로, ‘천일天一’에서 ‘지십地十’까지의 20 글자가 “천수오天數五” 위에 있어야 한다고 지적하여 주희의 편집을 고증했고, 당연히 주희의 판본을 따랐다. 마왕퇴馬王堆의 한漢나라 묘지 유적에서 출토된 백서본帛書本 주역에서도 계사전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현재의 통행본과 일부만 동일할 뿐 기타 부분은 통행본 계사전에 존재하지 않는다. (또) 통행본 설괘說卦의 첫 세 단락이 백서본 계사에서는 후반부에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한대 초기에 계사의 전해지는 판본(傳本)이 여러 가지 존재하고 있었음을 설명하는 것이다.

 

통행본 계사는 문장의 의미가 중복되는 부분도 있고, 죽간竹簡(종이가 없던 시절에는 나무나 대나무 조각에 글씨를 쓰고 이걸 가죽끈으로 묶어서 책을 만들었었는데.... 가죽끈이 삭아서 떨어지면 책의 내용도 쉽게 앞뒤가 뒤바뀌곤 하는게 결정적인 문제점이었단다.)의 순서를 잘못 배열한(錯簡)것이라 의심되는 부분도 있다. 또한 어떤 장절章節에서는 위 아래 글 사이에 어떤 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가운데 “끝까지 올라간 용龍은 후회함이 있다.(亢龍有悔)”에 대한 해석은 문언과 동일하다. 그러므로 계사는 한 시대, 한 인물의 손에서 나온 저작이 아니며, 지속적으로 편찬되어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계사의 특징 가운데 한 가지는 음양陰陽 이론으로 주역과 서법의 원리를 해석하고 있는 것인데, 이는 역학사易學史나 철학사哲學史에 있어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 계사의 중요한 장절章節이 언제 형성되었는가 하는 것 역시 토론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문제인데, 이경지李鏡池는 주역탐원周易探源에서 계사는 서한西漢 시대 소제紹帝와 선제宣帝 사이에 형성되었다고 생각했지만, 백서본 계사의 출토로 인해 이 주장은 이미 부정되었다.

 

고형은 주역대전금주에서 계사가 공자 문하의 제자 공손니자公孫子 이전에 형성되었다고 생각하였다. 그 까닭은 통행본 예기禮記의 악기樂記 편 가운데 한 단락이 계사의 첫 구절 “하늘은 높고 땅은 낮아서 건곤乾坤이 정해진다.(天尊地卑,乾坤定矣)”의 내용과 대체로 동일한 데 있다. 통행본 악기는 곧 공손니자가 저작한 것이며, 악기 가운데 이 단락은 계사를 옮겨서 쓴 것이므로 계사는 공손니자 이전에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을 따른다면 계사는 전국시대 전기 혹은 초기의 작품이다. 악기의 글은 다음과 같다.

 

하늘은 높고 땅은 낮은데, 임금과 신하의 관계가 이를 본받아 정해진다. 낮고 높은 것이 늘어서서 귀하고 천한 지위가 이를 본받아 정해진다. 움직이고(動) 고요한(靜) 것에는 일정함 있어서 크고 작은 것들이 나뉘게 된다. 일이 같은 종류끼리 모이고, 사물이 무리로 나누어지는 것은, 성性?명命이 서로 다른 것이다. 하늘에서는 상象이 완성되고, 땅에서는 형체가 완성된다. 이와 같이 예禮는 천지간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땅의 기운이 위로 올라가고 하늘의 기운이 아래로 내려와서 음陰과 양陽이 서로 부딪치고 하늘과 땅이 서로 엇갈리며 천둥번개가 울리고 비바람이 몰아치며 사시가 움직이고 해와 달이 데워주어서 모든 변화가 발생한다. 이와 같이 음악(樂)은 천지간의 조화로움(을 보여주는 것)이다. …… 그러므로 성인은 예禮이니 악樂이니 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天尊地卑, 君臣定矣. 卑高已陳, 貴賤位矣. 動靜有常, 小大殊矣. 方以類聚, 物以羣分, 則性命不同矣. 在天成象, 在地成形. 如此則禮者, 天地之別也. 地氣上齊, 天氣下降, 陰陽相摩, 天地相蕩, 鼓之以雷霆, 奮之以風雨, 動之以四時, 煖之以日月, 而百化興焉. 如此則樂者天地之和也. …… 故聖人曰禮樂云.)

 

이 구절은 앞의 구절과 함께 ‘악례樂禮’라고 불리는 부분으로, 예禮와 음악(樂)의 유래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통행본 악기, 그 중에서도 특히 ‘악례’ 부분이 공손니자의 저작인지 아닌지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다. 사기, 악서樂書에서는 일찍이 악기의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한대 초기에 이미 이 글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가운데 수많은 중요한 자구나 단락은 순자 악론樂論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후대인들이 공손니자의 말이라고 생각하는 “음악(樂)이란 것은 일음(여기서 일一은 첫 번째 음, 즉 궁음宮音을 말하는 것이다.)을 자세히 살펴서 조화로움을 정하는 것이며, 악기(物)를 써서 음절을 꾸미는 것이다.(樂者審一以定和, 比物以飾節.)”라던가 “음악(樂)이란 것은 선왕先王이 기쁨을 표현해낸 방식이다.(樂者先王之所以飾喜也.)” 등의 이야기는 모두 순자 악론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 몇몇 문구는 여씨춘추 적음適音편이나 음초音初편 등에서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서는 악기 가운데 어떤 부분이 공손니자에서 따온 것인지, 또는 공손니자 본인의 작품인지 아닌지 등은 이미 고증할 길이 없어진다.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서는 “무제武帝 때 하간헌왕河間獻王은 유학儒學을 애호하여 모생毛生 등과 함께 주관周官이나 제자백가들이 음악에 대해 논의한 기록들을 채록하여 악기를 엮었다.(武帝時, 河間獻王好儒, 與毛生等共采周官及諸子言樂事者以作樂記.)”라고 하였고, 또 “유향劉向이 서적들을 교열할 때 악기 23편을 얻었다.(劉向校書, 得樂記二十三篇.)”라고 기록하였다. 현재 볼 수 있는 악기가 바로 유향이 교열한 23편 가운데 일부분이다. 이로써 우리는 지금의 악기가 결코 공손니자 한사람만의 저작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점은 곽말약郭沫若이 일찌기 청동시대靑銅時代에서 이미 지적한 바 있다. ‘악례’의 장절에 관해서는 그것이 공손니자 시대의 작품인가 아닌가를 단정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예를 들면 그 중에서도 “천지天地의 만물이 본받는다.(天地官矣.)”나 “성명性命이 서로 다르다.(性命不同矣.)” 등은 바로 순자가 자주 사용하던 용어들이다.

 

악례 가운데 이 장章의 서두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오제五帝는 그 시기가 서로 달라서 음악(樂)을 그대로 이어 쓰지 않았으며, 삼왕三王은 세대가 서로 달라서 예禮를 그대로 이어 쓰지 않았다.(五帝殊時, 不相沿樂. 三王異世, 不相襲禮.)” 이것은 상앙商의 주장으로, 결코 전국시대 전기 혹은 초기에는 나올 수 없었던 주장이다. ‘악례’ 장의 내용에 관해 살펴볼 때, 음악(樂)으로 천지를 조화롭게 하고 예禮로 천지의 질서를 바로잡는다는 식의 생각은 순자 악론에서 말하는 “음악(樂)은 같은 것을 합치고, 예禮는 다른 것을 구별한다.(樂合同,禮別異.)”는 주장과 일치한다. 그러므로 ‘악례’ 장章은 공손니자가 지은 것이라고 보기보다는 순자 후학의 손에서 나왔다고 보는 것이 역사적 사실에 더욱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통행본 악기에 근거해서 계사가 전국시대 전기의 작품이며 맹자나 상앙 이전에 이미 형성되었다고 판단하기에는 증거가 불충분하다.

 

                  고대 음악의 정신을 서술한 것이 악기樂記이다.

 

 

 

 

백서본 계사와 육가陸賈의 신어新語에서 인용한 계사의 내용을 근거로 한다면, 계사의 하한선은 당연히 진한 교체기 이전임이 분명해진다. 그 상한선에 관해서는 아직은 이를 판단할 만한 직접적인 사료가 없다. 계사의 내용에 대해 말하자면 그 가운데 약간의 괘효사 해석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주역의 성질과 팔괘의 기원 그리고 시초점의 원칙과 규칙(體例) 등을 주로 논술하고 있다. 계사에서는 특히 건곤乾坤 두 괘卦를 높이 추앙하고,  이 두 괘가 주역의 연원 혹은 기초라고 여기고 있는데, 이른바 “건곤은 역易의 진리가 쌓여있는 곳인가?(乾坤其易之縕邪?)”라는 것이 그것이다.

 

계사의 건곤괘에 대한 해석과 시초점의 규칙(占筮體例)에 대한 논술에 대해 말한다면, 이 전傳은 단彖과 상象 두 전傳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계사는 건곤 두 괘卦를 해석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건乾은 사물의 위대한 창조를 주재하고 곤坤은 사물을 완성시키며(乾知大始, 坤作成物)”, “건乾은 고요하면 한곳으로 모이고 움직이면 곧아서 크게 낳는다. 곤坤은 고요하면 합쳐지고 움직이면 펼쳐져서 넓게 낳는다. 넓고 큰 것은 천지와 짝을 이루고, 변하여 통하는 것은 사계절과 짝을 이루며, 음양의 (변화하는) 의미는 해 달과 짝을 이루고, 쉽고 간략하여 훌륭한 것(善)은 지극한 덕德과 짝을 이룬다.(夫乾, 其靜也專, 其動也直, 是以大生焉. 夫坤, 其靜也翕, 其動也闢, 是以廣生焉. 廣大配天地, 變通配四時, 陰陽之義配日月, 易簡之善配至德.)”

 

여기서 이른바 ‘위대한 창조(大始)’, ‘사물을 완성시킴(成物)’, ‘크게 낳는 것(大生)’, ‘넓게 낳는 것(廣生)’ 등은 바로 건곤 두 괘卦의 단에서 말한 “만물이 이로부터 비롯되며(萬物資始)”, “만물이 이로부터 생겨난다.(萬物資生)”이며 단의 문장과 연결시켜 본다면 그 의미는 자명해진다. 계사에서는 다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상象을 이루는 것을 건乾이라 하고, 본받는 것을 곤坤이라 하며(成象之謂乾, 效法之謂坤)”, “건乾은 천하의 지극히 굳건한 것이며, 그 덕행이 언제나 평이한 것은 험난함을 알기 때문이다. 곤坤은 천하의 지극히 유순한 것이며, 그 덕행이 언제나 간략한 것은 막힘을 알기 때문이다.(夫乾, 天下之至建也, 德行恒易以知險. 夫坤, 天下之至順也, 德行恒簡以知阻.)”

 

이것은 바로 상象에서 말한 “하늘의 운행은 굳건하며(天行健)”, “땅의 형세(地勢)가 곤坤이다.(地勢坤)”이며, 상의 내용과 연결시켜 볼 때 문장의 의미가 자명해진다.

 

계사에서는 다시 성인이 천지의 상象을 관찰하여 도구를 만들었다는 이론(觀象制器說)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황제黃帝 요堯 순舜이 옷을 늘어뜨리고 천하를 다스린 것은 건괘乾卦와 곤괘坤卦에서 채택한 것이다.(黃帝堯舜垂衣裳而天下治, 盖取諸乾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옷을 늘어뜨린 것'을 건곤 두 괘卦의 상象에서 채택한 것일까?  왜냐하면 건괘乾卦  상象에서는 구오효九五爻 효사爻辭를 풀이해서 “나는 용이 하늘에 있다는 것은 대인이 일한 것이다.(飛龍在天, 大人造也)”라고 하였고, 곤괘坤卦 육오효六五爻 효사爻辭를 풀이해서 “누런 치마가 크게 길吉한 것은 꾸미는 것(文)이 안에 있는 것이다.(黃裳元吉, 文在中也)”라고 하였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황제黃帝(실제 인물인지 아닌지도 모를 고대 전설상의 제왕이다. 한마디로 뻥이다. 하긴 고대 문화 가운데는 뻥이랄까, 아님 신화랄까 할 수 있는 설화 속에서 발전한 것들이 아주 많다.)가 옷을 발명한 것을 인류문명이 시작된 것으로 삼은 것이다. 이상은 계사의 건곤에 대한 해석이 단 상 두 전傳에 대한 것임을 설명하고 있는 것인데, 건乾을 평이한 것으로 여기고 곤坤을 간략한 것으로 여겨서 “건乾은 평이함(易)으로 주재하고, 곤坤은 간략함(簡)으로 완성할 수 있다.(乾以易知, 坤以簡能)”라고 말하였으며, 건곤을 간략하고 평이한 이치(簡易之理)라고 일컫는 것이다. 이것은 계사가 단 상의 건곤 이론에 대해 발전을 이루어낸 것이다.

 

서법筮法의 측면에서 보면 단 상 두 전傳에서는 음양강유설陰陽剛柔說을 제기하여 괘상과 효상을 해석하고 있는데, 이는 춘추시기에는 없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단에서는 태泰비否 두 괘卦의 괘상을 해석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안(內)은 양陽이고 바깥(外)은 음陰이니, 안으로 굳건하고 바깥으로 유순하다.(內陽外陰, 內健而外順)”, “안은 음陰이고 바깥은 양陽이니, 안으로 부드럽고 바깥으로 굳세다.(內陰而外陽, 內柔而外剛)”

 

이때 안(內)은 하괘下卦를 지칭하고 바깥(外)은 상괘上卦를 지칭하는데, 태괘泰卦는 건乾이 아래에 있고 곤坤이 위에 있기 때문에, ‘안(內)은 양陽이고 바깥(外)은 음陰’이라고 말하였다. 비괘否卦는 건乾이 위에 있고 곤坤이 아래에 있기 때문에 ‘안은 음陰이고 바깥은 양陽’이라고 말하였다. 건괘乾卦의 세 효爻는 모두 양효陽爻이며 곤괘坤卦의 세 효爻는 모두 음효陰爻인데, 이것을 달리 강剛과 유柔라고도 부른다. 그래서 단에서는 양효陽爻를 강剛, 음효陰爻를 유柔라고 하며, 각각의 효爻는 위 아래로 오고간다고 생각하였는데, 예를 들어 수괘隨卦를 풀이하면서 “(양)강剛이 와서 (음)유柔 아래에 있으니, 움직이고 기뻐함이 수隨 이다.(剛來而下柔, 動而悅, 隨.)”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계사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들을 하고 있다. “움직임과 고요함에 일정함(常)이 있어 (괘의) 양효(剛)와 음효(柔)가 결정된다.(動靜有常, 剛柔斷矣)”, “(괘의) 양효(剛)와 음효(柔)가 서로 밀쳐서 변화를 낳는다.(剛柔相推而生變化)”, “단사彖辭는 상象을 이야기한 것이고, 효사는 변화를 이야기한 것이다.(彖者, 言乎象者也. 爻者, 言乎變者也)”, “효爻와 상象은 괘卦 안에서 변동하고, 길흉은 괘卦 바깥에 있는 사람의 행동에서 드러난다.(爻象動乎內, 吉凶見乎外)”(단彖의 강유왕래설剛柔往來說에 의하면 양효와 음효가 하나의 卦 안에서 왕래하기 때문에 괘효상은 괘卦 안에서 변화하는 것이며, 길흉 판단은 인간의 행위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에 괘卦 밖에서 드러난다고 하였다.), “(괘의) 양효(剛)와 음효(柔)가 서로 바뀌니, 일정한 기준이 될 수 없고, 오직 변화에 맞추어갈 뿐이다.(剛柔相易, 不可爲典要, 唯變所適)”, “팔괘는 상象으로 알려주고, 괘효사(爻彖)는 정황(情)을 말해주는데, (괘의) 양효(剛)와 음효(柔)가 (하나의 괘卦 속에) 뒤섞여 있어서 길?흉이 드러난다.(八卦以象告, 爻彖以情言, 剛柔雜居而吉凶可見矣.)이런 것들은 모두 단의 강유왕래설剛柔往來說을 해석한 것이다.

 

앞서 단에서는 시중時中 관점으로 괘사卦辭의 길흉을 해석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바 있다. 이런 규칙과 관련해서 계사에서는 “(괘의) 양효(剛)와 음효(柔)란 근본을 세우는 것이며, 변하여 통하는 것은 때에 (맞게) 따르는 것이다.(剛柔者, 立本者也, 變通者, 趣時者也.)”라고 말했다. 또한 “여섯 효爻가 서로 뒤섞여 있는 것은, 오직 시대적인 상황(에 맞춘 것)일 뿐이다.(六爻相雜, 唯其時物也)”라고 하였다. 말하자면 효의 위치(爻位)에 따른 길흉은 그것이 처해있는 시간적 위치(時位: 때에 따른 상황 혹은 효가 그 자리에 위치하고 있을 때의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계사에서는 다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뒤섞여 있는 사물의 성질(德)을 가려내고, 그것들의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은, 중효中爻가 아니면 갖추고 있지 못하는 것이다. 아! 또한 존망存亡과 길흉吉凶을 알고자 한다면, 효爻를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이는 단사彖辭를 보면 반 이상을 생각해낼 수 있을 것이다.(若夫雜物撰德, 辨是與非, 則非其中爻不備. 噫! 亦要存亡吉凶則居可知矣. 知者觀其彖辭, 則思過半矣.)” 이것은 한 괘卦의 여섯 효爻 가운데 중효中爻, 즉 제이효第二爻와 제오효第五爻가 그 괘卦의 의미(卦義)와 그 길흉을 판단하는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단사彖辭’는 공영달 소疏에 의하면 괘사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역시 단彖의 문장을 지칭하는 것인데, 왜냐하면 굳센 것이 중앙에 있다(剛中)’ , ‘부드러운 것이 중앙에 자리한다(柔得中)’, ‘중앙에서 바르다(中正)’ 등은 모두 단에서 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계사가 시초점의 규칙에 관해 논술하면서 단과 상의 효위설을 해석 혹은 총결하였음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밖에 단과 상은 모두 취상설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런 경향은 특히 대상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그러므로 계사는 다시 이를 해석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인聖人은 천하 (만물)의 깊은 도리를 관찰하여 그 모양새를 본뜨고 그 사물에 알맞게 형상화하였기 때문에 상象이라고 말한다.(聖人有以見天下之?, 而擬諸其形容, 象其物宜, 是故謂之象)”, “그러므로 역易은 상象이며, 상象이란 것은 형상이다.(是故易者象也, 象也者像也.)” 이상의 자료들 가운데서 계사가 시초점 규칙에 대해 해석한 것은 단 상의 규칙을 원본으로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 반드시 어떤 서법 규칙이 먼저 있고나서야 비로소 그런 규칙에 대한 해석과 총결이 나올 수 있다. 이를 근거로 생각해보면 계사는 당연히 단 상 두 전傳 이후에 나온 것이다.

 

계사에서는 주역의 원리를 해석하면서 약간의 범주範疇와 개념槪念 및 명제命題, 그리고 역사적 사건들을 제기하였는데, 그 가운데 몇 가지 개념과 명제는 전국 후기의 사상 조류에 상응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계사에서는 역易에 태극太極이 있다(易有太極)”고 하였는데, ‘태극’이라는 어휘는 선진先秦 시기의 문헌 가운데 오직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의 “태극보다 위에 있어도 높다고 하지 않고, 육극六極보다 아래에 있어도 깊다고 하지 않는다.(在太極之先而不爲高, 在六極之下而不爲深.)” 에서만 보인다. 이 곳의 태극은 육극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태극은 공간적으로 가장 높은 극한을 말한다. 이와는 달리 계사에서 말한 ‘태극’은 대연지수大衍之數 혹은 기우奇偶 두 획이 그어져서 나누어지기 이전의 상태, 곧 괘상의 근원을 지칭하기 때문에 태극이라고 부른다. 장자에서 말한 ‘태극’이 당연히 이 말이 가지는 최초의 함의이겠지만 계사에서는 장자의 ‘태극’을 사용해서 서법을 해석하였던 것이다.

 

다시 예를 들어보자면 계사에서는 “정기精氣는 사물이 되고 떠다니는 혼백(遊魂)은 변화하는 까닭에 귀신鬼神의 정황을 알 수 있는 것이다.(精氣爲物, 游魂爲變, 是故知鬼神之情狀.)”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정기精氣’가 모이고 흩어지는 것으로 귀신鬼神을 해석한 것이다. 이런 관점은 관자管子 내업內業편에서도 볼 수 있는데, 내업內業에서는 “사물의 정기(精)를 얻으면 생명이 탄생한다. …… 천지간에 떠다니는 것을 귀신이라고 한다.(凡物之精, 此則爲生 …… 流于天地之間,謂之鬼神.)”라고 말하였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계사에서는 “하늘은 높고 땅은 낮아서 건곤乾坤이 정해진다.(天尊地卑,乾坤定矣)”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천존지비天尊地卑’설은 다시 장자 천도天道편에서 “존귀한 것이 앞서고 낮은 것이 뒤를 따르는 것은 천지의 운행과 같기 때문에 성인聖人은 이를 본보기(象)로 취하였다. 하늘은 높고 땅이 낮은 것이 신명神明의 자리이다.(夫尊卑先後, 天地之行也, 故圣人取象焉. 天尊地卑,神明之位也.)”라고 한 것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계사에서는 천지신명天地神明으로 건곤 두 괘卦의 연원을 해석하였는데, 바로 성인취상설聖人取象說이다. 또 계사는 성인이 (괘)상象을 관찰하여 도구를 만들었다는 이론(聖人觀象制器說)을 논술하면서, 복희씨伏羲氏가 그물을 발명하였고, 뒤를 이어 신농씨神農氏가 쟁기와 보습을 발명하였으며, 황제黃帝 요堯 순舜이 옷이나 배와 노, 그리고 소와 말을 부리는 방법과 화살 등을 발명하였다고 생각하였다. 이와 같은 일련의 역사적 통치자의 순서에 대한 서술은 상군서商君書 갱법更法편에서 “복희와 신농은 교화는 하되 토벌하지는 않았고, 황제黃帝와 요堯 순舜은 토벌은 하되 분노하지는 않았다.(伏羲神農敎而不誅, 黃帝堯舜誅而不怒.)”라고 한 데서도 보인다. 이상은 계사에서 사용된 개념이나 명제, 술어 등이 전국시대 중기 이후의 철학과 학술사상의 발전 상황을 반영하고 있어서, 계사가 장자莊子나 상앙商鞅, 그리고 관자管子 내업內業편 보다 먼저 나왔을 수 없음을 설명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서법 규칙에 대한 해설이라는 측면에서 말하자면, 그 범주나 개념 그리고 명제의 발전이라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 계사의 상한선은 마땅히 단의 내용과 장자 대종사편의 이후가 된다. 다시 말해 계사는 전국 후기에 지속적으로 형성된 저술이며, 그 하한선은 전국 말년으로 판단할 수 있다.

 

전설속의 복희와 그 짝궁 여와의 모습이다. 아랫도리는 뱀이다. 이런 뱀들이 그사람들 선조인가?...... 농담이고........ 어느 문화권에서나 이런 전설은 존재한다. 특히나 그리스 신화에서는 반인 반수의 동물(?)들과 인간, 그리고 신들이 서로 영향을 끼치며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놓았다.           뱀...... 이 동물은 고대세계에서는 지혜의 상징이었다. 그러니 복희가 팔괘를 만들었다는 둥 하는 말 뻥이다!

 

 

 

 

 

  용어, 인물 해설

 

............... 위원숭衛元嵩: 남북조 시대 북주北周의 술수가術數家이다. 익주益州(지금의 사천四川) 성도成都 사람으로, 음양역산陰陽曆算에 정통하고 술수에 능했다고 한다. 예언을 잘하였고 불교를 믿었으며, 저서로는 원포元包 10권이 있었으나 현재는 5권만 전하는데, 원포는 귀장歸藏에 관한 주요저작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