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전 이야기/주역 이야기

수미니 2007. 12. 12. 16:16

 

 

 

 지난 시간동안 단 상 문언 계사 등이 형성된 시기를 시초점의 원칙(占筮體例)이나 사상적 연원 등과 관련해서 살펴보았다.   그 가운데 단의 형성 년대는 맹자보다 빠를 수 없으며, 전국시대 중기 이후인 맹자와 순자 사이라고 보여진다. 상의 하한선은 진한秦漢 교체기 이전으로 보아야 하며, 단을 보충하여 지어진 전국시대 후기의 작품으로 볼 수 있다. 또 문언이 형성된 시기의 하한을 생각해보면 내용적 연관성이 있는 여씨춘추 이전이라고 보여진다.  그리고 계사는 전국 후기에 지속적으로 형성된 저술이며, 그 하한선은 전국 말년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하였다. 결론적으로 위에서 언급한 단 상 문언 계사 등은 전국시대 중후기 이후, 여러 사람과 여러 가지 사상이 종합되어 오랜 기간동안 정리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간에는 마지막으로 설괘와 서괘, 그리고 잡괘의 형성에 대해 살펴보겠다. 

 

 

     3. 설괘, 서괘, 잡괘의 형성

 

 

설괘전說卦傳에 관해서 공영달 소疏(주역정의 공영달 소)에서는 “팔괘의 성질(德業)이 변화하는 것과 팔괘가 상징하는 자연현상(法象)의 작용을 설명하였다.(陳說八卦之德業變化及法象之所爲也.)”고 말했다. 공영달의 말처럼 설괘의 주된 내용은 팔괘의 괘상과 괘의를 해석하는 데 있다. 설괘의 전반 부분은 팔괘의 형성과 성질에 대해 이야기하였으며, 동시에 팔괘를 여덟 가지 자연현상을 상징한다고 여기고, 팔괘를 동남서북 방위에 배속시켰다. 후반부는 괘상과 괘의를 해설하였다. 그 해석은 춘추시대 이래의 서법 가운데 취상설取象說과 취의설取義說에 대한 총결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중에는 “도道?덕德에 화목 순응하며 의로움(義)에 맞게 다스리며(和順於道德而理於義)”, “성性, 명命의 이치에 순응한다(順性命之理)”라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서는 ‘도덕道德’이나 ‘성명性命’을 연결해서 읽고 있으므로 마찬가지로 전국시대 후기의 작품이다.

 

한대漢代 묘지 유적에서 출토된 백서본帛書本 계사에는 통행본 설괘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이 전傳 가운데 일부분은 한대 초기에 이미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백서帛書 64괘卦의 배열순서는 설괘의 건곤부모설乾坤父母說을 기초로 하였다.

 

설괘의 팔괘방위설八卦方位說에서는 진震이 만물을 탄생시키기에 동쪽에 배치하였고, 손巽은 만물을 깨끗이 정제하기에 동남쪽에 배치하였다. 리離는 만물을 빛나게 하기에 남쪽에 비치하였고, 곤坤은 만물을 길러내기에 서남쪽에 배치였으며(설괘에서는 곤坤에 대해서 분명하게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태兌는 만물을 기뻐하게 하기에 서쪽에 배치하고(설괘에서는 태兌에 대해서도 곤坤과 마찬가지로 분명하게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건乾은 음 양이 서로 부딪히도록 하기에 서북쪽에 배치하였다. 감坎은 만물을 수고롭게 하기에 북쪽에 배치하였으며, 간艮은 만물을 완성시키기에 동북쪽에 배치하였다. 설괘에서는 다시 “태兌는 딱 가을이다.(兌, 正秋也)”라고 하면서 사계절의 의미에 팔괘와 방향을 짝짓기도 하였다. 이처럼 사계절에 (동서남북) 사방을 짝짓는 것은 관자 사시四時편이나 예기 월령月令편에서 찾아볼 수 있고, 여씨춘추 십이기十二紀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설괘의 팔괘방위설은 전국시대 후기 음양오행학설陰陽五行學說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아래와 같은 팔괘방위는 기본적으로 설괘의 이론에서 기원한 것이다. 앞서 '주역에 대하여' 마지막 편에서 설명드렸듯이, 중앙에 있는 팔괘의 방위는 설괘의 팔괘 방위이며, 바깥에 있는 팔괘의 방위는 송대宋代에 처음 나온 팔괘의 방위이다.

 

 

 

서괘序卦는 통행본 주역의 64괘 배열순서에 대해 이론적으로 해설한 것이다. 그 가운데 건 곤 두 괘卦에 대해 취상설로 설명한 것을 제외하고는, 괘명卦名에 대한 해석은 대부분 취의설을 주장하였다. 예를 들자면 준屯을 가득함(盈)으로, 몽蒙을 어린 것(穉)으로, 수需를 음식의 도道로, 사師를 무리(衆)로, 이履를 예의(禮)로, 태泰를 통함(通)으로, 고蠱를 일(事)로, 감坎을 빠짐(陷)으로, 리離를 붙어있음(麗)으로, 항恒을 오래함(久)으로, 진晉을 나아감(進)으로, 진震을 움직임(動)으로, 간艮을 그침(止)으로, 손巽을 들어감(入)으로, 태兌를 기뻐함(悅) 등으로 풀이하였다.

 

서괘에서는 취의설에 의거하여, 건乾에서 미제未濟까지의 64괘가 하나의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어서, 뒤에 있는 괘卦는 앞의 괘卦가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서괘가 괘명卦名에 대해 해석할 때에는 대부분 단彖이나 상象의 의미를 따르고 있으므로, 당연히 단 상이 나온 이후에 저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회남자淮南子 무칭훈繆稱訓에서는 일찍이 “역易에서는 박剝이 끝내 다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복復으로 받았다고 말하였다.(易曰, 剝之不可遂盡也, 故受之以復.)”라고 했다. 그러므로 이 전傳은 한대 초기 이전에 이미 형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잡괘雜卦는 괘명 중에서 상반된 의미를 취하여 64괘가 바로 32가지의 대립되는 측면임을 설명하였다. 예를 들자면 건乾의 굳셈(剛)과 곤坤의 부드러움(柔), 비比의 즐거움(樂)과 사師의 근심함(憂), 혁革의 옛 것(故)과 정鼎의 새로움(新), 함咸의 신속히 함(速)과 항恒의 오래함(久), 박剝의 문드러짐(爛)과 복復의 돌아옴(反) 등이 있다. 이 전傳은 아마도 한대인의 손에서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