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전 이야기/주역 이야기

수미니 2007. 12. 14. 18:33

 

 

 

 

   제 2절. 역전의 철학적 문제들

 

 

    주역의 경經과 전傳은 초기에는 경학자(經師)들에 의해 개별적으로 전수되던 것이다.

 

    한서漢書  유림전儒林傳의 기록에 의하면 서한西漢의 경학자 비직費直이 주역을 연구할 때, 장구章句에 구애되지 않고 단, 상, 계사 등을 이용해서 상하上下 경經을 해설하였다고 한다. 또 위서魏書 고귀향공기高貴鄕公紀에서는 역박사易博士 순우준淳于俊의 말을 인용해서 “정현鄭玄은 단과 상을 경經 속에 넣어서, 배우는 이들로 하여금 찾아보는 번거로움을 줄여 쉽게 깨칠 수 있도록 하였다.(鄭氏合彖象於經, 欲使學者尋省易了也.)”라고 하였다. 이 주장에 따르면 전傳을 경經에 붙인 것은 한대 경학자 비직이나 정현으로부터 시작되었고 훗날 왕필王弼에게까지 전해졌던 것이다.

 

     현재 통행하고 있는 주역 판본에서 경經과 전傳을 이어서 엮은 것은 왕필이 전한 판본이다. 이런 편집 방식은 찾아서 읽기 편하기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찾아보는 번거로움을 줄여 쉽게 깨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편집 방식 역시 한 가지 문제점, 즉 경經을 전傳으로 풀이하여 경經과 전傳이 구분되지 않고, 경經과 전傳이 하나의 완정한 체계를 지니고 있어 복희씨와 문왕文王이 지은 주역의 의리義理는 공자가 지은 십익十翼 가운데 깃들어 있다는 생각을 동시에 수반하게 되었다. 이런 관념들은 전체 봉건시대 역학사易學史를 줄곧 지배하였다. 왜냐하면 전傳으로 경經을 풀이하여, 경문經文에 대한 주석이나 풀이 역시 오랜 학설들을 벗어던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크게 제사지내고 점쳐 물어봄이 이롭다.(元亨, 利貞)”의 ‘정貞’을 봉건시대의 역학가들은 줄곧 ‘정正’으로 풀이하였는데, 이것은 단과 상  두 전傳에서  ‘정貞’을 ‘정正’으로 보았고, (또한)  단과 상을 공자가 지었기에 (그 내용은) 당연히 정확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록 허신許이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정貞을  “점쳐서 묻는 것(卜問)”이라고 풀이하였지만 역대의 경학자들에게는 채택되지 않았다.

 

     전傳으로 경經을 풀이하는 가장 큰 폐단은 주역이 점치는데 사용된 책이라는 역사적 면모를 가려버린데 있다. 근래의 주역 연구에서는 마침내 유가儒家 경학자들의 정통관념을 깨고 경經과 전傳을 나누어서 경經을 경經 자체로 풀이하고 전傳을 전傳 자체로 풀이하여, 주역에 대한 주해注解에 새로운 공헌을 하였다.

 

 

역전易傳과 역경易經은 서로 관계가 있으면서도 또한 서로 구별되는 것이다. 전傳은 경經에 대한 해석이지만, 그 해석은 역전의 저자가 근거도 없이 날조한 것이 아니라 전국 이래 사회의 정치 문화사상 발전으로 이루어진 역사적 산물이다. 역경과 비교할 때 역전이 가지고 있는 현저한 특징은 고대에 점치는데 사용되었던 책을 철학화한 것에 있다. 이런 역풀이 경향은 춘추시대에 시작되었으며, 전국시대에 이르러서는 철학유파의 형성과 발전에 수반되어 마침내 역전을 대표로하는 역풀이 저작들이 형성되었다. 역전의 경經풀이를 서법 규칙에 대한 논술과 괘상 및 괘효사에 대한 해석에 대해 말하자면 모두 철학적 측면에서 개괄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가儒家의 윤리관념과 도가道家 및 음양오행가陰陽五行家의 천도관天道觀은 역전이 역경을 풀이함에 있어서 지도적 사상이 되었다.

 

역전은 사실상 철학 저작으로서, 자신만의 이론체계를 가지고 있어서 전국시대 하나의 거대한 철학유파가 되었으며, 역학사 및 철학사에 있어서 모두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대漢代 이래로 형성된 여러 역풀이 철학유파들은 모두가 역전 중에서 그들의 사상의 연원을 찾을 수 있었다. 역전의 저자가 비록 유가에 속하기는 하지만, 그 관점은 결코 공자와 맹자를 대표로하는 유가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다. 이것은 고대 유가의 또 다른 위대한 스승인 순자와 마찬가지인데, 역전의 철학사상은 전국시대 철학의 발전적 면모를 반영하고 있어서, 결코 공맹孔孟의 정통파에만 속하는 것은 아니다. 역전의 사상은 모두 공자에게 귀속된다는 것은 한대의 공자를 존숭하는 태도(尊孔論)와 같은 편견이 만들어낸 환상이다.

 

솔직히 주역은 맹자 아찌 보다는 순자 아저씨가 훨씬 관심을 갖고 연구했던거 같다. 근데 유가 정통주의자들은 맹자를 정통으로 두기위해 애써 맹자와 주역과의 관계도 찾아내려하고, 순자의 이야기는 무시하려고 많이 노력한다........ 내말은 맹자가 주역, 특히나 역학과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앞서도 이야기 했듯이 맹자의 시중설時中說이나 중도관中道觀은 역전의 역풀이 규칙(解易體例)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맹자가 먼저 주역을 연구했던 것이 아니라, 맹자의 후학들이 맹자의 사상을 통해 주역을 바라본 것이 역전의 한 부분이 되었다는 말이다.  이걸 거꾸로 말하니 맹자가 열씨미 주역을 공부한게 되버리는 것이다.  이런게 역사 해석을 거꾸로 하는 거다.... 아래는 순자.......

 

 

 

역전은 비록 철학 저작이지만 그것은 결국 주역의 서법을 해석한 것이며, 또한 점치는 일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역전 가운데는 두 가지 종류의 언어가 존재하는데, 한 가지는 점치는 일과 관련된 언어이며, 다른 한 가지는 철학적 언어이다. 어떤 문구는 서법만을 해석하고 있고, 어떤 문구는 저자가 그것을 통하여 자신의 철학적 관점을 논술하고 있으며, 어떤 문구에는 서법과 철학적 관점 두 가지가 겸비되어있다. 그러므로 역전의 철학적 관점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 방면을 모두 살펴 보아야 한다.

 

역학사를 살펴보면 역전에 대한 해석에도 두 가지 경향이 존재하고 있다. 그 가운데 한 경향은 서법(시초점 치는 법)의 각도에서 그 안에 있는 철학적 문제들을 해석하데 치우쳐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계사에서는 “정기精氣는 사물이 되고 떠다니는 혼백(遊魂)은 변화하는 까닭에 귀신鬼神의 정황을 알 수 있는 것이다.(精氣爲物, 游魂爲變, 是故知鬼神之情狀.)”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정기귀신설精氣鬼神說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동한東漢의 경학자 정현은 오히려 서법 중의 7 8 수數로 ‘정기精氣는 사물이 된다.(精氣爲物)’를 해석하고, 9 6 수數로 ‘떠다니는 혼백(遊魂)은 변화한다.(游魂爲變)’를 해석하였다. 이런 역풀이 경향은 훗날 상수학파象數學派라고 불리게 된다.

 

소옹(강절)은 대표적 상수학자이다. 이 사람이 너무 상수학으로 유명하다보니, 훗날 매화역수라는 점치는 책이 이 양반 이름으로 나오게 되었다. 물론 현재는 이책이 위작僞作이라고 대부분의 학자들이 생각한다.

 

 

 

또 다른 한 가지 경향은 철학적 이치의 각도에서 그 안에 있는 서법을 해석하는데 치우쳐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계사에서, “역易에 태극이 있는데, 이것이 양의兩儀를 탄생시켰다.(易有太極, 是生兩儀)”라고 말하였는데, 이것의 본래 의미는 시초를 세거나(설시蓍) 혹은 괘卦를 긋는 과정이며, 이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서법의 문제이다. 그렇지만 훗날 수많은 역학가들과 철학가들은 이것을 우주의 형성 과정으로 해석하였고 철학 이론으로 변화시켰다.

 

이런 두 가지 경향은 모두 편면적인 것이다. 근래의 역전 연구들은 경經과 전傳을 나누어 바라볼 것을 주장하고 있는데, 그 대체적인 방향은 정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전 중의 문제들을 구별하여 바라보지 않고 모두 철학 문제로 바라봄으로써, 역전을 주역이나 그 중의 서법과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나, 혹은 서법을 탈피하여 그 철학적 이치를 추상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혹은 본래 서법을 이야기한 문제를 철학적 문제라고 주장하는 것 등은 다시 역전이 철학사에서 차지하는 지위를 지나치게 높이 끌어올리려했다는 평가를 면하기 힘들다.

 

그치만 이런 뻥들이 사상이나 문화 발전의 기틀이 되었다.  서법(점치는 법)을 철학으로 해석했기에 오늘날 주역이 그마만큼 대접받는 거다. 

 

다음부터는 서법과 전국시대 철학의 발전 상황을 결합하여 역전 중의 철학적 문제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옛날 사람들은 이 책이 위에 있는 소강절 아저씨가 지었다고 생각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