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스님 _ 제32회 보향합성원 (4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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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법문/정현스님_불설아미타경

2012. 9. 2.

  방송 보기: 불교TV

 

그러니까 지가 성질 내는 것은 어디선가 자기 내면에서 일어난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조건적이어서 생긴다는 뜻입니다. 무던히 신랑이 나빠 보이 거나 미워 보일 때가 있거든. 우리 스님들끼리 가족들끼리 살잖아요. 갑자기 가만히 미워 보이는 생각이 일어난다는 거에요. 왜 그런 줄 아세요? 인연이기 때문에. 과거 전세 인연이기 때문에 부부로 살고, 자식으로 살고, 부모로 살고, 사형 사제로 살고, 은사로 살고, 장자로 살고. 다 그렇게 세상에 살아요. 직장에 안 살면은 괴로운 일이 생길 일이 있어요? 없어요? 일어났기 때문에 상사한테 고역스러운 말도 듣고, 괴로운 일도 생기잖아요. 이게 다 태어난 인연이거든요. 그런데 이거를 현실 그대로를 괴롭다. 라고 받아들이는 태도는 전체 불교인들이 이제 그만 그쳐야 되요.

 

조금씩 조금씩 우리를 변화시켜야 되요. 우리를 조금조금씩 나아지게 하셔야 되요. 그렇게 하는 방법을 깊이 들여다보면은, 높은 의미에서 보면, 우리가 사는 것은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 자신 안에는 무자성이에요. 나를 내세울 만한 그 어떠한 것도 실체적으로 없다고요. 화내는 자기가 있을지언정, 그게 실제로 있지 않아요. 이게 실제로 있지 않은데 그걸 자꾸 거기에 허깨비처럼 자꾸 매달려가지고,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불행하고 그 불편한 것이 얼마나 심해요. 한집에 같이 살면서 마음이 등지고 살 때 얼마나 불안하고 불편하고 힘들어요. 이거는 70이 되도 80이 되도 해결이 안 돼요. 그거를 치유하는 방법이 오직 부처님의 가호지묘력이고, 그 가피지묘력을 우리한테 실천해 주는 것이 불설아미타경에서 설명하고 있어요.

 

왜 그렇게 질문하느냐? 자기 자신을 잘 살펴보면 되돌아 살펴보면은 그 안에 보배로운 것이 있다는 거에요. 그 얘기는 뭐죠? 풍요로운 것이 있다는 뜻입니다. 넉넉한 것이 거기 있다는 뜻입니다. 사랑스러운 것이 거기에 포함돼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그걸 저버리지 않는 거죠. 그래서 본질적으로는 세속에 사는 사람이라도 다시 말해서 머리 기르고, 세상에 일하고 사는 직장이나 노동이나 모든 분야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도 다 공통적으로 이 생명 그 자체에는 빛으로 가득할 뿐만 아니라, 자비로움으로 충만하고. 또 뭐죠? 평온함으로 가득 차 있는 사실을 발견해 가는 것이 불교수행의 요체입니다.

 

고게 잘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모여서 우리는 同似習동사습하고, 같이 모여서 같이 기도하고, 같이 염불함으로 해서 그런 장애로움을 걷어서 넘어가는 거죠. 그래서 염불을 잘하셔야 돼.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이렇게 부르시고. 또는 관세음보살 수행하시는 분은 관세음보살~ 하시면 되고, 지장보살님 하시는 분은 지장보살님 하시면 됩니다. 여기는 저~ 근본 아미타, 근본 염불당이 있는 염불 근본 도량이거든요. 그래서 이 도량에서는 할 수만 있으면 모든 것을 다 아미타불로 통일시킵니다. 나무아미타불의 위대한 힘이 있습니다. 이것을 삶속에서 이것이 하나 둘씩, 하나 둘씩. 기도로 조금 조금씩 옮겨가면, 반드시 우리들의 삶, 생활 속에서 광명된 모습을 우리가 보게 되고 느끼게 돼요. 그걸 확인하게 됩니다. 하나씩. 그렇게 찾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잘 살펴보면은 마음의 본질은 정말로 이해하기 어렵고, 찾아내기도 어렵고, 깨우치기도 어렵고, 만나지기도 어려워요. 왜 그렇게 안 되는가? 안 좋은 곳에 자꾸 탐착해 있는 거에요. 자식이 좀 잘못됐으면은 산이 다 무너지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아. 하다못해 가지나무 집에 키우잖아요. 그게 하나 말라지면 그것도 온통 마음이 쌓여서 무너져 가거든요. 그런데 그걸 받아들이셔야 돼. 그 얘기는 가지가 좀 자라서 좀 이게 여기저기 가지 충얼충얼 열리면은 나한테 마음에 풍요로움을 주잖아요. 그 얘기는 결국 자기한테 이득이 생긴다라는 뜻에서 기쁨이 생기거든요. 그러니까 안 되는 곳에도 마음의 넉넉함을 자비로움을 우리가 실천해서 그 실천이 지금 현실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움직여지는 것. 이게 아미타불 기도 수행하는 행자는, 신행자는 그렇게 해나가면 너무 좋은 일 중의 하나죠. 그죠.

 

오늘 공양 두 그릇 드세요. 여기 좀 보세요. 마음의 본질은 알기가 어렵습니다. 어려운데 그거를 드러내면 돼요. 자비로움을 먼저 드러내면 돼요. 나한테 빛이 있음을, 밝음이 있음을, 자기 스스로 인정하고, 자기 신뢰하고, 그렇게 믿고, 옮기는 거에요.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하나씩 움직여 가시면 거기에는 놀라운 자기 확신이 거기서 하나씩 하나씩 이게 들어오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살펴보면은 어떤 것에도, 그러니까 과거에 일어났던 일에 걱정하고 근심하지 말아야 됩니다. 지나간 것에 대해서 걱정하고 근심하지 않아야 된다. 모든 큰 스님들께서 이렇게 설명하고 계세요. 모든 경전도 그렇게 설명하고 계세요.

 

지금까지 지나간 것에 대해서 잘못된 부분들이 있거든 다 용서받을 것이 있거든. 다 용서해드리고. 내가 용서해 드릴께 있으면 다 내가 용서해 드리니 감사합니다. 이렇게. 당신을 용서해 드리게 됐으니 감사합니다. 그러시죠. 그죠? 하여튼 그렇다 그러고요. 그래서 지나간 것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는데, 앞으로에 대해서 미리 예측하지 말아요. 좋은 것만 예측하고, 좋지 않은 것은 절대 예측하면 안 됩니다. 이래가지고 이렇게 법문을 하니까. 불자님들이 안 와. 예측하셔야 돼. 예측을 하되 좋은 인상, 좋은 안생을 들여다보는 좋은 예측을 하되, 앞으로 내가 감자 농사가 안될까? 이러지 말고. 우리 아들은 떨어지지 않을까? 이런 생각 하지 말고, 떨어지는 건 아직 몇 달 후니까. 몇 달까지 만이라도 기쁘게 좀 지내세요.

 

~ 저 건봉사 부처님 전에 와서 기도하니까 우리 아들은 잘 붙겠지. 그 얼마나 좋아요. 그런 마음으로 진행하시는 거에요. 이제 앞으로 그러면 기도는 어떻게 좀 해줘야 되느냐? 라고 정리가 되잖아요. 요거에 대해서 정리를 나무아미타불의 기도를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거에요. 스님이 저랬을까? 저게 나한테 뭣 짓을 했지? 이 생각하는 거에요. 지나가다가 눈빛만 안 마주치면 스님이 나 싫어해. 이러고 다니는데. 노보살님들 큰일이야. 그런데 그런 일 절대 없거든요. 그런데 끊임없이 그 생각에 대해서 매달려 있는 게 바보 같은 짓이야.

 

내가 조금 탁~ 지나가면서 불쾌감이 생겨요. 나한테 서운한 생각이 딱 일어나거든요. 원망하는 생각이 한 번씩 생겨요. 저도 똑같아요. 저도. 그러나 저는 부처님 법을 세우고, 그 진리를 전달하고, 그것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전들 어떻게 망상이 안 생기고, 어떻게 마음의 흔들림이 어떻게 안 생기겠어요. 그러나 끊임없이 요것을 반복적으로 해가는 과정을 우리는 기도라고 말하고, 빠지지 않고 오셔서 공부하고 수행하시려고 노력을 좀 해 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잘 진행해가려면, 기도를 잘하시려면, 아까 좀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지나간 과거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지 말아야 되요. 그러고 현재 지금 내가 걱정근심 끌어안고 있는 것처럼 바보가 없어. 그냥 놓아버려요. 그냥 놔두면 저절로 좋아집니다.

 

자기 할 일을 해야 돼. 내가 그냥 놓으라고 그러니까 직장 놓는 사람도 있어. ~ 숟가락 놓는 사람과 똑같애. 직장 놓으면 어떻게 먹고 살라고. 그건 아니죠. 그죠. 마음으로 저 자기를 불쾌하고, 자기를 힘들게 하고, 억울하게 하는 그런 생각들을 자기가 정리하자는 거죠. 놓자는 거죠. 쓸데없는 것을 매달려가지고 힘들 필요가 있나요? 그게 없죠. 그렇게 놓아버리기를 원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쉬려고 하려면 생각을 좀 쉬어야 되는데 쉬어지지 않거든요. 그래서 불편함이 딱 생기면 마음속으로 절 보셔야 돼. 마음속으로 나무아미타불~ 따라 하겠습니다. 나무아미타불~ 이렇게 한번 딱 부르고.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성질이 올라오면은 속으로 한 번만 참아 봐요. 나무아미타불~^^

 

이렇게 하고 꿀꺽 삼키고 한 번씩 지나가 봐요. 요게 훈련이 이루어지면은 자기안의 내면이 저 호수의 맑은 호수의 평편함을 스스로 때때로 느껴요. 그러면 저한테 물어요. 스님은 평생 그렇게 평온할 수 있습니까? 안 그래요. 똑같이 성질내고, 똑같이 화내고 똑같이 발칵발칵 뜁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너무 많이 하지 말고 돌이켜서 반성하고 기도 잘 하는 자기가 돌아 서면은 부처님 가르침은 언제든지 자기를 복되게, 복된 인생으로 인도해 준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해서 오늘부터 나무아미타불을 부르세요. 나무아미타불은 어떤 불자는 무조건 하셔야 돼. 불자는 하루에 108번 정도는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부르면서 속으로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셔야 돼.

 

그래서 사람이 기도를 어떻게 할까? 자꾸 근심하고 하거든요. 그래서 어떤 사람 두 시간 하고 어떤 사람은 만 번을 하라. 이게 정한 것은 짧은 시간에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 번을 하려면 가다보면은 나중에는 지겨워지거든. 하기 싫어져요. 이게 다 경험 안 해본 사람은 모르죠. 해본 사람은 다 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하루에 5, 10분 하시잖아요. 그게 510분 지나가고, 퍼뜩 지나가면 좀 늘리세요. 그래서 한 시간 가잖아요.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을 이렇게 염을 딱~ 세우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하시잖아요. 그래서 빨리 지나가면 50분이 언제 지나갔는지 몰라요. 그러면 공부가 여순한 거에요. 이게 순실하다 이러거든요. 이게 빨리 지나가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나무아미타불 부르는 것이 빨리 잘 지나가잖아. 그죠? 그러면 기도가 잘 되는 겁니다.

 

그런데 50분 꼭 스님이 채우라 했다. 그러니까, 악을 악을 하면 힘들잖아요. 그러면 이게 공부가 기도가 안 돼가는 과정입니다. 안 돼가는 과정이에요. 그러니까 그때 차라리 좀 줄이세요. 하루에 30분을 줄이든지 20분을 줄이든지 줄이세요. 줄여서 또 활력 있게 좀 하세요. 그래서 자꾸 늘려가고 줄여가는 요런 탄력성을 좀 가질 필요가 있으세요. 그러시죠. 그죠? 그래서 요걸 자기 안에 나무아미타불에 대한 믿음이 자기 안에 들어서면. 다시 말해서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면 나한테 광명세계가 열린다는 뜻입니다. 밝아진다는 거에요. 인생이. 그리고 내가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면 내가 자비로워진다는 거에요. 평온해져 간다는 거에요. 성질 내고 싸우고 덤비는 걸 좀 줄이게 됩니다.

 

관세음을 부르거나 지장보살을 불러도 똑같은 위신력은 같이 작용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 법당은 나무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기도를 하니까. 건봉사는. 나무아미타불 중심으로 기도하니까. 여기 나오시는 불자님들은 꼭 나무아미타불을 원불로 삼으시고, 나무아미타불을 발원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순일하게, 옛날 말로 순일하게 조금씩 자기에게 맞게끔 하루에 5분이라도 정성을 다해서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면, 우리가 삶 속에서 생활 속에서 광명의 세계가 하나씩 깃들어오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들의 육체 자체가 광명 자체잖아요. 이 자체가 자비로움이거든요. 이 자체가 평온이거든요. 요거를 믿는 거에요. 자기 가슴으로 확인하시는 거에요.

 

이렇게 오늘 스님이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내용에 대한 것을 이 생각을 자기 생활 속에서 심어요. 심으면은 좋은 행동을 얻게 돼요. 그러면 성질 부리는 자기를 좀 줄여가는 자기를 볼 수가 있습니다. 자기가 변해가는 걸 반드시 볼 수 있어요. 생각을 이걸 좀 바꾸셔야 돼. 자기 가치가 수준이 낮아지면은 자기 언어가 그지 같은 짓을 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자기 수준을 조금 맡기세요. 조금씩 바뀌는 거에요. 요기 식구들 말고 지금. 여기 보세요. 그래서 생각을 자기 안에 자기 마음 바탕 속에, 자기 생활 속에 마음 바탕이거든요. 그 바탕에 심으시잖아요. 심으면 행동을 거두게 돼요. 뭐요? 품성이 좋아집니다. 행동거지가 좋아집니다. 첫째.

 

두 번째 행동을 하나둘씩 심게 돼요. 그 행동을 심는다는 것은 결국 마음에 심는 건데, 이 행동이 지금 와서 기도하는 요게 행동입니다. 절하는 게 요게 행동입니다. 나무아미타불 부르는 게 요게 행동입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자기가 표현하고 있을 때 요게 표현이고 요게 언어에요. 그래서 자기를 스스로에게 감사한 것을 자기가 들어내게 됩니다. 그러면 이렇게 공부를 하고 기도할 필요가 있잖아요. 이렇게 하면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느냐 하면 좋은 습관을 얻습니다. 부처가 되는 습관을 얻습니다. 부자가 되는 습관을 얻습니다. 지혜를 얻는 습관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다 가난하게 살고 불행하게 살고 불안한 인생이 되는 것은 다 자기가 삶에 대한 습관을 엉뚱한 짓을 하고 있기 때문에 좋은 습관이 우리에게 생기지 아니하게 되는 거거든요. 다시 보세요. 다시 보세요. 하나 더.

 

세 번째 습관을 자기 마음에 생활 속에 심으면 반드시 이 사람의 품성을 거두게 해줘요. 답이 생겨요. 콩을 심으면 콩을 거두는 것이 세상의 법칙입니다. 자기가 만들어서 자기 인생을 만들지 어느 누구도 만들지 않습니다. 스승이 부모가 그 누구 탓할 거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자기가 자기 삶을 만들어 내거든요. 그래서 습관을 심으면 좋은 습관을 자기에게 심어요. 그리고 그걸 심으면 자기의 품성을, 부처님의 품성이 드러나기 시작해요. 아까 말한 그 품성은 본질적으로 변하지 아니하니까. 언제든지 나한테 빛을 줘요. 광명의 세계가 나한테 드러나게 하고 자비로워지고 또 뭐죠? 평안한 삶에 대한 편안함을 자기 스스로 가슴 안에 느끼게 됩니다. 이런 수준이 높아지고 마음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불심을 자꾸 자기에게 하나둘씩 하나둘씩 채워서 배우시게 되잖아요. 이렇게 배우시게 되면은 그 품성을 다른 사람하고 나누는 거에요.

 

절에 인도하시고, 힘들어 억울하고 분한 이런 이웃들을 한 분씩 인도해서 광명으로 같이 이끌어주고 자비로운 세계로 이끌어주는 것이 요게 품성을 심는 거에요. 그렇죠. 그죠. 이 품성을 믿음을 하나둘씩, 이 보시를 하나둘씩 나누는 마음을 가지면, 절 보세요. 반드시 금생에서, 금생에서 운명을 거두게 돼요. 무슨 운명이요? 광명이 가득한 운명이 자기한테 작용하게 됩니다. 발음이 막 센다. 작똥이 아니고 작동. 작용하고 있어요. 이런 부분들을 우리 삶 속에 요거를 체결을 갖지 않으면 평생을 살아도 자기 틀 속에서 못 벗어나서 그 꼬락서니를 못 벗어나는 거에요. 그러니까 부처님의 마음을 믿으셔야 돼. 내가 무엇을 심은 것은 자기가 거둬들이니까 누구를 탓하고 불평불만 할 거 하나도 없어. 세상에.

 

이 법당에 오셔서 염불하고 기도하는 스님뿐만 아니라, 불자님들도 와서 누구든지 단 5분 만이라고 앉아서 기도하는 사람은 그 공덕력의 위신력을 가져가신다는 거에요. 이 법당은요, 저 뭐죠? 하늘의 봉황이 여기 사는 터에요. 불자님들이 깊이 감사하고, 깊이 받아들이고, 깊이 참회하셔야 될 도량 중의 하나입니다. 기도처로는 이보다 더 좋은 도량처가 없습니다. 더불어 금강산에 있는 사찰이고, 또 건봉사 불자님들은 대단히 복 있고 감사한 겁니다. 저와 우리 기도하시는 우리 대중 스님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할 뿐만 아니라. 이 법당에 이렇게 소임자로 살게 되는 것도 크게 고맙게 생각을 합니다. 참여해 주신 불자님께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