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스님 _ 제35회 여인성불원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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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법문/정현스님_불설아미타경

2012. 9. 23.

  방송 보기: 불교TV

 

잘들 지내셨습니까? 언제든지 마음속으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한 . 감사합니다.’ 라고 생각하고 생활해 움직이는 사람은 다 부처님의 복력이 동행해서 하는 일마다 원 성취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얼굴 들어 저 좀 잠깐만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삶에 대해서 늘 부족하고 모자라고 궁급하다. 그러니까 결핍 돼 있다라고 표현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참 많거든요. 그런데 불교식 개념은 이미 갖추어져 있다는 거에요. 이미 풍요롭고 이미 가능성이 있고 이미 가지고 있다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 불교적 관념이고 정비 정돈식의 개념이라고 봐도 다르지 않습니다. 잘 들리시나요? 으흠.

 

그래서 이제 우리가 불행해지는 원인이라든가, 또 사람이 삶에 대한 것들이 힘들어지거나 또는 괴로워지는 원인이 뭐냐 그러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그 불편함을 그 불편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때, 그 불편함을 고마우므로 바꿔서 승화시킬 줄 아는 사람이 되면, 그게 대승불교인입니다. 그게 기도인이고 그게 수행자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일반 불자님들께서도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행동으로 옮길 줄 알면. 그래서 그런 표현을 자기 입에서 사용하는 말 중의 하나가 그렇습니다.’ 이렇게 표현하는 거에요. ‘네 그렇습니다.’ 그 얘기는 뭐냐 하면 이미 내가 가지고 있다. 이렇게 표현하는 거에요. 부족함이 없는 거에요.

 

모자람이 자기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풍요로운 것이 자기를 지배하는 삶에 대한 태도를 우리가 조금씩 바꾸어 갈 필요가 있죠. 그죠? 그런 의미로 보면 두 가지로 딱 정리를 하셔야 되요. [모든 것은 이미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렇게 표현하고 이렇게 생각하고. 그렇죠. 그죠. 이렇게 행동으로 옮기는 삶에 대한 모든 사람들에게는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마땅히 그렇게 그렇습니다. 하는 일이 생겨요. 좋은 일은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방향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밝은 쪽에 그 머리를 두시고 진행을 해 가셔야 된다. 요렇게 아주 쉽게 쉽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재 내용 불설아미타경에 24쪽에 사리불이여. 이렇게 되죠. 그죠? 여기 보시면 뭐라고 나와 있느냐 하면

 

北方世界북방세계 有焰肩佛유염견불이라고 그러시거든요. 이건 부처님의 말씀이거든요. 그러니까 유염견불이라고 하는 발음이 잘 안 된다. 염견불이라고 하는 것은 책임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삶의 책임. 생활에 책임. 자기 말에 대한 책임. 정직에 대한 책임. 자기 신뢰에 대한 책임을 갖는 것을 염견불이다. 이렇게 표현합니다. 흡사 이런 말은 뭐냐 하면 견장을 찼다. 이런 말과 같은 얘기죠. 그런 책임과 의무가 나한테 있다라는 뜻입니다. 그렇죠. 그죠. 그다음에 最勝音佛최승음불이 거든요. 아주 중요한 부처님의 음성 중의 하나가 모든 것은 다 뭐죠? 이겨간다는 뜻입니다. 이겨간다는 말뜻 안에는 뭐죠?

 

소리가 있다. 이런 뜻이거든요. 소리 중에 가장 위대한 것이 뭐냐 하면 자기 언어의 발성이라고 하는 것처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소리가 없으면 그렇죠. 소리가 없으니까 문화도 없고 역사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역사가 생기고, 문화가 생기고, 생활이 생기고 삶이 생기죠. 그런데 그게 복잡해지면서부터 더 많이 고통을 수반하는 경우도 있죠. 절 좀 보세요. 저쪽에 시설에 좀 계신 고초를 받고 계신 분들 계시잖아. 그죠? 그런 분들은 이른바 정신병원이라고 표현합니다. 정신병원에 가셔서 치료받으시는 분들 절대 나쁜 건 아니거든요. 그럼 머리가 쉬운 말로 이렇게 표현해요. 머리가 좀 이상해지면은 괴로운 것도 없다. 그러잖아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제가 소쩍새 마을이라든가, 다른데 시설에 다 각자 이름을 대서 말씀을 드리긴 죄송스러워서 다 말씀은 못 드리는데. 저 세상의 바보라도 괴로움이 있어요. 거기 슬픔이 있어요. 아픔이 있어요. 우리가 들여다보면 아주 하찮은 거지만, 아이큐 90이 넘어서는 사람이 들여다보면은 저건 도대체 걱정이 아닌 것을 울고불고하거든요. 그러니까 미묘한 것이 있어요. 우리는 아이큐가 80, 90이 넘고 100이 넘고 그런다 하더라도, 거기는 뭐가 쫓아 다녀요? 불행이 쫓아다니고 걱정근심이 쫓아다니고 아픔이 거기 쫓아다니거든요. 머리가 아무리 좋아도 고독스럽고요, 머리가 아무리 좋아도 슬퍼요. 아무리 자기가 뛰어난 머리 생성을 가지고 있어도 마음에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고통을 다 물리치고 살 수는 없는 거에요.

 

그런데 그런 의미로 이 부처님은 요걸 불설아미타경에 설명하기를 뭐라고 했느냐하면 그 음성을 들으라 그러거든요. 그 음성을 듣는 것은 불법을 잘 듣는 것도 부처님의 음성을 듣는 거에요. 그런데 그 음성을 내가 다시 거꾸로 좋은 것으로 환원시켜서. 딱 두 가지에요. 절 좀 보셔야 돼요. 요 두 가지는 무슨 내용으로 설명 말씀드릴 수 있느냐 그러면, 이거는 뭐냐 그러면 우리가 사는 생활 가운데에서 이건 전부 세상을 이긴다는 뜻이거든요. 이건 이긴다는 뜻이죠. 最勝최승. 그다음 뭐라고 말해요? 音佛음불이다. 이렇게 표현해요. 그렇죠. 그죠. 부처는 곧 나이다 거든요. 나의 말이거든요. 이 말로서 이긴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이겨요? 최상의 것을. 최상의 것을 이긴다에요.

 

뭐로 이겨요? 말로써. 무슨 말로 이겨요? 부처님의 말씀으로 이 세상을 이긴다는 뜻입니다. 그게 불교의 요체거든요. 그런데 이게 불교를 받아들이고, 기도할 줄 알고, 법문을 들을 줄 알고, 수행이라고 하는 명상을 하든지 참선을 하든지 또 내지는 기도를 하든지 이런 방식을 통해서 그게 결국 내가 부처님을 쳐다보고 있고, 부처님처럼 편안하고, 온안하고, 원만하고 완전한 자기 상태를 계속 많이 그것을 오랫동안 지속하면 그게 다 부처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그게 잘 안 되잖아요. 아침에는 조건이 괜찮았으면 희잉~ 웃고, 점심때 누가 시비를 걸면은 열이 여기저기서 터져요. 그러니까 안 되죠. 그죠.

 

그런데 이 부처님이 곧 자기 자신이 부처님이라는 뜻입니다. 누가요? 내가 부처를 보고 있으니까 내가 부처에요. 내가 부처님 말씀을 하게 되면 내가 부처님이에요. 부처님처럼 원만하고 완전한 자기를 살면은 곧 자기 자신이 부처의 모습을 갖고 사는 것과 꼭 다르지 않습니다. 불상은 어디 따로 있고 부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들여다보는 자는 곧 뭐죠? 나 자신은 진리에요. 그렇죠. 그죠. 그래서 자기 자신한테 뭘 집어넣는다고 끊임없이 말씀을 드리죠? 그죠? 광명을 집어넣는 거에요. 밝음을. 그렇죠. 그죠. 이 밝음을 집어넣는 거에요. 자기 삶, 공간 공간 속에 다 밝음을 집어넣는 거에요. 이 밝음이라고 하는 것은 대긍정이거든요. 부처님의 세계는 대 긍정의 세계에요.

 

그래서 이것을 뭐라고 설명 드리냐 하면 밝음의 세계다. 이렇게 표현하잖아요. 밝음의 세계에요. 그럼 어떻게 한다? 부처님을 들여다보고 부처님의 소리를 내고 부처님의 음성을 들어요. 그죠. 이 소리는 내가 내기도 하지만 듣기도 하죠. 그죠. 그렇죠. 그죠. 고약한 것이 들리면은 부처님처럼 생각을 해서 바꾸어서 내보내는 거에요. 미움이 있다면 여기에 내가 미움이라는 것이 세상에 생겼어요. 자기 있어요. 그러면 부처님답게 이것을 정화시키는 거에요. 뭐로 통해요? 부처님 말로서 바꾸어서 자기표현으로 조금만 바꾸어 주면은 여기에는 위대한 뭐가 생겨요? 그죠? 이기는 힘이 생겨요. 자기 자신을 뭐라고 말해요? 自他자타라고 말하죠.

 

자기 자신을 자기 스스로도 이기고 함께하는 모든 생명체에 대해서 이김을 갖춰주시게 되죠. 그렇죠. 그죠. 하여튼 그렇다 그러고. ‘네 그렇습니다.’^^ 훈련이 안 되면 어려워요. 이게 이겨가는 힘이 생겨요. 最勝音佛최승음불이라 그러잖아요. 오늘 다른 거 외우지 말고 요것만 외워도 돼요. 最勝音佛최승음불이야. 내가 하는 말은 곧 세상을 이기는 힘이에요. 어떻게? 최상적으로. 그런 곧 이 얘기는 무슨 얘기에요. 그냥 대충 배워서 이렇게 어디서 계란을 몇 개 세는 것처럼, 계란이 어떻게 자라는 거, 이런 걸 배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최상의 삶을 살기를 원하는 거에요. 자기 자신한테 최상의 삶을. 그걸 맞춰 주는 거에요. 가족에게 맞춰주세요. 그러고 자기 자신에게도 만족을 시키세요.

 

그러니까 뭐부터 바꿔야 되요? 자기 말부터 바꿔야 되요. 자기 오늘 분명히 반듯이 교정받으셔야 돼. 추하고 탁한 언어 사용을 금방 그치셔야 돼. 우리 사바세계는요. 동서남북이 있는데, 그중에 북방세계가 있어요. 그건 뭐냐 하면 중심세계라는 뜻이거든요. 有焰肩佛유염견불이거든요. 견불이라고 하는 것은 어깨를 얘기하는 거거든요. . 견장. 그러거든요. 으음. 요게 책임이 따라다닌다는 거에요. 안 믿으시지만, 일반적으로는 믿어지지 않거든요. 자기 언어가 자기 현실이라는 거를 우리가 아주 뼛속에 이걸 새기셔야 되요. 절대 비난하는 말 하지 말아야 돼. 웬만하면, 비판하는 짓 하지 말아야 돼.

 

조언도 자기 욕구를 해소하는 쪽에서 조언하고 있잖아요. 그러지 말아야 돼요. 자기 박복한 짓을 자꾸 만드는 거와 똑같아요. 그래서 이게 들여다보면 최승음불이거든요. 음불. 내 음성은 곧 부처님의 음성이에요. 내 음성은 저 불성부처님의 생명이에요. 내 말은 곧 현실로 나타나요. 기가 막힐 일이 생깁니다. 염불이고. 그다음에 뭐죠? 難沮佛난저불이라고 하는 것이 있어요. 그러면 뭐가요? 어려운 이건 어렵다는 뜻이거든요. 難沮佛난저불이라는게 있어요. 어려운 부처도 세상에 있다는 거에요. 그 모양새가 가난할 수밖에 없고, 또 괴로울 수밖에 없고, 그런 부처가 있다는 거에요. 그런 상태가 있어도 이것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은 부처님의 음성이야말로 그것을 치유할 수 있고, 순화시킬 수 있고, 정화시킬 수 있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화엄경의 말씀에서는 뭐라고 표현했냐하면 자기 자신의 신뢰에 대한 믿음, 파랑새에 대한 믿음이 있으셔야 돼. 화엄경의 말씀에 보면 이런 게 있어요. 산에 불이 났어. 그래서 그 좋은 불탑이 다 타게 됐어. 파랑새 한 마리가 파랑새 아시죠? 그죠? 동화에도 무척 나오죠. 그 경전의 것이 전부 동화로 변해서 나타난 비유설이 거의 많은 거거든요. 그런데 파랑새가 보니까 너무 안타까워서 냇가에 가서 호수 같은데 가서 물을 적셔가지고 그 위의 불탑에 불을 끄기 시작해요. 다른 새들이 물어요. 비난하는 거야. 도대체 저거를 헬기도 동원시키지 않고 어떻게 새 한 마리가 그거를 큰 불난 것을 어떻게 끌 수 있느냐. 그랬더니.

 

나는 그 절에서 은혜를 받았고, 거기서 곡식을 먹었고, 밥을 얻어먹고 살았는데, 거기에 불탑에 불이 나는 거를 어떻게 끄지 않겠는가?” 그래서 자기가 죽을 때까지 그걸 해요. 그래서 거기서 순직을 하세요. 으음. 그게 파랑새에요. 더 이상 구하는 것이 없으셔야 돼. 원력은 그와 같이 이루어져야 되거든요. 그러면 괴로움은 다 없어지고 원만하고 완전한 자기 생명체는 가지 스스로에게 드러나오 게 돼 있어요. 저는 그것에 대한 확답을 가지고 살아요. 이것이 내가 오류 될 수 있는지도 몰라요. 그래서 끊임없이 저는 제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경전을 통해서 따르거든요. 교재가 반드시 있으셔야 돼.

 

그러고 불자님들은 어떻게 하든지 경전을 읽으셔야 돼. 하루에 한 줄이라도 자꾸 불설을 읽으셔야 돼. 내용이 다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한 번씩 읽으셔야 돼. 위없는 거기 가피지력이 생기고 위없는 공덕이 생깁니다. 그 입을 바꾸시는 거에요. 그럼 뭐죠? 안 좋은 일이 있어도 그 음성이 이겨요. 뭘 이겨요? 책임과 의무를 다해서 나를 태어나게 해. 그러면 저 좀 보셔야 돼. 그러면 뭐라고 돼 있어요? 日生佛일생불이라고 돼 있어요. 이걸 거꾸로 바꾸면 뭐죠? 생일불이라고 그래요. 나는 매일매일이 태어나는 사람이에요. 매일 자고 나면은 그 인간이 그 인간이 똑같은 거 같잖아요. 천만의 말씀. 발음이 좀 세어서 그래요.

 

일생불이라는 거에요. 평생 나는 부처라는 거에요. 평생 내가 사는 동안 원만하고 완전한 불성이 거기 존재하는 거에요. 내가 살아가고 있는 동안은 다 뭐죠? 원만하고 완전한 자기 세계를 구현하고 사실 수밖에 없는 거에요. 그런데 중생이 어리석거든요. 중생이 믿지 않아야 될 것은 자꾸 믿어요. 자기가 모자란다는 것은 꼭 믿거든요. 자기가 못생겼다는 생각도 어떻게 그렇게 믿고 사는지 몰라요. 자기가 늙었다는 것은 철석같이 믿어. 희한하죠. 그죠. 생로병사는요. 다 흘러가고 있기 때문에 탐착하지 않으면 이미 그것은 늙음은 늙음이 아니에요. 불설아미타경이 기가 막힌 것을 설명하고 있어요. 사람이 안 되는 일도 많잖아요. 힘든 일도 많고요. 짜증나는 일도 많잖아요.

 

그러나 그렇게 안 되는 사람은 다 어디가 있어야 되요? 정신병원에 다 가 있어야 되요. 이게 정상이라고요. 화나는 것도 정상이고요. 기뻐하는 일도 정상이고요. 슬픈 일도, 괴로운 일이 생기는 것도 지극히 정상이라고요. 잘 들으셔야 되요. 그런데 이런 상황을 갖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부처님 가르침이 뭐에요그런 와중에서도 저 부처님의 음성을 들으면 이 세상을 내가 이기는, 최상의 법으로 내가 이긴다는 뜻입니다. 이 이상 더 좋은 법문이 어디 있어요? 그러니까 불설아미타경이뿐만이 아니라 높은 경전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몰라요. 부처님이 불설아미타경 하나만 만들어 놨으면 내가 그만 은퇴해야 되잖아.

 

화엄경도 있지, 법화경도 있지, 반야심경도 있지, 아함경도 있지, 엄청납니다. 그래서 내가 엄청나게 행복해요. 가르칠 게 많아서. 여기 좀 보세요. 일생불이라는 거에요. 일생불이요. 그 일생부처님은 아주 중요한 것을 말해 놨어요. 그걸 뭐라고 설명을 하고 계시냐 그러면, 나명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라망이라고 할 때 망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물 망)이라고 하는 거. 우리 삶 속에는요. 표현하면 이렇게 그물이 연결돼 있죠. 그죠. 여기서 하나를 딱 퉁겨도 전 세계 우주 삼라만상에 다 이것이 느껴지고, 교감이 되고, 소통이 되어 간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뇌파도 마찬가지고, 염파도 마찬가지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언어에도 거기에 뭐죠? 운율이 있다는 뜻이죠. 그게 살아있다는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