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정스님 _ <특집> 정각사 참수행 특별법회 6부 (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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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법문/덕정스님_참수행

2012.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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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속에 인간이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의 모든 것들도 풀 수 없으며, 인간과 동물의 여러 가지 본능적인 문제들 역시 윤회를 알지 못하고 영의 세계의 원리와 선악의 기준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를 풀 수 없는 것입니다. 작고 적은 인간의 두뇌로는 비물질계인 영의 세계를 해석하기란 불가능합니다. 영의 세계에는 인간계에서는 풀 수 없는 차원 있는 초자연적인 세계입니다. 사람들 중에 혹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에 의하여 영의 세계를 말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모두 착각이나 환상, 환시에 의해서 나온 것임을 밝혀 둡니다. 그 이유는 사람이 죽은 상태에서 본체가 영의 세계에 들어가면 다시는 살아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더 쉽게 비유를 들어드리면 강에서 바다로 흘러간 물이 다시 강으로 되돌아올 수 없는 이치와 같은 것입니다.

 

또 잡귀 들린 사람이나 물질계의 지식이나 주문이나 염원 따위나 실수에 의하여 영의 세계를 보았다는 것은 모두 착각이나 착시, 환시나 환상, 환각 현상임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의 두뇌로는 절대로 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비물질계는 영원하고 영구하게 밝혀질 수 없는 수수께끼의 세계이며, 정도인 고도의 참수행자만이 훤히 알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차원이 다른 세계이며 수행을 통하여 일정수준에 도달하여야 만이 알 수 있는 것으로 영의 세계와 도의 세계를 정확하게 알아야 만이 정도의 바른 공부를 가르칠 수 있는 것입니다. 수행을 잘못 가르치는 것은 영의 세계에서 큰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이므로 수행을 함부로 가르치지 않아야 합니다.

 

물질계인 현세는 작고 적은 세상입니다. 영체들 간에 서로 어울리며 의지하는 연결고리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작게는 가족 인척, 크게는 사회 국가가 서로 도모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작은 곳이기에 행복과 불행도 작고적은 육체에서는 아주 적게 느낍니다. 작고 적은 세상이므로 생각 자체의 폭도 좁고 국한되어져 있습니다. 집착과 바람, 의타심이 많고, 좁은 만큼 잘, 잘못도 정확하게 구분하지 못합니다. 반성이나 참회하는 일이 별로 없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잘난 맛에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삶이 바로 동물들의 삶입니다. 비물질계의 영의 세계는 하늘의 법인 선각이 존재하는 아주 큰 곳입니다. 자신의 선악이 형성된 상태에 따라서 행불행이 결정됩니다.

 

행불행은 극락과 지옥입니다. 큰 세상이고 폭이 워낙 넓기 때문에 선악이 뚜렷한 곳이므로 누구든지 참회와 반성을 크게 하게 됩니다. 만약에 앞으로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절호의 기회로 알고 덕목과 수양을 쌓아서 영의 세계에서 초월적인 큰 행복을 누리겠다는 각오를 고통 속에서 다지고 다지는 것입니다. 초월적인 큰 행복은 극락세계를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기란 어렵습니다. 100번 중 1~ 2번만이 사람으로 태어나며 98~99번은 동물들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영체들은 죽음 후에 영의 세계로 흘러갈 때마다 반성과 참회하고 다짐하는 곳이 영의 세계입니다.

 

영의 세계는 영구불멸하며 선악의 기준이 영원하고 영구하게 변하지 않는 곳으로 영의 세계에 큰 진리인 변하지 않는 선각이 있습니다. 그리고 참삶과 참 행복도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현재 영체들이 살아가고 있는 물질계는 선악의 기준도 정확하지 않으며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도 수시로 자주 변하는 곳으로 앞으로도 끊임없이 변할 것으로 물질계의 기준으로 공부하기란 불가능한 것입니다. 참수행은 비물지계인 영의 세계와 물질계인 도의 세계의 기준을 모두 알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 정도의 수행을 알려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 주제입니다. 3_영의 세계는 어떻게 선과 악이 표출되고 발산하는가? 원인과 결과로 자신이 심어 놓은 것입니다.

 

물질계에서 본마음 속에 심어놓은 선과 악에 형성된 상태에 따라서 영의 세계에서 원래 몸의 마음에서 초월적 정신적으로 표출되고 발산되는 것입니다. 만약 물질계에서 수양과 덕을 쌓아놓았다고 하면 선인 행복이 심어져 마음에 따른 좋은 배경이 펼쳐지며 초월적 오감을 느껴가며 참행복을 크게 맛보며 지내게 되므로 바로 극락세계입니다. 악이 본마음 속에 담겨져 있다고 하면 악의 형성된 상태에 따라서 원래 몸의 초월적 오감을 엄청나게 크게 느껴가며 무엇이라고 형용할 수 없는 참기 어려운 정신적 고통을 받는 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초월적 오감을 비교한다면 물질계에서 꿈을 꾸는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그러나 물질계 꿈은 육체의 느낌보다도 아주 적게 느끼는 것입니다. 영의 세계에 느낌이란 육체의 두뇌로는 상상과 추측하기란 너무나 어려 어려운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면 바늘로 옷을 찌르는 것과 같은 고통을 받는 곳입니다. 물질계에 바늘로 옷을 찌른 느낌을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물질계 느낌으로 너무나 작은 곳입니다. 만약 바늘을 육체에 찌른다고 하면 어떤 느낌을 받을까요? 큰 고통을 느낄 것입니다. 하루 종일 찌른 느낌을 생각해 보시면 조금 이해하기가 쉬울 것입니다. 고통은 말로 표현하거나 상상하기도 어려운 곳입니다. 육체는 기절하지만, 본체는 모든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영의 세계에는 어느 누가 행복과 불행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본마음 속에 심어진 모습대로 마음의 선악이 발산되는 것으로 누구의 탓도 아니며 자신의 탓으로 잘, 잘못의 대가인 것을 누구든지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마음속에 무서움과 두려움, 공포의 악이 있다면 공포스럽고 무섭고 두려운 필름 현상들이 나타나며 초월적 느낌 감각을 크게 느끼면서 괴롭힘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속에 심어진 악에 따라서 마음이 표출되며 여러 가지 형태와 배경과 영상이 선명하고 뚜렷하게 펼쳐지며 원래 몸에 초월적 정신적인 오감을 크게 느껴가며 고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근심과 걱정, 미움과 원망, 원한과 한, 복수심과 증오심, 슬픔과 낙담, 절망과 한탄, 고독함과 우울함, 외로움과 적적함, 허전함과 서운함, , , , , 108번뇌 망상과 팔만 사천 번뇌 망상 등 모든 악이 펼쳐진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수행자는 자신의 마음을 매 순간 점검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본 마음속에 얼마나 선이 향상되고 악이 소멸되었는지 자세히 살펴볼 필요성이 있습니다. 열심히 참수행을 정진하다 보면 삶의 이치와 참뜻도 알게 되는 것이고 참나를 보게 됩니다. 무한한 대망을 바라보는 차원 있는 마음자세로 수행에 임해주기를 바랍니다. 부처님의 공부는 작은 한생에 공부가 아닌 윤회의 공부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으로 내어나 살아가는 삶은 성장할수록 자신의 본마음 속에 선과 악이 생각관념과 결합하여 발휘하게 됩니다. 성장할수록 선인자생력이 형성되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성장할수록 눈에 띄게 악이 발휘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선행과 덕을 쌓아가는 인위적인 삶을 살아간다면 조금 나아지는 것입니다.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마음을 정화시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지식을 넘어서는 수행으로 인하여 마음속에 악인 불행 고통을 소멸하여 나감으로써 행복이 찾아온다는 것을 불자님들은 명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짧은 순간인 현세의 삶이 영원하고 영구한 삶으로 착각을 하고, 삶의 뜻과 의미도 없고, 보람도 없이 한생을 지내고 어리석음으로 대부분 생을 보내게 됩니다. 이런 삶이 바로 중생의 삶이고 모든 사람들의 삶입니다.

 

육체가 소멸된 후에 자신의 죽은 모습을 잠시 동안 보게 되고 정신세계로 흘러가 자기 죽은 모습에 의복인 육체를 보면서 만감이 교차하며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두리번거리기도 하다가 정신을 차린 후 무엇인지 모르게 불안감과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며 왜 이 더러운 소모품에 불과했던 저 육신에 목을 매고 살았는가? 몹시 후회합니다. 육체가 소멸이 되면 본체만이 남으므로, 그 자리에서 20~30분 정도 머무는 것으로 자신의 의복인 육체와 가족들을 바라보게 되며 크게 놀라게 되는 것입니다. 물욕에 집착과 바램과 어리석으므로 살아왔던 찰나인 한생의 삶을 후회합니다.

 

앞날에 대한 불안감과 공포 속에서 가족들이 통곡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현세의 삶에서 선행과 수양을 쌓아놓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우므로 깊은 참회와 눈물만이 한없이 흐르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도 수많은 영체들이 육체가 소멸되고 있으며 모두 후회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도 얼마 남지 않은 것입니다. ~ 영의 세계의 일부에 대한 내용은 모두 끝났습니다. 몇 가지, 두 가지 정도 설명을 드려보면 수행 중 영의 세계의 실체를 보았던 경험들을 두 가지 정도 설법을 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로 어느 한 분의 몹시 고통스러운 모습이 심안으로 선명하게 보이는데 자세는 누워있는 모습이고 가슴 위에는 엄청난 무게의 커다란 맷돌이 가슴에 눌려있는 것을 선명하고 뚜렷하게 보았습니다.

 

그분의 몹시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그 모습과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치며 파르르 떨고 있는 처참한 모습이 육체를 넘어선 비물질계의 원래 몸인 본체 초월적 정신적 고통인 것을 뚜렷하게 알 수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현계에 있을 때 욕심과 가족에 대한 집착, 욕망의 대가인 것입니다. 두 번째로 또 어느 한 분은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하게 생긴 커다란 큰손들이 그분의 목을 조여 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꼼짝달싹 못하고 당하면서 고통스러워하는 그 모습이 본체에서 초월적 정신적 고통인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현계의 육계의 고통을 넘어선 모습. 고통으로 인하여 얼굴은 일그러져 괴로워하는 그 모습을 보며 현계에 있을 때에 스스로 목을 매달아 자살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낌과 감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영의 세계가 끝이 아니며 내세에 또다시 이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참수행의 내용은 한번 들어서는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처음 들어본 내용도 많고 또 단어라든가 일반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들어보셔야 만이 조금이나마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참수행의 내용을 듣는다고 하여 달라지는 것은 없다. 라는 것입니다. 수행을 정진하여야 만이 아라한_ 실제사람_ 신선_ 대자유인 등 부처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걸어갈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항상 이야기를 하신 내용 중의 한 가지가 한생을 보지 말아라.

 

한생은 너무나 짧은 것이고, 큰 윤회를 봐라. 이거죠. 한생을 보기 때문에 한생 쪽으로 흘러가고 육도윤회를 기준으로 삶을 살아간다고 하면 윤회의 삶 쪽으로 흘러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자님들이 바램을 갖는 것은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바램을 버리십시오. 이 순간부터. 바램을 갖지 말고 수행자인 나 자신이 노력해서 무엇이든 얻을 생각을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음을 밭이라고도 이야기를 합니다. 이 마음 밭에 선인 행복의 씨앗을 뿌릴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악인 불행 고통의 씨앗을 뿌릴 것인지는 지금 여러분들이 선택하고 결정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부처님의 불법을 만나기는 어렵습니다. 만났다고 하면 반드시 수행을 정진하셔서 향상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 내용은 잊어버리시면 안 됩니다. 영의 세계 1부 설법은 여기까지 설명을 드리고 다음 시간에 영의 세계 2부에 대하여 설법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처음 들어보기 때문에 과연 이 내용이 맞는가? 맞지 않는가? ~ 영의 세계 내용은 제가 도승과 학승에 대해서 설명을 한 번 드린 적이 있습니다. 학승은 절대로 알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수행을 정진하는 도승만이 알 수 있는 내용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꼭 인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참수행의 기본은 행입니다. 긴 시간 동안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