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스님 _ 제37회 인천치경원 (20:40)

댓글 0

스님법문/정현스님_불설아미타경

2012. 10. 7.

  방송 보기: 불교TV

 

으음. 잘 지내셨습니까? 집안에 별일 없으시고?^^ 사람이 살아가야 된다는 어떤 덕목 안에는 기쁨이라는 게 있어요. 환희심도 거기 깃들어 있고, 사랑 심도 거기 깃들어있고, 자비심도 은혜로움도 많이 깃들어 있어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은혜롭고 또 지혜롭고 또 풍요로운 것은 전부 망각하고 그렇죠. 그죠. 자기한테 부족하고 모자란 것만, 그러니까 자기한테 맞지 않는 것만을 자꾸 헤아리는데. 그러니까 자기 입장에서 맞지 않는 것만 다 틀렸다. 이렇게 말하거든요. 그러니까 고거 문제만 조금만 교정을 자기 스스로만 조금만 하면은 더 풍요로운 세계와 접속이 잘 돼서 내가 먼저 풍요로워질 텐데. 요게 해결이 안 돼요.

 

그래서 우리는 불설아미타경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은 저 나무아미타불이라고 하는 여섯 글자를 부르면 모든 장애에서 해탈하고 자유로워지고, 또 저 모든 어둠에서 벗어나서 광명세계로 나아간다. 이렇게 말씀드렸거든요. 경전 안에 자세히 설명돼 있고, 원효 성사께서는 원효 큰스님께서는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면 저 무지몽매한 사람에게도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것으로서 금생에서 해탈하여 왕생극락할 수가 있다. 살아서 좋은 일이 생기는 것뿐만 아니라 죽어서는 반드시 이고득락해서 아미타불 세계의 나라인 극락세계에 태어날 수 있다. 라고 분명히 설명하고 계시거든요. 불설아미타경이 정하는 그 부처님께서 설해주시고 전해지고 말씀하신 원인은 뭔가?

 

다 일체중생이 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거죠. 저 아픔으로부터 해탈하는 거죠. 저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거죠. 그렇게 되지 않으면 일체중생이 일체 모든 생명체가 그렇게 행복해지지 아니하고, 풍요로워지지 아니하고, 사랑스러워지지 아니하면, 내가 부처가 되지 않겠습니다. 라고 이렇게 발원한 것이 법장비구시고 이분이 이룬 세계가 저 아미타불의 세계거든요. 그중에 오늘 드디어 37번째를 공부하게 됩니다. 그래서 37번째 보면 사람과 人天인천이라고 그러거든요. 사람과 하늘의 이치는 뭐로 하는 것이라고요? 경배하는 것으로써. 그러니까 이 말은 다른 말로 얘기하면은 기도하는 것으로서 자기의 본의를 삼는다. 이렇게 말해도 다르지 않고.

 

또 내가 예를 갖는다 하는 것에서도 출발이 되고요. 또 웃어른을 공경하고 자식을 아랫사람들을 보살펴주는 것도 요것이 하나의 경이거든요. 공경하다라고 할 때의 경입니다. 이렇게 원을 세우시면 반드시 이 사람한테는 무엇이 생기냐 그러면 성실함이 그대로 자기한테 금생에서 드러나서 불성세계에 이른다. 이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아미타경에서 설명하는 내용이 저 아미타불을 열심히 부르고 읽고 외우는 것만으로도 왕생극락한다. 이렇게 말했어요. 그러니까 죽어서 태어나는 것도 왕생극락이지만 지금 현재, 오늘날 2012년에 이르러서 이 법당에서 설명되어지고 있는 불설아미타경은 지금 즉시라는 얘깁니다.

 

즉신성불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 불설아미타경의 설법이거든요. 지금부터 좋아지는 거에요. 지금부터 사랑하는 삶을 여는 겁니다. 너무 기가 막힌 것 중의 하나죠. 그렇게 하나둘씩 하나둘씩 공부해보는 과정을 겪습니다. 사람이에요. 사람이란 누구에요. 그죠? 사람이라는 것이 무엇을 사람으로 말해요? 너는 사람이고 나는 그냥 중생이고? 그런 거 없어요. 나라고 하는 것이 있어요. 나라고 하는 것은 이것은 본래 실존하지 않거든요. 나라고 하는 것은 본래 자기가 없는 거거든요. 그래서 부처님은 무자성이라고 그래요. 한문으로 無自性무자성 이렇게 표현해요. 그러니까 성품이 스스로가 있다고 자꾸 우기는데 그게 없다는 거에요. 그렇죠. 그죠.

 

그런데 자기 스스로 일으키는 성품이 고약한 놈도 있고 좋은 놈도 있으시잖아요. 놈은 빼고^^ 좋은 분도 있으시고 나쁜 분도 있으신데. 본래 저것도 이쪽도 없는 거에요. 그러니까 요게 기가 막힌 거잖아. 이건 +도 아니고 -도 아니다. 이렇게 말하잖아요. 그래서 그것을 반야심경에서는 색불이공 그러잖아요. 공불이색 그러잖아요. 그 얘기거든요. 그 얘기는 뭐냐 하면 나는 좋은 사람도 아니고 나쁜 사람도 아니에요. 그런데 자기 근간이 없는 거에요. 본질적으로. 그런데 우리가 지금 불설아미타경에서 설명하고 싶은 것은 뭔 내용이라고요? 지금 내가 선을 짓는 거에요. 지금 착함을 내가 심는 거에요. 그리고 내가 즐거움을 지금 심는 거에요. 그리고 대긍정의 힘을 내가 지금 지어서 지금 실천하고 지금 그걸 누리가 지금 가져가는 거에요.

 

요렇게 옮겨가는 마음의 태도를 갖는 사람한테야 말로 비로소 해탈이라는 것이 생기지. 똑같은 나라고 하는 존재성이 있잖아요. 이 존재성이 긍정의 무슨 불교에서는 긍정이 아니라 나타나는 긍정이 아니라 인정을 넘어서서 대긍정의 세계를 말하고 있거든요. 아주 큰 긍정세계를 이야기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자기를 인정해야 돼. 뭐라고 인정해야 돼? 좋게 인정해야 돼. 나는 무슨 좋아지고 있는 나에요. 좋아지고 있는 나. 뭐라고요? 건강해지고 있는 건강해하는 이런 상태를, 건강해지고 있는 것을 긍정하는 거죠. 그것도 적게가 아니라 크게. 나는 뭐하는 사람이라고요? 번영하는 사람. 번영하고 있는.

 

이런 내용들은 뭐냐 하면 전부 다 현재 이게 진행형이에요. 현재 진행형이에요. 언제? 지금이에요. 오늘날 어제 가끔 여기 올라다니면서, 운전하면서 올라오면서 느낀 게 뭐냐 하면 아무래도 뉴스를 듣게 되잖아요. 우리나라가 자살률이 세계 1위랍니다. 교통사고 1. 1위죠. 그죠. 현재 아직. 아직까지 거기서 못 벗어났어요. 참 부끄러운 이야기 중의 하나거든요. 절대 자살을 해서는 안 돼요. 자살도 자기가 결정하는데, 보통사람들이 자기들이 자기를 자기를 잊어버릴 때 요게 문제가 생기는 거거든요. 그래서 엄한 짓을 자꾸 하는 거에요. 자기가 자기 가치 있는 줄을 몰라서 그런 거에요.

 

그러니까 사람은 무슨 사람이냐 그러면 자기가 보는 데로 이루어지거든요. 그러니까 오늘 세 가지를 공부하시면서 오늘 불설아미타경을 공부하시는 인연 따라서 외우셔야 돼. 뭐라고요? 번영하는 내가 있어요. 번영하는 사람이에요. 그 자성은 본래 자성은 없어요. 평생 먹이고 평생 재워도 죽어서 산에 묻어 놓으면 다 썩을 것이고, 태우면 다 없어질 것이고, 없는 거거든요. 성질을 아무리 부려도 없어요. 욕심을 아무리 내도 지가 없는 거에요. 뭣 때문에 재물 때문에 인과관계 때문에 서로서로 감정 때문에 싸우고 지낼 필요가 뭐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싸우고, 다투고, 분노하고, 원망하고 사는 과정 안 에서는요, 거기에는 진리가 없으세요.

 

진리는 아주 단순하게요. 행복해하는데 거기 해탈이 생겨요. 즐거워하는데 거기 행복이 생기거든요. 거기 진리에 따라서 문이 열리고 해탈의 세계가 딱 열려오게 돼 있거든요. 하여튼 그렇다. 그래요. 제가 설명, 석가세존께서 다 알아서. . 그러니까 이걸 외우셔야 되요. 뭐라고 해야 돼요? 다른 것을 외우려고 하지 말아요. 아이고 나는 늙었어. 나는 늙었어. 이렇게 말하잖아요. 나는 병들었어. 나는 늙었어. 늙음이 있어. 나는 고통이 있어. 이렇게 생각하는 생각이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이에요. 그러니까 나무아미타불을 많이 불러서 다음 생에 태어나는 왕생극락도 중요하지만 지금 극락세계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돼야만 비로소 우리는 극락세계를 체험하고 사는 거에요.

 

기가 막히다. 불자님들께서 또는 모든 사람이 금생에 저 불설아미타경이라고 하는 경전을 한번 읽은 것만으로도 큰 대복이 생겨요. 이 책 가져가셔서 한 번씩 읽으시면 너무 좋아요. 그 밑에 번역본도 있으시지? 그거 붙들고 읽으시면 돼요. 우리가 생각하기는 얼마나 어리석은지 자기가 이게 무자성이 있기 때문에 귀한 거거든요. 정말로 귀한 존재에요. 정말로 존귀한 거에요. 왜 그러냐 하면 자성이 뿌리가 없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귀한 거죠. 만일에 자성이 무엇으로 있다라고 말하고 규정하기 시작하잖아요. 나는 가난한 놈이다. 나는 노예다. 나는 병들은 사람이다라고 이렇게 규정하고 산다면 그것이 자기 스스로를 만든, 성을 만들었거든요.

 

그런데 석가세존께서는 불설아미타경이나 금강경이나 반야심경에서 뭐냐 하면 무자성이다 말이에요. 무 없단 말이에요. 무안이비설신의. 그러잖아요. 눈귀코입몸뚱아리가 본래 없다라고 선언하신 것이 무자성의 세계를 고대로 설명하고 계신 거잖아요. 그러나 반대로 보기 시작하는 거에요. 인정하는 거에요. 이걸 뭐라고요? 인정하고 또 조화로워야 되요. 뭐든지 조화롭게 하셔야 되요. 그렇게 하려면 무엇으로부터 붙어 들이냐 하면 정말로 내가 번영하고, 정말로 좋아지고 있는 상태. 상태만 있을 뿐이지 결과는 들여다보지 마세요. 지금 내가 좋아지고 지금 예뻐지는 모습만 가지세요. 그러면 극락세계 가서 죽은 다음에, 평생 그런 거 헤아리지 마세요.

 

내가 오늘 감사할 줄 알고, 오늘 내가 번영할 수 있는 생명체라고 이렇게 느껴지고, 내가 지금 이 순간 내가 좋아지고 있고, 건강하게 살아가서 호흡을 잘하고 밥 먹고 화장실 잘 갈 줄 알면은 이 모든 것을 뭐라고 생각해야 되요. 오직 감사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내가 되시면 딱 좋습니다. 기가 막힌 것인 나타나요. 그러면 자기가 자고 난 다음이라도 좋아져 있는 꼴을 보는데 이놈의 이 자성이 본래 자성이 없는 건데 자꾸 집어넣어요. 걱정근심하고, 또 뭐가 안 될까? 노심초사하고,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거든요. 이게 없다는 거에요. 이게 다 망상이라는 거에요. 정면으로 부딪쳐서 이기셔야 돼.

 

딱 생각할 게 뭐냐 하면 현재 진행형이다라는 뜻입니다. 현재진___. 우리는 지금 살고 있잖아요. 앞날에 가서 살려고 애쓰지 말고 지나간 것 매달려서 집착하지 말고, 지금을 나는 번영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자기가 주인공이 되는 거에요. 그래서 자기가 생각하고 자기가 말하고 자기가 행동으로 옮기는 거에요. 그러면 신구의 삼업은 스스로 정화가 되고, 업장이 아무리 두터워도 소멸이 되고 치유가 되요. 좋아져 가는 과정을 겪습니다. 분명히 정돈해 놓으셔야 되요. 그래서 요 세 가지를 외웁니다. 외우면은 무슨 일이 나한테 생기냐 하면, 하늘과 같은 사람의 일이 천이 생겨요. 하늘이 있으면 당연히 뭐가 생겨요? 땅이 갖추어져요.

 

이것은 지혜라고 말하고 이것은 복덕이라고 말합니다. 지혜복덕이에요. 딱 관리가 요렇게 돼 있어요. 그래서 저쪽 유가 그래서 나오는 것이 뭐죠? 천지인. 이러죠. 그죠. 그래서 만일 사람이 여기 있거든요. 하늘과 땅 사이에 있죠. 이것을 움직이는 것을 옛날식으로 오해하지 마셔야 되요. 옛날식으로는 오행이다. 이렇게 표현했어요. 이걸 보고 금목토화수. 이렇게 표현했거든요. 이게 움직임이란 말이에요. 다시 말하면은 움직임이라고 말하고 있거든요. 사람은 한순간도 머물러 있지 않거든요. 불교식으로 얘기하면. 저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다 행복한 것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손톱도 빠지고, 자라나고, 희어지고. 그러잖아요. 좋은 것만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러나 좋은 몸으로 왔기 때문에 그 좋은 몸에 감사할 줄 알아야 건강이 유지되고 복이 유지되고 거기에 사랑스러움이 거기 같이 깃들어있는 육체에도 같이 깃들어있게 되거든요. 그런데 그걸 따라가지 못하는 것에는 물리적인 무리가 좀 생겨요. 무너진 것만 보지 말고 지금 남아있는 것을 감사하세요. 아픈 것에 매달려 있지 말고 더 남아있는 건강함에 더 감사하고 행동으로 옮기셔야 돼. 오늘 불자님들 될 수 있으면 걸으세요. 될 수 있으면 걸으셔야 배에 유착이 안 생깁니다. 그래서 복력이 자기한테 생기려면은 현재 진행형인 내가 있어야 돼요. 그러니까 지금 어떻게 해요? 지금 번영하고 지금 잘 되어 가고 있고. 꼭 물어요. 나는 지금 망하고 있는데요.

 

꼭 훌륭한 설법 잘하고 있는 동안 뒤에 앉아가지고 내가 지금 죽어요.’ 이러면 힘들어. 못 벗어나요. 그 틀에서. 과감하게 놓으셔야 돼. 대신에 안 좋은 것을 놓은 것뿐만 아니라 좋은 것도 좀 놓아요. 정말로 자기가 아끼는 것을 놓으실 줄 알아야 돼. 탐착의 마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놓을 수 있을 필요가 있죠. 그죠? 그렇게 이루어지면은 하늘에서 그것이 감봉하게 돼요. 그것이 하늘에 있다라고 하는 말은 우리 안에 깃들어 있는 것이 지혜가 곧 하늘이거든요. 지심이 곧 하늘의 천심이라 그러거든요. 그게 극히 다시 돌아오면은 그거를 민심이라고 표현해요. 쉽게 표현하면. 그래서 그다음 나타난 것이 치라고 말해요. 원이에요. 이게 다스려진다는 거에요.

 

결국 적으로는 어디로부터? 자기의 생각. 가장 중요한 거 이게 뭐죠? 생각이죠. 요건 이치는 말한 것은 뭐라고 말했죠? 이건 언어죠. 요거는 우리가 말하는 그 유명한 몸짓이잖아요. 이렇게 정리가 돼요. 잘 보세요. 이것은 생각이 곧 자기의 지혜로움이라고 표현됐죠? 아니 하여튼 아니어도 그렇다 그러고. 이것은 올바로 그름을 설명하는 것이 치라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좋은 말로서 좋은 생각으로서 좋은 몸짓으로 나를 정리하고 순화시켜 가는 과정을 겪는 것을 기도 수행이라고 말하고, 이것을 정성이 있어야 되요, 그다음에 정성과 성실이 반드시 따라다녀야 되요. 그러면 이 사람한테 뭐가 생기냐 하면 불성에 도달한다. 이렇게 말해요.

 

이 얘기는 뭐냐 하면 불성에게 도달한다.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하늘에 닿는다. 이런 뜻이거든요. 그러니까 결국 우리말로는 다른 아주 통속적인 말로서 이것을 뭐라고 말한다? 진리라고 표현한다. 정말로 우리 삶 속에 깃드는 참된 이치를 진리라고 표현하신다. 이렇게 말할 수 있죠. 그죠. 그러니까 어려운 게 아니고 그냥 그렇게 쉬운 거에요. 그래서 이것은 반드시 따라다니면서 뭐가 있어야 되느냐 하면 누구든지 원이 있어야 된다는 거에요. . 그럼 거꾸로 한번 보겠습니다. 같은 내용인데 같은 것을 거꾸로 한 번 봅니다. 원해야 돼요. 이건 뭐죠? 내가 지금 원하고 있어요. 뭘 원하고 있는지 스스로 알죠. 원하는 것은 불자님들이 스스로 원하는 것이 있어야 되죠. “나는 적당히 이렇게 살면 좋아.” 그게 원이에요. 그런데 그걸 구체적으로 자기화를 만들려면 조금의 뭐가 생겨요? 질서라는 걸 하셔야 된다.

 

이때 질서라는 하는 말은 뭐라고 표현 하냐 하면 이 질서는 우리가 말하는 공경이잖아요. 질서는 다른 말로 불교식으로 말하면 기도 수행한다. 이렇게 말해요. 불설아미타경에서는 나무아미타불. 이렇게 불러들이는 거에요. 불러들이면서 마음속 깊이 나는 번영할 수 있는 생명이라고 외치는 거에요.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좋아지고 있는 생명이라는 거에요. 나는 지금 뭐죠? 건강한 삶을 자기 할 일을 충분히 해가는 그런 존재라고 그런 생명이라고 외치는 거고, 생각하는 거고, 말하는 거고, 그 몸집을 채워가는 거죠. 이게 하나하나씩 채워가서 삶에 대한 전체를 만들어내거든요. 부정감은, 안 된다는 생각은 버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