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스님 _ 제37회 인천치경원 (4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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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법문/정현스님_불설아미타경

2012. 10. 7.

  방송 보기: 불교TV

 

내가 더럽다든가, 탁하다든가, 죄 들었다든가, 병들어서 암 들었다든가, 무슨 어디 불행이 깃들었다든가, 어둡다든가 이런 말짱한 이야기들은 전부 다 자기 안에 들어있는, 본래 자성이 없는데 자기 스스로 밖에 여기저기에서 얽혀가지고 스스로 들어있거든요. 그 세상에 그거보다 더 안타까운 게 뭔 줄 아세요? 딴 사람이 얘기해준 것 때문에 내가 화내는 사람 있어. 그러면 여기 좀 보십시다. 원이 딱 있으셔야 돼. 자기 원. ‘내년에 내가 어떤 어떤 구체적으로 좋은 일이 돼야 되겠다.’ 집을 판다거나 집을 산다든가 또는 자식이 잘돼야 되겠다든가, 뭐 이런 구체적인 현실에서 있어요.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뭐에요? 다 부처가 돼가는 거에요.

 

요게 연결성이 이루어지지 않으면은 이 원을 참으로 참으로 어려워져요. 그러고 언어가 할 수 있으면 뭐죠? 비난한 말은 그치고, 욕설은 줄이고, 원망하는 생각은 버리고, 원망스러운 말은 그만 그치셔야 돼. 제발 잘 되고 싶으시면 원망한 생각을 그만 그쳐요. 절대 핑계 대는 말은 절대 없으셔야 돼. 하늘의 생각이 그 사람에게 미치어서 이 사람이 스스로에게 번영을 불러다 주고 스스로에게 좋아지는 꼴을 보여주고 있고, 스스로에게 건강한 삶을 일을 해나간다는 뜻입니다. 이 이상 더 좋은 발원이 어디 있어요? 그런데 법장비구는 뭐라고 말했어요? 이 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자기가 부처가 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발원하잖아요. 놀라운 거잖아요.

 

인간 세적인 것에 경전이 이런 경전이 두 번 다시 찾아보기 어렵죠. 오늘 이야기가 불성의 마음으로 돌아왔거든요. 이렇게 돌아 와 있어서 우리 자신이 깃들어있는 생명체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우리 스스로 한 번씩 점검을 자꾸 하셔야 돼. 그거 점검하기 위해서 하는 게 기도거든요. 나무아미타불 염불 기도하고, 지장보살 기도하고, 관세음보살 기도를 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대상적 구함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든지 그건 한계가 있거든요. 무량한, 무량한 공덕. 무량한 시간, 무량한 공덕 속에서 내가 그 공급을 받는다 라는 게 불설아미타경에 설법 중이고 그 내용을 여실하게 해 놓은 것이 오늘 설법이에요.

 

그를 일러서 뭐라고 표현한다고요? 人天至敬願인천치경원이다. 이렇게 설명 드렸죠? 그래서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세계에 헤아릴 수 없고 불가사의한 모든 부처님, 세계의 중생들이 제 이름과 아미타불을 듣고 땅에 엎드려 부처님께 예경하면 환희심과 신심을 내어 그 보살행을 닦을 제, 모든 천신과 인간들이 그들을 공경하지 않는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번역 내용하곤 조금 상의하죠. 그죠. 그런데 자세히 자세히 설명 드리면 결국 저 하늘의 세계가 곧 인천이 곧 사람의 세계라는 거에요. 그러니까 지금 그게 이루어져야 된다. 그런 표현이었죠. 그렇게 살펴보면은 아까 세 가지를 말씀을 드렸고, 지금 다시 세 가지를 다시 외우실 거에요.

 

요 외우실 내용에 보면은 우리 이제 요것을 이루어지게 하게 하시려면 저 좀 보세요. 얼굴 쭉 보시고 허리 펴시고 저 좀 봅니다. 이걸 뭐라고 표현했냐하면은 사람한테는 +에너지가 있고 -에너지가 있거든요. 사람이 움직이는 힘에는 머물러 있지는 않지만, 항상 존재해 있어요. 그래서 항상 들어오고 항상 나가죠. 그래서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우리 스스로의 결정이죠. 그런데 할 수만 있으면 +에너지를 내보내셔야 돼. +에너지를 방출하게 사는 사람은 반드시 이 사람이 번영하게 돼요. 그러고 이 사람이 반드시 뭐죠? 좋은 일이 먼저 생겨요. 그러고 이 사람한테 건강한 일을 자기한테 주어져 줘요.

 

그걸 미묘하게 우리가 다 헤아리지 못해서 그렇지 느끼지 못하고 감동을 느끼지 못해서 그렇지 실제로는 그게 이루어지고 있거든요. 그래서 밖으로 좋은 것을 내보낼 수 있거나 좋은 것을 받아들이려면은 우리가 일진적으로 나무아미타불을 기도를 조금씩이라도 하시는 거에요. 하루에 5분 정도라도. 저 지장보살을 하루에 5분이라도 꼭 좀 사셔야 돼. 저 관세음보살이라도 꼭 마음으로 일러서 원동력을 가지고 하셔야 돼. 원을 가지셔야 돼. 그렇게 가지시면서 속으로 마음속으로 깊이 법문할 때마다 이거 외우거든요. 법문마다 말씀을 드리거든요. 그래도 돌아서면 안 하시기 때문에 또 하는 거에요. 기가 막혀요. 나무아미타불 부르면서 속으로 뭐죠?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시는 거에요. 그렇죠. 그죠.

 

이렇게 감사행을 같이 감사 명상을 같이 수행해 가면서 나무아미타불을 지극정성, 정성과 성실로 자기 스스로를 채워가는 한 5분이라도 채워가는 그만큼은 반드시 모든 부정적인 에너지를 제거해 줘요. 자기한테서. 사람한테 +에너지도 있고 -에너지도 있다고 그랬죠. 그런데 부정적 에너지를 -에너지라고 말하면 긍정적 에너지를 가질 필요가 있죠. 그런데 그것을 채워주는 + 충전을 해주는 것이 우리가 염불수행이라는 거에요. 그 염불 수행이 나무아미타불 이렇게 하는 것은 자기 안에 밝은 +에너지를 충전해주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뜻입니다. 우째 나는 나 혼자 이렇게 악을 쓰는지 몰라.^^ 같이 악을 써야 되는데. 그렇죠. 그죠.

 

그러니까 잘 들여다보셔야 돼. 에너지가 나가거나 말거나 내비두고 자기한테 충분히 +에너지를 방출할 뿐만 아니라 자기한테 충전을 자꾸 시켜줘야 돼. 인생사. 반드시 충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충전하는 방법이 하나는 나무아미타불. 이건 불설아미타불을 지금 설명 드리니까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고 건봉사가 나무아미타불 근본 도량이기 때문에 같이 일러서 말씀드리는 거에요. 제가 같이 사니까. 그런데 나무아미타불 부르면서 염송을 하셔야 돼. 그다음에 명상을 하셔야 돼. 나무아미타불 하면서 생각은 늘 감사해야 돼. 고마워해야 돼요. 그렇죠. 그죠. 그러고 내가 번영하고 있는 생명이라는 거에요. 내가 지금 좋아지고 있는 생명이라는 명상을 계속 반복적으로 해주셔야 돼. 요걸 잘 안 하시거든요.

 

내가 건강해지고 있다라는 지금 현재를 자길 봐야 돼. 그럼 나는 병원에 누워있는데요, 아픈데요, 괴로운데요, 힘든데요. 힘든데요. 그건 전부 자기 생각이구요. 그렇게 말하는 그 자체에도 무자성이에요. 자성이 없기 때문에 거기에 존재성이 없는 거에요. 그건 버리셔야 돼. 깨뜨려 버리셔야 돼. 그러고 나서 딱 돌아서서 뭐라고 표현한다고요? 좋은 기쁨과 좋은 즐거움과 좋은 행복감을 스스로 자꾸 불러들이는 거에요. 되시죠? 그죠? 기뻐해야 되요. 감사할 줄 알아야 되고, 기뻐할 줄 알아야 되고, 또 뭐죠? 즐겁게 생각하셔야 돼. 이건 누누이 강조해도 다르지 않은 것 중의 하나거든요. 그러면 자기한테 아니다. 못한다. 싫다. 부족하다. 이게 저 뭐죠? 안 채워진다.

 

돈이 없다. 이런 말 자체가 집안에서 없어지기 시작해요. 어떻게라도 공급을 돌아올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필요가 있으시거든요. 그게 불설아미타경의 가르침의 내용이죠. 그죠. 그러면 봐요. 그죠. 언젠가 한 번씩 마음속에 이미지화를 좀 생각하셔야 돼요. 좋은 집에 살고 싶으면 좋은 집에. 내가 지금 양철집이라도 셋집이라도 좋은 집에서, 좋은 강아지 키우고, 아주 좋은 정원, 좋은 것을 늘 꿈을 꾸셔야 돼. 좋은 생각을 하셔야 돼. 몸이 아픈 사람은 건강해서 움직여서 꿈꾸는 생각만이라도 하셔야 돼. 그래서 우리가 살면서 두 가지의 에너지가 있다는 것을 명심해 두셔야 돼요. 좋은 에너지를 방사하려면 무조건 감사해야 돼.

 

그리고 그 언어가 따뜻해야 되요. 그리고 그 행동이 조금은 친절해 져야 되요. 그런 모양새로 하나둘씩 하나둘씩 자기 삶에 대한 것들을 구체적으로 채워 가면은 아까 말씀드렸죠. 천상세계에 이른다는 뜻입니다. 그 얘기는 극락세계에 이른다는 뜻입니다. 반드시 극락세계에 이른 다는 뜻입니다. 그 얘기는 거꾸로 다시 말하면은 지금 이 순간에도 그 극락세계가 현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요런 과정을 통해서 세 가지만은 꼭 좀 외워야 될 것이 있어요. 아까 먼저 외우신 세 가지하고 지금 좀 더 세 개만 더 외웁니다. 그죠. 여기 좀 보세요. 내가 지금 일하고 있고, 내가 지금 살아있는 것에는 모든 에너지가 필요하죠. 이것은 뭐죠? 양적 에너지라고 그러거든요.

 

양적 에너지는 내가 살아있는 필수적인 것을 양적 에너지라고 그러거든요. 곡식처럼 양적인 것이 에너지가 있어요. 그 에너지를 불교식 개념으로 이것을 옮기면 우리 모두가 다 뭐죠? 불성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아니신 거 같은데도 우리의 오관의 모양의 다 불성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라고 보셔야 됩니다. 불성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데 그리고 그 얼굴의 표정은 행복하고 보람된 표정을 늘 유지하려고 노력을 해주셔야 돼. 그렇죠. 그죠. 그러니까 저처럼 이렇게 하셔야 돼^^ 눈은 싹 웃고, 입은 좀 벌리고. 싹 웃어야 돼. 그렇죠. 그죠. 이렇게 꾸준히 하나둘씩 하고 생활 속에서 절대적으로 실천해야 될게 뭐냐 하면 기도생활을 잊어버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번영하고 반드시 뭐죠? 좋아지게 하고, 반드시 건강하게 일을 해나 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려면 그런 생명체가 되려면 뭐라고 해야 되요? 중요하게 우리는 바꿔서 생각을 하셔야 돼. 그러면 자세히 좀 보십시다. 아까 말씀드린 무자성이에요. 우리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실체는 아무것도 없어요. 그것은 다만 내가 가난한 삶을 사는 것은 자꾸 가난한 의식을 계속 현실의식에 집어넣기 때문에 내가 가난한 삶을 사는 거거든요. 재물의 결핍, 사랑의 결핍, 인과관계의 행복감의 결핍. 이런 것들이 전부 자기 자신 안에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누구를 탓하거나 누구를 핑계 대거나 누구를 원망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거에요.

 

이것을 우리는 먼저 돌이켜서 참회할 필요가 있죠. 그죠. 그런데 놀라운 것이 석가세존 부처님 가르침을 옮겨서 설명 드리면 우리 자신 안에 저 무자성이라고 하는 자성이 없는 근본, 나라고 하는 것이 본래 없거든요. 아상인상중생상이 본래 없는 거거든요. 없는데 그것이 끊어지고 나면은 그 안에 뭐죠? 불성이라고 하는 안의 힘은 불성의 세계가 있다는 거에요. 그럼 지금부터 그 세 가지의 언어를 지금 외웁니다. 그렇죠? 외우는데 뭐라고 그러냐 하면 불성의 힘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거를 우리는 뭐라고 말해요? 아까 말씀드렸죠. 불성의 힘은 곳 내 안에 내재되 있고 밖으로 나오기도 하고 들어오기도 하는 것을 그걸 뭐죠? 선의지라고 표현한 것과 동시에 +에너지라고 표현한다. 그렇죠. 그죠.

 

좋은 에너지를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걸 불교식 개념으로 옮기면 불성의 에너지다. 이렇게 표현해도 전혀 다르지 않으시죠? . 그렇게 됐고. 그래서 이 불성의 힘은 언제든지 갖다 써도 줄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절대 줄지 않습니다. 먼저도 한번 말씀을 드렸어요. 절대 줄지 않습니다. 이거는 화엄경의 말씀으로 넘어가서, 먼저 믿는 마음, 신심을, 마음으로 믿음을 가지고 요것은 실천하시는 것이 먼저 필요해요. 절대 줄지 않습니다. 두 번째 더 이상 바닥이 없거나, 다 쓰고 나면 힘을 쓰고 나면 없다라고 하는 절대 줄어들지 않아요. 소멸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두 번째 기억해야 될 내용이 뭐냐 하면 이것은요, 쓰면 쓸수록 힘이 늘어난다는 거에요.

 

첫 번째 줄지 않는다. 두 번째 쓰면 쓸수록 늘어난다는 뜻입니다. 세 번째 뭐냐 하면 이 힘은 어디에나 있다는 거에요. 그런데 다만 이 힘이 세 가지가 에너지가 세 가지로 정리가 된다. 이렇게 말씀을 드렸죠? 여기 조금만 죄송합니다. 조금만 보겠습니다. 그 에너지라고 하는 것이 이거를 불교식으로 얘기하면은 불성의 힘이. 이게 어디에 있느냐 하면 아까 설명 드리는 나한테 있는 거에요. 그렇죠. 그죠? 그런데 내 안에 껍데기가 이게 뭐죠? 아상, 인상, 그다음에 수상, 이거는 금강경의 말씀이죠. 중생상, 이런 상이 전부 없어지고 난 다음에 이건 다 망상이거든요. 나라고 고집해봤자 저게 없어요. 평생 싸우고 다퉈도 남는 게 있어요? 없어요. 죽는 순간까지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되지 전에 더 비참해지고 더 괴로워지고 더 힘들어지고 더 악한 상태에 들어가기 전에 그 마음을 돌이켜야 되요. 그 의식을 돌이켜서 자기 안에 깃들어있는 불성의 힘을 믿으셔야 돼요. 그런데 이 불성은 뭐라고 한다고요? 줄지 않는다. 그렇죠. 그죠. 써도 써도 모자라지 않는다. 으음. 모자라지 않는다. 써도 써도 계속 늘어난다는 거에요. 늘어난다. 쓰면 쓸수록 늘어난다는 뜻입니다. 늘어난다는 거에요. 그리고 이것은 언제든지 현재라는 거에요. 언제든지 이 불성의 힘은 현재에 있다는 거에요. 요거 세 가지를 외우셔야 되요. 나가면 안 된다. 여기 좀 보세요. 불성의 힘이 여러분들 안에 깃들어 있어요.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어려서부터 스님이 됐기 때문에 이것을 이해하고 여러분들에게 자신 있게 말씀을 드리고, 이건 틀림없이 그냥 진리일 뿐이에요. 이것은 내가 무너져도 진리이고, 내가 살아도 진리이고, 죽어도 진리에요. 다만 그것을 엿보고 접견하는 거죠. 절대 육체가 늙고 병들고 죽고 난 다음에 없어지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이 불성이 깨우쳐지고 나에서 결부가 딱 인연되는 수간부터 그 힘은 절대적으로 줄지 않는다는 거에요. 그 힘을 쓰셔야 되요. 그다음에 모자라지 않는다는 거에요. 계속 쓰면 쓸수록 늘어난다는 거에요. 육체에너지는 좀 한계가 있잖아요. 그죠? 기계의 힘은 한계가 있죠. 이 힘은 절대적으로 천지 만물 우주의 한꺼번에 전부 움직여지는 공급에서 같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거에요.

 

그래서 이건 언제라고요? 현재, 누가 있을 때? 내가 있을 때. 내 의식이 있을 때 전부 작용하고 있는 거요. 이런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고 모자라지 않는 이런 공급이 현재도 언제든지 어떻게 한다고요? 공급해주고 있다는 거에요. 무한공급이에요. 뭐라고 말한다고요? 이 공급이 한량이 없다는 거에요. 무한하다. 그래서 그것을 불설아미타경에서 아주 단적으로 설명해준 게 뭐죠? 무량수 무량광이에요. 딱 답이 나온 거에요. 무량수 무량광이에요. 여러분들이 그냥 단순한 인간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그 안에 실로는 뭐라고요? 무량수에요. 한량없는 수명과 한량없는 광명이 거기 있다는 거에요. 그죠.

 

빛 같은 존재로 무궁무진하게 영원불멸의 존재가 거기 깃들어 계시다는 뜻입니다. 일차적으로 그렇게 표현한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거에요. 그러시죠? 그죠? 이게 어려운 거 같은데도 절대적으로 어렵지 않아요. 그래서 지금은 저한테 도대체 뭔 얘긴지는 모르지만 여러분들이 언젠가는 육체는 人命終時인명종시 하거든요. 그때 제 생각을 할 거에요. 그때 저 뚱땡이 스님이 뭔 얘기를 했는지 그때 외쳐도 소용없어요. 그러니까 지금 스스로에게 감사를 불러들이세요. 지금 번영하고 있는 존재라고 믿으셔야 돼. 내가 지금 좋아져 가는 생명이지 퇴보하는 존재가 아니에요. 누구든지. 다만 어리석게도 그 벽을 자기 스스로 만들어서 그 속에서 못 벗어나는 게 중생심이거든요.

 

자기 육체가 오래간다는 법 없습니다. 자기 내세워도 남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자비를 베푸세요. 인아를 베푸세요. 인자한 자기를 베푸세요. 사랑을 베푸세요. 그런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저 불보살님의 가호지묘력이 항상 언제라고요? 현재에 있어요. 현재에. 요거 잊어버리지 마셔야 돼. 먼저 거 요거 세 개하고 반드시 지금 번영하고 있는 거에요. 좋아지고 있고. 건강한 일을 할 수가 있어요. 건강하게 잘 살아갈 수 있어요. 뭐라고 불러야 되요. 절대 불성의 힘은 줄지 않아요. 모자라지 않아요. 늘어난단 말이에요. 늘상 드러난다는 거에요. 그리고 이 힘은 언제든지 현재성이라는 거에요. 지금 우리가 갖다 쓰는 거에요. 되시죠? 그죠? 참여해주셔서 불자님들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