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스님 _ 제40회 견제불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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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법문/정현스님_불설아미타경

2012.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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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합니다. 잘 지내셨죠? 으음. 그 불설아미타경을 드디어 40회째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그 앞에 보시면 교재에 불설아미타경 교재 25쪽에 보시고 먼저 진행한 내용에 一切諸佛일체제불이 所護念經소호념경이다. 라고 한 부분에 이어서 밑에 보시면 다시 舍利弗사리불이라고 하는 사리불 존자가 등장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요, 낮은 사람이 있고, 높은 사람이 있고, 퍼진 사람도 있고, 키 큰 사람도 있고, 적은 사람도 있기는 있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높낮이가 없는 거에요. 정말로 어떤 것에서부터 직위가 조금 있을 뿐이고 그러나 그 직위에서 떨어지고 나면은 아무 찾을 데가 없어요.

 

내가 좀 시원찮게 느껴지고, 내가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은 내가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이거든요. 자기를 먼저 사랑해야 되요. 자기를 행복하게 만들어야 다른 사람으로부터 나도 행복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거에요. 그걸 가르쳐주시더라고요. 아무도 아무도 아~ 무도 자기를 돌아다 보지 않는 세계를, 그러면 그 스님께서 치매가 들기 전에 설하신 내용이나 또는 대중을 위해서 기도했거나, 또는 전달했던 내용이 없어지느냐 그러면 안 없어지잖아요. 그죠? 그 육체가 치매가 들어서 신음고통을 하고 있을 뿐이지, 그가 평생 살았던 내용만은 아직도 후대에 전해오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사실은 높낮이는 없는 거에요.

 

가진 자가 먼저 베풀 줄 알아야 되고, 먼저 배운 자가 도움을 주고 살아야 돼. 그러고 세상적으로 권력을 가진 사람, 힘을 가진 사람이 자기 입장을 먼저 내려놓고 나보다도 힘든 사람에게 그것을 나눠줄 수 있는 마음을 갖는 것이 우리가 불교를 배우는 이유 중의 하나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자기 자신을 살펴보면은 낮은 인생이 따로 없다는 얘기를 우리는 설명할 수 있거든요. 그것을 석가세존, 불설아미타경은 누누이 말씀드린 것처럼,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말씀을 하셨지만, 그 대담자는 석가세존과 사리붓다 존자시거든요. 사리불 존자와 대화를 하신 거에요. 그 대화 가운데에서 舍利弗사리불이여. 이렇게 물어요. 그죠.

 

下方世界하방세계, 낮은 세계에는 낮은 세계에도 우리 스스로를 자기를 정의하고 자기를 판단하고 자기입장에서 살펴보면은 나는 어지간히 시원찮은 사람이다. 라고 이렇게 말할 수 있잖아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그렇게도 마음에 부담을 느끼고 살아가는 사람이 세상에 참 많거든요. 그런데 석가세존은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가 사는 하방세계, 쉽게 표현하면은 현실이 아주 지옥 같은 삶 속에 살아가는 모습을 갖고 있어도 석가세존은 이렇게 설명하기 시작해요. 그게 뭐냐 하면 有師子佛유사자불. 이렇게 말하는 거에요. 師子佛사자불이 있다는 거에요. 사자는 뭐에요? 용맹이잖아. 다시 한 번, 다시 한 번. 얼굴 들어 저 좀 보셔야 돼. 제가 쉽게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을 해서 이렇게 하는 거거든요.

 

下方世界하방세계라고 표현하는 것은 우리가 얼듯 보면은 낮은 인생이 있다라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나는 실패된 인생이다. 불행한 인생이다. 나는 참 부족한 인생이다. 이렇게 표현하고 요렇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모습 속에 산다는 거죠. 그런데 요게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실질적으로도 성인남녀 천명을 조사해본 결과 거의 85% 이상이 제 인생은, 말을 조심해서 해야 돼. 자기 인생을 스스로는 실패했다라고 표현해요. 얼굴 들어 저 좀 보세요. 자기 자신이 잘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손들어보세요. 그러면 진짜 손드는 사람 드물어요. 손드는 사람이 또 있기는 있어. 잘 살았는지 못사는지 구분 못하는 사람이 손들고, 자기가 잘 살았는지 자기가 못살았는지 구분이 안 돼요. 그러니까 손들어. 자가기 잘못 살았는데도 잘사는 것처럼 착각하고 또 손든 사람도 있고. 뭔 얘기인지.

 

그런데 저 질곡 같은 삶속에 살더라도 석가세존은 우리한테 이렇게 가르쳐줘요. 뭐라고요? 있어. 뭐가 있어요. 師子佛사자불이 있다는 거에요. 저 용맹스러운 부처가 사자와 같은 저런 부처님이 누구한테 있어요? 우리에게 있다는 거에요. 나에게 있습니다. 요렇게 표현하는 거에요. 불설아미타경 경전은 그렇게 설명하고 있어요. 지금. 그렇죠. 그죠. 그러면 名聞佛명문불이다. 이렇게 말하거든요. 여기서 들어야 되요. 有獅子佛유사자불이거든요. 이게 유사불이면 뭐냐 하면 부처님이 용맹을 보이시는 거거든요. 그런 것처럼 우리한테도 그런 용맹을 보이시는 거에요. 그렇게 하자는 얘기입니다. 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사자불의 음성을 듣는 거와 다르지 않습니다. 이렇게 표현해요. 그렇죠. 그죠.

 

그래서 이 소리를 듣는 자는 곧 뭐죠? 부처가 되는 거에요. 저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은 곧 부처가 되는 거에요. 그러면 얼굴 들어 다시 봅니다. 부처님이라고 하는 말은 뭐라고 그랬죠? 복과 지혜가 충만한 상태입니다. 따라 해 보겠습니다. [복과 지혜가 충만합니다.] 이게 나한테 복과 지혜가 충만해지는 것이 다 뭐죠? 불성의 세계에 가까워져 가는 거에요. 극락세계에 나아가는 거에요. 불설아미타경에 표현으로 보면. 이게 요렇게 소리를 듣는 사람이 곧 뭐죠? 나 자신이 석가모니불을 한마디를 듣던지, 반야심경을 듣던지, 나무아미타불 이렇게 한마디를 부르던지 이렇게 하는 사람한테는 곧 뭐가 들려와요? 석가모니 부처님의 용맹스러움이 나를 지켜주고 계시는 거에요. 거꾸로 보시면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되시죠? 그죠?

 

그러면 내가 그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은 곧 뭐가 생겨요? 나도 원만하고 완전한 불성세계를 느끼게 되고, 그것을 사용하게 되고, 그것을 누리게 되는 당체가 됩니다. 그렇게 변해갑니다. 그렇죠. 그죠. 그러면 그 다음부터 名光佛명광불이거든요. 그다음부터 나타나는 것이 名光佛명광불이거든요. 자기 안에 깃들어있는 이름이 스스로 빛나요. 그건 뭐죠? 빛난다는 건 뭐에요? 밝은 세계를 이루어가는 거거든요. 삶이 밝아지시는 거에요. 삶이 원만해지는 거에요. 삶이 성장해 가는 거에요. 그걸 명광불이다. 이렇게 말해요. 똑같은 얘기거든요. 그다음에 나타나는 것이 達摩佛달마불이거든요. 진리라고 하는 달마는 우리가 말하는 법을 얘기하는 거죠. 법은 진리다. 이렇게 말하죠.

 

어떤 큰 스님한테 스님께서 법을 내려주셔야죠. 이렇게 말하니까 법이 어디 있나? 법은 없죠. 그죠? 그런데 보편적인 진리가 있어요. 밥을 먹어도 머리카락이 자라는 게 이게 진리입니다. 하나만 더 정리를 할게요. 이 세계는요 큰 세계와 작은 세계가 있거든요. 그것을 거시세계라고 그러고 미시세계라고 그러거든요. 작은 것은 미시세계라고 그러고, 큰 것은 거시세계다. 이렇게 말하거든요. 같은 우주를 표현할 때도 큰 것은 거시우주라고 말하고, 작은 세계는 미시우주, 유니버설이라고 표현해요. 이렇게 우리가 표현하는 것에도 아주 작은 것은 쿼크라고 하는 힉스라고 하는 이런 단위 부류가 있거든요. 핵 단위 안에 더 밑에 들어가면 쿼크라고 있고 그거보다 더 적은 것이 힉스라고 하는 단위 명칭이 있습니다.

 

그거를 요즘 불교 과학에서는 그걸 뭐라고 표현 하냐 하면 그걸 불성 파라다이스라고 표현해요. 그거를 서구 쪽에서는 신의 영역이라고 표현하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불자니까 그거를 부처님께서 붓다의 불성의 생명을 본질로 표현한다면 그게 핵심 중의 핵심을 우리가 갖는 것을 이야기하거든요. 그것이 아주 작은 초입자라고 표현해요. 극초입자의 세계라 표현합니다. 말이 굉장히 복잡한 거 같은데 전혀 안 복잡하거든요. 그냥 몰라도 일단 그렇다 그러고. 그래서 초극미립의 세계가 있어요. 그 속에서 움직여지는 것이 불교식 개념으로는 그걸 공성이라고 말해요. 다 비어있다는 뜻입니다.

 

우리 세포 하나, 단위 하나하나를 살펴 보면은요, 일만 팔천리까지 크게 전자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은 우리가 핵을 밑에 들어가서 파고 또 들여다보면은 우주처럼 확~ 퍼져 보인다는 거에요. 별처럼 보인다고. 그런 말씀 들어 보셨죠? 으음. 그런 세계가 있다는 거에요. 우리가 하늘 쳐다 보면은 별처럼 퍼져 있잖아요. 세포 하나 전자현미경으로 들쳐 보면은 그렇게 하늘의 별처럼 보인다는, 그렇게 거리감이 있다는 겁니다. 사실은 그 공성 속에 뭐든지 들어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만 더 정리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요, 아까 말씀드린 우리가 표현한 것은 그것을 파라다이스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그걸 우리식으로 붙이면 불성 파라다이스라고 표현하거든요.

 

요것만 변하지 아니하고 이 사바세계, 큰 거나 적은 거나 움직이거나 말거나 할 것 없이 전체 다 움직이고 있다는 거에요. 그런데 움직이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회전하고 있다는 거에요. 지금도 이 순간에도 회전하고 있다는 거에요. 믿어지지 않으시지만,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는 일천 킬로 이상, 마하 1의 속도로 태양을 지금 달리고 있거든요. 안 돌고 있으면 큰일 납니다. 돌아야 되지. 그래서 세상의 사람들이 한 번씩 머리 돈 사람들이 생기죠. 핀트가 안 맞으니까. 오행이 안 맞는 거에요. 아니 실제로, 그래서 그것 안에 보면은 핵에 보면은 전기 만들어놓은 핵이 있잖아요. 그 안에 들여다보면 용광로에 막아 놔서 그렇지, 그 안에서 엄청난 분열이 일어나거든요.

 

그런 것처럼 그것을 우리는 불성의 세계라고 말해요. 힘의 원천이라고 표현해요. 그것을 불성아미타경에서는 뭐라고 표현했냐하면 무량수무량광이라고 딱 정리해 놨어요. 불자님들은 그걸 사랑하지 못하는 거에요. 자기 안에 무량수라고 하는 것은 영원한 생명이다. 요렇게 표현하는 거잖아요. 무량광이라고 하는 거는 한량없는 밝은 세계 아니에요. 밝은 세계는 대긍정의 세계고 대조화의 세계이기 때문에 생명이 성장하고 있는 거에요. 나아가는 거에요. 늙고 병들고 죽어버리고 없어져 버리는 과정이 아니라. 실제로 이게 드러나 있고, 나아가는 거에요. 그래서 여기 뭐라고 표현했냐하면 진리의 세계라고 표현하는 거에요. 광명불이라고 반드시 설명하고 있거든요.

 

힘에 원동력을 우리가 우리 스스로 가지고 있는데, 이게 왜 안 이루어지느냐? 우리 스스로 사랑하지 않는 거에요. 무량수를 믿지 못하는 거에요. 무량수를 무량수. 이러잖아요. 한량없는 생명이라고 하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때 비로소 우리가 영원한 생명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하는 거죠. 그걸 누가 갖다 줘요? 達摩佛달마불, 진리가 요걸 깨우치게 해줘요. 정말 광명스러운 세계를 우리 스스로 느낄 수 있게 설명하는 것이 요게 達摩佛달마불이다. 요렇게 말해요. 法幢佛법당불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법당불이다. 이건 뭐냐 하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을 이겨가게 하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을 이겨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거에요. 당연하다. 이렇게 표현하잖아요.

 

들고 가는 거에요. 깃발이에요. 하는 일마다 좋아지는 거에요. 안 되는 일인 거 같은데도 좋은 일이 와 있어. 무량수 무량광의 한량없는 공급을 받아들이기 때문이에요. 피부 하나하나, 머리카락 하나하나 그런 모든 은혜 공덕이 다 내게 느껴져 오는 거거든요. 제 마음을 제 스스로 깜깜하게 하고 있을 때는 안 된다는 거에요. 분노하고 있을 때는 공급이 차단되고, 웃고 즐겁고 행복하고 감사하게 행하고 있을 때 비로소 그 공급력이 피부 호흡한다는 말 들어보셨죠? 피부도 호흡해요. 산소 같은 얼굴, 이런 거 있잖아요. 法幢佛법당불이에요. 이 얼굴을 당당하게 내보내셔야 돼. 얼굴을 딱 밝게 하셔야 돼. 그렇죠. 그죠. 저처럼. 히익~ 그걸 법당불이다. 이렇게 말해요. 안 믿으시지. 지금. 안 들리시지. 지금.

 

이 몸뚱어리 이 자체가 이게 受持心是神通藏수지심시신통장이잖아요. 이 몸뚱어리 자체가. 받아가진 이 몸뚱어리가 깃발이라고 그러잖아요. 이 몸 자체가. 그러고 나서 스스로에게 뭐가 생기냐 하면 持法佛지법불이 나와요. 법을 진리가 내가 가졌어요. 진리를 내가 가지게 돼요. 어떻게요? 손으로 딱 갖게 돼요. 受知佛수지불이다. 이렇게 표현하기도 하거든요. ()자를 써서 수지불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미타경에선 뭐라고 설명해놔요? 持法佛지법불이에요. 손에 법을 갖는 거에요. 법을 갖는다는 것은 진리롭게 산다는 뜻이거든요. 가을이라서요, 가을이어서 낙엽이 떨어지는 것이 그러면 낙엽이 죽었거나 나무가 잘못됐거나 이리된 게 아니거든요. 다음 해에 더 좋은 성장의 모습을 갖기 위해서 떨어져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떨어진 것만 쓸쓸한 것만 찾지 말고, 그다음날 봄에 더 영글었고 더 멋있고 더 아름다운 새싹으로 태어나는 것을 볼 수 있어야 돼요. 그렇죠. 그죠. 그게 지법불입니다. 자기 능력이에요. 남이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지법불이에요. 다시 한 번 더 봐요. 그러면 뭐라고 설명이 돼 있냐 하면 如是等여시등, 이와 같이 이렇게 표현해요. 이와 같이 앞에 처음에 사리불이여, 사리불하고 대화가 시작 돼요. 下方世界하방세계. 하방세계는 고가 있는 세계에요. 아픔이 있는 세계입니다. 현실적으로 엄청나게 힘듭니다. 그리고 그 벽은 깰 수 없는 세계처럼 보여 집니다. 그런데 석가세존은 뭐라고 말해요?

 

네가 용맹스럽게 하지 않을 때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나아가야 되잖아요. 그런 용맹스러움을 가지고 세상을 한 걸음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가는 것을 가르쳐 주는 거에요. 그러면 스스로에게 들리리라. 뭐가 들려요? 진리가 들리고 살아갈 길이 자기 스스로 깨우쳐서 인식이 저절로 깨어나게 돼 있습니다. 왜 여기 계속 부처부처부처라고 계속 부처님을 여기 달아 놓은지 아세요? 그 얘기는 계속 강조하고 있잖아요. 내가 부처인 것처럼 당신에게도 복과 지혜가 충만한 존재라는 거에요. 언제부터? 태어나기 이전부터. 현재 살아가고 있는 동안에도 복과 지혜가 충만한 존재라고 하는 사실을 일깨워 주기 위해서 아무개불 아무개불 아부개불, 계속 나오죠. 아무개불 얘기해놓으니까. 또 그 스님은 아무개불만 자꾸 얘기한다고.

 

如是等여시등이야. 이와 같이. 반드시. 그러니까 더 많은 부처가 있다는 얘기죠. 여시등. 이렇게 표현한 것은 무슨무슨 부처님이 더 계실 건데 줄여서 설명해서 책으로 만들었겠죠. 이것을 恒河沙數항하사수. 저 모래 속초 바닷가 모래 헤아리듯이 그렇게 많은 부처가 계시다는 거에요. 그렇죠. 그죠. 이 얘기는 곧 우리한테 모든 다 부처의 세계를 가지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너무 기가 막힌 거죠. 경전은 놀라운 것입니다. 세상은요, 이거를 우리 식으로 얘기하면 이게 말씀이라고 표현하잖아요. 이 말은 곧 현실입니다. 내 말이 곧 현실이에요. 절대 안 되는 거 꿈꾸지 마세요. 걱정근심으로 노사초심해서 자꾸 마음 끓이고 계속 그러고 있으면 반드시 그 일이 현상으로 와요.

 

그러니까 그럴 때마나 마음속으로 나무아미타불. 이렇게. 또는 지장보살. 또는 관세음보살. 이렇게 부르고. 저 곤란이 다가와도 오히려 큰소리로, 감사합니다. 라고 외치고, 용맹스럽게 나아가셔야 돼. 그러면 진리 세계는 반드시 자기의 문을 열어줘요. 좋은 세계로 자기를 인도해주거든요. 그 세계는 各於각어. 각기 그 국토에 , 나와요. 내가 가는 곳마다 이렇게 이해되고 이렇게 생각이 이루어지는 그런 깨달음의 세계가 우리가 갖추어지시잖아요. 집에 가면은 그게 나타나요.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면 자기에게서 나타나요. 뭐가요? 복과 지혜가 나한테서 드러나게 돼 있어요. 그 얘긴 아까 말씀드렸죠? 내 스스로를 사랑해야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거에요.

 

왜 저 인간이 날 안 사랑해주나. 이런 건 자기 바보에요. 자기가 사랑받을 짓을 해야 사랑을 받지. 나한테 안 해주는 것만 원망하고 불평하고 그것만 가지고 자꾸 되새기면은 오다가도 다 도망갑니다. 各於其國각어기국이거든요. 각기 가는 곳마다 자기 안에 뭐가 드러나요? 복과 지혜가. 불성의 세계가 드러나는 현실에서 복과 지혜가 드러나는 거죠. 그게 뭐냐 하면 광장설상. 이렇게 돼 있거든요. 넓고 길게 오랫동안. 내가 생명을 가지고 있는 동안은 언제든지 육체가 있는 동안 또 그다음에 자기를 깨우쳐서 자기에 대한 확답이 생겨 가면 갈수록 자기의 삶은 영원히 불멸하게 뭐가 생겨요? 복과 지혜가 계속 쫓아다니는 거에요. 우째 어떻게 그냥. 으음.

 

이것이요, 단순하게 정리가 된 게 아니라 석가세존은 뭐라고 표현했냐하면 遍覆三千大千世界변부삼천대천세계라고 이렇게 말했어요. 이 힘은 이 능력은 이 광명은 뭐라고 표현해요? 遍覆변부. 저 끄트머리까지 동서남북과 상하를 이루어진 모든 것에까지 저 三千大千世界삼천대천세계까지 다 뭐죠? 說誠實言설성실언. 이것은 정말로 간곡하고 정말로 신실하게 설해졌어요. 어떻게요? 그죠? 진실을 다해서 설해졌다. 석가세존이 이렇게 설명한 거에요. 정말로, 간절하게 이걸 설명을 한 거에요. 그렇죠. 그죠. 汝等衆生여등중생. 이와 같이 나와 이게 여등이라고 하는 것은 나라는 뜻이거든요. 나와 더불어 나와. 지금 현재 나와 더불어.

 

그러니까 석가세존이 자기를 얘기해요. 나와 일체 이웃과 함께하는 모든 생명체는 마땅히 이것을 어떻게 하라고요? 믿으라. 동서남북 하면서 계속 같은 것이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거든요. 마땅히 믿어야 된다. 어떻게 믿어야 되느냐? 是稱讚시칭찬. 지금 이 순간 자기를 찬탄해야 되요. 부처님을 찬탄하는 것을 곧 자기 자신을 찬탄하는 거거든요.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 거에요. 자기가 잘하는 것을 인정하는 겁니다. 얼굴 들어 저 좀 보세요.

 

사람이 살면서요. 할 수 없는 거 굉장히 많잖아요. 대신해줄 수 없는 거 있잖아요. 밥 먹는 건 대신 먹어 줄 수 없어요. 그거 안 되잖아요. 그죠. 화장실 가는 거 대신 가 줄 수 없습니다. 그렇죠. 그죠. 공부하는 거 대신 못 해줍니다. 어머니라도 그거 못 해줍니다. 자식이라도 그거 못 해줍니다. 그렇죠. 그죠. 못하는 거 더러 있잖아요. 그죠. 대신 못한 거 굉장히 많습니다. 인생사는 거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서로 영향은 줄지언정 결정은 전부 자기가 합니다. 그렇죠. 그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엄청나게 많은데, 자기가 해낼 수 있는 일들이 너무나 많이 걸 발견했어요. 목탁도 칠 수 있죠, 염불할 수도 있죠. 기도할 수 있죠. 왜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근심을 하느냐고요.

 

세상을 즐겁게 행복하게 살아가야 될 것이 마땅해요. 그게 법당이에요. 마땅히 그런 거에요. 깃발처럼 마땅히 하는 거에요. 그걸 안 하는 거에요. 운전 배울 수 있죠. 두 다리 멀쩡하고 걸을 수 있다면요, 이건 기적과 같은 삶에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이 베풀어지지 않은 것이 없어요. 햇빛 있어 감사하죠. 그러니까 이걸 거꾸로 살펴보니까 대신 해 줄 수 없는 것은 굉장히 적어. 그런데 할 수 있는 일은요, 엄청나게 많은 거에요. 머리카락 자라는 것도 지가 하지 누가 대신해주나? 다 자기가 하는 거에요. 자기가. 자기 스스로 하는 것이에요. 남편 꼬락서니 만드는 것도 자기가 하고, 고약한 아내 만드는 것도 자기가 만들고.

 

삶이 다 똑같은 거에요. 그런데 불행한 이유가 뭐에요? 불행한 요인이고 그런 인자를 불러들이는 건 뭐에요? 오직 마음속에서 자기 스스로 스스로를 어둡게 하고, 스스로를 무명하게 만들고, 스스로를 아프게 만들어. 그걸 즐기는 사람이 더러 있어. 그거는 굉장히 잘못된 거거든요. 자기가 스스로 들여다봐야 되요. 자기 스스로 그 원동력을 들여다보실 필요가 있으세요.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 많은데, 안 하는 사람이 더 많아. 옛날 말에 이런 말 있어요. 서서 걸으면은 앉고 싶어요. 앉으면은요 눕고 싶어요. 누우면은요 일어나기 싫어요. 옛날 경전 안에 그런 말이 있는 거 봤어요. 어릴 때 배웠어요.

 

그래서 자꾸 그러면 그럴수록 뭐죠? 세포는 안 움직이니까 움직여야 걸어야 세포가 핵이 움직여지고 해야 안에서 난리가 나야 퍼덕퍼덕 움직여서 소비도 되고 신진대사가 이루어져가지고 건강이 찾아지거든요. 누워서 안 되는 거에요. 누워서. 다 환자를 보면요, 암 걸리거나 이렇게 아픈 사람들 있잖아요. 첫째 아프면 남 원망해. 희한하죠. 그죠. 불자님들이 들으셔야 되요. 몸이 일단 아프잖아. 그러면 최소한 애교를 가지고 최소한 밝게 지내야 돼. 그러고 장병이 치료해야 되는 사람 있잖아요. 물론 본인이 괴로워서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그런데 일단 몸이 아프면 웃어야 돼. 즐겁게 살아야 돼. 그래야 병에서 벗어나지. 조금 아프다고 또는 중병이 들었어도 밝게 지내시지 않으면 아무도 그를 돌아다보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로 요즘 요양 시스템 같은 이런 것들이 의료시스템 이런 것들이 우리 한국에 너무 잘 돼 있어요. 우리나라가 좋은 나라입니다. 저쪽 어디 저~ 아프리카, 내 어디라고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현 정부가 거의 만 8천 명을 죽였는데도 아직 정권을 안 내어놓는 그런 사람도 있어요. 거기에 비하면요. 엄청나게 민주화가 잘 돼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고마운 줄 모르는 거에요. 국민의식이 조금씩 변해 가셔야 돼. 감사할 줄 아는 의식이 좀 변해 와야 돼. 고마운 것을 들여다보고 살아야지 안 되는 것을 자꾸 들여다보고 살면은 거 뭔 덕이 생기겠어요. 덕이 안 됩니다. 이 부처님의 가르침은 삼천대천세계까지 미쳐서 거기까지 간다는 거에요. 그렇죠. 그죠.

 

어떻게 한다고요? 마땅히 믿어야 된다는 거에요. 이것을 지금 이 순간 칭찬으로 찬탄으로. 그렇죠. 인생을 그렇게 바꾸어가는 거에요. 그렇게 바꾸어 가면 불가사의한 공덕이 생긴다는 거에요. 이거 제 얘기가 아니고 석가세존이 그대로 설명 말씀하신 거에요. 이것이 불가사의한 공덕이 거기에 막 스며들어온다는 거에요. 이것은요. 일체 모든 부처님도 일체 모든 존재하는 모든 부처님의 세계에서 뭐라 표현해요? 所護念經소호념경이에요. 같은 말이에요. 어떻게요? 보호하고 깊이 생각해서 가지고 있을 경전이다. 이렇게 말하는 거에요. 그러면 이 책을 이걸 아주 귀한 거라고 주시면서 금으로 싸놓을까요? 내용은 그 얘기가 아니죠. 경전을 읽는 것은 내가 나아지는 거에요. 내가 좋아지는 거에요. 병에서 벗어나는 거에요.

 

자유롭게 사는 거에요. 생각 바꾸는 거에요. 마음 바꾸는 거에요. 평생 절에 불교적 내용이 마음 닦기 아니에요. 그죠? 으음. 그렇죠. 그죠. 시간이 다 돼가는데 좀 보십시다. 49쪽을 보시면 드디어 40번째 見諸佛土願견제불토원. 의역을 붙이면 뭐라고 그러냐 하면 내가 보는 모든 세상은 따라 읽으세요. [내가 보는 모든 세상은 다 부처님의 땅이에요.] 모두 다 부처님 땅입니다. 보시죠. 그죠. 그럼 40번째 뭐라고 표현했냐하면 누누이 여러 번 설명 말씀드렸는데 이건 보다라는 뜻입니다. 이거는 모든 것이라는 뜻이거든요. 모든 것. 모든 것을 어떻게 본다고요? 부처님처럼 본다는 거에요. 부처님은 누누이 말씀드린 것은요.

 

부처님은 지혜로 가득 차 있는 것이고, 만복이 깃들어있는 것이 부처님이에요. 다른 말로 쉽게 표현하시면. 이해되시죠. 부처님이라고 하는 말은 복이 충만한 거에요. 지혜가 충만한 것입니다. 그런데 살펴보니까 이 땅이, 현재 땅이 지금 현재 땅이잖아요. 이 땅은 가득한 거에요. 우리가 땅을 밟고 다니는 사람들이거든요. 아니 2층에 있거나 19층에 있어도 역시 땅을 의지해서 다리도 생기고 건물도 생기잖아요. 땅을 의지하고 살아야 되요. 내가 가는 곳마다 뭐죠? 모두 부처라는 거에요. 그렇게 봐야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보는 것이냐고 설명하는 것이 우리가 말하는 원이 여기에 생기게 되겠죠. 그래서 원하는 것은 자기가 발원하는 거거든요. 그럼 보십시다. 보자. 어떻게 보자고요? 모든 것을 다 뭐라고요? 부처님의 땅으로.

 

그걸 보고 뭐라고 그러냐 하면 이것을 극락세계라고 표현하는 거에요. 즐거운 세계. 극락세계는 뭐에요? 우리가 사는 것은 밝음이 가득한 세계고. 밝음의 세계에요. 긍정의 세계에요. 대 긍정의 세계에요. 밝은 세계 극락세계는 뭐죠? 큰 조화의 세계입니다. 조화라고 그러죠. 조화세계. 조화의 세계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이끌어내는 것에는 우리가 찾아가면서 뭐라고 찾아 설명 드리느냐 하면 안목이 열리실 때 모든 것을 들여다볼 때 어떻게 본다고요? 저게 다 부처님의 땅이구나. 이렇게 보셔야 돼. 이렇게 마음의 세계에 문을 여는 거에요. 생명의 세계에 문을 여는 거거든요. 그래서 불교인들은 불교 신행인들은 어떻게 표현하느냐고요?

 

조금조금조금씩 자기를 열어가는 거에요. 조금조금조금씩 자기를 좋게 보기 시작하는 거에요. 그러나 이것을 안목이 열려야 되요. 조금만 우리가 마음의 수준을 조금만 높이자는 거에요. 높이시면은 저 가난은 스스로 무너지고 천수경에 보면 뭐라고 그래요? 내가 나아가면은 칼산도 무너지고 저 장애의 산도 무너지고 모든 고난과 가난의 세계도 다 무너져 버리고 없다는 거에요. 단지 내가 나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사자불이라고 그러잖아요. 용맹을 가지셔야 돼. 요즘처럼 어려운 날이 없거든요. 정말 어렵습니다. 어려운 건 사실이에요. 다른 때보다는 80년대 90년대 초전 후보다는 모자른 것이지만 실제로는 우리나라 부자입니다. 편중이 돼 있어서 그렇죠. 오늘 신문에 보니까 기업에서 3백 몇십조를 아무 사용하지 않는 유금이라고 하는 게 있어요.

 

그냥 머물러 있는 돈이 300조 이상을 각자 가지고 살아. 아니 우리나라 기업이 그렇게 부자에요. 으음. 그런데 나라도 지금 가난하죠. 도산 직전이고요. 개인들이 전부 가난해요. 아까 저 택시 타고 들어오다 보니까 안 맞는 거에요. 하루 종일 시간 일을 해도 3만 원, 4만 원 가져가지 힘들다는 거에요. 왜냐하면, 가스값이 너무 올라가지고 감당이 안 된다는 거에요. 우리가 사는 것이요, 이렇게 요런 상태로 살아가고 있어요. 실제로 만 원 들고 가서 먹고 살려면 살 거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진짜 없어요. 배추 하나 사오기도 힘들어져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석가세존이 이렇게 말했어요. 이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다음 세계의 문제가 끝이면 괜찮은데, 살다 보면 또 장애가 생겨요. 또 불편함이 생겨요. 기도해도 불교를 믿어도 안 되는 일이 생깁니다.

 

그러나 정작, 정말로 정작 불교인이 가져야 될 것은 뭐예요? 안될 때도 포기하지 않는 거에요. 물러나지 않는 거에요. 자기 삶에 대해서 스스로를 이해하고 스스로를 용서하고 스스로를 뭐죠? 사랑하는 마음의 태도로 우리 스스로의 모두에게 옮겨가는 힘의 원동력을 좀 가지시기를 바래요. 그렇게 하나둘씩 하나둘씩 이 세상을 이겨가는 그렇게 이겨가는 안목을 갖는 것. 그리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부처의 모습으로 부처의 형상으로 부처의 마음으로 부처님의 무량수 무량광의 한량없는 능력을 우리 스스로 들여다보는 그런 불자가 되시기를 축원하고 공양을 드립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