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스님 _ 제42회 주정불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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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법문/정현스님_불설아미타경

2012.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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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셨습니까? 으음. 아미타경 안에 이런 말씀이 좀 들어가 있는데, 요 구절을 조금 먼저 읽고 진행해 가도록 하겠습니다. [아미타부처님이시어. 대자대비하신 원력으로 저를 증명하시고 가여히 여기사 가피를 내리소서] 이렇게. 아미타부처님께 발원하는 사람한테는 대자대비하신 그 원력이 저를 증명하시고, 저를 불쌍히 여기고, 가여히 여기셔서 가피를 내려주시옵소서. 하는 이런 발원문이거든요. 그래서 그 발원문에는 이렇게 발원하는 과정을 통해서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가? 이렇게 불설아미타경에는 요렇게 설명하고 있어요. 삼매에서나, 삼매는 독서삼매 이런 거 있죠. 정진삼매. 이러는 거. 이런 아주 높은 집중상태를 삼매라 그러잖아요.

 

불교식 얘기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의 상태다. 이렇게 말해요. 이렇게 표현하실 때 삼매나, 꿈속에서나, 거룩하신 상호를 뵙게 하시고, 아미타불을 장엄하신 국토에 다니면서 감로를 뿌려주시고, 광명을 비추어주시고, 손으로 쓰다듬어주시고, 가사로 덮어 주셔서 그 법복을 입게 하게 하고, 업장을 소멸하게 하고, 선근_착한 뿌리는 자라나게 하며, 번뇌는 없어지게 하고, 무명은 깨어나서, 원각의 묘한 마음이 뚜렷하게 열리옵고, 극락세계가 항상 현전에 나타나게 됩니다.] 이렇게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이 무슨 뜻이냐 그러면, 발원하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 수행하는 사람. 그리고 요걸 행동으로 같이 옮겨주는 모든 수행자는 다 저 아미타불의 가호지묘력이 늘 현존 안에 존재해 간다. 요런 말씀이죠. 너무 쉬운 표현인데.

 

이렇게 우리 앞에 부처님의 가호가 내게 항상 움직여지게 하려면 뭐를 해야 되느냐 하면 이 목숨이 다 마칠 때까지, 오직 정성으로 기도하고, 오직 뭐죠? 신뢰로, 그러니까 신행으로 믿음으로, 이렇게 하나하나씩 맞춰갈 때, 미리 이렇게 발원하고 이렇게 행하는 사람한테는 미리 여러 가지를 알으셔서 병고액난을 이 몸에서 사라지게 하고, 탐진치 온갖 번뇌 이런 모든 것들을 씻은 듯이 없어지게 하시고, 육근이죠. 그죠.? 육근은 안이비설신의가 육근이죠? 그죠? 사람의 형태소가 다 안이비설신의라고 그러셨죠? 그런걸 보면은 이 육근이 화락하고. 화락한다는 것은 편안하고 넉넉해지고 이런 뜻이죠.

 

화락해지고 한 생각 분명하여, 이 몸을 버리듯이 정에 들어서, 기도 삼매에 깊이 들어가고, 그러니까 일심으로 기도를 잘하시면, 이런 뜻이죠? 선정에 들어가듯이. 그때에는 아미타불께서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님을 두 분을 이렇게 영접하셔서 모든 성중을 데리고. 이때 모든 성중은 화엄성중, 또 내지 일체 모든 현상, , 현상에 일어나는 성인들이 다 광명을 놓으시고, 그다음에 그 광명으로 맞으셔서 손을 이끄시고, 높고 넓은 누각과 아름다운 깃발과 맑은 향기, 천상의 음악, 거룩한 서방정토 눈앞에 나타나면, 보는 이, 듣는 이마다 이를 기뻐하고 감격하여, 위없는 보리심을 내게 하여지이다.] 이러거든요. 이게 조금 길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우리가 믿지 못하는데 요게 병폐가 있어요. 우리가 들여다보는 모든 현상이 자기 눈이 전부 자기 거라고 확인할 수 있는 세상은 아무것도 없거든요. 그래서 이거를 보고 불설아미타경에선 이걸 보고 뭐라고 그랬냐 하면, 염불하는 것도 요게 방편이에요. 그러시죠. 그죠. 이게 방편 중에도 여러 가지 방편이 있는데, 그중에 실상 방편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실상방편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염불하고 수행하는 것으로 해서 자기 안에 본래 불성이 지금 현존에 밖으로 드러나게 하자. 하는데 요런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 부처님께서 잘 가르쳐준 것처럼 틱낫한이라고 하는 유명한 스님이죠.

 

저쪽에 프랑스에서 ***처럼 만들어서 정토법문을 가르쳐주고 계세요. 그분들이 서구인한테도 이게 정토법문을 가르치고 계신 게 틱낫한 스님이시거든요. 그분이 설법한 내용 중의 하나가 뭐라고 말 했냐 하면 이제 잘 공부를 하겠습니다. 우리가 지금 사는 시간이 우리가 사는 이 처소가 우리가 살아가는 매 순간순간 살아가는 생명체가 움직임 이 자체를 뭐라고 보느냐 그러면 정토요, 정토가 여기라는 거에요. 내 마음도 정토고, 내 생각도 정토이고, 내 감정도 정토이고, 내 정신도 정토에요. 내 몸뚱어리도 정토에요. 이 분이 이렇게 표현해요. 여기가 정토요, 지금 사는 곳이 정토요, 여기 호흡하는 곳이 극락세계라는 거에요.

 

이게 뭐냐하면, 정토를 어떻게 드러나게 할 것인가? 극락세계를 어떻게 내 현실 안에 그대로 구현할 수 있는가? 요런 질문이잖아요. 그런데 이걸 드러나게 하려면 전념해야 된다는 거에요. 나는 전념하는 자세로 미소를 지으면 내 삶이 전부 극락세계로 변한다는 뜻입니다. 놀라운 설법을 하셨어. 이건 저 혼자, 내가 악을 쓰는 게 아니라, 석가세존도 이미 말씀하셨고, 또 큰스님들이 무수히 많이 이것을 증거 해 주시는 과정을 통해서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거거든요. 보십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머물고 있다는 거에요. 누가? 불성부처님의 위대한 작용이 지금 나한테 있다는 거에요. 이것 자체는 전체적으로 방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방편을 통해서야 비로소 자기 안에 깃들어있는 불생불멸, 원만하고 완전한 불성부처님을 내가 현실에서 자기가 사용할 수 있게 된다는 거에요. 부처님은요, 부처님은 모셔 놓으려고 하는 부처님도 계시고, 공양을 올리는 부처님이기도하고, 수행의 대상이기도 하고, 존경의 대상이기도 하고, 신행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말로 우리 안에 깃들어있는 불성은 뭐에요? 내가 지금 사용해야 되요. 내안에 깃들어있는 불성을 내가 사용할 줄 알아야 되요. 그런데 이분은 뭐라고 설명했어요? 살짝 웃는데 거기서 뭐가 생겨요? 불성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거에요. 불성이라는 말은 원만하고 완전하다는 뜻과 동시에 뭐라고 말해요? 복과 지혜가 완벽한 상태란 얘기죠. 정말이에요.

 

어디서든지 내가 수행하는 사람, 내가 기도하는 사람, 내가 발원하는 사람, 정말로 좋은 것을 세상에 내가 나누어서 써야 되겠다는 이렇게 사용하는 마음을 갖는 사람, 이건 불성을 사용하는 거에요. 불성을 자기가 다 체달하고 나서 일체중생을 제도하겠다. 이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안에 동시에 같이 깃들어있다는 거에요. 지금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조금 전에 말씀드렸죠? 그죠? 손톱, 발톱, 이런 모든 것까지도 다 뭐죠? 불성의 화현이고 불성의 화신이라는 뜻입니다. 이걸 사용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사용하려고 우리는 절에 오는 거잖아요. 절에 다니는 이유가 뭐에요? 보다 원만하고 완전해지는 거죠. 보다 정말로 편안해 지는 거에요. 정말로 삶에 대한 귀함을 자기 스스로 체달해 가는 거에요. 조금 조금씩.

 

한꺼번에 다 하려고 하지도 말고. 그렇게 해 나가면은 저~ 가을이 익어가는 모습 안에도 거기에는 불성부처님이 거기 계시고, 구름이 뭉게구름 많잖아요. 보면서 부처님처럼 보이는 거에요. 그런데 내 마음이 근심과 걱정으로 딱 들어 채우고 있는 동안은 하얀 뭉게구름을 봐도 깜깜한 하늘처럼 보인다는 거에요. 그렇죠. 그죠. 그 극락세계는 어디에 있다? 불설아미타경의 핵심은 뭐에요? 지금 이곳에서, 여기서, 지금, 요기, 이 자리에서, 여기서 세상에 가장 편한 자리에요. 법문 듣는 요순간이 부처님의 진리 그 광명 세계가 나한테 지금 비추어 주고 있고, 손을 이렇게 잡아 주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제발 병드는 사람, 억지로 제힘으로는 안 되잖아요.

 

그러나 어디선가 자기 마음이 자기 육체에다가 불러다 넣었어요. 누가 밀어 넣은 거 한 번도 없습니다. 극락세계는요, 곧 나 자신에게 있어요. 자기 말끝에 있어요. 자기 눈빛에 있어요. 자기 냄새 맡는데, 요 현상에 지금 있어요. 왜 그러냐 하면, 왜 지옥 같은 삶을 살까? 왜 싫어. 싫어. 싫어. 이런 소리가 계속 반복적으로 나올까? 이게 인식의 전환이 좀 필요로 하죠. 불경을 배워야 될 이유 중의 하나가 아주 쉬운 단계로부터 요게 하나씩 바꿔가는 과정을 설명해 가고 있죠. 그죠. 그래서 요걸 이렇게 표현해요. 지금 이곳이 나의 가장 큰 안식처이다. 그렇죠. 그죠. 내 집안이 가장 큰 뭐죠? 편안을 누리는 세상이다. 내가 호흡하고 있는 동안 내가 위대한 생명체라는 거에요.

 

둘도 바꾸지 아니하는 어마어마한 생명체, 그 자체라는 거에요. 요렇게 설명 드리고 있는 것이 우리가 부처님 가르침 중에 핵심 중의 핵심이에요. 호흡을 들이쉬는 것만큼 감사한 느낌을 가슴속에 전체적으로 전율이 일어날 정도로 돼야 돼. 요게 안 되기 때문에 우리는 연습이라는 과정을 겪고 있거든요. 그게 기도에요. 기도는 곧 적응해 가는 과정이니까. 나빠져 가는 과정은 일반 세상에 살면 보편적으로 얼마든지 나빠져 가는 과정은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해오고 있거든요. 그런데 불교인은 뭐에요? 좋아져 가는 적응을 계속 반복적으로 하자는 게 이게 불교의 수행이고 기도잖아요. 그렇죠. 그죠.

 

그래서 들여 마실 때는 저 지평의 넓은 야생초처럼 그렇게 신선한 소나무 향을 받아들이시듯이 기쁘게, 실내든 밖에든 매연 속에 있든지 말든지 그렇게 받아들이시라고. 이렇게 마음이 하나하나씩 자기가 조금만 가라앉아지고, 조금만 기뻐해지고, 조금만 편안한 상태로 자기를 유지해 갈 수만 있으면 그것 자체가 이미 자유고 이미 뭐죠? 행복이고, 이미 뭐죠? 평안함이 거기 깃들어 계시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순간순간이 계속계속 연결하지 않는 게 문제거든요. 따라 하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아니라면 영원히 극락세계에 들어갈 수 없다.] 어디로? 극락세계에 갈 수 없다.

 

정토라고 하는 것이 결국 불설아미타경에 관무량수경하고 이렇게 삼부경이 있거든요. 무량수경, 관무량수경, 아미타경. 정토삼부경이라고 하는 경전이 있으시거든요. 우리가 사는 세계는 눈으로 들여다보면 이 세계는 전부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이렇게 표현해요. 아픔이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생기고요. 그런데 조금만 저 아픈 눈에 안목을 조금만 우리 스스로 바꾸어 놓으면은 매일 매일이 매 순간순간이 뭐죠? 정토의 세계가 보인다는 거에요. 다만 우리,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거에요. 마음을 바꾸지 않기 때문에. 내 마음을 먼저 극락으로 만들면 들여다보는 모든 것이 다 극락세계로 보일 수 있다는 거에요.

 

그래서 이게 정돈해 놓은 것이 더러 있는데 미타요해라고하는 불설아미타경, 관무량수경, 무량수경, 시방세계에 모든 불보살님들이 계시고, 모든 중생들이 살고 있으므로써 생명이 있는 것에는 다 뭐죠? 불법이 있다는 거에요. 쉽게 표현하면 사람이 살아가는 어느 곳에든지 진리가 없을 수가 없다는 거에요. 어느 곳에서든지 진리가 있다는 거에요. 불법이 있다는 것은 부처님의 진리가 있다. 요런 뜻이거든요. 쉽죠. 그죠. 그래서 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아주 여러 단계 차원으로 설명 드렸는데, 이것을 이 불설아미타경에서는 뭐라고 그런 부분을 건드려 놨느냐 그러면, 우주도 많은 차원이 있는 것처럼 불법세계에서도 아주 여럿, 부처의세계가 생명체계가 여러 여러 다른 단계성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돼 있거든요.

 

그런데 육도중생이라고 하는 세상에 살잖아요. 지옥같은 세계를 살고, 아귀_배고픔에 살고, 허덕이며 살고, 또 뭐죠? 축생_ 어리석어서 살아요. 그래서 매일 매일이 이렇게 분노하고 인과관계 속에서 살고 있고, 한때는 또 즐겁잖아요. 그죠? 이것을 일생 분으로 나눠보면 초년기 청년기 중년기 노년, 이렇게 되거든요. 노년기 이렇게 되잖아요. 이런 것도 나눠보면 역시 또 윤회에요. 매일 매일이 지수화풍이 돌아가듯이, 사계가 돌아가듯이, 동서남북이 움직여지듯이 이렇게 매일 매일을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되잖아요.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는 삶 속에서 석가세존은 들여다봤어요. 어떻게 봤어요? 같은 것이라도 같은 고통을 느끼고 있을지라도 그 고통이 오히려 내가 이게 감사한 것이다라고 느껴지는 그 순간에 그 사람한테 해탈이 생기는 거에요. 기막혀요.

 

마음 세계가 마음 바뀐다. 이런 말을 조금 쉬운 얘기로 뭐냐 하면, 한 번씩 헷가닥 해야 돼. 으음. 정말이에요. 딱 한 번씩 바뀌어야 돼. 그러면 껍데기의 내 삶이 아니라. 자기 안에 살아있는 불성부처님의 원만하고 완전한 상태를 사용하게 되는 자기 삶을 주리게 돼요. 말이 좀 어려운 거 같은데도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이거 보세요. 사람이 천상에 잔치가 끝나면 언제든지 지옥에 떨어질 수 있다는 거에요. 천상의 한차례 잔치가 끝나면 그다음에 인간계로 다시 가게 되고, 또 분노의 세계에 싸우게 되고, 또 뭐죠? 어리석은 짓을 반복적으로 하고 평생 살다 그러고 가고. 그게 중생이라는 거에요. 이것에서부터 이것의 움직여지는 것을 그만 그치고, 정토 세계. 극락세계로 나가는 것을 오직 뭐한다고요? 마음에 집착과 분별, 그런데, 요 단편적인 것에만 벗어나고, 고것만 안목이 조금만 열리시잖아요. 그죠? 그러면 무한대에 다차원의 세계를 보게 돼요.

 

중생의 삶은 일단 육도를 윤회한다. 요거를 인정하는 거에요. 우리가 어떤 것에서 벗어나려면 이것이 고통이라고 자기에게 가슴에서 치고 지나가야 되요. 그래야 이게 벗어져. 자각해야 되거든요. ~ 이거 가슴 아픈 고통이구나라고 느껴져야 깨우쳐지잖아요. 그런데 고통 자체도 모르고 지나가면 어떻게 해요? 영원히 못 벗어나는 게 문제에요. 그죠. 그러니까 거꾸로 얘기하면 저 불행감이나 저 실패가 저 아픔이 저 곤란함이 나를 밀려오는 것은 오히려 내 가슴을 두드려서 더 많은 차원에 다차원의 생명체계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화엄경에서는 누누이 그 얘기를 설명하고 있거든요. 같은 얘기에요.

 

그래서 고거를 우리들 현실 안에서 고대로 구현시키고 발현시킬 수 있도록 정리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죠. 이렇게 규정시키는 방법이 불교식 개념으로는 어~ ~ 정토염불이나, 정토 그 수행에서는 지금 불설아미타경을 하고 있으니까 같은 맥락에서 보는 거에요. ~ 혹시 딴 얘기 뭐하나 싶어서 다시 잡아주는 거에요. 이래서 수행염불을 하고 있는 과정 안에서 정토, 극락세계가 어디 있다고요? 현재에 있다고 그랬죠. 이 현재에 있는 극락세계를 다른 말로 바꾸면 뭐라고 그런다고요? 나한테 깃들어있는 원만하고 완전한 불성을 내가 현재에서 사용하자는 말로 바뀐다. 이랬죠. 너무 쉽다. 그렇죠. 그죠. 그러면 이거를 어떻게 한다? 그러려면은 제일 먼저 해야 될게 뭐해야 된다고?

 

나무를 해야 돼. 나무아미타불. 첫 번째 나무에요. 내가 귀의할 줄 알아야 돼. 하심 할 줄 알아야 되고 불법승 삼보에 귀의할 줄 알아야 됩니다.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나무 이런 말은 귀의합니다. 돌아갑니다. 요런 뜻이거든요. 어디로? 본래 내가 원만하고 완전한 불성세계로 내가 돌아가겠습니다. 이런 뜻입니다. 그런 얘기는요, 현실로 딱 바꿔 보면은 지금 쓸데없는 생각 하지 않고 씩씩하게 자기 일들을 맞는 대로, 곤란은 곤란한 대로 받아들여서 씩씩히 이겨가는 것. 이것이 불성의 대답이야. 그게 불성을 사용하는 거에요. 그러면 그 곤란은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곤란은 자기에게 이미 곤란이 아니에요. 저는 일 처리 하다 보면 그런 일이 무수히 많이 생겨요. 한 달 전에 저는 눈 수술을 했거든요. 먼저 별 얘기를 다 한다.

 

왼쪽 눈이 꿀 먹은 날 이후로 눈이 잘 안 보이거든요. 그래서 내가 불자님들, 특히 우리 보살 불자님들을 볼 때마다 예뻐 보이는 거에요. 뭔 얘긴지 알아들으면 재미있는 얘기인데 전혀 모르시지. 그런데 이게 오른쪽 눈도 이제 안 보이는 거에요. 깜빡. 하늘이 막 청명스러운데도, 어둡게 보이는 거에요. 그래서 가서 진료를 하고 두 시에 들어가서 검사를 시작했는데, 저녁 7시 반까지 하루 종일 수술을 했어요. 아니 수술을 한 게 아니라 검사. 그런데 수술은 얼마나 간단하게 하느냐 하면은 이걸 퍼내고 드러내고 하면 비용을 100만 원도 넘고 그러니까. 일단 주사로 하는 수술이 있데요. 간단하데요. 5분이면 된데요. 일단 나갈 수 있데요.

 

그럼 이건 한 번만 하면 됩니까? 여러 번 해야 된다고 그럽디다. 그래서 여러 번 해야 된데요. 어제 다시 또 가는 날이 되가지고 오후에 또 갔거든요. 그랬더니 그분이 안약을 넣지 말고 오라는 거에요. 갔더니 쪼리 쪼리 몇 개 찍어보고 하더니 거참 이상하다. 이상하다 그래. 안에 망막 안에 혹이 싹 없어져 버렸어요. 두 번 다시 수술 안 해도 된데. 두 달 후에 오래. 아니 아니 박수칠 거 아무것도 없어. 그런데 묘한 것이 있어요. 묘한 것이 있어요. 제가 하고 있는 것은 처음에는 어렸을 때는 관세음보살을 불렀거든요. 내가 변절자 같애. 관세음보살한테는 아주 변절자 같애.

 

그러다가 심원사 주지 살면서 지장보살 지장보살 눈뜨면 지장보살이 이게 현존에 보일 정도로 됐어. 그게 쪽~ 익어가니까, 아예 그냥 한 승급을 바로바로 승급을 시켜주더라고. 그래서 건봉사 가서 나무아미타불 하거든요. 1년 됐어요. 1년 되니까 드디어 나무아미타불이 서요. 이게 여기 와있거든요. 그럼 이게 조금 조금씩 내려가서 하단전에까지 내려가야 되요. 제가 수행하는 방법이 있는데, 그래서 나무아무타불을 눈을 뜨면 나무아미타불 해요. 그리고 거기다 붙여서 감사합니다를 해요. 이걸 무시를 못해요. 생각차이가 달라져 버려요. 그러니까 제가 스스로, 그러니까 하는 일마다 좋아져요. 나도 인간인지라 가서 걱정했거든요.

 

또 오늘 와서 안대하고 이러고 앉아서 궁예처럼 앉아서 오늘 설법해야 되겠구나. 이래 생각을 했거든. 그런데 어떻게 기쁘게 말해주는지. 아이고 나는 그 의사 그렇게 예쁜지 몰랐어. 놀랍잖아요. 그죠. 의사가 그렇게 말해주는데도 내가 기쁜데. 그런데 이제 삼보의 귀*를 받고 법을 설하는 스님이 여러분들이 괜찮습니다. 좋아집니다. 제가 하는 일은 그 얘기 반복적으로 하는 거잖아요. 당신 괜찮습니다. 당신이 지옥에 있어도 당신은 살 사람입니다. 대답은 누군가 한 번씩 해. 당신이 지옥 가서도 당신이 병고액란 속에 있어도 당신이 불교를 따르고, 부처님의 수행을 하고, 기도를 하는 그 순간순간마다 당신은 좋아질 것입니다. 그 얘기를 하는 거에요.

 

그런데 그거를 대상만 보지 말고, 스님, 스님은 그렇지. 나는 안 그래. 이러면 이게 심각해지는 거에요. 남한테 말은 안 해도 내 허물은 나한테 있고요. 그렇죠. 그죠. 내가 모자란 것은 내 안에 있지 다른 사람한테 표현하지 않아도 객관적으로는 그게 없어요. 다 예쁘니까. 눈이 안 보이니까. 그래서 요게 변해가는 과정을 무엇부터 해야 되느냐? 나무를 찾으셔야 돼. 돌아가겠습니다. 어디로? 내가 본래 풍요로운 곳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따라 하겠습니다. 요때 초등학교학생처럼 따라 하셔야 됩니다. [나는 본래 풍요로움으로 산다.] 기가 막혀요. 이게 어록에 올려야 돼. 하하하. 그렇게 사는 거에요.

 

그러니까 매일 그것을 챙기면 하루에 5분이라도 10분이라도 계속 챙기면 자기 안에서 반복적으로 붙이는 대로 된다니까요. 우리가 저 놀라운 것을 한 번씩 봐요. 체조하시는 거 있잖아요. 이렇게 뛰어요. 뛰어서 그것을 탁 잡고 돌아서 두 번을 돌잖아요. 그래서 그걸 잡아. 처음에는 안 되거든요.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요걸 하는 거에요. 그러면 눈을 감고도 그걸 한단 말이에요. 그게 뭐냐 그러면 자기가 해야 되겠다는 의지가 반복적으로 함으로 해서 자기 뇌에다가 명령을 계속 주는 거에요. 그러면 그게 육체가 같이 따라가 줘서 그렇게 돼요. 뭐든지 그러는 거에요. 장사도 그렇고, 인생의 문제도 그렇고, 인과관계의 문제도 그렇고. 안 된다. 포기한다. 기분 나쁘다. 싫다. 이러지 말고.

 

원력은 거기서 딱 한 번만 돌아서게 되면은 귀명이라는 게 자기한테 생겨요. 돌아와 있는 자기 생명체가 있다. 이것을 귀명이라 그래요. 불교식으로 표현할 때는 나무라고 표현하지만, 나한테 돌아올 때는 어떻게 해요? 귀명이에요. 저 원만하고 완전한 생명상태, 그리고 뭐죠? 가호지묘력이 함께 움직여지는 그 생명체가 내게 돌아와 여기 있는 거에요. 이걸 사용하시는 거에요. 불자는 이걸 평생토록 사용하시면 돼요. 이때 사용한 이 불성의 힘은 언제든지 공급이 이뤄지기 때문에 고갈 나는 법이 없습니다. 중생의 몸에는 중생의 정신에는 중생의 감정에는 고갈이 생기거든요. 그런데 절대 불성의 인연이 자기한테 근원적으로 깃들어있는 것은 옹달샘처럼 마르지 않는 거에요.

 

그게 공급의 세계가 있다는 거에요. 지금 시간상 고걸 다 정리하기가 어려운데 여기 좀 보십시다. 그러며 이것을 다른 말로 뭐라고 얘기 했느냐 하면 귀명한다. 이렇게. 나무 이러죠? 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이렇게 부르신다는 거에요. 이런 말은 곧 뭐라고 말 했냐 하면, 나무아미타불. 이라고 하는 그런 말은 곧 나의 행이라는 거에요. 이게 문헌에 적어져 있어요. 그러면 이걸 보고 나무아미타불 이런 것은 곧 나 자신의 행이거든요. 그러면 그게 뭐예요? 나무아미타불을 말하고 있을 때는 내가 아미타불이에요. 아미타불의 정토를 설하고 있을 때는 얘기할 때는 들을 때는 그 자체가 뭐라고요? 극락세계라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 모든 불자님은 이걸 분리시켜서 서로 부르고 따로 하잖아요. 손만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해. 나무아미타불이 손에만 왔다 가. 좀 가슴에까지 와서 가슴이 치유가 돼야 전체적으로 뭐가 어떻게 해야 될 텐데. 염주에 왔다 가고 염주에 있다가 가. 그냥. 뭔 얘긴지 하여튼. 여기를 보세요. 아미타불이라는 말은 곧 행이라는 뜻입니다. 나무아미타불을 수행한다는 것은 곧 뭐라고요? 지금 현실. 지금 이곳에서 저 불성 부처님의 작용성이 지금 현실화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옛날 말은 행이라고 표현하거든요. 행행이라고 표현하거든요. 그런데 이것이 한순간에 이해되고 그것이 곧바로 왕생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해요. 다음 생에 우리한테 생명체가 있습니다. 이런 뜻이죠.

 

위산이라고 하는 중국의 아주 유명한 큰 스님이 계시거든요. 이분 큰스님께서 뭐라고 말 했냐 하면 만약 사람이 단번에 정인, 바른 인연을 깨우치게 되면은 곧 생사 번뇌를 벗어나는 길이고 단계이다. 이렇게 표현했거든요. 세세생생에 만약 퇴전하지 않는다면 부처님의 계위. 부처님이 우리한테 베풀어주신 그 공덕력이 곧 뭐죠? 영원히 그게 지속된다는 거에요. 큰스님들이 이렇게 설명했거든요. 이런 말씀을 들으면서도 우리는 자꾸 후퇴심을 내는 거에요. 해태심을 내는 거에요. 게으른 생각을 일으키는 거에요. 진리하고 나하고 아무 관계 없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더 많은 거에요. 내가 오늘 나무아미타불 한번 부르는 그 은혜공덕은 곧 나 자신의 생활 자체에 그대로 원동력으로 자기 삶을 승화시킬 수 있다는 거에요. 이게 잘 안 돼요.

 

그러니까 뭘 한다고요? 점진적으로, 차례차례로, 그다음 뭐죠? 순서를 밟아서. 그렇죠. 그죠. 하나하나씩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수행을 따라가시면은. 비유에 이렇게 말했어요. 지금 여기에 어떤 사람이 날마다 만 마디의 말로서 부처님을 비방하거나 시간이 누적되어 천 년이 되었다면 이 사람의 죄업은 무량무변할 것이다. 저 좀 보세요. 입에 십 원짜리를 계속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은 죽는 순간까지 십 원, 십 원하다가요. 진짜. 그러나 입에 하루에 계속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면 죽는 순간까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해요. 어떤 사람은 나 좀 살려줘 나 좀 살려줘. 이렇게 병원에서 엄마 나 살려줘. 아빠 나 살려줘.

 

이렇게 허덕허덕 12년을 그러고 사는 중한 환자가 굉장히 많습니다. 자인사의 노 보살님은 평소에 84세인데, 평소에 걸어 다니고 화장실 잘 다니시다가 딱 이틀 병원에 들어가시다 가셔서, 어제 그제 장례 치르고 공양에 딱 모시게 돼요. 그분은 평생 몸으로 기도하신 분이에요. 옛날에 저저 집이 어려울 때 거기서 밥 지어서 먹여 살리고 대중 살리고 그러시던 분이시거든요. 그 공덕이 자기를 만들어줘요. 그러니까 요즘은 그렇게까지 안 하더라도 염불 수행이 더 중요한 거에요. 매일매일이 일심으로 조금씩 쫓아가시면 점차적으로 내가 좋아지는 꼴을 보게 됩니다. 대다수의 많은 분들이 좀 하다가 나아지거든? 그러면 안 해버려요. 그리고 안 와. 그리고 또 힘들어지면 또 와. 희한하죠. 그죠. 우리가 의리를 지킵시다.

 

언젠가는 우리 자신 안에 불성 부처님의 생명체가 곧 나 자신임을 알게 됩니다. 고걸 이해하는 거에요. 고거를 계속 사용하는 방법이 염불수행을 계속하는 겁니다. 아주 쉬운 방법으로 이렇게 설명 드리는 거에요. 그러면 내려오셔서 교재 50쪽에 보면 뭐라고 말했어요? 주정공불원이다. 이렇게 말해요. 머물러 있는 동안, 머물러 있는 동안, 언제든지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원을 갖겠습니다. 이런 뜻이거든요. 머물러 있는 동안, 어디에요? 그죠? 내가 기뻐하고 감사하는 마음의 상태로 머무르는 순간부터. 그렇죠. 그죠. 여기 얼굴 들어 저 좀 봅시다. 주정이란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술주정한다. 이런 뜻이 아니고요. 주정이라는 것은 정하는 것이거든요. 선정이다. 이런 뜻이거든요.

 

편안하고, 기쁘고, 행복하고, 기도하고 있고, 염불하고 있는 것이 거기에는 뭐가 머물러 있다고요? 부처님의 불공이 지금 거기 머물러 있다는 뜻입니다. 다시 거꾸로 얘기하면 내가 기도하고 염불하는 그 순간부터 뭐가 생겨요? 부처님의 은혜 공덕이, 불공이잖아요. 그죠. 공덕이 되는 거니까. 불공이 이루어져 가고 있는 과정이다고 깨우치게 해주는 것이 주정공불원, 이렇게 됩니다. 주정공불원이라고 42번째의 발원입니다. 그럼 거꾸로 좀 봅니다. 원해야 돼요. 뭘 원해야 돼요? 우리가? 아까 처음에 시작할 때 그 맥락이거든요. 지금? 요거 설명하기 위해서 여적지 설명 드린 거거든요. 내가 지금 원하고 있는 상태는 누구예요? 지금 내가 뭘 원하고 있는 상태는 어디에요? 아직 부족하고, 아직 모자란 상태고, 아직 불안정한 상태고, 아직 미숙한 상태에요.

 

이걸 우리 식으로 얘기하면 중생의 허물을 가지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뭘 원해야 돼요? 완전한 상태. 원만한 상태를 원한 거잖아요. 그러니까 원하는 것은 뭘 원해야 돼요? 그죠? 원만하고 완전한 부처를 원하는 거에요. 우리가. 되죠? 그죠? 그리고 부처님을 원하면 곧 두 가지가 같이 동행한다고 그랬죠? 그게 뭐죠? 복과 지혜가 스스로 자라서 내게 온다는 뜻입니다.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내가 부처님. 이러잖아요. 그럼 항상 복과 지혜가 현존해 있다. 이렇게 표현하시면 딱 맞습니다. 되시죠. 그죠? 그러면 이것이 어디에 된다고요? 이게 한 가지 공이거든요. . 부처님을 원하면 복과 지혜를 구하면 그것은 반드시 갖추어져서 편안한 기쁨과 편안한 원이 편안한 기도가 거기서 이루어져서 그것이 어디로 가지 아니하고 자기한테 머무르게 된다. 요런 뜻입니다. 거꾸로 찾아가보면.

 

바르게 보면 뭐에요? 머물러라. 뭘 머물러야 되요? 기도하는 것으로 머물러야 되고, 행복하다라는 것에 머물러야 되고, 건강하고 있다라는 사실에 머물러 있으면, 그 공급은 어디로부터 와요? 부처님으로부터 와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성취하게 해 준다라는 뜻입니다. 되시죠? 그죠? 같이 따라서 읽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따라 하겠습니다.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시작하겠습니다. [제가 부처가 될 적에 다른 세계의 보살들이 제 이름을 아미타불을 들은 이는 모두 청정한 해탈삼매를 얻을 것이며, 매양 이 삼매에 머물러 한 생각 동안에 헤아릴 수 없고, 불가사의한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고도 오히려 삼매를 잃지 않으리니 만일 그렇지 않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이거 누가 한 말이에요?

 

법장비구가 한 말이죠. 법장비구가 발원을 했어요. 우리가 수 억겁 전에 우리한테 일러주기 전에 이미 법장비구의 몸으로 다 겁생을 지나오면서 이 원을 세우신 거에요. 그러시죠. 그죠? . 이게 누가 이거 적었나? 이런 말을 누가 발원을 누가 했느냐 하면 법장비구께서 하신 거에요. 으음. 아무타불의 전신입니다. 그래서 머물 줄 알아야 되요. 어디에요? 매일매일 기도하는 시간을 정하고 조금조금씩이라도 움직임이라도 늘 발원 기도를 하셔야 되요 누구에게? 부처님을 발원하고 기도하고 하면, 그 위에서 공급이 한가지의 빛처럼 무량수 무량광의 저 아마타불의 원동력이 찾아다녀서 뭐가 생겨요? 편안한 기도와 행복한 삶과 지혜로운 공덕이 자기에게 찾아들어 온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이때에는 돈은 왔다가 없어지고, 그렇죠. 그죠. 세월도 왔다가지만 이 공덕은 절대 머물러서 없어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거꾸로 세세생생 지나가도 오늘 이 공덕은 없어지지 아니한다. 이런 뜻이었습니다. 참여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