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스님 _ 제43회 생존귀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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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법문/정현스님_불설아미타경

2012. 11. 18.

 출처: 불교TV
  

와주셔서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드립니다. 불설아미타경 안에 같은 말이 있거든요.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결코 정토에 갈 수 없다. 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이 법문을 통해서 내가 해탈할 수 있으면, 내가 조금이라도 이해하면, 내가 조금이라도 성장하면, 내가 조금이라도 나아진다면 지금 그것을 느낄 수 있어야 되요. 피부로 느끼고, 감정으로 느끼고, 생각으로 느끼고, 마음 전체로 이것을 감응을 좀 시켜 주면은 그게 이제 안 된다. 이러잖아요. 그죠? 안 되는 사람도 되게끔 만들면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그게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 중의 하나의 모습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지금 내가 예뻐야 내일 예뻐집니다. 오늘 감사해야 내일도 감사합니다. 아닌 거 같은데도 이게 아주 훌륭한 법칙 중의 하나입니다.

 

지금이 아니면 극락에 갈 수 없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지금 우리는 극락세계에 살 수 있다라고 표현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니까 지금에 극락세계를 누리지 않으면 그래서 극락세계를 마음속으로 접수가 되지 않는 상태는 왜 그런가? 그걸 잘 살펴보니까 세상을 삐딱하게 보고 있는 선은 늘 날카롭고, 늘 힘들고, 늘 억울한 일들이 계속 반복적으로 오는 걸 봤습니다. 그거를 거꾸로 지금 극락세계를 살려면 오늘 극락이라고 느껴지고, 그렇게 말할 수 있고, 그렇게 생각할 줄 아는 내가 되면, 지옥은 본래 없는 것이니까. 지옥 같은 인생이라는 게 본래 없는 거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산다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의 마음상태가 어둡게 들여다보고 있다는 뜻이죠.

 

그래서 불설아미타경 중에 하나가 이거를 정토수행이라고 표현할 수 있고, 지금 공부하고 있는 것은 불설아미타경을 공부하고 있죠. 아미타근본 수행을 하시는 모든 아미타불을 염하고 외우고 실천하고 옮기고 사경하는 그 모든 행자들은 그러니까 수행하는 자는 기도하시는 분은 어떻게 돼야 되느냐 하면 아미타불을 부르는 것에 전념하셔야 돼.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에 전념하셔야 돼. 일심전념이라고 그랬거든요. 일심으로 일심전념. 오직 그것을 나무아미타불을 가슴에 새기는 거에요. 그러면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 부르면 안 되느냐? 이렇게 묻거든요. 그렇지 않아요. 똑같아요. 그 위신력은 똑같으세요. 명칭만 다를 뿐, 실제로는 그 위신력을 같이 맛 볼 수 있고, 스스로 가질 수가 있고, 스스로 뭐죠?

 

사용할 수가 있게 되고 그 위신력을 점점 깊어지면 나눠줄 수 있다는 거에요. 나를 통해서 당신을 편안하게 해주고, 나를 통해서 당신을 예쁘게 만들어줄 수 있는 관계도 나를 통해서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염불 수행을 좀 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부르고 마음속 깊이 감사합니다. 이렇게 따라 하게 되면은 전념. 전념하는 순간순간마다 뭐죠? 마음의 생명에너지가 거기서 생성하기 시작합니다. 에너지라는 게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 무량수 무량광의 한량없는 아미타부처님의 위신력을 내 것으로 만들려면, 그걸 맛을 보려면, 내가 가지려면, 내가 나눠줄 수 있으려면 염불수행을 하는 것이 채널을 맞춰 가는 거에요.

 

으음. 조금씩 맞춰 가시면 돼요. 최소 하루에 108번만이라도 누누이 내 설명들이거든요. 그런데 어리석게도 믿지 못하는 거에요. 이렇게 하면 내가 나아지고 좋아질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확신을 조금만이라도 가지면, 100분의 1만 가져도. 바늘만 한 구멍만 한 믿음만 있으면 세상을 움직인다. 그랬거든요. 어디서 들었죠? 그죠? 겨자씨만 한 믿음이 있으면 산을 움직인다. 그랬거든요. 그런데 믿지를 못하는 거에요. 우리가. 그래서 요거를 이 에너지가 지금 이 순간에도 뭐라고 말해요? 지금 성장해 가고 있는 사실을 우리가 가슴속에서 감정 속에서 기분 안에서 느낌 속에서 이것을 확실하게 자기화를 시켜가는 과정을 염불수행이고 염불기도인 것이에요.

 

요렇게 하시게 되면, 도움이 되고 있다는 거에요. 언제요? 지금 아니면 극락세계에 갈 수 없다고 그랬잖아요. 지금 기도하지 않으면 앞날은 없다는 거에요. 지금 발원하셔야 되요. 지금 그것을 이해하시려고 노력하셔야 돼. 지금 이것을 받아들여야 돼. 뭐로요? 내가 나아지고 좋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거에요. 어떤데 가면 자꾸 오해를 하세요. 저 불성이 어디 큰 부처님이 갑자기 꿈에 나타나서 품으로 들어왔다. 그래요. 그것도 이제 좋은 일이에요. 우리가 부처님 불상을 이렇게 모셔놨잖아요. 모셔놨어요. 우리 안에 부처님이 살아있는 부처님을 작용시켜야 되거든요. 단지 방편으로 보고 계시는 거에요. 저 부처님을 보게 하고 형상을 그려서 모신 것은 곧 나 자신의 본성이 저 눈에 보인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절은 하고 저 뭐죠? 밥은 갖다 놓고, 쌀은 갖다 놓고, 초는 밝혀놓고, 돈은 갖다놓고는 소원만 들어주면 되지 부처님하고 동행하는 것은 전혀 하기 싫어해. 그렇죠. 그죠. 으음. 전에도 한번 말씀 드렸거든요. 어떤 분이 매일 3천 배를 했어요. 그거를 100일을 한 사람이 있어. 3천 배를 매일 해요. 그럼 하루 종일 걸려요. 몇 시간씩 걸리거든요. 하여튼 자기 말로는 다 그렇게 했어요. 그런데 100일을 딱 기도하고 돌아서는데 부처님이 덩치가 아주 커요. 엄청나게 커요. 그분이 천년묵은 불상이 스스스~ 하고 먼지 털고 일어나면서 그래 중생아 네 정성이 아주 갸륵하니까 네 소원을 내가 들어주마.” 그러면서 일어나요. 그러니까 깜짝 놀랐어. “아니 일어나시지 마시고 소원만 들어주시면 되지 왜 일어나십니까?” 그러니까.

 

그게 아니다. 내가 네 집에 가서 너랑 동행해가지고 너희 집에 가서 너의 사정이 어떤지를 내가 좀 알아보고이러니까 하는 얘기가 뭐냐 하면, “우리 신랑은 눈이 좀 안 좋으니까 그거나 좀 고쳐주시고, 우리 아들은 고3이니까 대학에만 쩍 붙게 해주시면 됩니다.” “그래? 그럼 내가 직접 가서 그런 요소가 되는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는지 요소를 살펴보마. 그래서 내가 가자.” 그렇게 툴툴 먼지를 털고 나오니까 덩치가 크잖아. 그래 대웅전 문을 나오시는 거에요. 실제로. 그러니까 3천 배를 100일을 하신 분이 그렇게 느껴지는 거에요. 그런데 갑자기 그건 안 됩니다.” 생각을 해보니까 집에 가면은 이 부처님이 살아서 가면, 밥도 많이 먹을 거고, 덩치가 얼마나 커요. 또 그리고 이제 저 뭐죠?

 

부처님은 저 육식도 잘 안 드신다고 그러니까 돼지고기도 못 먹을 거고. 또 부처님이 계시니까 소리도 못 지를 거고. 으응. 일주일에 한 번씩 남편 패야 되는 데 그것도 못하고. 여러모로 못하는 게 많아요. 그러니까 허는 얘기 뭐라고 했어요? 손을 딱 내밀고 부처님, 제 소원만 들어주시면 되고, 거기 계시면서 내가 원하는 것만 들어주시면 되지. 뭣 때문에 나하고 같이 갑니까? 그냥 거기 계시면서 알아서 소원만 해주지 채워주지, 뭣 때문에 우리 집에 뭐 하러 갑니까?” 그러고 그냥 도망가 버려. 잘 보세요. 그죠. 우리가 부처님 불상을 이렇게 모셔놨잖아요. 그러니까 모셔놨어요. 이렇게.

 

우리 안에 부처님이 살아있는 부처님을 우리가 작용시켜야 되거든요. 단지 방편으로 보고 계시는 거에요. 저 부처님을 보게 하고 형상을 그려서 모신 것은 곧 나 자신의 본성이 저 눈에 보인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절은 하고 저 뭐죠? 밥은 갖다 놓고, 쌀은 갖다 놓고, 초는 갖다 놓고 돈은 갖다 놓고는 소원만 들어주면 되지 부처님하고 동행하는 것은 전혀 하기 싫어해. 그렇죠. 그죠. 불자님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또는 한 달에 한 번씩 또는 일 년에 한 번씩 아~ 우리가 감옥처럼 갖춰놓은 그런 부처님을 우리가 일주일에 한 번씩 면회하러 오는 거야. 일주일에 한 번씩 면회와가지고 감옥에 갇혀놓은 부처님을 보고 불성을 봐야 되는데.

 

껍데기의 그 몸뚱아리를 갖다가 억압시키고, 그거에 대한 통제를 하고, 거기에 대한 반향을 갖고 있지 않은 그런 종교생활이 있다면, 불교 신행이라고 하는 것을 그렇게 하고 있다면, 그건 살아있는 불교가 아닙니다. 살아있는 불교는 뭐에요? 내가 기도한 만큼, 내가 이해한 만큼, 내가 배운 만큼, 그렇죠. 내가 원력이 이루어지는 만큼 그것이 살아있는 부처님과 동행하는 거에요. 제발 껍데기 부처님만 데리고 다니지 마세요. 지금 이 순간에도 저 아미타부처님께서 관세음보살이 지장보살이 오죽하면 관세음보살이 32응신으로 지금 나타나서 남편의 모양으로 자식의 모양으로 형제의 이름으로 동료의 모습으로 학우의 이름으로 전부 이렇게 32상을 모시고 나타나는 것이 관세음보살이시거든요. 요걸 잘 들여다보셔야 되요.

 

그러면 지장보살은 뭐에요? 저 고통스러운 모든 삶 속에 생명체에 거기 다 뭐죠? 지장보살님이 살아 계신다는 뜻입니다. 그럼 아미타부처님은 무엇인가? 아미타부처님은. 곧 자기 자신이에요. 일체중생의 모든 공덕을 다 내포하고 있고, 그 안에 들어있는 생명 그 자체에요. 그거를 우리는 체킹하고 이해하고 드러내는 것, 그걸 육체로 가지고 있으면서 저 극락세계를 우리는 느껴보는 거에요. 그렇죠. 그죠. 그러면 어마어마한 것이 더 나타나는 게 뭐 있어요? 그게 바로 고타마싯달태자, 당신이 깨달은 세계는 육체는 이미 2500년 전에 흩어져서 없으시지만, 실제는 어떤 거에요? 천백억화신으로 나타나 있는 것이 석가세존의 화신이에요. 눈을 뜨고 저 좀 봅시다. 적어도 눈을 뜨고 봐야 돼.

 

들여다보면 뭐가 보여요? 천백억화신. 무한능력의 힘을 가진 존재성이 곧 나 자신이라고 하는 것을 이런 경전공부를 통해서 우리는 자각해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자각, 자각. 아무리 경전이 많고 아무리 진리가 세상에 떠돌아다니고 아무리 많은 위신력의 법칙이 있어도 자각하지 않으면 없는 거에요. 천백억 화신의 모습을 우리 모두 가지고 있는 존재랍니다. 그러니 이런 존재가 어찌 짜증을 부리고 사는 것이 중생의 마음을 스스로 불러일으켜서 짜증을 내고, 시비를 일으키고, 탐착을 하고, 괴로워하고, 아파하고, 신음고통하고 사는 것이 이 중생의 모습이거든요. 이거를 바꾸는 방법이기도 하는 방법이에요. 참선하는 방법이고. 그렇죠. 그죠.

 

염불하는 거, 주력하는 거, 간경공부 잘해가는 거, 이런 것들이 전부 그런 매개가 돼서 실질적으론 뭐에요? 지금 곧 극락세계를 내가 누리는 거, 아는 거, 깨우쳐가는 거에요. 되시죠? 그죠? 으음. 안 돼도 마구 된다고 그러셔야 돼. 안되면 큰일 납니다. 같은 곳에서 우리가 이제 사는 것에 묘한 그 이~저저~ ~ 공덕력이 하나씩 있는데, 높고도 높은 광대한 하늘에 떠있는 가을 달처럼 고요한 밤에 그 광명은 아주 먼 곳에까지 이게 비춰진단 말이에요. 아니 달이 위에 떠 있잖아요. 떠있는데 내가 안 보고 있으니까 그렇지. 그걸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어떻게 해요? 달이 언제든지 있는 거거든요. 날이 흐려도 거기에 달빛이 있고, 날이 흐려도 태양은 언제든지 뜨고 있거든요. 그게 불성이에요. 그게 부처님의 모습이고요.

 

그러니까 눈에 뜨이는 것만이 전부 세상에 전체라고 보지마시고, 마음에, 마음에 광명을 받아들이는 거에요. 그렇죠. 그죠. . 과명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느냐? 그렇게 표현된 것이 불설아미타경에는 여러 단계 속에서 찾아볼 수가 있는데, 우선 26쪽을 여시면 그동안 좀 제쳐놓던 곳에 들여 쫓아 보겠습니다. 26. 교재에 26쪽에 아래쪽으로 밑에서 두 번째, 이게 동서남북으로 다 치러내셨고 조금만 정돈해 봅니다. 舍利弗사리불 上方世界상방세계 有梵音佛유범음불 이렇게 돼 있거든요. 내 위에 있는 모든 세계의 음성은 그거는 전부 불가사의한 소리입니다. 그건 전부 부처님의 세계의 말씀이에요. 잘 좀 보세요. 내가 생각하고 내가 이해하는 것 외에, 다른 음성이 있다는 거에요.

 

그런데 그 음성을 자기화로 만들기 위해서는 가장 가까이 말로 표현한 것이 범어 범음이라고 그러거든요. 범음을 우리식으로 표현한 것이 염불이다. 이렇게 표현하잖아요. 그죠. 이게 뭐냐 하면 상방이라고 하는 것은 동서남북에 상하가 있잖아요. 위는 뭐에요? 위는? 위는 보이지 않는 세계입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도 존재해 있잖아요. 보이지 않는 세계도 반드시 있거든요. 그런데 거기에는 뭐가 있다는 거에요? 범음은 부처님의 음성이거든요. 부처님의 음성이라고 하는 말에는 뭐가 쫓아다녀요? 복과 지혜가 충만해져가는 과정을 일러서 우리는 부처님의 범음이다. 이렇게 표현해도 다르지 않죠. 그죠. 이렇게 표현하면서 반드시 상방세계는 뭐가 있다고요?

 

梵音佛범음불, 부처님의 소리가 반드시 있다는 거에요. 요걸 귀를 기울여 들으셔야 되요. 그러면 그 소리는 가장 가까운 것이 범음이라고 그랬고, 그 범음은 우리가 익히 듣는 저 반야심경의 소리, 또는 화엄경의 소리, 또 신묘장구대다라니의 소리. 천수경의 소리. 이런 모든 진언에 나타나 있는 모습이 다 범음이라고 얘기할 때, 이렇게 얘기할 때 그것은 가장 부처님의 성스러운 범음이다. 그것이 있다라는 거에요. 어디에? 지금 있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불자님들께서는 할 수만 있으면 염불수행을 자꾸 하셔야 됩니다.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하시든지, 관세음보살을 하시든지, 뭐든지 자꾸 하셔야 되요. 그래서 자기를 그러나 입만 외우는 게 아니고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이렇게 외우는 동시에 절 좀 보셔야 되요. 나무아미타불을 외운다는 것은 내가 이 세상의 주인은 나입니다. 이렇게 표현하는 거에요. 되시죠. 그죠?

 

나무아미타불이라는 것은 제일 첫 번째 시작하면서 말씀드렸어요. 나무아미타불을 한번 외울 때는 나는 이 세상의 주인은 나입니다.’ 그렇죠. 그죠. ‘내가 한쪽의 부분임과 동시에 전체와 다르지 않습니다.’ 라고 표현할 수 있는 거죠. 그렇게 우리는 자꾸 자꾸 자각시켜가는 것이 염불수행이에요. 거기에 의미가 없다면, 그냥 소리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공부하는 것은 뭐죠? 범음이 부처님의 범음이기 때문에 이것이 반드시 있다는 거에요. 어디에? 지금 여기에 내 세포에도 내 머리 뇌에도 그 작용하고 있는 뉴런에도 저 발톱에도 다 범음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아져요. 경전에 읽어보면 그렇게 어려운 곳에 장애로운 곳에 태어나는 것도 다 범음의 힘이다. 부처님의 소리에 의해서 정화돼 갈 수 있다. 이렇게 말해요.

 

그래서 이분이 이렇게 부처님의 음성이 어디에 있느냐? 宿王佛숙왕불이라는 것이 있거든요. 과거 전세로부터 숙왕이라고 표현해요. 내 과거 전세의 부처의 세계까지라도 이것은 같은 의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요런 표현이거든요. 지금 우리가 향 하나를 부처님 앞에 공양하는 것에도 거기 뭐가 있어요? 부처님의 음성이 거기 들려온다는 거에요. 되시죠? 그죠? 우선 쉽게 쉽게 좀 봅니다. 그래서 향을 한 자루 공양해 올리는 것에도 뭐죠? 광명이 나타날 수 있다는 거에요. 그런데, 그런데 보세요. 어두운 눈으로는 거기에 광명을 보지 못해요. 어리석은 생각이나 어리석은 마음가지고는 절대적으로 뭐죠? 광명을 보지 못합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눈으로 보면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보면 스님들이 깊이 공부한 잘하는 스님들의 눈으로 보면 아무리 고약하고 아무리 인생이 좌절된 상태로 보더라도 거기에는 광명을 볼 수 있다는 거에요. 이런 말씀을 듣잖아요. 불설아미타경을 통해서 들을 때는 자기 자신이 어떤 상태가 있어도 그것이 좋지 않은 상태라도 좋지 않은 것으로 몰고 가면 안 된다는 거에요. 아무리 나쁜 상태에 있어도 좋아질 수 있는 소망과 발원을 거기 같이 결구 해서 한걸음 일어나시라는 거에요. 몸이 아프면 무조건 움직이려고 노력하셔야 돼. 먹고사는 것이 좀 결핍이 좀 따르잖아요. 그죠? 그러면 좀 더 열심히 다니면서 하셔야 돼. 우리는 먹고사는 것이 나빠지면 나빠질수록 인상을 더 쓰고 다니시거든요. 그런데 불자는 요걸 거꾸로 생각하셔야 돼.

 

먹고 사는 것이 나빠지면 나빠질수록 저처럼 히죽히죽 웃고 다녀야 돼. 웃어서 운명을 바꾸는 거에요. 그러면 금생에도 좋아질 뿐 아니라. 오늘 좋아진다라고 생각하는 아까 처음 말씀드렸죠? 지금이 아니면 극락세계에 가지 못한다는 거에요. 결코, 가지 못한다고 이렇게 설명하고 있어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요? 지금 웃어야 되요. 그리고 오늘 여기서 듣는 것만이 이게 극락이 아니라. 자고 나도 또 극락이에요. 내일가도 또 극락이에요. 모래 또 가도 극락이에요. 좋은 개념, 좋은 생각, 그렇죠. 그죠. 좋은 믿음. 밝은 믿음. 그러면 이게 香光佛향광불이 거기 나타나요. 향 사르는 건 뭐에요? 육신을 타들어 가면서 향기를 내는 거잖아요. 촛불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니까 성질 좀 덜 내겠습니다. 이런 뜻입니다. 고약한 냄새. 고약한 소리 자꾸 풍기지 말고, 실제로. 그러므로 해서 자기의 삶이 지극한 것에 높은 삶에 대한 태도를 완성시켜가게 돼 있습니다. 부처님 가르침 중에 하납니다. 大焰肩佛대염견불이라는 것이거든요. 염불을 기도하고 나무아미타불 기도수행을 하게 되면 나중에 양어깨에 위신력이 거기 생겨서 빛이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됩니다. 그거를 다른 말로 해서 오로라의 빛이라고 크리스탈체라고 하는 미묘한 광명체를 볼 수가 있다고 그랬습니다. 공부를 하시게 되면 다 느끼게 됩니다. 요즘은 적외선이나 여**이라고 하는 게 있거든요.

 

한방이나 이런 데 보면 쭉 화면에 나타나고 있거든요. 열이 어느 정도 왔다갔다하는지 볼 수 있을 정도로. 조금 있으면 나중에 보면은 사람한테 시커먼 얼굴 뒤에 후광이 보여지는 것이 다 가지고 있거든요. 이게 까맣게 느껴지거나 누렇게. 이런 것도 촬영 가능해질 거에요. 그리고 공부가 깊어진 사람은 살아생전에 후광이 보인다는 거에요. 저 흡사 저기 저저저 탱화 보면은 뒤에 이게 그려져 있잖아요. 그려져 있는 거, 이거는 성서에도 있고 불경 안에도 있고 그래요. 배후라고 하는 것이 있어요. 배광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보여지시거든요. 실제로 공부하시면 그렇게 돼요. 먼저 말씀드렸죠? 그죠. 같은 인생이라도 죽을 때보면 다르거든요.

 

어떤 사람이 평생을 호위하고 잘 먹고 잘 살았어. 그런데 죽을 때는 저 차가운데 꽝꽝 얼은데 가서 살해당해서 죽는 사람도 보거든요. 그걸 거꾸로 찾아 들어가 보니까 평생 살면서 그 업이 뭘 갖다 주는지 아세요? 전당포. 전당포를 평생 했어. 그래서 가혹하리만큼 자기가 호의호식하고 먹고 사는데 아끼지 않고 살았어. 그런데 어느 순간 어떤 사람 두 사람이 들어와서 그 부부, 나이 좀 들으신 부부인데 납치해서 가서 돈을 요구했어. 얼마만큼 뺏어갔느냐 하면 8만 원을 뺏어갔어. , 나란히 같이 죽었어. 길거리에서. 얼음이 생생한데 밖에 주지도 않고, 그렇게 삶이 이게 올바른 따뜻한 인생을 살았을까요? 잘 먹고 잘사는 건요, 나이가 들어가시잖아요. 잘 먹고 잘살고 행복하게 잘 살다가 늘 말씀드렸죠? 그죠? 내가 죽을 때 먹을 만큼 먹었고, 쓸 만큼 써봤고, 이게 갈 때가 됐다.

 

너희들 먹고 잘 살아라. 빠이빠이 한다. 이러고 갈 수 있는 인생이 최고예요. 그런데 그것을 만들어주는 것이 수행하는 자가 그렇게 되요. 기도하는 사람이 돼요. 머리 깎고 살지 않아도 집안에서도 조금 조금씩 이렇게 기도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그런 죽음이 아주 복된 죽음을 만날 수 있어요. 그죠. 제가 무슨 연유로 자꾸 인연이 자꾸 생기는 게 병원에 자꾸 요즘 가게 되거든요. 저도 그냥 인간적으로는 별로 가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가게 돼요. 가서 보면 업이 다 보여. 업력이 다 느껴진다고요. 제가. 신음고통하고 악을악을 하고 살고, 살려달라고 외치고 다니고. 평소에 공부하셔야 돼. 평소에 기도하고, 평소에 염불하고, 그냥 노느니 염불하라고 그러잖아. 들어보셨지. 그지. 속담에도 있어. 속담에도. 노느니 염불하라고. 으음. 경상도 말로 그래.

 

이렇게 공부를 잘하시게 되면 실질적으로 양견에 여기에 빛이 내린다고 그래요. 그리고 속설에서는 이렇게 표현해요. 영적인 장애가 생기거나 영적인 에너지가 내리는 것은 양쪽 어깨부터 내리거든요. 아니 옛날 말에 그런 게 있어요. 또또 시비 붙을까 봐 겁나. 그러면 그런 빛이 나오는 것이 자기에게 있다는 거에요. 그러면 부처 세존은 이걸 어떻게 표현했어요? 공부를 열심히 하고 난 다음에 당신이 들여다본 거에요. 뭐라고요? 그죠? 당신 안에 이렇게 원만하고 완전한 불성이 있는 것을 깨우치고 난 다음에 당신을 보니까 당신에게도 그와 같은 조금도 차이가 없더라. 이렇게 표현했거든요. 다만 나는 먼저 안 자요.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한 자이다. 알기만 하면 되는 거거든요.

 

지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신음고통이라고 하는 괴로움이 계속 반복적으로 또 반복적으로 살아가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마음 바꿔야 되요. 생각 바꿔야 되요. 감정 바꿔요. 어떻게요? 좋아지고 나은 쪽으로 하면 돼요. 그러려면 어떻게 하라고 그랬죠? 밝은 쪽으로. 인정하는 데로. 긍정하는 데로. 거기다가 보너스로 웃으면서. 따라가면은 자기가 그런 광명 속에 살게 되는 그런 모습을 우리가 스스로 보게 됩니다. 금생에 다하지 않으면 다음 생에 또 하게 돼 있으니까. 절 보세요. 제가요 이게 금생에 살고 말 거 같으면 내가 이렇게 소리 지르고 안 다닙니다. 진짜에요. 무서운 사실이 있어요. 무서운 사실이.

 

내가 계속 산다니까요. 옷 바꿔 입으면 아무 문제 없잖아요. 육체 그거 마찬가지라고 그래요. 좀 더 깊어지면은 그걸 느끼게 돼요. 그러니까 금생에 잘하는 거에요. 될 수 있으면 인과 쌓지 말고, 될 수 있으면 불안 주지 말고, 될 수 있으면 차가운 거 내주지 말고, 될 수 있으면 예쁜 말 하고 예쁜 짓하고 따뜻한 표정 보여주고. 이게 다 연습이고, 다 기도하는 거에요. 염불 기도하면서 인상은 계속 불도그처럼 여기 쳐다보고 이러고 살고 그러면 왜 날 사랑 안 해주나. 이러고 남편한테 덤비거든. 세상에 미련한 놈이 없어. 자기가 먼저 웃으면 사랑하지 말라고 그래도 사랑한다라고 덤비는 놈이 줄줄이 서 있어. 하나 데리고 사는데도 그 하나도 마음을 사지 못해가지고 계속 악으로 갚고, 소리를 지르고, 잔소리를 해대니까, 웃는 대로 자꾸 가지. 뭔 얘긴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게 나타난 것이 어떻게 나타났느냐 그러면 雜色寶華嚴身佛잡색보화엄신불이라고 나타나요. 이게 무슨 뜻이냐 그러면 모든 빛과 모든 화려한 것이 다 뭐로요? 보배로 들어찬다는 거에요. 이렇게 부처님의 몸을 보호하듯이 이렇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 의견, 저저, 의역이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런 것이 곧 부처님의 몸이 그와 같다. 이런 뜻입니다. 그런데 娑羅樹王佛사라수왕불이거든요. 이 뜻은 무슨 뜻이냐 하면 석가세존께서 돌아가실 때 그 뜻을 보여주신 거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것에서 수많은 곳에서 다 이와 같이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것처럼 그런 위대하고 완전한 생명세계를 구현시켜 주고 있다는 거에요. 어디서든지 그게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깊이 좀 들여다보셔야 돼요. 그렇죠. 그죠.

 

그렇게 보면 寶華德佛보화덕불이거든요. 보배로움이 깊이깊이 화려해지고 그 덕은 부처님의 모양으로 다 들어차서 조금도 차이가 없다는 거에요. 그럼 어떻게 이걸 봐야 되느냐? 단지 중생의 몸을 가지고 있어도 우리의 몸을 육체의 몸을 가지고 있어도 들여다보는 것. 어떻게 봐요? 모든 일체를 다 부처님의 올바름으로 들여다보자. 이렇게 되요. 그렇게 보면은 이것은 뭐라고 말해요? 수미산과 같다. 내가 좋게 들여다보는 눈을 가지면 좋게 보이는 것이 수미산처럼 쌓여져 온다는 거에요. 그러나 나쁘게 보기 시작하면 뭐죠? 그 업은 수미산처럼 쌓여 보여 온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설명할 수 있죠. 그죠?

 

如是여시_ 이와 같이 等恒河沙數항하사수_ 수많은 모든 부처님께서 어디서요? 각기 자기 삶 터 속에서 其國기국이라는 말은 그런 뜻이거든요. 各於其國각어기국이라는 말은 그런 뜻이거든요. 나라마다 이런 뜻이잖아요. 이것을 가정마다 일터마다 생활 처마다 이렇게 표현할 수 있거든요. 이런 **에서 언제든지 나타나요. 뭐가 나타나요? 저 부처님의 처음에 말씀드렸죠? 부처님의 가르침 범음불이 소리가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다. 어떻게 나타나요? 길상의 좋은 상을, 모습을 가지고 나타나는데 이것은 뭐죠? 전체, 상하전후좌우의 어디서든지 이것은 다 저 끝까지, 이 우주 끝까지라도 이것이 다 포함돼 있고 드러날 수 있다라고 표현하고 있죠. 그죠. 그게 부처님이 나타납니다. 그걸 뭐라고 표현한다? 삼천대천세계에 그게 그 모양새를 다 드러내고 있고 그 소리를 보여주고 있고 설명하고 있다.

 

그걸 보고 說誠實言설성실언 汝等衆生여등중생. 내가 지금 이 말씀을. 지금 이야기를 지금 듣는 모든 중생과 더불어 어떻게 한다고요? 마땅히 믿어야 되요. 이걸 마땅히 믿어야 된다는 거에요. 이걸 뭘 믿어야 된다고 그랬죠? 내가 나아지고 좋아져 가는 것을 지금 믿는다는 거에요. 그러면 지금이 아니면 극락세계에 갈 수 없다고 그랬죠? 그죠? 그럼 지금 믿으면 극락세계가 현존에서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기계 세상이고 세멘세상이고 그런데. 그래도 이게 있다는 거에요. 제 설명이 아니고요. 책에 그렇게 설명 돼 있어요. 有梵音佛유법음불이라고 명시돼있잖아요. 있다는 거에요. 범음의 부처님의 소리가 거기 있다는 거에요. 그 소리는 뭐라고요?

 

나를 지켜주고 보살펴줄 뿐만 아니라, 나를 성장해주고, 나를 뭐죠? 윤택하게 만들어줍니다. 이걸 우리는 어떻게 한다고요? 믿어야 된다. 믿을 뿐만 아니라 박수를 치려면 제대로 한바탕 치든가. 이게 마땅히 이것은 칭찬해야 된다. 그리고 그것은 더 이상 그 부처님의 위신력이라고 하는 것은 불가사의한 거다. 불가사의 뭐죠? 으음. 불가사의 공덕이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일체 모든 부처님께서 이 경전을 뭐라고요? 호재 한다. 그걸 무슨 경전이라고요? 불설아미타경이다. 이렇게 표현하는 거에요. 우리가 하나둘씩 하나둘씩 공부해서 찾아가 보면은 궁극에는 자기의 완성도라고 하는 것이 사람한테 있습니다. 이것은 후*대로 하나하나씩 조금 조금씩 찾아가보면은 부처님의 세계가 같이 이루어져 갈 수가 있게 됩니다. 다시 51쪽으로 넘어오십시오.

 

그래서 경전 안에 다시 좀 따라가 보겠습니다. 그걸 보고 뭐라고 표현한다고요? 生尊貴家願생존귀가원이다. 이렇게 돼 있거든요. 이 말은 생존, 법장비구의 43번째의 발원이거든요. 생존이라는 거에요. 생존. 생존이라는 건 뭐에요? 금생이잖아요. 그리고 금생이라는 말을 아까 내내 설명 드렸죠? 그죠? 지금을 얘기하는 거에요. 얼굴 들어 저 좀 보세요. 남의집살면 헤아리지 마세요. 남의 집 재산 좀 헤아리지 말고, 이웃집 남편 잘생긴 거 헤아릴 거 없어. 그거 아무것도 도움되는 거 없어. 남의 집 아들 얘기 제발 좀 하지 말고. 이게 참 묘한 거거든요. 금생에 지금, 지금 어떻게 한다고요? 존귀한 줄 알면 돼요. 이걸 뭐라고 말해요? 生尊貴생존귀. 生尊貴생존귀라고 말해요. 지금 있는 이대로가 이게 존귀한 거에요.

 

지금 있는 이대로가, 이대로가 감사하고 고마운 거에요. 지금 있는 그대로가 삶에 대한 전체에요. 이 이상 더 어떤 것을 나쁘다라고 표현한다는 것은 어리석음의 시작이에요. 가난해지는 시작이고요. 아무리 아무리 좌절적인 공양세계가 있어도 그 세계를 좌절이라고 보지 않는 거에요. 포기라고 보지 않는 거에요. 나쁘다라고 표현하지 않는 것에서 우리는 지혜를 시작하게 됩니다. 되시죠? 그죠? 안 되도 된다고 그래야 되요. 안 그러면 안 끝나요. 금생의 존귀함이 이걸 인정하는 거에요. 내가 시원찮은 존재 아닙니다. 내가 모자란 존재 아닙니다. 내가 부족한 존재가 아닙니다. 내가 결핍이 있는 존재가 아니에요.

 

내가 아픈 존재가 아니고 열등한 존재가 아니에요.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시는 것을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이라는 거에요. 쫓아갑니다. 단지 우리가 안 할 뿐이에요. 염불은 곧 범어에요. 누구의 범어? 부처님의 음성이에요. 부처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 나한테는 복과 지혜가 성장시켜 주고 있다는 거에요. 요거는 철석같이 믿지 못하고, 그냥 지가 사주팔자가 깊어가지고 업이 많다. 이것은 철저하게 믿어. 아주 희한하죠. 그죠? 그런데 저도 그러고 살았어. 그런데 이게 벗어나기가 쉽지 않아요. 그죠? 생각에서 내가 자유로워지고 편안해지면 부는 저절로 오게 되고요 잘되는 일은 저절로 찾아와요. 좋은 마음으로 하니까. 욕을 하거나 말거나 올바른 길이다 생각하면 하는 거에요. 그렇죠. 그죠. 올바르다고 생각해서 강도도 옳다. 이러면 안 됩니다. 큰일 납니다.

 

남 속여가지고 이득 봐 가지고 되는 사람 평생 나 좋은 꼴을 못 봤어. 정당하게 받아들이세요. 이윤도 정당하게, 기쁘게 받아들이세요. 일한 것에 대한 보상도 떳떳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삶에 대한 태도가 될 때 올바른 생존이 일어나요. 내가 살아있는 것은 다 뭐죠? 존귀한 거에요. 그렇죠. 그죠. 글자 그대로에요. 그리고 이것은 뭐죠? 이런 집에 태어나길 원한다는 거에요. 금생에 공부하고 수행한 것이 다음 생에도 두 번 다시 모자라지 않을 세계. 아는 그런 집안에 태어나길 원한다는 거에요. 그러면 지금 있는 이 집구석은 싫다. 이러면 안 됩니다. 나는 놀랬어요.

 

80이 된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집안이 싫다라고 표현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볼 수가 있거든요. 그거 어떻게 그거, 그 나이에 이혼도 못하고 가출도 못하고 출가도 못하고 어따 갖다 써. 생각 바꾸시면 돼. 뭐라고요? 살아있는 모든 존귀한 것은 금생에 이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다음 생도 그와 같이 좋은 생에 태어나게 됩니다. 분명히 명심하셔야 되요. 지금 가난에 허덕여 산다면 다음 생도 또 가난한 생을 맞이하게 되고. 바꾸셔야 돼요.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이걸 바꿔서 이렇게 되는 법은 없어요. 하나하나씩 하나하나씩 원을 세우고 채워가지고 그러면 어느 누구라도 부처님의 진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것을 자기를 원만하고 완전한 불성세계로 자기를 만들어 줄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실천합시다. 이렇게 생각합시다. 이렇게 행동으로 옮겨서 지금 즉시부터 나를 편안하고 나를 윤택한 삶으로 이끌어 가겠습니다. 참여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