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스님 _ 제44회 구족덕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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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법문/정현스님_불설아미타경

2012. 11. 25.

출처: 불교TV
  

참여해 주셔서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드립니다. 으음. 그래도 인연 지어서 이제 이 자리까지 와 주신 거, 또 인연이 있기 때문에 또 이 자리에 오신 거고, 또 과거에서도 선근이 있어서 이 자리에 오셨을 것이라고 믿어집니다. 그렇죠. 그죠. 인연 없이는 이루어지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사는 모든 생명세계는 다 여여하고 편안한 세계를 가지고 있게 돼 있거든요. 태어난 자는 모두 안락 할지어다. 이런 말이 석가세존의 말씀이 있고, 태어난 모든 생명은 채찍을 두려워하고 편안함을 택한다. 이런 말도 있으시거든요. 그러니까 저희가 불교라고 하는 것을 통해서, 또 이렇게 작은 교당을 통해서, 또는 인연을 지어서 우리는 불설아미타경이라고 하는 경전을 지금 만나고 계세요.

 

그 만나는 핵심이 뭔가 그러면, 지금 행복해지는 거에요. 으음. 三界皆苦삼계개고가 다 뭐죠? 편안해지기를 원하는 것이 석가세존의 뜻이거든요. 그러니까 만일에 석가세존께서 그 위신력을 보여주지 않으신 것은 나타나지 않은 곳이 없으시다는 거에요. 석가세존이 세상에 이렇게 깨우침을 얻으시고 일체중생에게 베푼 것은 오직 뭐죠? 중생을 편안하게 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보셔도 다르지 않죠. 그런데 반대적으로 이런 법문을 저희가 듣지 않습니까? 들을 때 저 부처님의 석가세존께서 이렇게 설법하신 것은 내가 이제 알아듣는 거거든요. ~ 나도 편안한 것이 있구나. 이렇게 그런 것을 하나씩 채워가는 거죠. 으음. 언제든지 미련한 사람은 부족을 헤아리고요. 지혜로운 사람은 만족을 헤아립니다.

 

우리가 생활 속에서 살아보면 그렇게 다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게 저희가 불설아미타경을 쭈욱~ 배워가고 오늘까지 다섯 번, 이제 네 번만 더 공부하면 장장 일 년간 이 법문을 공부를 마치게 돼갑니다. 그래서 하나씩 정리하는 과정 안에서 끄트머리에 법문을 조금씩 보면은 사람의 세계는요. 사람의 그 생명 그 자체는 과거에서도 머물러 있지 않고, 미래세에 머물러 있지 않고, 오직 지금에 마땅하다 이러거든요. 지금에 마땅하다 이렇게 말씀하세요. 지금 마땅한 것은 뭔가? 지금 내가 행복을 느껴야 되요. 그리고 지금 그 어떤 것을 하든지 간에 내 마음에 조금 충족되는 부분이 좀 있으셔야 됩니다. 생활이 좀 보람이 좀 있으셔야죠. 그죠.

 

불설아미타경에서는 정토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토는 깨끗한 세계거든요. 그런데 정토를 구하는 사람은 반대적인 말로는 내가 지금 깨끗지 않다고 표현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사실은 정토를 구하는 그 자체도 사실은 모순이에요. 그런데 중생은 어리석기가 짝이 없어가지고 자기가 늘 모자른다고 생각을 하는 오해 속에서 살기 때문에 이거를 정토를 구해야 된다. 그것을 벗어나야 된다라고 이렇게 석가세존께서는 이걸 방편으로 설한다. 이렇게 표현했거든요. 그런데 사실은 깨끗한 세계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밖에서, 내 요거는 더럽고 요거는 나쁘고 요거는 시원찮으니까 더 좋은 것을 구해서 옮겨간다라고 하는 그런 개념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이 집안에서, 이 식구들, 이 가족들끼리 이 사회에서 이 지구 땅 현상에서 이거 자체를 구현시켜야 된다. 이렇게 표현하고 계시죠. 그래서 정토라는 것은 극락을 지칭하는 겁니다. 극락이라고 하는 말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간단한 즐거움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내가 행복해지는 거에요. 다시 말하면 윤회에서 벗어나고 탐진치 삼독으로부터 벗어나고 장애로 움이 없는 곳에서 벗어나는 겁니다. 그리고 내면으로 깊이 불성존재를 느끼면서 거기에 대한 끝없이 환희한 마음,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세계를 요거를 일러서 극락이라고 이렇게 표현합니다. 지극히. 극락이 아주 지극히 즐거운 거거든요. 우리의 즐거움은 요 조건 안에서 있다가 즐겁다가 그 조건이 무너지고 나면은 다시 고통이 쫓아오거든요.

 

그래서 육도윤회를 어떻게 표현했냐하면 저 천상락도 그 복이 다하면 다시 육도로 떨어진다. 이러거든요. 그 얘기는 뭐냐 그러면 우리들의 삶의 마음을 털지 않고는 마음의 자유로움을 갖지 못하면 계속 반복적으로 그 일을 그 일을 또 자기 현상 앞에서 생활 속이 계속 고뇌와 경전에 아미타경에 오늘 외우실 내용 중 하나가 시대적으로 이게 흐려져 있어요. 그냥 요렇게 흐려져 있다. 이렇게 표현해요. 오탁이다 이렇게 표현하거든요. 오탁세계라고 말해요. 그런데 눈을 뜨고 저 좀 봅니다. 흐리게 보는 사람은 아무도 세상이 없다는 거에요. 그런데 다만 자기가 자기를 들여다볼 때는 흐리게 보고, 으음. 쫓아가 봐야 됩니다. 우선 교재에 불설아미타경에 28쪽에 내려다보시면 위에서 두 번째 줄 보면 뭐라고 돼 있느냐하면.

 

舍利弗사리불이여 이렇게 시작하거든요. 어떻게 어떻게 하겠는가? 이런 말과 같은 얘기거든요. 於汝意云何어여의운하.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은 어떤 연고로 해 一切諸佛일체제불이 이 명을 念經호념, 그러니까 지켜서 염경하는가. 이렇게 말하거든요. 다시 말하면 쉽게 표현하면 나무아미타불을 모든 부처님께서라도 다 아미타불을 염한다. 이렇게 표현된 거거든요. 되시죠? 그죠? 사리불이여. 다시 물어요. 부처님들, 제 모든 불보살님도 저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하고 가지고 있고 칭송하는데 이제 사리불이여. 선남자선여인이요. 이건 우리죠. 그죠. 若有善男子善女人약유선남자선여인.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이것을 갖게 되면은 聞是經문시경 이것을 듣는 거, 시라고 하는 건 지금이거든요. 지금 이 말씀을 듣는 거 이런 뜻이거든요.

 

지금 들으세요. 受持者수지자. 지금 받아들이는 거에요. 지금 이 순간. 받아들이고 及聞급문 모든 부처님의 명호를 듣는다. 이렇게 돼요. 이렇게 들의시면 汝等시제. 지금의 모든 善男子善女人선남자선여인이. 우리를 말하는 거거든요. 지금 이 법문을 듣고 있는 모든 사람을 얘기하죠. 皆爲一切諸佛共所護念개위일체제불지소호념경. 모두 다 뭐라고요? 切諸佛일체제불까지 다 뭐라고 표현한다고요? 소호념경. 이것은 마땅히 일체 모든 부처님이 이렇게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하고 기도하고 수행하면은 모든 일체 부처님이 여기에 이 자리를 지켜주신다. 이렇게. 우리를 보호해주고 지켜주신다. 그러면 어떻게 가져야 되느냐? 일단 이거를 뭐라고요? 그죠? 들을 줄 알아야 되요. 법문을 들을 줄 알아야 돼. 진리를 받아들이려고 하는 생각을 좀 가지셔야 돼.

 

그다음에 뭐죠? 받아들이고 자기가 가지셔야 되요. 그다음에 뭐라고 돼 있어요? 이 명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는 다 일체제불이 마땅히 보호해주고 계시다. 요거를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신심으로 받아들이셔야 돼. 수지라 그러잖아요. 받아 가지는 거에요. 그러면 皆得개득. 모든 것을 얻게 되는데 不退轉불퇴전 하는 것에서 물러나는 것이 없다. 이런 뜻입니다. 나무아미타불을 단 한 번이라도 부르는 사람에게는 일체 모든 제 부처님이 다, 위에서, 누구를 위해서요? 이것을 호지 하는 자. 이걸 갖는 자, 듣는 자, 받아들이는 자, 그렇죠. 염송하는 자, 기도하는 자 이런 모든 사람들에게는 일체 제불이 다 마땅히 소라고 하는 것을 붙이면 다 그렇게 붙일 수 있거든요. 마땅히 보호해 주고 계시다는 거에요. 이게 바꾸셔야 되요.

 

지금 저 부처님이 나를 보호해주고 지켜주고 보살펴주고 있다라는 느낌을 자기 가슴에서 자기 스스로 불러일으켜야 되거든요. 자기가 먼저 사이클을 맞춰주는 것이 이게 기도거든요. 저저저 KBS 열면은 채널 맞춰주는 것이 그게 기도라고요. 불교TV에 뭐죠? 채널을 맞춰 주기만 하면 위성은 411입니다. 맞춰 주면은 불교TV 나옵니다. 411을 딱 열 면은 정현스님이 거기 딱 나옵니다. 그렇거나 말거나. 하여튼. 그런데 이게 맞춰주는 것이 이게 그냥 안으로 깊이 좀 들여다보십시다. 자기 내면 안에서 이걸 맞춰져 가는 과정을 이것을 문경이라고 그래요. 경을 듣는다. 이렇게 표현하는 거에요. 이거를 맞춰주는 거에요. 저 불보살님의 가호지묘력이 내게 올 수 있도록 맞춰주는 것이 뭐라고요? , 聞是經문시경이에요. 경전을 말씀을 듣는 거에요. 들으면 受持수지하는 거에요. 받아서 가져야 돼. 그렇죠. 그죠.

 

그렇게 하고 사용하게 되면은 모든 일체 불보살님께서 나를 지켜주고 보살펴주고 계시다라는 자기 느낌이 자기 안에서 싸이클을 맞춰주는 것이 그게 잘 안 이루어지고 있을 때 하는 일 마다 잘 안되거나 병고액란이 깊거나. 또 뭐죠? 인생에 살면서 보람이 점점 떨어져 가거나 이렇게 불안하고 불편한 일이 생길 때 바로 채널을 맞춰줄 필요가 있으세요. 기왕 맞춰줄 거 같으면 불교TV에 좀 맞춰주면 돼. 그래서 우리가 같이하게 되면 모든 것을 얻게 돼. 뭐를 얻어요? 불퇴전을 얻는다는 거에요. 천박지심이라는 말이 있거든요. 천박한 마음가지고는 풍요로운 고귀함을 가질 수가 없어요.

 

육체가 험한 일을 하고 있어도 그 마음에 풍요지심을 좀 가지면 풍요로운 저 마음의 세계를 가지면, 그는 필경 금생에 다하지 못하지 못하더라도 다음 생에라도 풍요로운 삶을 느끼게 돼요. 극락세계에 사는 거에요. 되시죠? 그죠? 불퇴전이 생긴다는 거에요. 불퇴전이. 그런데 실제로는 어때요? 석가세존 눈으로 들여다보면 뭐라고 해요? 우리는 퇴보하고 있는 생명이 아니에요. 성장해 가는 생명이라고요. 나아져 가는 생명이라고요. 그렇죠. 그죠. 불퇴전에서 물러나지 않는다는 거에요. 그럼 어디서? 어디에서 물러나게 되지 않는가? 글자 딱 나와요. 이게 뭐죠? ~ 이거는 어조사거든요. 그냥 연결시키는 거거든요. 阿耨多羅三藐三菩提아뇩다라삼먁삼보리 세계라는 거에요. 이건 더 이상 뭐라고 말해요?

 

표현할 수 없는 세계거든요. 우리가 말하는 쉽게 표현하면은 사람한테는 감정이 있고, 사람한테는 정신이 있고, 사람한테는 육체가 있고 물질이 있고 사회가 있고 관계가 있고 이런 것들이 끊임없이 생기잖아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세계는 불성의 세계에요. 건드릴 수 없는 세계라고요. 형이상학적인 아주 높은 인식의, ~ 차원을 달리하는 세계이거든요. 그런데 동시에 같이 있어요. 이게. 아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세계가 있다는 거에요. 그걸 불교식으로 얘기하면 뭐라고 표현한다고요? 불성이 있는 거에요. 그래서 끊임없이 제가 반복적으로 말씀드리잖아요. ‘나는 원만하고 완전한 불성이다.’ 이게 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와 같은 똑같은 말이에요. 나한테는 원만하고 완전한 생명이라는 거에요.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원만하고 완전한 불성이라는 뜻입니다. 되시죠? 그죠? 여기에서 물러나지 않는다는 거에요. 정말로 믿어야 될 거는 요걸 믿는 거에요.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세계를 믿는 거에요. 나의 생활에 모든 공급과 나의 모든 생명의 성장과 나의 모든 삶에 대한 뭐죠? 발전은 여기에 있어요. 그래 불자님들이 잘 이게 얼른얼른 해석 가지고는 되지를 않아요.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말할 수 없는 세계에요. 비밀의 세계고. 그러나 그걸 우리가 가지고 있다는 거에요. 그 얘기는 뭐냐 하면 나한테 정말로 총명한 세계가 있다는 거에요. 그래서 그거부터 선언하자는 거에요.

 

나는 원만하고 완전한 불성이다. 이렇게 하루에 108번만 자기에게 꼭 정해서 자기를 타이르듯이 읽으면, 병은 홀연히 사라져가고, 가난은 흔적이 없어져 가고. 그렇죠. 그죠? 인과는 그 뿌리가 없어져 간다고 그랬어요. 이건 저 개인의 생각이 아니에요. 불경 안의 말씀이지.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세계가 반드시 있는 거에요. 그걸 쉽게 표현한다면 나는 지금 뭐죠? 원만하고 완전한 생명, 즉 불성 생명체계가 나한테 지금 있다는 거에요. 요렇게 정리가 돼갑니다. 是故시고. 이러한 고로, 舍利弗사리불이여. 너희와 더불어 汝等여등이거든요. 너희와 더불어 다 마땅히 믿어서. 이제 좀 정리합니다. 믿어서 뭐라고요? 받아서. 내가 내 말로 설법으로 바뀌는 거에요. 자기 생각으로 바뀌는 거에요.

 

자기 언어로 바뀌는 거에요. 자기 행동으로 바꾸어지는 것이 이걸 뭐라고요? 나는 모두 다 마땅히 어떻게 해요? 믿어야 된다. 어떻게요? 받아들어야 된다. 내 말로 받게 된다. 이 얘기는 뭐죠? 신구의 삼업으로 자기에게 계속 끊임없이 기도해서 자기화를 만드는 거에요. 자기 세포 하나하나에다가 명령을 주는 거에요. 늙고 병들고 죽어서 썩어지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살아있는 존재라는 거에요. 육체에 연연해 할 거 없다는 거에요. 이게 모든 부처님의 설하는 바라는 거에요. 놀랍죠. 그죠? 이게 부처님이 설하는 바라는 거에요. 그러니까 경전을 이게 전하기도 어렵고, 저한테 시간이 저한테 주어지면은 또 경전을 공부하고 같이 해나가실 시간을 가져나가겠지만 諸佛所說제불소설이에요. 모든 제불소설이에요. 모든 부처님께 지금 설하는 바라는 거에요.

 

그 얘기는 경전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2500년 전에 이미 이 염은 이 석가세존의 이 염파는 지금 출발이 됐고, 지금 이런 과정을 통해서 지금 불자님들이 불설아미타경을 통해서 석가세존의 말씀이 우리들한테 지금 들어가고 있는 과정이거든요. 너무 쉽죠. 그죠. 그래서 우리가 이거를 바꾸어가기 시작해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舍利弗사리자여. 若有人已發願약유인이발원. 사람이 이미 발원한 것과 이미 내가 발원한 것과 지금 발원한 것과 마땅히 발원할 것과, 欲生阿彌陀佛國者욕생아미타불국자. 그 나라에 모든 是諸人等시제인등 사람들과 皆得개득. 얻는다. 뭘 얻어요? 不退轉불퇴전을 얻는다는 거에요. 절대 이건 발원하고 그러니까 다시. 이 얘기는 뭐냐 하면요. 사람들이 안 믿는 거에요.

 

저기 저 어디 우리가 살면서 보문사에 가서 기도하면서 그게 헛된 거 같다. 생각 들잖아요. 그죠? 그런데 그렇지 않아요. 어디서든지 불전이 있는데, 심원사 같은데 가서 기도하고 그러면 절대 헛되지 않습니다. 우리 삶 속에서 보면은 집에 앉아서 해도 그게 기도가 이루어져서 불퇴전이에요. 물러나지 않아요. 나한테 공덕으로 남습니다. 모든 세계는 화엄경의 세계는 그렇게 설명하고 있어요. 그걸 보고 다른 말로 뭐라고 그랬냐 하면 事事無碍사사무애라고 그랬어요. 처하는 곳곳마다 걸림이 없다. 그랬어요. 큰 스님 법문 들어보면 자세히 나와 있어요. 사사무애에요. 걸림이 없는 거에요. 사실은. 어느 자리에 탁한 것이 있으며, 어느 자리에 불편한 것이 있으며, 어느 곳에 부족함이 있을까?

 

자기의 목을 자기의 삶을, 자기의 생활을, 자기의 분수를, 자기의 방향성을, 자기의 삶에 대한 규정을 스스로 정하고, 스스로 자기를 채워 가면은 사사무애에요. 하는 일마다 걸림이 없게 돼 있어요. 그런데 거기에 이욕을 자꾸 집어넣는 거에요. 자기 입장을 내세우는 거에요. 아상을 세우는 거에요. “나 기분 나빴어.” 이러고 시작해요. 중도 그래. 저도. 그런데 석가세존께서 뭐라고 딱 설명해놨어요. 事事無碍사사무애에요. 장애가 없는 거에요. 그렇게 장애가 자꾸 자기에게 생겨오는 것들을 전부 그쳐가고 뭐라고 표현해요? 원융무애라고 그러거든요. 원융무애의 세계로 그러니까 뭐든지 다 하나하나씩 이렇게 건너가야 되요. 법화경에는 뭐라고 그랬냐 하면요.

 

사람이 곧 부처라고 요렇게 설명하고 계시거든요. 은현. 이런 말이 있어요. 은근하다. 이렇게 쓰는 말이 있거든요. 은현하다. 이렇게. 우리는 지금 은이에요. 왜 은이냐 그러면 부처님이 들어있는 드러나지 않는 부처에요. 그렇죠. 그죠? 법화경의 말씀은 현불이에요. 그게.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사실은 부처고 우리는 있는 그대로도 뭐라고 말해요? 현실 안에 그대로 부처님이시라는 거에요. 은현의 세계가 있다는 거에요. 우리는 지금 아직 부처님이 드러, 불성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고, 석가세존은 이미 드러난 현상이고. 모든 불보살님이나 선지식이나 조실스님이나 이런 충분히 공부한 큰 스승들께서는 이미 벌써 현불을 누리고 사는 세계와 똑같으세요.

 

요런 것들이 들어있으면서 거기 안에 다 부처님의 현상이 다 들어져 계신 것을 우리는 느낄 수 있습니다. 그걸 보고 은현의 세계다. 이렇게 표현해요. 그래서 그거를 화엄경에서는 요걸 딱 한마디로 딱 정리해놨어요. 뭐라고 정리 했느냐 하면 眞空妙有진공묘유라 그랬어요. 眞空妙有진공묘유. 어떻게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묘한 것이 반드시 있다는 거에요. 다 빈 거 같은데 거기 생명체가 있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늙으면 다 끝이고 아무것도 없지. 이 세상은 두 번 다시 볼 수 없지.” 이러니까 슬퍼지고 괴로워지고 난리가 나잖아. 그런데 거기에 묘한 생명체가 있어요. 제가 거듭 말씀드리지만 금생에 요 육체 끝나고 나면 세상 다시 이 눈가지고는 다시 안 보입니다.

 

그러나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도 그대로 있는 그대로 계세요. 진짜에요. 이거는요, 안 들어간 본 사람은 모릅니다. 그래서 보면 이게 보면요. 그 아까 불설아미타경에 나타나 있는 것이 불퇴라고 하는, 불퇴전과 불퇴라고 하는 같은 말이 강조가 한 번 더 나왔거든요. 이게 뭐냐 하면 물러나지 않는다는 거에요. 이 생명 자체에서는 더 이상은 물러나지 않는다는 거에요. 그러니 무엇을 더 두려워하고 무엇을 더 무서워하며, 무엇을 걱정하고 무엇을 근심하고 살겠어요. 정토에 살아야 되거든요. 정토는 즐거운 세계에 사는 거에요. 기쁨을 누리는 거에요.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순진하면서도 괴로워하는 거에요.

 

힘들다고 자꾸 토로하게 되고, 자꾸 입에 올리게 되고, 신경질 부리고 짜증 부리면 부부가 같이 살면서요, 공동체를 하나 공동 생각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공동감성이라고 하거든요. 이런 걸 조금씩 느껴가고 이런 것들을 배워 가면은요, 기가 막힌 것을 느낄 수 있거든요. 조금 떨어져 있어도 감사한 것을 가슴에서 느낄 때 참으로 기쁨이 일어나잖아요. 당신이 보여준 아주 작은 것에 고마움을 느끼거든요. 그러니까 남편도 그러면 아내가 한 것에 대해서 모르느냐? 다 알아요. 그런데 그 보다 더 기관단총을 더 많이 사용하니까. 아다다다다다다다. 해결이 안 돼. 해결이. 그거 가지고 해결 될 수 있는 사람 아직 못 봤어. 수많은 사람 만나보고 수많이 상담하고 수많이 얘기하잖아. 그죠? 자기한테 빠져있는 동안에는 해결이 안 됩니다.

 

니는 잘못됐고 나는 잘됐다. 이 생각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동안에는 남편하고 해결이 안 돼요. 자식문제도 해결이 안 됩니다. 너무 잘 아시는 것처럼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 내면에는 진공묘유가 있어. 참된, 다 세상이 빈 것처럼 다 허무하고 다 외롭고 다 우울하고 다 세상 무너져가는 거 같은 느낌을 때때로 겪거든요. 요즘처럼 나뭇잎 다 떨어지는 거 보면 요즘 쓸쓸해요. 감성은 똑같이 느끼거든요. 보십시다. 다시 한 번. 올라갑니다. 是故시고로. 舍利弗사리불이여. 汝等여등 이런 말은 너와 더불어 너희들과 이런 뜻이죠? 그죠? 마땅히 다, 다 마땅히 믿을 지로다. 기억해 두셔야 되요. 화엄경의 본질은 믿음이에요. 법화경의 본질은 믿음이라고요. 불교의 생활은요, 믿음이라고요. 자기 믿는 거에요.

 

내가 나아지고 좋아지고 있다라는 사실을 믿는 거에요. 그 얘기를 불설아미타경에서는 불퇴전의 세계라고 그러잖아요. 어떻게 하면? 한마디라도 나무아미타불 부르는 공덕에서는 절대적으로 물러나지 않는다는 거에요. 그러면 세상을 느낄 때 어떻게 느껴요? 내가 기도하고 예경했으니까 반드시 저 아미타부처님께서 나를 지켜주고 보살펴주고 계시겠지. 이렇게 믿어 주는 거에요. 그런데 의리가 약한 사람은 어떻게 해요? 조금 안 되는 일이 있으면 바로 와서 따져. 시공간이 굴곡 돼 있기 때문에 시공간이 평정돼 있지 않거든요. 인간의 공간에 시간도 마찬가지고 생활도 마찬가지고 둥글둥글 원융무애로 다 굴러져 가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인연에 맞는 *가 생길 때까지 기다리고 예경하고 발원하고 그래서 찡그리지 말고 기다려야 돼.

 

그런데 그 과정 동안 계속 뭐죠? 불평불만 심과 원망 심을 계속 자기한테 부글부글 끓고 있는 사람, 그러면서 세상이 잘 되기를 바라면 잘못된 관념이에요. 이걸 바꾸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 아미타경을 공부하고 계신 거에요. 그렇죠. 그죠? 믿어야 되고 받아들여야 돼. 그리고 내게 있어야 돼. 저 부처님의 세계가 나한테 있어야 돼. 저 정토 세계가 나한테 있어야 되는 거에요. 극락세계가 따로 밖에서 있는 게 아니라 내게서 밖으로 나가져서 나눠지고 어떻게요? 보시하고 나갈 수 있는 마땅히 그렇게 해야 된다는 거에요. 그게 내 언어로서 자기에게 따뜻함으로 돌아와요. ~ 이것만 해도 다행하구나. 이것만 해도 고맙구나. 그렇죠. 그죠. 저 잘생긴 스님 보는 것만 해도 감사합니다. 제대로 웃지 않는 게 표정이 다 인정하는 표정이 전혀 않으시네. 이제 웃고 지나가자는 얘깁니다. 그것도 오해하면 큰일 납니다.

 

諸佛所說제불소설이에요. 모든 부처님이 이렇게 설하는 바라는 거에요. 저는요. 저도 참 시원찮은 사람 중의 한 사람인데요. 스님으로도 아주 시원찮아. 그런데도 불구하고 불설아미타경을 이렇게 공부해 가면서 놀라운 것들을 발견해가요. 참으로 감사한 생명이다. 이렇게 느껴져요. 조금만 더 보겠습니다. 사리불이여. 만약 사람이 있어 그 이미 사람이 발원했거나. 今發願금발원. 지금 발원하고 있거나, 마땅히 발원한 것이거나, 欲生阿彌陀佛國者욕생아미타불 저 세계에 태어나기를 원한다는 거에요. 극락세계에 태어나기를 원하는 세계에 발원하는 거죠. 是諸人等시제인등 지금 모든 사람들과 모든 不退轉불퇴전을 얻는다. 이런 뜻이거든요. 전한다. 뭘 전해요? 이것을 전해서 어디로부터?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세계로부터 연결된다는 뜻입니다.

 

즉 다시 우리 안에 원만하고 완전한 불성세계와 연결이 딱 돼서 그것이 현실 안에서 그대로 그 加護之妙力가호지묘력 속에서 살게 되요. 그러면 我當安之아당안지라고 그러거든요. 삼계가 다 개고. 삼계가 다 고통스럽다라고 먼저 보지만, 그러나 자기 안에 아당안지에요. 편안한 자기 세계가 극락세계가 자기한테 생기기 시작해요. 안에서 기쁨이 생기고, 안에서 행복이 생기고, 자기 안에 편안함이 하나하나씩 채워져 갈 때 비로소 밖으로도 자기 삶에 대한. 쉽게 합시다. 전부 주변이 좋아져 가는 과정을 겪게 돼 있습니다. 그렇죠. 그죠?

 

그래서 그것은 뭐라고 말해요? 於彼國土저국토다. 저국토가 무슨 국토요? 이미 부처님의 세계에 나아가기를 발원하고 사리불이여. 이렇게. 마땅히 만약 이미 태어난 지금 생이거든요. 若已生이생과 若今生약금생, 금생에 태어남과, 若當生약당생. 마땅히 앞으로 태어날 세계와 是故시로한고로 사리불이여. 諸善男子善女人선남자선여인이여. 若有信者약유신자. 만약 이런 과정 안에서도 믿는 자가 있으면 마땅히 응하여 마땅히 응해 발원할지로다. 뭘 발원해요? 극락세계에 태어나기를 발원해야 된다. 극락세계에 태어나기를 발원한다는 거에요. 절 좀 보세요. 어디에 태어나고 싶으세요? 극락세계가 어디 있죠? 극락세계는 여기에요. 이미 태어난 자는 이미 극락세계를 살고 있고요.

 

앞으로 태어날 모든 생명도 극락세계에 살 것이고, 마땅히 앞으로 만나지는 세계도 다 극락세계로 만나실 것이고. 또 하난 뭐죠? 앞으로 미래세도 다 마땅히 편안한 삶의 세계를 열어갈 수 있다는 거에요. 그걸 누가 가르쳤어요? 석가세존이 뭐라고요? 불설아미타경을 통해서 주인공을, 아미타부처님을 세우고, 사리불 존자의 대화를 통해서 이걸 설명하고 계신 거요. 마땅히 그렇다가 된다는 거에요. 마땅히. 그래서 요걸 하나 살펴보면은 지금 이 순간에서 우리의 삶에 대한 문호가 거기에서 같이 일어나야 된다는 거요. 그래서 넘어가겠습니다. 51쪽에 넘어오시면 44번째 具足德本願구족덕본원이라 돼 있어요. 나의 생명은, 나의 불성은, 나의 삶은, 나의 생활은, 절 보고 하셔야 돼. 딴 데 볼 거 없어요.

 

나의 생명은, 나의 삶은, 나의 생활은, 내 인생은, 내 운명은, 그냥 불자님들은 하나정도 정리하면 다 잘됩니다. 이거 뭐죠? 구족 하다는 거에요. 내 생명 그 자체가 구족한 상태인데요. 이렇게 보기를 발원하는 거에요. 그게 저 극락세계에 태어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거에요. 지금 발원하는 사람만이 영어로 보면 right now라고 표현하거든요. 발음이 이상하다. 이 말을 현재 지금의 발원이에요. 지금. 이게 분리가 안 돼 있다는 거에요. 저 극락세계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현상에서 발원하는 것이 저 이미 구족함을 갖는 거에요. 얼굴 들어 저 좀 보세요. 시간이 다 돼가서 문 닫아야 되니까. 여기 좀 보세요. 여기 좀 보세요. 구족이라는 것을 배우셔야 되요.

 

이 말을 다시 말을 하면 만족이라는 말을 배우시는 거에요. 같은 말이라도 대다수의 습관적으로 일반적으로 생활적으로 어떻게 표현 하느냐 하면 다 부족한 것만 얘기해요. 정말 묘한 것이 있어요. 이상한 습성이 들어있어요. 안 되는 것은 철떡 같이 믿고, 되는 것은 끝임없이 얘하거든요. 제가 1년 동안 여기서 강의하잖아요. 1년 동안 강의하면서 대 긍정을 설명하고 있거든요. 대조화를 설명하고 있다는 거에요. 불자님들은 계속 와서 아버지도 이상하고요. 아들도 이상하고요, 딸도 안되고요. 집도 안 팔리고요. 방도 없어요. 나 혼자 앉아가지고 방 없는 사람도 괜찮아. 큰 방으로 넘어갈 수 있어. 이거 가르쳐주고 있거든요. 내가 병들었어요. 그러니까 괜찮아.

 

나도 알아보니까 병은 어떻게라도 마음의 그림자이기 때문에 마음 바꾸면 마음을 고쳐주면. 긍정으로 바꾸고 감사로 바꾸고 조화로만 바꾸어주는 과정만 겪으면 병 불행에서 얼마든지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이렇게 말해주거든요. 애기들 수험생들 와서는 내가 합격할까요?” 그래. 공부를 내가 해봤어? 그건 자기가 하는 거에요. “내 운명은 좋아질까요?” 자기 생각이 다 찡그려져 있는 거에요. 자기가 무너져있는 거에요. 이게 불교가 가르쳐주는 스님 역할은 이걸 바꿔주는 거에요. 그러니까 제가 절에 와서 올해 와서 부처님께 은혜와 공덕이 조금 있다면 저한테 그런 안목이 조금 생긴 거에요. 그저 울고불고 와도 내가 보기에는 괜찮거든. 이게 나한테 생긴 거 에요. 처음에는 나도 같이 울어주고 같이 매달려서 같이 망해. 같이.

 

그런데요. 부족은 없어요. 구족만의 세계가 있어요. 입을 열 면은 만족을 말하셔야 되요. 입을 열 면은 구족을 얘기하셔야 되요. 입을 열 면은 괜찮다고 말해야 돼. 여기 불설아미타경에 끊임없이 설명드리는게 칭찬불가사의 거든요. 칭찬하는 것에 그 불가사의에 불성이 거기 작용한다 이러잖아요. 그죠. 이것만 하나둘씩 배워서 가져 가면은 뭐가 생겨요? 자기 삶에 대한 구족이 스스로 스스로 들어차게 돼요. 사사무애에요. 걸림이 없습니다. 사실은. 여기 보세요. 그죠. 머리카락이 자라잖아요. 저는 일주일에 한 번씩 자르거든요. 보통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 불자님들 보시면 전부 볶아놓고 어떻게 했는지 하여튼 바글바글하게 해 놨잖아요. 저그들끼리 싸우는 법이 없어. 사사무애에요.

 

같은 한 머리에 뿌리를 가지고 한 머리에 붙어서 같이 자라는데 절대 싸우지 않거든요? 중생은요, 우리들의 이웃들의 이웃들은 한 가족에서 같이 만들어가지고 그렇게 사랑하고 그렇게 서로 원해서 그렇게 생활해서 한 인연을 지어서 사는데요. 왜 끊임없이 시비를 하고 왜 내가 서운했다” “내가 불행하다.” “니가 나한테 이렇게 했지.” “내가 해준 게 뭐냐?” 이러고. “내가 이렇게 해줬는데.” 늘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이게 언어가 계속 그것을 습관화적으로 연결해오기 때문에 불행해 지는 거에요. 그 불행을 그치려면은 그 말을 바꿔야 되요. “내 아들도 감사하구나.” “남편님도 감사합니다.” “물 쓰면서도 수돗물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매사 감사하는 마음을 자기에 인식 안에 자기를 세포 안에 이것들을 훈련을 자꾸 시켜야 되요. 반드시 이게 낮은 가르침이 아니에요. 저는요. 고행을 엄청나게 해가지고 무슨 삼천 배 뭐를 하고, 지가 안 행복하면 뭔 소용이 있어. 내가 행복해야 내가 기뻐야 극락세계가 열리지. 악을 악을 쓰고 이거 하고 나면 공덕이 돼서 뭐가 되겠지. 이런 생각 하지 말아야 돼. 병에서 자유로워지려면 그 병에 대해서 감사하셔야 돼. 안된 것에 대해서 더 감사해야 돼. 나를 힘들게 하고 억울하게 하는 모든 상사나 부하나 자기를 힘들게 하는 가족이나 생활공간에 그 사람에게 더 108번만 그 사람에게 이름 붙이고 아무개 붙이지 말고 그 사람 이름. 내 상사 아무개님. 또 아무개님 그런다. 아무님. 누구누구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루에 108번만 해봐요. 모든 관계가 원만해지는 걸 난 봤습니다. 모든 것이 원만해져 가요.

 

처음에는 안 되는 거 같고, 기분도 상하고, 사람이기 때문에, 자기 하고 싶은 데로 해야 되는데 힘이 떨어지거든요. 그런데 그 떨어진 것에 대해서 의식을 바꿔가셔야 되요. 그러면 시차가 지나가면서 나를 바꿔가는 과정을 통해서 모든 것이 바뀌어져 와요. 이런 말은 공부해왔잖아. 이거는 믿어야 돼. 스님이 제가 이래 말씀을 드리는 것은 다 도움 되는 얘기를 하지, 죽어라고 안 해. 그저 희한하죠. 그죠. 여기 말고. 여기는 아무 문제가 없어. 하하하하하. 아무 문제가 없으세요. 생생에. 세세생생에 지나가도 불퇴전이에요. 안 없어집니다. 이런 것을 묘유라고 그러고 진공묘유라고 그래요. 으음.

 

시간상 또 다 정돈 좀 해야 되는 거 같은데, 우리들 마음속에 부족을 헤아리지 말고 만족을 배우셔야 되요. 감사를 배우세요. 조화로움을 배우세요. 그렇죠. 그죠. 그리고 불퇴전입니다. 불자는 불퇴전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저 제불이 언제든지 지켜주고 보살펴주고 계시다는 겁니다. 이 사실을 꼭 내 마음속으로 믿으시고 행복한, 행복한 매일매일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