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스님 _ 제45회 주정견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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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법문/정현스님_불설아미타경

2012. 12. 2.

출처: 불교TV
  

잘 지내셨습니까? 오늘 30, 30페이지 경전을 좀 정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선남자선여인이여 만약 믿는 사람이 있으면 마땅히 발원하는 사람은 그 정토에 태어날 수 있다고 그렇게 설명하고 계시거든요. 정토에 태어날 수 있다. 그렇게 말씀드리거든요. 그럼 정토라는 게 뭔가? 정토는 경전 안에는 저 서쪽으로 한없이 한없이 건너가면 극락세계가 있다. 이렇게 말했거든요. 그런데 그건 마음의 세계의 거리를 얘기한 거고 시공간을 설명했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을 드렸거든요. 다시 말하면 극락세계는 우리한테 있거든요. 극락세계는 이곳에 있습니다. 극락세계는 우리가 삶, 생활 속에 있습니다.

 

그리고 나의 세포 하나, 나의 정신 하나, 내 감정하나, 내 기분 안에도 전부 뭐죠? 정토의 세계가 있다는 거에요. 극락세계가 거기 같이 머물러 계시다. 라고 이렇게 말해요. 그런데 그걸 찾으려면 일만 팔천 리를 넘어서도 찾을 수 없다. 이러거든요. 그런데 그게 마음의 거리입니다. 그 마음의 거리를 단 순간 마음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극락세계에 누리게 돼요. 언제? 지금부터. 이곳에서. 현재에. 이것을 극락세계로 누릴 수 있다.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아까 좀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우선 이것을 믿음으로 좀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때 이 믿음은 바른 믿음으로 받아들이셔야 돼요.

 

그래서 요즘 세상에 말법 세계에는요, 참 묘한 시간이 좀 지나가면서 정리되는 것이 있는데. 내가 내 스스로 그걸 보고 뭐라고 그러냐 하면 내가 스스로 가작해서 가작해서 자기 이성, 이상을 만들어가지고 자기 이성이나 이성을 가지고 그 세계를 자기가 스스로 만들어요. 그래서 그것을 보고 쉽게 설명 드리면요, 제가 조금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자기 자신이 알게 모르게 뭐한다고요? 자기 스스로 이게 자꾸 이걸 가짜로 자기를 만들어요. 그런데 이것도 같은 것 중에서도 좋은 것을 설명하면 너무나 좋은데 좋은 것은 바라다보지 못하고 좋지 않은 것만 자꾸 생각을 하는 거에요. 이 게 이 게 다 거짓이거든요.

 

만일에 나한테 우리가 사는 삶 속에서 가난과 우리가 살면서 병이라든가 불행이라든가 이런 것은 우리가 아까 말씀드렸죠. 생활이 가난할 수도 있고, 병들 수도 있고, 불행할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이것은 아주 이것을 전부 잘못 보면은 전부 고라고 느껴질 수 있는 반면에. 같은 것이라도 가난한 삶을 가난한 경제적인 삶 속에서도 기뻐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분명히 있습니다. 행복한 사람도 더 많이 있습니다. 오히려 가난할 때가 더 행복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러니까 병드는 것에도 고것만을 바라다보지 말고, 아픈 것만 집착을 하고 그걸 보고 우리는 편집착 이라고 그러거든요.

 

그걸 우리가 일러서 한쪽의 세계를 편이라고 그러는데 이것은 편집이라고 표현하죠. 이렇게 편집이라고 그러는데. 하나의 것이 이걸 집착하고 있으면 고통이에요. 그러니까 가난한 내 상태에 대해서 내가 가난하다라고 자꾸 말하는 것에서 생각하는 것에서 이해하는 것에서 고를 지금 만들어요. 언제요? 지금. 지금 현실에서 고통만이 있다라고 생각을 하게 되는 거에요. 이걸 진짜가 아닌데 이건 자기에게 진짜가 아닌데 가짜로 스스로 자기가 만들어요. 놀랍죠. 그죠? 그래서 그거를 다른 말로 일러서 이거를 이상이라고 이렇게 우리가 표현하잖아요. 이걸 이상이라고 표현합니다. 假我理想가아이상 이라고 표현하거든요.

 

그런데 가짜의 현상을 자기 스스로 가작해서 거짓으로 짓는 거에요. 진심으로 보지 못하고 가짜로 자기 인생을 자기가 보는 거에요. 아이고 나는 늙어가지. 나는 병들어가지. 나는 행복하지 않지. 나는 외롭지. 이렇게 말하거든요. 그런데 이것만을 들여다보고 살면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요것들이 이 가작 돼 있는 것 자체도 절 좀 보셔야 돼. 우리가 이게 거짓된 것만이 세상에 있느냐 그러면 요것 자체로도 이게 뭐죠? 영원한 방법이 없습니다. 이건 영원하지 않은 거에요. 이것 자체가 뭐라고요? 무상한 상태에요. 이것 자체가. 요것만 퍼떡 깨우치면 돼요. 가난한 것이라고. 이게 뭐죠? 고를 집착해. 편집한다. 이거거든요. 편집해요. 자기가 스스로 집착하고 있는 동안 이 가난과 병과 불행이 자꾸 자기한테 있다라고 말하는 거에요.

 

그걸 누가 짓느냐? 자기가 스스로 거짓으로 져. 진실이 아니에요. 그렇죠. 그죠. 으음. 그래서 자기 이상을 만들어서 자기 벽을 만들어요. 그런데 현상에서 이것을 바꾸어가려면 어떻게 해요? 가난한 것을 생각하기 전에, 짓기 전에 우선 이게 진실이 아니어도 뭐죠? 풍부하게 생각을 하셔야 돼. 라면만 먹을 수 있는 상태에 있던 사람이라도 자기가 스스로 지어요. ~ 이 라면 하나라도 이걸 고맙고 감사하게 여겨야 되는데, 이것밖에 없다라고 짜증을 부리고 화를 내고 싸우고 부*고 깨지고 이러는 동안 그 라면 자체도 없어져 버려요. 박복해가지고. 그럼 그다음부터 어떻게요? 지옥이 생겨요. 현실 지옥이 생깁니다.

 

이걸 보고 일러서 뭐라고 그러냐 하면 현실 뭐라고 말해요? 현실 고 그러잖아요. 이 자체가 지옥이에요. 현실 지옥이 자기 스스로 만들어서 자기가 가작을 짓는 거에요. 불설아미타경에서 정토를 말하거든요. 글자 그대로 이거 뭐에요? 정토 아니에요. 그죠? _이거는 중심이라는 뜻입니다. 나의 중심 정토거든요. 이거는 정_어떻게요? 맑음이라고 표현하잖아요. 깨끗하다. 이런 뜻이잖아요. 그런데 깨끗하다 라고 하는 것은 이건 다른 말로 얘기하면은 바르다 라는 말과 표현이 전혀 다르지 않은 거잖아요. 그 얘기를 우리는 거꾸로 옮겨오면 뭐죠? 밝음으로 채워간다. 이 겁니다. 너무 쉽죠. 나의 중심이라고 나의 기둥이라고요.

 

그런데 이 기둥을 맑게 보고, 바르게 보고, 맑게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게 정토거든요. 정토가 따로 어디에 깨끗하게 클리닝 해가지고 새로 입는 옷처럼 이렇게 깨끗한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중심 안에서 맑음을 봐야 되요. 그러면 자기중심에 기둥이 생기고 집도 생기고 재물도 생기고 사랑도 생기고 조건도 생기고 환경도 자기중심으로 오게 돼 있는데 이것을 자꾸 자기에게 상태에 있는 것들은 고맙고 감사하게 여기지 못하고 뭘 봐요? 스스로를 가짜로 스스로 자기를 지어서 자작해. 무수히 많은 경전에서 그걸 설명하고 계시거든요. 지금 당신이 짓고 있는 것은 자기 사는 자기 생각에 의해서 자기 언어에 의해서 자기 행위에 의해서 자기가 거짓을 만들어서 스스로 뭐죠? 가난하게 사는 거에요.

 

풍요로운 것은 분명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데 자꾸 가작을 하는 거에요. 그런데 이게 거짓이라 하더라도 내가 지금 아무것도 없어. 그래도 나는 풍요로운 정토의 세계가 내가 있구나. 라고 이렇게 먼저 믿는 마음으로 옮기는 거에요. 이 옮기는 것을 뭐라고요? 바르게 믿기 시작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 곧 곧바로 정토라는 뜻입니다. 바르게 믿는 것. 그래서 요 상태로 들어오면은 우리가 발원하고 49재 발원하면서 늘 말씀을 드리잖아요. 건강을 발원해야 되요. 건강하고 있는 걸 주로 고마워해야 돼. 그런데 몸이 성할 때는 어떻게 해요? 하고 싶은 데로 하잖아요. 대다수 많은 사람들이 이거를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_이거를 듣는다라고 말하거든요. 이걸 청이라고 말하고 듣는다. 이렇게 말해요. 이걸 듣는다라고 표현하잖아요. 이렇게 믿어야 되는데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뭐라고 표현하냐 그러면은 이렇게 표현을 하는 거에요. 妄談망담을 해요. 聽信妄談청신망담_듣는 대로 그걸 믿고 망담인데도 그냥 듣는 대로 그걸 믿는 거에요. 아들이 꼭 좋은 대학에 못 가도 인생이 행복한 거 하고 아무 관계가 없는 거거든요. 군상에 따라서 자기의 능력 따라서 못 갈 수도 있고 좋을 수도 있잖아요. 장사를 하든 기계를 만들든지 뭐를 하든지 사물을 하든지 자기 하는 대로 사는 거거든요. 자기 부모의 입장에 의해서 그 사람이 그렇게 되기를 발원을 해서 안 된다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인상 쓸 거 하나도 없어요. 사람이요.

 

未見미견이라고 그러거든요. 보지 못하는 거에요. 미견이거든요. 보지 못하는 것은 말하지 말아야 되거든요. 未見而言미견이언이라고 그러거든요. 보지 못한 것도 자꾸 말을 하는 거에요. 그래서 자꾸 바른 정토를 못 만들어 내는 거에요. 아까 말씀드렸죠? 정토는 우리한테 있어요. 정토는 내 마음에 있고 감정에 있고 느낌에 있고 생활 속에 있다고요. 어디에? 지금 이 순간에 있어요. 그래서 그 나타난 것이 뭐냐 하면 보지 않은 것도 보지 않은 것도 자꾸 그렇다고 얘기를 하는 거에요. 자기가 본다라는 것은 보고 만다라는 것은 이게 확인이거든요. 여기 보면은 눈이, 눈에서 시각이라고 그러거든요.

 

시신경이 이렇게 들어와서 반대로 여기에 반사가 거꾸로 들어가서 카메라랑 똑같거든요. 들어와서 여기에 잔상이 이루어지거든요. 그래서 안구 안에서 수없이 거의 100만 개의 시신경이 뇌로 올라가거든요. 말은 그냥 그렇게 이해하시면 돼요. 그렇다 그러고. 그게 엄청난 거거든요. 엄청난데. 그런데 이게 보면은 눈이라는 게 얼마나 미세하고 얼마나 대단한 아름다운 것뿐만 아니라 엄청난 능력을 가졌어요. 누구 하나 싹 왔다 가면 눈이 옆에까지 다 파악하거든요. 그런데 옆으로 싹~ 돌 때는 흑백이에요. 정면으로 돌아올 때 그게 빛이 흐리기 때문에 늘 바르게 봐야 되거든요. 그래서 볼 때는 바르게 봐야 된다는 거죠. 이게 앞에 해야 되죠.

 

애기들도 태어나면 사팔뜨기라고 그러잖아요. 매일 이거 하고 이거 하잖아요. 눈 잘못 뜰까 봐. 아직 온전해지지 않으니까. 그 매달려놓고 흔들리고 눈에 보이고 하는 거 내~ 그래서 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바로 정견을 봐야 되는 거에요. 바르게. 우리는 바르게 볼 필요가 있는데 바르게 보지 못할 때는 정토를 보지 못하는 거에요. 나한테 풍요로운 것을 보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내가 건강함을 봐야 되는데 건강이 오지 풍요를 봐야 풍요가 오지. 그렇죠. 그죠. 애인을 봐야 애인이 오지. 남편을 봐야 남편이 오지. 세상에 봐야 될 사람이 누구예요? 이웃집 아저씨 보면 안 되잖아. 마음의 눈이 그런 거거든요.

 

그래서 이게 똑바로 볼 때 확인이 돼요. 그죠. 상이 바뀌어가지고 현상이 제대로 받아들여서 시신경에서 뇌에 후두부까지. 전엽 후염이 있거든요. 표현이 그래요. 이게 잔상이 뒤에 가서 있어야 되거든요. 뒤에 가서 있어야 되요. 그래서 이거는 뇌에 조절하고 뇌에 후 뒤쪽이 조절하고 억제할 줄 알고 이성적이거든요. 그런데 전엽은 뭐냐 그러면은 감각적이에요. 그리고 급해. 빨리 판단해야 되요. 앞에 뇌는. 뇌에 그런 거에요. 이게 한 과정 안에서 다 흘러들어 가거든요. 이렇게 흘러가는 과정 안에서 이거를 보고 이게 보고 천천히 천천히 천천히 마음을 내려서 천천히 천천히 천천히 하나씩 공부를 해 나가면은 사람도 마찬가지거든요. 연세하고 아무 관계 없이 그게 작용이 돼요.

 

그러면 조금씩 염불하고, 조금씩 기도하고, 조금씩 생활을 온전하게 바르게 보려고 하는 안목을 자꾸 가지고 그런 의지를 점점 갖잖아요. 이렇게 가져가게 되면은 이 시신경이 뇌로 가서 뒤쪽에서 조정이 되가지고 요거는 하지 말아야지. 해야 되는 것이 정리돼서 다시 거꾸로 돌아와서 전엽으로 건너와가지고 시신경이 움직여서 다시 볼 때 바르게 본다는 얘기죠. 그러니까 이건 뭐죠? 잘못 보지 않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불교를 공부하면서 정확하게 이해해야 될 게 뭐냐 하면 편집되면 안 돼. 어떤 것에 편집하시면 안 된다는 거에요. 자꾸 편집을 하게 되요. 아상이 자꾸 자기를 지배해요.

 

아만, 자기가 잘났다는 것. 그죠. 교만, 아만, 교만. 이런 것들이 자꾸 자기를 지배해요. 이렇게 하고 있는 동안은 이 사람은 가난하죠. 집안 뒤져봐요. 집안이 되나? 안되나? 이게 죄송스런 말씀이지만 자기 안에 아상이 점점 높아가고, 내 입장을 내세우고 내 말만 옳다고 자꾸 주장하는 불자님들 삶 속에 집에 들어가 봐요. 고집을 하면 할수록 자기가 잘됐다는 생각을 가지면 가질수록 뭐죠? 집안이 가난해지고, 자꾸 병든 일 생기고, 불행한 일이 반복적으로 끊임없이 집안에 생기는 것을 우리는 피부로 느낄 수가 있어요. 제가 요 부분도 제가 조사 좀 하려고 그래요. 그러면 불설아미타경을 우리가 만나고 저 아미타 부처님을 만납니다.

 

이 다른 학자들에 의해서는 석가세존께서 나무아미타불 육자대명, 육자의 그 큰 언어를 만들어줄 때는 우주 삼라만상에 모든 에너지를 거기다 집어넣어서 만든 명칭이라는 겁니다. 그거 부르는 것만으로도 편안해집니다. ‘나무아미타불이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그렇죠. 그죠. 더불어 자꾸 말씀드리는 게 관세음보살 하는 사람 많거든요. 지장보살 하시는 분 많아요. 관세음보살 기도하는 게 제일 않으시고. 그러나 똑같아요. 그 위신력은 똑같은 거에요. 한 뿌리를 갖고 있어요. 그 본다라는 말은 곧 자기 시각이거든요. 자기 확인이거든요. 자기 안구에서 눈의 작용에 의해서 뇌로 연결되고 후두염으로 다시 가거든요.

 

그리고 다시 작용할 때는 전엽에서 행동으로 움직이거든요. 다시 한순간에 그걸 다시 확인하고 있어.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이나 나무아미타불이 뭐가 달라요? 그런데 불설아미타경에는 그걸 설명해 놨어요. 뭐라고 설명했냐하면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것에는 거기에는 진신이 있어요. 진신. 부처님의 진신. 불성 부처님. 부처님이 발견한 세계에 그 세계의 핵심은 다 비어있거든요. 그 비어있는데 그걸 眞空妙有진공묘유라고 그래요. 우리도 배웁시다. 진공묘유. 이거 어려운 말인데요. 아주 쉽게 받아들이면, 악을 악을 쓰는 것에서도 탁~ 비어있는 세계가 눈에 보이기도 한다는 뜻입니다.

 

그걸 느끼는 것이 정토의 세계입니다. 정토는 알고 보면 맑은 세계거든요. 전체적으로 다 맑은 세계를 무슨 세계라고요? 정토의 세계라고요. 요즘 인터넷이라든가, 모바일이라든가, 휴대폰, 정보는 엄청나요. 다 스승이야. 전부 스승이고 전부 뭐죠? 다 가르침을 주고 마스터의 역할을 전부 자기들이 하고 살아. 그런데 자기가 옳은지 그른지 자체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 요거 심각하거든요. 그래서 경전에 보면 뭐라고 말했냐하면 장님은 길을 인도할 수 없다고 그랬어요. 날개가 부러진 새는 하늘을 날 수 없다고 그랬어요. 굉장히 중요한 거거든요. 바른 내가 이득이 되고 내가 바른. 다시 거꾸로 얘기하면 아주 쉽게 정리할 수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내가 먹고사는 거 자꾸 허덕이고 그 일로 자꾸 싸우고 부딪치고 집안에 갖고 편안하지 않다. 바른 법을 배우지 않는 거에요. 지금. 마음을 바꾸든지 공부를 하든지 기도를 하든지 수행을 하든지 제대로 하셔야 돼. 이렇게 하는 방법이 뭐냐 하면 거꾸로 봐야 되요. 그런데 눈을 뜨고 보기 시작해야 돼. ~ 내가 여기 절에 나가서 기도하고 예경을 하니까. 여기 지장사 뿐만 아니라 건봉사나 이런 데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찰에 가서 자기가 공부하고 수행하시잖아. 그죠? 그러면 내 삶이 풍요로워져야 돼. 어떻게 하든지 넉넉해지고 편안해지는 것을 피부로 느끼셔야 돼. 가슴에서 자꾸 느껴지실 수 있는 이런 안목이 자꾸 열리셔야 되거든요. 그러고 건강하게 사셔야 돼.

 

그거는 자기 몸에 대한 것은 자기 책무이자 의무에요. 자기 건강은 자기가 챙겨야 돼. 누가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간호, 누가 간호는 해줄 수 있고 도와줄 수는 있지만 자기 건강은 자기가 챙겨야 돼. 그렇죠. 그죠. 그러고 자기가 행복해지는 건 지가 행복하지 누가 대신해 줄 수 없거든요. 자기가 챙기는 거에요. 이 모두를. 부처님은 오직 스스로 서라 그랬거든요. 한걸음 한 걸음 걸어 나가는 것도 너 자신이 걸어가지 누가 등 떠미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거에요. 절 보세요. 내가 이렇게 머리 깎고 살면서 배 키우고 이렇게 왔다갔다는 걸 누가 등 밀어서 해 주는 게 없거든요. 그렇잖아요. 오직 지가 가서 지가. 으음. 나도 안 바쁘게 살면 되는데 지가 혼자 바쁘게 살아. ~ 묘한 거에요.

 

그러니까 불평할 게 없더라고. 내가 이렇게 했는데 하는 이 생각이 내가 어리석은 거에요. 나도 그 생각 끊어야 되요. 그래서 책도 있고, 인터넷도 있고, 텔레비전도 있고 수많은 매체가 있어요. 잡지도 있고. 그런데 실제로는 정말로 들어야 될 거, 정말로 배워야 될 것이 극히 적다는데 이게 문제가 있어. 그래서 그 말을 능엄경에서는 뭐라고 그랬냐 하면 [말법 시대에는 삿된 스승이 설법이 항하의 모래알처럼 많은 시대가 있다.] 그랬어. 경전 내용은 뭐라고 그랬냐 하면 [말법 시기에는 사사, 삿된 스승이 설법하기를 저 항하사 모래알처럼 그렇게 많다.]는 거에요. 능엄경 말씀이거든요. 돌아서면 선생이고 돌아서면 스승이고 돌아서면 master마스터야. meditation메디테이션. 인도자. 이러면서. 명상수련자 지도자 이러면서. 전부 지도자야.

 

들을 사람이 적고 말할 사람만 많다는 거에요. 그래서 이럴 때 바른 법을 숙지 못하는 보통 사람들은. 그러니까 불교를 제대로 배우지 않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다 보통적인 사람들은 이게 정법인지 말법인지 불법인지 이게 구분이 전혀 안 되거든요. 그래서 많은 오해를 낳는 거에요. 자기가 신행하고 공부해 가는데 다시 말하면 불설아미타경에서 제시하고 있는 정토가 이곳에 있다고 말했어요. 정토가 곧 내게 있다. 이랬거든요. 이렇게 설명하는 거에요. 분명히 저 좀 보세요. 불법은 미신이 아닙니다. 불법은 미신이 아니라 불법은 정법이에요. 불법은 바른 믿음이에요. 정신이에요.

 

그래서 그거를 일러서 이거를 우리는 正信정신. 이렇게 말해요. 바른 믿음이다. 그냥 우리 바른 믿음 역시 이것이 불법이다. 정신여불이다. 이렇게 표현하거든요. 같이 들여져 있는 것을 정신. 바르게 믿어야 된다. 그런데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믿지 못하는 원인이 뭣 때문에 믿지 못하는가 라고 찾아보니까. 요것만 간단하게 하나만 지나가겠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말하는 무라고 그러거든요. _이르다라고 하는 뜻인데. 같은 말인데 이게 무슨 뜻이냐 그러면, 無謂有무위유_없는 것을 있다라고 자꾸 우기는 게 있어. 이건 바른 법이 아니에요. 없는 것을 반드시 없는 것을 자꾸 있다라고 말하는 거에요.

 

어디가 가면 뭐가 치유가 되고, 뭐를 어떻게 하고, 이적이 일어나고, 무슨 별의별 거 다 얘기하잖아요. 그런 거 다 현혹 받지 않아도 돼요. 만일에 내가 지금 걸어서 내가 나가서 엎어질 건지 안 엎어질 건지 그렇게 신묘한 것도 그게 다 삿되다고 말하는 거에요. 若以色見我약이색견아. 금강경에 있잖아요. 若以色見我약이색견아. 以音聲求我이음성구아. 뭐라고 말해요? 是人行邪道시인행사도. 不能見如來불능견여래. 부처님의 진심을 보지 못한다 그러잖아요. 우선 듣고 이렇게 환상이 어디 뭐가 이게 보이고 이렇다 라고 하는 것은 다 뭐죠? 삿되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바르게 봐야 되요.

 

없는 것을 있다라고 자꾸 집착하고 말하는 것도 그게 뭐라고 말하냐 하면, 없는 것을 자꾸 쫓아다니는 거에요. 고사에 보면 이렇게 말이 돼 있어요. 중국 땅이 굉장히 넓어요. 큰 나라에 보면. 그런데 아지랑이가 봄에 아지랑이 봄에 보셨죠. 그죠? 아지랑이 땅에서 지평선에 올라오거든요. 그런데 사슴이나 노루나 이런 동물들은 지식이 없기 때문에 목마를 때는 그게 아지랑이 신기루처럼 아지랑이가 물처럼 보이는 거에요. 그걸 계속 쫓아다니는 거에요. 이해되시죠? 그죠? 절 좀 보세요. 절 봐요. 저 껍데기를 보시면 안 됩니다. 내 안에 들어있는 불성부처님의 바름을 쫓아가셔야 내가 후회되지 않는 일이 생겨요. 껍데기 쫓아가면 안 됩니다.

 

정현스님이 아주 잘생겼다고 그래도 그거 쫓아가면 큰일 납니다. 아무 소용없는 거에요. 부처님 법을 진리를 바르게 따라가는 것이 최고거든요. 만일에 허망한 것을 평생 쫓아가면 어떻게 해요. 아지랑이처럼 더 목말라서 힘들어서 이러고 계속 혹세무민하는데 계속 쫓아가서 평생을 자기를 탕진하면은 귀한 인생을 어디 가서 찾을 거에요. 아지랑이 같은데 쫓아다니며 안 됩니다. 이상한 것에 쫓아가시면 내 인생에 좋은 덕이 생기지 않습니다. 또 하나, 하나만 더 하겠습니다. 반대로 같은 말이거든요. 같은 말인데 이 말은 무슨 뜻이냐 그러면 有謂無유위무_ 있는데 없다라고 자꾸 외치는 사람이 있어요.

 

그걸 보고 우리 불교식 개념으로는 이거를 근이라고 가까이 보는 거, 이건 근시라고 말하거든요. 이거는 척이라고 말했고. 이런 말이 있어요. 이 말이 무슨 뜻이냐 하면 있는데 자꾸 없다라고 말해. 이 사람은 어리석어가지고 가까이 있는 것을 보고 전부 있다라고 말하는데, 저 멀리 있는 별이나 보이지 않는 거. 분명히 있어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있잖아요. 그죠. 별은 여기 눈에 안 보여도 지금 햇빛 때문에 안 보이는 거잖아. 구름 때문에도 안보이고. 그런데도 분명히 있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있는 것은 분명히 있는 거에요. 없는 것은 뭐죠? 본래 없는 것을 자꾸 있다라고 말하면 어리석어요.

 

그러면 그 말이 무슨 뜻이냐 하면 나한테 가난이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요 1번이죠. 가난은 본래 없는 거에요. 제가 지장경 강의하면서도 시작하면서 외친 게 그게 시작이거든요. 병 불행 본래 없다. 이 이상 더 진리가 없어요. 그렇게 외치기 시작을 허셔야 된다는 거에요. 그렇게 말해야 되고, 그렇게 이해해야 되고, 그렇게 발원을 해 가셔야 되요. 반대로 가난하거나 병들거나 불행한 건 놔두고, 지금 있는 상태 그대로를 받아들이면서 내가 이것도 감사하구나. 고맙구나. 할 때는 이것도 점점 풍요를 벌어다 준다는 거에요. 지금 걸을 수 있는 것에 건강에 대해서 감사할 줄 알면 건강이 계속 더 많이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다라는 거에요.

 

그렇죠. 그죠. 내가 지금 행복합니다. 라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 행복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안목이 내게 있으면 행복이 저절로 저절로 와서 자기를 자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되시죠? 그죠? 그런데 이거는 별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그래서 이건 배척하고, 있는 것만 요거 자꾸 있다라고 말하는 거에요. 눈에 있는 것만 자꾸 있다라고 말하는 거에요. 이것도 미신이라는 뜻입니다. 이것도 미신이고 이것도 미신이에요. 믿어야 될 것은 뭐죠? 바른 믿음이에요. 바른 믿음은 아까 말씀드렸죠? 정토라고 그랬죠? 이건 밝은 세계에요. 깨끗한 세계. 이게 내가 중심이라고 그랬죠. 토는 나라고 하는 뜻입니다. 이게 자기중심이에요.

 

중심을 어떻게 해요? 맑게 봐야 된다는 거에요. 밝게 봐야 된다는 뜻이죠. 되시죠? 그죠? 그러니까 바른 믿음은 어떡해? 밝은 데서 생긴다는 거에요.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절에서 초 밝히지, 향 사르지, 연등 밝히지, 인등 밝히지, 수없이 연등 밝히지 그러잖아요. 뭐든지 다 불로 해결하잖아. 전부 밝은 거를 지향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수없이 초를 갖다 올리면서도 속은 다 뒤집어져. 이러면 안 되는 거에요. 초를 밝힌 만큼 분명히 밝아지거든요. 거기 마음이 없는 거에요. 거기서. 정성이 결여되있으니까, 떨어져 있으니까 밝은 것이 자기한테 지배돼 져야 되는데 등을 밝히면서 뭐라고 밝혀요? 속을 깜깜하게 하고 계속 밝히는 거에요.

 

같은 초를 밝히면서 이 초하나 불 밝히면서 내 인생이나 내 가족이 촛불처럼 환하게 밝아질 것입니다. 그렇게 내게 이입이 돼야 되거든요. 그런데 반대로 내가 지금 가난하고 힘들어서 병들어서 내가 이렇게 불 밝힙니다. 밝게 해주세요. 이러면 갈 때 뭘 끌고 가는 거에요? 어두운 거 그대로 끌고 가는 거에요. 절에만 좋게. 불만 밝혀놓고 가고. 딱하나 이런 믿음을 갖는 것에는 이 모든 것들이 다 미신적 요소라는 거에요. 믿지 말아야 될 것을 믿고 사는 거와 똑같애. 분명히 사람은요. 이게 없어요. 가난과 병과 불행이 없다라고 시작하고 없는 것을 자꾸 나한테 있다라고 말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조금만 잘못되면 어디 가서 보지. 실제로 우리 일주일 동안 세 분 불자님이 오셔가지고 3일 동안을, 밤낮으로 3일을 조금 쉬시고, 곡기도 하고, 기도하고 그러는데. 치아 사리가 계시거든요. 가서 마지막 날 인사하고 나오려고 보니까 가운데 계신 사리, 다섯 분 중에 가운데 계시는 분이 있거든. 그분이 갑자기 부처님 모양으로 변화해서 보여. 그래서 세 사람이 두 사람은 절하고 한 사람은 먼저 가서 참배를 했어. 참배를 했는데 자기가 깜짝 놀란 거야. 일주일 동안 기도를 하고 가서 예경을 했는데, 불이 부처님처럼 보이는 거에요. 놀래가지고 두 분을 같이 기도를 같이 했으니까 같이 올라가서 같이 확인해 봤어요.

 

부처님 화현을 보신 거에요. 공부하고 기도했으니까. 나무아미타불 기도를 거기서 하게 했거든요. 그러니까 놀라운 일이 자기한테 있는 거잖아요. 직원들이 거기 2~3분 계시잖아요. 이런 기가 막힐 일이 있다고 데려와서 이거 좀 봐라. 이거 좀 봐라. 부처님이 화현 하셨다. 쫓아가서 끌고 갔어. 갔는데 기도 안 하신 분이 보니까 안 보여. “어디 있어요?” “어디 있어요?” 바른 기도가 이루어 지면은요, 불보살님의 마음의 세계가 한꺼번에 작용하는 줄을 우리가 이해하셔야 되요. 놀라운 것이 있어요. 이것이 단순한 문제로 생긴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이 안에 모든 미신적 요소를 타파하면 마음으로 타파거든요. 타파하는 방법은 오직 나무아미타불이나 지장보살이나 관세음보살. 자기 기도는 어떤 것이든 괜찮아요.

 

간경도 주력도 아무것도 똑같아요. 그러나 뭐가 생겨요? 그죠? 마음 안에 진실이에요. 이게 뭐죠? 眞如진여.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眞如本性진여본성이 진여 본성이라고 그래요. 진여 본성은 분명히 있다라고 그러는 거에요. 참 묘한 거에요. 그죠. 우리가 살면서 요거는 있다라고 믿어야 되거든요. 나한테 근본적인 본성이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요걸 믿으셔야 돼. 요건 믿어야 되는데 엉뚱한 걸 자꾸 믿으면 문제가 심각해지는 거죠. 그런데 봐요. 일체 만법이 일체 모든 만물이 다 비어있는 거에요. 일체 만물이나 일체 제법이 다 비어있다라고 설명하고 계시거든요. 이 말은 굉장히 좀 어려워요. 어려운데 쉽게 좀 보십시다.

 

이 얘긴 가난한 거에요. 가난한 세계가 영원불멸하지 않거든요. 고착화 돼 있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빈 거에요. 병든 것이 영원히 병들어 죽는 법이 없거든요. 연세 드셔서 가시는 건 그건 더 못 이기는 얘기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거에요. 자연의 일부가 되어가는 과정이에요. 그렇죠. 그죠. 불행한 것이 영원히 불행한 것이 없잖아요. 마찬가지고 풍요로운 것은 풍요로운 것이 영원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봐요. 아주 중요한 것이 있어요. 이것이 거짓으로 지어진 것에는 이 풍요로움이 부자가 됐다가 가난해질 수가 있잖아요. 그런데 진여본성, 진여불성의 자기 생명체를 가지고 있잖아요. 진여 불성이라고 그러잖아요. 이걸 불성이라고 표현하신다 그러잖아요.

 

그러면 이 풍요로운 것은 금생에 살아서도 풍요롭고, 육체가 없어지고 난 다음에도 그 건강한 힘은 그대로 가져간다는 거에요. 지금 행복한 것이 미래세 극락세계까지 이게 행복한 것이 연결 지어 갈 수 있다라는 겁니다. 저는 정토사상, 정토사상, 극락세계에 대해서 공부하고 건봉사 주지 살면서 다시 공부하고 있거든요. 보면서 저는 그거를 이해하게 됐어요. 지금 행복하셔야 돼. 지금 감사할 줄 알아야 돼. 저 국토에 반드시 태어날 수 있다는 거에요. 지금 현재도 우리는 극락세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거를 명심하셔야 됩니다. 다시 52쪽으로 올라오십시다. 그러면 45쪽 주정견불원이거든요. 이거 우리가 뭐라고 그래요? 머무르는 거거든요.

 

머무르는데 지금 어디 계세요? 여기 계시거든. 이건 여기에요. 어디라고요? 이곳. 이곳이에요. 어디라고요? 여기. 그리고 어디에요? 지금이에요. 이게 머무는 데 있는 거에요. 내가. 그러면 이곳_요거는 무슨 뜻이냐 하면 주정이거든요. 이곳_요거는 선이라는 뜻이고 여기_이거는 뭐라고 말해요? 편안함이라고 말하고. 지금_이것은 지극히 뭐죠? 행복을 느끼는 것이에요. 우리가 말하는 행복이죠. 그죠. 이걸 선열이라고 표현하고 있거든요. 선정이라고 말하고. 이걸 보고 선정에 들어야 된다. 이렇게 표현하고 계시거든요. 그런데 머무는 곳마다 머무는 곳은 어디예요? 지금 여기죠. 집에 가면 이곳이죠. 건너오면 이곳이 여기잖아요. 아까 말씀드렸죠.

 

정토는 자기가 중심이라는 것이에요. 내가 옮겨가면 거기가 다 극락세계가 되는 거에요. 내가 자리를 옮겨서 집에 가면은 그 집이 전부 극락세계고, 유쾌한 세계고, 뭐죠? 편안한 세계고, 풍요로워져 가는 세계고 삶을 행복하게 채워가는 그런 공간이 만들어지는 그 자체가 뭐라고요? 극락이라는 거에요. 그게. 정토라는 뜻입니다. 정돈되시죠? 그죠? 그래서 머물러 있는 거에요. 어디든지 자기가 머무는 거에요. 그곳에는 바로 안정이 거기 생겨요. 편안한 것. 이건 뭐죠? 진짜 안정한 거에요. 편안한 거. 이걸 다른 말로 뭐라고 그래요? 평화라고 얘기해요. 너무 난발하는 거 peace피스. pig피그 피스하고 별다른 차이가 없어.

 

이게 안정이 자기에게 있는 거에요. 잘 들어 봐요. 우리가 뭘 해야 돼? 나무아미타불 한마디 하는 그 공덕에 의해서 내가 머무는 곳마다 뭐가 생겨요? 편안함이 생기는 거에요. 행복이 거기 생기는 거에요. 그런데 아까 말씀드렸죠? 배경으로 아까 말씀드렸죠? 자기 가작 해서. 자기가 거짓으로 가난한 존재로 자기를 만들어 가는 거에요. 불행한 존재로 자기가 스스로 만들어 간다는 거에요. 이 말씀을 들으면 부처님 말씀이잖아요. 이 말씀을 듣고 법장비구가 48대원에 발원 중에 45번째 지금 공양을 올리는 거거든요. 머무는, 내가 머무는데, 머문다는 말을 누가 지금 들어요? 머문다는 말을 누가 했어요? 제가 했어요?

 

법장비구, 과거 전세에 법장비구스님께서 부처님께서 아미타불의 전신이잖아요. 법장비구가. 아시죠? 그죠? 그런데 이 분이 공부한 것이 머무는 곳마다 뭐죠? 안정되고 편안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고 선정에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거에요. 그렇죠. 그죠. 그러면 뭐가 돼요? 아까 말씀드렸죠? 바르게 보게 돼요. 지금 보는 것은 어디예요? 현실의 자기를 보는 거에요. 그리고 가족을 봐요. 가정을 보고. 이걸 삐딱하게 보지 않으면 돼요. 이걸 나쁘게 보지 않으면 돼. 이걸 좋게 보기 시작해야 돼. 그렇게 보는 거에요. 그러면 거기에 뭐가 있어요? 부처님이 있어요. 거기 부처님이 딱 여기 버티고 있어요. 그렇죠. 그죠. 부처님이 보이는 거에요. 부처님은 뭐라고요?

 

복과 지혜가 늘상 말씀드립니다. 충만한 상태. 언제라고요? 충만한 상태. 언제든지 이 복과 지혜가 부처님을 들여다보는데 누가 봐요? 내가 머무르죠? 그죠? 저희가 머물러요. 그렇죠. 부처님이 보죠. 거기에는 뭐가 들어있다고요? 복과 지혜가 충만한 것을 언제든지 보는 거에요. 가난하게 보지 않는 거에요. 불안하게 보지 않는 거에요. 밉게 보지 않는 거에요. 그러면 뭐가 생긴다고요? 부처님의 큰 원력이 거기에서 한꺼번에 같이 작용하죠. 그죠. 그러면 거꾸로 보십시다. 원을 세웁니다. 누가 말해요? 본래는 이게 법장비구께서 원을 세우셨죠? 그럼 뭐를 하기 위해서? 복과 지혜가 원만하고 완전한 불성의 상태를 유지 보존해 가는 과정이거든요.

 

원을 딱 세웠어요. 복과 지혜가 충만하다는 거에요. 그러면 거꾸로 어떻게 봐요? 내 입장에 오면은 내가 원을 세워요. 원을 세우는 그 순간부터 나한테는 복과 지혜가 충만한 거에요. 요렇게 답이 나와야 되요. 그러면 뭐가 돼요? 복과 지혜가 충만 하는 안목을 갖는 순간 보면은 보는 대로 만지는 데로 스치는 대로 인연 짓는 대로 불평이 없어져 버려요. 모든 제불만이 없어져버리는 상태가 자기가 이루어져요. 그러면 자기도 즉시 편안해지고, 이 사람이 옮기거나 머물러 있거나, 말하거나, 일어나거나 앉거나 할 것 없이 언제든지 자신의 현상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다라는 거죠. 그게 오늘 45번째 법장비구께서 설명하신 뭐라고요? 住定見佛願주정견불원이었습니다. 으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