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스님 _ 제46회 수의문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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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법문/정현스님_불설아미타경

2012. 12. 9.

출처: 불교TV

 

잘 지내셨습니까? 으음. 집안에 별일도 없으시고? 으음. 와 주셔서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경전을 공부하거나 이렇게 종교를 배우고 또 더구나 불교를 배우고 수행을 하시잖아요. 그죠? 그런데 이것은 단순하게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지만, 자기가 가지고 있는 근본생명에 대한 회귀라고 이렇게 말씀드렸거든요. 회귀이라고. 자기에게 자기가 돌아가는 거에요. 말은 굉장히 어려운 거 같은데도 굉장히 쉬워요. 그러면 지금 현재 가지고 있는 나라고 하는 존재. 그러니까 이 몸뚱아리. 이 생각. 이 정신. 이 내용들이 어디로 딴 데 돌릴 때가 있느냐 그러면, 그런 건 아니거든요. 지금 있는 그대로를 자기가 발견하면 됩니다.

 

그런데 수없이 우리는 발견을 하고 살면서 자기 자신에 대한 회귀에 대한. 그런데 딱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자기의 입장이나, 자기의 삶이나, 자기의 생활이나, 자기 인생에 대해서 요거를 예쁘게 보지 못하는 발견이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가 주어져 있는 현실 그대로 에서 좋은 모양, 좋은 내용, 좋은 사랑스러움이 그것을 발견해 가는 매일매일의 여정이거든요. 종교라든가 특히 불교에서 가르쳐주는 이야기는 자기 자신의 회귀에요.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는 겁니다. 그래서 이름을 붙여서 설명하면은 그것을 불성에 대한 회귀다. 그래서 불교에서 철저히 나타나는 것이 불법승 삼보에 대한 귀의거든요.

 

승은 나 자신이고, 법은 진리거든요. 방법이고요. 그리고 부처님은 그게 목적이에요. 그런데 그 진리의 방법을 쫓아서 하는 것이 불교수행이고, 불교기도고, 불교식 경전공부에요. 그 중 안에 불설아미타경에서는 본질적으로 내 안에 깃들어있는 부처님과 불성, 그리고 정확하게 표현하면은 나한테도 풍요로운 복과 지혜가 충만하다라는 것에 돌아가는 과정을, 목적이자 과정이거든요. 그러니까 부처님하고 가르침하고 이제 승이라고 하는 것을 나 자신이라고 표현하신다면 전혀 이 셋이 다르냐 그러면 다르지 않거든요. 내가 이제 발원을 합니다. “내가 부자로 살겠습니다.” 하면 그 목적이 부자 아니에요? 그 과정이 부자가 돼가는 과정이 됩니다.

 

내가 좋은 삶을 살겠습니다.” 라고 발원하는 내가 출발하잖아요. 그죠? 그러면 그런 방식을 통해서 곧 내가 보다 나은 삶에 대한 것들이 접속이 되 있죠. 그래서 이 세 가지가 불법승 삼보는 하나로 같이 귀의하게 돼 있어요. 그래서 이것도 저것도 안 될 때 시작하는 게 뭐에요? 절 삼배하는 거에요. 합장 배례하는 겁니다.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요렇게. 되시죠? 그죠? 틱낫한. . 맞아요? 그런데 이분이 잘 아시는 것처럼 완전히 선적인 그리고 현실적인 걸 가르치면서 이 분의 내용은 전부 정토에요. 극락세계를 설명하기 시작하는 거에요. 현실에 대한 고를 설명하기도 하지만, 그 바탕은 뭐라고요? 그죠? 찬란한 위대한 생명에 대한 회귀를 설명하게 계세요.

 

그래서 내용을 잘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그 분 가르침을 한 번씩 살펴보시면, 이름은 각자 달라요. 크기도 다르고, 모양도 다르고, 몸무게도 다르고, 사는 방식도 다르고, 훈습도 다르고, 연습도 다 다르죠.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사람이 찾아야 될 자기 근본에서는 뭐가 있는가 하면 극락세계를 사는 겁니다. 극락세계를 살려면 뭐를 해야 되느냐? 그건 기도라고 하는 방식을 통해서 붓다의 세계를 보는 거에요. 그럼 그것이 곧 극락세계를 보는 것과 다르지 않거든요. 그런데 그것은 일만 팔천 리에 너무 멀리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중생의 우매한 생각이라는 거에요.

 

상당히 현실적으로 법문하시고 책도 있으시고 그래서 찾아보면은 그런 것은 찾아질 수 있는데, 미래에 대해서 이분 설법이 뭐냐 하면 미래에 대해서 앞날에 대해서 불안하게 생각하거나 걱정하거나 근심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분명하게 정리를 해 놔요. 내 앞날에 대해서 무서워하거나 그렇죠. 그죠. 걱정하거나 근심하거나 또는 두려워하지 마라. 그러니까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는데 이게 지금 미래를 걱정 근심하는 사람은 지금 현재에서 내가 하잖아요. 그죠. 내가 미래에 대해서 앞날에 대해서 걱정 안 하면은 그냥 그대로 더 이상 나빠질 까닭이 없는 거거든요. 우리나라 저~ 자녀분들 앞으로 보면 걱정이 되잖아요. 그죠.

 

아이고 저게 김장을 해 먹었나?” 이거부터 별걱정이 다 일어나는 거에요. 그런데 그 자녀분들이 아직 병들거나 괴롭거나 힘들지도 않았는데도 미리미리 가불해가지고 그 앞날에 걱정근심을 자꾸 뿌려주고 있는 게 부모거든요. 인지상정이기는 해도 그런 생각에서는 뭐한다고요?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미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까닭이다.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고, 바로 지금, 바로 지금 존재하고 있는 바로 지금을 인지한다. 이러거든요. 지금 가지고 있는 발견하면 돼요. 이게 발견이거든요. 깨달음이라는 발견이잖아요. 지금 바로 이것을 지금 존재를 인식하는 것만큼 깨우친 것만큼 자기를 만들어가요.

 

사람이요, 즐겁고 기쁘고 사랑스러운 상태를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가 사랑스럽고 풍요롭고 건강한 삶에 대한 것들이 자기에게 없는 거에요. 얼굴 들어 저 좀 봅니다. 굉장히 중요한 거거든요. 내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때는 거기에 나머지는 전부 부정한 거에요. 안 좋은 거에요. 안 좋은 것에 인지를 하고. 그러니까 거기에 매달려 있는 동안 그게 자기를 지배하는 거에요. 그런데 요거를 인지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 것이 석가세존이거든요. 뭐라고요? 좋게 들여다보는 안목을 자기한테 힘을 키우자는 뜻입니다. 정리되시죠? 그죠? 안 되도 된다고 하셔야 돼. 많은 사람들이 나한테 좋은 일이 없을 거라고 자꾸 생각을 하는 거에요.

 

나한테는 뭐, 내 팔자가 그렇지. 내 꼴이 그렇지. 그렇죠. 그죠.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 그래서 불설아미타경에서는 아주 여실하게 그것을 잘 설명해 주고 계십니다. 몇 가지를 우리가 거쳐서 지나가지 않습니까? 으음. 여기 보면은 넘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30쪽입니다. 應當發願응당발원이 거든요. 應當發願응당발원. 없는 분도 그냥 절 보시면 돼요. 응당발원하고 내가 마땅히 발원하는 그 원을 세우는 순간부터 생한다. 뭐가 생해요? 그죠? 願生彼國_부처님의 국토가 거기서 저 국토가 생한다는 뜻입니다. 이곳에서, 이곳과 저곳은 같은 동시에 있거든요. 이것과 저것이 동시에 있다고요. 그래서 내가 마땅히 발원하는 사람한테는 반드시 그것이 있다는 거에요. 그렇죠. 그죠.

 

그러면 다시 좀 더 내려와서 보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으음. 舍利弗사리자여 如我今者여아금자여. 그 밑에 내려오면 사리자여. 내가 지금, 내가 지금 명령하는 자, 내가 정하는 자, 내가 힘 있다고 말하는 자, 내가 옳다라고 생각하는 자, 내가 밝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자, 이렇게 명령하듯이 자기에게 확신을 주는 거에요. 이렇게 주는 거에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稱讚諸佛칭찬제불이에요.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의 그의 목적이니까. 그렇죠. 부처님의 목적이에요. 부처님께 목적을 갖는다는 것은 곧 복과 지혜가 충만하다는 얘기거든요. 내가 부처님을 찾는 것은 내가 복과 지혜가 충만해지는 상태를 계속 만들어가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 부처님의 실체라고요. 이거 부처님의 실체입니다.

 

이것은 칭찬하면 할수록, 찬탄하면 할수록, 기뻐하면 할수록, 그렇죠. 거기에 대해서 말하면 말할수록 거기에 뭐가 생겨요? 불가사의한 공덕이 생긴다는 거에요. 이건 제가 설명하고 있는 게 아니에요. 불가사의한 공덕이 우리한테 갖추어지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생기냐? 저 모든 부처님등이 또한 칭찬. ~ 나를 칭찬해줄 것이다. 사리자여. 나는 뭐와 같아서? 如我여아는 자와 같아서.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내가 확신하는 자와 같아서 이런 뜻이거든요. 그럼 뭐를 발견하셔야 돼요? 자기한테 좋은 거, 자기한테 감사하는 거, 자기를 사랑하는 거, 그렇죠. 그죠. 가족을 사랑해 가는 것. 나누어지는 것. 그렇죠. 그걸 확실하게 하려면 어떻게 하다고요? 칭찬해줘야 돼. 모든 부처님을 칭찬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부처님의 개념은 뭐에요? 내가 부처이면 당신도 부처이거든요. 그러니까 똑같은 거죠. 칭찬을 할 수만 있으면, 말할 수만 있으면, 그걸 확신으로 자기가 가지면, 그렇게 발견해 가면 갈수록 뭐가 생겨요? 불가사의한 공덕이 생긴다. 불가사의한 공덕이 거기서 생겨요. 그럴 때 저 모든 부처님등이 저 모든 부처님등이. 절 보세요. 내가 우리 스스로 내가 부처에요? 중생이에요. 나무아미타불~ 불설아미타경 새로 시작해야 되요. 우리는 중생의 몸을 가지고 있고, 불확실성 속에 살지만, 부처님의 세계는 완전한 세계거든요. 그런 세계로 건너가는 거에요. 그런데 이것이 뭐냐 하면, 모든 저 모든 부처님 등이 또한 누굴 칭찬해요? 나를 칭찬한다는 거에요. 稱讚我칭찬아라고 붙어있죠. 나중에 번역분으로 좀 보세요.

 

역시 나를 또한 칭찬하고 있다는 거에요. 그런 것처럼 내가 저 부처님 등을 찬탄하면 그러면 우선 자기 가족으로 좀 보십시다. 내 가족에 스님들 법문에 수없이 말씀드리거든요. 같은 가족을 헛되이 여기지 말고, 없신 여기지 말고, 아무리 친해도 천하게 여기지 말고, 괴로운 대상으로 보지 말아야 된다는 얘기에요. 그게 지금에는 그게 그렇게 보일지라도, 고통의 대상일지라도 그것을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칭찬하고, 왜 그러냐 하면 거기에 근본은 뭐가 있어요? 불성이 가득한 존재니까. 그러니까 이상한 일이 자꾸 자기한테 생겨요. 뭐가 생겨요? 그죠? 저게 죽을 놈 살은 놈, 이렇게 눈에 보이잖아요. 그런데 거꾸로 보여야 돼.

 

현실의 눈에 저게 죽일 놈 이래도, 내가 보니까 저게 복이 가득한 놈. 이렇게 봐야 되거든. 놈은 빼고. 이렇게 자꾸 불가사의한 칭찬을 하게 되면 불가사의한 공덕이 누구한테 생겨요? 나한테 생겨요. 나한테 생겨요. 뭐라고요? 모든 부처님 등이 또한 너를 칭찬한다. 너는 누구예요? 우리잖아요. 지금 이 경전을 읽는 우리잖아요. 하여튼 그래요. 그러면 뭐가 생겨요? 불가사의 공덕이 여기에서 이라고 하는 것은 그냥 조어거든요. 조사. 거기서 거기까지 넘어갑니다. 뭐라고요? 作是言작시언. 이것은 무엇으로 결정 돼요? 지금 말하는 것에서 결정된다. 이해되시죠? 이런 거 질문하는 강사가 제일 시원찮은 거에요. 그런데도 한번 확인해보고 싶어요. 왜 그러냐 하면 이거 다 끝나가니까. 作是言작시언이에요. 자기 말이에요. 내 말이 내 운명이고요, 내 언어가 내 말이 자기의 삶이라고요.

 

내 말이 자기의 삶이고 내 말이 자기의 현상을 만들어주는 얘기에요. 이것이 부정할 수 없고 이게 누구의 말이냐?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이렇게 말한다. 作是言작시언. 그렇죠. 그죠. 석가세존께서 말한 것이라 해서 나하고 별개의 문제인가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2500년 전의 석가모니가 되신 그 존재, 그 양식은 곧 우리 자신에게도 석가모니의 위신력과 불가사의한 공덕으로 가득한 존재라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作是言작시언이라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조금 붙여서 설명 드리면 내 말이 곧 내 삶에 대한 앞이라고요. 우리는 바늘 하나 찔리면 그 고통 때문에 신음소통 하거든요. 종기 하나 나면은 괴로워 죽어요. 그것이 삶이거든요. 그런데 지혜로운 자, 불교를 공부한 자, 종기는 나을 거요. 종기의 고름은 지나갈 거고. 병은 지나가서 실체가 없고요. 지나가는 과정 속에 있습니다.

 

감기가 들어서 고통스럽고 고열 속에 살잖아요. 그러다가 가시는 분도 있잖아요. 그거야 어쩔 수 없고. 조심해야 되거든요. 치료하고 간호하고 쉬면은 돌아오게 돼 있어요. 그렇죠. 그죠. 그런데 감기 들어서 죽는다고 난리를 해. 감기 걸려 잘 안 죽거든요. 이렇게 좀 태평한 것을 우리가 좀 배워야 되요. 넉넉함을 우리 마음속에 배워야 됩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자기가 말한 데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불설아미타경에서 제시해주고 있고 얘기하고 있거든요. 그 얘기가 아니고 석가세존께서 설명했고 지금 이 말씀을 듣는 것은 우리 자신이라고요. 그러면 석가세존의 말을 듣는 거에요.

 

요 말을 믿고 따르고 이해하고 실천하는 사람한테는 그 복력이 같이 움직여진다는 요런 부처님의 설법입니다. 너무 쉽죠. 그죠. 으음. 동의를 안 하시는 거 같아. 능위. 이것은 能爲甚難希有之事능위심난희유지사다. 석가세존도 이 법칙을 깨우치고 이해하시고 나서는 심히 아주 심히 어렵고 희귀한 것이다. 희귀한 일이다. 내 안에 어떻게 놀라운 힘이 있겠는가? 내 안에 어떻게 이 세상을 이겨 갈만한 원동력이 나한테 어디에서 있겠는가? 이렇게 전부 자기를 접어놓고 사는 거에요. 가난의 벽에, 병 속의 벽에, 인과관계의 불안의 벽에 심지어는 꿈만 꾸면은 불안한 생각을 가져요. 다 꿈은요. 그거 그냥 조정하는 과정 속에 있는 거에요.

 

이건 하도 심히 희유한 지사야. 아주 희유한 일이라고요. 그러니까 믿는 사람은 적고 믿지 못하는 것은 더 많아져 버리는 거에요. 경전 안에 그렇게 돼 있거든요. 말세가 되잖아요. 지금 현재가 말세거든요. 부처님 당시 이래로. 말세 동안 세계에서는 바른 믿음을 숭상하고 수행하는 자는 극히 적고, 사마외도에 엉뚱한 것을 믿고 사는 세상이 돼 버렸어요. 이미 벌써 석가세존께서 예언을 하신 거거든요. 지금 현실에 딱 맞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라고 말 했느냐 하면 심히 어렵고 어려운 일이기는 하나 능히 된다. 뭐로 능히 돼요? 그죠? 娑婆國土사바국토가 능히 五濁惡世오탁악세라도. 오탁악세 다 아시죠?

 

다섯 가지의 험난한 것을 오탁이라고 그렇게 말하거든요. 그걸 뭐라고 그러냐 하면 세월이 탁해. 시대가 탁한 거에요. 지금 현대처럼. 그다음에 들여다보는 것이 다 흐려. 좋지 않게 보기 시작해요. 나쁜 일이 있어도 좋게 보는 힘을 키워야 되는데 안 좋은 것은 안 좋다고 더 거기다 꼬리를 붙이고 이자를 붙여가지고 건너서 옮길 때는 아예 죽일 놈을 만들어. 五濁惡世오탁악세. 煩惱濁_번뇌가 세상에 많다는. 시대가 흐려져 있어요. 그런 줄 인지하셔야 됩니다. 그다음에 뭐죠? 견해가 흐려져 있어요. 올바른 것을 구분하기 어려워지는 세계고 번뇌가 많아요. 생각이 많은 거에요. 망상을 너무 많이 피우고 사는 게 우리가 망상 세계거든요. 그 세계에 빠져 살면 못살아요.

 

그게 요즘 얘기하는 사이버 시대에 도래되가지고 게임이나 하고, 가공세계에 들어 가가지고 다 번뇌탁이에요. 그러고 자꾸 한마디로 말씀드릴 게 뭐냐 하면 衆生濁중생탁이에요. 여러분 다 부처님이고 여러분들이 다 뭐죠? 복과 지혜가 충만한 존재인데 이것을 자꾸 어떻게 표현하고 어떻게 이해해요? 나는 중생이니까. 나는 인간이니까. 내 인간이니까 요거는 해도 되겠지. 인간적으로 요렇게 봐주겠지. 또 그다음에 命中濁명중탁. 자기 명이 죽어가는 줄 모르는 거에요. 흐려져 가는 줄을 모르시는 거에요. 대단한 거에요. 등득. 그러는 과정에서도 얻을 수 있다. 뭘 얻어요? 阿耨多羅三藐三菩提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 모든 중생이. 모든 중생이 이걸 다 얻는다는 거에요. 능히, 능히 그것을 얻을 수 있다는 거에요.

 

내가 이 시대가 흐르고 있고 시대가 흐려서 안 좋은 세상에 지금 살고 있다고 해도, 혹은 내가 어떤 것을 지혜가 충만하지 못해서 제대로 보지 못하고, 제대로 억울한 일만 계속 당하는 사람이라도 또 뭐죠? 번뇌가 가득해서 부처님의 지혜를 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또는 중생의 업이 깊어서 먹고 사는 것에 허덕인다 하더라도 또는 뭐죠? 이 명이 생명 가운데 불안하고 불편한 일이 병이 들고 힘들고 고통스럽고 불행한 이런 일들이 있는 가운데에도 얻는다. 뭘 얻어요? 능히 그것을 얻는다. 能於娑婆國土능어사바정국토. 이렇게 돼 있잖아요. 그죠? 그게 여기서 능히 쫓아가거든요. 그러면 뭘 얻어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다. 최상의 부처님의 법, 최상의 풍요로움. 최상의 뭐죠? 안락함.

 

그걸 한마디로 일러서 불설아미타경에서는 뭐라고 표현한다? 이건 더 이상 어떻게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다 이렇게 말하거든요. 극락세계가 우리에게 갖추어져 있습니다. 라고 이렇게 표현할 수가 있어요. 그러시죠? , 三藐三菩提삼먁삼보리 爲諸衆生위제중생. 이건 나 혼자 개인이 아니라 모든 중생이 다 얻을 수 있다. 뭘 얻을 수 있어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있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저 극락세계에 날 만큼 선정에 깊이 들어간 상태. 최고, 정말 더할 수 없는 수승한 공덕 속에 자기가 들어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걸 얻을 수 있다. 이렇게 말했어요. 오탁세계에 있다 하더라도 절대 뭐죠? 실망할 필요가 없다.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런 뜻입니다. 쉽게 표현하면. 그래서 다시 설하되, 是一切시일체 世間難信之法세간난신지법. 어려운 것은 믿고 믿는 之法지법이고 모든 세간에서 이 어려운 세간 중에서도 뭐라고 말해요? 어려운 세간 중에도 믿기가 어렵다. 이런 거에요. 설해도 일체 모든 세간 사람들이 어렵다. 왜 어려워요? 믿는 법을 갖기가 어렵다. 재미있는 현상이 참 우리한테 많거든요. 여기서 공부한 지가 벌써 이번하고 나면 두 번만 더 해야 되거든요. 일 년을 공부를 같이 했고, 불교TV에서 허락해주시고 자리를 이렇게 마련해주신 지장사 법당 관계자들도 비로소 내가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을 합니다. 다 애써주시고 도와주시고 보살펴주시고 또 우리 앞에 우리 어른 거사님들께서 안 빠지고 또 참여해주시고, 으음.

 

내가 개근상을 좀 드려야 되는데. 으음. 여기 좀 보세요. 같은 맥락에서 찾아봅니다. 조금만 더 보겠습니다. 시간 되면 얘기해주시고요. 지금을 가장 잘 사는 방법이 있습니다. 가장 잘 사는 방법이 있습니다. 절 좀 보세요. 부처님의 가르침은요. 수만 수천 모든 관계 속에서 이미 나를 가르쳐주고 있거든요. 부처님의 가르침은 나를 성장하게 하고, 나를 화목하게 하고, 나를 편안한 곳으로, 또는 나를 지혜로운 곳으로 인도해주는 것이 석가세존의 방식이거든요. 그런데 이 방식이 가족을 통해서 나를 깨우치게 하고, 또 생활 속에서 스님을 통해서 도반을 통해서 생활공간 안에서 뭐든지 나를 깨우쳐주고 복되게 만들어주고 있는 이 세상의 법칙이 이렇게 흘러가고 있거든요.

 

그런데 난사라고 그랬어. 어려운 일이 생긴 것은 왜 그러냐? 순화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다 역할 속에서 살아요. 애기들도 입맛에 안 맞으면 성질 버럭버럭 내고요. 연세 드신 어른분도 입맛에 안 맞으면은 병원에 요즘 왔가갔다 하다 보면 느낀 게 뭐냐 하면 참 많이 배워요. 내일 모래 관 치수를 재나 안 재나, 이거 가지고 정신이 하나도 없을 판에, 입맛에 안 맞는다고 성질을 부리고 음식 온 거 던져버리고 그래요. 그래 내가 지나가다가 다른 병실이었거든요. 누군지도 몰라요 지금. 딱 지나가다 보니까 관상이 성질 내다가 가시게 생겼어. 그분한텐 좀 죄송스럽지만, 그렇게 성질을 내세요. 짜증이 나고 힘들고 안 맞으니까 그럴 수 있죠. 그죠.

 

그런데 그분 보면서 크게 내가 깨우쳤어요. 저 아귀 같은 소리를 지르고, 연세 곧 죽어 가시는 분이면서, ~ 저 모습이 내 모습인 거를 내가 봤어요. 나도 저렇게 성질 부리고 있구나. 나도 저렇게 오욕에 그냥 탐착을 해가지고 지만 잘났다고 그런 오만상을 내가 가지고 살지 않았나. 그때 내가 그거 봤어요. 그래서 내가 빌어드렸어. 그렇게 소리 지르다 가시면은 아귀도에 떨어지니까, 종교를 모르니까 내가 다 못하잖아요. 그죠? 밖에서 했어. 밖에서. 좋은데 태어나시려면 육도를 벗어나서 아귀도에 떨어지지 않으려면 그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염으로. 말도 못하고. 그런데요. 이틀 뒤에 돌아가셨어, 그런데 묘한 것이 있어요.

 

제가 그러는 것이 아니라. 옆에서 병실에 내가 문병 가는 데가 있거든요.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가서 나오면서 들어가서 보니까. 불러달라는 거에요. 가보니까 입적을 했어. 돌아가시면 스님 혹시라도 인연이 되면은 잠깐 나를 보게 해달라고. 밖에서 내가 염으로 했어. 염으로. 말도 못하고. 모르니까. 그런데 그 아귀 같은 성질은 없어지고 돌아가시는 모습을 내가 봤고 잠깐 염송하고 왔거든요. 그거 보면서 느낀 게 천사처럼 주무시는 거야. 그거 내가 느낀 게 뭐냐 하면요, 평생을 살아서 악쓰고 살게 아무것도 없어. 남는 게 없어. 집만 남아. 집만. 염불하셔야 돼. 나무아미타불 염불 많이 하시고 지장보살 염불 많이 하시고.

 

그러고 생활 속에서 참으로 감사한 생각을 하셔야 돼. 고마운 줄 모르는 것에서 불안이 생기고 불평이 생기고 원망이 생기는 거거든요. 감사하는 사람한테는 복과 지혜가 스스로 자란다고 그랬거든요. 여기 좀 보세요. 아까 얘기하던 거 그거 금방 잊어버리고 그냥 가면 서운해. 여기 좀 보십시다. 지금 잘 살아가는 방법이 있어요. 지금 옳은 것을 하라는 거에요. 지금 밝게 보라는 뜻입니다. 가장 잘 사는 방법이 제가 이거 꿀 먹어서 이렇거든요. 옛날엔 안 이랬거든요. 으음. 지금을 밝게 보자는 뜻입니다. 지금을. 불설아미타경이 설명하는 내용의 핵심이거든요. 지금을 인정하고 지금을 인식하고 지금을 긍정으로 바꾸는 거에요. 그걸 한마디로 뭐라고 말해요? 그죠? 으음. 마음의 광명을 깃들게 한다. 마음의 광명을 깃들게 한다.

 

여기 좀 보세요. 사람이 안 믿어지거든요. 안 믿어지는데 불심을 조금만 배우시게 되고 불교에 조금만 귀의하고 조금만 공부를 하게 되면은 불자님들이 꼭 불자가 아니더라도 일반인들이라 하더라도 원하는 것은 뭐든지 갖게 돼요. 불자만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일반 생활하는 사람도 자기가 원하는 것은 자기가 뭐든지 갖게 돼 있어요. 그런데 마음 세계를 조금만 이해하시게 되면 원을 세우셔야 돼. 극락세계 나기를 원하셔야 돼. 그렇게 발원하고 극락세계 살기를 원해야 돼. 그러면 극락세계. 어디에서 죽어서 천당이나 극락 가서 극락이 아니라 지금의 극락이에요. 지금의 삶을 극락세계처럼 사는 거에요. 그러면 이 사람은 극락세계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돼요.

 

그리고 요게 누리는 흥복이라고 그러거든요. 흥한 복, 흥복이라고 그러잖아요. 그죠? 그 복이 넘쳐서 그 복을 나누는 사람이 돼요. 잘 이걸 실천해 보셔야 돼. 가난할수록 보시할 줄 알아야 됩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부처님 전에 나아가서 촛불 하나 향하나 과일 한 개라도 공양하고 베풀어 올리고 보시하는 마음을 가지셔야 돼. 무엇이든지 가질 수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가르쳐줘요. 불설아미타경은 요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겁니다. 말이 요게 좀 차이가 있어서 그렇지. 좀 보십시다. 내가 무엇이든지 될 수 있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무엇이든지 가질 수 있습니다. 요 세 가지 언어거든요. 내가 뭐든지 할 수 있어요. 그렇죠. 그죠? 뭐든지 가질 수 있어요. 또 뭐죠?

 

무엇이든지 만들어 낼 수 있어요.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는 거에요. 당연히. 아미타경의 핵심이 그 얘기에요. 그러나 이것을 현실에서 이루어지게 하려면 뭣부터 해야 된다고요? 얻어야 돼. 뭘 얻어야 되요? 마음의 밝음을 얻으셔야 돼. 그게 지금 자기 자신이 행복하다라고 느껴지지 않는 일이 많으면 바로 부처님 전에 엎어져가지고 기도해야 되요. 부디 내가 말씀을 거듭 드리지만 돌아서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많이 하셔야 돼. 필요한 거에요. 여기 좀 보십시다. 오늘 저 46번째거든요. 52쪽에 보면 46쪽에 있습니다. 隨意聞法願수의문법원입니다. 隨意聞法願수의문법원. 지금까지 설명 드린 내용이 이게 말씀을 드린 게 요거 설명 드리기 위해서 말씀을 드린 거에요. ~ 듣습니다.

 

수의문법원이라고 그랬어요. 이게 뭐죠? 隨意수의. 이게 의라고 하는 것은 자기 마음 의사죠. . 자기의 뜻에 따라서 법문을 들어요. 법문을 듣고 자기 의사대로 따라가야 돼. 절 좀 보세요. 제일 중요한 거. 자기 의사대로 계속 따라가면은 시행착오가 계속 생기는 거에요. 분명히 정리하셔야 됩니다. 이게 뭔 줄 아세요? 자기 의사대로, 자기 입장대로, 자기 욕망 속에서, 자기 탐욕 속에서, 탐진치 삼욕을, 탐진치 삼악을 자기가 스스로 자기 뜻대로 자꾸 행하는 거에요. 이렇게 자꾸 하다 보면은 계속 인생이 시행착오가 계속 반복적으로 돼요. ‘아이고 그래 나는 끝났지. 이제 나는 이래 망할 거지.’ 이러고 그래 됐다.’ 그거 망하고 난 다음에도 또 시작이에요.

 

여러분 우리 불자님들께서 주무시고 나면 아침에 일어나죠. 그죠? 금생에 끝나고 나서 다음 생에 또 아침에 일어나듯이 일어난다니까요. ~ 이게 제 얘기를 잘 들으셔야 돼. 오늘 저녁에 잠을 주무시잖아. 내일 아침에 일어납니다. 일생을 살다가 육체가 바뀌어서 죽었다고 생각되잖아요. 그럼 바로 일어나요. 자기가 또 아침에 일어나듯이. 隨意수의거든요. 자기의 뜻에 따라서, 하지만 그것은 계속 시행착오가 계속 반복적으로 인생에 끝없이 반복적으로 돼요. 좋은 일, 나쁜 일, 불행한 일, 괴로운 일, 힘든 일, 기쁜 일, 사랑스러운 일들이 계속 뭐죠? 연자방아 돌아가듯이 계속, 그것을 윤회의 세계라고 말해요. 고통의 세계라고 표현해요. 그렇죠. 그죠.

 

이걸 보고 석가세존은 어떻게 설명했어요? 진리를 따라서. 그 진리 중에서도 어떻게 해요? 불법을 따라서. 그 불법 중에서도 정법에 따라서 수행하고, 그 뜻에 따라서 행하면 뭐가 생겨요? 자기가 원하는 것은 다 소원대로 이루어진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불교에 귀의하고 불법승 삼법에 귀의하는 불자가 돼야죠. 좀 어렵죠. 그죠? 으음. 안 어려운데 어렵다고 자꾸 생각을 하는 거에요. 그냥 가까운 절에 얼른 가셔가지고 내가 불자, 예비 불자 되겠습니다 하고 저저 뭐죠? 불법승 삼보에 귀의합니다. 라고 시작하시면 그대로 뭐죠? 원하는 일들이 좋아져 갑니다. 조금조금씩 깨어져 나옵니다. 수행을 좀 하셔야 됩니다.

 

마음의 원을 가진 만큼 지금 당장, 자신이 원하는 것을 누리지 못하고, 또 그것이 못 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에 대해서 자기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실패의 의식을 갖거나 닦달하거나 또는 그렇지 않은 것에 자기 스스로 책망해서는 안 돼요. 절대 그걸 가지며 안 됩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에 계속 계속 원을 연결시켜야 되요. 기도할 때마다 계속 연결시키세요. 절에 가면은요, 스님한테 맡겨놓으면 알아서 되겠지. 이렇게. 그래가지고 그게 안 되면은요. 으음. “보시 드리고 축원보 올렸는데 왜 안 돼요.” 이러고 그것만 가지고 와서 따져. 영원히 가도 못 벗어납니다. 정말로 자기의 가슴에서 느끼는 행복을 느끼고 싶으시면 공부를 하셔야 되요.

 

그리고 틈 되면 원을 세우세요. 초점을 늘 가져가셔야 돼. 뭐라고요? 내가 좋은 집을 짓고 싶으면 그 집에 대해서 늘 떠나지 말고 그걸 생각하셔야 돼. 그리고 그 안에서 행복하게 사는 꿈을 자꾸 꾸세요. 그러면 좋은 일이 생겨요. 자식이 결혼을 하기를 원하면은 내 자식이 안된 것만 결혼 안 된 것만 계속 거기에 초점이 박혀가지고 잘 되게 해달라고 붙여 달라고 붙여 달라고 그러거든? 그러니까 붙여달라는 생각은 빼시고 좋은 집에 좋은 가족 누리고 행복하게 사는 생각을 자꾸 거기에 초점을 맞추고 계속 뭐죠? 그걸 원해주는 거에요.

 

~ 내 아들은 장가가서 아주 화목하게 잘 사는 모습을 계속 어머니나 아버지가 계속 원을 세워서 끊임없이 초점을 가져서 원을 좀 세워 주시면 그 원은 반드시 힘의 원동력이 생겨서 말하는 대로 이루어져요. 이것은 내 말이 곧 석가세존의 말과 같아요. 그런데 단초가 있어요. 진리대로. 부처님 정법대로 이렇게 옮기셔야 된다는 거에요. 자기 생각으로 옮기려고 하면 안 되거든요. 자기는 내려 놓으셔야 돼. 불교에서는 제법무아라 그랬지 않습니까? 내려놓습니다. 고약한 것은 다 내려놓습니다. 오늘 저 일기도 좋지 않은데 참여해 주셔서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