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스님_ 치유하는 불교읽기// 제5회 육도윤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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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법문/서광스님_치유하는불교읽기

2013. 4. 28.

출처: 불교TV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지지난 주에 우리는 뭐를 했었냐 하면요. 가장 중요한 거 두 개, 제가 적어놨는데. 첫째 행복도 다른 기술과 마찬가지로 훈련해야 된다. 이랬어요. 왜냐하면 우리의 몸과 마음은 기본적으로 행복한데 반응하도록, 행복하기 위해서 작용하거나 작동하는 게 아니라, 그냥 살아남고 그리고 그냥 살아있기 위한 그런 어떤 목적으로 무의식적인 그런 반응을 하고 작용을 하도록 되어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살아남고 살아있기 위해서 생존을 위해서 그렇게 작용을 할 뿐이지 행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우리의 몸과 마음이 작동되고 움직여지지 않는다. 그것이 조금 어떻게 보면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실천적 한계라고 할까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실질적으로 어떤 행복하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을 해야 되는데. 사실 뭐 그리 억울할 건 없죠. 우리는 작은 어떤 기술을 하나 익히려고 하더라도 돈들이고 시간들이고 또 우리가 노력하고. 그렇게 해서 결국은 어떤 그런 특정한. 뭐 스포츠든지 아니면 무슨 요리를 하든지 어떤 기술들을 익히는 거 아니겠어요? 그렇다면은 그거보다 더 크게 궁극적으로 우리 인생을 참 만족스럽고 감사하고 또 좀 더 성장하면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우리가 거기에 어떤 투자를 하고 노력을 한다는 거는 사실 굉장히 그 아무리 투자해도 사실 아깝지 않는 거죠. 그래서 그럼 어떻게 할 거냐?

 

지난 시간에 구체적으로 그러니까 밑에 한번 보세요. [그렇게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한데.] 우리가 몸의 건강을 위해서는 우리는 일찍이 훈련이 많이 되어 있어요. 알게 모르게 우리는 생활 속에서 일상 속에서 굉장히 많이 배웁니다. 여러분도 아이들 다 키워보셔서 알지만 애가 처음부터 화장하는 엄마를 보면 치약이든 뭐든 짜든 거 보면 양치하는 거 보면 ~ 튜브같이 생겼구나.” 나중에는 화장하는 거 보고 자기 이빨 이렇게 하고. 그러니까 뭐든지 처음에는 입에 다 가져가잖아요. 먹을 수 있는 거든. 못 먹는 거든. 그런 식으로 하지만, 점점 커가면서 어떤 것은 내가 먹어야 되고. 어떤 것은 먹으면 안 되다는 걸 배우죠. 어떤 것은 맛있고. 몸에 좋은가? 지금 TV 틀어보세요. 요즘 특히. 건강식품이니 뭐 많이 나오죠.

 

그런데 거기에 비해서 마음이 건강해지는데 마음이 행복해지는데 대한 학습은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많이 안 배웠어요. 사실. 그러니까 건강해지는데 건강한 마음을 유지하는데 즐겁고 행복하고 평화롭고 또 서로 사랑하면서 사는 그런 건강한 마음을 그걸 우리는 불교에서는 선심서라고 그래요. 선한 심소. 또 불건강한 그런 쪽의 감정을 일으킨 거를 불선심서라고 그럽니다. 그런데 그런 걸 어떻게 하면 계속 그런 심리상태를 유지하고 우리가 더 이렇게 편안하고 안락하게 해 가는가에 대해선 사실 일상 속에서 그렇게 많이 훈련하지를 않아요. 그러다 보니까 잘산다는 게 신체적으로 건강한 게 별거겠어요? 따지고 보면 잘 먹고 잘 싸면 되죠.

 

그런데 정신적인 건강도 사실은 마찬가지에요. 잘 보고, 잘 듣고, 팔정도 같죠? 잘 보고 잘 듣고 잘 느끼고 잘 생각하고 잘 기억하면 되는데. 그런데 우리는 거의 그런 거에 대해서는 익숙하게 일상적으로는 배우지 않는다는 거죠. 훈련이 안되어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날마다 내가 그러면 잘 보고 잘 듣고 하고 잘 싸야 되는데 싸지를 못하는 거죠. 버릴 것을 안 버리고 계속 내면에 차곡차곡 쌓아두는데, “저거 저 인간 내 욕했지. 내 흉봤지.” 아니면 저게 날 무시했지? 부부간이든 부모자식간이든 동료 간이든 계속 뭐에요. 쌓아두는 거죠. 사실 저 날 무시했었지. 이런 거 나쁜 음식 먹고 배설 안 한 것만큼 똑같은 현상이거든요.

 

몸이 찌뿌등하듯 계속 마음이 찌뿌등 하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런 것들을 잘 비워라. 이랬죠. 그게 쓰레기통 비우기였어요. 마음의 쓰레기통 비우기. 그러니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런 것들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럴 때 우리는 한 번씩 마음의 쓰레기통을 비워준다. 그러니까 내가 즐겁지가 않고 나를 불쾌하게 하고 뭔가 인생에 대해서 감사하지 않고 원망하게 하거나 미워하게 하거나 그런 뭔가 불건강한 그런 심리상태를 유발하거나 유지하게 하는 그런 생각이나 그런 감정이나 그런 기억이나 그런 것들을 어떻게 하라고요? 버려야 된다. 우리가 음식물 찌꺼기 버리듯이 버려야 된다. 그런 말씀을 드렸고요.

 

그 다음 두 번째입니다. [고통의 순간은 성장과 파괴의 두 문이 열리는 순간이다.] 어쩔 수 없이 살다가 보면 이 생각 저 생각이 일으키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게 일으켜서 그렇게 누적된 것들이 조건이 맞아지고 어떤 상황이 되면 뜻하지 아니하게 감정적으로 폭발을 한다든지 아니면은 그렇게 되죠. 그렇게 됐을 때에는 우리는 어떻게 인식해야 되냐? ‘~ 내 안에 두 개의 문이 열렸다.’ 이렇게. 고통은 뭐에요? 살다가 보면 어쩔 수 없이 우리가 만나게 되는 것들인데. 그 만났을 때는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이 말이에요. 그때는 내가 오히려 그걸 계기로 새롭게 깨달으면서 성장하고 발전하고 변할 수 있는 행복의 길로 가는 문과 문이 열리는 거고.

 

동시에 두 갈래의 하나는 불행. 그리고 퇴보. 그런 문이 양 갈래가 열리는 순간이라고만 생각할 수만 있으면 된다는 거에요. 내가 아주 많이 괴로운 순간에. 그럼 그걸 생각하면 자~ 고통으로 가는 문은 뭐냐? 남을 원망하거나 뭐에요? 환경을 원망하거나 또 변명하거나. 모든 원인은 뭐에요? 타자에게. 나 아닌 상대의 몫에 돌린다. 알고 보면 어차피 우리가 완벽하게 일방적으로 잘하거나 못하는 거는 없죠. 살다 보면. 피차가 이래 이래해서 인연화합으로 이렇게 만들어진 건데. 그러니까 각자가 자기 몫을 감당하면 된다. 나는 내 몫. 나는 내 몫은 제쳐놓고 상대가 잘못한 거, 상대가 문제된 거, 세상이 문제된 거, 환경이, 내 남편이, 아내가, 자식이, 친구가. 이렇게 하면은 뭐에요? 끝이 없는 거죠.

 

상대 무엇의 잘못을 계속 따져도 효과적이지는 않다. 이거죠. 행복하게 되거나 원망하게 되거나 소통은 안 되니까. 그러니까 효율적으로 생각하면 내 몫은 그냥 내가 책임진다. 내가 감당한다. 그런 게 성장으로 가는 문이라는 거에요. 그래서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거냐? 기억나세요? 세상의 고통 하는 순간에 나만 고통 하는 게 아니라 그와 비슷한 이유로 이 지구상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내가 고통 하는 순간에 나처럼 다른 사람도 고통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에요. 그래서 뭔가 나만의 고통이 아니라, 나처럼 고통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들을 한번 떠올려보고.

 

또 내가 이 고통을 잘 극복해서 그들에게도 내 경험을 전수해주거나, 아니면 도움을 주거나, 그들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는 그런 어떤 보시하는 그런 자비로운 마음을 낼 수 있으면 그게 최고의 어떤 성장으로 행복으로 가는 문이고, 소위 말하는 팔자가 바뀌는 순간이고 운명이 바뀌는 순간이다. 복이 그냥 점점점점 쌓이는 순간이라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이 두 개. 그러니까 이런 경우는 내가 내 몫을 초점을 두는 거고. 또 나와 같은 사람에 대해서 공감하는 이해하는 그런 마음을 일으킨다. 사실 우리가 한때 20~ 30년 전 7060년대 보면 굉장히 가난했잖아요. 가난으로 인해서 어떻게 보면 참 인간사회가 참 그래요.

 

가난해서 동정을 받거나 위로 받기보다는 무시 받거나 굉장히 많이 그런 시절이 있었어요. 등록금 그거 뭐라고 그러죠? 육성회비 안내면 혼나고 집에 돌려보내고. 또 한때는 우리 때는 어릴 때 보면 가정환경조사를 아주 공개적으로 했어요. 집이 자기 집에 사는 사람. 집에 신문 보는 사람, TV있는 사람. 자동차 있는 사람. 그게 어린아이의 가슴에 무의식적으로 무엇을 심어줬겠냐? 지금 우리 사회에 이렇게 물질 만능. 물질이 최고가 되는 최고처럼 살게 된. 또 연예인들 나와 가지고 아주 자랑하잖아요. 뭐를 사업을 어떻게 했고. 뭐가 부자고. 그렇게 된 배경을 한번 생각해보라는 거죠. 어린 시절에 정말 그게 개관적으로 절대적으로 행복을 줘서 그런 게 아니라. 우린 그렇게 교육받고 무의식적으로 우린 그렇게 우리 문화 속에서 그렇게 자랐어요. 무시하고 무시 받는 거.

 

그래서 악착같이 잘 살아야지. 무의식적으로 얼마나 쌓였겠습니까? 그런데 만약에 정말 내가 가난 때문에 힘들었거나 고통 했던 그런 경험이 그 순간순간에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서 굉장히 나중에 오늘 육도 윤회할 때 굉장히 달라집니다. 그러니까 정말로 내가 진정하게 가난을 아는 사람은 나중에 가난한자를 절대 무시 못 하죠. 진정으로 배고파 본 사람은 그럴 수가 없어요. 정말 배고픈 그 자체를 경험하거나 가난 그 자체를 경험하거나 외로움 그 자체를 경험하거나. 내가 못 배워서 내가 정말 무식하다. 그런 거에 대해서 정말 진실로 그 경험 자체의 충실한 사람들은 배우면 배울수록, 또 모르는 사람을 도와주게 되고 이해하게 되지. 무시하지 않아요.

 

가난도 마찬가지에요. 내가 부자가 됐다고 해서 가난한 사람 무시하지 않게 되죠. 왜냐하면 내 경험에 진실했던 사람이에요. 그런 그런데 경험이 진실한 게 아니라 그런 고가 나올 때마다 내 에고가 계속 나오는 거에요. 두고 보자. 자존심 상한다. 어쨌다. 계속 앞에 유식에서 말했던 4번뇌, 아만심 아상이 계속 길러지면 나중에는요, 내가 벌이가 좀 좋아지면 무시하게 되는 행동이 나오는 거죠. 오히려 내가 경험했던 거를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고 직면하고 싶지 않아지고 그러면서 뭐에요? 오히려 반대에 더 하드타임을 주는 거지. 더 고생시키고 무시하고. 사실 그런 건 미국에서도 그랬어요.

 

한때 지금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되어서 꽤나 그런 대로 제품들도 있고 알려져서 그러지만, 한때 제가 처음에 갔을 때만 해도 승복입고 나타나면 중국 사람이냐고 묻죠. 한국 사람이라고 묻는 사람은 없고, 거의 그러면 본능적으로 어때요? 아이고 한국 사람이라고 왠지 더 인정해주는 쪽으로 나를 그렇게 보여주고 싶어지는 무의식적인 그런 게 있을 거 아니에요. 반응이. 그래서 어떤 사람은 그냥 한국 사람이라고 하기보다는 끝까지 코리안아메리칸이 아니라 그냥 미국 애다. 미국 애다. 아이에게 그렇게 주입시키는 부모도 있고. 아예 한국말은 안하고 김치도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되고 뭐 이런 식에.

 

왜냐하면 그 시절에 맨날 미국에서 우리 전쟁 당시에 특별프로 있었어요. 만날 틀어주니까 80년대 90년대 2천 년대에도 우리 한국은 그런 줄 아는 사람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제가 갔을 때도 그런 어느 정도 별로 좀 상대적으로 일본에 비해서라든지 떨어지니까 자기 정체감이 안 선다. 그러나 정말로 우리가 그런데 그 가운데서도 반대로 굉장한 애국자가 생겨나요. 오히려 굉장히 우리나라를 생각하고 아끼고 더 한국에서는 전혀 몰랐다가 더 생겨난 사람이 있다. 언제나 그런 두 부류가 생겨난다는 거에요. 우리는 경험에서 물론 그 안에 무수히 중간 중간에도 있지만 극단적으로 보면 그런 두 부류가 있다.

 

그런 두 부류인데 우리는 고통에 직면했을 때 문제에 직면했을 때 내가 어느 방향으로 갈 거냐? 생각해볼 때 그거는 순전히 우리의 선택이다. 이렇게 됩니다. 그게 말처럼 쉽겠냐? 맞아요. 말처럼 쉽지가 않죠. 뭐 그거 다 아는데 생각처럼 쉽냐? 괴로움을 겪으면. 당장은 원망하게 되고. 그렇죠. 말처럼 쉽지 않지만 우리는 뭐에요? 우리 불자들은 말만 수련하는 게 아니잖아요. 몸으로 행동을 하는 것도 훈련하는 거고, 생각을 바꾸는 것도 훈련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말만 해가지고 안 되는 거죠. 몸 바꾸는 거 하고 그 습관으로 익숙해진 몸을 바꾸는 거 하고 생각을 바꾸는 거는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굉장히 오래 열심히 하고 또 반복하고 계속 마음을 전환하는 거, 마음 전환하는 게 뭐라고요? 생각을 전환하는 거죠. 그렇게 계속 하고 또 반복하고 또 반복하다 보면 습이 쌓여지는 거지. 그죠? 아니 뭐 십 년 결혼해서 살다가 이혼해야겠다. 싫다. 저는 그렇게 상담하러 오면 이혼해라. 말아라. 그렇게 얘기 안 하죠. 최소한 뭐에요? 10년 살았어? 그러면은 5년 정도는 유예기간을 두고 준비기간을 한번 살아봐라. 이렇게 해요. 최소한 10년 살았으면요. 그렇게 하는 그 과정에서 충실히 노력하고 노력해보면 누구한테 상담 받거나 허락 받거나 뭐가 아니라 가슴이 그냥 나중엔 저절로 저절로 알게 해주죠. 그럴 때 굉장히 확고해 지는 거에요.

 

그런데 우리가 굉장히 계속적으로 더 불행한 쪽으로 문제를 더 악화시킨 쪽으로 알게 모르게 습이 됐는데, 그게 하루아침에 고쳐지겠냐? 이 말이에요. 생각이야 또 말이야 그렇게 할 수 있지만, 몸으로 정말 깊숙이 있는 나의 가치나 어떤 내 신념이나 관념을 바꾸는 거는 하루아침에 안 되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거는 반복해서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그러니까 믿어야 되는 거지. 내가 이런 고약하거나 불건강한 이런 습이 드는데도 처음부터 내가 가지고 태어난 거는 아니잖아요. 살면서 일으킨 습이듯이. 내가 또 살아가면서 계속 적으로 선한 그런 노력과 훈련을 통해서 종국에는 뭐에요? 결국은 내가 그렇게 된다고 믿는 거죠.

 

그래서 부처님처럼 종국에 가면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는. 그게 우리들의 궁극적 목적 아니겠어요? 불자들의 궁극적 목적이죠. 그렇게 해야 된다. ~ 그럼 오늘 좀 서론이 너무 많이 길었는데 이번 주에는 육도윤회를 하겠습니다. 우리 공부 웬만큼 불교 공부하신 분들 육도윤회 너무 쉽죠. 너무 쉬워요. 육도? 뭐에요? 지옥아귀축생 또 뭐에요? 아수라. 또 인간, 그 다음에 천국이에요. 여섯 개. 그럼 공부 다 한 거지 뭐. 지옥은 뭐에요? 지옥은 뭐 이런이런 화탕지옥 무슨지옥 드글드글 끓고 너무너무 고생하고. 아귀는 뭐에요? 아귀는 먹어도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는 끝없이 계속 원하는 거, 축생은 그야말로 무지하죠.

 

또 아수라_그야말로 아수라장 같다 그러죠. 싸움이에요. 난장판이죠. 인간_우리 인간의 특징은 뭐겠어요? 인간 계속 그런 이런 저런 맨날 우리가 겪는 것들. 천상_천국은 좋은 거지. 신나고. 행복한 거에요. ~ 그런데 그럼 우리 공부 끝났냐? 그렇게 되면 이제 그거는 개념적이고 그거 알아가지고 실질적으로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뭐 배운 거나 안배운거는 별 차이 없죠. 그런 거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건 아니란 얘기에요. 지금 앞에 이 두 가지. 행복하기 위하여 훈련하고 연습하고 고통의 순간이 두 개의 문이 열린다는 사실을 우리가 깊이깊이 인식하면서 계속해서 반복해서 좋은 습관을 들이고 좋은 뭐에요?

 

행동과 또 말과 생각을 바꿔가지 않으면 요거를 겪는다 이거야. 이 육도를 끊임없이 겪는다. 는 거에요. 그런데 우리가 전통적으로 교학적으로 육도는 전생에서 끝없는 생을 반복하면서 우리가 축생계에도 태어나고, 또 천국에도 태어나고, 지옥에도 태어나고 그런 거죠. 그런데 치유하는 불교읽기에서는 심리적인 상태를 보겠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이 생 저 생을 환생하고 생을 거듭하면서만 겪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매 순간, 짧게는 매 순간 순간 찰나마다 우리가 육도를 돌고 또 매주 하루에도 몇 번씩 지옥을 갔다가 천국으로 갔다가 아수라판이다가 축생이다. 이런 단 말이죠.

 

그러니까 여기에서는 바로 우리의 일상 속에서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그런 심리상태. 돌고 도는 그런 심리상태로 접근을 해보자. ~ 그러면 육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뭐겠어요? 당연히 육도는 굉장히 고통이죠. 고통을 윤회하는 건데 그 심리상태가 특징적인 게 조금 달라요. 육도가 맨 처음에 지옥이라 그랬죠? 육도는 다 고통이기는 한데, ~ 지옥은 무슨 고통을 해요? 제가 지금 책에서 쓴 거는 초감 투룽파 링포체(Chogyam Trungpa Rinpoche)라고 티베트에 스님인데. 이 분 지금은 작고하셨어요. 열반하셨어요. 어디지? 미국에 콜로라도주에 무슨 대학이야? 나로빠대학을 설립한 분입니다. 이 분이 미국에 와가지고 이 분은 심리학전공자는 아니에요. 그런데 굉장히 심리학을 불교심리학자죠. 대단히 불교를.

 

처음엔 미국 와서 미국사람들한테 부처님 가르침을 어떻게 전할까? 그렇게 이렇게 쭉 봤더니 미국은 당시에 그때가 1960년 후반, 70년대인데, 심리학이 굉장히 보편화 되어 있었거든요. 지금 우리나라 힐링 열풍에다가 심리학 많이 나오잖아요. 그런데 그때 이미 미국은 굉장히 심리학이 성숙하고 아주 최고로 발전된 단계에 있었어요. 그래서 가만히 보니까 아~ 부처님 가르침을 말씀을 심리학의 용어를 빌려서 전달하는 게 효과적이겠다. 그러니까 한때는 뭐에요? 철학이 굉장히 어떤 시대의 사상이나 가치를 거의 갖고 있을 때는 부처님 가르침을 철학적인 용어를 빌려서 가르쳐야겠다. 이럴 수 있겠죠.

 

또 종교가 그럴 때는 종교적인 용어를 써서 가르치기도 하고. 그러니까 그때그때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어떤 그릇에 담느냐 하는 문제다. 그런데 주로 사람들이 대부분의 우리가 말하는 중생들이 좋아하는 그릇에, 그들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그릇에 담으면 되는 거죠. 그런데 만약에 무슨 부처님의 사상은 뭐 이걸로 만 해야 된다. 이거다. 그렇게 고정된 생각을 하면은 성공 못했을 거에요. 이분은 굉장하게 영향을 미쳤어요. 정신치료자, 심리학자, 이런 분들한테. 지금 소개해드렸던 다니엘 골먼 (Daniel Goleman)이나 또 샌프란시스코의 젠센타에 있었던 일본 선사가 있었어요. 같이 하려고 했는데 그분이 먼저 가시는 바람에 이분이 이제 설립을 해서 상당히 지금까지도 많은 좋은 치유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이분이 육도를 심리적 상태로 보고 설명 했는 거하고. 또 마크 엡스타인(Mark Epstein)이라고 이 사람 정신과 의사인데. 하버드출신 정신과 의사고 현재 뉴욕에서 개업을 하고 있어요. 제가 마크 엡스타인(Mark Epstein) 그런 관점도 참 좋아해서 워크샵 할 때 몇 번 이렇게 참가를 했었는데. 굉장히 불교의 교리를 정신분석적 관점에서 잘 피력을 하고 있어요. ~ 앞에 우리나라도 만약에 지금 잠깐 제가 떠오르는 생각인데 초감 투룽파 링포체(Chogyam Trungpa Rinpoche)처럼 그렇게 우리나라에 만약에 기독교가 왔는데 기독교하나님 이름이 여호와야훼에요. 본명이. 만약에 여호와야훼를 믿으시오. 믿으시오. 하는 거 하고, 우리한국사에서 우리한테는 하나님이라고 하는 그런 어떤 개념이나 그런 인상이 아주 우리 민족에 깊이 뿌리 박혀있는데.

 

하나님 믿으시오.” 하면은 좀 생소하긴 해도 용어로는 굉장히 우리에게 익숙하니까. 우리의 무의식 문화 속에 깊이 빠르게 전파될 수 있잖아요. “여호와야훼를 믿으세요.” 해보세요. 뭔가 거리감이 되죠. 그러듯이 초감 투룽파 링포체(Chogyam Trungpa Rinpoche)가 서양사람들한테 불교를 가르칠 때, 그런 어떤 그들의 쉬운 용어로 그들의 문화에 맞게 친숙하게 했다. 사실 이러한 것들은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대하거나 지도할 때도 바로 그 사람에게 익숙한 그런 용어나 그런 말로서 해줄 때 훨씬 더 빨리 받아들이게 된다는 거죠. 마크 엡스타인(Mark Epstein)같은 경우도 정신분석적인 관점에서 육도를 설명했어요. 이 두 분의 관점이나 이해를 제가 종합하면서 제 이야기를 또 넣어가지고 육도를 한번 만들어봤습니다.

 

육도는 첫 번째가 뭐냐 하면 육도의 특징은 제일먼저 심리적 상태가 공격성이에요. 상대에 대한 공격성이고 당연히 이건 분노입니다. 여러분이 이거 안 적으셔도 되요. 거기 나와 있고 책에도 있으니까. 공격성하고 분노. 그러니까 이거는 보통의 분노라 아니라 활활 타는 지옥 같은 그런 분노에 완전히 그렇게 몰입된 상태입니다. 그런 것이 우리는 지옥이라고 하죠. 심리상태에서는. 이때에 이런 상태가 되어있고. 여기에서 특징은 뭐냐니까. 그래서 티베트에 만다라 그림에 보면 육도윤회에 관해서 설명하는 게 나와 있는데 거기에 만다라그림에서 지옥도에는 관세음보살님이 뭘 갖고 계시냐 하면 거울을 들고 계신다.

 

그러니까 그거는 뭐냐 하면 다음시간에 이어질 건데요. 결국은 여기에서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하나의 키를 준다. 이렇게 훨훨 타서 끝이 없어요. 화가 화를 먹잖아요. 여러분이 아마 미친 듯이 화를 내는 경우에는 정말로 상대에 대한 엄청난 공격성. 우리나라에 한번 그런 부부싸움 하는데 네가 그랬지? 네가 그랬지?” 흥분하다가 이게 죽을래?” “그래 죽여죽여죽여.” 그러니까 진짜 신나를 뿌렸고 붙여붙여붙여해서 붙여서 진짜 사망한 경우가 있었어요. 그러니까 완전히 활활 타고 있는 이런 분노의 상태에 있을 때는 그때는 멈출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튼 고거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는가는 다음시간에 이어서 하고 오늘은 그냥 육도에 대한 전체적인 소개를 해드리겠어요.

 

여기서 관세음보살님은 뭘 갖고 있냐니까 거울을 들고 계신다. 거울에 자기 모습을 비추어보라. 그 다음 지옥다음에 뭐라 그랬어요? 아귀. 아귀 귀신 같은 경우는 여러분 목구멍이 요만한데 밀어 넣어도 넣어도 뭐요? 배가 부르지 않다. 이건 하나의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건데. 여기에서 아귀귀신의 특징은 뭐냐 하면 지칠 줄 모르는 욕망이에요. 갈망이에요. 이 갈망은 멈출 줄 모르는 끝없는 갈망인데, 갈망만 할지 알지 만족은 할 줄 모르는 거에요. 이것도 병입니다. 우리가 보통 일상 속에서 보면은 계속 원하기만 원하기만 계속 갈망하기만 하지 막상 그것이 생겨났을 그것을 즐길 줄은 몰라요.

 

대게 우리가 돈에 귀신이 붙었나 할 때 아귀귀신 붙었나 할 때 어때요? . 모으는데 모은데 모으는 데만 집중하지 정말 돈을 쓰고 가는 사람 아니잖아요. 그런 경우. 또 뭐에요? 사랑도 갈망만 해. 계속 날 사랑해달라고 갈망하고 갈망하고 사랑받기위해서 온갖 노력을 하는데 막상 상대가 사랑해주면 어때요? 사랑을 어떻게 받아야 될지 모르는 거에요. 그러니까 계속 갈망만 하는 거죠. 그런 상태. 그래서 이 경우에는 관세음보살님이 티베트 만다라 그림에 뭘 갖고 계시냐 하니까 약병을 들고 계세요. 약병. 사발을. 약사발을 들고 계신다. 그럴 때의 그 갈망에 그 타는 걸 뭐에요? 감로수가 들었겠지. 법이 들었겠죠?

 

그래서 그거로 진정을 시켜서 치료를 해야지. 이게 그렇게 쉽게 왜 집착하는 거야. 돈 많은 거 벌어서 뭐 할래? 뭐 이런 그냥 단순한 어떤 설명이나 이치로는 이게 치유가 안 됩니다. 이런 상태, 쉽게 보면 말 들어 될 거 같으면 애시당초에 그렇게 안 하죠. 우리가 육도에서 도는 건 우리가 생각하는 거 보다 사실은 깊이 뿌리 박혀 있어서 쉽게 해결이 안나요? 요런 상태를 우리는 정신분석적 관점, 심리적 관심에서 봤을 때 아귀다. 아귀의 특징이다. 아귀다음에 뭐 있어요? 축생. 축생은 뭐냐 하면은 축생의 특징은 축생마인드. 축생의 특징은 뭐냐? 무지가 특징이에요. 축생은 무지가 특징입니다.

 

무지인데 무지 중에서 이게 초감 투룽파 링포체(Chogyam Trungpa Rinpoche)는 무지로 봤고 마크 엡스타인(Mark Epstein)은 이 무지 중에서도 주로 성욕과 식욕에 의해서 지배 받는 욕구에요. 축생의 무지인데. 축생은 무지가 우리가 법에서 얘기하는 그러니까 연기법을 모르고 부처님의 탐진치를 제거해야 되는 데 그런 무지를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여기 보시면 페이지 251페이지에요. 어떤 본질적인 인생에 어떤 본질적인 법을 모르는 무지가 아닙니다. 축생에서의 무지요. 251페이지 한번 열어보세요. [축생도에서 말하는 어리석음이란 자기 스타일을 타인의 관점에서 보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가 세상의 어떻게 비추었는지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을 말한다.

 

축생도 정신세계에서는 앞으로 돌진만 할 줄만 알지 좌우를 함께 둘러 볼 줄 모른다. 그래서 주어진 규칙이나 전통만을 고수 할 뿐, 그것을 다양한 조건과 상황에 맞게 새롭게 정의하여 더욱 현실적으로 효율적으로 적용할 줄 모른다.] 자기 스타일을 남이 자기 어떻게 보는지 모르는 거에요. 자기 스타일 모르는 거 그런 무지다. 소통이 안 되는 무지죠. 완전히 돌진하는 앞만 보고. 좌우를 볼 줄 모르고. 그렇게 하는 걸 축생의 무지라고 봤다. 여기서는 관세음보살님이 티베트의 만다라에서 보면 책을 들고 계신다. 좀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다른 사람에게 좀 세상지식에 대해서 공부 좀 해라. 그죠? 책으로 치유를 해야 된다.

 

그 다음에 축생다음에 뭐죠? 아수라에요. 이 아수라는 마크 엡스타인(Mark Epstein) 같은 경우는 질투하는 신들이 투쟁하고 싸우고 있는 그런 형상? 그런 어떤 이미지를 냈는데요. 이 아수라의 특징은 질투입니다. 아주 질투가 그냥 우리가 인간도에서 질투하는 거하곤 차원이 달라요. 질투 그 자체에요. 그래서 굉장한 망상증과 편집증, 축생에서 굉장히 여기서는 이런 성욕 식욕을 바탕으로 한 굉장히 자기중심적이에요. 그러니까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는 거죠. 여기 아수라에서는 특징이 편집증 망상증이에요. 계속 의심하고. 특징이 굉장히 재미있게 초감 투룽파 링포체(Chogyam Trungpa Rinpoche)는 이렇게 설명해 놨어요. 지금 내가 무거운 걸 들고 가. 끙끙거리고 들고 가면은 옆에 있는 사람이 안 도와준다. 그러면 내가 이렇게 무거운 걸 들고 가는데 저 인간 저게 도움도 안주고 참 이기적이야.” 이렇게 생각할거에요.

 

그런데 그이가 다가와서 무거운 걸 들어줘. 그럼 고맙다가 아니라 이번엔 지금 무엇 때문에 나한테 이렇게 친절한 거지? 도대체 무슨 수작이야? 뭐가 있어?” 또 이렇게 생각한다는 거에요. 그러면 도와줄 때도 있고 안도와 줄 때도 있고 하면 또 어떻게 생각 하냐? “지금 나하고 뭐 하는 거야? 지금 게임 하는 거야? 나하고 지금?” 이런 식으로. 굉장히 편집증 망상증입니다. 아수라의 특징은. 그리고 굉장히 자기의 아상, 자기 집착이 강해서 어느 거 하나도 제대로. 굉장히 이때 우리가 질투하는 거. 그야말로 질투의 화신이라고 그럽니다. 질투가 이글이글 활활 끓어. 그런 상태가 아수라의 특징이다. 이렇게. 그래서 아수라에서는 관세음보살님이 뭐를 들고 있냐 하면 불을 내뿜는 칼을 들고 계신다.

 

이거 같은 경우는 이치적으로 설명하거나 뭐 어떻게 하면 말의 말의 꼬리를 물면서 도저히 대화가 불가능한 사람 있죠? 그냥 불을 뿜는 그러니까 칼로 단칼에 그렇게 하지 않고 이것은 치료가 거의 안 되는 것으로. 아수라. 굉장히 이것도 중증이죠. 그 다음 인간도 참 재미있어요. 인간의 심리상태는 뭐냐 하면 인간의 특징은 참 인간만큼 내가 누군지, 정말로 그 너무너무 노력을 하는데도 가장 자기가 누군지를 잘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한번 여기 읽어보겠습니다. [육도가운데 인간도 만큼 행복을 추구하지만 행복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애쓰지만 만족하지 못하고.] 맞죠? 공감가시죠?

 

[자기가 진짜 누구인지 쉬지 않고 질문하고 답을 구하지만 결코 자기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모순 속에서 희망과 좌절, 즐거움과 괴로움을 느끼며 번민하고 괴로워하는 세계는 없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도가운데 오로지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인간의 도에서만큼 뭐에요? 유일하게 인간도에서만큼 변화가 가능하고 쉽게 말해서 쉬운 말로 속된 말로 팔자를 바꿀 수 있는 데가 이때입니다. ? 굉장히 자아가 지금 정체감이 약해요. 내가 누군지 모른다. 그러니까 굉장히 쉼 없이 노력하고, 쉼 없이 애쓰고 계속적으로 그 뭔가를 추구하면서. 인간심리상태, 마인드에 있을 때는 질투를 해도 아수라질투하곤 달라요. 좀 부러움도 있고, 나도 그렇게 되고 싶고, 이런 질투니까 계속 해서 애쓰는 거죠.

 

어떻게 보면 참 대단하죠. 그래서 저희가 한번 워크샵을 한 적이 있었어요. 육도를 가지고. 12일 워크샵해서 그룹으로 지어줬는데. 참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 지금 워크샵에 참석했던 분들 여기 계시는데. 인간 그룹에서 가장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제일 많더라고요. 뭔 얘기냐니까. 이거 초감 투룽파 링포체(Chogyam Trungpa Rinpoche)가 뭐라고 했냐 하면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또 그냥 수시로 계속 육도를 윤회하지만 그래도 뭐에요? 개인의 특징적으로 오래, 제일 많이 방문하는 곳이 있다. 마음상태가. 주로 가장 많이 머무르는 자기 스타일의 곳이 있다. 이중에 어느 걸. 거의 하루에 가장 많은 시간 지난 일주일 동안 한 달 동안 여러분은 어느 도에 있었나?

 

내가 지옥에 가장 많이 있었나? 아귀상태에 가장 많이 있었나? 축생상태에 가장 많이 있었나? 아수라상태에 가장 많이 있었나? 인간의 상태에 가장 많이 있었나? 그런데 여기에서는 지금 자기문제가 내가 누군지는 안 나오잖아요. 그런데 유난히 인간마인드에 있을 때는 굉장히 자아정체감에 대해서. “내가 왜 살지?” “어떻게 살아야 되지?” “어떻게 해야 되지?” 이런 거에 대해서 또 내가 어디로 가지? 죽으면?” “어디서 왔지?” 어떤 인간본연의 실존적인 물음을 끊임없이 하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애쓰고 추구하기 때문에 오로지 육도가운에 인간마인드에 있을 때만이 우리가 변화를 하는 거에요.

 

이제 왜? 우리가 인간이면서도 왜 그렇게 많은 경우 우리는 수행하지 않는지. 또 애쓰면서도 크게 효과가 없는지 이제 아시겠어요? 왜냐하면 거의 많은 시간을 인간도에 안 있고 이런데 머물러 있으면 수행의 기회가 적은 거에요. 이 상태는 그냥 그 자체로 있으니까. 분노 그 자체. 아니면 질투 그 자체. 목마른 그 자체. 그죠? 무지 그 자체에 머무를 때가 많다. 정말 우리가 하루 중에 수행한다 해도 인간의 심리상태에 있을 때는 얼마 안 된다. 이 말이에요. 이 인간 상태에 관세음보살님은 어떤 화신으로 나타나냐 하니까 고타마 석가모니부처님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수행하는 모습이죠. 깨닫기 위해서 열심히 수행하는 붓다 고타마 부처님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럼 각각의 만다라에서 나타난 모습에 의해서 우린 어떻게 머물러야 되는지. 어떻게 치유해야 되는지. 조금 감을 잡으시겠죠? 그 다음 천상입니다. 천국이에요. 이 천국은 역시 육도 중에 당장은 천국에서는 잠시 고를 잊은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천국의 특징은 굉장히 아주 쾌락과 즐거움과 행복과 만족이 있는 상태에요. 어떨 때 우리 그래요? 갑자기 내가 뭔가를 하나 이루었을 때 너무너무 원하는 무슨 내가 명품백을 하나 가졌을 때, 아님 내가 지금 너무너무 원했는데 저 사랑하는 사람을 얻었을 때 그럴 때 어때요? 세상이 다 예뻐 보이죠? 아주 더러운 것도 깨끗해 보이고, 행복하지 않는 것도 막 아주 좋아 보이는 거에요. 행복해 보이는 거에요.

 

잠시 여기서 천국에. 그래서 뭐냐 하면 천국의 상태는 잠깐 아상이 뭐에요? 에고의 작동이 멈춘 상태. 에고가 잠깐 작동을 멈추고 있는 상태에서 그냥 마냥 행복하고 즐거워하는 상태. 사랑하는 순간이 그렇죠? 그런데 그게 끝나면 그런데 결국은 이게 깨달아서 그런 어떤 이게 뭐에요? 상락아정의 상태가 아니란 말이에요. 항상 하면서 행복하면서 즐거운 상태가 아니고 깨달아서 이고등락한 상태가 아니고 일시적으로 내 에고, 내 아집이, 내 에고가 작동을 멈춘 상태이기 때문에 고 순간이 끝나면 어디로 가요? 지옥으로 떨어져요. “알고 봤더니 저 인간이 진짜 내가 생각한 그 인간이 아니네.” “저게 날 사랑하는 줄 알았더니 네가 안 사랑했네. 날 배신했네.” 이러면서 이제 완전히 그야말로 지옥을 겪는 거죠.

 

그래서 여기에서 이게 이제 왔다 갔다 합니다. 육도를. 우리는 끊임없이 이런 심리상태를 겪지만 주로 오래 머무르고 그런 것이 뭐에요? 아니면 또 반드시 어느 특징 한 개만 있는 건 아니고 또 오버랩 되기도 하죠. ~ 우리가 수도 없이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결국은 고통이라는 거에요. 잠깐 즐거울지 몰라도. 축생은 내가 누군지 관심이 없죠. 그냥. 막 돌진하는. 그러다 결국 오래 못 가죠. 결국은 부딪치게 되어 있으니까. 여기에서 근거해서 하는 데 오래가겠어요? ~ 우리 육도를 보면 왜 지금 요즘 우리 사회에서 심각하게 문제되고 있는 게 뭐 있죠? 묻지마 살인. 또 하나 성추행 문제도 심각하잖아요. 어떻게 해서 가능하겠냐?

 

여기서 보면 정신분석적으로 보면 해석이 가능하죠? ~ 일단 뭐에요? 여기 마크 엡스타인(Mark Epstein)같은 경우는 축생마인드에 있을 때, 앞뒤 분간이 안 되고, 남이 날 어떻게 생각할지를 생각할 수가 없는 거에요. 완전히 그 욕망 자체에 쌓여서 자기중심적으로 되니까 그런 것도 가능한 거죠. 그러지 않겠어요? 또 묻지마 살인은 어떻게 되겠어요? 저기 무학대사 초기에 조선 창립했을 때 이성계하고 그런 일화 아세요? ‘돼지의 눈엔 돼지만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 그러니까 이 어느 심리상태가 극도로 심해져 있을 때 모든 인간이 어떻게 보여요? 아수라 지옥의 중생으로 보이거나 아귀중생으로 축생중생으로 보이거나 아수라로 보이면 어떻게 될까요? 죽이고 싶죠. 마음대로 없애야 되는 거죠. 내 자체가 축생마인드에 있거나 그러면 동물들 간에 물어뜯을 수 있는 거죠.

 

그러니까 그런 논리도 가능한 거에요. 어느 한 순간에 여기에 완전히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마음이 육도를 돌고 있을 때에 잠깐 뭐에요? 한발 뒤로 물러서서 스텝백해서 그걸 바라볼 수 있고, 그걸 자각하고 바라볼 수 있고, 그걸 나와 분리시킬 수 있다. 이거 우리 본연의 모습 아니죠? 내 자성 아니죠? 우리들의. 잠깐 우리는 어떤 그런 현실적인 조건 때문에 어떤 상태 때문에 우린 이런 심리상태에 머물게 된다는 거죠. 그러나 우리는 어느 심리상태에 얼마나 오래 머물렀던 간에 그것이 진짜 우리의 본 모습은 아니라는 거에요. 그냥 우리는 뭣 때문에 살아남고 살아가야 하니까 어떤 생존의 어떤 현실에 이런 일 앞에서 우린 여러 가지 조건이나 인연 때문에 상태 때문에 우리는 이런 심리상태가 수시로 된다는 거죠.

 

그러나 우리가 이거 안에서 반드시 알아야 될 것은 그게 나의 본 모습은 아니다. 또 설사 상대가 그렇게 보여도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거에요. 그러면서 우리는 그거를 잘 비추어보면서 이 뒤에 관세음보살님의 화신의 어떤 특징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치유해 가야 된다는 거죠. ~ 이제 여러분이 한 주일 동안에 다음 주에 이어서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조금 더 어떻게 우리는 이런 심리상태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나? 이걸 공부할 텐데. 한주일동안 잘 연구해보세요. 나는 주로 일주일 내내 주로 어느 심리상태에 어느 상태에 내가 가장 자주 머무르고 자주 방문하는가. 이 육도에. 그 생각하시면서 오시면 다음 주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우리가 해결책도 벗어나는 길도 좀 더 생생하게 찾아볼 수 있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