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스님_ 치유하는 불교읽기// 제8회 탐진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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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법문/서광스님_치유하는불교읽기

2013. 5. 12.

출처: 불교TV

  

안녕하세요. 한주일간 잘 지내셨어요? . ~ 지난주에 뭐 공부한지 기억하세요? ? ~ 그래요. . 계정혜 삼학에 대해서 공부하셨죠? 잠깐 기억을 좀 상기시켜보면 계는 뭐에요? 우리가 평소에 몸으로 행동하고 또 입으로 말하고 또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부처님의 모습에 가깝게. 그러니까 부처님 말씀하시는 거 흉내 내라는 게 아니라. 부처님이 우리의 어떤 이상적인 수행의 모델이니까. 어떻게 하면 부처님처럼 말하고 또 부처님처럼 뭐에요? 행동하고 또 부처님처럼 생각할 수 있나? 그런 거를 마음속에 담으면서 우리가 행동하는 어떤 행동중과라고 할까요? 그것이 계다. 계라고 생각하시고.

 

그 다음에 정. 정하면 우리 보통 선정을 생각하시는데 정은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어떻게 하면은 건강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겠나? 우리가 어떤 심리상태가 정서적인 심리상태가 화가 나거나 아니면 미운생각이 있거나 질투하거나 원망하거나 슬퍼하거나 그러면 어때요? 그럼 그거는 우리의 어떤 심리상태를 우리를 건강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그런 상태반대가 뭐에요? 건강한 심리상태라는 것은 우리가 기쁘고 편안하고 즐겁고 행복하고 그러한 심리상태. 그러니까 어떻게 하면 그런 건강한 심리상태를 유지할 수 있나? 그런 거에 대한 알아차림을 하면서 나에게 유익하지 않는 불건강한 심리상태는 얼른 내려놓고 바꾸고 그렇게 하면서 알아차리는 것이 정이다.

 

그 다음에 혜는 어떤 거냐? 혜는 우리가 앎에도 굉장히 여러 가지가 있다고 그랬죠? 그런데 우리는 보통 일상적으로 크면서 계속 우리가 알아오는 것은 뭐에요? , , 분리된 상태에서 또 계속적으로 알음알이에 가까운. 그러니까 알음알이하고 지식하고 좀 차이가 중요하다 그랬어요. 그런데 지식이. 우리는 보통 살아가면서 지식이나 정보도 세상지식도 필요한데, 수행하면서 까딱 잘못오해하면 지식을 알음알이로 오해할 수가 있는데. 지식은 필요한 거죠. 정보는. 그런데 좋은 정보든 나쁜 정보든 소식이나 이런 건 필요한건데, 거기에 어떻게 해요? 집착을 하면 알음알이가 된다. 이건 전적으로 제 설명이 전통적인 불교교학적인 설명하고는 조금 차이가 있을 거에요. 뭐라고요? 이거는? 치유하는 불교읽기에요. 제목이 좀 달라요.

 

그러니까 어떻게 하면은 내가 일상 속에서 좀 더 편안하고, 좀 더 즐겁고, 그리고 건강한 심리상태를 유지할 수 있나? 그런 관점에서 볼 때 그렇다. 그렇게 이해될 수 있겠다. 이런 거에요. 그래서 우리가 계정혜에 대해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주에는 이제 삼독에 대해서 공부할거에요. 삼독은 이 책 페이지 91페이지에서 111페이지에 해당하는 사실입니다. 제가 지난번에 참 잠깐만. 이 말씀 드렸나요? 지식하고 지혜를 얘기하면서 [무식하면서 지혜로울 수는 없다.] 말 한번 들어보세요. 무식하면서 지혜로울 수 있겠나? 우리가 보통 마음공부하고 수행을 과도하게 어떤 지식에 대한 알음알이하고 혼동해서 거부하게 되면 까닥하면 무식해질 수 있다는 거에요. . 현실 일에 세상일에 무식해 질 수 있다.

 

그런 일에 무식하면서 우리가 근본적으로 과연 지혜로워지는 게 가능하겠느냐? 그런 말씀을 제가 드렸는지 안 드렸는지 모르겠는데 한 번 더 강조해 드리고. 또 그렇다고 해서 계에 시간과 공간, 조건을 무시하고 이건 지켜야 되니까. 이건 전통이니까. 그러면서 뭐에요? 계를 근본적으로 우리가 왜 지켜야 되는지 그런 거에 대한 근본적인 목적이나 이런 이유를 잊어버리고 망각하고 계에 집착하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그랬어요? 지금은 국제화 된 사회를 시대를 살고 있는데 글로벌시대의 합당한 우리 사회에 맞는 그런 상식이나 도덕, 예에 못 미칠 수도 있다. 어디에 집착하면요? 계행에 과도하게 집착하면.

 

그러니까 불교공부에서는요, 가장 중요한 것 중에 중요한 게 中道正觀중도정관이에요. 그러니까 수행에서 항상 빠뜨리면 안되는 게 염두에 두셔야 될 것이 중도를 유지하는 상태다. 치우치면, 지나치게 치우치거나 과하게 아무리 좋은 거 옳은 거라도 집착하게 되면은 거기에 따르는 부작용이 반드시 있다. 그래서 아마 제가 예를 아마 임신중절 예를 지난주에 들었을 거에요. 기억하시죠? 뭐든지 정의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뭐에요? 정의의 이름으로 사람을 얼마든지 죽일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 마음 공부하거나 수행할 때 꼭 염두에 두셔야 될게 옳든 그르든 그런 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나치면 안 된다. 과하거나 무리하지 않게 이렇게 편안하게 공부해야 된다. 그런 거였구요.

 

오늘은 삼독에 대해서 공부를 하겠습니다. 삼독은 너무 잘 아시죠? . 삼독은 뭐에요? 탐진치. 대체 불교공부를 시작을 하시게 되면, 아마 제일 먼저 듣는 것이 그리고 항상 듣는 게 뭐에요? 탐진치 삼독에 관한 걸 거에요. 그죠? 그러니까 우리는 삼독 너무 쉽다. 이거야. 삼독이 뭐냐? 탐진치 탐욕 화 분노. 그다음에 어리석음 이게 삼독이다. 그다음은요? 그래서 어쩌라고? 그죠? 그 다음에 없잖아요. 그리고 우린 그걸 없애야 된다. 그러다가 그럼 어떻게 되죠? 지나치게 잘못해가지고 또 오히려 있는 재산 아~ , 탐욕이 문제야. 그냥 무소유 해야 되니까. 있는 거 다 내어놓고 어떻게 될까?

 

그러다 나중에 되면 알 수가 없는 거에요. 그러니까 그런 것이 아~ 우리가 오늘 시간에는 아~ 탐욕 하고 화 분노, 그리고 어리석음에 대해서 한번 치유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접근할건가? 공부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탐욕. 생각해 보죠. 탐욕 없는 사람 있어요? 탐욕이 없으면 세상살 맛이 없어요. 사실은. 의욕이 없어진다. 이 말이오. 욕심이 없다. 그러니까 욕심을 한번 내려놔 보세요. 억지로 내려놔 보세요. 욕심을 억지로 내려놓으면 어디로 갈까요? 우울증으로 가요. 의욕이 없잖아요. 삶에 의욕이. 그러니까 우리가 정말로 탐욕의 의미를 잘 이해해야 된다는 거죠. 욕심이 없고 의욕이 없으면 우울증으로 가요. . 화 분노인데 지금부터 한번 생각해 볼게요. 우리는 기본적으로 중생이 모든 중생이 부처의 경지에 이르기 전까지는 항상 이 3가지 삼독이라 그랬어요. 세 가지 독성에 절어있다. 중독되어 있다.

 

그러니까 깨달음에 이르기 전까지는 이 독성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불교의 모든 교리나 수행이나 공부들은 알고 보면은 이 세 가지 독성에 중독된 상태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독할거냐? 독에 중독됐으니까 해독해야죠. 그러니까 해독하고 정화해 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우리는 탐욕에 중독되어서 살아가고 있고. , 분노, 또 어리석음. 3가지 독성에 우리는 중독되어 있다. 오로지 뭐에요? 성불, 깨달은 자만이 이 독성으로부터 해방되는 거에요. 그리고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 독성에 중독되어 있어서 이것으로 인해서 많은 심리적인 불건강한 관계에서의 갈등이나 오해 착각 이런 힘겨움을 겪고 있다. 그럼 이 탐욕이 뭐냐? 탐욕에 대해서 좀 더 근본적인 이유를 알아보자. 이거에요.

 

~ 뭔가를 내가 없어서 불편한 거, 부족해서 내가 살아가는 데 힘겨운 거, 내가 행복할 수가 없는 거, 내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내 생존의 위협을 받는다면 뭐에요. 그걸 갖는 거는 필요한 것을 얻는 건 탐욕이 될 수 없겠죠. 필요한거니까 생존에. 그런데 어떤 것은 필요하지 않는데도 내가 너무 과도하게 가져서 너무 과하게 원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러면 내가 그걸 갖는 것 때문에 역으로 힘겨워질 수 있지 않겠어요? 간단한 이치죠. 예를 들어서 내가 하루 움직이는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영양소가 있잖아요. 음식이? 그런데 그거보다 맛있으니까 좋으니까. 계속계속 먹으면 어떻게 될까요?

 

이번에는 내 육신을 잘 유지되는 게 아니라 배가 더부룩해지고 그걸 힘겹고 그리고 결국은 내가 아주 비대해 지거나 어려워지겠죠. 물론 유전적으로나 이게 누적된 어떤 이유에 의해가지고 체중이 불어나거나 이런 예외는 제외하고요. 그런 경우가 있죠. 마찬가지로 다른 어떤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나한테 내 행복을 위해서 아니면 내 안전을 위해서 내 평화를 위해서 일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어느 정도 기본적인 필요한 것 이상에 과하게 많아지면 그것 때문에 결국은 괴롭다는 거에요. 그것 때문에 내가 일상적으로 뭔가 편하게 가볍게 생활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무리하게 그거를 유지해야 되고, 또 그걸 불려야 되고, 또 계속 안전하게 보관해야 되고 이런 문제에 굉장히 괴롭고 시간을 많이 보내야 되고 그 일로 힘겨워져요. 그러니까 탐욕은 뭐냐? [내가 필요한 것 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거나 갖고자 할 때에 오는 것]이 여기서는 탐욕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어요. 그런데 옛날에는 필요했는데 지금은 필요하지 않는 것. 그것도 조금 지나치면은 무리가 되고, 또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는데 미래에 필요할지 몰라가지고 계속적으로 거기에 집착해서 축적하는 것도 힘겨워지겠죠? 물론 우리는 생각해보면 또 요즘 말하는 노후대책도 해야 되고. 여러 가지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까지 필요한건 있어요.

 

그런데 그것이 과해지면. 지나쳐지는 것은 전부 다 이 범위 안에 속하고,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지금 현재에 내가 경험하고 제대로 잘 경험하고 현재에 즐겁게 살고, 뭔가 감사하면서 잘 느낄 수 있는 거를 집중해서 살 수 있는 걸 방해한다는 거죠. 그런 것들이 다 이 탐욕 안에 들어간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러면 화는 뭐에요? 분노. 화는 뭐냐 하니까 내가 지금 이 탐욕하는 거, 내가 원하는 거, 내 기대에 어긋나는 거, 또 내가 원하는 데에 그 원하는 거를 얻고자하는데 장애가 된다고 방해된다고 생각하는 대상을 향해서 분노하는 거에요. 그리고 공격하고 싶은 거지. 미워하고. 그런 것이 이 화, 분노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얻고자 하는 거, 내가 어떤 목표가 있는데 내 그 욕심을 채우는데 장애물이 된다고 생각하면은 거기에 대한 미움이에요. 그것이 공격성으로 드러나는 것이 화다.

 

화에 대해서 제가 한번 읽어드리겠어요. 화에 대해서는 무슨 얘기를 하냐 하면은 선가귀감에 이런 말이 있어요. [一念瞋心起일념진심기하면 百萬障門開백만장문개니라.] 그러니까 한번 한 생각 딱 화를 내면 백만 가지 장애의 문이 열린다. 이렇게 얘기를 하고요. 101페이지 보면은 무슨 말씀이 나오냐 하면은 이게 앙굿따라니까야 초기경전에 나오는 건데요, 부처님께서 어떻게 해 놨냐하면은 [화내는 사람은 못생기고, 수면장애가 있다. 그가 얻은 이익은 잃어버리게 되고 말과 행동으로 명성에 손상을 입는다.] 그렇죠. 화를 내게 되면. [화에 압도되는 사람은 자신이 노력해 얻은 부와 지위를 파괴한다. 친척, 친구, 동료들이 피한다. 화는 상실을 가져온다.

 

화는 마음을 불태운다. 화내는 사람은 그를 위태롭게 하는 위험이 화냄에서 태어나는 줄을 알지 못한다.] 거의 한 페이지 쭉~ 여기에 보면은 화내는 사람에 대한 장애가 쭈욱~ 적혀있어요. 밑에 또 부처님 말씀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건 102페이지에 나오는 건데. [화내는 자를 향해서 화를 내지마라.] 어때요? 우리 보통 화내는 사람을 보면 나에게 화낸다고 생각하면 뭐에요? 금방 반사적으로 불쑥 같이 화가 나죠? 그런데 부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왜 화내는 자를 향해서 화를 내지 말라고 했냐하면은 [화내는 자는 마치 화를 품은 압력밥솥과도 같다.] 내가 화내는 사람을 향해서 화를 내면 압력밥솥 뚜껑을 여는 것과 한가지에요. 거의 폭발지경이 되요.

 

[화로 맞대응하는 것은 활활 타는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스스로 타는 자를 행해서 화를 내는 것은 어리석다.] 이랬어요. 그럼 어떻게 해야 되나? [화내는 자를 향해서 최상의 무기는 무아가 되는 거다.] 그러니까 화내는 자가 있을 때에 같이 맞불을 지피는 일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니까 거기에 상대하지 말라는 거에요. 그래서 자기가 혼자 타고 있는데 거기다 기름을 붓는 것도 해롭고 내가 같이 맞대응해서 함께 같이 그 화에 불길에 휩쓸려서 화가 심해져서 불길에 휩쓸리면 어디로 가죠? 육도윤회에서? 지지난 시간에 했죠? 어디로 가요? 지옥으로 가죠. 그렇죠. 그러면은 뭐에요? 공격성이 서로 분노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온 주변을 다 지옥의 불바다로 만드는 격이 됩니다.

 

그러니까 화를 내는 자를 향해서는 화를 내지 않는 것이 지혜로운 건데. 같이 불타지 말라. 이런 얘기에요. 결국 또 화가 날 땐 뭐가 되면 화가 나겠어요? 유식에 보면은 4번뇌에 나오는데요. 아만, 아애, 아견이죠. 그러니까 나의 어떤 프라이드가 건드렸다. 그럴 때 화가 나잖아요. “지금 나 무시해?” 또 사실이 누가 무시한다고 해서 무시당해지는 존재가 아니잖아요. 우리들이 근본적으로 보면. 자기 분상인거지. 또 뭐에요? 아만, 아애_내 중심적인 데에 사랑에 내가 원하는 사랑에 안 맞는 거에요. 내가.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그 마음에 걸리면 어떻게 되죠? 또 화가 치솟는 거죠. 그리고 또 내 믿음이나 내 견해에 안 맞으면 어때요? 그럴 때도 또 화가 납니다.

 

화나는 거 자체가 굉장히 뭐죠? 아주 불합리한 거고 또 우리의 어떤 아상, 아집의 극치의 상태에서 일어나는 거기 때문에. 거기에 대응해가지고 같이 이렇게 하는 것은 굉장히 우리에게 불선심소를 많이 심게 되고 우리의 심리상태, 정신건강을 많이 해친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그럴 때는 무아로 대응하는 것이 옳다. 무아로 대응하는 것이 뭐에요? 현실적으로 어떻게 하는 게 무아로 대응하는 거냐? 그냥 우리가 평소에 왜 명상이 필요하냐? 선이 필요하냐? 하니까 그럴 때에 얼른 뭐에요? 내 마음을 호흡으로 집중하는, 몸으로 가져가서 호흡에 집중하고 배꼽 밑 단전에 이렇게 갖다놓으면 되는데 참 그러기가 어렵죠.

 

그러니까 그럴 때 어려울 때는 뭐에요? 그냥 얼른 말로서 조금 바람을 쏘인다든지. 좀 있다가 나중에 지금 너무 마음이 그러니까 다시 얘기 한다든지. 뭐 이렇게 좀 진정시키면서 우리가 그렇게 맞대응하지 않는 게 좋겠다. 그 다음에 무지입니다. 어리석음인데 어리석음은 뭐에요? 뭐에 대한 어리석음일까요? 부처님 근본적인 부처님이 깨달으신 게 뭐죠? . 사성제, 팔정도에요? . 그것도 맞습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우리가 보통 여기 불교에서 얘기하는 공, 연기. 그런 말 들어보셨어요? . 그거 뭐 공 연기를 모르면 무지다. 도대체 말이 어렵잖아요. 공도 어렵고 연기도 어렵고. 쉽게 얘기해야죠. 우리 식으로. 도대체 뭐에 대한 무지냐? 어리석음이냐?

 

그러니까 우리가 그냥 우리 일상 삶에서 적용해 보면 자기 자신에 대해서 모른다는 거에요. 또 자기 자신에 대해서 모를 뿐만 아니라 자기 주변이나 상대나 환경에 대해서 모른다는 거지. 세상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거에요. 그게 무지에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 모르고 또 뭐에요?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 우리 주변. 환경을 모른다. 어리석다. 거기에 대한 무지를 이야기합니다. 무지가 다른 무지가 아니고요. 그러면 왜 모르냐? 알아야지. 왜 모르냐? 모르는 이유는 처음에는 모를 이유가 없어요. 사실은. 자긴데 왜 몰라요? 우리가 왜 같이 이렇게 여럿앉아 있을 때 가끔 뭐 웍크샵이냐 세미나 같은 거 둘러앉아 하면은 이렇게 자기 소개하잖아요.

 

뭐 얼마나 평소에 얘기 잘해요? 그러다가 둘러앉아서 자기 소개하게 되면 막 자기 차례 되기 전에 나 이 말해야지. 저 말해야지. 막 떨리죠. 그래봐야 그거 몇마다 안하잖아요. 어디서 온 아무개입니다. 뭐한다. 이거 밖에 없는데 왜 떨리고 막~ 외우고 힘들까? 왜 그러겠어요? 그거는 그 마음속에 뭐가 있어요? 나에 대한 집착하는 마음이 있으니까 그렇잖아요. 집착하는 마음이 있으면 대체 내 소개하는 게 뭐 어려울 게 뭐 있냐? 이름 석 자에다가 그저 반갑습니다. 아무개입니다. 밖에 없는데도 남의 얘기가 잘 안 들릴 정도로 잘 안 들려요. 내 소개하는데. 이렇게 정신이 없는 거에요. 그게 뭐에요? 아집이다. 나에 대한 집착 때문이다.

 

자기에 대한 집착만 놓으면 그냥 다른 사람 얘기에 ~ 참 누구시구나. 누구시구나.” 이렇게 하고 내 차례가 되면 안 외워도 특별히 준비운동 안 해도 만날 부르던 이름이니까 자기 이름을 잊어먹겠어요? 아니면 내가 어디 사는지 잊어먹겠어요? 그러니까 그냥 아무개입니다. 반갑습니다. 했는데 우린 그게 잘 안 된다. 왜 그러냐? 바로 집착 때문이다. 이거에요. ~ 그러니까 왜 나를 모르겠어요? 만날 같이 있는 게 난데. 이 몸뚱이에다가 이 생각에다가 그 주변을 모를 일이 뭐 있냐 이거에요. 같이 사는데. 어느 날 떡 보니까 아이고 2030년 부부간에도 같이 살다가도 참 알다가도 모를 인간이네.” 또 가족부모자식도 마찬가지에요. ? 몰라요. 모를 수가 없죠. 그런데 우린 모른다. ? 내가 내 생각에 빠져서 살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니까 모르는 거에요. 그러니까 저 어리석음이 뭐 그게 별거 아니라니까요. 내가 내 속에 내 생각 속에 내 경험 속에 내 감성 속에 빠져서 살기 때문에 모른다. 그거 아집이라는 거에요. 아집. 법집. 아집은 불교에서 굉장히 집착인데 그 집착이 뭐에요? 아집은 나에 대한 집착이고 법집은 뭐에요? 타자. 나 아닌 내 주변 세상 현상에 대한 건데, 그렇게 말하니까 대게 심오해 보이고 뭐 어려워 보이는데 그 별거 아니에요. 사실은. 그러니까 계속 착각 속에 사니까 그래요. 그래서 우리가 그런 건 무지하다. 이렇게 말해요. 도대체 이유가 무지. 모르는 어리석은 이유가 우리가 집착하기 때문에 그렇고. 또 뭐에요? 왜 집착 하냐? . 집착하는 이유가 뭐냐?

 

우리가 서로 업력이 다르니까요. 업이 다르잖아요. 살아온 세월이 다 다르고 경험하는 바가 다르니까 서로 다르니까 내 것에 집착하는 거에요. 내 것이 옳다. 내가 맞다. 굳이 옳다. 맞다. 해서 판단 받아야 될 이유가 없어요. 그렇게 너 생긴 대로 느끼고 그렇게 생각하고, 나는 이렇게 느끼고 이렇게 생각하고. 그러나 일을 할 때는 서로 의논해서 타협해서 하면 되거든요. 그런데 그렇지 않고 심하면 뭐에요? 축생마인드로 떨어지면 서로 으르렁 거리게 되죠. 인간마인드로 돌아오면 어때요?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그 의견들이 다 다양한 걸 귀하게 여기면서 서로 이렇게 타협해서 할 수가 있는데, 종종 축생마인드로 떨어지는 순간에 내걸 주장하고 집착하고 또 으르렁 거리게 되는 게 다투는 거죠.

 

우리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사실은 그게 너무 자연스러운 건데. 그렇다. 그러니까 탐진치. 삼독에 우리가 중독되어 있는데 대체 이거 어떻게 해야 되냐? 이것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수많은 관계 속에서 장애를 일으키고, 또 내 스스로도 너무 힘겹고. 그러니까 불교의 모든 수행이 알고 보면 이건 뭐 달마대사 아시죠? 달마대사 맨 처음에 나오는 그런 관심론이나 뭐 이런 책에 봐도요. 탐진치 얘기가 나와요. 그리고 이런 저러 이야기에 많은 심오한 불교교리를 가르치거나 공부하거나 설명해도 종국에 가면은 탐진치 삼독이 문제다. 우리가 이 독성에서부터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탐욕 같은 경우에 五停心觀오정심관 같은데 보면은 전형적으로 초기에는 탐욕을 하면 부정관을 해라. 이런 게 나와요. 부정관. 다 더럽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요즘은 그 옛날에는 그게 좀 효과적인 거 같은데 마음치유입장에서 보면 사실 더럽다. 이런 거로는 이게 조금 비효율적인 영역이 있어요. 예를 들어서 내가 탐욕하는 거 하는데 내가 물질적인 것에 대한 욕심뿐만 아니라 명예라든지 그죠? 인정이라든지. 그런 거 볼 때에 아~ 다 무상이니까 다 쓸데없는 거다 해갖고 다 무조건 버리고. 버리고. 버리고. 그렇게 극단으로 가면 어떻게 되겠어요? 굉장히 비현실적이 되고 그게 또 일종의 억압이 될 수도 있고.

 

예를 들어가지고 내가 굉장히 인간이니까. 내가 좀 예쁜 이성에 대한 욕망이 있다. 그러면 부정관을 가지고 탐욕이든 어떻게 될까요? 더럽다 이렇게 되요. 더럽다 이런 식으로 부정관 하다보면 나중에는 자기가 이성에 대한 욕망이 있는 건데 나중엔 그게 심리전문용어로 투사라 그럽니다. 상대가 나에게 꼬리친다. 이렇게 뒤집어서 생각할 수가 있다니까요. 그래서 그런 방식은 또 부작용이 많아요. 충분히 부작용이 많아요. 우리 전형적으로 그렇게. 아니 무슨 문제가 발생하면 꼭 이렇게 그냥 둘 다 맞았으니까 그렇게 된 건데 꼭 어느 한쪽이 꼬리를 쳤다. 뭐 가만히 있는데 이렇게 됐다. 이거는 굉장히 조금 약간 좀 전근대적 방식이다. 이거에요.

 

그러니까 그런 쪽보다는 탐욕이 일어났다. 그런 거에 대해서 그럼 어떻게 해결을 해야 되냐? 가장 좋은 방식이 원력을 세우는 거에요. 원력. 우리는 탐욕하고 원력을 구분해야 되요. 원력 들어보셨어요? . 그러니까 어떻게 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데 기본적인 거거든요. 우리가 욕심이나 그거나 이런 탐욕 자체를 내려놓으려고 하면 부작용이 너무 많아요. 내려놓을 수가 없어. 그러니까 이걸로 가다가는 백발백중으로 나중에는 부정을 하거나 억압을 하거나 이상하게 왜곡되고 뒤꼬인다니까요. 찝찝해져요. 그러니까 가장 건강한 방식으로 어떻게 하면 탐욕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나? 이 방식은 원력을 세우는 게 좋다. 원력.

 

 

원력은 뭐에요? 원력을 세우는 거는. 이건 뭐에요? 사실은 말씀드리지만 이 세계가 다 기본적으로는 굉장히 나에 대한 집착 때문이라고 그랬죠? 아집이. 그러니까 이거에 대한 원력을 세울 때는 아~ 내가 내 중심으로만 생각할게 아니라 좀 주변에 남의 입장에서도 남도 생각하자는 거에요. 그 원력을 해야만 아~ 봉사를 한다든지. 나만 원하는 게 아니라 상대도 원한다. 아주 간단하게 뭐에요? 우리가 탐욕하면 대단히 물질적인 거나 무슨 뭐 명예나 이런 것만 생각할게 아니라 같이 당장 앉아서 대화를 할 때도 여러분 지금 이렇게 앉아있어도 대화를 제가 기준 없이 시키면요. 34명 앉아있으면 어때요?

 

자기중심적으로 되니까 우리에게 만약에 두 명이 이야기 하는데 5분이 주어진다면 230초씩 얘기해야 되잖아요. 평균. 그렇게 안한다니까요. 한사람이 5분 다 할 수도 있어요. 말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고. 우리가 어떤 먹을 때도 마찬가지에요. 먹을 때도 나눠먹을 때도 아니 그 3명이면 3, 내 몫은 1/3이고 대화를 해도 주어진 시간에 내 몫은 1/3이고. 그 평균을 기준으로 해서 대화를 하고 먹는 것도 그렇게 먹어야 되고 이런데 그렇게 잘 안 돼요. 가장 기본적인 산수부터 해야 되는 거에요. 사실은 이 탐욕에서요. 그리고 여행을 가도 마찬가지에요. 그래가지고 다투거나 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 어떤 사람 너무 지나치게 내가 희생한다 봉사한다 그래가지고 네가 다해라. 다해라. 그러면 되겠어요? 그것도 안 돼. ?

 

그런 일로 탐욕에서 못 벗어납니다. 그러면 나중엔 뭐에요? 보상심리가 일어나서 내가 이렇게 희생을 하고 내가 이렇게 지들이 위해서 했는데 지들이 날 알아준다고. 이렇게 그 다음에 또 이렇게 속에 뭐가 일어날까? 화가 일어나죠. 원망이 일어나죠. 내가 이렇게 온 가족을 위해서 희생을 했는데 다 키워놨더니 지네가 나를 위해서 안 해준다. 이렇게 된다니까요. 그래서 기본적으로 이 자체를 가지고 이렇게 하려고 하면 안 되고. 돌려서 해야 되요. 원력으로 해야 돼. 원력으로. 그래서 이렇게 할 때 시작은 조금 이죠. 그냥 나한테 있는 거 큰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좀 나누고, 대화를 할 때도 내가 반했으면 상대가 좀 반하게 해주고.

 

봤을 땐 나보다도 이 사람이 더 속이 답답하고 할 말이 많다면 내가 조금 더 들어주고. 뭐 이런 것도 굉장히 탐욕을 내려놓는데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 별것도 아닌 거 같지만. 별게 아닌 게 아니에요. 그리고 원력이라면 여러분 누구나 우리가 굉장히 탐욕이 있기도 하지만 우리는 기본적으로 우리 안에는 불성이 있거든요. 누구나 부처님이라고 그랬잖아요. 그러기 때문에 조금 나의 시간이나 내가 좀 아깝지만 약간 이렇게 내 놓는 훈련을 해보면 의외로 생각보다 내가 기분이 아주 상쾌하고 좋아지거든요. 그러니까 무리하게 봉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말 한마디. 당장에는 좋은 말로 봉사를 할 수도 있는 거죠.

 

그렇게 봉사를 조금 한번 해보면 생각보다 내가 굉장히 상쾌해요. 그러면 저절로 그 순간에 탐욕심이 내려놔 집니다. 그러니까 원력하고 탐욕, 원력은 아무리 아무리 가져도 이거는 욕심이 안 되는 거에요. 이 원력은 뭐에요? ~ 내가 행복을 원하듯이 다른 사람들도 다 행복을 원한다는 그 마음을 갖는 거죠. 그렇게 해서 이런 식으로 원력을 가지고. 그러면 아 어느 순간에 탐욕인지 원력인지 헷갈릴 때가 있어요. 누가 같이 봉사하자 해서 했는데 어느 날 보니까 걷어가지고 In my pocket 했더라. 이게 어떤 차이야? 차이는 뭐냐 하면은 탐욕심이 밑바탕에 깔려서 했을 때는 장애물을 만나면 곧장 뭐가 일어나? 화가 일어나요.

 

그런데 원력으로 행하잖아요. 정말 봉사하는 순수 봉사하는 마음으로 하면은 장애물이 걸려 오면은 그 장애물 하나에 거름으로 삼고 걸림돌로 삼고 내가 더 성숙하고 성장해가지. 그걸로 인해서 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이거에요. 원망이 되지 않는다. 이거에요. 그러니까 요 두 개의 차이를 조금 느끼시겠어요? 그리고 얘(탐욕)는 뭐에요? 굉장히 자기중심적이고 얘(원력)는 주변이나 타자에 대한 이해, 배려가 있는 거죠. 그리고 이런 마음으로 하게 되면은 분노, 또 안 되면 뭐에요? 성취가 안 되면 좌절이 일어나고, 또 거기에 대해 원망이 일어나고, 미움이 일어나고, 이런 거에 비해서 이쪽으로 가면 어때요?

 

이거(원력)는 대든지 안 되든지 굉장히 기쁨이고 보람이고 따뜻함이고 친절함이고 이런 쪽으로 가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이 탐욕심을 내려놓는 길은. 그래서 왜 저기 어~ 우리가 보살수행에서도 1번이 뭐에요? 보시하는 거 아니에요. 보시. 보시하는 이유가 바로 제 1번이 뭐에요? 탐욕심을 내려놓기 위한 훈련이에요. 그러니까 탐욕심을 내려놓는 훈련이니까 보시를 자꾸자꾸 기회 있을 때 이런 보시 저런 보시. 내가 가진 것을 보시하는 거. 그러면 이 화를 어떻게 보시 하냐? 화 입장에서 화를 내려놓는 길은 뭐겠어요? 내가 화가 나는 사람이 이렇게 될수록 나는 뭘 해야 될까? 말을 할 때 조금 더 친절한 말, 따뜻한 말을 훈련해야 되지.

 

그런데 이 화가 주로 화가 많은 사람들은요. 속으로 그런 마음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따뜻한 말, 친절한 말, 잘 못해요. 평소 화가 안 났을 때도 잘 못합니다. 이 화가 밑바탕에 깔려있는 사람은 괜히 자존심 상하고. 아니 따뜻한 말 하는 게 왜 자존심 상해요? 그런데도 실제로 그래요. 화의 뿌리가 많이 밑바탕이 되어 있는 사람은 진짜로는 하고 싶은데도 못해요. 막 어색하고 민망하고 그래서 괜히 건들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요즘 인기 있는지 잘 몰라도 우리가 자애명상 자비명상 들어보셨죠? 바로 이 화가 많은 사람이 해야 되는 방식이에요. 그러니까 내가 의도적으로 해야 되요. 의식적인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냥 되어 지지가 않아요. 그래서 이 삼독심, 탐진치 삼독심을 내려놓는 거는요. 그냥 우리가 그냥 해서 안 돼요. ~ 유식 심리학에서요. 유식에서 제가 잠깐 말씀드렸나 모르는데. 불교심리학의 정수라고 말씀드린 적 있죠? 두 번째 유식심리학이란 무엇인가? 할 때 제가 말씀드렸는데. 유식 30송에 수행의 궁극적인 목적이 뭐냐 하면은 轉識得智전식득지에요. 전이라는 게 이게 (구를 )자입니다. ()자라고 그랬죠? 내가 그렇게 안다. 네가 그렇게 안다. 각각 아는 게 전식득지입니다. (얻을 )자에요. 뭐를 얻냐? 지혜를 얻는다. 뭐를 굴려서 이 알 식을 굴려서. 그러니까 지 각각 아는 거, 내 중심적으로 아는 것을 돌려서 지혜를 얻는다. 이런 건데요.

 

사실 이러기 위해서 여기 굴린다는 게 무슨 뜻이냐? 이것은 영어로 하면 Transformation입니다. 변형이에요. 전환을 시켜야 되요. 그러려면 이렇게 전환시키는 방법이 뭐냐니까 구체적인 훈련을 해야 되는데. 우리는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훈련으로 노력을 해야 된다. 그렇게 노력을 하는 방식에서 지난번에 말씀드린 계정혜 삼학도 들어가는 거에요. 그러니까 의식적인 노력, 의도적인 노력을 해야 되는데 그게 뭐냐? 하나의 Intention. 의도. 의지. 의지를 발동시켜야 됩니다. 이렇게 해서 의식을 발동시켜서 노력을 해야 되는데 그럴 때에 이 탐진치 삼독이 해독되는 일이 시작되는데 그렇게 노력을 하면 그 다음에 어떻게 되느냐? 내가 그런 의지를 갖고 해야지 할 때 그런 마음을 일으키면은 세상이 관점이 바뀌기 시작을 해요.

 

그래서 이거를 유식에서는 五別境心所오별경심소라고 해가지고. 어쨌든 우리가 습관을 하나 바꾸려면 내가 의식적으로 노력을 해야 된다. 거기까지만 생각을 하시면 되겠어요. 궁극적으로 한 가지. 이해야 될게 뭐냐? 그럼 왜 이거 해독을 해야 되느냐? 이걸 알아야 되요. 아니면은 잘못하면 또 극단적으로 가게 되거든요. 제가 맨 첫 시간에 말씀드렸을 거에요. 이 삼독이 있으면 왜 문제가 되냐? 뭐 인간이면 중생은 그런 거지. 그게 아니고 저 삼독심을 가지고 하면 첫째는 내가 내면으로부터 마음이 편치가 않아요. 내 자신한테서도 내면은 내혼자서도 굉장히 갈등하게 됩니다.

 

계속 갈등하게 되어서 사는 게 힘들어. 누가 뭐라 해서가 힘든 게 아니라 내 스스로도 힘들어진다. 그러니까 inner mind라 했어요. 내 내면에도 조화를 가져야 되고, 내 자신과도 친숙해져야 되는데 그게 안 되기 때문에. 두 번째는 interrelationship 이에요. 대인관계. 이 삼독심을 가지고 있는 만큼 대인 관계가 힘겨워지거든요. 그래서 또 이거를 우리는 해독작용을 끊임없이 해야 되고 또 하나는 내 아를 둘러싼 내 주변, 세상, 사회. 이 생태계 전체 관계 속에서도 힘겨워진다. 삼독심이 있는 만큼 나를 해롭게 해요. 독성이. 주로 관계에서 독성이 전달되고 해로워지고. 또 나를 둘러싸고 있는 우리 사회의 관계도 그만큼 독성을 뭐에요? 허트리니까. 그러면서 서로 괴로워지니까 이거를 해결을 해야 된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걸 해야 된다는 거에요. 궁극적으로. 그러니까 이걸 없앤다고 여기에 막 몰두한 나머지 과하게 해가지고 오히려 더 부작용을 일으키는 경우도 많잖아요. 수행에서. 그러니까 그렇게 지나치게 그렇게 안가 게 된다는 겁니다. 이런 궁극적으로 우리가 왜 해야 되는지를 알게 됩니다. . 여기까지 하고 오늘은 마치겠습니다. 한주일동안 잘 시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