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도스님의 즉문즉설 제56회 7. 천도재를 지내면 좋다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아 고인입니다.

댓글 0

스님법문/불교TV_즉문즉설

2014. 6. 8.

출처: 불교TV

 

 

여러분 효도하고 싶죠? 생전에 계실 때 더 잘할 걸. 돌아가시고 난 뒤에 내가 뭐 해드릴 게 없을까? 많이 고민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돌아가시고 난 이후에 할 수 있는 가장 유일한 효도는 뭐에요? 제사 잘 지내는 거. 그죠? 그런데 그것만 가지곤 너무 약한 거 같아. 그래서 뭐 해드릴 게 없을까? 고민하다 보면 우리가 흔히 스님들에게 찾아가서 내 어머니가 지금 어디쯤 가계실까요?” “내 어머니 살아생전에 너무 힘들게 사셨는데, 고생만 하시다 가셨는데 지금 편안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대게가 이제 어떤 마음을 가지고 갑니까?

 

천도재라도 한번 해드릴까?” 그런데 천도재는 지금 질문을 했듯이 만만치 않은 비용이 발생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천도재는 큰 비용을 통해서만이 가능한 게 아닙니다. 정성이면 되는 거예요. 그래서 꼬옥~ 크게 하라고 하는 부분에 현혹되지 마시고, 적지만 알차게 할 수 있는 그런 우리가 마음을 가지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분은 천도재라고 하는 부분에 대한 장르가 궁금하신 겁니다. 천도재라고 하는 부분이 도대체 어떤 의식일까? 꼬옥 필요한 부분일까?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 않습니까?

 

천도재라고 하는 부분은 우리가 살아있는 사람은 절에 가고 싶으면 가요? 못가요? 가요. 법문 듣고 싶으면 들어요? 안 들어요? 불공하고 싶으면 불공하고, 밥 먹고 싶으면 밥 먹고, 기도하고 싶으면 기도하고. 다 하잖아요. 그런데 이 육신이 없어진 상태에서 만약에 이 혼이라고 하는 부분이 그냥 윤회를 하지 못하고 그냥 혼으로 중음신으로 머물러 있다면, 절에 들어가고 싶다고 들어갈까요? 못 들어갈까요? 못 들어가는 거예요. 스님 법문 듣고 싶다고 들을까요? 못 들을까요? 못 듣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날 흔히 보면 우리가 한을 남기지 마라. 계속 우리가 하는 얘기가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집착을 하지 마라. 마음을 내려놔라. 내 눈에 흙 들어가기 전에 못 잊는다라는 원한을 갖지 마라. 그 원한을 갖고 있는 거 자체가 나를 어디로 가지 못하게 하는 윤회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게 하는 방해요인일 수 있다. 그래서 그런 부분들에 대한 부분을 무조건 보내주고 싶은데 보낼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집착을 하면 그것이 뭔가 될 거 같지만, 이것은 너무나 중생의 사고인거고, 부처님 가르침이라는 부분을 놓고 본다면 세상에 오는 이치와 가는 이치에 대해서 설법을 하신 것이 부처님 가르침의 근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천도재라고 하는 부분은 스님들이 부처님의 영산회상에서 법화경을 설하셨던 부분의 내용을 중심으로 부처님이 45년에 윤회를 포함한 모든 진리에 입각한 내용들을 추리고, 추리고 추려서 그 영가들을 법력으로 부르는 겁니다. 그래서 절에 위패를 써서 모시고, 스님들이 그 영가를 모셔서 그 영가가 지은 업장을 소멸할 수 있는 의식을 하고, 그리고 그 영가가 복을 받을 수 있도록 공덕을 지어주고, 그리고 난 이후에 법문을 하는 겁니다.

 

이러이러한 고로, 억울하게 생각하지 말고 이곳을 놓아버리고 나면 그 다음의 인생이 기다리고 있는 일인만큼 편안한 가운데 머물러 그 윤회에 순응할 수 있는 삶을 살라고 가르치는 것이 바로 천도재의 의미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천도재를 지내면 살아계시는 분들의 공덕이 그 천도재의 대상이 되는 보상보다도 훨씬 더 큰 공덕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꼭 하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은 경제적인 부담이 되기 때문에 내가 정성 것 정말 한푼 두푼 모아서 가까운 곳에 가서 효도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그걸 하되.

 

절대 경제적인 부분의 무리가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부모가 바라는 효도가 아니겠죠? 반드시 여러분들, 내 힘에 맞게 내 노력에 맞게 여러분들이 반드시 천도재를 꼭 하라고 하는 것이 아닌, 마음이 있거든 실천했을 때 큰 공덕이 있고, 또한 그와 같은 가피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은 믿어도 된다. 이렇게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