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범스님] 제14회 나는 불성이다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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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법문/종범스님_법문

2011.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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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법문은 나는 불성이다. 나는 불성이다. 이런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조선시대에 서산스님께서 운수단가사라고 하는 의식문을 하나 편집을 하셨는데요. 거기에 무슨 말씀이 있느냐 하면 我有一券經아유일권경. 나에게 한권의 경이 있다. 不因紙墨成불인지묵성이라. 종이와 먹으로 된 것이 아니다. 展開無一字전개무일자. 펼쳐 보이는 것은 한글자도 없는데. 常放大光明상방대광명이라. 항상 대광명을 비춘다. 놓는다, 라고 그러는데 그 놓는다라는 의미가 쏜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나아가게 한다. (놓을 방)자거든요.

 

그래서 종이로 된 것도 아니고, 글자로 된 것도 아니고, 뭘 펼쳐서 전개하는 것도 없는데, 항상 대광명을 비추고, 대광명을 얻는다. 이런 말씀이 있어요. 그래서 이 서산스님이 기록하신 이 법문을, 법문을 할 때라든지, 제사를 지낼 때라든지, 항상 독송하는 그런 구절입니다. 그리고 구경일승보성론이라고 하는 론이 있는데, 구경일승보성론은 如來藏여래장, 불성을 기술한 논으로 아주 유명한 논입니다. 그래서 여래장이다. 불성이다라고 하면 어디에 근거를 해서 말을 하느냐? 라고 할 때, 불성론도 있지만은 구경일승보성론이라고 하는 론이 대단히 중요한 그런 여래장, 불성에 대한 논이거든요.

 

거기에 제3권에 무슨 말씀이 있느냐 하면, 火不燒虛空화불소허공이라. 불로는 허공을 태우지 못한다. 화불소허공. 불이 다른 건 다 태우죠? 물도 태웁니다. 바로는 못태우지만 물을 그릇에 넣어가지고 밑에 때면 물도 타잖아요 결국은. 불이 못태울게 없거든요. 새도 태우고. 별걸 다 태워요. 그런데 하나 못태우는게 있습니다. 뭘까요? 허공은 지가 못태워요. 불이 다 태워도 허공은 못태웁니다.

 

그런데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파리란 놈은 말이에요. 온갖 것에 다 가서 왔다갔다 하지만은, 불한테는 갈수가 없어요. . 한계가 있어요. 파리가 그냥 온갖 데 다 갑니다. 임금님 머리위에 가는 게 파리에요. 그 아주 정성스럽게 음식 만들어 놓으면 제일먼저 가는게 파리입니다. 이게 염치도 없고, 무서운 것도 모르고, 못가는 데가 없는게 파리인데, 오직 불덩어리한테는 못가요. 이게 다 이유가 있습니다. 못가는. 불은 온갖 걸 다 태워도 허공은 못태운다.

 

그래가지고 若燒無是處약소무시처라. 만약 허공을 태우려 한다면 있을 수가 없다. 옳은 것이 없다. 못태운다 이거에요. 억만년을 불을 붙여도 허공은 못태우거든요. 如是老病死여시노병사. 如是여시. 이와 같이. 노병사가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 不能燒佛性불능소불성이라. 불능소, 못태운다 이 말이거든요. 불성은 태우지 못한다. 이런 게송이 있어요. 이 생노병사가 불성은 태울 수가 없다. 그것이 불이 허공을 못태우는 거와 같다. 이런 법문이거든요.

 

그래서 이 불성에 대한 아주 많이 외우고, 유명한 법문이 화엄경 여래출현품에 無一衆生不具有如來智무일중생도 한 중생도 이불구유 여래지혜. 여래지혜를 갖추어 있지 않은 이가 없다. 지혜가 불성이고, 자비가 불성이고, 덕행이 불성이고, 부처의 성격, 부처의 본성이니까. 부처가 가지고 있은 건 다 해당되는 거죠. 한중생도 여래지혜를 갖추어 있지 않은 중생이 없다. 그런데 왜 모르느냐? 但以妄想執着而不證得단이망상집저 이불증득 하나니, 망상과 집착으로 그 불성을 증득하지 못한다. 若離妄想약이망상 一切智일체지, 만약 망상만 여의면 일체지. 이 대승불교는 일체지인데요. 모든 지혜에 다 통하는 걸 일체지라 그래요.

 

일체지와 自然智 無碍智卽得現前자연지와 또 무애지를, 무애지가 즉득현전하나니라. 바로 눈앞에 나타나느니라. 이 법문이 화엄경 여래출현품의 법문인데, 이 불성에 대한 법문을 할 때에 이 법문을 항상 합니다. 이게 대승불교의 불성법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경전에 의해서 心卽是佛심즉시불이라. 마음이 곧 부처다. 라는 게 다 이런 법문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여래지혜를 다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되면 수수인신이나 비록 사람의 몸을 받았으나, 심동여래라. 마음은 여래와 똑같다. 이게 대승불교에서 아주 중요한 성불이에요. 몸을 바꾸는게 아니에요. 성불할 때, 몸을 바꾸는게 아니에요.

 

불전에 보면 부처님 과거 전기를 기록한 걸 불전이라 그러는데. 거기 보면 부처님을 설명할 때 대부분 32상으로 부처님을 설명했습니다. 부처님은 32가지 중요한 특징을 가지고 계신다 이거죠. 그러면 이 32상이 남자상입니다. 남자 몸이에요. 32상이. 여자 몸은 32상이 될 수가 없어요. 그래서 32상으로 성불한다라고 하면 여자는 성불 못해요. 32상중에는 마음장상이라고 있어가지고 남근이 숨어있어요. 그래서 남근없는 사람은 성불 못하는 거에요. 32상을 갖추어야 성불 한다 그러면. 그러니까 자연히 여인은 성불 못한다, 이런 말이 나오게 되는 거에요.

 

그런데 대승불교가 일어나고부터는 32상 성불이 아니라, 누가 성불하느냐? 제상이 비상임을 보는 사람이 성불해요.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약견제상이 비상이면 즉견여래라. 몸이 32상이고 아니고. 그게 문제가 아니라 문제는 제상이 비상임을 봤느냐? 못 봤느냐? 이게 중요한 거에요. 제상이 비상임을 보면 바로 여래를 본다, 그랬거든요. 이게 대승불교에요. 그래서 제상이 비상임을 본 그런 분들을 선지식이라 그러는데, 그 선지식에 형상을 보면 동남동녀도 있고, 비구비구니도 있고, 또 온갖 여인네들도 있고, 온갖 사람들이 다 있는데, 이런 것을 총칭해서 53선지식이라 이럽니다. 53선지식이 전부 성불하신 분들이에요.

 

그래 성불해가지고 보현행을 닦는데, 그 보현행을 닦는 경지를 묘각이라 그럽니다. 성불을 최고로 한 거, 제상이 비상임을 보고, 부처의 덕성을 갖춘 걸 等覺등각이라 그래요. 등자는 다 같다. 석가모니하고도 같고, 비로자나불하고도 같고. 일체중생과 같고, 세계 우주만상과 같고, 같지 않은게 하나도 없는 경지에 올라간 것을 (같을 등), 등각이라 그래요. 그래서 등각이 되면 그 다음부터는 보현행원으로 돌아가는데, 그 보현행원으로 돌아가는 걸 묘각이라 그래요. 묘각. 그래서 묘각의 세계에서 법을 피는 분들이 선지식인데, 그런 분들은 뭐 남자다, 여자다, 형상이 어떻다. 전혀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게 대승불교입니다. 그것이.

 

그래서 이런 불성에 대한 법문이 화엄경에서 아주 극치를 이루죠. 그래가지고 그 화엄경에 대한 말씀을 더 발전시켜서 불성이야기를 합니다. 신라시대에 의상스님이 계시고, 원효라고 하는 분이 계신데, 삼국유사에서 일연스님이 원효라는 분을 기록할 때, (성인 성, 스승 사), 성사라고 그랬어요. 聖師성사. 참 재미있는 표현입니다. 원효성사에요. 그래서 제 자신이 볼 때도 원효성사라고 그러는게 가장 맞다, 이렇게 봅니다. 그 분은 젊을 때는 스님으로 계시다가 나이 많아서는 속인복장으로 사셨거던. 그래서 스님이라고 해도 되고, 거사라고 해도 되는데, 스님 거사, 이거 다 보다도 성사다.

 

일연스님이 그렇게 딱 붙여놨어요. 원효성사. 거 참 좋은거 같애요. 스님이다 그러면 스님 아니다, 이럴 거고. 거사다 그러면 거사 아니다, 이게 논쟁이 될 수가 있는데. 원효성사 이러면 딱 들어맞는 얘기 아니오. 옛날 분들이 기록하나를 놓는데도 굉장히 세심하게 놨어요. 원효성사께서 화엄경소를 내면서 서문단계에 있는데요, 그것이 동선이라고 하는 책, 83권에 서문이 수록 돼 있는데, 그걸 한국불교전서에서도 수록을 하고 그랬습니다. 거기 보면 無障無碍法界法門무장무애법계법문이라. 이렇게 시작을 해요. 화엄경이 무장무애법계법문이다. 무장무애법계다. 이 불성이 무장무애법계인거에요. 불성은 나인데, 이 나라는 것은 무장무애법계, 그겁닌다.

 

그런데 무장무애법계를 잊어버리고, 이 몸과 생각에 지금 빠져있는데, 그걸 망상이라 그럽니다. 망상이 뭐냐? 아무 시간으로도 장애가 없고, 공간으로도 장애가 없는 一念卽是無量劫일념즉시무량겁이요 一微塵中含十方일미진중함시방이라. 이게 무장무애법계입니다. 일미진중이 함시방이오. 한 티끌 속에 시방을 다가지고 있고, 無量遠劫卽一念무량원급이 즉일념이란 말이죠. 무량원급이 곧 일찰나다. 이게 무량무애법계입니다. 그게 뭐냐 하면 법계가 곧 불성이에요. 그게 납니다. 그게 난데. 그걸 까맣게 잊어버리고, 몸과 자기 생각에 빠져있어요. 자기 생각을 마음이라 그러고 이 몸을 자기라 그래요. 그걸 망상이라 그러는 거에요.

 

사대에 집착해서 자기를 삼고, 열여심으로. 반현하여 생각하는 마음으로 마음을 삼는다. 이게 망상이거든요. 그래서 이런 망상집착으로 깨닫지 못한다. 망상만 여의면 여기 온갖 지혜를 다 얻는다. 이게 화엄경 말씀이거든요. 그러면 원효성사는 서문을 지으면서 뭐라고 그랬냐? 不動不靜부동부정이라.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고요한 것도 아니다. 불성은. 그래서 뭐냐? 生死爲涅槃涅槃爲生死생사위열반 열반위생사. 생사가 열반이고, 열반이 생사다. 不一不多불일부다라. 하나도 아니고 많은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一法是一切法一切法是一法일법시일체법 일체법시일법 이렇게 법문을 했어요.

 

이게 깨달음이고 이것이 불성입니다. 일법이 일체법인거에요. 일미진중이 함시방인거에요. 또 일체법이 일법인 거에요. 그거 참, 기가 막히네. 이런 얘기하면 다 이렇게 졸더라고요. 왜 조나? 했더니 이 얘기하면 졸아요. 이게 왜 그러냐하면 파리가 온갖 곳에 다 앉지만 불덩어리에 못앉는거하고 똑같애요. 그러니까 이 생각 저 생각 다 할 수 있어요. 옳으니 그르니, 좋으니 나쁘니, 다 할 수 있지만, 이 불성에 딱 들어가면 깜깜해요. 이게 바로 이런 거에요. 그러니까 온갖 얘기 다하지만, 일법이 일체법인데, 일법아니오. 이게 뭐냐?

 

파리가, 이건 그릇이다. 이건 파리요. 이름 딱 띄어 버리고, 생각 딱 띄어 버리고. 뭐냐 이거요? 깜깜하다고. 파리가 못앉는데가 없지만 불에는 앉지 못하지만, 딱 이게 뭐냐하면 그냥 졸아요. 아니면 무서워서 도망가든지. 그게 못 깨달은 중생의 미혹함입니다. 그렇게 법문을 하셔요. 일법이 일체법이고, 일체법이 일법이다. 이와 같이 무장무애법이 법계법문의 법칙이 된다. 이렇게 법문을 잘 해주시고요, 옛날에 강원에서 공부를 시키는데, 그때에 공부하는 교육이념이라고 하는 것은 신심교육인데요. 교육기관을 개설해서 교육사업을 시행을 할 때, 무엇을 위한 교육이냐? 이것이 교육이념입니다. 교육방법은 그 다음이에요. 문제는 이념이에요.

 

교육방법이 뭐 아무리 뭐 좋은 기구를 동원을 하고, 온갖 걸 시설을 해도 문제는 무엇을 위한 교육인가? 교육이념이 그렇게 중요한 거요. 절에서 그 동안에 강당을 차려놓고 가르친 것은 신심을 일으키게 하는 겁니다. 신심. 신심교육이에요. 이 신심하나가 이루어져야 성불도 하고 복도 짓고, 수행하는 거지. 신심 없으면 안되는 거에요. 아무리 음식이 좋은게 많아도 먹어야 되는 거지, 안먹으면 소용 없구요. 아무리 법문이 많아도 내가 믿어야 이익이 있지 안믿으면 소용이 없는 거에요. 여기 앉아서 아무리 고함을 질러도 안믿는데는 해볼 도리가 없는 거죠. 그렇지 않아요? ~ 쳐다보고, 쳐다보고 있다 나가버리면 그만 인거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