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범스님] 제14회 나는 불성이다 (4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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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법문/종범스님_법문

2011.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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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뭘 믿느냐? 불성에 대한 믿음인거에요. 나는 불성이다. 이 사대라고 하는 것은 구름과 같이 흘러가는 건데. 이 사대에 집착해서 불성을 모르니 그것이 중생이다. 불성에 대한 믿음이거든요. 그럼 불성을 가지고 있는데 자기가 업을 지어서 자업자득이고, 자작자수다. 이거를 믿게 하는 거에요. 전부 불성은 평등한데 인생은 차별되거든요. 그럼 인생차별 불성평등이란 말이오. 그 어째서 불성은 평등한데 인생은 차별하냐? 그걸 자업자득이라 그러고 그걸 自作自受자작자수라 그럽니다. 자기가 지어서 자기가 받는다. 자작자수, 그것만 딱 믿으면 그냥 발심을 하는 거에요.

 

발심은 뭐냐 그러면 서원을 세운단 말이에요. 서원. 그렇게 서원을 세우면 어떻게 수행을 안할 수 있으며, 어떻게 복을 안 지을 수가 있습니까? 그게 신심교육이에요. 그런데 그런 심신교육 중에 경전이 많이 있지만은 그 경전을 다 잘하게 할 수는 없으니까, 그 앞에 서문이 있는데요. 화엄경에 왕복이무제라고 하는 화엄경서가 았는데 그걸 왕복서라 그래요. 그리고 원각경에 원형이정으로 나가기 때문에 그걸 원형서라 그러고. 또 원각경 대한 배휴라고 하는 분이 서를 지었는데, 혈기지속이 이래 나가서 혈기서라 그러고요. 금강경오가해가 유일물어차하니 이래 나간다 해서 일물설이라 이래 말해요.

 

이 네 가지 서문만 따르르 외워두, 그거 뭐 신심이 안날래야 안날수가 없는 거에요. 일물서, 원형서, 혈기서, 아까 하나 또 뭐 있었죠? 왕복서, 왕복이 무제나, 이렇게 화엄경 ???사 서문이 나가는 거에요. 그리고 항상 외우는 법성게. 지금은 얘기한 원효성사의 이 화엄경 서문이 법계로 나가니까 부처님 법계서. 이 여섯 가지만 봐두요, 경 다 안봐두, 신심이 안날래야 안날수가 없어요. 거기에 인과가 있고 불성이 다 되는 거란 말이죠. 그래서 알고 보면 불성이 곧. 불성은 평등하고, 불성은 청정한데 인과는 차별하고 인과는 역연해요. 그래서 인과가 바로 불성이지 불성 따로 있고, 인과 따로 있고 그런게 아니거든요. 그런 거에요.

 

그래서 이 이름도 어떤 때는 법계라 그러고 어떤 때는 불성이라 그러고, 어떤 때는 원각이라 그러는데, 혈기서에 보면 중국에 배휴라고 하는 분이 참 대단한 분인데, 법계라고 할 때는 교철융섭고왈법계. 교철융섭이라. 철자는 (사무 철) 자인데 통한다는 소리요. 교자는 (사귈 교)자인데 서로 통해요. 내가 저쪽으로 통하고 저쪽에서 나로 통하고, 하나가 많은 것으로 통하고 많은 것이 하나로 통하고. 인에서 과로 통하고 과에서 인으로 통하고. 이게 교철입니다. 융서벌이에요. 전체 다 융합해서 포섭하는게 있어서 교철융섭으로 표현할 때는 법계라고 하고,

 

이과절비고왈불성, 이과절비라 모든 것이 다 끊어졌다. 그런 것이 다 끊어졌다. 청정하다라고 표현할 때는 불성이라고 하고, 또 삭군혼이독고조왈원각. 삭군혼이, 많은 어둠을 밝혀서 홀로 비추는 걸 표현할 때는 원각이라고 한다. 이래서 표현하는 내용 따라서 명칭이 다른 거지, 다 우리의 본성, 불성이거든요. 그래서 똑같은데, 불성은 똑같은데, 그 인과업보에 따라서 자작자수로 終日圓覺而未嘗圓覺者凡夫也종일원각 이미상원각자 범부야요. 종일동안 우리가 원각속에 있는데 일찍이 원각이 아니고 원각을 잃어버리고 사는 건 범부다. 기가막힌 말씀이에요. 종일원각 이미상원각자는 범부야라, 이렇게 시작을 해요.

 

그래서 중생이 참 자기가 왕인데 왕이 줄 모르고 헛고생 하는 거와 똑같은 겁니다. 왕이면 뭐해요? 왕인지 모르는데. 모르면 어떻게 해요? 할 수 없지. 제일 고생스러운게 모르는 고생이에요. 모르면 어떻게 할 거에요? 왕이면 뭐해요? 왕인지 모르니 어떻게 하냐 이거요. 그 다음에는 욕증원각 이미극원각자 보살야. 원각이 증득하고자 하되 원각증득이 다 이루어지지 아니한 분은 보살이다. 구족원각 이주지원각자 여래야. 원각을 다 갖추어가지고 원각에 머무르는 분은 여래다. 이 원각인건만은 똑같은 거에요.

 

종일동안 원각 속에 있으면서 원각을 모르는 건 범부고, 원각을 증득하려고는 해도 다 증득하지 못한 건 보살이고, 원각을 다 갖추어서 원각 속에 턱~ 머문다. 주지 원각이라. 원각에 주지하는건 여래라고 한다. 그러면 구족하고, 또 미극하고 다 하지 못했고, 또 모르고 이거는 인과에 대한 문제지. 불성에 대한 문제가 아니거든요. 그런 것을 강당에서는 그렇게 가르치고 다른게 필요 없는 거에요. 이 불교교육은. 신심. 불성과 인과를 믿기만 하면, 이건 뭐 불성을 깨달을려고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고. 닦으려고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거 빠지면 헛일이거든요.

 

그런데 요즘에는 아는 건 많은데, 신심이 부족하면 그게 참 이게 문제인거에요. 충청도 옛날 자랄 때 약빠른 고양이가 밤눈이 어둡다. 이랬거든요. 밤눈 어두운 고양이 못쓰는 거에요. 그렇잖아요. 모는게 밤에 움직이는데 밤에 꼼짝 못하면 고양이가 뭐하겠어요? 온갖 거 다 알아도 신심하나 없으며 소용없어요. 그래요. 그래서 인과를 이야기하는 것중에 제일 많이 말하는게 그겁니다. 欲知前生事今生受者是욕지전생사 금생수자시. 전생 일을 알고자 하느냐? 금생에 내가 받는 것이 전생이니라. 欲知來生事今生作者是욕지래생사. 내생사를 알고자 하느냐? 금생작자시라. 금생에 내가 짓는 것이 바로 그거다.

 

假使百千劫 所作業不亡 가사백천겁이라도 소작업불망. 백천겁이 지나가더라도 지은 업은 없어지지 아니해서 因緣會遇時 果報還自愛인연회우시에 인연이 만나는 때에 과보환자수니라. 과보를 스스로 받는다. 이런게 다 인과법문인데요. 천수경에 보면 또 뭔말이 있냐 하면 百劫積集罪一念頓蕩除백겁적집죄 일념돈탕제 如火焚枯草滅盡無有餘여화분고초 멸진무유여. 백겁동안 지은 죄를 일찰나에 한꺼번에 없앤다. 그것이 뭐와 같으냐 하면, 불로 마른 풀로 태울 때 멸진무유요. 남김없이 다 태우는 거와 같다. 마른 풀이 아무리 많이 쌓여도, 그거 불 하나만 대면 다 타지 남는게 없거든요. 금방 다 타버리잖아요. 그와 같다 그랬어요.

 

그러면 백천겁이라도 인과는 그냥 있다 그랬는데, 여기서는 백겁적집죄를 일찰나에 다 없애서, 마른 풀을 불로 한꺼번에 남김없이 다 태우는 것과 같다. 이 이치가 무슨 이치인가 이 말이지. 이것이 인과와 불성에 대한 이치입니다. 인과를 잘못짓는 건 어두움이에요. 불성은 밝은 거에요. 이 어두움이라는건 형체가 없는 거에요. 그래서 밝은 것만 나타나면 어떤 어두움도 남는게 없다. 이 소리에요. 그래서 罪無自性從心起죄무자성종심기라. 죄라는 건 마음에서 일어나는 거다. 心妄卽時罪亦妄심약멸시죄역망, 마음이 없어지면 죄도 또한 없다. 그 다음 뭐죠? 알죠?

 

죄도 없어지고 마음도 없어지는 것이 참회다. 이 참회라는게 불성참회. 불성을 잃어버리고 돌아다니다가 이제 불성으로 돌아온다 이거에요. 이것이 진정한 참회다 이 말이거든요. 모든 죄는 어두운거에요. 그런데 이 불성은 밝은 거에요. 그래서 어두운 것은 밝은 것만 나타나면 없어져요. 그러면 물질을 불성으로 보지 못하고 물질로 보는게 어두움이고, 저 하늘을 불성으로 보지 못하고 하늘로 보는게 어두움이고. 죽는 걸 불성으로 보지 못하고 죽는 걸로 보는게 어두움이고. 전부 색성향미촉법으로 느끼는 건 전부가 다 이게 어두움이에요.

 

그런데 불성하나라를 떡 깨닫고 보면 불성뿐이에요. 밝은 것뿐이지 어두운건 없다. 이 이치입니다. 이게. 밝은게 나타나면 어두운건 없는 거에요. 밝은 것 뿐이에요. 그래서 불성하나를 밝히면 불성뿐이지. 다른게 없어요. 중불용타라. 그 가운데 다른 걸 용납하지 않는다. 반야심경에도 공중에는 공이 반야바라밀 불성인데, 처음에 뭐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수상행식도 없고. 무안이비설신의, 안이비설신의도 없고. 색성향미촉법도 없다. 그런 거에요. 바로. 반야바라밀 뿐인 거에요. 이게 턱~ 놔야 불성인데. 깜깜하니 모르는 거에요. 이 몸뚱이가 내 불성인데 깜깜하니 모르는 거에요. 그게 미혹한 거고 그게 망상입니다.

 

그래서 좋은 업은 짓지 않고 지옥가면 어떻게 하나? 이런 걱정하고 있어요. 그것참. 내세 받는 건 금생에 짓는 건데. 금생에 짓는 대로 받는데, 왜 걱정하냐 이 말이오. 내가 어디를 가는데, 내가 가고 싶은 대로 가는데, 내가 어디로 갈거냐고 물어요. 전부 다른데 가서 묻습니다. 언제 부자 되겠냐고. 부자 될 짓을 하면 부자되는 건데, 어기 가 묻냐 이 말이오. 그것 참 기가 막힌거 아니에요. 그래서 조주스님한테 어떤 사람이 찾아갔어요. 대 선지식도 지옥에 갑니까? 선지식 지옥 가는게 좋은 모양이오. 그러니까 그랬겠죠. 대 선지식도 지옥에 갑니까? 그러니까 조주스님이 내가 제일 먼저 간다. 그랬거든.

 

대선지식께서 왜 지옥에 갑니까? 내가 지옥에 가지 아니하면 어찌하여 자네를 만날 수가 있겠는가? 그렇게 대답을 했거든. 그것 참 기가 막힌 법문 아니에요? 내가 제일 먼저가지. 대선지식이 어떻게 지옥가? 내가 지옥안가면 어떻게 자네를 만날 수가 있느냐 이 말이오. 선지식이라는 건 묘각인데, 높은 자리에 가만히 구름처럼 앉아 있는거 아닙니다. 지옥도 가고, 짐승도 되고, 풀도 되고, 나무도 되고, 돌도 되는. 이게 묘각이라 이 말이오. 그래서 모르는 사람은 도가 높으면 대단하게 떵떵 거리는 줄 아는데 천만의 말씀이오. 그거는 아니에요. 그거는 등각밖에 안되는 거에요. 진짜 도는 묘각인데, 묘각은 온갖 거 안하는 것이 없는게 그게 묘각이에요. 그게 도에요.

 

그러니까 전부 중생이 미혹해서 잘 몰라 그래요. 도인되면 뭐 대단히 좋은거 할려고 어디 시험봐가지고 합격하고 그런거 벼슬하는게 도인인줄 알아요. 그게 아니에요. 묘각도가 가장 높은도데, 묘각도는 그게 일체것이 안되는게 없어요. 화광동진이라. 화광, 화기광, 중생의 빛과 다 하나가 되고, 티끌과 하나가 되는 거에요. 화광동진화광동진의 도가 그게 묘각입니다. 화광동진은 도덕경에 있는 말인데 얘기하면 그래요. 그래서 이런 인과라고 하는 것도 육도인과가 있는데, 육도 인과는 선과인과에요.

 

선을 지어서 좋은데 가고, 나쁜거 지어서 나쁜데 가고, 또 이승인과가 있는데, 이승인과는 생사를 벗어나서 열반에 들어가는게 이승인과죠. 삼승인과가 있는데 삼승인과는 선인후과, 먼저 인을 닦아서 뒤에 결과를 받는게 이게 삼승인과인데. 일승을 법계승이라 그러는데 이 법계일승에는 이게 선인후과가 아니고 인과교철입니다. 인과가 교철해요. 인 속에서 바로 과를 이루고 과 속에서 바로 인을 이루는게 이게 인과교철이라 그래요. 이걸 원융이라 그럽니다. 원융이라고 하는 것은 교철을 말한다. 서로 사뭇치는게 될 때, 이게 원융이 되요. 이게 원융인과와 교철인과가 이게 교철인데.

 

일승도라 하는 것은 지금 여기서 법문 잘 들으면 고대로 성불하는 거에요. 이 자리 떠나지 않고 ,그게 인과교철이에요. 그래서 몇백 만년 뒤에 성불해서 딱 보더라도, 지금 그 법문들은게 고대로 있다 이 말이죠. 이것이 일념즉시 무량겁이다. 일찰나가 바로 무량겁이다. 이것이 원융인과 교철인과다. 그래가지고 이 화엄경에서는 그런 법문인데 심심작불. 마음마음이 부처가 된다. 무일심이비불심. 한 마음도 부처님 마음 아닌게 없다. 처처성도. 곳곳에서 도를 이룬다.

 

무일진이비불국. 한 티끌도 부처님 나라 아닌 것도 없다. 그래서 이렇게 신심을 갖는 것이 그것이 대승불교의 아주 최고가는 신심입니다. 잠오십니까? 잠오는 것도 당연한 거에요. 그게 다 우리 자작자수에요. 왜그러냐하면 도의 인연을 많이 못지었기 때문에, 도의 얘기를 들으면 재미가 없고, 재미가 없으니까 잠이 올 수밖에 더 있어요. 그런데 여기 법문 듣겠다고 찾아온걸 보면 또 그게 인연이 보통 인연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이 법문 들은 이 인연으로 다 성불하는 것이 그것이 부처님 법이에요. 제가 60년대 말쯤 됐는데 그때 어느 노광주스님을 만났는데요. 그 분이 그때 새파란 사람을 보고 법문하기를 사불견을 얘기하는데 어불견수. 고기는 물을 못본다. 인불견풍. 사람은 바람을 못본다. 미불견성. 미한 사람은 성품을 못본다. 오불견공. 깨달은 사람은 허공을 못본다. 이 법문을 해주셔요. 나중에 원각경보니까 서에 있는데 다른 건 다 넘어가겠는데 오불견공이라. 깨달은 사람은 허공을 못본다. ~ 이게 도대체가 뭔소리인지 모르겠다란 말이에요. 깨달은 사람은 허공을 못본다.

 

그래서 이상하다. 그런데 이게요. 일체유심조라 그랬잖아요. 저 허공이 내 마음인거에요. 그러니까 마음 불성을 딱 깨달으면 불성뿐 인거에요. 그런데 미해가지고는 저게 무슨 물건인고? 전현 모르는 거에요. 그러니까 어린 아이가 부모를 떠나서 있으면 어머니아버지 얼굴 까맣히 모르듯이, 우리가 자기 불성을 오랫동안 떠나 있기 때문에, 미해있기 때문에, 쳐다봐도 모르는 거에요. 능엄경을 보면 그런 말이 있어요. 정극광통달. 청정함이 지극한 경지에 들어가면 빛이 확 통해버려요. 이걸 통달이라 그래요. 광통달.

 

그래서 불교의 수행이라 하는 것은 뭘 만들어 내고 알아내는게 아니라, 마음을 청정하게 만드는게 이게 수행입니다. 이게 청정함이 지극하면 정극하면, 광통달이라. 빛이 통해져 버려요. 그걸 깨달음이라 그래요. 그러니까 맑아지면 통하는 거에요. 이게 정극광통이에요. 정이 극하면 광이 통한다. 빛이 통한다. 맑아지면 통해요. 그 나는 왜 못 깨닫는고? 딴 사람한테 물어요. 나는 왜 못 깨닫느냐고. 마음이 맑아지면 정이 극하면 광이 통하는데, 온갖 생각으로 어둡게 만들어 놓고 나는 왜 못 깨닫느냐고. 그것 참, 세상에.

 

정극광통달이 되면 어떻게 되느냐? 적조함허공. 고용히 비치는 마음이 허공을 다 먹어버려요. 그러니까 허공을 불성이 다 먹어버렸는데, 어찌 마음 떠나서 허공이 따로 있어요. 그러니까 오불견공이오. 그래서 깨달은 사람은 허공이 없는 거에요. 허공이 없어요. 적조함허공. 능엄경 제6권에 있는 법문이에요. 적조가 허공을 다 먹어버렸다 이 말이오. 그러니 허공이 어디 자기 떠나서 허공이 따로 있어요. 불교라는게 이런 겁니다. 그래가지고 그런 상태에서 각래관세간하니 그래서 세간을 떡 보니. 유여몽중사라. 마치 꿈속에서 일어나는 일과 같다. 이게 깨친 경지에요. 유여몽중사, 도인의 군상에서는 중생의 세간사가 다 몽중과 같다. 이 말씀이거든요.

 

그러니까 오로지 신심인데. 이 신심은 뭐냐? 나는 불성이다. 불성은 청정하다 이 말이죠. 그런데 왜 더되고 덜된 사람이 있느냐? 그거는 자작자수다. 이거죠. 자기가 지어서 자기가 받는 거다. 인과다. 이거에요. 그러니까 불자들이 많은 법문 듣는데, 이 불성을 믿고 인과를 딱 믿는 것이 그것이 불자의 아주 생명입니다. 오늘 법문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