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 즉문즉설 1122회] 제가 사춘기 인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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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즉문즉설(2015)

2015. 10. 2.

 

 

 

누구 영향 같아? 엄마가 매사 부정적이야? 너희 엄마가 매사에 부정적인 거 같아? 아빠가 부정적인 거 같아? 부전자전이구나. 그 아버지에 그자식이니까 괜찮다. 효자다. 아빠를 닮았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비판적이라고 다 나쁜 거는 아니야. 다 나쁜 건 아니야. 사춘기의 특징은 뭐냐 하면 어릴 때는 요거 만지지 마라. 엄마가 얘기하면 . 알았어요.” 하고 안만지는 거예요. 따라 배우기에요. 그런데 사춘기가 되면, 사춘기라는 거는 학년으로 말 할 수 없고, 자기가 어떤 결정을 하려는 자립을 해가는 첫 출발인데, 요거 만지지 마라 하면 .” 안 그러고. “.” 그래놓고도 엄마가 외출하면 가서 살짝 만져보는 거요.

 

그리고 뜨거우면 , 엄마 말이 맞네.” 이렇게 확인이 되고, 안 뜨거우면, “거짓말.” 이렇게 해서, 자기 나름대로 갈라서는 거요. 엄마하고. 이렇게 갈라서 가는 거요. 그러니까 그런 과정이기 때문에 그런 거는 지극히 정상적인데, 그런데 아까 이거는 정상적이지 않아요. 예를 들어서 스님이 이거해라. 하면 자기가 볼 때 왜 그거 해야 되요? 이렇게 물어볼 수는 있어요. 옛날 같으면 .” 하고 해도 되고, “왜 그거 해야 되요?” 이렇게 물어보고, “이래이래서 해야 된다하면 자기 의견이 있으면 말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날 미워하나봐.” 이거는 조금 오버한 거요. 그런 생각은 부정적인 시각이라고 그래. 그러니까 미리 사물을 부정적으로 보는 거요. 그거는 안 돼요. 그러니까 어떤 일을 보고, “, 저건 뭔가 뒤에 뭐가 있을 거야.” 이렇게 생각하는 건 괜찮아요. 그건 궁금함이기 때문에. 실지로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미워하는 거야.” 이런 거는 부정, 뭐든지 얘기하면 저 사람은 저거 또 나쁜 의도로 말할 거야.” 이렇게 생각하는 거는, 선악관이 개입이 되면, 그건 부정적인 생각이라고 보시면 되요. 자기가 판단을 할 때.

 

예를 들면 MBC를 보면서 저건 뒤에 뭐가 있을 거야. 이렇게 생각했는데, 저건 뒤에 나쁜 의도가 있을 거야. 이러면 자기가 사물을 부정적으로 보는 거요. 그런데 저거 뒤에는 뭔가 다른 어떤 이유가 있을 거야. 내가 지금 모르지만은. 어떤 다른 이유가 있을 거야. 하고 그럴 궁금해 하는 거는 아무런 나쁜 게 아니에요. 뭐든지 궁금해 하는 건 아주 좋은 현상이에요. 그런데 그게 또 물어보고. 이건 아주 좋은데, 미워해서 그럴 거야. 이건 부정적인 의식이에요. 나쁜 의도가 있을 거야. 이것도 부정적인 의식이야.

 

부정적인 의식을 갖게 되면, 첫째 사람을 불신하게 되고, 나중에 자꾸 불만이 쌓이게 되요. 결과가 좀 나빠져요. 자기가 지금 비판의식도 있고, 부정적인 의식도 있고, 두 개가 뒤섞여 있거든요. 두 개 다 고치라고 하지 말고, 이렇게 비판의식이나 궁금해 하는 거는 살려나가고, 그걸 갖다가 어떤 선악관에 의해서 나쁜 의도로 자꾸 사람을 보는 거는 그거는 조금 개선하면 좋지.

 

그런데 요즘 학부형이나, 또는 선생님들이 우리 반 아이들이 벌써 5학년인데, 사춘기인지 몰라요.” 라든지, “우리 아이가 사춘기인가 봐요.” 이렇게 얘기하거든요. 그럴 때 사춘기가 뭔지 알아요? 우선 예를 들면 아이 육신에 발기를 한다든지, 여자애 같으면 맨스를 한다든지, 육체적인 어떤 증상이나 성징, 2차 성징이 나타나면 일단은 성인으로서, 아이에서 성인으로서 옮겨가는 시기거든요. 그러니까 아이가 있고, 성인이 있고, 그 사이에 뭐다? 아이에서 성인으로 옮겨가는 시기를 뭐라고 한다? 사춘기다. 이렇게 말해요.

 

그럴 때 의식이 요거는 따라 배우기. 시킨 데로 하다가, 요기는 자기가 알아서 하는데, 요 사이에 의식이 어떠냐하면 자기 확인 작업이 필요해요. 자기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그러니까 여기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거요. 일부 따라도 하기도 하고, 일부 지 맘대로 하기도 하고. 이러면서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어떤 거는 말 듣는데 좋고, 어떤 거는 자기가 하는 게 좋고, 이렇게 해서 엄마 말을 앞으로 성인이 되면, 엄마 말을 듣는 게 아니라, 엄마 말을 참고해서 내가 그렇게 결정하는 거요.

 

그러면 엄마 말을 안 듣는 게 아니고, 거부하는 게 아니라, 내가 판단해서 아닌 거는 아니라고 보는 거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자식이 말을 안 듣는다. 이렇게 평가하면 안 돼요. 아이의 얘기를 들어보고, 합당하면 , 오케이.” 그렇게 할 수도 있겠다. 엄마 생각하고 달라도. 이렇게 나가야 되요. 그래야 아이가 사고의 자립을 할 수 있는 거요. 그런데 무조건 우리아이가 사춘기인가 봐요.” 그럼 내가 말 안 듣는구나.” 이렇게. 자기 말 안 들으면 뭐라고 한다? 사춘기라고 그래.^^ 말 안 들으면 그냥 사춘기라고 그래. 그건 잘못된 생각이에요.

 

그러니까 육체의 변화에 걸맞게 의식도 변해간다. 그럴 때 부모나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해줘야 될 것은 지켜봐줘야 되요. 일일이 다 가르치면 안 되고, 큰 울타리만 쳐놓고, 어지간하면 이렇게 엎어지고 자빠지는 걸 좀 봐내야 되요. 그런데 어머니가 그게 잘 안 돼요. 학교 선생님도. 그럼 그 아이는 거기서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어른으로 성장해가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이때 아이들 지켜봐주는 힘이 있어야 되는데, 지나치게 간섭해버리면, 자립할 기회를 놓쳐버리고. 그래서 마마보이가 되고. 너무 여기서 방치해버리면 어긋날 소지가 있어요.

 

그래서 큰 울타리만 치고, 멀리서 지켜보면서 가능하면 간섭을 안해야 되요. 물어보면 조언은 해주되. 그래도 딱~ 답을 주지 말고,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항상 먼저 물어보고. 먼저 물어보고 얘기를 들어보고, 큰 어긋나지 않으면 그래. 네 생각대로 한번 해봐라. 이렇게 해줘야 돼. 그래야 잘못한 거에 대해서 자기반성이 있거든요. 엄마가 이래라. 하면 잘못하면 책임이 누구한테 있다? 엄마한테 있는 거요. 그래서 뭐라고 그러면 뭐라고 그래요? 엄마가 그랬잖아. 이렇게 책임전가를 하거든요. 그래서 어른이 안 되는 거요.

 

그래서 옛날에는 사춘기 아이의 문제라는 건 없어요. 왜냐하면 15살에 신체가 성인으로서의 징후가 나타날 때 모든 사회가 그 사람에게 뭐를 대우해버린다? 성인으로 대우하고 결혼을 시켜버리기 때문에, 이 사춘기의 방황이라는 게 있을 수가 없어요. 지금은 이건 사회제도 때문에 오는 문제요. 그런데 사람은 왜 자기가 살아오면서 자기가 겪으면서 자기 초등학교 시절, 중학교시절, 고등학교 시절, 그리고 그때 친구들이 방황하던 거, 이런 거 다보면. 이 아버지들도, 선생님들도 그 아이들을 그렇게 이해하고 다뤄야 되는데, 이게 문제에요.

 

전혀 개구리 올챙잇적 시절을 모르고 대하거든요. 특히 우리나라의 선생님들은 대부분 학교 다닐 때 착실한 사람이 선생님이 되기 때문에, 약간의 문제아에 대한 교화력이 전혀 없습니다. 애들이 담배피우고, 무슨 책이나 비디오나 소설 같은 이상한 거 보고, 애들이 술 먹고 이런 거에 대해서 전혀 교화력이 없어요. 그러나 우리가 보면 그러한 시기를 아이들이 방황하면서 겪어나가니까, 방치해도 안 되고, 무조건 처벌해도 안 된다.

 

그러니까 그것을 첫째 넓은 의미에서 이해하되, 이 시기에 아이들의 그러한 성적 호기심 이런 거 다 인정하되, 그러나 이 시기에서 어떤 것이 더 중요하냐? 즉 자기의 욕망을 일정하게 컨트롤 할 수 있음으로 해서 이 에너지를, 이 에너지를 장래의 도움이 되는 쪽으로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잘 안내를 해야지, 그걸 무조건 부정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다른 출구를 찾게 되고, 그래서 통제가 안 되고, 이런 일이 생기잖아요. 그래서 좀 부모가 자기에게 맞는 아이를 만들려고 하지마세요.

 

일단 이 세상에 태어나면 하나의 생명이고, 내 의도와 전혀 다르게 자란다 하더라도, 하나의 생명으로, 하나의 존재로 존중해주면서 그러나 같이 하는 사회에서의 패가 되는 몇 가지 행위는 엄격하게 다뤄서 조정해주고, 나머지는 가능하면 자기의 성향대로 자라도록. 그런데 그걸 너무 과잉보호해놓고, 크면 어떻게 한다? “너 좋아하는 게 뭐니?” “너 알아서 해라.” “너 좋은 대로 해라니까, 자기가 뭐가 좋아하는지도 모르겠고, 뭘 알아서 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더 새로운 방황을 하게 만든다는 거요.

 

그래서 부모가 자식에 대한 사랑은 뭘 먹이고, 어디 대학 보내고, 공부를 얼마 시키고가 아니라, 아이가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성정해가는 것이 부모가 자식에 대한 최고의 사랑이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을 한 인간으로 존중해 주는 자세가 굉장히 필요하고, 나와 다르고, 다른 특별한 호기심이 있으면 아이를 조금 관찰하면서, 역시 세상에 특출한 사람도 어릴 때 늘, 이게 정상적인 사회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또는 다른 방향으로 증상을 드러냈어요. 그래서 세상에서 왕따 당하고, 이런 경우가 많잖아요.

 

제가 만약에 고등학교 1학년 때 절에 들어왔다 하면 이것도 그 당시에서 굉장히 특이한 현상이지 않습니까? 그죠? 그래서 그게 이해되기가 받기가 굉장히 어려웠어요. 그런데 우리 어머니가 마침 무학이니까, 아이에게 좋다니까 우리 스님이 어머니가 와서 항의하니까, 얘는 밖에 있으면 단명한다. 이렇게 딱~ 얘기해버리니까, 우리 어머니가 그냥 스님 아들하세요 하고 가버렸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그게 엄마의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아무리 내 아이를 보고 싶지만, 이 아이가 여기 있는 게 더 좋다면, 나는 아무리 가슴이 아파도 아이를 위해서 자기를 희생해야 되거든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그렇지 않잖아요. 여기 있는 엄마를 내가 만났으면 이 길을 갈 수가 없었을 거예요. 난리가 났지. 그런데 여러분들은 자기를 생각하지, 아이를 먼저 생각 안 해요. 아이를 생각한다는 그게 사실은 자기 욕망이에요. 그래서 항상 여러분들의 뜻에 맞지 않더라도 아이를 유심히 관찰하고, 아이 상태를 체크해가면서, 아이 하자는 대로 하라는 게 아니라, 그걸 감안해가면서 항상 인생의 길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거. 이런 거를 염두에 두시고, 혹시 신체장애 같은 게 있거나, 지적장애가 있을 때 엄마가 완치시킨다고 데리고 다녀서 아이에게 열등의식을 심어주거든요.

 

만약에 정상아이 80%라면 80%를 가지고도 너는 행복할 수 있다. 더 이상 욕심을 부리면 안 돼요. 그래야 아이가 정신적으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자꾸 정상의 기준을 두어버리면 아이는 자기가 열등하다는데 위축감을 느끼잖아요. 그래서 그게 사랑이 아니고 엄마의 욕심이라는 거. 외국 같은데서 잘 보세요. 우리가 장애가 있거나 이래도 엄마가 그것을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그대로 존중해줄 때, 그 아이가 온전하게 성장해 간다는 거. 뭐 이런 것 좀 생각하면서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재미있었어요? . 인생이라는 건 이렇게 여러 가지 고뇌의 얘기도 우리가 하다보면 그 속에서 좋은 교훈이 있고 재미도 있고 그래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의 인생은 좀 더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행복은 주어지는 게 아니에요. 내가 행복을 만들어나가는 거지. 그러니까 지금 여기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