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 즉문즉설 1143회] 염불수행에 관심이 많은데 어떻게 하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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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즉문즉설(2015)

2015. 12. 14.

 

 

 

, 염이 뭐요? 생각한다는 거 아니오. 불은 부처를 생각한다 이 말이지. 오매불망 누구만 생각한다? 부처만 생각한다. 돈 생각하고, 여자 생각하고, 술 생각하고, 담배 생각하고, 지위 생각하고, 출세 생각하고, 이게 아니라, 오직 뭐만 생각한다? 부처님만 생각한다. 이게 염불이오. 그런데 입으로는 부처를 부르고, 귀로도 부처님 소리를 듣고, 생각도 부처님을 생각하고 이런 게 염불이오.

 

그러니까 입으로 부처님 부르면서 자기는 술 생각하고, 돈 생각하고, 이러면 염불 아니오. 그러니까 염불의 원리, 념은 깨어있다는 거요. 우리가 정념 할 때, 호흡에 깨어있다. 호흡을 알아차린다. 안 그러면 화두가 성성하다. 이게 다 염이거든요. 그러니까 부처님에 대해서, 머리가 또렷이 깨어있다. 이게 염이에요. 그러니까 그럴 때는 부처를 부르면서, 부처를 부르면 부처에 깨어있기가 조금 더 쉽지.

 

그러니까 입으로는 부처를 부르고, 귀로는 그 소리를 듣고, 생각으로는 부처님을 염하는 것, 이게 염불이오. 그러니까 딴 데는 신경 쓸 여가가 없어. 거기에 깨어있으니까. 누가 온다고 하면, “그런가하고 염불하고 있고, 간다 하면 그래.” 하고 염불하고 있고, 월급주면 고맙습니다.”하고 염불하고 있고, 가져가면 고맙습니다.” 하고 염불하고 이래야 돼. 그래서 염불사에 대표적인 얘기가 있어.

 

어떤 고을에 부잣집이 하나있고, 주위에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그 뒷산에 절이 하나 있었어. 그런데 그 스님이 염불하는 사람이오. 주야로 염불을 해. 그러니까 앉으나 서나 뭘 부른다? 그 분은 관음정근을 했어. 관세음보살을 불렀어. 그래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는데, 그런데 그 부잣집 아저씨하고 아줌마. 그러니까 영감하고 마나님이 이 절에 실질적인 거의 주도하는, 우리말로 하면 신도회장 같은 분이오.

 

다 절 짓고, 뭐하고 이런 거 전부 뒷바라지하는 거요. 동네사람도 물론가지만 이 집이 부자고 하니까, 주도해서 그 스님을 뒤에서 옹호하는 거요. 그래서 스님도 또 이 집에 대해서 잘 어려운 일 있으면 상담도 해주고, 이 스님, 특별히 말이 없어. 주로 가면 염불만 하고 이렇게 계시는데. 그런데 이 집 딸이 하나 있었는데, 외동딸인데, 어느 날, 그 당시 옛날에, 조선시대에 애를 가진 거요. 결혼도 안했는데. 그래서 부모가 난리가 났어.

누구 애냐고 추궁을 하고 이러니까, 애가 말을 못해. 그래서 추궁을 하니까 얘가 하는 얘기가 뒤에 큰스님이다.” 이러는 거요. 부모가 어떻겠어? 마음이? 가서 완전히 배신감이 굉장하겠죠? 실망감이. 그러나 평소에 너무너무 존경해놓으니까 보통사람처럼 하기도 어려워. 그 만큼 존경했다는 거요. 화는 나고, 그래서 애기를 안고 가서 당신 애 가져가시오.” 큰 스님한테 갓난아기를 내밀었어. 그러니까 큰 스님이 관세음보살하고 받아서 가는 거요.

 

그래놓고 몇 년간 아예 절에 발을 끊어버렸어. 끊을 만 하겠지? 큰 스님 아무 얘기 안하는 거요. 미안하다 소리도 안하고 변명도 안하고 그냥 관세음보살하고 끝나버렸어. 그래서 3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고 애는 크고 이러는데, 딸이 고백을 했어. 사실은 큰 스님이 아니고, 우리 집 머슴이었던 거요. 그 당시에는 머슴하고 연애를 해서 이렇게 얘기를 하면 그 자리에서 머슴을 죽여 버립니다. 계급이 높은 쪽하고 상놈이 양반하고, 양반여자하고 이러면, 쉽게 얘기하면 성폭행하거나 이러면 말할 것도 없고, 이렇게 서로 연애를 해도 죽여 버립니다. 그대로 패 죽여 버려요.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라 외국에도 그래요. 미국 같은데서 흑인 노예하고 이런 관계있으면 그냥 죽여 버려요. 그러니까 자기 애인을 죽일 수도 없고, 그러니까 누구한테다가? 자기가 생각해보니까 위기를 모면하는 건 누구 핑계 대는 수밖에 없다? 뒤에 스님 핑계 대는 수밖에 없어서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요. 얘기를 들으니까, 그 부모가 스님에 대해서 얼마나 미안하겠어. 얼굴도 들 수가 없는 거요. 그래 가서 애기 데려가겠습니다.” 그러니까 나무관세음보살하고 끝났어.

 

나 같았으면 어땠을까? 난리가 났겠지? “이것들이 정신 똑바로 차리고 해라.” 이러면서 난리가 났을 텐데. 그게 염불, 그러니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런 건 생각 안하는 거요. 오직 누구만 생각한다? 부처님만 생각한다. 그러니까 화두를 들 때도 그래. 오직 그 화두에만 몰두 되어있지, 온다 해도 화두에, 간다 해도 화두에, 그래서 그거는 화두를 드나, 염불을 하나, 주력을 하나 이거는 근본적으로는 이치가 같아. 염불하고 싶으면 그렇게 염불을 해야 돼.

 

입으로만 부처님을 부르고, 생각은 콩밭에 가있고, 그러면 안 되고, 염불에 대해서 물으니까. 그게 목표야. 그런데 현실은 그렇게 되나? 안 되나? 안 돼. 그러나 그 목표를 향해서 안 되는 현실에서 한발 한발 내가 적어도 염불한다. 하면 그저 염불. 그래서 중국에서 영화 가끔 보면, 어디 절이 불탔습니다.” 뭐한다고 조실스님한테 가면, 소림사 조실이 어떻더나? 턱 이러고 앉아서, “아미타불이러잖아.

 

또 뭐 좋은 일이 생겼다고 뭐라고 뭐라고 얘기해도 아미타불이러지 딴 얘기 안하잖아. 그게 염불이오. 아미타불 염불. 우리는 아직 그 수준 안 됐지. 그러나 그것을 목표로 해서 우리가 나아간다. 그러니까 딱 염불만 해야지, 이런 저런 얘기들. 그러면 우리가 염불한다고 딴 생각 안 드나? 안 드는 거 아니야. 들어. 그러나 들면 내려놓고, 또 염불로 돌아가고, 염불로 돌아가고. 또 염불하는 중에도 누가 뭐라고 그러면 성질이 나지만, “아차, 내가 도 염불을 놓쳤구나.” 내가 또 염불을 하고 염불을 하고 이렇게 하면 되겠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