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 즉문즉설 1145회]명상은 왜 하는지, 하면 무엇을 얻는지 궁금합니다.

댓글 0

법륜스님/즉문즉설(2015)

2015. 12. 21.

 

 

명상을 하면 얻는 것 아무것도 없어. 으흠. 얻을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한다. 굳이 말한다면 그렇게 말할 수 없지. 눈 감고 있으면 망념이 일어나는 게 정상이야. 망념이 일어나는 게 정상이야. 그러니까 호흡에 집중하기로 했으면 망념이 일어나는데도 호흡에만 집중하면 되는 거지, 뭘 얻는 것도 아니고, 뭘 찾는 것도 아니고, 그런 거요.

 

계속 잡념 올라와. 10분 아니라 30분 아니라, 3천 시간을 해도 올라와.

 

잡념이 있고 없고 하고 수행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어. 잡념이 일어날 만 해서 자기가 일어나라고 일어나나? 저절로 일어나나? 저절로 일어나는 걸, 지가 어떻게 할 건데? 일어나다가 일어나다가 지치면 꺼질 거고, 그래도 아직 남아 있으면 계속 일어날 거고 이러지. 그거 하고 수행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어. 내 할 일만 하면 되는 거지. 잡념이 없는 게 수행이 아니오. 잡념하고 수행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어. 눈을 감으면 잡념이 일어나는 게 우리의 뇌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어.

 

여러분들, 눈 감고 잠들면 꿈이 일어나요? 안 일어나요? 일어나요. 그건 자동으로 일어나. 다시 말하면 생방송이 꺼지면 녹화방송이 자동으로 일어나는 거와 똑같아. 눈을 뜨고 있으면 생방송이 진행이 되고, 눈 감으면 녹화방송이 진행이 되는 거요. 그게 잡념이오. 잡념 떠오르는 게 정상인데. 모든 인간의 뇌 구조가 이렇게 되어 있는데. 가만 앉아있는데 잡념이 안 떠오른다. 그거는 뭐, 돌멩이든지 그러겠지.

 

당연히 떠오르지. 잡념은 떠오르는데, 스님도 밥 안 먹으면 배고프냐? 이거 묻는 거 하고 똑같은 거요. 그런데 자기는 밥 안 먹고 배고프면 3일만 배고프면 죽겠다, 살겠다, 죽을지도 모른다.” 이러지만, 스님은 밥 안 먹으면 배는 고프지만, 밥 안 먹는다고 두렵다든지, 죽을 거 같다든지, 이러지는 않아. “배고프구나.” 안 먹으면 배고프지 당연하지. 먹고 싶은 거, 먹고 싶지. 먹고 싶으면 먹고 싶다고 다 먹는 것도 아니잖아.

 

안 먹기로 했으니까 먹고 싶어도 안 먹는 거고, 배가 고파도 안 먹는 거고 그런 거지. 그러니까 눈을 감으면 망념이 떠오르는 거는 당연한 거야. 그럼 망념이 떠오르는 가운데도, 내가 호흡에 집중한다면 호흡에 집중하고, 화두에 집중한다면 화두에 집중하고, 염불에 집중한다면 염불에 집중할 뿐이지.

여러분들 보면 공부를 좀 이상하게 생각하고 하는 거 같아. “자기를 본다?” 자기가 뭔데 자기를 봐? “망념을 본다.” 이러면 말이 되지, 망념이 떠오르니까. 망념을 본다. 이런 말이 있을 수 있지. 망념은 뭐, 보는 거 훈련해야 망념이 보일까? 저절로 보일까? 눈만 감으면 저절로 보여. 처음엔 잘 안 보여. 좀 있어야 보여. 이 방에도 마찬가지야. 깜깜하면 안 보여. 그런데 여기 햇살이 구멍으로 쪽 들어오면 방에 먼지가 있어요? 없어요? 있지. 그 먼지 보인다고 쓸면 먼지가 가라앉나? 계속 더 하나? 계속 더하지.

 

내가 망념이 많이 일어나구나 한다는 거는 자기가 그 만큼 맑아졌다는 거요. 망념을 알아차린다는 거요. 지금도 망념이 똑같이 일어나도 자기가 못 알아차리는 거죠. 정신을 팔고 있어서. 조용히 있으니까 , 망념이 있구나.” 하는 걸 아는 거지. 망념은 여러분이 있어라 해도 있고, 없어라 해도 있고 항상 있어. 그런데 여러분들이 딴 데 정신이 몰두되어서 갑자기 교통사고 나서 애를 업고 병원에 뛰고 이러면 망념이 느껴지나? 안 느껴지나? 안 느껴지지. ?

 

망념은 있지만 자기 집중력이 있기 때문에 그건 있는지 없는지 신경도 안 쓰이듯이, 자기가 호흡이 딱 집중하면 망념이 있든지 말든지 그건 별로 중요 안 해. 자기가 망념에 대해서 자꾸 신경을 쓰면 그만큼 한가한 거요. 호흡에 집중을 못하니까 그걸 갖고 자꾸 시비하는 거지. 여러분들도 번뇌라는 게 한가할 때 생겨요? 바쁠 때 생겨요? 그래. 눈 감고 가만있는 거 보다 더 한가한 게 어디 있노? 가서 1주일 있으면 더 생기지. 미치도록 생기지 뭐. 한꺼번에 막 몰려오지. 생시인지 꿈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막 생기지.

 

그러면 왜 하느냐? 이렇게 묻지. 그런 가운데도 화두를 잡으면 화두에 성성해야 되고, 호흡을 관찰하면 호흡에 성성해야 되는 거지. 그런 가운데도.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고, 운전하고 똑같아. 저 사람이 운전을 차선을 바꾸어서 들어옵니다. 신호를 안 지킵니다. 저 자식 보세요. 옆에서 또 끼어들어옵니다. 이러면 얘기하면 운전 못하지 성질나서 죽지.

 

그러니까 다 가도록 규칙이 정해져 있지만 현실 속에서는 이 놈도 들어오고, 저 놈도 들어오고, 갑자기 급브레이크 하는 놈도 있고 그런 거야. 그런 거 속에 자기가 운전을 해야 잘하는 거지. 아무도 없는데서 자기 혼자 운전하는 거야 나도 하겠다. 운동장에서 하라면 나도 한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온갖 일이 벌어지는 가운데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그걸 내가 구해 받지 않는 게 해탈이야.

 

그러니까 바다에 가서 배를 타고 가면서 풍랑도 일지 말고, 바람도 불지 말고, 파도도 치지마라. 이게 해탈이 아니고, 바람이 불려면 불어라. 풍랑이 치려면 쳐라. 파도가 일려면 일어라. 나는 구애받지 않는다. 즉 좋은 배를 나는 마련해 놨고, 좋은 항해술을 나는 이미 습득했기에. 까짓 거 그 정도는 문제없다. 이게 자유해탈이다. 이런 얘기야. 망념이 일려면 일어나. 일부러 일으킬 것도 없고, 일부러 죽일 것도 없고, 그건 네 알아서 해라.

 

파도를 일부러 일으킬 것도 없고, 일어나는 파도를 일어나지 말라고 빌 것도 없고, 파도가 일면 파도를 이용해서 파도를 타면 되고, 파도가 안 일면 조용히 즐기면 되고. 즉 그게 인생이다. 수행의 목적은 그런데 있는 거지, 파가 안 이는 게 수행이다. 이런 게 아니야. 세상에 나가봐서 살아봐라. 그렇게 착해 보이고, 나만 사랑하는 거 같은 남자하고 살아도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고, 내가 낳아서 내 맘대로 키운 애도 내 말 안 듣는데, 어떻게 이 세상이 내 머리대로 되겠어? 내 생각대로 되겠어?

 

그러니까 내가 옷이 두둑이 준비되어있으니, 추우려면 춥고, 따뜻하려면 따뜻해라. 따뜻하면 껍데기 한 벌 벗고 다니면 되고, 추우면 하나 껴입고 다니면 되고. 날씨에 구애받지 않는 게 자유다. 이거야. 그러니까 예수님 같으면 죽인다. 그래도 구애받았어? 안 받았어? 안 받았지?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데도 뭐라고 그랬다? “주여, 저 들을 용서하소서.” 죽음에도 별로 구애를 안 받는다. 이런 얘기야. 내 갈길 가지, 죽는다 해도 뭐,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런 얘기요. 그거하고 일부러 자살하는 거 하곤 틀려.

 

그러니까 명상이라고 하는 거는 그렇게 망념이 일고 안 일고, 망념이 이는 건 정상이다. 이 얘기요. 망념이 구애받지 않는다. 자기는 망념에 구애를 받는 거요. 옆에 차온다고 지금 시비하고 있는 거요. 어이하면 저 옆에 차들이 차선 안 끼어듭니까? 이런 얘기야. 그런 거를 감안해서 자기 할 일을 하는 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