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문즉설_법륜스님***제57편 불생불사, 생사고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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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즉문즉설(정토회)

2011.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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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 세상에 사물을 보면 모든 사물은 다 생겨났다가 사라지죠. 그렇습니까? . 생겨났다가 사라진다. 이것을 뭐라 그러냐 하면 생멸이라 그래요. 생멸. 생긴 것은 다 사라지게 된다. 이럴 때 어떻게 해서 생겼느냐? 어디에서 시작이 됐느냐? 여기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의견이 있죠. 그 가운데 하나가 창조설이오. 하나님이 창조했다. 그러면 사라지게 되면 멸하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여기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 중에 하나가 종말론이오. 죄를 지은 자는 영원히 지옥의 불구덩이에, 선한 자는 영원히 천국에 간다.

 

그럼 불교에서는 어떻게 보느냐? 불교에서는 눈을 감고 보면 생기고 사라지는게 있는데, 눈을 뜨고 보면 생기지도 안하고 사라지지도 않는다. 이렇게 말해. 눈을 감고 본다. 이게 범부중생이오. 어리석은 자가 보면 생기고 사라지고, 깨닫고 보면 사실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말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이게 무슨 말이다? 불생불멸이다. 이렇게 말하는 거요.

 

얼음을 놔뒀는데 녹아서 없어지죠. 그럼 어린아이는 그걸 보고 엄마, 얼음이 없어졌다,’ 이래요. 그리고는 뭐라 그거냐 하면 엄마, 여기 물이 생겼네.’ 이래요. 그런데 어른은 그걸 보고 얼음이 없어진 것도 아니고, 물이 생긴 것도 아니고, 다만 얼음이 변해서 물이 됐다. 얼음이 그 모양이 변했을 뿐이다. 그러니 없어진 것도 아니고, 생긴 것도 아니다. 변화를 알지 못하면 생멸이 생멸관이 생기고, 변화를 알면 생도 아니고 멸도 아닌 줄을 알게 된다.

 

아침에 밖에 나가서 동녘을 보면 해가 뜨고, 저녁에 서녘에 보면 해가 집니다. 해가 뜨고 해가 진다고 생각을 할 때는 왜 뜰까? 왜 질까? 의문이 생겨요.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신이 아침에 불을 붙이고, 저녁에 불을 끈다. 이렇게 생각해.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 정말 그럴까? 그래서 동산에 올라가 봤더니 그 밑에 해가 있어. 또 조금 더 가 봤더니 그쪽에도 해가 있어. 조금 더 가봤더니 거기도 해가 있어. 붙이지를 않아. 그런 줄 알고 서산에 올라가 봤더니 더 따라가서 봤더니 해가 계속 있어. 해는 지구를 돈다.

 

그런데 더 연구를 해 보니까, 해가 지구를 도는게 아니고, 지구가 돌뿐이다. 지구가 해는 가만히 있는데, 지구가 뺑뺑뺑뺑 돌다보니까, 지구에 사는 우리 눈에는 지구에 가려 해가 보였다 안보였다, 보였다 안보였다, 보였다 안보였다 하니까, 해가 뜬다진다 하는 착각이 생겼고, 조금 더 살펴봐도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것처럼 착각이 일어난다. 사실은 해는 뜨는 것도 아니고 지는 것도 아니다. 그럴 때 범부중생은 자기관점에서. 자기 경험을 중심으로 해서, 그걸 객관화 시켜서, 해가 뜨고 진다 이렇게 말하는 거고

 

우리가 지구 밖에 나가서 보면, 해가 뜨고 지는게 아니고, 해가 지구를 도는게 아니고, 지구가 스스로 돌기 때문에 그런 착각이 생겼다. 그러니 해는 뜨는 것도 아니고, 지는 것도 아닌 줄을 알게 되면, 해가 왜 뜨느냐? 해가 왜 지느냐? 이런 질문은 생기지 않는다. 그런 질문에는 대답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 뜨고 지는 것이 객관적인거 같지만, 뜨고 진다는 것은 우리들의 착각에서 생기는 거요

 

생기고 사라지는 것이 사실인거 같지만, 착각에서 깨면 어떠냐? 생긴다. 없어진다 하는 것이 우리들의 관념에서 일어나는 거요. 그런데 이거는 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리 얘기를 해도 정신 나갔나, 아침에 나가봐라. 해가 뜨지. 나만 그러냐? 딴 사람 다 봐도 해가 뜨는데. 자기가 돌고 있기 때문에 자기를 중심에 놓고 볼 때는 자기가 돈다는 건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어. 그래서 지구에서 나와야 ~ 지구가 돌구나.’ 하는 거를 알 수 있어. 우리가 자기로부터 나와야, 이걸 아상이라 그러는데, 아상에서 벗어나야 ~ 내 착각이구나.’ 이렇게 알 수가 있어.

 

그러니까 창조니 종말이니 하는 거는 굉장히 연구를 잘해가지고 참 나름대로 해서 노력은 했는데. 착각을 기초로 해서 이유를 달은 거다. 그러기 때문에 이 깨달음이라는 건 착각에서 깨는 거지, 착각을 사실화하고 원인을 찾는게 아니다. 여러분들이 꿈에 도둑놈을 만났다. 아무리 도망을 가도 그 놈의 강도가 내 뒤에 따라오죠. 온갖 노력을 해도 벗어나기가 어려워. ~ 관세음보살님 좀 살려달라고 간절히 빌었더니, 관세음보살님이 나와서 딱 숨겨줬어. 그럴 때 아이고 살았다. 관세음보살이 너무너무 고맙죠. 도둑놈 너무너무 밉죠.

 

그런데 눈을 딱 뜨니 꿈이야. 눈을 뜨고 보면 미워할 강도도 없고, 고마워할 관세음보살님도 없어. 그래서 미혹한 중생에게는 친한 이와 미운 이가 있고. 눈을 뜬 보살에게는 친한 이와 원수가 따로 없다. 어떤 사람이 바다에 고기 잡으러 갔다가 풍랑을 만나 배가 뒤집어져 물에 빠졌어. 그래서 허우적대. 살려달라고 막 아우성이야. 이 사람은 굉장히 후회가 되죠. 바다에만 안 나왔으면 안 빠졌을 텐데. 그죠? 이 사람은 두 번째 사람이오. 다시는 바다에 안가. 바다에 빠질 일이 없죠. 이 사람 굉장한 사람 갖지만 이 사람도 자유가 없지. ? 바다에 못나가잖아. 물에는 안 빠질지 몰라도 바다에는 못가 보잖아.

 

세 번째 사람은 배를 크게 만들어서 바람이 불래면 불어라. 까짓것. 파도야 칠래면 쳐라. 그리고 바다에 가서 놀아. 굉장한 사람이죠. 첫 번째 사람은 살려고, 놀라고 바다에 갔다가 물에 빠져 죽겠다고 우성치는 거요. 여러분들이 지금 행복하려고 결혼을 했는데, 그 남편 그 마누라 때문에 죽겠다고 아우성치면, 이런 사람이오. 자식 날 때는 좋을라고 났어요? 괴로울려고 났어요. 좋을려고 났는데 애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 이것도 범부중생이오. 사업을 벌일 때는 돈 벌려고 벌렸는데, 날리고 본전 생각날 때. 이것도 범부중생이오.

 

자기가 선택해서 회사에 취직해서 회사를 욕하고 못살겠다. 자기가 돈 벌려고 종업원 채용해놓고 종업원 말 안 들어서 못살겠다. 이런 사람은 다 배타고 바다에 놀러갔다가 물에 빠져가지고 허우적대는 사람이오. 이게 범부중생이오. 두 번째 사람은 현명한 사람이오. 바다에 안 나가 버려요. 빠질 일이 없어. 결혼 안 해버려. 자식 안낳아버려. 사업 안 해. 종업원 채용안해. 안 해버려. 어디로 간다? 사람 없는데, 산으로. 숲으로 가버려. 머리 깎고 혼자 달랑 살아.

 

그러면 바람이 불 태면 불어라. 상관없잖아. 그지? 세상이 엎어지든 자빠지든, 아우성치고 이렇게 괴로워한 거 보면 고소한 거요. 그래가지고 딱 사는게 요게 현명한 사람이오. 요게 스님들이란 말이오. 여러분들이 스님들 보면 부럽죠? 허우적대다가 보면 아이고, 내 팔자야. 내가 어쩌다가 애래 됐노.’ 싶은 거요.

 

그런데 세 번째가 뭐냐? 성인이오. 보살이오. 큰 원력의 배를 타고 세상에 살아. 세상에서 어울려 살아도, 결혼해도, 마누라 때문에 괴롭다. 안 그래. 마누라가 상말을 하면 지랄을 해도 끄떡없어. 남편이 술을 먹고 개구신을 쳐도 상관없어. 애가 뭐 어떻던, 상관없어. 그러니까 세상에 몸을 두고 있어도 세상에 휩쓸리지 않아. 범부중생은 세상에 때가 묻는 사람이오. 현인은 까마귀 노는 곳에 백노야 가지마라에요. 보살은 연꽃처럼 진흙탕에서 자라도 때 묻지 않듯이 세상에 있어도 때가 안 묻어. 술꾼하고 있어도 술 안 먹고, 거짓말쟁이와 같이 있어도 거짓말 안하고, 게으른 사람하고 같이 있어도 부지런하고. 도무지 구애를 안 받아.

 

그런데 이걸 철학적으로 얘기하면 첫 번째가 (일 사)자를 써서 理法界사법계라 그래. 여러분들 고상해 지는 거요. 화엄경 도리요. 불경에서 제일 어려운게 화엄경이잖아. 두 번째 세계가 뭐냐? (리치 리)자를 써서 理法界리법계요. 첫 번째가 현상의 세계, 두 번째가 본질의 세계, 이때는 이 세계와 저 세계는, 이건 어리석은 세계, 저건 현명한 세계. 딱 별개의 세계. 이건 지옥이고 이건 천당이고. 그런데 이 세 번째 세계가 뭐냐? 리사법계야. 리와 사가 걸림이 없이 둘이 아닌 세계.

 

바다와 육지가 나누어졌는데, 이거는 바다에서도 좋고 육지에서도 좋아. 이걸 반야심경 논리로 하면 첫 번째 세계는 색의 세계, 두 번째 세계는 공의 세계, 세 번째 세계는 색즉시공의 세계다. 그런데 네 번째 세계가 또 있어. 이 네 번째 세계는 때를 묻히는 사람이오. 때가 뭇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가서 때를 묻혀. 남의 때를 자기에게 묻히고 남을 깨끗하게 해 버려. 해녀가 조개 따러 물에 풍덩 뛰어들었다. 이 학생 한 번 얘기해봐. 물에 빠졌나? 안 빠졌나? 빠졌어? 구제하러 가야 되겠네? 구하러 가야 되잖아. 안 빠졌어? 그럼 육지에 있어?

 

해녀가 조개 따러 물에 들어갔을 때는 현상을 보면 물에 빠졌죠? 내용을 보면 빠졌어요? 안빠졌지? 자기 볼일 보러 갔잖아. 그러니까 이게 첫 번째 세계하고 겉으로는 똑 같애. 둘 다 물에 빠졌어. 그런데 첫 번째 사람은 살려달라고 아우성이고, 네 번째 사람은 조개를 따, 첫 번째 사람은 옆에 사람 도둑질하면 지도 따라 도둑질 해. 도둑놈이 둘이 되. 그런데 네 번째 사람은 옆에 사람 도둑질할 때 자기도 도둑질을 같이 하는데 이틀 있으면 저 도둑놈이 도둑질을 안 해버려.

 

그러니까 어떤 스님이 아주 도가 높다.’ 여기 어느 스님, 어느 스님. 있죠. 도 테스트 한 번 해 볼까? 전부다 머리를 길러가지고, 딱 사복을 입혀서, 전부 건축공사판에 일용직 노동자로 한 번 붙여보자. 어떻게 하는지. 하루, 이틀, 열흘, 백일 붙여 놓으면 어떻게 할까? 그냥 거기 물에 섞어가지고 술 먹고, 오입하고, 모처럼 머리 기르고 노동자니까, 내가. 그렇게 사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난 이건 죽어도 못하겠다하고 때려치우고 가버리는 사람도 있을 거고. 느그야 술을 먹던지, 오입을 하고 다니든지 말든지. 나는 내 대로 사는 사람 있을 거고.

 

그런데 첫 번째나 두 번째, 세 번째가 이 세상에 무슨 도움이 되겠나? 세상에 내려오면 세상에 섞여버리고, 아니면 세상에서 도망가 따로 살거나, 세상에 있어도 세상 속에서 지만 깨끗한 거요. 그런데 이렇게 똑같이 같이 노가다를 하는데, 그 노동자들이 뭔가 그 사람한테서 배울게 있다 이거야. 그 노동자들의 삶이 바뀐다 이거야. 그럴 때, 이게 이 세상의 유의미하겠죠? 그런데 우리 이렇게 테스트하면 몇 사람이나 이렇게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