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정도수행 바로알고 내려놓기_제5회 5장애요소와 무명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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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법문/일묵스님_팔정도

2011. 10. 16.

  방송 보기: 불교TV

 

일주일 동안 잘 지내셨어요? 안부인사를 하는데 왜 박수를 치세요? 오늘은 지난 시간에 마음의 두 얼굴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는데요, 그러니까 우리가 마음을 일으킬 때 현명하게 주의력을 주느냐? 또는 어리석은 주의력을 기울이냐에 따라서 우리 마음이 번뇌가 일어날 수도 있고 지혜가 일어날 수도 있고, 그 두 가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잖아요. 그죠? 그래서 어리석음이 작용을 하면 영원하지 않은 것을 영원하다고 생각을 하거나, 자아가 없는 것을 자아가 있다고 생각을 하거나, 행복이 아닌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을, 왜곡, 전도가 일어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어리석음이 작용을 하면 전도몽상이 일어나고, 또 지혜가 작용을 하면 그것이 바로 잡혀진다. 그래서 지혜롭게 마음을 쓰는 것과 어리석게 쓰는 것의 차이를 말씀을 드렸는데요.

 

우리마음이 두 가지 형태로 나눠집니다. 똑같은 어떤 대상을 보더라도 그 대상에 대해서 우리가 어리석게 마음을 쓰면은 우리 삶을 고통스럽게 쓰는 마음의 형태로 발전을 하고, 또 우리가 좀 지혜롭게 마음을 쓰게 되면 그 마음이 우리 삶을 행복하게 해 주는 쪽으로 나오게 되겠죠. 그래서 오늘은 옛날에 어른스님들 말씀을 보면 부처가 되려면 중생을 잘 알아야 된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우리 삶을 고통스럽게 하는 마음의 형태는 어떤 것인지. 번뇌라는 것이 도대체 우리 삶을 어떤 식으로 고통스럽게 하는 건지. 번뇌의 실체를 먼저 좀 이해를 하고, 그러면 번뇌에 대해서 잘 이해를 하면, 여러분들이 번뇌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해를 할 수가 있기 때문에. 오늘은 우리의 마음을, 행복을 장애하는, 행복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마음에 대해서 좀 설명을 드리려고 합니다.

 

경전에 보면은 이거는 다섯 가지 장애요소라는 표현으로서 자주 나옵니다. 초기경전에 보면, 5장애 요소라고 나오는데. 여기에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어리석음이라는 것을 합쳐서, 어리석음이 5장애 요소의 뿌리가 됩니다. 그래서 이 어리석음을 토대로 해서 어리석음이 작용을 하면 우선 첫 단추가 잘못 끼어지게 되는 거죠. 원래는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니까, 그걸 통해서 마음이 우리 번뇌들이 어떻게 뻗어나가는지에 대해서 조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시간에 말씀드렸듯이 어리석음이라는 건 대상을 잘못아는거라 그랬죠?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아는데, 그러면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알고 나서, 그것이 사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실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것에 대한 집착이나 싫어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 기본적인 구조입니다. 우리 마음이.

 

어떤 것들을 잘못보고 나서 사실이 아닌 것이, 검증되지 않은 거죠. 자기 나름대로 생각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사실로 받아드리고 그것이 마음에 드는 형태면은, 자기가 원하는 형태면은 탐욕이 일어나고요, 그거에 대한 집착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그게 내가 생각할 때, 별로 원치 않는 형태에요. 원치 않는 대상이라고 생각을 하면 성냄으로 발전을 합니다. 성냄이 일어나겠죠. 그죠?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이런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번뇌의 근본 뿌리가 어리석음이 뿌리가 된다고 하면 그 어리석음으로부터 어떤 거에 집착하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으로 나타나는. 그래서 보통 중생들을 괴롭게 하는, 마음을 고통스럽게 하는 요소를 한마디로 얘기하면 탐진치다,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그죠? 그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어리석음은 최초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서,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작용을 하고, 그것에 대해서 탐욕이라고 하는 것은 그 사실이 아닌것에 대해서 집착을 하는 겁니다.

 

예를 들면 사실은 나라고 하는 것이 없는데, 나라고 하는 것이 있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나라는 것에 집착을 할 수가 있잖아요. 그죠? 그게 아상, 우리가 보통 이야기 하는 에고. ‘라고 있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집착의 형태로 나타날 수가 있는 거죠. 그래서 탐욕과 성냄이라고 하는 것을 조금 더 부연해서 좀 설명을 드려볼까 합니다. 먼저 이 탐욕이라고 하는 것의 성질은 단순히 뭘 원한다는 것은 탐욕이 아닙니다. 탐욕의 속성은 집착에 있습니다. 집착. 뭔가를 붙들어서 놓지 않으려고 하는 것. 그래서 이거를 경전, 주석서에 비유로서 보면요 여러분들 양은냄비 아세요? 양은냄비? 아주 얇은 거. 그거를 가스 불 위에 올려놓고 아주 얇은 고깃덩어리 하나를 던져 놓으면 어떻게 됩니까? 그 양은냄비에 착 달라붙어 안 떨어지죠. 그죠? 그것처럼 우리마음이 어떤 대상에 딱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이런 마음의 형태를 탐욕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냥 단순히 우리가 어떤 대상을 구하는 것을 탐욕이라고 하지는 않아요. 이거는 그게 딱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것. 다시 말하면 포기하지 않으려고 하고, 딱 쥐고 있으려고 하는 이 마음이 탐욕이라고 하는 마음입니다. 이거를 또 다른 비유로서 하면은 끈끈이 풀로 비유하기도 합니다. 끈끈이 풀처럼. 제가 어릴 때는 나뭇가지 긴데다가 거미줄 감아서 그게 끈적끈적하잖아요. 그거로 잠자리 잡고 이런 기억 있는데. 그런 것처럼, 뭔가 끈적끈적해서 뭔가 대상에 딱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거? 이게 탐욕의 기본속성입니다. 그래서 탐욕이라고 하는 것은 집착하는 것이 본질입니다. 뭔가 딱 붙들고 안 놓으려고 하는 것이 탐욕의 본질이구요.

 

그리고 두 번째 탐욕은 만족할 줄 모른다는 게 또 하나의 본질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더 가지고 싶고, 만족을 모르고 계속 뭔가를 집착하고 그것을 얻으려고 하는 이런 마음이 일종의 탐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하늘에 황금비가 내려도 중생들은 만족하지 않는다고 그래요. 황금비가 내리면 왜 다이아몬드비가 안내리냐 이러겠죠? 그죠? 그래서 만족을 모르는 것이 탐욕의 특징이구요. 또 비유로서 탐욕의 성질을 뭐라고 비유를 하냐하면 뼈다귀 같다 해요. 개뼈다귀. 왜 뼈다귀같다고 이야기하냐 하면 개가 뼈다귀를 먹으려고 하면, 막상 먹으려고 하면 먹을 건 없어요. 그죠? 거기서 고깃덩어리 몇 개 남아있지도 않으니까, 먹을 건 없는데, 그 뼈다귀에서 나는 냄새가 너무 좋아서 사람이 이걸 떠나지를 못하는 거에요.

 

그런 것처럼 보통 우리 범부들의 마음도, 사실 감각적 욕망이라고 하는 것이, 그것을 추구를 해보면, 막상 거기서 얻어지는 행복이 그렇게 크지를 않습니다. 하고 나면 항상 허전하고, 뭔가 더 많은 것을 얻으려하고, 갈증만 나지, 막상 그것으로 인해서 만족이 일어나거나, 그것으로 인해서 마음이 편안해 지거나 이러지는 않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거를 떠나지를 못해요. 계속 주위를 맴돌면서 감각적 욕망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그런 모습을 비유를 해서 뼈다귀같다. 이렇게 표현을 한 거죠. 그래서 감각적 욕망이 왜?, 보통 성냄은 사람들이 다 누구나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성냄이 일어나면 괴롭거든요. 일단 자기가. 괴롭고. 그 성냄으로 인해서 고통이 따라오니까, 성냄은 버리려고 하는 마음이 쉽게 나는데, 탐욕이라는 것은 이 탐욕 자체가 달콤해요. 아까 말했듯이, 뭔가 개뼈다귀처럼 먹을게 있다고 생각해요.

 

개뼈다귀처럼 약간 달콤한 것도 있고, 그런데 막상 먹어보면 그것은 우리에게 계속 갈증만 일으키지 실제로 우리마음을 흡족하게 해 주는 요소는 없단 말이에요. 탐욕이라고 하는 감각적 욕망, 이거는 이 자체가 즐거움으로 느껴지거든요. 왜냐하면 달콤한게 있으니까. 즐거움으로 느껴지는데, 막상 이것이 나중에 가지고 오는 결과는 이것이 사라졌을 때 오는 고통이라든가 여러 가지 고통이 따라옵니다. 사실은 이것은 이런 비유도 있습니다. 마치 독과 같다, 그래요. 달콤한 맛을 가진 독과 같다고 얘기를 하는데. 이것이 뭔가 달콤해서 추구를 하는데, 막상 그것은 우리에게 큰 손해를 일으킨다 이거죠. 그래서 감각적 욕망은 굉장히 행복으로 포장된 괴로움이라는 거에요.

 

사실은 근본적으로 깊이 들여다보면, 사실은 우리 삶의 고통을 유발하는 건데,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굉장히 달콤하게 들어오고, 그것이 마치 우리에게 행복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어서 이게 아까 말한 그런 전도몽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행복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행복으로 느끼게 만들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거죠. 그래서 보통 감각적 욕망을 버리기가 참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아까 말씀드린 포장되 있기 때문에, 고통이 아닌 것처럼 포장이 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것을 우리 삶의 고통을 주는 요소라고 받아들이지를 않는다는 거죠. 보통. 그런데 부처님께서 이것을 뭐라고 그랬냐 하면 5가지 장애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염원. 또는 장애요소라고 그랬어요.

 

그거는 뭘 얘기 하냐 하면, 실제로 이 감각적 욕망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 삶의 행복을 주는 게 아니라, 행복을 장애하는 요소라는 거죠.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이걸 잘 이해를 하시면 도적을 친구로 삼지는 않는다 말이죠. 보통은 사람들이 전도된 마음이 일어나면, 사실은 그게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것도 아닌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지금 이런 장애요소, 지금 이런 말씀드리는 것을 공부하는 것은 지금 현재에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이 마음이 우리 삶의 궁극적으로 보면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버릴 수 있잖아요. 그죠? 그것이 만약에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한에서는 절대로 안 버립니다.

 

그래서 이 장애요소를 이해한다라는 것은 이런 마음 상태가 일어났을 때는 이것이 우리 삶의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해롭다는 것을 여러분 스스로가 이해를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특히나 이 감각적 욕망이라고 하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기에는 행복으로 느껴질 요소가 많기 때문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착각을 하고 헤매는 요소 중에 하납니다. 그 다음에 이 성냄은 감각적 욕망과는 정반대의 성격입니다. 감각적 욕망은 어떤 대상을 어떻게 하는 거에요? 딱 거머쥐고 안 놓는 거잖아요. 그죠? 고깃덩어리가 양은냄비에 탁 달라붙듯이, 딱 달라붙어 안 떨어지는 거란 말이에요. 그런데 이 성냄이라고 하는 것은 대상을 싫어하는 마음입니다. 싫어하는 거를 거부하는 거에요. 이거는 달라붙는 게 아니라, 밀쳐내고, 사라지기를 바라고, 그것을 싫어하는 마음의 형태가 바로 성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각적 욕망은 우리가 보통 오욕락이라고 하는 그걸로서 이해를 하면 굉장히 쉽게 이해를 할 수 있는데요, 특히 또 감각적 욕망의 형태가 거칠게 나타나는 것도 있지만, 나중에 여러분들이 수행을 하게 되면 이것이 훨씬 미세하게 나타납니다. 자기가 예를 들어서 부처가 되고 싶은 욕망, 수행해서 선정에 들고 싶은 욕망, 이런 형태로 나타나서, 그것도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이 욕망이라고 하는 것은 마치 적이 아닌 듯이 나타납니다. 마치 우리에게 친구인 것처럼 나타나서 우리 마음을 괴롭게 만든다는 거죠. 마치 법구경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쇠에서 나는 녹이 쇠를 갉아먹잖아요? 그런 것처럼 탐욕이라고 하는 것도 마치 친구인 것처럼 나타나서 우리를 고통으로 끌고 가는, 그런 마음의 요소입니다.

 

그런데 이 성냄이라고 하는 것은 겉으로 드러날 때도 벌써 자기정체가 뚜렷해요. 이것은 우리 삶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일단 성냄이 일어나는 순간부터 우리가 괴롭잖아요. 그죠? 마음이 괴롭고. 그래서 이 성냄은 쉽게 파악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탐욕은 탐욕과 성냄은 서로 반대의 성격입니다. 탐욕은 쥐는 거라면 성냄은 거부하는 형태로 나타나는데요, 이 성냄도 굉장히 무서운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성냄 한 번에 의해서 우리가 한 수십년 쌓아온 인간관계가 깨어질 수 있잖아요. 그죠?

 

여러분이 오랫동안 쌓아놓은 공덕이 이 성냄 하나로 인해서 파괴될 수 있을 만큼 위험합니다. 이 또 권력을 잡은 사람이 이런 성냄이 많으면 많은 다수를 죽이게 됩니다.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고 전쟁을 일으킨다거나, 이런 것이 다 성냄에 바탕을 두고 있는 거라서. 그래서 성냄이라고 하는 것은 마치 독과 같고, 그래서 이것이 일어나면 온몸으로 퍼지면서 굉장히 큰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거라고 할 수 있겠죠, 그죠?

 

그래서 성냄 이라고 하는 것은 그 일어나는 속성 자체가 괴로움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그 일어날 때 이 성냄이라고 하는 것은 불만족의 느낌하고 항상 같이 일어납니다. 여러분들이 뭔가 불만스럽다. 이건 마음에 안 든다, 라고 할 때 그 마음상태는 다 성냄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보통은 보면 탐욕이나 성냄이라고 하는 것이 탐욕은 어떤걸 아주 강하게 집착하는 것만 생각하고, 성냄은 분노, 뭐 어떤 거에 대한 적대감, 죽이고 싶은 살인, 이런 것들만 생각할 수도 있는데, 불교에서 바라보는 탐욕과 성냄은 그것보다 훨씬 범위가 넓습니다.

 

예를 들어서 성냄이라고 하는 것도 날씨가 더워 짜증이 나잖아요. 그것도 일종의 성냄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누구를 봤는데 마음에 안 들어요, 어떤 사람의 하는 행동이. 그런 것도 거기에 대한 불만족이 일어나는 거기 때문에, 그런 것도 다 성냄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서 슬퍼요. 눈물을 흘리고 그러는 것도 일종의 성냄에, 그것도 그 상황이 마음에 안들어서 우는 거거든요. 물론 우리가 신심이나 이런 걸 통해서 울음이 나는 것도 있지만, 슬퍼서 우는 경우는 그것도 일종의 성냄에 들어갑니다. 밤중에 지나가다 뭐가 나타나서 두려움이 일어날 수 있잖아요. 그런 두려움도 일종의 성냄에 해당합니다. 이것도 그 상태가 싫은 거거든요. 불만족인 느낌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사실은 조금만 세밀하게 관찰해 보면 이 성냄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 삶에 굉장히 많은 곳에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불같이 일어나는 화, 이런 것만 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그죠? 그렇지 않다는 거죠. 이 성이라는 것이 굉장히 폭 넓게 숨어져 있고, 단순히 어떤 대상을 집착하는 것이 탐욕이라고 한다면, 그 탐욕이 만약에 여러분들, 내가 있다. 나라는 것에 가게 되면 그거는 일종의 자만의 형태로 나타나요. 그러니까 탐진치 이렇게 세 가지로 이야기하지만, 이 탐욕이라는 것에 의해서 또 분화되는 더 발전하는 번뇌들이 생기게 됩니다.

 

또 예를 들어서 뭐에 집착을 하는데, 내 생각에 대해서, 내가 가진 견해에 대해서 집착을 하면 그게 뭐가 되겠어요? 그런게 사견이라 그러죠. 자기가 진리가 아닌 어떤 견해. 바르지 않은 견해에 대해서 집착을 하면 그건 또 사견이 될 수도 있고, 그래서 이 탐욕이라는 것이 뿌리로서 거기로부터 파생되는 번뇌들이 엄청나게 많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성냄도 마찬가지죠 그죠? 우리가 어떤 상황을 싫어하는데, 내가 만약에 남이 잘된 것을 싫어한다. 사촌이 논 사면 배가 아프다. 이게 뭐겠어요? 그게 질투란 말이에요. 그죠?

 

우리가 남이 잘되는 것을 싫어하는 것. 이건 또 질투의 감정으로 나타나고, 또 내가 잘된 것을 남하고 나누기 싫어하는 마음이 들 수 있잖아요. 그런거는 인색함이라 그럽니다. 내가 얻은 것을 남에게 나누기 싫은 거에요. 내가 열 개나 백 개쯤 얻었으면, 남한테 한두 개쯤 나눠줘도 되는데, 오히려 남을 가진 것을 뺏으려고 한다거나. 이런 거 있죠, 그죠? 그러니까 자기가 가진 것을 남과 공유하기 싫어하고, 나누기 싫어하는게 인색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장애요소에서 부처님께서 감각적 욕망과 성냄. 이 두 가지만 애기했지만, 사실은 이 두 가지 말씀 속에 이런 사견이나, 자만, 그리고 질투, 인색. 이런 마음의 요소들도 포함 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탐욕이나 성냄 속에 그런 마음의 요소들도 다 포함된다고 할 수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