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정도수행 바로알고 내려놓기_제5회 5장애요소와 무명 (4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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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법문/일묵스님_팔정도

2011.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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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세 번째 요소가 뭐냐 하면, 감각적 욕망. 다시 말하면 탐욕과 성냄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주된 장애요소입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데. 이 두 가지만 일어나지 않아도, 여러분들이 사는데 고통스럽지가 않아요. 그런데 이 두 가지가 가장 우리 삶을 고통스럽게 하고, 또 우리가 진리를 보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장애 요소로도 작용합니다. 그 세 번째가 뭐냐 하면 의심입니다. 의심. 그러니까 이건 뭐에 대한 의심이라는 건 뭐를 이야기 하겠어요. 불법승삼보에 대한 의심이라든가, 또는 부처님께서 인과, 원인과 결과를 이야기하고, 윤회를 이야기하잖아요? 윤회가 어디 있냐? 난 못 믿겠다. 이런 것들이 다 의심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이런 의심은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죠. 그죠? 생각만 하다 끝나요. 이래야 되나? 저래야 되나? 계속 의심을 하다면 구체적으로 우리가 노력을 할 수가 없게 되고요. 그냥 마음에서 계속 갈등만 일어나다가 그것이 끝나버릴 수가 있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 의심이라는 것도 우리 마음을 계속 혼란스럽게 해서 안정되지 않게 하는, 그런 요소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네 번째가 뭐냐 하면 해태와 혼침입니다. 해태와 혼침은 뭐를 얘기하냐 하면 게으름을 이야기 합니다. 게으름과 무기력한 거. 여러분들 아침에 눈 딱 떴을 때, 잠은 깼는데 정신은 멍하니, 뭔가 생각도 안 되고, 몽롱한 상태 있잖아요? 그죠? 그런 상태가 일종의 해태 혼침이 함께 있는 상태입니다.

 

또는 여러분들이 좌선 수행을 할 때, 좌선을 하고 있는데도 예를 들면 화두나 염불을 하거나 뭘 하는데, 자기 마음을 관찰하거나 하는데, 그 대상은 없고 몽롱하니 계속 졸음이 온다거나, 멍해지는 그런 상태 있죠? 그죠? 그런 상태를 해태 혼침이라 그래요. 그런데 여기서 조금 중요한 것은요, 이런 해태 혼침에 빠지는 것을, 해태 혼침이라는 것이 잠자기 직전의 그런 상태. 그러니까 우리가 완전히 잠에 든 것은 멍한 상태로 들어가서, 이걸 일종의 무기공이라 그러잖아요. 그죠? 그런 상태인데, 완전히 그런 잠에 들기 전에, 멍한, 무기력하고 정신이 맑지 못하고 흐리멍텅한 상태 있잖아요? 그런 상태를 해태 혼침이라고 하는데, 이 상태를 좀 즐기는 경우도 있어요. 사람들이. 수행을 하다보면 말이죠.

 

수행자들이 앉아서 이렇게 좌선을 하고 있는데, 졸음이 오는 듯 마는 듯, 멍한 상태가 지속되면서, 그때 되면 되게 편안하고 시간도 잘 가거든요. 고요한 거 같고. 그러니까 그거를 아~ 내가 삼매에 들었구나. 또는 한소식 했구나,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 상태를 즐길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이런 것들은 사실은 알고 보면, 해태 혼침이나 무기공에 빠진 상태이거든요. 그런데 이것을 만약에 삼매나, 자기가 깨달음을 얻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건 완전히 적을 친구로 아는 거나 똑같습니다. 이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스스로 알아야, 이것을 벗어날 수 있거든요. 이것이 번뇌라는 것을 이해를 해야, 여러분들이 번뇌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데. 이것을 좋은 것이라고 생각을 하면 안된다는 거죠.

 

이 해태 혼침이라는 것은 일종의 게으름이고, 정진, 노력을 하지 않게 만듭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들께서 집에서 할 일은 없고, 에이 할 일없는데 잠이나 자자. 빈둥빈둥 하거나, 특별히 뭐 하는거 없이 정신이 좀 흐릿한 상태에서 시간을 보내고 이런 것을 여러분 스스로가 생각할 때 이것을 불선한 마음이다. 이렇게 잘 생각을 안할 거 아니에요. 그죠? 이것자체는 별 문제는 없는 거다. 이렇게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불교에서 부처님께서 바라보시기에는 이런 것도 장애요소라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열반에 이르는 것을 장애하고, 깨어있는 정신을 만들지 못하고, 항상 흐리멍텅한, 그런 정신으로 살아가게 한다는 거죠.

 

이런 상태 오래있으면 나중에 치매에 걸리거나, 다음에 태어나면 축생으로 태어납니다. 그러니까 이런 상태에 있는 걸 즐기지 마세요. 이건 좀 위험한. 사람의 해태 혼침에 오래 있다 보면 지혜가 없어 질 수 있어요. 노력하지 않기 때문에. 정신이 깨어있지도 않고. 그래서 이것도 하나의 장애다. 다섯 가지 장애 요소 중에 하나에 들어갑니다. 다섯 번째가 뭐냐 하면 들뜸과 후회라는 겁니다. 들뜸은 뭐에요? 우리 마음이 안정되지 않고 계속 불안한 상태를 이야기하잖아요. 그죠? 뭔가 막 불안하고, 동요가 일어나는 그런 상태. 그걸 들뜸이라고 하고.

 

후회는 해야 될 일을 안 하고, 안해야 될 일을 했을 때 일어나는 감정입니다. ~ 내가 어제 지나가는 할머니가 혼자 가는데 뭘 좀 들어줬어야 되는데 안 들어줬다. 그런 것도 하나의 후회에 들어가고. 어제 수행을 했어야 되는데 안했다. 또는 화를 냈는데 화를 안내야 될 걸 냈구나. 이렇게 자꾸 후회를 하는 거죠. 그러면서 우리 마음이 안달복달하면서, 그거에 대해서 계속 되새김하면서 괴로워하는 거, 이게 후회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후회는 바른 마음상태, 후회라는 것은 별로 도움이 안 됩니다. 이때는 오히려 참회를 해서 아~ 내가 이런 걸 잘못했구나 생각하면, 그 다음에 그런 행위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지. 내가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이런것만 자꾸 생각하는 것은, 고통만 자꾸 커져가고, 여러분들이 실지로 이익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마음들은 자꾸 일으키지 말고, 그냥 그것을 빨리 참회하고, 다시는 그런 행동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것이 훨씬 유익하겠죠. 그죠? 그래서 이 어리석음을 바탕으로 해서 다섯 가지 장애요소, 감각적 욕망, 첫째, 그죠? 둘째는 성냄, 셋째는 의심, 그리고 해태 혼침, 들뜸과 후회라고 하는 이 다섯 가지 요소가 우리가 수행을 하는 것을 굉장히 장애하는 요소고요. 그 중에서도 특히 이 다섯 가지 요소가 뭐를 장애하느냐 하면, 우리 마음이 고요해 지는 거를 장애 합니다. 마음이 고요하게 가라앉지 않게 하고, 항상 불안하고 들뜨게 만들어요.

 

그래서 특히나 이 다섯 가지 장애요소가 우리가 불교에서 이야기 하는 삼매 있죠? 그죠? 고요함. 그런 선정에 들어가고 마음이 고요해지는 것을 장해하기 때문에, 이런 마음이 있으면 우리 마음이 불안하고 그러면 깊이 있는 지혜가 일어날 수 있겠어요? 없겠어요? 마음이 동요가 있을 때 깊이 있는 뭔가를 관찰 할 수가 없잖아요. 일단 장애 요소가 가라앉아야 지혜가 작용을 해서, 어리석음을 버릴 수가 있습니다. 전도몽상을 버릴 수가 있는데. 이 다섯 가지 장애요소가 여러분들 마음에 작용을 하는 함에 있어서는, 항상 마음이 불안하고 들뜨고, 뭔가 안정이 안 되고, 이런 상태이기 때문에, 올바른 지혜를 계발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첫째, 다섯 가지 장애요소 이것을 가라앉히게 해서, 이 다섯 가지 장애요소가 가라앉은 상태에서 어떤 지혜를 계발하게 하면, 지혜를 계발하는데 굉장히 유익하고 또 아주 좋은 마음상태가 된다. 이렇게 해서 나중에 물론, 이 다섯 가지 장애요소는 알아차림을 통해서. 제가 다음시간에 좀 더 자세히 설명을 드릴텐데요. 이 알아차림이라고 하는 사띠있죠? 그죠? 정념. 우리가 팔정도에서 정념을 통해서 이 다섯 가지 장애요소가 가라앉게 되는데, 그 중에서 특히 삼매라는 말 들어보셨죠? 그죠? 삼매에 들어간다. 삼매에 들어갔을 때, 이때는 이 다섯 가지 장애요소가 완전히 제압되는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삼매에 들어가게 되면 이 다섯 가지 장애요소가 완전히 제압된 상태이기 때문에, 이런 상태에서 한 시간, 두 시간, 예를 들어 삼매에 세 시간쯤 들어있었다. 그럼 세 시간 동안 이 다섯 가지 장애요소가 단 한 순간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된단 말이에요. 그럼 이런 상태에서 나와서 만약에 어떤 현상을, 우리가 보고 있던 세상을 다시 보면 옛날하고 똑같은 눈으론 보이지 않겠죠? 그죠? 화가 나거나 뭔가 마음의 동요가 있을 때 보는 것과 그렇게 마음이 완전히 가라앉아서 깨끗해진 상태에서 다시 보는 것과는 똑같을 수가 없겠죠? 그죠?

 

그런 상태에서 우리가 이 현상계를 바라보게 되면 소위 말하는 깊이 있는 지혜, 이런 지혜가 생깁니다. 우리가 현상을 바라보는 그 지혜가 생겨서, 일어나는 번뇌의 밑뿌리에 뭐가 있는지를 보게 되요. 그게 그런 전도몽상이라고 하는 것을 보게 되고, 그걸 통해서 소위 말하는 어리석음을 소멸하고, 어리석음이 사라지면 탐욕과 성냄도 따라서 다 사라지거든요. 그래서 그거로 인해서 해탈이 일어나게 하는 것이 기본적인 구조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조건 이렇게 딱 잘라서 이야기 하기는 어렵지만, 이 다섯 가지 장애요소를 가라앉히는데 가장 좋은 수행법이 바로 선정수행이라고 하는 사마타수행, 빨리어론 사마타라 그럽니다. 선정수행, 또는 삼매수행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구요.

 

이 어리석음을 버리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위빠사나수행, 또는 지혜수행 이라고 이야기 하는 겁니다. 그래서 불교수행이 사마타, 위빠사나. 이 두 가지가 부처님께서 계정혜라고 이야기 한 거, 계율은 바탕으로 지키는 거고, 선정과 지혜, 정혜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런 다섯 가지 장애요소와 어리석음을 버리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거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살아가시면서, 우리가 살다보면 자기 자신을 관찰을 하다보면, 나한테 탐욕이 일어났다. 이것은 장애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성냄이 일어날 때도 얼른 그것을 알고, 그것을 더 이상 커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죠. 그래서 이것이 장애가 장애인줄을 아는 것이 일종의 지혜입니다. 그것을 모르는 것이 어리석음입니다. 장애가 일어나도 장애가 일어난 줄도 모르는게 어리석음이다 이거죠. 그런데 그걸 모르게 되면 여러분들이 밥을 먹잖아요. 이 몸을 유지하려면 밥을 먹고 영양분을 먹어야 몸을 유지할 수 있듯이, 이 번뇌도 양분이 있습니다. 번뇌가 자라려면 자양분이 있어요. 나무도 자라려면 영양, 나무에 거름을 주고 물을 주고 하는 그런 양분이 필요하잖아요. 그죠? 그런 것처럼 다섯 가지 장애요소도, 그 장애요소가 자라는데 자양분이 있는데,

 

이 경전에 보면 자양분경이라는 경이 있습니다. 그 경전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와요. 예를 들어서 아름다운 여인이 있어요. 아주 아름다운 여인이 있는데, 그 여인을 보고 계속 아름답다고 쳐다보면서 그 아름다움을 즐기다 보면 어떻게 되겠어요? 감각적 욕망이 없어지겠어요? 커지겠어요? 그렇죠. 점점 그것을 좋다고 생각하고 집착하는 마음을 반복하면 반복할수록 우리 마음은 점점점점 커져갑니다. 그 감각적 욕망은 점점점점 강해진다는 거죠. 그게 일종의 우리 마음은 반복되는게 자양분입니다. 계속 그것이 일어나면 일어날수록 마치 눈덩이 커지듯이 커집니다.

 

그래서 번뇌는 일종의 여러분들이 작은 불씨 하나만 있어도 그것이 나중에 커지면은 어마어마한 불길이 되잖아요 그죠? 그런 것처럼 아주 작은 번뇌 하나만 일어나더라도, 이 번뇌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이 번뇌가 커져나가게 내버려 두면, 이건 점점점점 자랍니다. 계속 커지고 커지고 해서 일종의 양분을 주는 거나 똑같애요. 그 번뇌에다가. 그러면 나중에 어느 수준을 넘어가면 여러분들이 통제불능의 단계까지 옵니다. 이런 걸 우리가 중독이라 그러죠. 그죠? 어느 정도 중독증세가 일어나는 거에요.

 

우리가 예를 들어서 처음에는 좋은거 사러 쇼핑하러 가서 이것저것 사고 이랬는데, 그것이 계속 반복되다보면 중독 되가지고 안 하면은 못 견디는 거에요. 이런 상태까지 된다는것은 굉장히 위험해 지고, 그걸로 인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악행을 저지르게 되겠죠. 그죠? 대표적인게 노름 같은 것도 처음에는 재미삼아 했지만 이것이 계속 반복되다보면 나중에는 끊을 수 없는 상태, 손을 끊어도 노름을 한다잖아요. 그만큼 이런 중독 상태로 갈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이런 자양분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이런 감각적 욕망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그걸 알아차리고 더 이상 진행이 되지 않도록 마음을 바꿔야 되겠죠. 그죠?

 

어리석은 주의력에 의해서 아직은 아라한이 아니니까, 번뇌가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 번뇌를 빨리 알아차리고 번뇌가 커져나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자양분을 더 이상 공급하지 않는. 계속 아름다움에 표상을 취한다는 것은 계속 자양분을 공급하는 거나 똑같다는 겁니다. 성냄도 마찬가지죠. 내가 성나는 사람을 계속 쳐다보면 저놈은 나쁜 놈 이라고 규정을 해놓고 계속 보면 성이 가라앉겠어요? 안가라앉겠어요? 계속 지속이 되겠죠. 그죠? 그런데 그 사람에 대해서 계속 표상을 취하는게 아니라, 아 저 사람을 통해서 내 마음에 화가 일어났구나 하고 이렇게 보게 되면, 이제는 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나한테 일어나는 이 화가 문제잖아요. 그죠? 그렇게 되면 화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성냄을 일으키는 그런 표상을 계속 반복해서 취하는 것이 일종의 성냄의 자양분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의심이 일어날만한 것에 대해서 계속 의심을 하는 거, 이것도 뭐가 되겠어요? 누가 어떤 소리를 했어요. 불교는 가짜라더라. 이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그 말을 듣고 그 생각을 계속 일으킨다면 의심은 계속 커져갈 수가 있습니다. 그죠? 이런 의심이 일어나는 걸 알고, 좀 지혜가 있는 사람에게 물어본다거나, 부처님 가르침을 접한다거나 해서 빨리 그것을 극복한다면 큰 것이 되지 않는데 계속 내버려 두는 것은 자양분을 공급하는 거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게으른 거, 할 일 없으니까 잠이나 자자. 이렇게 하다보면 그 게으름은 점점 커져갑니다.

 

나중에는 제가 옛날에 어떤 사람 기사에 한 번 보니까 어떤 사람이 화장실 가는게 귀찮아서 계속 누워 있다가 방광염으로 죽은 사람이 있어요. 진짜에요. 실화입니다. 실화. 게으름의 극치. 이게 얼마나 많은 자양분을 공급했으면 이 해태와 혼침이 극치를 달린 거죠. 그리고 들뜸과 후회라는 것두요, 이런 마음이 여러분들이 마음에 고요함을, 고요하지 못하게 하는, 들떠있는 상황에 계속 반복해서 일으키면 그것도 자양분을 공급하는게 돼서, 계속 우리 마음은 고통을 겪게 되고,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후회가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그것만 계속, 보통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과거에 일어난 일을, 벌써 자나가버린 것을, 계속 되새김질 하면서 내가 왜 그랬을까? 고통 받고 이렇게 하는 거 그죠? 그런 것도 반복하면 반복할수록 괴로움은 커집니다. 아까 말했듯이 그걸 계속 반복할 필요가 있는게 아니라, 일어난 과거의 일에 대해서 참회하고, 다시는 그런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거지. 과거에 한 행위, 벌써 사라져버렸어요. 무상한 것이란 말이에요. 사라져 버린 것을 계속 붙들고, 그거에 대해서 고통을 받을 필요는 없다. 이거죠. 그죠? 번뇌라고 하는 것은 그냥 내버려 두다보면, 이것은 얼마나 커져서 얼마나 문제가 될지는 모릅니다. 그래서 이거를 일단 번뇌가 일어나는 그 순간에 그것을 빨리 알아차리고, 이것이 번뇌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삶에 굉장히 위험한 요소다. 우리 삶을 고통스럽게 하는 요소다, 라는 것을 이해를 하면서 그것이 커져나가지 않도록 잘 단속을 하고, 그것을 빨리 이런 어리석은 주의력에서 현명한 주의력으로 마음을 돌리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거죠.

 

요즘 우리 사회에서 자살이라든가, 그런 우울증 환자, 이런 경우 많잖아요. 저도 가끔 수행하러 오신 분들 중에 우울증환자들도 많고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많고, 그런 분들이 많은데. 이런 분들이 일종에 살아오면서 계속 달리는 거는 배웠는데, 브레이크잡고 쉬는 방법을 못 배웠어요, 마음을, 계속 달리기만 하는 거에요. 외국에서 유학하는 학생 중에 하나도, 자기가 정말 최고의 엘리트로서 살아왔지만, 정작 자기 마음을 보고,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데에서는 아직도 고등학교 수준 밖에 안 될 수도 있거든요. 그러면 자기한테 오는,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데 왜 달려가는지를 몰라요. 무엇을 위해서 달려가는지. 그렇게 되면 그 삶이 행복해 지기가 어렵겠죠, 그죠?

 

그래서 이런 것들을 잘 이해를 하고, 이런 우울중이나 이런 것들도, 결국은 싫어하는 마음들이 계속 반복되면서 그게 병적인게 된 거거든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런 번뇌가 일어날 때, 번뇌가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리는 자체가 지혜가 작용을 하는 겁니다. 그걸 알아차리고 그것이 지속되지 않도록, 이런 자꾸 양분을 공급하지 않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래서 그걸 여러분들이 잘 이해를 하시고. 우리가 이렇게 어리석음이나 이런 다섯 가지 장애요소들이 여러분들 마음의 고통을 주는 그런 해로운 마음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이해를 하시고, 이런 마음들을 친구로 생각을 하면 안 된다. 이것이 여러분들 삶에 고통을 주는 어떤 장애요소다. 우리 삶을 행복하게 하는데 장애요소라는 걸 이해를 하는 것이 중요하고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이것이 점점점점 커져서, 나중에 이게 통제하지 못할 정도로 커지는 거를 막아야 됩니다. 자양분을 자꾸 공급하면 안된다는 거죠. 그리고 보통 보면요. 어리석음 때문에 탐욕과 성냄이 일어나지만 탐욕과 성냄이 많이지면 어리석음이 더 심해집니다. 마음이 불안하고 탐욕과 성냄이 작용을 하다보면 또 그 사실을 사실 그대로 볼 수 있는 힘이 자꾸 없어질 거 아니에요. 그죠? 그러면 또 우리 마음에서의 또 그런 번뇌는 더 커질 거고. 그러면 어리석음은 더 작용하겠죠. 그죠? 그래서 사실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라는 것을 제가 따로따로 말씀을 드렸지만 사실은 무관한 것은 아닙니다. 서로가 굉장히 밀접하게 움직이는 거고,

 

또 여러분들이 원하는게 없으면 원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떻게 되요? 화가 나잖아요. 그죠? 그래서 탐욕과 성냄이 일단 일어나지 않게 하고, 또 이 탐욕과 성냄이 일어나지 않게 하면 우리 마음이 굉장히 고요해 지거든요. 이 고요해 진 상태에서 이 어리석음을 타파하는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수행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드린 이것이 여러분들 삶에 고통을 주고, 우리 삶을 해롭게 하고, 열반에 이르는데 유익하지 않은 마음이라는 걸 일단 이해하는 것이 되게 중요합니다. 이것을 이해하면, ~ 어떻게 하면 이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가? 방법을 찾게 될 거잖아요 그죠? 그래서 이거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에 대해서는 제가 또 다음 시간에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오늘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