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정도수행 바로알고 내려놓기_제6회 알아차림과 지혜 (42:43)

댓글 0

스님법문/일묵스님_팔정도

2011. 10. 16.

  방송 보기: 불교TV

우리 마음이 뭘 안다 그랬어요? 바깥의 대상을 안다 그랬잖아요? 색성향미촉법이라고 하는 대상을 아는데, 이 대상을 예를 들어서 이런 잔을 알잖아요. ~ 여기 잔이 있고, 시계가 있고, 종이가 있고, 이렇게 알잖아요? 그런데 이걸 알고 나서 이 잔이라는 것이 마음에 안 들어. 왜 저런 걸 갖다 놨어. 하고 내가 화가 날 수가 있죠. 그러면 이 대상을 아는 그 마음을 또 관찰할 수 있어요. 나한테 일어나는 그 마음을. 그러면 이 마음이 이거에 대해서 싫어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어떻게 된 겁니까? 이거는 불선한 마음 쪽으로 간 거죠. 그러면 즉시 알아차리고, 알아차리는 그 순간에 이 번뇌가 일단 꺾입니다. 지속되지를 않아요.

 

그러면 다시 또 선한 마음으로 돌아가겠죠? 알아차리면서 놓은 거에요. 쉽게 말하면. 알아차리며 놓으면 다시 선한 마음으로 돌아오게 되고. 이런 식으로 내가 마음이 작용할 때 그 마음에서 탐욕이나 성냄이 개입 되지 않도록 하면서 계속 일어나는 현상을 그대로 알아차림을 유지하는 것. 이게 바로 우리가 알아차림을 계발하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는 거에요. 그래서 이거는 우리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계속, 여러분이 알던 모르던 지속되고 있잖아요. 그죠? 마음이 지금 계속 일어나고 있고, 몸에서 현상도 일어나고 있어요. 그런데 단지 우리가 정신이 차려져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걸 잘 모르고 지나갈 뿐이잖아요. 그죠?

 

그래서 이거를 알려고 자꾸 노력하다 보면 우리 정신이 점점점점 깨어나게 되겠죠. 그죠? 그런 방식으로 수행을 하는 것이 바로 이 알아차림을 계발하는 수행입니다. 조금 이해가 어려우실수도 있을 거 같아 제가 비유를 하나 들을게요. 좀 여기 연세가 다 계신 분들이니까, 어릴 때 보면 연탄공장 가 보신 적 있으세요? 전부 잘 살으셨나 보네, 연탄공장 같은데 안가셨나 보네. 우리 동네에 연탄공장이 있어서 저는 어릴 때 연탄공장 구경을 간적이 있어요. 거기보면 컨베어벨트가 있고, 기계에서 연탄 한번씩 씩어서 나와요. 하나씩 계속 나오면 벨트를 타고 쭉 연탄이 이동을 하는 거죠.

 

그러면 컨베어벨크가 끝나는 두 지점에 두 사람이 서가지고 나올 때마다 그걸 받아서 트럭에다 던져주면 받아서 싣고 싣고 가는데. 이 사람들이 연탄이 지나가는 거를 정신을 안 차리고 있다가 딴짓팔면 어떻게 되겠어요? 다 깨집니다. 다 떨어지고 깨지거든요. 그런데 정신을 바짝 차리고 숙달이 된 사람은 이 연탄 하나도 안 놓치고 아주 능숙하게 트럭에다 실어요. 그런 것과 똑같습니다. 여러분 마음에서 일어나는 형상들이 계속 연탄이 쏟아져 나오듯이 컨베어벨트를 타고 현상들이 움직인다 그러면은, 여러분 마음이 잘 깨어있고 잘 각성되어 있으면 그 일어나는 그 연탄 하나하나도 안 놓치고 다 알아차릴 수가 있겠죠. 그러다 알아 차라다 좀 멍해지면 연탄 20장 깨지고, 다시 일어나고 이렇게 된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걸 한 장도 안 놓치려고 애를 쓰는 자체가 우리 정신을 깨어나게 만듭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마음이 아주 깨어나게 하고, 청정해지고, 이렇게 정신을 차리고 있는데, 여기 좋아하고 싫어하는 이런 마음이 개입될 틈이 없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되도록하는게 바로알아차림을 계발하는 수행방법입니다. 그래서 우리 몸과 마음에서는 지금도 끊임없이 어떤 현상들이 일어나고 사라지고,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고 있는데, 이제 우리가 단지 정신이 깨어있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걸 다 놓치고 산단 말이에요. 자기가 화가 나는지도 모르고. 화가 나는지도 모르고 화를 내고 있고, 또 자기가 탐욕에 물들어 있는지도 모르고 탐욕에 빠져서 살아가고. 그렇게 하는데.

 

그런 것들을 자꾸 알아차리다보면 이런 현상들을 이해하게 된다는 거에요. 그래서 그 알아차림에 중요한 것은 이해입니다. 알아차림을 통해서 이해가 되돌고 하는 건데, 그 이해를 불교에선 지혜라고 이야기를 하죠. 그래서 이 알아차림을 계발하는 방법은 여러분들 몸이나 마음에서 일어나는 그런 현상들을 정신을 딱 차리고, 그런 것들을 면밀하게 안놓치도록, 아까 연탄 깨지 않는 것처럼 항상 자기에게 일어나는 형상들을 잘 알아차리도록 하려고 노력, 애쓰는 그것이 사띠의 힘을 길러주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살아가는데 그러면 이 알아차림하과 수행하고 어떤 관계가 있느냐 하면요, 제가 전에 팔정도이야기 했잖아요? 팔정도를 크게 말하면 계--혜라고 말 할 수 있죠. 그런데 이 계율이라는 것은 계속 하는 건 아니고, 일종에 우리 삶의 바탕이라고 보시면 되요. 이게 밑바탕에서 하는데 실제 그러면 이런 알아차림을 적극적으로 계발하기 위해서 뭔가 대상이 필요하단 말이죠. 그래서 이 알아차림을 계발할 때 아까 말했듯이 이 연탄공장에서 나오는 모든 어떤 현상들을 하나도 안 놓치고 알아차리려고 하는 이런. 이렇게 하면 이 연탄은 뭐 자꾸 알아차림을 하다보면 이 연탄은 깨졌고, 이거는 정상적이고 이런 것까지 다 알게 될 거 아니에요. 그죠?

 

그런 식으로 어떤 현상이 일어나더라도 그걸 알아차리면서 그걸 통해서 사띠를 계발하는 방법이 위빠사나수행입니다. 그런걸 위빠사나라 그래요. 그런데 이제는 약간 패턴이 달라가지고 난 여러 사람하고 많이 노니까 머리 아프다 이거야. 너무 많은 것을 알아차리기가. 그럴 때는 어떤 하나의 대상을 정합니다. 대상을. 예를 들면 숨, 호흡이라고 하는 여기 하나의 대상을 정해서 다른 현상들하고 내가 안돌고, 오직 이 호흡하고만 놀겠다. 이 호흡만 알아차리겠다고 생각을 하고, 호흡만 만약에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게 되면 그것을 사마타수행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거는 고요함을 강조하는 거에요.

 

이 사마타수행은 마음이 집중되고 고요한 쪽으로 포커스를 맞추는 거고. 이 위빠사나수행이라고 하는 이 지혜수행은 현상을 이해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겁니다. 이해하려고 하면 내가 여기 있는 분들을 만약에 다 이해하려고 하면 한사람 한사람을 관찰을 해봐야 되겠죠. 여기 있는 사람을 다 관찰해야 여기 있는 사람들을 이해를 할 거 아니에요. 그죠? 그래서 그럴 때는 대상을 가리지 않고 우리에게 일어나는 현상 그대로를 자꾸 관찰하다보면 그것들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가 이루어집니다. 그런 식으로 수행을 해서 지혜를 길러서 아~ 여기 다 관찰을 해보니까 모습은 다 다르고 하지만 여기 있는 사람이 전부 다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질이 늙어간다는 거. 그러니까 변한다는 거에요. 변한다는 거.

 

어떤 모습을 가져도 변하고, 실체라는 건 없다 이거죠. 변하는 것에 무슨 실체가 있나? 그리고 본질적으로 이것은, 변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괴로움이다. 이거는 여러분들이 각자 특징은 다 달라도 공통적으로 다 가지고 있는 성질입니다. 이런 것을 이해하게 되면 이런 현상들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가 있어요. 그래서 이렇게 이해를 통해서, 지혜를 길러서, 탐욕이나 성냄을 버리는 쪽으로 가는 것이. 바로 위빠사나수행이라고 하는 지혜수행이고요. 이렇게 하다보면 우리가 많은 것을 알아차리다보면 피곤해지기도 하고, 마음이 약간 흐트러질 수도 있는 소지가 있잖아요. 그죠?

 

그럴 때는 또 마음을 고요히 쉬면서, 우리 마음이 조금 더 안정되고 고요한 쪽으로 되도록 이렇게 마음을 하나의 대상만 딱 정해서 그 대상만 알아차리고 그걸 통해서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거. 이거는 사마타, 또는 선정, 삼매라고 하는 말 들어보셨죠? 삼매 수행에 들어간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수행을 하든 간에 이 알아차림이 없는 수행은 있을 수가 없어요. 불교에서 말하는 건. 이 알아차림이라는 것이 정해진 어떤 하나의 대상으로 가서 고요하게 깨어있는 거를 강조하느냐? 아니면 다양한 대상을 알아차리면서 어떤 그 대상에 대한 이해, 지혜를 강조하느냐에 따라서 수행의 어떤 형태가 달라진다는 거에요.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시죠?

 

그래서 보통 보면 초기에 알아차림 수행이 많이 우리나라에 도입이 될 때 알아차림하는 것이 곧 위빠사나다. 이렇게 이해 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그렇지만 본질적으로는 알아차림이라고 하는 수행은 모든 수행의 기본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떤 식으로 수행을 하느냐에 따라서 사마타수행이 될 수도 있고 위빠사나수행이 될 수도 있고. 그러니까 고요함, 선정을 닦는 수행을 할 수도 있고, 위빠사나 수행을 할 수도 있고 이렇다는 거에요.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이 알아차림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들 음식 만들 때 소금이나 향료 같은 거는 항상 들어가는 거잖아요 그죠? 그런 것처럼 알아차림이라는 것은 모든 곳에 유익한 것이다. 그리고 알아차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예를 들면 지혜나 신심 같은 거는 지나치면 문제가 됩니다. 신심이 너무 지나치면 뭐가 되요? 맹신자기 되요. 맹신자. 길거리 나가서 천국, 지옥 이러고 다니는 그런 맹신자가 될 수 있어요. 그런데 또 지혜가 너무 지나치면 사람이 교만해 질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이 알아차림은 아무리 지나쳐도 아무 문제가 안 돼요. 아무리 높여도 아무 문제가 안되는 게 알아차림입니다. 그만큼 알아차림이라는 것은 우리 수행에 굉장히 유익한 수행이다. 그렇게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알아차림의 대상을 만약에 하나의 대상으로 정해서 호흡이라고 하는 여기에만 정해 놓고 이 호흡 외에 다른 대상이 나타날 땐 이 대상과 싸우지 않고 내버려두면 알아서 사라지거든요. 어차피 일어나는 현상은 사라지게 돼 있으니까. 그러면서 이 하나의 대상에만 계속 알아차림을 하면서 우리 마음이 거기에 계속 몰입을 해 나아가면, 소위 말해서 여러분 그런 말 들어보셨죠. 어떤 스님은 며칠 동안 슥~ 눈감고 뜨니까 며칠이 지나갔다. 또는 몇 시간이 지나갔다. 이게 그런 선정상태에 들어가면 시간의 흐름이나, 외부 소리나, 이런 걸 전혀 못 느끼고 그런 상태로 시간이 지나갑니다.

 

그러니까 이런 상태가 되면은 우리가 그냥 일반적으로 알아차림만 있어도 뭐가 안 일어난다고 그랬어요? 제일 중요한게. 탐욕과 성냄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알아차림에 있는 동안에는.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알아차림이 있는 동안에 일시적으로는 다섯 가지 장애요소가 가라앉습니다. 그런데 특히나 이 선정상태에 들어가면 우리가 그냥 일상생활에서 알아차림 하는 거, 짧게 짧게 이루어질 수 있잖아요. 그죠? 그런데 이 선정상태에 들어가면 한 시간 또는 2시간, 만약에 3시간 선정에 들어갔다 나왔다 그러면, 3시간 내내 완전히 깨어있는 상태로 있게 됩니다. 어떤 생각도 없이.

 

그리고 이때는 다섯 가지 장애요소가 단 한 순간도 일어나지 않아요. 3시간 동안. 그러면 얼마나 마음이 청정해지고 깨끗해지겠어요. 그죠? 이 마음을, 이렇게 깨끗해진 상태에서 세상을 보면 번뇌 물들은 마음하고 똑같겠어요? 아니면 다르겠어요? 완전 다릅니다. 그래서 이 선정을 닦고 나서 그렇게 나온 상태에서 다시 보게 되면 이 현상들에 대한 지혜가 아주 깊이 있는 통찰력이 생길 수 있거든요. 그래서 이 삼매라는 것이 바로 이런 지혜를 닦는데 아주 결정적인 도움을 줍니다. 이런 고요함이라고 하는 것이.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보면 당신이 깨달음을 얻으실 때 色界四禪定색계사선정이라고하는 선정에 들어가요. 그 선정에서 나와서 색계사선정이 색계선정중에 최고의 선정이거든요. 그럼 여기서 나와서 그 마음상태를 지혜를 닦는 쪽으로 딱 돌리니까. 그러고 나서 부처님께서 누진통을 얻으신 거잖아요. 그러니까 번뇌가 다 하는. 그 만큼 선정상태라는 것이 지혜를 이런 닦는 데는 최적의 조건이 된다는 거에요. 아까 말했듯이 우리 수행을 방해하는 다섯 가지 장애요소를 장시간 동안, 단 한 순간도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눌러놓기 때문에, 그러기 때문에 굉장히 좋은 마음 상태가 되고, 그런 상태에서 지혜로 돌렸을 때는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그런 지혜와는 차원이 다른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부처님께서 선정수행을 말씀을 하신 겁니다. 그리고 또 그거를 여러분들에게 권한 거고. 그런데 이 선정이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들 수 있느냐하면, 마음이 행복해야 들 수 있습니다. 하나의 대상을 정해서 그 대상하고 있는데, 이 대상하고 있는 것이 괴롭고 힘들면 여기 있을 수 있겠어요? 못 있겠죠. 그죠? 그러니까 같이 있다 보면, 나중에 선정에 가까이 가면, 보통 세속에서 느끼지 못한 희열과 행복이 일어나요. 아주 큰 행복이 일어나요. 그러면 거기 있는 자체, 호흡을 하고 호흡을 알아차리고 있는 그 자체가 너무나 행복하고 즐거워지니까, 딴 데 갈 생각이 안나는 거죠? 그러니까 1시간, 2시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거에요.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죠? 그래서 삼매에 드는 거에 기본이 바로 행복한 마음이다.

 

옛날에 애인하고 같이 있다 보면, 자기가 진짜 사랑하고 좋아하는 애인 같으면, 같이 있는데 한 시간이 아니라, 잠깐 있는데 몇 시간 지나고 이러잖아요. 그게 우리 마음이 행복할 땐 시간 가는 줄 모르잖아요. 그런데 불편하면 一刻如三秋일각여삼추죠. 그죠? 우리가 삼매에 드는 것도 그 대상하고 있는 그 시간이 행복해 졌을 때 삼매에 들 수 있다 이런 얘기를 하는 거구요. 그래서 이런 마음이 고요해 졌을 때, 지혜가 생기기 가장 좋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선정상태처럼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을 아주 한 번뇌도 일어나지 않는 고요한 이런 상태로 갈 수도 있지만, 그냥 일반적으로 대상은 변한다 하더라도 알아차림을 지속하면 그 자체도 우리 마음이 굉장히 고요해 집니다.

 

우리가 이렇게 선정수행을 통해서 삼매에 들어가는 것을 뭐라고 하냐 하면 본삼매. 또는 아주 깊이 있는 선정이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데. 아까 말했듯이 연탄공장에서 연탄이 가는 거 하나도 안 놓치고 알아차림, 이런 거는 찰나찰나 알아차리는 거잖아요. 그죠? 순간순간, 하나하나 대상을, 이런 삼매를 찰나삼매라고 그럽니다. 이거는 매 순간순간을 알아차리는 건데 이거는 위빠사나 수행에서 일어나는 삼매는 찰나삼매입니다. 이 찰나삼매도 지속적으로 이어지게 되면 우리 마음을 굉장히 고요하게 해 줍니다. 고요하게 되고, 그 알아차림이 지속되는 동안, 찰나삼매가 지속되는 동안에는 번뇌가 전혀 일어나지 않아요.

 

그러니까 이런 상태도 지혜가 계발되는 좋은 상태겠죠. 그죠? 그래서 이 알아차림이 죽~ 지속되다 보면, 알아차림이라는 것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 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 정보를 취하는 거잖아요. 이런 정보가 많이 쌓이다보면, 결국은 그걸 통해서 뭘 아냐 하면, 여기 있는 분들을 자꾸 알아차리다 보면, 이 보살님 뭘 갖고 있고, 뭘 갖고 있고, 자꾸 보다보면, 이 분들의 특징들을 이해하게 될 거 아니에요. 그죠? 그렇죠? 그러면서 그걸 통해서 지혜가 생긴 다는 거에요.

 

알아차리면 좋은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게 해 주고, 이런 것들의 연관관계, 이것이 어떻게 구성되 있고, 이것의 공통된 특징은 뭔가? 아까 말했듯이 개별적으로 알아차리다 보면, 전체적으로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성질은 늙는다는 거, 누구나 늙언 간다는 거, 그리고 죽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거, 이런 거는 공통된 특징이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우리가 어떤 사물의 본질을 개별적인 특성뿐만 아니라, 점점 깊이 있는 특징을 이해하게 된다는 거죠. 그게 지혜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면 지혜는 어리석음을 제거하고, 뭐를 획득했어요? 진리를 보게 하겠죠. 지금까지는, 영원하지 않은 것을 영원하다고 착각하고 살았는데 아~ 영원한 것이 아니구나. 자아가 없는 것을 자아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자아라고 할 만한 것이 없구나. 이렇게 알게 되고. 인생이 행복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알고 보면 행복이라고 알만한 것이 없다. 고라는 거, 두카. 그래서 이 세 가지를 이해하게 되면 어리석음을 타파하게 되고, 사물의 본질에 대한 지혜가 계발이 되겠죠. 그죠?

 

그래서 지혜는 어리석음을 버리게 하는데 아주 중요한 특징이구요. 지혜가 강해지다 보면, 여러분 머리가 또릿또릿해집니다. 아주 명료해져요. 그러니까 이걸까? 저걸까? 의심하는게 없어지고, ~ 이거다 정확히 볼 수 있다는 거죠. 지혜라고 하는 것은 많은 생각을 통해서 안다기 보다, 예를 들어서 안개가 끼어있는데, 안개가 끼어 있으면 앞이 잘 안보이다가 안개가 비가 오고 나서 싹~ 개고, ~ 거치고 나면 훤히 보이는 것처럼. 우리 마음에 탐욕이나 성냄, 번뇌들이 우리 마음을 가리고 있다가 이런 번뇌가 탁~ 사라지면 훤히 보이는 그런 식이거든요.

 

그래서 우리 마음이 아주 명료하고 또렷해진다. 이거죠. 그래서 그렇게 되는 것이 지혜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지혜는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앎으로서 어리석음을 버리게 하고, 우리 마음을 굉장히 총명하고, 아주 또렷하고, 명료한 그런 통찰력을 가지게 해준다는 것이 특징이고요. 아까 말했듯이 이런 지혜가 생기는 밑바탕에는 뭐가 있다 그랬어요? 고요함. 그죠? 우리 마음이 고요할 때는 호수가 고요하면 달이 그대로 비치듯이, 우리 마음이 고요할 때 이런 지혜가 제대로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선정과 지혜라는 것은 서로서로 도와주는 관계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공부한 내용을 마지막으로 정리를 해보면요. 이렇게 알아차림과 지혜롭게 어떤 현상을 알아차리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것을 현명한 주의력이다. 이것은 여러분들 삶을 유익하게 하고, 향상되게 하고, 아까 말했듯이 육체적 고통이나 정신적 고통, 근심과 탄식을 다 버리게 하는 그런 수행이 될 수 있고, 만약에 이런 번뇌에 물들어서 탐진치에 물들어서 살아가는 것은 어리석은 주의력이 되고, 그런 것은 여러분의 삶을 점점 고통스럽게 더 만드는 그런 요소다 이거죠.

 

그래서 이런 탐욕과 성냄을 일으키지 않고 생각하는 것을 정사유라 그럽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정견이라 그래요. 그래서 정견과 정사유가 바로 지혜와 알아차림을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알아차림과 지혜가 있다는 것은 여러분들이 정견과 정사유를 잘 실천하고 있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여러분들 마음에서 일어나는 그런 번뇌가 비록 작은 번뇌라 할지라도 이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여러분 스스로가 느끼시고 그런 번뇌가 일어나는걸 알아차리고, 이걸 지혜로서 빨리 빨리 내려놓는, 그런 수행을 지속한다면, 여러분 삶이 계속 향상이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오늘 법회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