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홍식_이것이 주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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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홍식/윤홍식_홍익당

2017. 2. 15.


[홍익당창준위] 이것이 주권이다!


이 책도 좀 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고 그래서 가져왔어요. 사회계약론이라고 쉽게 고전들을 풀이해주는 시리즈더라구요. 군주론, 자유론, 국가, 맹자, 이런 게 나오는 거 같은데. 사회계약론도 나왔는데 띠제에 이렇게 쓰여 있던 거 같아요. ‘우리는 왜 광화문에 촛불 들고 나가는가.’ 이런 내용이 쓰여 있던 거 같은데, 그 답을 여기서 찾아보라고 낸 거 같은데요, 아주 중요한 책입니다.

 

루소의 사회계약론이 나오고,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나죠. 프랑스 혁명의 아주 이념을 준 책인데요, 이런 게 대게 중요합니다. 사람들이요, 저도 참 놀랩니다만, 양심 얘기를 그렇게 머리 좋은 분들이 많으신데, 양심 얘기를 누구나 해야 옳고 누구나 알고 있어야 되는데도, 저희가 얘기하면 놀라세요. “양심이 이런 거라고?” 교과서에도 다 있는 거예요. 인의예지. 사양지심 측은지심. 안 들어본 분 없죠. 그런데 이런 얘기를 하면 교육학과 교수님도 제 강의를 들으시고는 그 자리에서 ", 측은지심이 이런 거인 줄 처음 알았다.

 

그러니까 뭐냐 하면 다 있고 가르치고 있는데도 서로 간에 몰라요. 신기하죠. 그래서 이런 분들이 한 번씩 역사에 등장해야 되는 게요, 그 절대왕정 시대에 학정에 시달리고, 임금한테 착취당하면서도 자기 권리를 주장할 줄 몰라요. 조선말에 그랬어요. 우리나라도 똑같이. 외국선교사들이 와서 보고 놀랬어요. 이렇게 삥 뜯기면서도 한마디 말도 안 하는 나라 처음 봤다고.

 

항거 자체를 못하는 거예요. 이미 세뇌 당해서. 임금이 하늘이고. 임금한테 감히 뭐라고 하는 말도 상상도 못해요. 삥 뜯기고 착취당하고 죽어나가도 제대로 된 항의도 못해요. ? 우리한테 주권이 있다는 걸 몰랐던 거죠. 이게 무서운 겁니다. 그러다가 나라가 망한 거예요. 일본한테 넘어가고 나서야, 우리가 주권을 잃었다는 자각을 한 거예요. 그러니까 무섭죠. 이렇게 세뇌 당한다는 게.

 

지금도 여전히 그 세뇌가 안 풀린 분들이 지금

 

감히 대통령한테 군대를 출동시켜서

저 반란군들을 다 죽여라. 빨갱이들 죽여라.” 하는 이런 분들이

지금 시대에 살면 안 되는 분들이에요. 실제로. 마인드가.

민주 시대의 마인드를 못 갖고 있는 거예요. 그게요,

 

왜 못 갖고 있는지 뭐가 문제인지 아시려면 사실 이런 글 읽으셔야 되요. 이런 책이 별거 아닌 거 같죠. 책이 뭐. “말로 떠드는 거 누가 못해.” 이게 얼마나 무섭냐 하면요, 당하면서도 아무도 몰라요. 그럴 때 누구 하나가 말로 떠들어요. "우리한테 주권이 있는데," 그러면 듣다가 뭐야?” 하고 바로 프랑스에서 어떻게 됐어요? 감옥 털고 일어났죠. 임금, , 죽이고, 처형하고 단두대에.

 

, 그 힘이 어디서 나왔겠습니까? 생각이요. 감히 그런 생각을 못했어요. 반항할 생각을. 임금이 원래 그렇게 하는 줄 알았어요. 저건 하늘이 그렇게 내린 줄 알았어요. “아니야, 주권은 국민한테 있어.” 이 말을 듣고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니까 답이 나온 거예요. 영감을 얻게 되고 답을 찾게 된 거에요. 자명한. 생각이 자명해지면서 자명한 답이 나오면서 인간이 움직여요.

 

여러분이 아무리 실행력이 좋아두요,

생각이 못 미치면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게 무서운 거예요. 저희한테도 너희가 양심 뭐라고 떠드는 게 힘이 있겠냐?” 하시지만, 저희 얘기 듣고요, “양심에 어긋나는 짓 하면 그거는 사람이 아니지. 특히나 정치가가 양심 어기면 그건 내려와야지.” 여러분 발상하시게 되면요, 제일 기득권들이 두려워할 생각입니다. 양심에 잣대로 자신들을 재는 거. 안 쟀으면 싶거든요. 이런 생각하나가 무섭습니다.

 

이게 퍼질 때요, 사람들이 그런 눈을 하게 될 때, 그런 생각 그런 눈빛을 하게 될 때 역사는 바뀌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가 외쳐보는 거예요. 계속해서 유튜브에다가. 우리는 이런 소소한 혁명이 아니라, 개벽을 꿈꾸니까요. 양심으로 한번 이런

 

국민들이 양심에 대해서 자각해 버리면,

인류는 다른 차원으로 간다.

 

이 정도에 어떤 꿈을 갖고 얘기하는 겁니다 그래서 전에 어떤 혁명의 기초가 되었던 이런 개념들, 알아두시는 거 좋습니다. 그리고 방금 말씀드린 거는 과거에 어떤 혁명에 어떤 이론서로 이걸 소개해 드렸지만, 실제로요, 이 안에 양심이니 뭐니 다 들어있습니다. 나올 얘기 다 놔왔다고요.

 

그런데 문제는 인류가, 이 얘기를 듣고 혁명을 일으켰더라도, 이 얘기 중에 뭐만 들린 거예요. “뭐야? 임금 우리가 갈아치울 수 있었잖아. 우리한테 주권이 있었잖아.” 이 얘기만 들으셨지, 주권이 뭔지, 어떤 나라를 세워야 되는지, 여기 나왔던 내용이 아직 전 세계적으로 아직 실현되지 않았어요. 재미있죠. 인류가 당장 와 닿는 것만 실현하지. 그 말이 맞으면 이 말도 맞는 건데, 그 중에 일부만, 부분적인 자명함만 취했지, 이 글 안에 있는 더 큰 자명함을 놓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읽어야 되는 이유가요,

지금 민주주의 시대를 산다면요,

내가 어떤 시대에 사는지 이제 아셔야 되요.

이런 개념으로 이 사회가 만들어졌구나 하는

그런 기본적인 어떤 가르침을 여기서 배우셨으면 하구요,

 

그게 지금 우리가 주장하는 양심혁명과 다 연결되어있습니다. 똑같아요. 같은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루소의 이런 사상은요, 제가 봐서는 그 당시에 유럽을 강타한 가르침이 있어요. 철학이 있어요. 자기들 그 동안 소크라테스나 소크라테스에 또 이미 충분히 많은 얘기들이 좋은 얘기들이 나옵니다만, 중세에 신학을 공부한다고 많이 놓쳤던 거를 다시 이제 소크라테스 읽으면서 되찾고 있던 시대죠. 그런데 그런 어떤 계몽주의 시대에 뭐가 가서 강타하냐 하면요, 서양 계몽주의에 가장 큰 영향력을 주는 사상의 흐름이 있어요. 논어 맹자에요.

 

그때 논어 맹자가 유럽에 번역되면서 볼테르니 이런 철학자들이요, 다 뿅 갑니다. 보고. 자기들이 소크라테스에 입문정신으로 다시, 중세에 어떤 잘못된 걸 바로잡으려는 그 시점에 논어 맹자를 보니까 이미 이 사람들은 다 만들어 놓은 거예요. 신앙에 도움을 받지 않고 인간의 이성과 양심만으로 이상사회를 만들 답을 다 내놓고 있는 거예요. 실제로 중국이 논어맹자의 가르침대로 굴러갔다는 소식까지 들리니까 이 사람들도 충격 받죠.

 

이미 하고 있었잖아.” 라는 데 충격을 받아요. 자기들이 하려고 했던 거를. 나중엔 또 제국주의적으로 또 보니까 허점이 보이니까 다시 침략에 들어왔지만, 그 전에 이미 그때 헤겔까지 해서 다 한번 흥분합니다. 그러면서 비판이 시작 되요. 동양 것에 대한 자기들이 이제 또 어떤 힘을 기르면서 서양철학에서 어떤 자기들 데로 답을 내면서 동양 거를 비판하기 시작하지만, 그 전에 서양문화의 어떤 큰 아이디어, 흐름을 잡아줘요.

 

이 내용도 사실은 저는 논어맹자의 영향이라고 봐요. 이 안에 있는 민권사상같은 게요. 서양에서도 그렇게 생각 못했다니까요. 그런데 그러면서 동시에 동서양이 다 알고는 있어요. 국민한테 뭔가 힘이 있다는 거는 알고 있어요. 동양에서 뭐라고 하나요? 민심이 천심이다. 민심이 천심이다 라는 말을 다르게 하면 민심이 천명이에요. 천명. 백성의 마음이 천명이다. 동양에서 천명은요, 천자, 인명에 해당됩니다.

 

우리의 도덕적 양심의 소리를 말할 때도 쓰구요, 국가적으로 말할 때 천명은요, ‘하늘이 너를 지금 대통령으로 임명했다.’ 하는 고 소리에요. 천명이. 그래서 천명이 바뀐다는 얘기는 뭐죠? 천명이 바뀌면요, 왕에서 내려와 된다는 얘기에요. 그러니까 이게 천명이 바뀌는 거 지금, 혁명이라고 하는 겁니다. 천명이 바뀌었다 그러면요, 내가 천자해야 겠다에요. 천명이 나한테 왔다는 거예요. 하늘이 나한테 명령했다 임금 하라고. 너 내려와라. 동양에서 천명은 지금 대통령 임명하는 거예요. 그래서 임명권이 어디있다고요? 민심한테요.

 

민심이 천심이다 라는 얘기는요,

백성의 마음이 가면 하늘이 임금 하라고 한 거고,

백성의 마음이 떠나면 넌 내려와라 라고 한 거죠.

백성한테 잘하지 못하면 천명이 떠나버린다.

 

이게 서경에서부터 나와요. 논어 맹자 훨씬 이전에. 서경이면요, 요순 때부터의 기록이니까, 우리 단군시대, 5천 년 전부터의 기록이에요. 5천년에서 3천 년 전의 기록들이 적혀있는 게 서경인데 거기에 핵심사상이 천명은 변한다는 거예요. 천명 믿지 말라는 거예요. 은나라가 창시 되구요, 은나라 탕왕한테 제갈량 같은 신하가 있었어요. 이윤이라고. 제갈량보다 훨씬 더 높은 경지의 성인으로 봅니다. 그 이윤이 탕왕 아들한테 충고한 게요,

 

하늘 믿지 마라.

하늘은 덕이 있으면 천명을 내려주지만,

덕을 잃어버리면 곧장 너 자리를 박탈한다.

 

하늘 믿지 마라. 지금 이게 뭐냐 하면, 하느님이 날 예뻐할 거라는 생각 절대 하지마라. 민심이 떠나는 순간, 천명도 떠나버린다. 동양에서는 그럼 결국 민한테 힘이 있는 거죠. 이게 주권이에요. 이게 주권이라는 거예요. 이게 루소가 그걸 주권이라고 설명한 거예요. 국민들한테는 애초에 주권이 있다는. 이 얘기가 결국은 동양에서 예전부터 얘기하던, 결국 백성한테서 힘이 나온다는 거. 내 권력의 근거는 뭐에요?

 

내 천자자리에서 내가 누리는 모든, 요즘 식으로 말하면 위법, 사법, 행정의 모든 권력. 예전엔 이게 정부에서 다 갖고 있었죠. 지금은 국회나 법원이 나눠서 갖지만, 그래도 지금 현재 국회나 법원까지도 다 해서 정부라고 합니다. 좁은 의미의 정부는 행정부인데, 광의의 정부는 입법사법행정의 그 권력을 행사하는 걸 정부라고 그래요. 권력기관이니까. , 예전엔 이걸 우리 조선시대에도 정부가 다 갖고 있었죠.

 

, 요거를 왕이 다 주제하고 있었죠. 요 권력이 다 어디서 나왔다고요? 백성한테 서요. 주권은 백성한테 있더라는 거. 권력을 위임받는 거죠. 어떤 권력을요? 입법권, 사법권, 행정권을 위임받은 거지, 권력은 다 어디서 나와요? 민한테서 나온다. 루소가 이걸 정확히 얘기해요. 주권이란 국민들이 태초부터, 즉 태초 언제냐? 막연히 태초가 아니라, 인간이 처음 사회를 만들 때부터 있었다는 거예요. 본래를 주권이 중요하지 않죠. 이 주권은요, 정치적인 권리거든요. 그래서

 

인간이 공동체를 만들 때부터.

공동체의 질서를 따르기로 할 때부터

이미 주권은 있다는 거예요.

 

주권은 행사되었다는 거예요. 어떻게 행사되었어요? "네가 반장해." 이게 주권행사에요. 동네에서요, 반장하나 뽑아도요, “나 너 말을 들을 게.”라고 한 거죠. “너 말 들을 게.” 하면서 권력을 위임한 거죠. 그 권력을 위임할 수 있는 권리가 이미 주권이에요. 여러분이 주권이 없다면 위임 되지도 않는다는 거예요. “네가 반장해. 내가 너 말 들을 게.” 라고 하는.

 

그러니까 인간이 모여 살면서 리더가 선출되면서, 그런데 이 리더가 선출되기 전에 이미 합의를 본거라는 거예요. 그런 리더를 뽑아서 권력을 주자라고. 그게 여러분 주권이라는 걸 루소가 정확하게 설명해 냅니다. 동양에서도 이미 다 있던 얘기지만, 딱 백성한테 주권이 있다. 동양에서는 백성이 하늘이다. 임금의 하늘이 백성이다. 이런 표현들이에요. 결국은. 권력을 백성이 준다는 거예요.

 

그럼 백성한테 무슨 힘이 있으니까 줄 거 아닙니까. 그 힘이 주권인 거예요. 그래서 주권이 있어서 이 주권의 작용이 사실은 입법 사법 행정인 거예요. 철학 쪽으로 하나가 셋으로 나뉘어요. 무슨 애기인지 아시겠죠. 여러분 주권을 행사한다면 여러분이 나라를 리더 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법을 만들어야죠. 법을 만들 수 있어야 되고. 이 법대로 법을 실행하는 행정권. 그 다음에 법대로 안 지키면 심판하는 사법권이 있는 거예요. 주권한테는 그게 내제되어있는 거예요. 그게 주권에서 파생된 권력들인 거예요. 입법 사법 행정권이. 그거를 위임한 거예요. 주권을 위임한 게 아니고.

 

헌법 제1조에 뭐라고 되어있죠? 주권은 국민한테 있다. 이게 지금 우리 헌법에 이렇게 쓰여진 것도 다 루소의 인민 주권설에서 나온 거예요. 국민한테 주권이 있다. 국민보다 원래 인민이라는 표현이 더 맞아요. 영어 번역에도. 그런데 인민을 자꾸 공산권에서 써서 지금 못 쓰는 겁니다. 인민이라는 말 쓰는 빨갱이다 하는 사람은 무식한 거예요. 인민이라는 말이 원래 더 맞아요. 번역에.

 

그런데 지금 그 학자들이 인민이라고 쓰고 싶어도 못써요. 국민이라고 번역하면 이게 벌써 나라 국자가 들어가잖아요. 왜냐하면 인민이라고 했을 때 그 의미가 더 사는데. 이해되시죠? 백성들. 국민들, 시민들. 이 시민들이 준거에요. 줄 수 있는 힘이 주권이에요. 그리고 주권은 양도가 될까요? 안 될까요? 안 돼요. 지금 민주주의 교육입니다. 주권은 양도가 안 돼요. 절대 안 돼요. 입법권 사법권 행정권만 위임한 거예요.

 

그리고 루소는 더더구나 입법권은 절대 위임하지 말자는 거예요. 이건 국민이 쥐고 있어야 된다. 루소는 그래서 직접 민주주의를 더 중시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임금이랑 우리가 계약을 맺었는데, 임금이 부당해서 쫓겨난 거는 루소식 사회계약은 아니에요. 로크식 사회계약이에요. 그 전에 로크가 주장한 게 군주랑 백성은 계약관계다. 그러니까 군주가 계약을 위반하면 쫓아낼 수 있다.’ 그런 로크생각에.

 

루소의 사회계약은 달라요. 루소는 더 깊습니다. 더 심오해요. 우리가 모여서 사회계약을 맺은 거는 뭘 계약 맺었냐하면요, 권력을 정부한테 위임해 줄 테니까, 루소에서는 지금 입법권을 빼고 얘기하는 거예요. 행정권을 정부한테 위임해 줄 테니까 오로지 국민만을 위해서 결정해라고. 즉 여기서 루소는 일반의지라는 얘기를 해요. 일반의지가 우리가 말하는 결국 양심이구요, 엄밀하게 말하면 양심의 뜻이에요. 일반의지는. 양심이 뜻하는 거. 즉 우리 식으로 말하면 양심의 명령. 일반의지만 따라라. 여러분 마음에는요, 개별의지가 있고, 일반 의지가 있어요. 인간한테는.

 

이 개별의지가 뭐겠습니까?

사심. 욕심. 우리 식으로 이해하면 쉬워요.

일반의지는 양심이에요.

 

그러니까 자, 정부는 국민들의 개별의지를 충족시켜주라는 게 아니에요. 주권을 가지고 이 권력을 정부한테 넘길 때. 일단 넘기기 전에 뭘 계약했다고요? 루소의 계약은요, 정부와의 계약은 계약으로도 안 봐요. 이런 얘기 제가 탁론 때도 해드렸어요. 예전에. 계약으로도 안 봐요. 중요한 계약은요, 국민들이 다 합의한 제일 핵심은 뭘까요? 이 정부를 따르자고 합의했다고 안 봐요. 국민들이 모여서 뭘 합의했다고 봐요? 루소는?

 

양심적인, 양심에는 복종하기로. 일반의지에 복종하기로 합의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앞으로 이 권력을 한 사람한테 몰아주되, 그 사람이 일반의지를 따르는 한은 복종하자. 만약에 양심을 안 따르면요, 복종하지 말자. 이걸 합의 봤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권력을 넘기기로 합의를 봤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권력을 넘길 때 그 기준은 뭐죠? 정당성의 기준은 일반의지. , 따라서 루소는 주권을 다른 거로 안 보고 주권자체를 일반의지의 행사로 봅니다. 주권은 일반의지로 행사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이 , 주권자야.” 라고 할 때 여러분 욕심을 주장하시면 루소식 민주주의 개념에 여러분은 주권자가 아니에요. 1622

 

주권자는 국가를 위해서 뭐가 이득이다. 손해다. 결정하는 그 권력을 주권이라고 하는 거예요. 주권자는 그걸 해낼 수 있어야 주권자에요. 주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주권자죠. 주권이라는 게 뭐라구요? 일반의지에 따라서 법을 만들고, 법을 집행할 수 있는 그 권력의 근원이죠. 주권이. 우리식으로 하면 뭐죠? 양심추구권이에요. 공익추구권. 인간한테는 공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거예요. 그게 주권이에요.

 

이 주권에 따라서 정부를 만들기로 한 거예요. 합의를 본거에요. 그런데 루소는 정부랑은 계약 관계로 안 봐요. 고용관계로 봐요. 이것도 계약이죠. 그런데 루소는 굳이 전인민이 모여서 합의 본거는 이 정부를 따르기로 합의 본 게 아니라, 일반의지에 복종하기로 합의 봤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권력을 정부한테 줄때는 고용관계로 봐요. 그래서 정부가 만약에 행정부죠. 루소입장에서. 입법은 국민이 한다고 봤어요.

 

법은 국민이 만들어 줄 테니까 이 법을 집행할 정부만 우리가 고용하자. 고용계약 이죠. 계약으로 굳이 말하자면. 그러니까 만약에 정부가 양심, 국익을 따르지 않으면 국익을 위하는 마음, 공익을 위하는 마음, 양심을 따르지 않으면 어떻게 하면 되요? 그냥 잘라버리면 되요. 너무 극단적으로 말하는 거 같지만 해고시키는. 해고 개념이라고요. 계약이죠. 그런데 루소는 굳이 여기다 계약이라는 말은 안 붙여요.

 

더 중요한 계약은 양심에 복종하기로 합의 본거로 제일 중시해요. 즉 우리는 황금률에 복종하기로 이미 합의 봤다는 거예요. 이게 루소가 발견한 놀라운 점이에요. 왜냐하면 루소가 사람들이 모두 만장일치로 계약 맺는 건 그거 밖에 없다는 거예요. 이 정부한테 고용하기로 우리가 합의할 때도 다수결정도면 되죠. 만장일치는 필요 없죠. 전 인류가 만장일치로 합의 본 게 하나 있다는 거예요. 계약 맺은 게. 뭘까요? 양심에 복종하기로.

 

그러니까 여러분 누군가 잡혀가도 이상하게 생각 안하죠. 죄를 지은 사람이 잡혀가면 이상하게 생각 안 하죠. ? 양심을 어겼으니까. 이상하게 그건 합의보고 있지 않아요. 이미. 루소식 말은요, 말은 안 되죠. 언제, 원시시대에 전 인류가 모여서 합의를 봤겠어요. 양심 따르기로. 그런데 루소가 계약이라고 합의를 말합니다.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뭔지 아시겠죠. 이상하게 그건 다 동의 하고 있더라는 거예요.

 

합의 봤다고 밖에 말 할 수가 없는 거죠. 그건 다 동의하니까. 인류가 만장일치로 합의를 보고 계약을 맺은 건 그거밖에 없습니다. 양심 따르기로 한 거. 어기면 처벌받기로 한 거, 그거 밖에 없어요. 나머지는 다 그냥 다수결입니다. 그래서 루소가 생각할 때 다수결은 개별의지에 많이 좌우 되요. 사심에 많이 좌우 되요. 다수결로 많은 사람들이 원했다고 해서 그게 공익은 아니죠.

 

, 피자 시킬까? 치킨 시킬까? 다수결로 해서 피자가 압도적이에요. 그렇다고 해서 그게 일반 의지는 아니죠. 공익에 도움이 도는 건 아니죠. 그냥 여러 개별의지가 그걸 원하는 것뿐이죠. 그래서 다수결로 뭘 결정한다는 위험성까지 루소는 다 얘기합니다. 다수결의 위험성은 다수가 차지한다고 해서 그게 일반의지는 아니라는 거예요. 양심은 아니라는 거. 여기 여럿이 모여서요, 집값 올리자하고 다 결정을 해도, 그게 양심은 아니죠. 압도적이라 하더라도 그건 욕심이죠.

 

그래서 일반의지는 철저히 구분해 냅니다. 루소가. 다수결로 압도적인 의지. 전체가 다 이걸 원해라고 하는데 내용은 개별의지일 때는 그걸 전체의지라고 불러요. 루소는. 전체의지지 그게 보편의지는 아니다. , 이런 개념들이 민주주의가 태동할 때 이미 다 나왔던 논리인데, 여러분 들어보셨었나요? 이런 얘기를? 전공하신 분 아니면 모르시죠. 지금 여러분은 민주주의가 뭔지 모르고 민주주의를 쓰고 계신 거라구요.

 

나한테 주권이 있어.” 하는 데, 사실 그 주권이 뭔지 몰라요. 어제 강의하고 바로 나오는데 택시 운전하시는 분이 우리한테 주권이 있는데,” 이런 애기하시는데 다 아시더라고요. 어제 주권 얘기를 하고 택시를 탔는데 주권 얘기를 하시는 분이 계세요. 그런데 실제로 만약에 주권이 뭡니까?” 하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다 각자 다양하겠죠. 뭔가 느낌은 다 있을 실거에요. 내가 뭔가 주인 된 권리라든가, 결국은 여러분이 뭔가 주인권이에요. 주제권이에요.

 

그래서 나라의 주인으로서 국정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여러분한테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주권이 있다는 건요, 여러분 행복추구권 이런 게 아니에요. 천부인권에서 인권은 그냥 여러분이 재산가질 권리, 행복할 권리, 이런 권리구요, 주권이라는 건 달라요. 주권은요, 루소는 이걸 지적한 거예요. 공익적으로만 활용해야 될 권리에요. 주권이라는 거는.

 

모두를 위하지 않을 때는 절대 여러분 주권을 행사한다고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여러분이 뭔가 주권행사 할 때는 국민 전체 이득이라는 양심의 울림 속에서만 여러분 주권이 행사가 됩니다. 이런 얘기가 이미 민주주의 태동할 때 다 나왔다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우리가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를 한다고 해도 제가 이 정도까지,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라 잘 하는 나라도 이 정도까지 지금 주권을 구현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죠. 미국이나 과연 진짜 주권을 구현한다는 게 뭔지 진짜 자각하고 있을까요? 정치가들이?

 

주권을 구현한다는 건요, 국민 하나하나 내면에 있는 양심이 온전히 발현되게 해야 주권이 발현되는 거예요. 그 나라가 주권을 제대로 구현하는 나라라고 말할 수 있는. 주권은 분할도 안 돼요. 루소가 말한. 양도도 안 돼요. 쪼개질 수도 없어요. 주권은요, 각자가 별개로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에요. 우리나라 국민이 전체가 통합적으로 갖고 있는 권한이에요.

 

왜냐? 우리나라를 위해서 의사 결정하는 권리이기 때문에. 느낌 아세요? 주권이라는 것은 신비한 물건입니다. 파고 들어가면 지금 주권에 대한 학설이요, 어마어마해요. 주권이 개인한테 있는가? 집단한테 있는가 부터 지금 설명이 잘 되요. 왜 애매할까요? 양심이랑 비슷해요. 양심을 많이 다뤘죠. 양심이 여러분 겁니까? 아닙니까? 애매하죠. 내 것이면서 내꺼 아닌 마음이죠.

 

내 마음인데 위하기는 모두를 위해요. 이 자식을 나를 위해야 되는데, 그러면 물에 빠진 사람 구하라 하기 전에 양심이 좀 말려야 되는데요, “너 죽을 수도 있어.” 이 얘기를 해줘야 되는데, 욕심이 그 얘기를 하지 양심은 구하라는 얘기만 하잖아요. 왜요? 양심은 모두를 위해 버려요.

 

저의 생명까지도 좀 도외시하는 감이 있다니까요. , 이때 애매하죠. 주권이라는 게 그거에요. 주권은 철저히 양심을 추구하는 권리이기 때문에요, 행사하는 권리이기 때문에 양심의 뜻대로 주권은요, 국민 전체 거예요. 그러면서 또 여러분 거예요. 그래서 이게 학자들이 지금 이것 때문에 아주 혼란스럽습니다. 주권을 정확히 뭐라고 규정해야 할지 아직 몰라요.

 

아무튼 국가최고의 의사 결정권은 맞는데, 거기까지는 다 합의를 보는데, 이게 누구한테 있느냐 하면 벌써 어려워져요. 주권이 양도되느냐 가지고도 설이 있고, 루소는 아무튼 양도 안 된다. 저건 인간 본연의, 국민이면 갖고 있는 권리이기 때문에, 루소는 국민이면 갖고 있는 권리라고 보는. 공동체 안에 소속된 사람은 다 갖고 있는 권리. 양도가 안 되는.

 

그런데 저희가 볼 때는, 좀 다른 입장은 루소는 어떤 합의를 보면서 이런 주권이 작용했다고 본다면 저희는요, 그 이전에 인간의 양심을 갖고 태어나기 때문에 양심에서 나오는 자연스런 발현이라고 보죠. 합의를 본 게 아니라. 합의를 통해서 우리가 양심에 복종하자하고 계약을 맺은 게 아니라, 합의를 한 게 아니라, 그렇게 프로그래밍이 되었다는 거예요. 저희 입장은.

 

애초의 사람 모이면요, 합의 본 것처럼 그렇게 양심 안에 복종하면서 살아가게 우주적으로 프로그래밍이 되었다고 보는 거예요. 이해되시죠. 이게 아주 그렇게 정신철학자들의 입장이고, 루소의 입장은 최대한 철학자이면서도 이 분이 정치학적으로 써 준 거에요. 마치 계약을 맺은 것처럼 그렇게, 만장일치로 계약을 맺은 것처럼, 우리가 복종하고 따라야 된다는 거죠. 이 합의에 대해서는. 아무튼 상관없죠. 결과는 똑같아요. 무조건 양심 따르셔야 되요.

 

, 그럼 이 얘기를 왜 드렸냐? 여러분한테 주권이 있고 여러분이 주권자라는 자각을 하시지 않으시면 여러분이 지금 이 땅에서 민주주의를 온전히 구현할 수 있는가 이거죠. 국민의 주권을 최대한 발현하게 도와주는 지금 정치이념이 민주주의인데, 여러분 민주주의 시대를 살면서 주권을 제대로 발현하고 계신가요?

 

그러면요, 일단 루소처럼 입법을 아예 국회도 안 뽑고 국민이 하는 건 아니죠. 우리는 입법권도 넘겼단 말이에요. 국회에다. 그러면 이게 지금 골 아파지는 거예요. 우리 뜻대로 법을 안 만들 때 어떻게 하죠? 이 양반들이 국민전체를 위해서. 즉 여러분 한 이익집단을 위해서 법을 만드는 걸 잘한다고 생각하시면 안 돼요. 진짜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회의원은 일반의지에 의거해서 법을 만들어야 되요.

 

양심을 밖으로 표현한 게 법인 거예요. 그러니까 누구 소수 집단, 특정집단을 위해서 법을 만드시면 안 되는 거예요. 또 집행부두요, 특정 집단을 위주로 법을 집행하면 안 돼요. 일반 의지에 의해서 법을 집행해야지. 양심에 의해서. 특정 집단을 위해서 법을 집행하면 어떻게 되죠? 지금 딱 우리나라 꼴이 나는 거죠. 이런 측근들과 이런 비선실세들을 위주로 법이 굴러가버리면 이거는 루소식으로는요, 바로 해고해야 되요.

 

그런 짓거리가 발각되었다. 바로 해고에요. 지금 그런데 이게 탄핵도 쉽지 않죠. 발각되었는데도. , 뭐가 문제인지 아시겠죠. , 지금 뭐가 문제인지를 알아야 바로잡습니다. 그냥 막연하게 생각하시면. 저쪽도 주권이고 나고 주권이다. 이런 개념이 아니에요. 주권의 행사는요, 양심에 따르지 않을 때 그건 주권이라고 할 수가 없어요. 국익 전체에 도움이 안 되는. 개별의지의 주장은 우리가 주권행사라고 안 봅니다.

 

그래서 이런 거 개념을 좀 아시고 주권, 내가 그러니까 진짜 나는 국익을 위해서 내가 마음을 쓰는지 뭘 해야 되요? 민주시대를 살아가시려면, 요건 필수입니다. 루소식으로 말하면 일반의지도 되요. 나의 의지는 일반의지인가? 개별의지인가를 분석을 통해서 ', 내가 개별의지 많이 섞였네." 그러니까 "내가 그만큼 온전한 주권행사를 못하네." 이거를 판단하는 루트가 없어요. 루소주장에도 어려워요. 그게.

 

루소 주장대로 구현하려고 해도 어려워요. 일반의지를 각자 어떻게 판단해야 될지. 어렵죠. 그래서 그 부분이 사실은 실행이 안 되는 겁니다. 전 세계적으로. 그래서 그냥 우리 전체의지, 전체적인 개별의지면 되지 하고 다수결로 대충 문제를 해결하게 하면서 가니까, 선동 잘하는 사람들이 그럼 다수결에서 위만 점하면 되니까 꼼수를 부려서 지금 전혀 일반의지랑 상관없이, 양심이랑 상관없이 나라를 굴리고 있는 현 상황이 지금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의 상황입니다.

 

그래서 이거 한번 읽을 만하죠. 제가 요거 간단하게 조금 소개해 드릴게요. 아무튼 인민한테 국민한테 주권이 있다. 이게 지금 루소의 핵심사상이구요, 유명한 역사학자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세계사는 로소의 사회계약론이 읽히기 전과 후로 나뉜다.] 국민이 주권이 있다는 걸 알아버렸거든요. 그러면 달라져요. 상황이. 그래서 루소가 재미있게 표현합니다. 주권이 사람한테 의지와 힘이 필요하듯이 주권도 의지와 힘의 작용을 일으킨다. 그래서 의지는 입법이고, 힘은 행정이다.

 

이렇게 해서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이게 맹자 식으로 얘기하면 양지양능이에요. 양심에는 지적인 능력 양지와 실천 능력 양능이 있다. 그래서 양능은 행정, 사법도 행정 안에 들어온다고 봅니다. 루소는. 그래서 행정이고, 입법은 법을 만드는 거니까, 판단의 영역이죠. 판단의 영역, 이쪽은 실천의 영역. 이런 식으로 루소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루소가 이런 의견이에요.

 

[내 의견이 국가의 공적인 일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아무리 미약하다 할지라도 자유국가의 시민으로 태어나 주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투표권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정치에 대해 알아야 할 의무를 당연히 지닌다. 따라서 나도 이런 책 쓸 자격이 있다.] 이러면서 사회계약론을, 일반 시민이 이런 책을 왜 썼느냐. 이런 자격이 있다. 그래서 사회계약 책을요, 요약해주면서 이 저자 분이 중요구절을 인용해주고 쉬운 설명, 요즘 촛불집회까지 다 이렇게 넣어서 설명을 해주셨죠. 읽기 편하게 해 놨습니다. 책도 얇아요. 한번 보시기 편한데.

 

아무튼 가족조차도 계약에 의해서 결합된 거다. 동물세계 같으면 가족이 이루어졌다 또 깨질 수도 있는데, 인간은 쉽게 말하면 어떤 암묵적 합의를 보고 있다는 거예요. 뭔가 싫어도 떠나지 않고 가족을 계속 유지해야 하는. 그것부터 이미 어떤 합의라는 거죠. 일반의지에 복종하자는 합의가 있다. 나 이상에, 전체를 위해서 나를 맞추고 있는 합의가 이미 들어가 있다는 거예요. 요런 것도 한번 생각해 보시고,

 

우리가 다수결로 어떤 일을 결정한다고 할 때, 루소가 아니라 이 책을 지으신 분의 설명인데요, 재미있는 겁니다. 우리가 다수결로 뭔가 결정하죠. 그런데 [다수결로의 의견을 따르기로 한다는 원칙은 만장일치로 동의를 해야 됩니다.] 재미있죠. “, 다수결이 문제지 무슨 만장일치야.” 다수결로 하자는 걸 만장일치해야 되요. 재미있죠. 아니 그러니까 우린 암묵적으로 다수결로 하자는 것에 대해서 만장일치를 하고 있어야 되요.

 

그래서 이게 그 얘기를 하는 거예요. 우리가 다수결로 정부를 뽑더라도 그 이전에 정부에 복종하고, 즉 정부가 양심적일 때 복종하고, 양심적이지 아닐 때 복종하지 말자는 이미 그 합의는 사전에 하고 있어야 된다. 그것도 전체가 한명도 빠짐없이. 그래야 법이 집행이 되고 사회가 만들어진다는. 그래서 요런. 결국 인간 안에 우리 같으면 뭐라고 할까요? 양심이 원래 내재되어있으니까 사회가 만들어집니다. 제가 강의 중에 항상 얘기하지만,

 

측은지심이 있으니까 다른 사람을 공감하고, 수호지심이 있으니까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사양지심이 있으니까 다른 사람하고 배려하면서 각종 예절과 문화를 만들어내고, 시비지심이 있으니까 옳고 그름을 따지면서 학문을 만드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사회가 형성이 되요. 이거를 루소는 합의를 봤다고 생각하는 거죠. 어떤 합의를 언젠가 보지 않았겠느냐.

 

그런데 합의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생겨먹어서 그래요. 프로그램이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시민으로서, 일반 시민으로서의 어떤 권리가 있구요, 주권자로서의 권리가 있어요. 주권자는 공익적인, 즉 국가전체의 이해득실을 판단하는 결정권이기 때문에 여러분들 주권을 갖고 있다고 했을 때 그 주권을 행사하려고 할 때는 철저히 여러분이 공인으로 판단하셔야 되요. 사인으로 판단하시면 안 돼요.

 

지금 우리나라 문제아시겠죠. 지역구 체계도 문제인거에요. 지역사람들한테 이득 주겠다고 사탕발림을 해서 당선이 되어서 활동은 국가의 국회의원으로 활동합니다. 뭔가 이상하죠. 뭔가 이상하잖아요. 그러니까 애초에 뽑힐 때부터 용도에 안 맞게 뽑히는 거예요. 지금 이런 거 다 이거 바로잡지 못하면, 뭐가 옳은지 그른지 다 따져 보시지 못하면, 민주주의라는 거는 그러니까 국민이 진짜 주권자 대접받는 이런 사회에 우리는 못살아봅니다.

 

그래서 이런 내용을, 그래서 연구해야 되는 거예요. 따져봐야 어디서부터 계약이 잘못되었는지도 아시고, 뭘 따질 건지도 아시지 않겠어요? 그럼 뭘 계약했느냐? 사회계약에. 합의된 조항은 단 하나의 조항만 합의했다.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모든 권리를 공동체에 완전히 양도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런데 그때. 우린 저마다 자신의 신체와 모든 힘을 공동의 것으로 만드는데, 일반의지라는 최고 지위권 아래에 두자라고 사실은 합의했다는 거예요. 일반의지 아니면요, 맡길 수가 없어요.

 

어떤 개별의지한테 여러분 권력을 양도할 수 있나요? 그 사람 마음대로 쓰라고? 그럼 노예죠. “너 나의 모든 걸 마음대로 써.” 하고 준다는 건 노예죠. 너의 개별의지를 위해서. 이게 노예입니다. 우리 모두는 한 몸이 되어 분리될 수 없는 한 부분. 즉 그렇게 합의를 봤다. 합의를 보는 순간 우리는 일반의지에 복종하는 전체가 한 덩어리가 된다는 거예요. 그걸 여러분이 주권자라고 할 때는 그 주권에 어떤 한 분자로서 지금 작용하는 겁니다.

 

그런데 또 쪼갤 수도 없는 거예요. 왜냐? 우리 각자 모두가 국익을 위해서 결정을 해야 되기 때문에. 아주 오묘한 개념입니다. 그래서 이걸 감이라도 잡으셔야지, 내가 주권자로서 어떻게 살 건가를 결정하실 수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 주권자로 산다는 거는요, 내 개별의지를 추구하되, 욕심을 추구하되, 저희가 항상 주장하는 게, 욕심을 추구하되 나의 어떤 판단과 실천이 항상 주권자로서 당당하시려면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결정하셔야 되요. 특이하죠. 개인적 결정 같지만 개인적결정이 아닌 거예요.

 

그래서 루소는 일반의지는 잘못될 수 없다고 봐요. 이런 게 일반 정치학자들이 못 받아들이는 내용입니다. 루소의 내용 중에. 뭐지? 형이상학적이잖아요. 루소가 철학자라서. 루소는 서양철학 중에 양심을 제일 강조한 철학자 중에 한 사람이에요. 실제로. 여기선 지금 일반의지라는 말을 쓰지만 에밀이나 이런데 보시면 양심만이 신에게 다가갈 수 있는 인간이 지닌 유일한 것.’ 이런 식으로 양심주의자입니다. 그래서 이걸 정치학적으로는 일반의지라고 표현한 거예요.

 

, 좀 더 볼게요. 책 제목이 아예 그래요. ‘오로지 일반의지에만 복종하라.’ 소제목이. 민주주의국가에서 정당한 권력은 오로지 일반의지뿐이다. 선의지에요. 칸트의 선의지에요. 선한 의지뿐이다. 사실 각 개인은 시민으로서 갖는 일반의지와 상반되는 개별의지를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다. 개인의 사적인 이익과 공동의 이익이 전혀 다를 수 있다. 충돌날 수가 있다. 이 두개가. 꼭 상반되는 건 아니지만 충돌할 수 있다.

 

그래서 만약에 다수결에 따라서 다수가 공통으로 갖고 있다 라고 말한다면 그런 개별의지는 전체의지라고 불러야지, 일반의지는 아니다. [사회계약이 공허한 형식에 그치지 않도록 일반의지에 복종하기를 거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집단전체가 강제로 복종시킬 것이라는 약속을 암묵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사회계약에는.] 만약에 일반의지를 안 따르면 우리가 강요도 하고 처벌할 수도 있다는 거죠. 이런 말 좀 논란이 많았고 위험하게 여깁니다. 일반의지가 뭔지를 모르니까요.

 

어떤 놈이 일반의지라고 들고 나와서 백성을 잡아가둘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지금 루소의 말을 대게 경계하면서 읽는데, 뭔 얘기죠? 황금률 어기는 사람은 지키라고 강요할 수 있다는. 그게 아니면요, 지금 루소 말은 지당한 말이에요. 이게 아니면 여러분 법으로 사람 가두면 안 돼요. “아니 내가 도둑질 좀 했다고 왜 잡아가요? 왜 나를 좁은 독방에 가두는데요? 나의 어떤 행복추구권이나 이런 걸 다 무시하고.” 이상하죠.

 

오로지 근거는 뭐 밖에 없죠? 일반의지에 복종하라는 거 밖에 없어요. 그래서 양심에 복종하라는 건요, 인류가 모여 살면요, 그건 가장 기본 합의된 내용이어야 됩니다. 그래서 루소는 그 얘기를 한 거예요. 이것도 잘 좀 못 받아들이시는 거 같아요. 아무튼 요즘 학자들이. 요런 말. 일반의지에 대한 확신이 없으신 거예요. 그래서 자연 상태에서 욕심, 욕망에 충동대로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노예고, 사회 속에서 스스로 정한 법을 양심에 따라 지키는 것. 일반의지에 복종하는 것. 이것이 오히려 자유다.

 

그러니까 자연 상태에서 짐승처럼 사는 게 자유가 아니라, 인간은 그건 오히려 욕망의 노예상태고, 스스로 정한, 주권에 의해서 정한 법을 주권을 가지고 지킬 때 여러분이 진정한 주권자가 되고, 진정 더 나은 인간이 된다는 거예요. 사회 속에서 우린 더 훌륭해 진다. 제목이 아예 그래요. [사회 속에서 인간은 더 나은 존재가 된다.] 그래서 온갖 불평, 사회가 불평등하다고 하는 걸 루소는 이렇게 봐요.

 

자연적 불평들이 존재하는 거지, 원래 이거 타고나기를 불평등하죠. 재능이나 외모나 모든 게 다 불평등하죠. 그런데 오히려 이 우리가 사회계약을 통해서 구현하는 주권의 구현은요, 오히려 이런 평등을 불평등의 요소를 일반의지에 복종하는데 어떻게 불평등의 요소를 용납해요. 오히려 인간이 후천적으로, 평등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거예요. 사회계약을 통해서 우리는 평등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래서 모든 인간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불평등은 사회계약을 위반하면서 일반의지를 위반하면서 만들어지는 거지, 타고나기를 불평등한 거는 사실은 문제가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런 불평등을 오히려 극복할 수 있는 게 우리가 사회계약을 통해서 만들어 낸 인간의 이런 사회인데요, 그래서 보세요. 자연적 불평등은 타고 나는 걸 말하지만, 사회적 불평등은 사회계약 이후에 권력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차별을 말한다.

 

그래서 사회적 불평등, 잘못된 사회제도에서 사회적불평등이 생겨나니까 공동체가 노력하면 다 그거는 극복할 수 있다고 보는 거예요. 여러분이 느끼는 불공정 불평등은 주권자로서 여러분이 사실은 바로 잡아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도 한 분자로서 분명히 당당히 바로 잡을 권리가 있습니다. 이게 민주주의 시대만 그런 게 아니에요. 루소 생각에는요, 군주정이건 귀족정이건, 민주정의건 집행부의 그거는 성격의 차이지, 주권은 어느 시대에나 국민한테 있었다고 루소는 보기 때문에, 자기한테 주권이 있는지 아는 시대와 모르는 시대가 있는 거지, 아는 이상은 당당하게 국민이 법도 일반의지에 맞는 법을 만들고, 일반의지에 따라서 법을 집행하라고 강력하게 주권을 가지고 요구해야 되요.

 

그런데 다수죠. 다수다보니까 이게 개미주가 되어서 무시, 자꾸 꼼수를 부려서 무시하는 겁니다. 일단 권력을 잡고난 뒤에는, 집행부가. 입법부가. 지금 루소랑은 상황이 다르지만, 루소가 원했던 거는 아니지만 우리는 국회까지도 만들어서 입법권을 넘겼기 때문에, 사실은 다 넘길 필요가 없어요. 입법권은요, 입법권은 지금 국민이 법을 만들 수 있어야 되요. 지금 우리나라가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닌 겁니다. 국민이 법을 아예 못 만들게 막는 건 불가능해요. 일부를 우리가 양도하는 거지.

 

그래서 이번 선거 때 아주 그거 다 주장하던데요, 국민발안권. 국민도 법 만들게 하자는 거죠. 그러니까 주권자로서 대접받으려면 지금 여러분 뭐만 있으세요? 투표권만 있으세요. 실질적으로. 가서 들러리지, 집행부 뽑을 때 가서 들러리만 서 주시는 격이에요. 입법사법행정을 여러분이 아무도 힘을 행사를 못해요. 주권자가. 소외되어있어요. 권력으로부터. 문제 있죠.

 

? 일반의지에 복종하지 않으면 바로 소외 되요. 국민이. 정부가 일반의지에 복종하지 않으면. 그래서 지금 여러분, 저희가 홍익당이 양심이 답이라고 외치는 게 지금 추상적인 얘기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피해당하고 있는지 양심이 아니면 설명이 안 돼요. 집행부가 "아니, 내가 내 개별의지 좀 추구하는데 뭐가 문제야" 라고 주장하면 뭐라고 하실래요?

 

그럼 내려와야 되는 거예요. 거기 있으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지금 태극기 든 분들이 뭐라고 그래요? “아니 뭐 거 좀 했다고 왜 그래? 친구 좀 챙겨줬다고 왜 그래?” 그럼 내려와야 되는 거예요. 원래. 이게 뭔 얘기인지 아시겠어요? 계약서를 꼼꼼히 보셔야 되요. 주권이 국민한테 있다는 거 안에, 이런 내용이 다 들어있다고 보시면 되요. 그래서 헌법은 고쳐져야 되요. 어느 시점에서 건.

 

국민이 법 만들 수 있게 해줘야 되고, 또 하나 중요한 거, 바로 바로 해고할 수 있는 권리를 국민한테 줘야 되요. 국회의원부터, 지금 국회의원 소환권도 제대로 안 되어있죠. 헌법에 탄핵도 어렵게 되어있죠. 분명하게 지금 권한에 넘어선 행동을 했다. 헌정 질서를 파괴했다. 이런 게 분명하게 판단되면 바로 해고되어야 되요. 원래. 국민주권을 존중한다면. 이해되시죠?

 

일반의지, 양심 어겼다는 게요, 분명해지면요, 해고나 이런 파면이 쉬워야 됩니다. 소환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그런 얘기들이 나오는 거예요. 지금. . 보세요. [주권은 일반의지에 행사일 뿐이다. 루소는 주권은 일반의지가 뭔지 결정하고 행동에 옮기는 권력]이래요. 주권은 일반의지가 뭔지, 법으로 표현하고, 일반의지를 결정해야죠. , 보세요.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의 일반의지를 어떻게 결정하죠? 지금 법을 만드는 걸 말해요.

 

법으로 표현되는 게 뭐죠? ? 지금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살자라고 양심을 문원화 해 놓은 게 법이에요. 일반의지를 결정하고 실행한다는 건 그 법대로 집행하는. 그럼 끝이에요. 여러분 정치 자체도 여러분 달리 보셔야 되요. 루소가 생각한 정치는요, 올바른 민주정치는요, 그냥 일반의지에 복종 잘하는 사람들 뽑아놓고 그 사람들이 법대로 집행하면 끝나는 거예요.

 

무슨 화려한 개인기 이런 게 필요한 게 아니구요, 그냥 양심적인 사람만 뽑아 놓으면 루소 때랑 달리 우리는 국회까지도 지금 만들어가지고 입법권도 넘겼잖아요. 그럼 입법하는 사람들은 뭐만 잘하면 되요? 일반의지를 법으로 표현만 잘하면 되요. 그리고 집행부는요, 그 법대로 집행만 하면 되요. 사법부는 그 법대로 판단만 하면 되요. 그런데 지금 보니까, 다 개별의지로 법을 만들고, 개별의지로 나라를 굴리고, 최근에 삼성 판결나고 난리 났죠? 국민여론이. 자기마음대로 법을 판단하는 거예요. 개별의지로. 일반의지를 무시하고. 이해되시죠. 4349

 

그런데 만약에 일반의지로 포장된 개별의지, 전체가 원한다고 선은 아니잖아요. 전체가 원한다고 해서 막 들어주는 거를 포퓰리즘이라고 하는 겁니다. 개별의지를 막 들어주는 걸 포퓰리즘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뭔가 보고 있으면 답답하죠. 저건 나라에 도움이 안 되는데, 막 지르는 거 같아요.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욕심만 충족시키고 있지 양심 충족이 아니라서 불안한 거예요.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역량 안이면 괜찮은데 역량을 벗어났을 때는 그게 우리 전체한테 피해라는 생각이 주권자로서 당연히 드시는 거라구요.

 

그래서 이 주권은 누가 준건 아닙니다만, 국가를 우리가 인간 본연으로 사실은 타고난 거고, 그거를 우리가 공동체를 만들 때부터 우리가 행사를 해서 계약을 하면서부터 행사에서 이 사회를 만들고 지금 굴리고 있는 거죠. 그래서 이 주권을 중시해야 됩니다. 주권자는 집합적 존재이다. 우리 국민 한명 한명이 따로 갖고 있는 게 아니라, 국민 전체가 갖고 있다. 왜냐? 국민 전체를 위하는 마음이니까 국민 전체가 갖고 있다고 밖에 루소도 말을 못하는 거예요. 한명이 갖는 순간 이건 개별의지가 되니까.

 

그래서 오직 자기 자신에 의해서만 대표될 수 있다. 절대로 양도할 수 있는 의지가 아니다. 우리가 국민의 일원인 한, 이 주권을 양도할 수는 없다는 거예요. , 이런 얘기도 있구요, 그래서 주권은 일반의지에 행사이기 때문에, 양심의 행사이기 때문에, 양도할 수도 없고, 분할 될 수도 없다. 절대로 이건.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집행부나 이런 사법부한테 권력을 넘겼다 해도 주권은 우리가 쥐고 있기 때문에, 이 얘기를 왜 계속 강조할까요?

 

권력을 넘겨줬다고 해도 저쪽이 깽판을 치면 곧장 자를 수 있는 힘 자체, 즉 주권의 행사는 여전히 국민한테 있다는 거예요. 주권행사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이해되시죠. 주권이 만약에 넘어가 버리면 이제 따질 수가 없어지는 거죠. 따질 수 있다는 거예요. 법을 만들고 법을 집행할 수 있는 힘의 근원은 국민한테 있기 때문에. 이게 주권이 국민한테 있다는 얘기에요. 그럼 여러분이 법을 만들고.

 

개인으로 하자는 게 아니라, 국민전체가 합의를 봐서 법을 만들고, 집행부를 새로 구성할 수 있다는 거예요. 주권자가 그 힘을 갖고 있다는 거예요. 지금 집행부에 끌려가지 마시라고요. 지금 행정부에 끌려가지 마시라고요. “어떻게 임금한테 그래?” 이런 마인드를 가지신분은 지금 민주시대를 살 자격이 없으신 분이라는 얘기를 제가 아까 드렸죠? 왜 그런지. [의지들 간에 서로 상쇠하고 넘치거나 부족한 거, 과하고 부족한 거를 다 빼고 나면, 상이한 의지들의 합으로 일반의지가 남을 것이다.]

 

우리가 뭔가 토론을 하고 연구할 때는요, 일반의지를 찾기 위한 토론을 해야 됩니다. 공적인 토론을 할 때는. 모두에게 이로울까를 토론을 통해서 과한 거 부족한 거 빼고 나면 자명하게 나온다는. 이게 동양의 예전에 순임금이 이 분이 진짜 서경 같은 거 보시, 논어 맹자 중용 보시지 않았나 싶은 게, 중용에 나온 말입니다. 공자가 순임금 칭찬할 때, 순임금은 항상 양극단을 파악하고 중간만 국민한테 쓰셨다. 죽이죠.

 

여러분 이 유교 무서운 거 아셔야 되요. 그래서 이게 다 통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개별의지란 전체의지란 일반의지란 설명을 해줍니다. 일반의지가 뭔지 알기가 어렵다. 중요한 건 일반 의지. 여러분 이거 쓰셔야 되요. 이거 안 쓰면 몰라요. 이거 안 쓰면 개별의지에요. 진짜 여러분. 일반의지가 아니란 말이에요. 사심이에요. 사심. [사람들은 진정으로 자기에게 뭐가 좋은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분, 제목이 이래요. ‘일반의지는 내 맘속에 있다.’ 양심은 내 맘속에 있다. 일반의지는 잘못될 수 없다. 라는 주제의 루소의 글을 이렇게 표현했는데 보세요. [일반의지에 복종하기를 거부하는 자가 있다면 강제로 복종시켜라. 이런 말이 있는데, 루소는] 그래서 국가는 어떤 부분적 집단도 존재하면 안 된다고 주장해요. 왜냐하면 여러분, 루소는 정당제도에 반대하는 겁니다.

 

당이 쪼개져있으면 이놈들은 당리당략만 따지지, 절대로 일반의지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당을 만들어도, 만약에 우린 정당 제도를 가져야 되니까, 어떻게 해야 되요? 일반의지를 추구하는 정당을 만들어야 되요. 만들더라도. 어느 당처럼요? 이 홍익당처럼. 가치가 오로지 뭡니까? 양심을 대변하겠다. 지금 이 말이 왜 나왔는지 아시겠죠? 저도 이 책 사보고 알았어요. 내가 그 말을 왜 했구나하는 걸. 다 연결 되어있습니다.

 

, 그래서 파벌이 있으면 안 돼요. 이게요, 이것도 똑같은 게 서경에 홍범구주 있죠? 거기 황극사상에서 임금이 일반의지의 최고 전문가를 임금으로 삼자는 게 동양의 황극사상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따라서 하기만 하면 우리도 다 양심에 맞게 살 수 있는 그런 사람을 임금으로 뽑아라. 황극. 이 황극의 가르침을, 황극의 명령을 가로막는 파당을 절대 짓지 못하게 하라고 해서 홍범구주에서 탕탕평평하게 하라고 해서, 나중에 우리나라 영조 때 탕평책이라는 당을 고루 들여다 쓸 때 차별하지 않겠다고 할 때 탕평책이라는 말을 쓰죠? 그걸 홍범구주에서 왕도 탕탕평평이라고. 왕도, 임금이 양심을 집행할 때 가로막는 파벌들이 있으면 안 된다는 주장에서 나온 거예요.

 

루소도 똑같은 주장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기왕에 당이 있고, 이익 집단이 있으니까, 뭘 요구하면 되겠어요? 그 사람들도 한 개인으로 보셔야 되요. 즉 새누리당이 뭔 주장을 한다. 개별의지로 일단 보셔야 되요. 민주당이 뭘 주장한다. 그 당의 개별의지에요. 자기 당선되고도 싶은 마음, 우리 당이 더 많이 장악했으면 하는 마음, 권력을 다 개별의지잖아요. 그건 개별의지입니다.

 

그걸 공익으로 포장하면 안 돼요. 그 양반들 말 중에 양심에 맞는 것만 일반의지에 맞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정당이라고 해도 얼마나 진짜 국익을 위해서 얘기하고 있을까요? 이거 다 분석하실 수 있어야 되요. 주권자가 할 일이 많죠. 피곤합니다. 공부하셔야 되요. 안 그러면 여러분 주권을 못 챙겨 먹으시니까. 그래서 자, 이 분 말 재미있죠. 저자분의 말이에요.

 

[루소가 생각하기에 일반의지란 양심과 비슷한 거 같다. 자신의 마음속을 가만히 잘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모든 사람이 일반의지를 발견할 수 있다.] 이거 제 주장 아닌가요? 민심을 알기 위해서 국민들을 다 붙잡고 얘기할 필요 없습니다. ? 자기 양심에 당당한 게 모든 국민이 원하는 거거든요. 자기 양심에 대해서 확신이 있으면. 일반의지 전문가, 양심 전문가는 알 수 있어야 되요.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다 일반의지를 발견할 수 있다는 거예요. [누구나 양심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은, 공동체를 위하는 마음은 밖에서 찾아 헤맬게 아니라, 자기 마음에서 찾아야 한다. 그런데 파벌이 형성되다 보면 사람들은 자기 내면의 귀를 기울인 대신에 파벌의 이익을 추구하게 된다.] 이 분이 써놓은 신 글입니다. 루소 글을 설명할 때. 재미있죠.

 

이거 보면, 거의 홍익당의 입장을 너무 잘 설명해 놓은 신 거 같아서, 이 책이 참 마음에 들어서 제가 읽어드리고 싶었는데요, 제목만 보실래요? 자세한 내용은 읽어보세요. 법은 일반의지의 기록이다. 양심의 기록이 법이다. 그러니까 법 만든 사람들은 일반의지는 루소의 주장입니다. [언제나 옳지만, 일반의지를 이끄는 판단이 항상 현명한 것은 아니다.] 일반의지를 인간들이 이렇게 법으로 만들고 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생긴다는 거예요. 일반의지 자체는 분명히 옳지만.

 

이런 말을 정치학자들은 잘 못 받아들일 거 같아요. 일반의지라는 게 뭔데 옳다고 이렇게 했는지 판단이 안 되실 텐데, 양심이 일반의지라는 걸 아시면 당연한 얘기고, 요 애기를 드리고 싶어요. [사심 없는 사람이 입법자가 되어야 된다.] 그러니까 루소는요, 국민들 중에서도 제일 사심 없고, 이해관계 초연한 사람들이 법 만들면 된다고 봤어요. 국민들 중에.

 

국민들 중에 로스쿨 나오거나 법학과를 나온 사람이 법을 만들라고, 사시패스한 분이 법을 만들라고 생각한 게 아니고, 루소는요 일반인 중에 지극히 일반의지에 더 민감한 사람. 그러니까 이해관계가 조금 뭔가, 좀 더 초연한 사람. 그런 사람들이 일반 의지를 제일 잘 읽어낼 거라고 보고, 그 사람들이 법 만들면 된다고 봤어요. 법 전문가는 뭐만 해주면 되요?

 

여러분 뭔 사안 있을 때, 법무사나 이런 분 찾아가서 법적문서로 만드는 건 그 분이 만들어주지만, 내용은 여러분이 원하는 걸 부르죠. 어떻게 법 만들면 되는지 아시겠죠? 국회의원 뽑을 때요, 변호사나 법전문가를 뽑아서 좋은 법이 나오는 게 아니구요, 일반의지를 제일, 양심의 전문가, 양심을 제일 잘 읽어낸 사람을 뽑아놓고, 법 전문가들이 조금 도와주면 되요. 법 전문 형식으로 만드는 것만 도와주시면 되지, 내용은 뭐라고요? 양심에 제일 전문가가 만들어야 된다는 게 루소의 주장.

 

그래서 절대 이것만은요, 따로 국회의원 뽑지 말라는 거예요. 루소는. 법은 그냥 국민 중에 제일 평범한 국민이 만들면 된다는. 너무 잘 살면 안 돼요. 개별의지가 작동해요. 그렇죠? 아파트를 어디다 사놓고 지금 국회에 들어가시면 아무래도 마음이 그쪽으로 쏠리잖아요. 그래서 루소의 생각에는 [입법자는 이왕이면 입법자가 제일 훌륭해서 일반의지를 다 알아내는 사람이면 제일 좋고] 양심전문가면 제일 좋은데, 루소도 [그런 사람은 거의 신적인 사람이라고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누가 탁월한지는 모르지만, 최소한의 조건] 개별의지에 어떤 작용이 제일 덜한 사람을 뽑아놓으면 된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3자의 입장에서 공평무사하게 법을 만들어 줄 사람을 찾으면 되는데, 사실은 어렵다.] 지금 이제 이 저자분의 말입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정당이 많아두요, 선거 때마다 뽑을 사람이 없다고 우리가 한탄하는 이유는, 대중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이나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유가 나오죠. 왜 이렇게 답답하셨는지. 너를 뽑기는 뽑는다만 진짜 싫다. 이런 마음으로. 다음엔 보지말자. 이런 마음으로 뽑으시고 있다면요, 뭐가 문제인지 아시겠죠. 이 사람은 내가 뽑아줘 봤자, 나를 위해서 일할 게 아니라, 분명히 자신의 개별의지를 위해서 일할 게 너무 확실해요. 온몸에서 풍겨요. 그런데 이 사람을 뽑을 수밖에 없어요. ? 딴 사람은 전과까지 있어서.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뽑는 입장이 얼마나 답답할까요? 주권자의 입장이. 저희가 양심정당 만들자는 게 뭔지 아시겠죠? 국민들 뭔가 찜찜함이 없어지는 그런 정치를 한번 구현해보자는 얘기밖에 아니에요. 우리 안에 있는 찜찜함이 사라지면 좋겠다. 욕심에서 오는 찜찜함이 아니라 근원적으로 양심을 만족시켜드리는 정당이 나오면 좋겠다. 나아가서 그런 정부가 들어서면 좋겠다. 이런 말이 그냥 나오는 말이 아닙니다. , 조금만 더 읽어드릴게요.

 

[좋은 입법자를 찾으려면] 여러분, 어디 로스쿨 가실래요? 어디 가실래요? [어렵지 않다. 아주 똑똑한 사람보다도 평범함이 이를 데 없는 사람이 더 적합니다.] 서민이 더 적합해요. 그래야 서민들한테 보편적으로 필요한 얘기를 더 잘하겠죠. [일반의지는 우리 마음속에 있기 때문에 일반의지를 발견하고 실천할 수 있을 만큼 양심적인 사람이기만 하면 되지 않겠냐.] 우리가 쓴 거 같아요. 이 책을.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가 책 안 쓰고도, 이렇게 쓰신 분이 계시면 협업한 게 되잖아요. 저는 이 책 광고해 드리면 되니까.

 

[정부는 일반의지를 실행을 중계하는 중계자일 뿐이다.] 그래서 마음에 안 들면 바로 자르시면 된다. 쉬운 해고를 제가 주장하는 게 아니구요, 아무튼 이런 국가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은 빨리빨리 우리가 조치를 취할 수 있어야죠. [자연의 질서에 따르면,] 저자분의 얘깁니다. 루소의 책을 정리하다보니까 이 분이 이렇게 주장해요. [개별의지는 항상 힘이 세고 일반의지는 약하다.]

 

인심도심론이죠. 서경에 나오는. 순임금의 주장, 순임금의 주장을 이렇게 한번 풀어볼까요? 순임금의 주장은 이겁니다. ‘인심은 항상 위태위태하고, 도심은 미약하니, 훌륭한 천자는 양심을 길러서 욕심을 제압하면 중심을 잡을 수가 있다.’ 이게 순임금 가르침입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오백년간 제일 중시한 가르침이에요. 도학의 16자요결이라고. 지금 이렇게 루소식으로 풀면 어떻게 되나요?

 

개별의지는 항상 강하고, 힘이 세고, 일반의지는 미약하니. 일반의지가 51%만 되게 하면 천하가 경영될 것이다.’ 그럼 조선선비들이 사단칠정론 연구한 것도 이해가 되시죠. 사단은 일반의지고요, 칠정은 개별의지에요. 우리 안에 있는 사단이 어떻게 칠정을 경영하느냐를 연구했어요. 그러니까 선비들은 뭔데 정치를 연구 안하고, 계속 양심욕심만 연구했다는 게 이상하잖아요. 조선 시대선비들이 500년간. 뭘 연구했겠어요?

 

내 마음 안에서 양심이 욕심을 승리하게 한다면 그 양심으로 정치를 하면 누구나 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 할 수 있다는 그걸 알고 연구한 거예요. 조선선비들이 뭐했는지도 이걸 보셔야 지금 알 수 있습니다. 재미있죠? 선비들이 계속 연구한 게. “이건 일반의지야. 개별의지야.” 선비들이 일반의지라고 판단되었을 때, 양심이라고 판단되었을 때 선비들은 어땠습니까? 진정한 주권자로서 어떻게 했나요? 목숨 걸고 상소 썼어요.

 

임금, 이거 당장 고치시오. 안 그러면 나한테 사약을 내리시오.” 도끼 쥐고 가서 상소 올리고. “나 죽여라. 이거로.” 무서운 사람들이죠. 주권자 되기 어렵죠. 이런 거 잘 생각해 보시구요. 뒤에도 좋은 말 많습니다. 제가 너무 많이 소개해드리면 이 책 안 사보실까 봐, 짧은데 너무 많이 소개해드리면 안 될 거 같아서 요 정도만. 지금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얘기에요. 우리가 살아갈 때, 여러분이 주권자로서 내가 알아야 될 기본 내용, 헌법 읽으셔야 되구요. 그런데 헌법 보다 제가 볼 때 이거 먼저 읽으시고 헌법 보셔야 헌법도 되실 거 같아요.

 

지난번엔 제가 헌법 한번 소개해드렸는데, 헌법 전문. 사회계약론을 제가 언제 읽어드리고 싶었는데, 너무 요약이 잘 된 책이 나와서 제가 기뻐서 바로 또 사서, 읽어드리고 싶어서 가져왔습니다. . 참고하시구요, 아무튼 홍익당은 양심을 대변하는 정당입니다. 홍익당이 추구하는 민주주의는 국민의 양심을 심오하게 만족시킨다. 양심이 승리하는 세상을 만들자. 양심 51%. 이게 뭘 의미하는지 아실 겁니다.

 

진짜 민주주의, 국민이 주인대접 받는 민주주의 사회, 다른 말로 하면, 어렵게 말하면, 주권자가 주권을 온전히 행사하며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노력해야 되는 겁니다. 아직 그런 세상은 안 왔어요. , 보세요. 루소의 이런 양심혁명의 주장이 프랑스에서는 시민혁명으로, 프랑스혁명으로 드러났지만, 온전한 내용이 지금 현재 구현되었다고 볼 수는 없죠.

 

, 이걸 만약에 우리나라가 해버리면 어떨까요? 영국에 시민혁명, 프랑스혁명, 미국의 어떤 독립운동, 이런 게 지금 인류의 민주주의를요, 우리가 살아가는 민주주의를 만든, 3대의 큰 혁명으로 보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만약에 촛불혁명을 기점을 시작으로 해서 양심혁명을 완성시키면 어떻게 될까요? 전 세계에서 민주주의는 한국에서 배운다가 되요. 저 해볼 수 있다고 봐요.

 

왜냐. 전 세계에서 양심을 핵심가치로 갖고 있는 정당이 몇 개나 될까요? 지금 우리나라는 곧 갖게 될 거 같거든요. 지금은 아니지만. , 지금 작게 생각 하시면 안 돼요. 우리나라는요, 그 식민지 36년 거치고 해방될 때, 전 세계를 우리가 바로 잡으리라고 외쳤던 나라에요. 김구선생의 나의 소원에 모든 문화가 우리나라에서 나가는 그런 문화강국이 되기를 염원하셨어요. 해방되자마자.

 

지금 남들이 볼 때 비웃는 상황이죠. “어떻게 그런 대통령을 뽑았냐?” 그럴 때 우리가 오히려 지금 또 한 번 세계를 향해서 우리는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민족이다. 6.25끝나고 우리 다 일어난 거 봤지? , 지금 다시 일어난다.” 해서 어떤 혁명을 할 거냐. 양심혁명을 해야 되요. 다른 설을 붙이지 마세요. 양심혁명만 하면 전 세계에서 존경받는, 민주주의 아주 근원적인, 모범이 되는 나라 될 수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민주주의 배우러 한국으로 오게 만들면, 어떻겠는가. 충분히 저는 재능도 있고, 단 하나 부족한 게 양심에 대한 어떤 투철한 어떤 신념이요. 양심에 대한 신념을 우리가 이걸로 키웠으면 좋겠다. 지금 헌법에 양심의 자유 있는 거는요, 이게 아닙니다. 거기서 말하는 양심이 일반의지가 아니에요. 양심의 자유는요, 신념의 자유에요. 지금 헌법에서 말하는. 오히려 국민이 주권에게 있다는 그 주권이 사실 양심이에요.

 

국민은 양심대로 이 나라를 끌고 갈 힘이 있다. 권력이 있다라고 인정해 준거에요. 어디서나 여러분 양심을 지킨다는 건요, 주권자로서 제대로 행세하시는 거예요. 주권을 행사하는 거예요. 양심을 어길 때는요, 여러분 주권자가 아닌 거예요. 이미. 다른 거, 양심 출판, 언론, 학술, 예술의 자유는요, 주권자로서 당연히 우리가 거기서 주권에서 파생되는 권력인거고, 주권을 행사하기 위한 권력인거고, 주권자체는요, 양심추구권입니다. 공익추구권이에요. 국가를 위해서 결정할 권리이기 때문에 기준이 국가에요. 국가한테 이롭냐, 해롭냐를 결정하는 그거는요, 여러분 개별이지가 아니고 오직 일반의지만이 그걸 해 낼 수 있습니다. ,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