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논평] 창조적 소수자, 지배적 소수자 _홍익당창준위. 윤홍식. N027

댓글 0

윤홍식/윤홍식_3분논평

2017. 3. 24.



다들 새로운 혁명의 시기라고 얘기해요.

조국교수님, “명예혁명의 시기이다.”

김용옥 선생님. “새로운 의식혁명이 와야 된다.”

최장집 교수님 새로운 정당과 새로운 패러다임에 혁명이 일어나야 된다.”

 

다 얘기하시는데, 어떤 혁명으로 가야 된다는 내용이 없더라는 거죠. 이게 뭐냐 하면 토인비식으로 보면 한 문명이 도전을 받았는데, 정확히 어떻게 응전해야 겠다는 그림이 머릿속에 없는 겁니다. 예전 방식으로는 안 통한다는 것까지만 지금 자명해 진거 에요. 새로운 방식으로 뭐가 있어야 된다는 건 아지 자명하지 가 않다는 거예요.

 

그럼 누가 해법을 제시하는지 아십니까? 소수가 해법을 제시해요. 어차피 아이디어는 소수에서 나옵니다. 한 사람 머리에서 나와요.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그런데 여러 분야에 대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으니까 소수집단에서 나와요. 그 소수자들을 토인비가 창조적 소수자라고 부릅니다. 즉 실제로 그 도전을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한 소수자를 창조적 소수자라고 그래요. 이게 동양에서 말하는 황극이라는 겁니다.

 

스마트폰도 누구 보고 따라가나요? 애플보고 따라 갔었죠. 그럼 애플이 황극인 거예요. 그 영역에서는 황극인 거예요. 그 사람 하나의 움직임을 다른 모든 동종업계에서 지켜보면서 따라가면 산다.” 하는, 그 아이디어를 제시한 사람들을 창조적 소수자라고 한다는 거예요. 창조적소수자가 우리나라 정치권에 나온다면, 국민들이 답을 얻는 거고, 안 나오면요, 답을 못 얻는 겁니다.

 

그런데 창조적 소수자의 반대말이 뭐냐 하면,

지배적 소수자에요.

 

즉 지배만 하려고 한다는 거예요. 이 양반들은. 아이디어가 없어요. 다만 지금 현재 내가 지배하고 있는 이 구조만 계속 유지되기를 바란다는 거예요. 지금 정치권이 지배적 소수자인지, ‘창조적 소수자인지를 보시면 안다는 거예요.

 

그런데 창조적 소수자의 특징이 있어요. 우길 수도 있잖아요. 지금 지배적 소수자들이 우리도 창조적 소수자야.”라고 우길 수 있죠. 그런데 토인비가 이 말했어요. 창조적 소수자가 등장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세요? 그 문명 구석구석까지 그 창조적소수자가 내놓은 해법을 복사합니다. ‘미메시스라고 그래요. 복사가 일어나야 되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지금 여러분, 저 야권에서 한, 그런 어떤 삶의 이 모델들을 여러분이 막 배우고 계시나요? 복사하고 계시나요? 진보들이 제시한 어떤 그런 삶의 원칙들을 복하고 계시나요? 이런 거예요. 애플 줄서서 사고 싶듯이 배우고 계시냐는 거예요. 복사하고 계시냐. “저것만 쓰면 진짜 살 수 있네.” 라는 그런 자각이 드시나요? 이거죠. “진짜 저게 해법이네라는 자각을 하게 되면요, 때려도 씁니다. 그 제품을 씁니다. 복사합니다. 그것만이 지금 답이 나오기 때문에.

 

그런 창조적인 답을 제시해야할 때라는 거예요. 왜냐? 지금은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대이기 때문에, 창조적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면, 새 시대를 주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권력을 서로 잡았다고 하더라도, 창조적해법이 없는 자들은 그냥 구시대의 끝물이지, 새 시대의 선봉이 아니라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