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논평] 양심이 답일 리가 _홍익당창준위. 윤홍식. N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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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홍식/윤홍식_3분논평

2017. 4. 4.



여러분, 양심 어기는 사람한테 뭐라고 해보세요.

높은 사람일수록 뭐라고 하냐하면

", 내가 누구인지 아느냐?"라고 합니다.

 

즉 양심 어겨도 되는

무슨 그런 권리를, 특권을 받은 사람처럼 행동해요.

 

왜 차선 안 지키세요?

너 내가 누군지 알고 그래?

나 그런 거 어겨도 되는 사람이야.

라는 의식이 있는 거죠.

이 사회가 그래요.

 

, 성공할수록, 지도층이라고 생각할수록

양심을 안 지켜도 된다고 생각해요.

 

제 강의 현장에 가서 보면 피부로 느낍니다. 그런 분들한테 양심얘기 한다는 건 정말 힘들어요. 얘기하는 중간에 저 혼자 얘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소외감이 들어요. “이분들은 관심이 없구나.” 그런데 일선에서 고생하는 분들한테 양심얘기 하잖아요, 받아 적으세요. ", 그래서 내가 힘들었구나. 타결책도 뭔가 여기서 나오겠지.”하고 진지하게 고민합니다만,

 

양심 없이도 살 수 있는 분들은

그런 고민 자체가 없어요.

 

그래서 보면 저만 제일 불쌍하죠. 막 양심 떠들고 있는. 이런 것을 많이 겪고 실제가서 대화도 해보면 그런 분들은 양심이 어떤 답입니다.” 라고 제가 말씀드렸을 때, 제일 못 받아들이세요. “그럴 리가.” 라고 나옵니다. “양심이 어떻게 답이냐?” 라는 거죠. 평범한 상식 있는 사람이라면 그 말에 대해서 말은 맞다.”라고, 그거라도 맞장구 쳐줄 거예요. 그런데 그것도 아니에요. “그럴 리가하고 나옵니다. “그럴 리가.”

 

네가 세상을 너무 순진하게 보고 있다.” 라고 일단, 저를 뭉개면서 시작해요. 대화가. “양심이 답일 리가.” 그러면서 그 분들의 고민을 들어보면 다 양심적인 고민들이에요. 그러니까 자기는 뭔가 양심에 걸리는 게 있어 찜찜하면서도, 막상 양심으로 문제를 풀자고 하면 엄청 거부합니다. 왜 그런 거부감까지 갖게 되었는지는 제가 잘 이해가 안 될 정도로 거부하세요.

 

그리고 특히 그분들은

자기들 머리로 이 사회를 재단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도 거부하는 거 같아요.

 

자기 머리에 지금 없는 개념을 가지고

사회를 설명하려는 시도에 아주 불쾌해 합니다.

양심으로 사회를 설명해본 적이 없는 거예요.

양심으로 사회를 해석해본 적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양심을 거기다 집어넣으려고 하면 이분이 힘든 거예요, 사실은. 안하던 걸 갑자기 해야 되니까 힘들어서도 거부해요. “그런 소리 하지 마라. 난 나대로 이미 사회를 충분히 해석하고 사회에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거죠. “거기에 양심이라는 거 하나 넣읍시다.”하면 아주 힘들어합니다. 이게 현실입니다. 실제로. 나가보세요. 겪으시고 계신 현상을, 지금 겪고 계신 현상인데, 이런 식으로 한번 생각해 보시라는 거예요. 그러면 좀 뭔가 풀려요.

 

, 그래서 자꾸 소시오패스들이

사회지도층으로 올라가고 있구나.

 

그래서 자기들끼리 자꾸 토론하니까 양심을 배재한 채로 자꾸 얘기를 하니까. 머리에 아예 양심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입에서는 양심얘기를 해요, 이 분들도. 필요할 때는 얼마나 잘하시는 데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자꾸 속는 거죠. 그래서 이런 분들한테 이 사회를 맡기고 있다는 건, 이건 심각한 일이다. 그래서 그 애기를 제가 5년간 양심이 답이라는 얘기를 하는 입장에서 유튜브에 찾아보시면 다 있죠.

 

5년 전부터, 1800개 동영상이 올라가 있어요, 양심에 대한. 결론은 다 양심이에요. 지긋지긋할 정도로 양심얘기만 했는데, 거기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시다가 이번에 딱 하니까 다들 그냥 막, 온갖 양심 그걸 들고 나가셔서 촛불 들고 외치시는데, 그걸 좀 더 미리 파악하셨다면 이런 일 안만들 수도 있지 않았냐 이거죠. 이게 왜 중요하냐하면 이미 일어났는데, 과거얘기 뭐 하러 하냐?” 그게 아니라,

 

지금도 우리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지, 반성을 해봐야 된다는 거죠. 왜냐? 우리 미리가 또 걸려있다는 거예요. 이러고 또 말면, 미래에는 또 어떤 사회가 펼쳐질지 모른다는 거예요. 왜냐? 과거에 이렇게 어떤 사안이 하도 커서 국민들이 양심적이 될 때는요, 한 번씩 있어왔거든요. 그런데 결론은 결국 박근혜 정부였잖아요. 결국 우리가 맞닥뜨린 결론은 박근혜 정부였잖아요.

 

그 전에도 큰 사건들이 있었단 말이에요. 4.19도 있었고, 한 번씩 있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때 그렇게 양심을 부르짖었는데 항상 안 좋게 끝나 왔다는 걸 생각하신다면, 이번에는 그렇게 느슨하게 공부하고 어떤 대책을 마련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되, 또 소를 털릴 거 같은 외양간을 우리가 만들 수는 없다는 거죠. 이번에는 완전히 철옹성을 지어서, 절대로 소를 잃지 않을 대비책을 마련해야 된다. 이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