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 반야심경-제10강 무상-일체는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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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반야심경

2017. 5. 31.



안녕하세요. . 오늘은 반야심경 10번째 강의시간입니다. 지난 번 시간에 오온이 모두 공하다. 하는 것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 바로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이런 말씀을 여러분께 드렸습니다.

 

인천사람이 부처님께 서울 가려면 어디로 갑니까?” “동쪽으로 가세요.” 이것을 모아놓은 게 경전이란 말이오. 또 수원사람이 서울 가려면 어디로 갑니까?” “북쪽으로 가세요.” 이것도 모아놓은 게 경전이란 말이오. 춘천 사람이 서울 가려면 어디로 갑니까?” “서쪽으로 가세요.” 이것을 모아놓은 게 경전이란 말이오. 그럼 후대의 사람들이 볼 때, “서울 가는 길을 물었는데, 왜 부처님이 때로는 동쪽으로 가라.’ 그러고, 때로는 북쪽으로 가라.’ 그러고, 때로는 서쪽으로 가라.’ 그랬을까?” “, 불교는 너무 어렵다. 너무 복잡하다.” 지금 이렇게 이해한다. 복잡하다. 그래서 어렵다.

 

이것은 복잡한 것도 아니고 어려운 것도 아니에요. 진실 그대로에요. 누가 묻든지 서울 가는 길은 동쪽이다. 오직 이 길 밖에 없다.” 이렇게 하면 여러분들은 , 간단하다. 쉽다.” 이렇게 생각합니까? 그것은 진실이 아니에요. 그래서 부처님은 그 중생의 근기 따라, 즉 그 중생의 처지에 따라 즉, 그가 길이라면 그가 사는 위치에 따라 서울 가는 방향을 일러준다. 그것은 그대로 진실이다. 그러나 그 위치가 달라지면 그 정해진 방향은 진실일 수가 없다. 이 방향은 부처님의 말씀으로 표현된 이 방향은 그대로 절대화 하면 안 된다.

 

그래서 부처님이 나의 가르침은 뗏목과 같다.’ 이 사람을 건너가게 하기 위해서 동이 있었고, 이 사람을 건너가게 하기 위해서 서가 있은 것이지, 동이나 서를 절대화 하면 안 된다. 그럼 부처님의 말씀을 이것을 또 잘못이해해서, “, 동쪽으로 가도 되고, 서쪽으로 가도 되고, 북쪽으로 가도 되고, 아무렇게나 가도 되겠구나.” 그 말이 아니에요. 이것은 아무렇게나 가도 된다는 뜻이 절대 아니다. 아무렇게나 가면 안 돼요.

 

그럼 서울 가는 길은 없는 거냐? 없는 것도 아니에요. “공이니까 없구나.” 이렇게 이해하면 안 돼요. 이것은 없는 게 아니고, “공이니까 아무렇게나 해도 되겠구나.” 아무렇게나 해도 안 돼요. ‘제법이 공하다.’ ‘서울 가는 길이 공하다.’ ‘서울 가는 길이 정해져 있지 않다.’ 이 말은 위치를 무시하고, 중생의 근기를 무시하고 이것이다라고 하는 어떤 절대적인 길은 없다. 그러나 중생의 근기 따라, 그에 서 있는 위치 따라 서울 가는 길은 분명히 정해진다. 이게 방편설이다. 그러니까 병 따라 처방이 있다. 이 말이오. “병에 관계없이 이것만 먹으면 다 낫는다.” 하는 만병통치약 같은 것은 없다. 병 따라 처방이 있다.

 

그런데 후세 사람들이 자꾸 부처님의 말씀을 언어와 문자에 집착해서 그 사람이 처한 위치, 상황, 근기를 무시해 버리고, 없애 버리고, “서울 가는 길은 동이다.” “아니야 서야.” “아니야 북이야.” 이렇게 논쟁을 한다. 이게 바로 파벌, 종파주의, 부파주의다. 이 말이오. 그런데 그들의 주장이란 다 일리가 있다. 다 근거가 있어요. 근거를 가지고 얘기를 해요. 그러나 그것은 비록 부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해서 얘기한다 하더라도 그렇게 이해하는 것은 부처님의 말씀을 붓다의 가르침인 법을 제대로 아는 게 아니다.

 

여러분들이 자기의 어떤 생각을 의견을 고집한다.

이러면 뭐라고 그래요?

/아상/이라 그래.

 

그런데 이렇게 서울 가는 길은 동쪽이야.”하고

부처님의 말씀을 빌어서 이게 진실이야.”하고

이렇게 고집하는 것을 /법상/이다.

 

진리라고 하는 상을 지어버렸다. 그 어떤 상도 지어서는 안 된다. 그게 불법이란 말이오. 진리라는 상을 지었다 할 때 이것을 법상이다. 이래. 법상은 버려야 됩니다. 그것이 비록 진리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더라도 이미 그것을 절대화하는 것은 진리에 어긋난다. 노자말씀대로 하면 도라 하면 이미 도가 아니다.’ 이런 거와 같다.

 

그럼 말하지 마라. 입도 뻥끗하면 안 되겠네요. 입 뻥긋하면 이미 글러버린다. 입 다물고 있어야 된다.” 이런 얘기 아니에요. 이것은. 인간의 의사를 가장 잘 전달 할 수 있는 방법이 말과 글이에요. 그러나 말과 글은 마음을 가장 잘 전달하는 수단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마음을 온전하게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은 아니다. 그러니까 말과 글은 절대화 하면 안 된다. 그 말은 말과 글을 절대화하지 마라는 말이지, “말과 글을 쓰지 말라는 말 또한 아니다. 이런 얘기에요.

 

, 그런 데에서 불법이 오랜 세월을 역사 속에 흘러가면서 이렇게 오류를 범했다. 부처님의 말씀을 그대로 온전하게 보전해간다고 하지만, 즉 형식은 그대로 지키는데, 이미 내용은 잃어버렸다. 법집에 떨어졌다. 법상에 사로잡혔다. 그러기 때문에 이때는 어떠냐? “법집을 버려라. 법상을 깨라.” 이렇게 말한다. 그러니까 이 오온설이 이렇게 요소설로 잘못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바로 잡기 위해서

 

오온이 모두 공하다는 말은

오온을 구성하는 그 하나하나도 다 공하다.

거기에는 어떤 실체도 없고, 고정불변한 것도 없다.

 

/색불이공 공불이색/

, 그렇기 때문에 색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이런 법상이 없다면 그냥 간단하게 제법이 모두 공하다.’ 이러면 그것을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다. ‘오온이 모두 공하다하니까 오온은 색수상행식이요, 색이 공하다. 수도 상도 행도 식도 공하다. 이렇게 말해야 되겠죠? 그러면 /왜 색이 공하냐?/ 이것을 우리가 다시 자세히 설명을 해야 된다. 여기에 /색불이공 공불이색/ 불이 색과 공이 다르지 않다는 불이라는 용어를 써서 지금 색이 공하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왜 불이라는 용어를 써서 색이 공하다는 것을 설명하느냐?/

 

지금 설명을 듣는 사람이 누구에요? 사리자에요. 사리자는 소승이죠. 그러면 소승의 진리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이해는 삼법인에 두고 있어요. 그러니까 소승수행자는 삼법인을 알아요? 몰라요? 알아. 그것은 가장 기초적인 것이기 때문에. 즉 무상과 무아를 그들은 잘 알고 있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색이 공하다는 것을 설명하려면 색이 무상하고 무아임을 밝혀줘야 된다. 그러면 , 색은 무상하고 무아 한 것이구나. 그러므로 색은 곧 공한 것이구나. 이렇게 알 수 있다.

 

부처님이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연기법을 깨달았다. 그 연기, 말미암을 연, 일어날 기. 모든 것은 말미암아 일어난다.

 

모든 이 세상의 존재는

개별적으로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그물처럼 서로 연관되어있고,

공간적으로 서로 연관되어있고,

시간적으로도 연관되어있다.

시간적으로 원인과 결과의 관계에 놓여있다.

 

그래서 이것을 한마디로 표현 한 것이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 ‘이것이 일어나므로 저것이 일어나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 앞에 것이 무아, 뒤에 것이 무상이란 말이오.

 

/무상/

그럼 먼저 우리가 무상에 대해서 한번 공부해보자. 무상. /제행무상/ 이렇게 말하죠. 모든 것은 다 항상 함이 없다. 여기서 상은 항상할 , 모양 상이 아닙니다.

 

모든 행에는 제행에는 항상 함이 없다.

영원한 것이 없다. 불변하는 것이 없다.

 

이 불변하는 것이 없다라는 것에 근거해서 나오는 것이 불이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먼저 무상에 대해서 공부해보자  

, 우리가 부처님 가르침을 공부할 때 첫째가 연기, 두 번째가 무상, 무아. 이것을 공부해야 됩니다. 연기가 곧 무상이고 무아이기 때문에 그럼 무상,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도

영원하거나 변하지 않는, 불변하는 것은 없다.

, 모든 것은 다 변한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모든 것들을 우리가 3가지로 분류를 해봅시다. 첫째 물질세계, 물질에 기초해서 물질과 다른 게 하나 있는데 그게 뭘까요? 생명의 세계입니다. 생명에 기초하면서 생명보다 한 차원 높은 게 있는데 그게 뭘까? 정신입니다. 정신세계. 물질세계, 생명세계, 정신세계. 3가지에 다 한번 적용해 보자.

 

/물질-성주괴공/

물질세계에 적용합니다. 물질이 어떠냐? 옛날부터 내려오는 것으로 하면 물질에 가장 대표적이고 가장 큰 게 뭐에요? 우주에요. 우주. 세계다. 이 우주는 뭐라고 하셨냐? 성주괴공한다. 이랬어요.

 

-우주-

이 우주라는 것은 항상 이렇게 있는 것이 아니고

이루어지고, 머무르고 흩어지고 즉, 붕괴가 되고,

그 다음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이루어지고_, 머무르고, 그 상태를 유지한다. 이루어지고

유지되고_,

붕괴가 되고_,

사라져서 텅 빈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가버린다_.

성주괴공한다.

 

이게 진실이냐? 오늘날 과학적으로 진실입니다. 여러분들 저 낮에 제일 밝게 빛나는 게 태양 아닙니까? 태양은 오늘날 과학적인 설명에 의하면 형성 된 것이 약 60억년정도 된다. 이래요. 그럼 저것은 수명이 어느 정도 되느냐? 100억년 된다 그럽니다. 그러면 이런 태양과 같은 별, 스스로 빛을 내는 이 항성은 어떻게 이루어지느냐? 밤하늘에 있는 수많은 별들을 그 밝기의 등급과 그 빛깔의 스펙트럼을 갖고 그래프로 표시해보면, 이 별이 각각 위치합니다. 이 그래프를 HR도라 그래요. HR도에 그려보면 이 별들이 생성소멸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 밤하늘에 있는 우리가 볼 때는 별은 영원하다. 영원한 게 맞습니다. 여러분들 사는 게 100년 밖에 안 되니까, 100년의 시간으로 수십억 년의 시간을 볼 때는 저것은 무한대에요. 그러기 때문에 영원한 것처럼 보이지, 우주 시간으로 볼 때는 영원한 게 아니에요. 저것도 생성소멸을 거듭한다. 그러니까 밤하늘에 있는 별들은 지금 생성되는 것도 있고, 유지되는 것도 있고, 붕괴되는 것도 있고, 소멸로 나아가는 것도 있다.

 

그러니까 이 우주에 별들이 생성 소멸한다. 성주 괴공 한다. 이것은 그대로 진실입니다. 이것은 현대의 과학에서 그대로 진실로 인용인 된다. 모든 종교, 온갖 철학에서 영원하다 하지만 불법은 아주 옛날부터 우주는 성주괴공한다. 이렇게 말했어요.

그래서 과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이런 불법의 가르침을 들으면 믿음이 생긴다. ‘신을 믿는다하는 이런 믿음이 아니라, 그 불법의 가르침이 너무나 정확하기 때문에 믿음이 생긴다.

 

-바위-

, 그러면 우리가 또 하나 더 좁혀서 지구상에서 영원하다 할 때, 주로 맹세할 때, 어디다 두고 맹세합니까? 바위를 두고 많이 맹세하죠. “저 바위는 천년의 세월을 지나도, 만년의 세월을 지나도 그 모양 그대로 있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저 바위도 어떠냐? 원래 암석입니다. 암반. 근 암석. 이 암석은 마그마가 식어서 되기도 하고, 또는 퇴적이 되어 굳어서 되기도 하죠. 그 암석이 크게 깨지면 바위가 되죠. 그게 좀 작게 깨지면 돌멩이가 됩니다. 그게 더 작게 깨지면 자갈이 되고, 더 작게 깨지면 모래가 되고, 더 작게 깨지면 흙입니다. 다름 아니에요.

 

그런데 이런 모래와 자갈과 흙이 차곡차곡 쌓여서 압력을 받아서 다시 굳어지면 뭐가 됩니까? 암석이 됩니다. 그럼 그것이 또 똑같이 되풀이 되요. 그러니까 누가 있어서 바위 따로 만들고, 암석 따로 만들고, 돌멩이 따로 만들고, 자갈 따로 만들고, 모래 따로 만들고, 흙 따로 만들 필요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 이렇게 변해가고 있는 거요.

 

-대지-

또 우리가 사는 이 대지는 어떠냐? 원래 첫 번째 대지가 있었다. 이것을 원지형이라 그래요. 그럼 비가 와서 골짜기가 파여집니다. 그럼 유년기라 그래. 들어보셨어. 그럼 더 파져서 V자로 아주 날카롭게 있으면 장년기라 그래요. 그러면 더 깎여 구릉처럼 되면 노년기라 그래요. 그럼 다시 평평해지면 준평원이다. 이렇게 깎여 나가면 다시 융기합니다. 밑에서 위로 올라온다. 그러면 또 시작이 됩니다. 이것을 데이비스의 지형윤회설이다 이래요. 이거 누가 만들 필요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 이렇게 변해가는 거요.

 

그러니까 저 우주도 그렇고, 이 물질세계, 이 대지, 이런 것이 다 이렇게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관찰하는 시간이 좁고, 이것은 변화의 속도가 느리고, 그 변화의 시간이 길기 때문에 우리 눈에는 그것이 관찰이 안 되는 거요. 그러니까 변하지 않는 것처럼 착각한다.

 

쉽게 얘기하면 아침에 태어났다가 저녁에 죽는 하루살이가 내일 또 해 뜨는 줄 알 수 있을까? 없을까? 없어. 오늘 해지면 끝인 줄 알아. 지구의 종말이오. 1년 초가 겨울 지나면 끝인 줄 알지 내년에 또 봄이 옴을 알 수 있을까? 없어요. 그러니까 봄에 시작이 되어서 겨울에 끝나는 줄 알아요. 시작과 끝인 줄 알아요. 그러나 그렇지 않다. 다시 또 봄이 오는 거요.

 

우리가 백 년 사는 이 인생을 가지고, 이 짧은 시간을 가지고 이 긴 우주적 시간, 이런 것을 우리가 바라보니까 그것은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뿐이지,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우리가 죄가 많아서 이런 진실을 모르는 게 아니고,

우리가 관찰하는 폭이 너무 좁기 때문에

이런 착각현상이 생기는 거요.

 

그러니까 이 착각으로 인해서 우리는

여러 가지 사물을 잘못알기 때문에

착각으로 일어난 무지, 무지로 인해서

인생에 온갖 고통이 생긴다.

이게 우리 고뇌의 근본이요.

 

그래서 무지를 깨뜨린다.

착각에서 깨어나서 진실을 보게 되면

우리들의 고뇌는 다 사라진다.

이렇게 우주는 성주괴공한다.

 

/생명-생로병사/

그 다음에 두 번째 물질이 고도로 결합을 하는데, 그냥 결합하는 게 아니고, 어떤 설계도가 있어서 그 설계도에 따라 결합을 하게 되면 그 물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작용이 일어난다. 신진대사라고 하는 새로운 작용이 일어난다. 자기와 똑같은 것을 만들어내는 복제의 현상이 일어난다. 그러면 이것을 생명이다. 이렇게 말해요. 그러니까 생명의 어떤 특이한 작용이 있다 하더라도 그 설계도를 분해해서 완전히 해체시키면 물질이 되는 거요.

 

쉽게 얘기하면 자동차를 구성하는 부품이 한 2만개 되는데, 그 부품 2만개를 큰 바구니에 담아 놓으면 가나? 안 가나? 안 가지. 소리 낼 수 있어? 없어. 헤드라이트 켜져? 안 켜져. 그런데 그것을 설계도에 따라서 잇고 잇고 해서 잘 조립을 해 놓으면, 이게 움직이기도 하고, 소리도 내고, 빛도 내고 이런 현상이 일어나요. 그것처럼 설계도, 이게 유전자입니다.

 

유전자에 따라 물질이 잘 조립이 되면

신진대사작용이 일어나는 거요.

이것이 생명이요.

 

그러니까 이 생명이라는 것은 어떠냐?

언제나 생겨남, 태어남이 있어요.

그리고 이것은 시간이 되면 늙고,

그 다음에 병들고,

그 다음에 죽는다. 이런 현상이 있어.

 

그러니까 이 생명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게 인간의 육신이죠. 그래서 우리의 육신은 이렇게 말하는 거요. 우리의 육신은 뭐한다? 생로병사 한다. 부처님께서 젊은 시절에 요즘 말로하면 사춘기 때, 동서남북 문을 나가서 세상을 보고, “, 인간은, 인간의 육신은 생로병사 하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무상한 것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이 말이오.

 

생로병사 한다. 사람만 그래요? 소도 그러고, 돼지도 그러고, 닭도 그러고 다 그래요? 다 그래요. 모든 생명은 생로병사 하는 거요. 그러니까 변한다.

 

/정신-마음-생주이멸/

그러면 이러한 생명현상 가운데에서 이 생명현상이 더 고도로 발전하면, 이 단순한 생명현상만 갖고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다른 프로그램이 깔려요. 예를 들면 컴퓨터를 아주 최신형으로 잘 만든 게 인간의 육신이라면, 거기에 소프트웨어를 아주 잘 깐 게 현대인이다, 이런 얘에요.

 

그러면 현대인은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라고 그래. 쉬운 말로하면 크로마뇽의 후생이다. 이렇게 말하죠. 이 현생의 인류가 이 세상에 나온 것은 한 15만년 된다 그래. 그럼 그때부터 지금까지 하드웨어 이것은 특별히 개선된 것은 없습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지금까지 인류문명이 오면서 빠른 속도로 문명의 진화가 왔는데, 여기 주로 뭐가 개선이 되었다? 소프트웨어가 개선이 된 거요. 프로그램이 아주 새로운 게 만들어진 거요. 그래서 저 원시인 어린애에게도 이 프로그램을 깔아버리면 그냥 현대인이 되어버립니다. 여러분이 낳은 애도 인간사회에서 격리시켜서 돼지우리에다 키워버리면, 이 프로그램을 안 깔면 그냥 돼지흉내내고 삽니다. 아무리 좋은 컴퓨터도 거기다가 오락게임만 집어넣어 하면 오락하는데 밖에 못씁니다.

 

그러니까 옛날 사람들이 물질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고,

생명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고,

인간의 정신현상에 대한 이해도 부족할 때

이러쿵 저러쿵 한 얘기를

종교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계속 믿고 있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그것을 다 합리화하면 안 돼요.

 

우리는 진실에 접근해 가야 한다.

우리는 법을 공부하는 자들이에요.

 

우리는 진실이 어떤가?

이 이치를 알아서

우리의 괴로움이, 우리의 번뇌가 어떻게 해서 생겨났느냐?”

, 이렇게 이치를 잘못 아는 데서 생겨났구나.”

그렇게 해서 그 이치를 바로 깨닫고 바로 행하게 되면

번뇌가 사라져서 여러분들이 자유롭게 행복한 삶을 살 수가 있다.

 

이 정신현상, 이 정신 현상을 우리 사람에게 적용하면,

쉽게 얘기하면 뭐라고 한다? 마음이다. 이렇게 말하죠.

 

물질 현상을 불교에서는 뭐라고? 우주라고 말했고,

이 생명 현상은 그냥 육신이라고 말했고,

이 정신현상은 그냥 마음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마음은 뭐한다? 생주이멸 한다.

한 생각 쑥~ 나왔다가

그 생각 유지되다가

그 생각 흩어지고 생각이 없다가

또 한 생각 쑥~ 나오고.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은 죽 끓듯이

그냥 생겨났다가 사라지고, 생겨났다가 사라지고, 이런 거요.

 

그래서 이 마음을 여실히 관찰해보면,

관심_마음을 있는 그대로 탁~ 관해보면

무상하다. 관심무상이에요.

 

사념처.

우리가 진리를 관할 때 4개를 관해야 돼.

우리의 몸을 관하는 것,

우리의 느낌을 관하는 것,

우리의 마음을 관하는 것,

법을 관하는 것, 4개가 있어요.

 

우리의 몸을 관하면 몸을 애지중지 하지만 몸은 성스럽다 할 것이 없다_관신부정.

우리의 이 느낌, 여러분들 기분 알죠? 기분. 그것을 여실히 관하면 곧 고다_관수시고.

우리의 마음을 여실히 관해보면 항상 함이 없다_관심무상

모든 법은 있는 그대로 여실히 관해보면 거기에는 실체라고 할 것이 없다_관법무아.

 

이게 사념처,

우리가 깨달음의 길로 가는 데

가장 중요하게 관해야 할, 깨쳐야 할 이치입니다.

 

이 비파사나, 소승불교에서의 수행법의 비파사나에서 가장 핵심 된 가르침이다. 거기에 관심무상이 있죠. 여기 무상을 얘기할 때 우리의 마음은 어떻다고? 생주이멸 한다. 마음이라는 것은 일어나고 사라지고, 일어나고 사라지는 거다.

그럼 만약에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은 항상 하지 않고 늘 변하는 거라면 자, 결혼할 때 두 부부가 약속을 했어요. 우리 서로 사랑하기로. 검은머리가 파뿌리처럼 희게 되도록 변하지 말자. 이렇게 약속을 했는데, 중간에 한 사람이 고무신을 거꾸로 신었다. 그러면 배신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괴로움이 생긴다. 그런데 사실은 진리의 측면에서 보면 마음은 변하는 거요. 그때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그때는 그런 마음이 일어났는데 살다보니까 마음이 변했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니까

그 변한 것을 알아차리고 인정해야 됩니다.

내 마음만 그런 게 아니라 상대마음도 그렇다.

모든 사람의 마음이 다 그래요.

마음은 변합니다.

 

그러니까

변하는 것을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까

괴로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이 몸을

죽지 않기를 원하니까 괴로울 수밖에 없다.

변하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변하지 않기를, 영원하기를 바라니까

결과는 괴로울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상견, 항상하다 하는 상견과

실체가 있다하는 아견에 사로잡히게 되면,

이것은 곧 무지, 알지 못한다. 이 말이오.

그러면 일체는 다 괴로움이다. 괴로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눈을 뜨고,

변하는 것을 변하는 줄 알고,

무상을 무상인 줄 알고,

무아를 무아인 줄 아고,

공을 공인 줄 아면 어떠냐?

괴로울 일이 없다. 그게 뭐다? 열반적정이다.

 

그러니까 부처님의 말씀은 그냥 어떤 얘기가 아니고, 과학처럼, 과학이라는 것은 주로 물질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죠. 그런데

 

부처님의 말씀은 주로

우리 마음의 작용에 대해서 연구를 하셨어요.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느냐?

왜 괴로움이 생기느냐?

왜 기쁨이 생기느냐?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어떠냐?

이런 마음의 작용, 마음의 법칙을

확연히 꿰뚫어서

괴로움이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요인들을 없애버리면

괴로움은 사라진다.

 

그런데 이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이 마음법이 마음에만 적용되고 생명에는 적용이 안 되고, 물질이 적용이 안 되느냐? 아니다. 옛날에는 이것을 꼭 마음에만 적용했는데, 요즘은 물질세계를 이해하는 이런 물리학, 천문학이 발달하고, 화학이 발달하고, 또 생명의 문제를 이해하는, 이 생물학이 발달하면서 유전자도 발견되고 이랬지 않았습니까? 그죠. 그러니까 부처님의 가르침을 거기 다 적용해보니까 법칙이 일관되게 다 그대로 적용이 된다.

 

그러니까 부처님이 과학자가 아니라 부처님이 말씀하신 그 법칙이 오늘의 자연과학과도 위배되지 않는다. 거기에도 다 그대로 이해가 된다. 적용이 된다.

그러면 어떤 종교는 종교적으로는 진리인데, 과학적으로 보면 그것은 부정된다. 그런데 불법은 종교적으로, 철학적으로, 논리적으로, 사상적으로 뿐만 아니라, 과학적으로 봐도 거기에는 모순이 없다.

 

그러니까 현대인들이 이 불법은 받아들일 만하다. 이게 그냥 불교는 과학이다.’ 이러면 안 돼요. 그러면 과학자가 괴롭냐? 안 괴롭냐? 괴롭지. 엄청나게 이 우주를 얘기하는 그런 과학자도 괴롭고, 부부간에 갈등이 생겨서 해결도 못하고, 자기 자식 말 안 듣는다고 정신을 못 차리고 화를 벌컥벌컥 내고 그러잖아요. 그것은 왜 그럴까? 물질에 대한 이해는 아는데 마음에 대한 이해를 모른다.

 

그러니까 우리의 인생에서 수행자는 마음의 법칙을 이해하는데

이 마음의 법칙이 마음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이 물질세계 생명세계까지 다 관통하고 있다.

 

무상과 무아의 법칙은 그대로 다 적용인 된다.

연기의 법칙은 모든 존재에 다 적용이 된다. 이런 얘기에요.

 

그런데서 불교는 종교 가운데에서도 정말 좋은 종교 으뜸 종, 가장 으뜸 되는 가르침이 종교인데, 불법이야 말로 이 세상의 많은 가르침 가운데 가장 으뜸 되는 가르침이다 라고 할 만하고, 또 세상에서 말하는 그냥 종교라는 것은 신을 인정하고 신에 귀의하고 이런 종교로 만약에 종교의 의미를 울타리 친다면 불교는 종교를 넘어서 있다.

 

이 불법을 종교의 울타리에 가두어 버리면 이것은 불교의 큰 장점을 죽여 버리는 게 된다. 그러니까 우리 불자들이 종파별로 네 종파가 낫니, 내 종파가 낫니이런 것도 넘어서야 되고, 또 나아가서는 네 종교가 낫니? 내 종교가 낫니?” 를 넘어서야 되고, 나아가서는 종교니 과학이니라는 것도 넘어서야 됩니다. 그렇게 일체를 초월하고, 일체를 포용하는 관점에 딱 서서 진리 논쟁을 할 수 있어야 되요. 그래야 불법의 위대성을 알 수 있다.

 

, 그럼 오늘 공부한 것은 뭘 공부했습니까?

 

제행무상_일체는 다 변한다.

그것이 물질세계든 생명의 세계든,

그것이 정신의 세계든

, 우주든 육신이든 마음이든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그런데 우리들의 고뇌는

변하는 것을 변하지 않는다고 고집하고

변하지 않는 것으로 착각하는데서

변화의 현상이 일어날 때

자기 뜻대로 안된다고 괴로워한다.

 

그러니까 변화를 변화로 받아들이게 되면

여러분들이 이 현상에 부딪혀서 괴로울 일이 없어진다.

 

, 오늘 여기까지 하고 다음시간에 또 계속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