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정도수행 바로알고 내려놓기_제8회 윤회의 원인 (4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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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법문/일묵스님_팔정도

2011.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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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런 업을 번뇌가 오염원이 남아있으면 어떤 형태로든지 업을 짓게 됩니다. 여러분들처럼 불교를 공부하고 이런 거는 무슨 업을 많이 짓는 거겠어요? 선업을 많이 짓는 겁니다. 공부도 안하고 맨날 감각적 욕망이나 누리고 성이나 내고, 이래 살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런 삶들은 계속 불 선업을 짓는 거와 같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일생을 통해서 선업을 짓기도 하고 때로는 불 선업을 짓기도 하고 그럴 거 아니에요. 그죠? 그런데 이 업에 대해서 이 다음에 이것이 나타나는 것은 조금 있다가 설명을 드리고 먼저 업에 대해서 조금 몇 가지 주의할 점몇 가지만 좀 더 설명을 드릴게요. 보통 업하고 업력이라는 말이 있는데요. 이 말은 약간 다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요.

 

여러분들이 지금 예를 들어서 이런 법회에 참여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생각하고 이런 거는 선업이겠어요? 뭐겠어요? 선업이죠? 그죠? 그러면 이 법에 대해서 생각하고 이런 선업은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고 집에 갈 때쯤 되면 사라질 수도 있어요.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났다 사라질 거 아니에요. 그죠? 그렇지만 내가 지금 행했던, 이 마음은, 업은 일종의 의도란 말이에요. 그 마음이 일어날 때 의도라서, 의도라는 것은 행온에 들어갑니다. 그러면 이것도 무상한 것이기 때문에 일어났다 사라지거든요. 우리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데 이것은 사라졌지만 이것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은 안사라 집니다. 어디 저장되는 건 아닌데, 이것이 나중에 어떤 조건만 되면 결과를 일으켜요.

 

그러니까 지금 여러분들일 어떤 업을 지었는데 그것이 결과를 맺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진게 아닙니다. 이거는 단지 어떤 조건을 만나지 못해서 그것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런 가능성마저 없어진 것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런 업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 지금 업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업이 사라진 거라고 보시면 안 됩니다. 우리가 지은 업은 어떤 적당한 조건을 만나서 그 업이 형성되기 전까지는 항상 가능성으로 남아있어요. 여러분들이 어떤 사람을 괴롭혔는데, 그 사람을 되게 못되게 굴었어요. 그 상황은 끝났어. 그러면 업은 그때는 그 사람에 대한 화를 내면 불 선업이 지나가 버린 거에요.

 

그런데 한 10년 쯤 지나서 취직하려고 갔는데, 내가 괴롭힌 사람이 면접관으로 앉아 있는 거에요.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 전에까진 이 업이 전혀 작용을 안 한 겁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그런 조건이 형성되면, 내가 과거에 저질렀던 악행이 결과로서 드러날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시죠? 그래서 이런 거를 업력이라고 이야기를 해요. 업의 잠재력만 남아있는 거에요, 이거는. 그런데 이 잠재력은 아라한이 되기 전까지는 안 없어집니다. 완전한 깨달음을 얻어야 이것이 더 이상을 작용을 하지 않지. 이것이 일반적으로는 단지 조건을 만나지 못했을 뿐이지 언제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목련존자께서 돌아가실 때 어떻게 돌아가셨어요? 맞아서 돌아가셨죠외도들한테 온몸의 뼈가 부서져서 돌아가셨습니다. 부처님의 상수제자에요. 목련존자. 왼팔 오른팔, 오른팔이 사리불존자이고, 왼팔이 목련존자인데. 그렇게 위대한 분이 왜 외도들한테 맞아 죽었겠어요? 그런데 이 분은 전생에 자기 아주 오랜 전생에 자기 부모님을 때려죽인 과보가 있습니다. 그 목련존자가. 자기 어머니가 봉사였는데, 마누라가 시집을 왔는데, 처음에는 잘 모시더니만 나중에 귀찮으니까 부모님이 노망들었다는 식으로 해서, 바가지 자꾸 긁은 거에요. 그러니까 바가지가 그렇게 무섭습니다.

 

그래서 목련존자가 도저히 못 참고, 이 부모님을 산 속에 모시고 가면서 마치 자기가 강도를 위장을 해서 강도가 나타난 것처럼 해서 부모님을 죽여요. 그것 때문에 그 다음 생에 부모님을 죽인 과보는 바로 지옥으로 떨어지거든요. 그렇게 지옥에서 고통을 받았지만 그래도 이 업이 안끝나가지고, 그 아라한이 된 마지막생애까지 그 업이 또 작용을 한 거라 그러잖아요. 그 만큼 어떤 업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가 한번 저질러 놓은 그런 업은 이것이 여러분들이 지금 당장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업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사는데 있어서 조심을 해야 됩니다.

 

그리고 선업은 복보. 불 선업은 악보, 이건 다 아시는 거구요. 선업을 지었는데 아주 안 좋은 과보가 온다거나, 악업을 지었는데 좋은 과보가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거에요. 불교에서 말하는 선업을 지으면 이것이 나타날 때는 예를 들면 아주 부잣집에 태어난다거나, 수명이 길게 나타난다거나, 아주 건강하게 태어난다거나, 잘생기게 태어난다거나, 좋은 부모를 만나거나 이런 식으로 나타나고, 만약에 불 선업을 많이 지었을 때는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안 좋다거나 여러 가지 악처에 태어난다거나 이렇게 된다는 거죠. 그래 보면 출가한 스님들 중에서도 복이 많은 스님이 있고, 복이 좀 적은 스님이 있어요.

 

전에 농담으로 어떤 스님은 자기가 어느 절에 수행만 하러 가면 공양주가 도망을 간데요, 먹을 복이 없나 봐요. 자기가 어떤 복을 많이 지은 사람은 그 사람이 어딜 가도 무슨 일을 할 때 복력이라고 하는 것이 수행을 할 때나 무슨 일을 할 때 지원해주는 그런 역할을 합니다. 여러분들이 아무리 좋은 수행을 하고 싶어도 복력이 약하면 수행을 할 때 장애가 많습니다. 공부를 방해하는 요소. 예를 들어서 정말 내가 공부를 하고 싶은데, 내가 전생에 지어놓은 복이 너무 없어서 먹고 살기 힘들다. 이러면 수행하기 힘들잖아요. 그죠? 그래서 이런 공덕 행과 지혜를 같이 닦아야지, 너무 지혜 닦는 쪽만 관심을 가지다가, 복을 너무 안지어도 별로 좋지는 않습니다. 선업은 복보를 이끌어내고, 불 선업은 악보를 이끌어 낸다는 것은 정해진 이치다. 반대로 역행 현상이 일어나는 경우는 없다는 거죠.

 

그리고 아까 말했듯이 업이라는 것은 뭐라 그랬어요. 불선한 마음이나 선한 마음에서 일어나는 의도라 그랬잖아요. 선한 의도냐, 불선한 의도냐, 이게 불 선업이냐? 선업이냐? 이것을 이야기한데. 이 의도라고 하는 것은 마음의 한 요소잖아요. 마음작용이잖아요. 마음부수 중에 하나거든요. 행온이란 말이에요. 이거는 영원합니까? 영원하지 않아요? 변하는 것이죠. 마음에 따라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거란 말이에요. 그러면 이것이 어떤 실체가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없어요? 업을 짓는다는 것은 어떤 마음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겁니다. 이 자체가 무슨 업을 짓는 자가 뒤에 있어서, 너 지금 나가서 업 지어라, 불 선업 지어라. 이렇게 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어떤 적당한 조건에서, 만약에 선한 마음이 일어났다면 그건 선업이 일어나는 거고, 불선한 마음이 일어나면 불 선업이 일어나는 거지. 업을 짓는 어떤 주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실체가 있는, 자아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죠.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죠? 그죠? 받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아까 말했듯이 업을 지었으면 이게 즉시 과보를 맺는 경우도 있고, 업은 사라졌지만 그 업력이 남아서 어느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 과보를 맺는 경우도 있는데. 그 과보가 일어난다는 것이 결국은 오온이 일어나는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도 하나의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이지, 그것이 어떤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업을 받는 자나 업을 짓는자. 이런 것이 결국 무슨 이야기냐 하면, 우리에게 일어나는 현상들 중에 실체, 자아라고 할 만한 것은 없다는 거에요. 내 것이라든가, 나의 것, 또는 나의 자아라고 할 만한 것은 없다, 라는 것을 잘 이해하라는 뜻입니다.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죠? 그리고 아까 제가 말씀 드릴 때, 업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업이라는 것은 사라지지만 업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은 결과가 맺기 전까지는 사라지지 않는다. 항상 어떤 가능성으로 남아있다 그랬잖아요. 그러면 나는 이때까지 불 선업을 너무 많이 지었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되나, 걱정이 되시죠?

 

그런데 이런 업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어떤 기계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라고 부처님께서 말씀을 하셨어요. 기계적인 게 아니라, 비유가 아주 좋은 비유가 있는데, 앙굿다라니까야라는 경전에 보면 소금덩이 경이라 경이 있습니다. 소금을 한주먹을 쥐었어요. 이 소금을 한주먹을 이 컵에 넣으면 이 물이 짜지겠어요? 안 짜지겠어요? 짜지겠죠. 그죠? 그런데 내가 이 소금 한주먹을 들고 한강에 가서 집어넣으면? 한강물이 짜지겠어요? 그와 비슷하게 이걸 악업에 비유를 한다면 이 소금한 덩이를. 이게 똑같은 소금 한 덩이잖아요. 그죠? 그렇지만 이 악업이 선업이 별로 없는 사람한테는 이것이 굉장히 크게 작용을 합니다. 그런데 선업이 아주 많은 사람에게, 똑같은 악업을 지었는데 이게 별로 작용을 안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 하면, 내가 아무리 악업을 지었다 하더라도, 이 악업을 지은 주위에 선업이 많으면, 이 선업이 이걸 방해를 합니다. 이 악업이 과보로 있는 것을. 그럼 이 과보가 원래 여러분들이 팔이 끊어질 과보를 받아야 될 것이 상처만 나고 넘어갈 수도 있다 이 말이에요. 이 과보, 결과를 맺는 것이. 그래서 똑같은 업이라고 해서 항상 동일한 결과를 이루어내는 것은 아닙니다. 주변 어떤 상황과 조건과 연관성을 가지고 일어난다는 거죠. 그래서 만약에 여러분들 중에 지금까지 살면서 악업을 많이 지었다고 생각을 하면, 지금부터 열심히 선업을 지으세요. 선업을 강물처럼 만들어버리면 아무리 악업도 그것을 상쇄시킬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업이라고 하는 것이 숙명론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A라고 하는 업이 있으면 이건 무조건 A‘라는 이런 결과를 이루어내는 것은 아니고, 이 똑같은 업이라도 주변 관계의 영향을 받는다는 거에요.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죠? 이거는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보통 우리가 업이라는 것을 너무 기계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아요. 누가 뭐 차타고 가다고 죽으면, ~ 저것도 전생 업 때문이다. 자기가 차타고 가다가 졸아서 죽을 수도 있잖아요. 그건 현재 자기가 부주의해서 그럴 수도 있거든요. 그게 모든 게 다 전생 업으로만 바라본다면 대게 이거는 불교를 조금 편협되게 바라본다고도 할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물론 업이라는 것이 아주 중요한 조건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절대적이고 이것만으로 모든게 결정되는 건 아닙니다. 단지 업이 결정되는 작용을 하는 거는 이생에 죽어서 다음 생에 갈 때, 그때는 업이 아주 주된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업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이 정도는 이해를 해 주시고요. 그러면 아까 말했듯이 일생을 살면서 때로는 선업도 많이 짓고, 때로는 불 선업을 짓고 이렇게 하잖아요. 그죠? 그러면 이 우리가 일생동안 지었던 그런 업이 뭔가 다음 생에 갈 땐 그중에 어떤 업이 하나가 다음 생에 어떤 결과를 생산하게 될 거잖아요. 그죠?

 

그러면 그게 어떤 식으로 정리가 되느냐 하면, 보통 초기불교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이게 주로 죽음 직전에 정리가 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수많은 업을 지었잖아요. 그죠? 그 수많은 업 중에서 죽음 직전에 나타나는 그 업이 다음 생을 생산하는 업이 된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이거는 마치 죽음직전에 다다르면 마치 내가 그 업을 지금 현재 짓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생하게 나타난다고 이야기를 해요. 예를 들어서 여러분들이 평소에 선업을 많이 짓고, 아주 많은 선업을 지었는데 죽을 때 가까이 되니까 이 사람이. 법구경에 보면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거사님이 있는데, 이 분이 보시를 굉장히 많이 하고, 계율도 철저히 지키고, 수행도 열심히 했는데. 이 분이 죽을 때가 되니까 천상세계에서 수례가 여러 대가 와서 서로 모셔가려고 그랬다고. 그런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그러니까 이렇게 선업을 많이 지은 사람들은 죽을 때가 되면 자기가 선업을 지었던 그런 것이 막 떠올라요. 그러니까 내가 좋은 일을 많이 했던 거, 선업을 지었던 거, 그런 것이 떠오르니까, 이런 사람 마음은 편하겠어요? 불편하겠어요? 내가 일생을 살면서 좋은 일 했던 게 자꾸 떠오르니까, 죽을 때도 마음이 굉장히 편안하고, 이런 편안한 마음으로 죽게 되기 때문에 이럴 때는 보통 선업이 나타나거든요. 이 선업이 다음 생에 우리가 좋은 과보를 일으킨다 이거죠. 그런 경우는 선처에 태어나게 된다는 거구요, 그래서 이런 경우는 죽을 때 가까이 되면, 자기가 일생 동안 지었던 업 중에서 선업이 자꾸 드러난다는 거에요. 죽음에 가까이 가면.

 

그런데 부처님 당시에 한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이 있었냐 하면, 백정 쭌다, 라고 백정이 한 사람 있었는데요. 이 사람은 부처님이 나시고 나서도, 수많은 젯따와나 근처에 살았어요. 그러니까 기원정사 근처에 살았는데도, 한 번도 부처님 법문을 들은 적도 없고, 한 번도 찾아간 적도 없었던 거에요. 보시 한번 한 적도 없고. 그 대신에 평생 뭘 했느냐 하면, 돼지를 잡아서, 그것을 팔아서 먹고 살았는데. 죽일 때도 그냥 죽인게 아니고, 돼지를 그냥 막 때려서 많이 때리면 고기가 부드러워진다고 항상 때려서 죽이고. 그리고 입으로 뜨거운 물을 부어가지고 내장을 다 씻어 내버려가지고 그렇게 죽이고, 하여튼 엄청난 악행을 저질렀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죽을 때 되니까 뭐가 나타났냐하면, 자기 손발이 돼지처럼 오그라들었다고 그래요. 그래서 걸어 다니지를 제대로, 무릎도 오그라들고. 돼지처럼 네발로 기어 다니다가 일주일을. 그리고 온갖 돼지가 죽기 전에 고함지르는 소리 있잖아요? 그런 소리를 하다가 죽었는데. 그 사람 마음에는 어떤 게 일어났냐 하면 지옥의 형상이 계속 떠올랐다고 합니다. 지옥을 불길이라든가, 이런게 마음속에 계속 떠올랐다 그러죠? 그렇게 함으로서 이 사람은 자기가 지은 악업이 너무 강하니까, 죽기 전부터 자기가 어디로 갈지가 눈에 자꾸 보이기 시작한 거에요.

 

이런 식으로 자기가 지은 업에 따라서, 이게 악업을 많이 지은 사람은 악업 쪽의 어떤 형태로 계속 드러납니다. 자기가 갈 곳이 지옥이라며 그쪽으로 드러나고, 자기가 선업을 많이 지은 사람은 천상세계라든가, 또는 인간의 부모님의 자궁이 보인다거나, 이런 식으로 사람의 몸을 받을 수 있는 거라든가, 이런 징조가 나타난다는 거죠. 그리고 죽을 때도 굉장히 마음 편안하게, 행복하게, 편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가 있고요, 그런데 조금 애매한 경우가 있습니다. 선업도 특별하게 많이 하지 않고, 불선업도 적당히 지은 이런 경우는 이것이 서로 교차되면서 나타난다 그래요.

 

좋은 선업을 지은 것도 나타났다가, 불 선업을 지은 것도 나타났다가 이렇게 하는데, 그럴 때는 여러분들이 평소 수행을 많이 해서 정신을 딱 차리고 있다가, 선 한쪽으로 탁 가게 하면 선처에 태어날 수도 있다고 하죠. 그래서 우리가 일생동안 지었던 업은 그게 죽음에 가까이 가서 그때 총정리가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자기가 지었던 업 중에서 가장 뚜렷하고 가장 강력한 업이 나타나서 그게 다음 생을 생생하게 다음 생을 나타나게 한다는 거죠. 그래서 이 부분은 자세하게 설명을 하려면 굉장히 복잡합니다. 그래서 이 정도로 넘어가겠습니다.

 

어떤 오염원이 있기 때문에, 탐진치가 있기 때문에, 선업이나 불 선업이 일어나게 되고요. 이 업에 의해서 다시 업이 아직 소멸되지 않으면, 다음 생에 또 태어날 거 아니에요. 그죠? 그럼 아까 말했듯이 죽음 직전에 나타난 이 업에 의해서 다음 생에 몸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또 몸을 받았는데, 내가 다시 오염원이 사라지지 않으면 또 새로운 업을 짓게 되겠죠. 그럼 그게 죽음 직전에 나타나서 그게 또 다음 생을 생산하게 되고. 이렇게 끊임없이 윤회하고 있는 그 과정을 부처님께서 12연기로 설명을 하신 겁니다. 이걸 보고, 그러면 역으로 생각 해 볼 수 있잖아요.

 

그러면 이 고리를 끊는 방법은 뭐냐? 이거에요. 어떻게 해야 이 윤회로부터 벗어 날 수 있느냐? 그건 뭐겠어요? 이 태어나는 이유가 뭐라 그랬어요? 업 때문에 그렇다고 그랬고. 업의 원인은 뭐라 그랬어요? 오염원이라 그랬잖아요. 번뇌. 탐진치가 있기 때문에 업이 일어나고, 업이 있기 때문에 이런 과보가 일어나는 거잖아요. 그죠? 그래서 탐진치를 버리게 되면 어떻게 되겠어요? 무명과 갈애, 성냄 이런 것들을 버리게 되면, 오염원이 버려지면 더 이상 업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업이 일어나지 않으면 또 뭐가 일어나지 않겠어요? 과보가 일어나지 않겠죠. 그죠?

 

그래서 부처님께서 이렇게 무명 때문에 이것이 일어난다고 본 것을 순간이라고 그래요. 그런데 무명이 사라지면 행도 사라지고, 행도 사라지면 뭐도 사라진다, 이렇게 바라본 거를 역관, 또는 멸관이라 그럽니다. 사라지는 구조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건데. 그 사라지는 구조, 다 사라지고 나면 실현하는게 열반이라는 거구요. 이것을 사라지게 하는 그 방법이 도성제입니다.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죠?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무명과 갈애라고 하는 것은 윤회의 가장 결정적인 원인, 집성제거든요. 이 집성제가 있기 때문에 업이 일어나고, 업이 있기 때문에 고성제라고 하는 오온이 다시 태어남이 다시 있다는 거구요, 그래서 이것이 무명과 갈애가 사라지면 열반이 실현된다는 겁니다. 열반이 실현되고 무명과 갈애를 버리는, 내려놓는, 포기하고 놓아버리는 그 방법이 뭐라는 거에요? 그게 바로 도성제, 팔정도입니다.

 

그래서 오늘까지 제가 사성제에 대해서 간단히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난시간까지 고성제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드렸고, 오늘 말씀드린 거는 이런 오온이 일어나는 원인에 대해서 말씀을 드린 거구요, 그러면 이 오온이 일어나는 원인을 소멸하면 고통이 사라지게 되겠죠. 그죠? 그러니까 이 집성제라고 하는, 무명과 갈애를 소멸하면 열반을 실현하게 되는데, 이 무명과 갈애를 어떻게 그러면 소멸할건가. 어떻게 버릴 건가. 그 부분에 대해서 앞으로 수행방법에 대해서 다음 시간부터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이걸로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