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학스님의 금강경 19_7. 경허스님의 오도송, 우학스님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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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법문/우학스님_금강경

2017. 7. 3.



그 아래 게송이 하나 있는데,

문득 콧구멍 없는 소란 말을 들으니

삼천대천세계가 내 집임을 알겠네.

유월이라 연암산 내려가는 길

들사람이 태평가를 부르며 한가롭네. -경허스님 오도송-

 

경허 성우, 경허라고 하는 큰스님이 계셨는데, 그 경허 성우스님의 오도송이라 이렇게 알려져 있습니다. . 경허라고 하는 큰스님께서 23살에 강주, 경전을 가르치는 그런 강주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경허스님이 31살 때 어느 마을을 지나가는데, 그 마을 사람들이 달려와서 야단을 쳐요. “이 마을 지나가면 죽는다.” 그랬어요. “왜 그러냐?” 하니까 이 마을에 지금 돌림병이 돌아서 지금 태반이 죽어갔고, 저기 한번 봐라. 저기 들고 가는 것이 다 시신이다.” 이렇게 말했어요.

 

그래서 이 경허스님은 젊은 나이. 31살이면 젊다고 살 수 있겠죠. 등골이 오싹하고 정신이 없어졌어요. 보통 불교에서는 생사는 하나다. 생사가 일이하다. 이렇게 하거든요. 이론적으로는 생사가 하나죠. 그런데 막상 경계가 닥쳤을 때 과연 생사가 하나다 그렇게 초연할 수 있느냐 이거죠. 우리가 남 얘기는 쉽게 하죠. 그렇지만 자기 집에 그런 어려운 상황이 닥쳤을 때 남 얘기하듯이 자기 일이 그토록 아주 태연해 할 수 있냐? 그런 문제하고 똑같습니다.

 

그래서 이 경허 스님이 생사가 일이하다말로는 했지만 자기가 죽음의 마을을 지나가면서 너무나 큰 충격을 받고 , 내가 아직 공부가 덜되었다.” 이래서 참선공부를 시작했다. 했어요. 그래서 10년쯤 지났어요. 공부라는 것도 12년에 마무리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경전 공부도 마찬가지고 참선도 마찬가지고. 10년쯤 지난 어느 날, 어떤 스님들하고 모여서 법담을 나누는데, 한 스님이 말했어요.

 

스님이 죽으면 무엇이 될꼬?” 하니까 한 스님이 있다가 스님이 죽으면 아마 시주집네 소가 안 되겠나?” 그런 얘기를 해요. 옆에 있는 스님이 또 한말이 소가 되어도 콧구멍 없는 소가 될 것이다.” 이랬어요. 여기 얘기 해 놨잖아요. 무비공이라. 보고 있습니까? . 거기에 있네요. 콧구멍 없는 소. 무비공이 된다. 문득 콧구멍 없는 소라는 말을 들으니, 이 소리를 듣고 깨쳤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경허스님은 여기서 크게 홀연히 깨쳤다.

 

여기서 깨쳤다라고 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자기 자신을 봤다.

여기 보이지 않는 세상을 봐라 이 말이거든요.

 

법신은 상이 아니다.

이 말은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세상이 있으니

그것을 볼 줄 아는 자가 진정한 자다.

 

바로 경허스님은 여기서 보이지 않는 자기 자신을 크게 봤어요. 그래서 이 시를 크게 읊었습니다. 문득 콧구멍 없는 소란 말을 들으니 삼천대천세계가 내 집임을 알겠네.

 

유월이라 연암산 내려가는 길,

들사람이 태평가를 부르면 한가롭네.

 

그래서 이 경허스님 이후로 많은 선지식들이 또 배출됩니다.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나중에 말씀을 드리고,

 

제가 시한 편을 소개하겠습니다. 2014527. 제가 무문관 감포도량 세계명상센터가 있는 그 안에 일종식, 하루 한 끼 먹고 공부하는, 참선 공부하는 그런 선방이 있는데, 그곳을 무일선원 무문관이라 이렇게 말해요. 그 무일선원 무문관에서 제가 3년 천일 있는 동안에 2014527일에 제가 그때 떠오른 게송을 소개하겠습니다. 모두 합장하시고 모두 따라하십시오.

 

불체생명지근원_부처의 체는 생명의 근원으로

비대비소비미추_크지도 작지도 않으며 아름다움도 추함도 아니로다

확연무일이비무_텅 비어 하나도 없으나 없는 것도 아니니

심즉자성불시심_마음이 곧 자기 성품이요, 부처는 바로 마음이로다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