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학스님의 금강경 20_1. 무단무멸, 단하 천연스님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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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법문/우학스님_금강경

2017. 7. 6.



, 모두 반갑습니다. 금강경 핵심강의 시간을 시작하겠습니다. 가지고 계신 책 290페이지, 무단무멸분 27, 무단무멸이라 하였고, 본문 읽어보겠습니다.

 

수보리 여약작시념 여래불이구족상고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보리 막작시념

여래불이구족상고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보리 여역작시념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 심자 설제법단멸

막작시념 하이고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

심자 어법불설단멸상

 

수보리야, 네가 만일 이런 생각을 하되 여래는 구족한 상을 쓰지 않는 까닭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하겠느냐

수보리야 여래는 구족한 상을 쓰지 않는 까닭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하는 생각을 짓지 말라.

수보리야 네가 만일 이런 생각을 하되

아뇩다라삼막삼보리심을 발한 사람은 모든 법이 단멸했다고 말하는가 한다면

이런 생각도 하지 말지니 왜냐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사람은 법에 있어서

단멸상을 말하지 않느니라.

 

, 지금 분의 이름이 /무단무멸/입니다. /단멸이 없음/ 그랬어요.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무단무멸. 무단무멸. 단멸이라고 하는 것은 끊어지고 아무것도 없다. 그런 말인데, 여기서 무가 붙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다. 이 말입니다. 이 앞 장의 분 이름이 /법신무상/이라 그랬거든요. /법신은 상이 아니다./ 그러니까 법신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해 놨더니 또 이 중생들이 집착을 해서 그럼 아무것도 아닌가?” 이렇게 중생들이 오해할 부분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다. 해서 다시 또 그 생각을 고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무단무멸이라. 읽어보겠습니다. 무단무멸. 법신비상이라 법신은 상이 아니다.

 

옛날에 단하 천연스님이라고 하는 큰 스님이 계셨는데, 이 스님이 젊은 시절에 행각을 할 때 자기 도반하고 어느 절에 들어갔는데, 그 절에 객실이 냉방, 한빙지옥처럼 찼어요. “혹시 좀 따뜻한 방 없느냐 하니까?” 거기 주지스님이 여기는 따뜻한 방이 없다. 그냥 여기서 자라.” 그랬어요. 같이 다니던 도반이 감기몸살이 걸려서 죽을 지경이 되었는데도 물구하고 따뜻한 방을 내주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도반스님이 너무 아프다. 좀 따듯한 방 하나를 부탁한다.” 아무리 그래도 얘기를 안 듣는 겁니다.

 

그래서 단하 천연스님이 생각이 있었던지 알았다고 그러면 객실에서 주하게 되었는데, 한밤중에 몰라 나가서 법당에 있는 부처님이 목불이었던 모양입니다. 삼존불이 있었는데 중앙에 있는 본존불을 업고 나와서는 그것을 군불로 떼어버렸어요. 아주 뜨뜻하게 잘 잤죠. 그 다음 날 난리가 났어요. 부처님이 안 보이는 거죠. 예불 드리려고 보니까 본존불이 없어요. 온통 다 찾아 다니다보니 군불, 객실에 군불로 때어버리고 말았던 거죠. 불도 다 타고 있었고. 그래서 주지스님이 직접 난리가 났습니다. 객실에 두 스님을 불러내서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부처님을 이렇게 하는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막 야단을 치니까, 단하스님이 나는 부처님 여기 혹시 사리가 나올까 싶어서 내가 화장해 봤다.” 그랬어요.

 

그러니까 주지스님이 , 이 사람아. 나무인데 어떻게 사리가 나오겠냐?”. 자기 식대로 고함을 질러 댔겠죠. 그러니까 사리도 안 나오는 거 부처님이냐고. 잘됐다고 두 부처님도 마저 때자.”고 그랬어요. 아주 유명한 얘기인데, 잘 새겨서 생각해 봐야 되요.

 

도반이 아주 죽을 지경이 되었는데, 도반 스님을 위해서 부처님을 장작으로 땐 것이 과연 어디에 그 뜻이 있겠는가. 그리고 또 누구나 다 그렇게 해서 되겠는가. 그것까지도 생각을 해봐야 되요. 그것도 감당이 안 되는 사람이 함부로 부처님을 불 땐다거나 훼손한다거나 그러면 천벌 받습니다.

 

그러니까 아주 법신비상이라. 법신은 상이 아니다 라고 하는 주안점을 두고 생각을 해 볼 문제인데, 아무튼 이런 얘기를 듣고 그러면 아무것도 아니네.” 이렇게 오해를 해서 온갖 나쁜 짓을 한다거나, 육신마저도 학대한다거나, 또는 모든 만들어진 것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니다. 해서 단멸에 빠진다면 그것 또한 큰 문제다. 그런 얘깁니다.

 

그래서 각론에 보면

색신이 부처가 아닌 것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색신을 떠나서 부처를 보지도 못하리라.

이렇게 얘기를 해 놨습니다.

 

우리가 불교 공부를 잘못하다보면 건방진 것만 남아서 , 그것도 소용없다. 그것도 소용없다.” 봉사를 좀 해도, “, 봉사 그거 무슨 소용 있노? 다 소용없어.” 누가 소임 좀 살아라. 소임 살라는 것이 절에서 말하면 , 너 입성 좀 해라. 입성스님 좀 해라.” 우리 한국불교대학 같으면 , 너 관음장 좀 해라. 관음 총무 좀 해라.” 하면 할 수 있는 능력이 되면 하면 좋은데,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 나 그런 거 하려고 여기 온 거 아니야. 나 공부하러 왔어.” 자꾸 빼요. 좀 하면 될 텐데. 그래서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여기에 또 빠지게 되는 겁니다.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데 그렇습니다.

 

/색신, 소리등의 상을 완전히 무시하면 단멸에 떨어진다./

그랬어요. 단멸. 아무것도 아니다. 무기공. 그 무기력에 빠지고 말아요.

 

/만일 모든 범부 중생들이 3280종호의 부처님 형상을 무시하고 32청정행을 닦지 않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룬다 하면 스스로 부처종자를 죽이는 일이다./

그래서 바깥에 드러나 있는 모양을 너무 무시해도 될 일이 아닙니다. 초연한 것은 괜찮지만 무시하면 그것도 큰 문제인 거죠.

 

그리고 공부를 하다보면 , 이 육신까지도 아무 소용없어.” 이렇게 해서 육신을 학대하고, 그래서 나중에는 오히려 그것이 마음에 상처까지 되어서 사는 것이 힘든 사람도 많거든요. 육신을 잘 가꾸어서 육신이 있는 동안에 마음공부를, 집이 있어야지 부처가 온전하게 살아있는 거거든요. 집이 허물어지고 없는데 집 안에 사는 사람 부처가 어떻게 온전하겠느냐 이거죠. 그래서 우리는 육신에 집착할 것은 없지만 육신도 잘 가꾸어야 할 때는 잘 가꾸어야 한다. 그런 얘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