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학스님의 금강경 21_3. 혜월선사의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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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법문/우학스님_금강경

2017. 7. 13.



옛날에 혜월이라고 하는 큰 도인이 있었다고 전해옵니다. 이 혜월선사가 울산 미타암에 계실 때 였습니다. 울산 미타암은 통도사 말사입니다. 당시 일제하에 있었던 치라, 여러 가지 특성상 도인이었지만 직접 주지를 하면서 그렇게 살았던 모양입니다.

 

하루는 재를 지내려고 시자 하나를 데리고 장에 직접 갔어요. 들어보면 노스님은 지금도 직접 가는 사람이 있어요. 아무튼 장에 시자를 데리고 재장을 보러 갔습니다. 옛날에는 차가 있었을 때도 아니니까, 시자가 지게를 지고 혜월 스님은 앞장서서 가셨겠죠. 그런데 장에 들어가는 입구에 아침부터 어떤 아낙네가 아주 서글피 머리를 풀고는 슬피 울고 있어요. 그것도 큰 고함소리로. 그래서 스님이 다가갔습니다.

 

뭣 때문에 아침부터 모든 사람들 다 정신 사납게 울고 있느냐?” “아이고 스님, 말도 마이소.” 제가 보증을 서서 집이 다 날아가게 생겼다는 거요. 그래서 도저히 우리는 가족이 다 같이 모여살 수도 없고 해서, 너무나 이 현실이 안타깝고 너무나 분통 터지고 하는 일이라고 제가 여기서 그냥 울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스님이 물었어요. “그러면 지금 해결해야 할 돈이 얼마냐?” 80원이라고 그랬어요. 일제강점기때, 아마 큰돈이었던 것 같아요.

 

스님이 그러면 울고 있을 일도 아니고 내가 돈 좀 가져왔으니까 이거 네 해라.” 울고 있는 아낙네에게 80원을 줬어요. 그리 하기 힘들거든. 지금 재장을 보러 왔어요. 내일이 49재 잿날이라. 내일 재를 지내야 되는데, 그 돈 80원을 줘버렸으니 큰일이죠. 시자가 옆에서 보니 기가 찬 거요. 그것도 아낙네가 80원 받았으면 되었지. 또 찔찔 짜는 거요. “왜 또 찔찔 짜느냐?” 그러니까 스님, 집은 이것으로 하면 건질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당장 돌아가도 먹을 게 없습니다.” 아무것도 먹을 게 없다 이거요.

 

그래서 스님이 보니 측은한지 그럼 알았다.” 이러고는 그냥 남은 20, 100원 들고 내려갔거든요. 시장에 100원 들고 내려갔는데 80원 주고, 또 아낙이 찔찔 짜니까 20원 마저 줘버렸어요. 그러면 장 볼 필요도 없고, 장 볼 수도 없어. 돈이 없으니까. 그 길로 도로 올라온 거요. 그 원주는 저 멀리서 스님이 오니까 , 이제 장을 봐서 오는가보다싶어서 짐을 나누어서 가져가려고 저 산 밑에까지 내려와서 지게를 하나 더 지고 내려와서 기다리고 있었어. 그런데 두 사람이 터덜터덜, 아주 힘없이 둘이 오고 있는 거요.

 

그래서 큰 스님한테는 여쭙지 못하고 시자한테, “오늘 왜 장을 안 봐서 오느냐?” 그러니 시자도 불만이 아주 입에 끝까지 차서, “스님한테 직접 물어봐라.” 하면서 말도 잘 안 해요. 나중에 자초지종을 여러 가지 얘기를 하는 거 보니 돈을 다 써버리고 빈 몸으로 올라왔다 이거요. 스님들끼리는 그게 이해가 되요. 원래 재라는 것은 복을 짓게 함으로서 그 영가 때문에 복을 지은 것 아닙니까? 영가는 그 복으로 해서 좋은데 가신다는 것을 스님들은 이해가 돼.

 

그렇지만 재를 지내러온 신도들 입장에서는 도저히 그것은 용납이 안 되는 이야기죠. 그 다음날이 되었어요. 재 꾼들이 아마 큰 가족이 있는 옛날에는 다 그랬죠. 큰 가족이 있는 그런 재였던 모양인데, 사람들이 한마당 수북이 왔는데, 재 지낼 준비는 전혀 안 되어 있어요. 찬물 한 그릇 없는 거요. 그러니 맏상주 되는 사람이 원주스님한테 따지니까, 원주 스님도 감당이 안 되니 스님한테 데리고 간 거요. 조실스님한테. 조실겸 주지 큰 스님한테 데리고 가서 얘기를 시켰죠.

 

그러자 혜월 스님이 하신 얘기가 내가 이래서 이렇게 되었다. 다 재 잘 지냈다. 그만 끝내라.” 그랬어요. 그런데 큰스님을 찾아온 신도도 상당히 수준이 있었는지 큰 스님 말씀을 듣더니 아이고, 큰 스님 우리 재를 그렇게 잘 지내주셔서 고맙습니다.” 하고는 용돈을 몇 십원 더 내주고 내려갔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스님들이 재를 지내면 그 번거롭습니다. 목탁치고 요령 흔들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목탁 한번 안치고, 요령 한번 흔들지 않고 아주 거룩하게 복도 짓고 재를 잘 지냈다. 그런 얘기가 있어요.

 

동과 정이 일여함이다.

 

여래란 늘 공적하게 있을 뿐이다.

가고 옴이 있으면

시방과 삼세에 충만할 수도 융통자재 할 수도 없다.

 

하늘에 뜬 둥근 달이 여러 강물에 비친다 하여

달이 오고 가는 일은 없다.

이와 같이 오고 감이 없으므로 여래라 하는 것이다.

 

물이 맑으면 달이 나타나고

물이 흐리면 달이 보이지 않을 뿐

본래의 달은 늘 그대로 있다.

 

이 글을 보면 좀 이해가 될 겁니다. 달은 그대로 있을 뿐이잖아요. 여래는 오고 감이 없다. 이런 말입니다.

 

여래는 온 우주 법계에 가득하지만

한마음 청정하면 부처님을 보고

한마음 어두우면 부처님이 숨는다.

 

우리가 늘 마음이 청정하면 늘 부처님을 보는 일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