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학스님의 금강경 22_2. 용화스님, 법안문익스님이 겪은 일

댓글 0

스님법문/우학스님_금강경

2017. 7. 21.



/수보리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사람은

모든 법에 대하여 응당 이와 같이 알며, 이와 같이 보며, 이와 같이 믿어서

법이라는 상을 내지 않아야 하느니라./

법상이라. 법이라는 상을 내는 것을 법상이라고 말하잖아요.

 

/수보리야, 말한바 법상이란 여래가 설하되 곧 법상이 아니고 그 이름이 법상이라./

, 그 이름이 법상이라. 그랬습니다. 여래가 설하되 곧 법상이 아니고 그 이름이 법상이니라. , 늘 부처님께서는 법을 얘기하고 법을 말하지만, 그 법은 실체가 없고 이름 지어질 뿐이지, 빨리 그 본론으로 들어가라. . 법상을 내어서는 안 된다. 그런 말입니다.

 

옛날에 용화라는 아주 큰 스님이 계셨는데, 용화스님에게 어떤 제자가 와서 물었어요. “스님, 저 강과 호수가 사람을 속이려는 뜻이 있습니까?” 이렇게 물었어요. “강과 호수가 사람을 속이려는 뜻이 있습니까?” 하니 용화스님이 조사와 부처는 사람을 속이려는 뜻이 없다.” 이렇게 말했어요. “조사님 또는 부처님은 절대 사람을 속이려는 뜻이 없네.” 그러니까 그 제자가 그 얘기를 듣고도 가만히 있었어요.

 

그때 이 용화스님이 조사나 부처님은 사람을 속이려는 뜻이 없다.” “강과 호수가 사람을 속이려는 뜻은 없으나 사람이 강과 호수를 건너지 못하면 사람이 강과 호수를 원망한다.” 그랬 거든요. , 사람이 건너지 못하면 강과 호수를 원망한다.

 

우리가 산에 가서 앞산이든지 저 남산이든지 올라가다가 넘어져요. 다쳐요. 그러면 남산이나 앞산이 산이 다치라고 한 적도 없고, 또 다치게 한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이 좀 모자라는 사람, 속이 좁은 사람은 막 산을 차면서 내가 이 산 때문에 다쳤다.” 이렇거든. 그러잖아요. “다시는 이 산에 안 올 거다.” 이러거든요. 산이 언제 오라했나. 자기가 안가면 그만이죠.

 

그런데 지혜로운 자는 그 산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체력을 단련하고 유산소운동을 하면서 건강을 유지하잖아요. 산은 사람을 해칠 생각도 없었어요. 사람을 속이려는 생각도 없었습니다. 산은 늘 그대로 있을 뿐이지요. 바로 그런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래께서 이 경을 설하실 때에는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반야의 지혜를 스스로 깨달아서 스스로 보리과를 증득케 하시거늘, 범부들은 부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여래께서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을 설했다.’고 하는데 대한 의심을 풀어주고 있다.

여래가 설하신 아견인견등의 견은 범부의 아견인견등과 같지 않다. /

이 말도 좀 어렵네요.

 

옛날에 법안문익이라는 스님이 계셨는데, 법안문익스님이 젊은 시절 행각할 때였습니다. 이 행각은 다니면서 이 절 저 절, 이 고장 저 고장 다니면서 체험적 공부를 하는 것을 만행 또는 행각 이렇게 말해요. 행각시절에 법안문익 스님이 겪은 일입니다. 어느 절에 들어갔더니 며칠 막 들어가자마자 눈이 와서 한 3~4일 거기서 지내게 되었고, 거기서 아마 그 절 주지스님이 계침선사, 계침이라는 스님이었는데 아마 이 법안문익을 잘 봤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눈이 그치자 저 아래까지 바래다줬던 모양입니다. 눈은 그치고, 눈도 좀 녹았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길옆에 커다란 바위가 있었는데, 그 바위가 눈에 들어오자 선사가 물었어요. 그 젊은 법안문익에게 물었습니다. “젊은 수자, 저 바위덩어리가 보이는가?” “, 보입니다.” “저 바위덩어리는 그대의 마음 안에 있는가? 마음 밖에 있는가?” 이렇게 물었어요.

 

잘 생각해 봐야 되요. 저 바위 덩어리는 그대의 마음 안에 있는가? 그대의 마음 밖에 있는가? 불교는 삼계유심이라. ‘모든 것이 다 마음 안에 있다.’ 이랬거든요. 마음 안에 있다. 당연히 배운 바대로 젊은 법안문익스님은 계침 노스님에게 스님, 마음 안에 있습니다.” 이렇게 답변했어요.

 

그래서 스님은 그에 대해서 일괄하기를 이 바보등신아, 그것이 마음 안에 있다면 저 무거운 돌덩어리를 안고 네가 어떻게 행각을 하겠느냐?” 이랬어요. 마음 안에 있으면 그 무거운 돌덩어리를 안고 어떻게 돌아다니겠느냐 이 말이잖아요. 거기서 이 법안문익 젊은 스님은 크게 느낀 바가 있어서, 걸망을 매고 다시 올라가서 큰 스님 문하에서 공부를 했다. 그런 말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잔꾀, 이론, 다녀보면 불교 공부한 사람이 더러더러 많아요. 그런데 그것이 내적 체험화가 되지 않고 그냥 말에 머무른 그런 이론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겁니다. 여기서도 얘기했던 것처럼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에 머무르면 안 된다. 그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