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학스님의 금강경 22_5. 하이고, 유위법 무위법, 육여, 걸림없이 이 세상을 살아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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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법문/우학스님_금강경

2017. 7. 24.



그리고 그 아래

/하이고 일체유의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거기 하이고라는 말 있죠. ‘하이고란 말이 여기 많이 나와요. 금강경은 천도경에도 좋고, 또 자기 업장소멸하는 데도 좋고, 또 우환을 다스리기에도 좋고, 특히 지혜를 계발해서 부처가 되는데도 이 금강경만한 경이 없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천도해도 좋다. 해서 천도할 때 우리 절에서는 꼭 금강경을 읽습니다. 딴 거 잘 안 읽고.

 

왜냐하면 파이집현삼공이라. 아집과 법집을 파하는데 집착을 벗어던져야 되거든요. 법집착을 벗어던지는 데는 이 금강경이 최고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늘 제때마다 또는 시달림 갔을 때도 이것을 읽게 되는 데도 하이고 일체유의법하니까,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아이고 스님, 그 금강경은 참 잘 되어있는 것 같습니다. ‘하이고자꾸 곡을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래.

 

그래서 금강경을 공부한 사람 입장에서는 그런 말 하면 안 돼요. ‘하이고가 무슨 뜻이냐? 무슨 까닭인가? 하이고. 무슨 까닭인가 요 말은 알아야 됩니다.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하이고, 무슨 까닭인가?/ 이것 정도는 이해하고 있어야 되죠. 하이고가 많이 나오니까 천도에 좋은 경인가 보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하이고 무슨 까닭인가?

 

거기 유위법이라고 나왔잖아요. 이 유위법은 무위법에 대한 상대개념입니다. 유위법 무위법 그러는데, 이 유위법은 함이 있다 해서 억지로 조작해서 마지못해 하는 것을 유위라 말하고 그러한 법을 무위법이라 이렇게 말해요. 반면에 이 무위라는 말은 말 그대로 함이 없다. 순수하고 깨끗하고 자연스럽고 아주 순박한 그러한 상태를 무위 무위법이라 이렇게 말해요. 그래서 우리는 어쨌든지 무위법에 머물러야지 자꾸 유위법을 들락날락하면 안 된다. 그 말입니다.

 

그런데 이 유위법은 얼마나 허망하냐?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이라. 이것을 육여라 이렇게 말해요. 324페이지 하단에 있는가요? 육여(,,,,,)

다시 원문을 보면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이라. 꿈같고_억지로 쓰는 마음은 다 꿈같고, _허깨비 같고, _물거품 같고, _그림자 같고, _이슬 같고 전_번갯불 같다. 찰라에 지나가는 번갯불 같은 것이니 응당 이와 같이 관해라 이랬잖아요.

 

그러니까 억지로 조작해서 마지못해서 중생심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법이 다 유위법인데 그것은 다 쓸데없다. 그런 얘깁니다. 다 쓸데없다.

 

그러면 다시 본 책으로 가서 우리 범부들은 꿈 번개들의 육여 아까 말했죠. 그것을 6가지 비유, 육여라 이렇게 말해요.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거기가 육여의 부분입니다.

 

/우리 범부들은 꿈, 번개등의 육여를 여의고

여여하고도 부동한 이 법을 증득해야 됩니다.

언어, 시비, 분별이 끊어진 진여의 자리는

일체유위법이 꿈, 허깨비 등과 같음을 느낄 때 얻어진다.

그러면, 이미 그는 어느 한곳에 머물지 않아

현상계와 진리의 세계를 종횡무진 한다.

있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님을 알며

없는 것이 없는 것이 아닌 줄 안다.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는 중도의 자리에 서서

걸림없이 이 세상을 살아나간다./

 

거기 밑줄 치시고 우리는 반야심경에서도 무가애고무유공포 그런 말이 있잖아요. 우리는 무가행을 해야 되고 무애행을 해야 됩니다. 걸림없이 이 세상을 살아나가야 된다.

 

/주객이 둘이 될 수 없으며, 설법과 침묵이 둘이 될 수 없다.

평등의 이치가 차별의 상이 되어 활약하고

또 차별의 상은 평등의 이치에 귀입하여

평등 즉 차별, 차별 즉 평등이라는 우주실상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제가 30대중반에 쓴 책인데, 지금 생각해도 그때 글 잘 썼다.” 그런 생각 들어요. 중간에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걸림없이 이 세상을 살아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