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민석의 십장생한국사 - 7회 임진왜란, 피로 쓴 교훈(1)

댓글 0

시사 - 역사/설민석_십장생한국사

2018. 3. 16.



, 오늘은 임진왜란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왜 임진왜란을 우리가 다루게 되었느냐? 작년 2014년에는 KBS대하드라마의 정도전이 국민들의 아주 뜨거운 사랑을 받았는데요, 올해는 류성룡의 징비록이 드디어 국민여러분들을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류성룡은 임진왜란을 진두지휘했던 사실상 총사령관이었거든요. 그래서 일단 류성룡이 누구인지, 그분의 업적은 무엇이 있지.

 

우리는 임진왜란 그러면 이순신 장군 밖에 모르잖아요. 유성룡에 대해서 살펴보고 그리고 임진왜란의 배경, 전개과정 결과를 통해서 우리가 여러 가지 교훈을 얻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류성룡입니다. 서해 류성룡. 이 분 같은 경우는 어렸을 때 이순신장군하고 같은 동네에서 뛰어놀고 자랍니다. 3살 선배죠. 이순신보다. 그래서 이순신의 됨됨이하고 능력을 알아보고, 임진왜란 벌어지기 12개월 전에 현감이었던, 작은 현의 현감이었던 이순신을 전라좌수사로 강력추천을 합니다.

 

임진왜란 직전에 여기 있는 류성룡께서 좌의정이었습니다. 좌의정이었고, 이순신장군, 이런 분들을 요직에 심어놓으신 분이 여가 있는 류성룡이셨고, 그리고 왜란이 터지고 나서 영의정으로 승진을 하시면서 사실상 전쟁의 총사령관 역할을 하신 분이 류성룡이셨다. 이렇게 보시면 되겠습니다.

 

류성룡은 어렸을 때부터 천재였다고 하지요. 보통 과거 시험 보기 전에 성균관이라는 대학교입니다. 성균관대학교에 가서 과거 시험 준비를 하는데, 보통 한 4년에서 5년 정도 걸려서 준비를 해요. 그래서 과거 시험을 보는데, 여기 있는 류성룡 같은 경우는 딱 2년 만에, 오늘로 따지면 조기졸업이죠. 2년 만에 과거에 급제를 하게 되구요,

 

워낙 똑똑해서 천 원짜리 표지 모델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퇴계 이황이시죠. 이황선생께서 류성룡을 보고 이 아이는 총명함이 장차 이 나라의 인물이 될 것이다.” 라고 예언까지 할 정도로 아주 청년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 류성룡은 평생 한명의 임금만 모셨는데요,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선조입니다. 류성룡이 과거에 합격하고 2년 있다 선조가 왕위에 오르고요, 류성룡이 돌아가시고, 1년 있다가 선조가 돌아가시거든요. 일생 한 임금만 모셨던 분이 류성룡이에요. 류성룡은 조선왕조 5백 년 동안 5대 제상으로 손꼽히게 되는데요,

 

류성룡 말고 다른 재상들을 보면 자, 세종대왕 때 황희랄지, 조선후기 정도대왕 때 채제공이랄지, 대장 밑에 쫄장 없다고 항상 이렇게 성군이 있고, 그 밑에 훌륭한 재상이 나오는 법인데, 선조 같은 경우는 전쟁을 발발 시킨 것뿐만 아니라, 전쟁 때 도망갔던 비겁하고, 별로 우리 국민들이 안 좋아 하는 인물 아닙니까? 쫄짱 밑에 대장 났다. 이런 상황이 바로 류성룡이다. 이렇게 봐주시면 되겠습니다.

 

, 류성룡은 7년 동안 임진왜란을 진두지휘 했구요, 이순신 장군께서 노량해전으로 전사를 하시지 않습니까. 바로 그 시점에 파직을 당하십니다. 그 이유는 누군가 전쟁에 대한 책임은 져야 되는데, 임금이 질 수는 없잖아요. 관직에서 물러나시구요. 그리고 나서 책을 쓰게 됩니다. 그것이 그 유명한 바로 징비록이 되는 것이죠.

 

징비록이라는 것은 뭐냐하면 영의정 반성문, 이렇게 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반성하고 되짚어 보는, 바둑으로 따지면 복귀해본다고 그러죠. 그런 이유에서 쓴 것이 바로 징비록이 됩니다.

 

징비록을 쓰고 나서 한 16년 정도 지납니다. 그리고 그의 후손들에 의해서 이것이 책으로 만들어지게 되는데, 우리 조선에서는 크게 회자되지 못하구요, 이것이 일본으로 건너갑니다. 그래서 이본에서 번역본이 만들어지게 되는데, 일본인들이 역사적 고증을 철저하게 해요.

 

그래서 왜란 때 일들을 다 담아서 새로이 만든 것이 바로 일본판 징비록이 되구요, 이 사실을 우리 조선 정부는 전혀 모르고 있다가 통신사를 통해서 내용을 알게 되고, 뒤 늦게야 여기 있는 징비록에 대한 관심을 가졌던, 이런 어이없는 일도 있었습니다.

 

, 이렇게 해서 류성룡과 징비록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구요, 자 그러면 임진왜란 내용이 무엇인지, 배경부터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전쟁이 바로 임진왜란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 그거 아세요? 임진왜란과 1910년에 일본 제국주의가 침략해서 우리가 35년 그들한테 지배당하잖아요. 여기에 놀라운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 아십니까? 그 내용을 제가 보여드릴게요. 잘 보셔야 되요.

 

우리나라, 보면 항상 우리나라와 그 중국의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감기바이러스 침투하듯이 일본이 치고 들어오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보통 그랬어요. 일본이 이렇게 있죠? , 보면 임진왜란이 1592년에 벌어진 413일날 일본이 우리나라를 쳐들어오는 전쟁이 됩니다.

 

그 당시 전쟁의 배경을 보면 중국이 명나라였는데, 이 명나라말기에 굉장히 부정부패가 심하고, 이 북쪽으로는 몽골족들이 계속 괴롭히고 있었고, 남쪽에서는 왜구라고 그래서 일본해적들, 일본 군대가 아닙니다. (도둑놈 구)자에요. 일본 해적들이 출몰하면서 굉장히 명나라는 내우외환을 겪고 있었어요. 안으로는 부정부패, 밖으로는 오랑캐들의 침입, 이런 거였죠. 왕조 말기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여기 있는 조선은 어땠냐하면 이때 우리나라의 북남 정치가 막 시작이 되고, 그리고 또 하나 조선에서 불리한 점이 200년간의 지나친 평화였죠. 이런 것 때문에 거의 일본을 잊고 지내고 있다는 것, 이런 것들이 문제점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100여 년간의 전국시대를 통일한 일본의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무사들의 에너지를, 전쟁이 끝났으니까 밖으로 돌려야 될 거 아니에요. 무사들 다 굶어죽을 수가 없으니까.

 

그래서 어떻게 생각을 하냐하면 조선을 병참기지화 삼아서 중국을 치려고 그랬어요. 토요토미는 조선 정벌은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여기 있는 중국이 자신들의 목표였죠. 그래서 중국의 넓은 땅을 영지로 사무라이 무사들한테 나눠주겠다. 이 생각을 한 거죠. 이 생각을 최초로 한 인물이 바로 토요토미 히데요시(1536~1598, 일본의 무장 정치가. 100년 동안 분열 되었던 일본을 통일하고, 대륙을 침공하고자 함)가 되겠습니다.

 

그런데 이 꿈을 누가 꺾어요? 우리 이순신 장군이 꺾어버리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토요토미의 망상을 300년 뒤에 현실로 이루는 인물이 등장을 합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들 알고 계시죠? 이토오 히로부미(1841~1909, 일본의 정치가. 울사조약을 강요하고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아시아 침략에 앞장 섬) 가 됩니다. 물론 이토오 히로부미는 우리나라가 일본한테 나라를 빼앗기기 직전에 안중근 의사의 손에 저 세상으로 가버리게 되지만, 사실상 한반도 침략의 원흉이었던 자가 이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여기 그림 보시면 나와 있지만, 요것이 191011월자 일본 만화 잡지, 정치 잡지죠. 토코폭에서 가져온 그림이거든요. 우리나라가 망한 게 1910829일이니까, 국권피탈 직후에 일본인들이 그린 그림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저승에서 만난 두 영웅의 악수, 이런 장면이에요. “어이고, 이토오 히로부미 수고 많았어. 내가 못 이루었던 꿈을 네가 초석을 닦아 놓고 왔구나. 어서 오개.” 그러면서 저승에서 두드리는. 이런 끔찍한 모습이다.

 

그리고 보면 이때 우리가 일본한테 잡아먹힐 때, 여기 있는 중국도 그랬어요. 그때 명나라가 없고 청나라 시대였잖아요. 청나라가 왕조 말기에 여러 가지 문제점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여러분들 청일전쟁(1894.6~1895.4 청나라와 일본이 조선의 지배권을 놓고 다툰 전쟁) 이라고 들어봤죠. 청일 전쟁에서 청나라가 화력도 강하고 병력도 강하고 훨씬 많았는데, 일본한테 왜 졌는지 아세요?

 

청일전쟁에서 빵하고 함포사격을 합니다. 일본 배에 폭탄이 떨어졌는데, 갑자기 콩가루가 퍽하고 터졌다는 거 아니에요. 파편이 튄 게 아니라 콩가루하고 흙 같은 게 터집니다. 군에 포탄을 납부하는 업자가 이 생산비를 줄이기 위해서 화약대신 폭약대신 거기다 콩가루를 섞어서 보낸 거예요. 이렇게 나라가 부패해 있으니 당연히 일본한테 질 수밖에 없죠.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뭡니까? 그렇죠. 바로 면역력이 떨어지면 이런 외세 침입을 받을 수밖에 없다라는 이런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당시 조선의 상황은 말할 것도 없구요. 그래서 결국 일본의 침략을 당하게 되는 겁니다.

 

, 어쨌든 그래서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우리 조선을 침공하게 되는데, 사람들이 많이 잘못알고 있는 게 뭐냐하면 임진왜란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기습한 줄 알거든요. 그런데 그건 기습이 아니었습니다. 조선통신사랄지 국서를 통해서 끊임없이 우리나라한테 알려왔어요. “, 조선아, 앞장서라. 명나라 정벌하게 앞장서, 길을 앞장서라.” 끊임없이 정명향도를 외쳤어요. 그런데 조선은 외면했던 거죠.

 

선조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일본에 대한 정보가 없었던 거예요. 외면한 겁니다. “아이, 일본이 쳐들어 와 봐야 뭐 어쩌겠어. 명나라 아버지가 도와주시겠지.” 이런 위정자들이 안일한 생각을 하다보니까 나라가 그들에게 짓밟힐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 1592413일날, 여기 있는 일본군, 당시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오사카에 성을 쌓구요, 방어를 위한 성이 아니라 공격을 위한 성을 쌓고 30만 명을 모아요. 그래서 최소 16만 명 이상으로 밀고 들어온 전쟁이 여기 있는 임진왜란이었습니다.

 

16세기, 지구상에서 벌어진 전쟁 중에 가장 큰 전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이 쳐들어오면서 명나라까지 개입을 하면서, 한중일 3국간의 전쟁으로 발발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일본이 우리나라를 쳐들어오게 된 거죠. 기습 아니었어요. 그래서 413일날 동래성 함락하고 부산포까지 함락하게 된 거죠. 여기까지가 전체적인 배경이다. 이렇게 보시면 되겠습니다.

 

여기서 하나 재미있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 뭐냐하면 전쟁 벌어지기 직전에 여기 있는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2~3년 전에 조선에 간첩들을 많이 파견합니다. 그 당시에 우리나라에 왔다 갔다 했던 일본 승려 상인들, 100퍼센트 간첩이었어요. 그런데 그들이 우리의 전력을 토요토미 히데요시한테 보고 하는데 뭐라고 보고하는지 아십니까?

 

조선엔 군대가 없습니다.”라고 보고를 해요. 이것을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안 믿었데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어떻게 군대가 없는 나라가 있어?” 우리나라엔 군대가 없었습니다. 200년간 지속되었던 지나친 평화가 우리의 군인들, 우리의 마인드 자체를 나약하게 만든 상태였죠. ,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일본과 맞서 싸울 수 있었을까요? 그 가슴 뜨거운 이야기, 곧 공개됩니다.